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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leser The Magic

2009.11.24 01:25

Rei 조회 수: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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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닌의 빈민가에는 발치를 구르는 돌멩이만큼이나 흔한 것들이 더러 있다. 빈곤과 불행에 허우적대며 한잔 술에 그것을 잊어버리는, 그런 의미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길바닥이나 골목어귀에서 빵부스러기 하나 주워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은 비켜 지나가야 하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아이들을 주워가는 부류는 두 가지 밖에 없다.


오로지 부려먹기 위해 데려가서 몇 년인가 죽을 만큼 일을 시키다가 진짜로 죽어버리면 쓰레기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 어딘가에 버리고 새로운 아이를 데려오는 악당. 그렇지 않다면 비쩍 마른 아이를 데려와 사육하는 돼지처럼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매춘으로 내몰아 정신적인 교살(絞殺)을 시켜버리는 기름기 흐르는 포주뿐이다.


세나는 후자의 경우였고, 때문에 어린나이에 정신이 나가버려 나이가 들어서는 괴상한 취미가 생겨버렸다. 길을 잃고 헤매는 동물이 있으면 집에 가져와 키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며칠 전 잠자리 인사를 하기위해 걷어찬 고양이가 등뼈가 부러져 죽은 이후 새로운 동물을 찾던 그녀가 토할 만큼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들어간 골목에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꼬마 두 명을 데려온 건,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 일일지도 몰랐다.


동정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의 발길질 따위에 쉽게 죽지 않는 큰 동물을 찾고 있었을 뿐이고, 꼬마 두 명이 술에 찌들어 몽롱한 그녀의 눈에도 굉장히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세나는 며칠인가 아이들이 기운을 차릴 때 까지 정성껏 간호했다. 깨끗한 옷도 사다가 입히고 매끼 따뜻한 수프와 신선한 우유, 갓 구운 빵을 먹였다.


삼일 째 되는 날 아이들이 완전히 기운을 차리자 세나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리고 어리둥절 하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레이와 시에나.


언제나 같은 이름이었다. 수놈은 레이였고, 암놈은 시에나였다.


레이는 그녀가 일하는 가게에서 포주에게 실수로 물 잔을 엎었다가 부지깽이에 맞아 머리가 터져 죽은 남자아이였고, 시에나는 그녀와 같이 끌려와 두 달 만에 완전히 미쳐버려 깨진 접시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한 친구였다.


세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깨달았다. 레이와 시에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다 말도 못하는 바보천치였지만, 말은 금방 익혀갔고 개나 고양이 같은 것들과 달리 여러모로 쓸모도 많았다.


세나는 행복했다. 귀여운 꼬마들을 양손으로 안아 들 수 있을 때도 행복했고, 그 꼬마들이 삼년동안 묘목처럼 쑥쑥 자라 양손으로 안을 수는 있지만 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 행복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가져와 키운 것들 중에는 레이와 시에나처럼 말을 잘 듣고, 쓸모 있고, 귀여운데다 오래살기까지 하는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세나가 한슨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몇 년쯤은 더 행복했을 지도 몰랐다.


한슨은 건달이었다. 그는 건달답게 하루 종일 빈둥대거나 으스대며 골목을 누비는 것이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수중에는 언제나 풍족하게 쓸 만 한 돈이 있었다.


이것은 그가 부유한 집안의 자제나 남몰래 보물이라도 주은 것이 아니었다. 한슨은 남에게 패악을 끼치는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 그가 특히 자신 있는 것은 여자를 후리는 것이었다.


타고난 외모와 언변으로 작부나 창녀들을 여럿 후려둔 탓에 그의 주머니엔 언제나 은화(銀貨)가 샘솟듯 솟아났다.


한슨이 세나를 만난 것은 평소 자주 들르던 술집에서였다.


세나는 아이들의 겨울옷을 새로 사 입히기 위해 고민을 하던 중 길게 자란 그들의 머리카락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벼락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가발을 만드는 곳에서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팔았다.


처음에는 새 옷을 사는데 몇 푼 보탬이나 되면 좋으려니 생각을 했지만 그녀의 손에 쥐어진 은화는 그녀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새 옷은 물론이고 머리통만한 돼지고기를 두덩이나 사도 돈이 남았다.


세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싸구려 위스키를 마시며 낄낄거리고 있을 때 한슨이 나타났다.


한슨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술잔을 홀짝 거리는 세나를 보고 단번에 그녀의 직업을 간파했다. 때마침 중요한 자금줄 하나가 도망쳐버린 이후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그런 그 앞에 나타난 세나는 강 밖으로 뛰쳐나온 물고기나 다름없었다. 그냥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세나는 자신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한슨을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일하는 가게나 주변 술집에서는 예쁘장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미쳤다는 소문이 너무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나와 활동하는 구역이 달랐던 한슨은 그런 소문을 듣지 못했고, 손쉽게 그녀의 휘어잡을 수 있었다.


한슨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쯤 세나는 한슨의 술값을 지불하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까지 승낙해버렸다.


비틀거리며 가게에서 나온 세나는 완전히 비어버린 주머니를 보며 술값으로 너무 많은 돈을 쓴 것 같다고 생각을 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주머니는 비어버렸지만, 그녀의 가슴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세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