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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yswichard * Fantasy Location *

2009.11.30 22:39

⊙ЯЁÐ⊙찰드 조회 수:979

extra_vars1 반란의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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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바깥이 온통 몬스터란 말이냐?”


 


대장군 김흥태와 여러 장수들이 한 기병의 보고에 펄쩍 뛸듯이 놀라 소리쳤다.


 


“왜 빨리 보고하지 않았느냐!”


 


정석원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분명 대신들이 공식 보고에 훼방을 놓았을 겁니다. 몬스터 침투에 대한 수비는 경비대대에서 할 일이니 궁성 본관까지 나설 필요 있느냐는 생각이겠죠.”


 


“아, 빌어먹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선 나라가 개판이 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흥태가 벌떡 일어섰다.


 


“경비대대를 지원한다! 모든 장군들을 소집해! 그리고 정승철, 장준영, 양선만 장군.”


 


“예!”


 


세 장수가 일어서자 흥태가 빠르게 지시했다.


 


“세분은 본관 병력 50기 씩을 이끌고 가, 정 장군은 동쪽, 양 장군은 북쪽 성벽으로 가서 혹시 성벽을 넘어 들어올지 모르는 몬스터들을 경계 해주시고, 장 장군은 남문을 지켜주시오. 특히 동쪽, 북쪽 성벽에는 성문이 없으니 몬스터가 그쪽으로 기습을 할 요량이라면 날아다니는 놈들이 올지도 모르오. 사격이 가능한 인원으로 주로 편성하도록 하오.”


 


“예!”


 


그리고 흥태는 석원을 돌아보았다.


 


“정석원 장군께서는 다른 모든 장군들과 함께 서문으로 가서 경비대대를 지원하시오. 난 전하를 뵙고 뒤따르겠소.”


 


“예!”


 


장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장수 직무실을 나서고, 흥태는 바로 정민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히페인츠의 여장 장준영이 본관병력 50기를 이끌고 남문에 도착했을 때와, 병선이 성벽을 뛰어 넘어온 시각은 거의 비슷했다. 준영은 웬 새하얀 나시 로브 차림의 하얀 장발 소녀가 그 높은 성벽을 가볍게 뛰어내려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것을 보고 마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폴리모프한 몬스터일지도 모른다. 잡아라!”


 


명령 일하, 50명의 궁성 기병들이 일제히 병선을 향해 돌격했다. 병선은 크게 당황하여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아, 아녜요! 전 인간이예요!”


 


“뭣이?”


 


달려들던 기병들이 주춤 하는 가운데, 병선은 궁성 사람들이 자신을 [몬스터]로 의심한 것에 대해 천만 다행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순순히 손을 들고 준영 앞으로 다가왔다.


 


“...?”


 


그러나 준영 및 기병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저 높은 성벽을 그냥 뛰어내려서, 중력도 무시하고 감속과 함께 안전하게 땅에 착지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꼼짝 마라!”


 


결국 준영이 “몸소” 소리쳤다. 병선은 그 호통에 화들짝 놀라 멈춰섰다.


 


“어떻게 인간이 성벽을 그대로 뛰어내린단 말이냐? 그것도 착지 직전엔 감속까지...”


 


“죄송해요... 마법사 길드 소속이랍니다.”


 


잔뜩 겁먹은 병선은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지만 반대로 이번엔 기병들과 준영이 깜짝 놀라버렸다.


 


“마법사 길드... 라고? 마법사란 말인가?”


 


“네... 몬스터가 바짝 뒤쫓아오고 있어서...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고 성벽을 뛰어넘어서 죄송해요. 너무 급했어요.”


 


“아...”


 


준영 등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오해해서 미안하군. 이제 몬스터들은 우리가 맡을테니 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순간 병선은 그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마법사 길드 소속 임을 밝히면 대충 [길드원들이 저기 서문 쪽에서 지원중이니 가보게.]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저... 잠깐만요, 나으리.”


 


“무슨 일인가?”


 


나아가려던 준영이 다시 병선을 돌아보았다.


 


“마법사 길드는... 참전하지 않은 건가요?”


 


“참전?”


 


기병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의아해하는 가운데 준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사 길드에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네. 헌데 자네는 마법사 길드원 이라면서 그걸 모르는가?”


 


“다른 도시에 가 있다가 지금 돌아온 거라서요. 그럼 지금 마법사 길드는 참전하지 않은 것이군요?”


 


“그렇지.”


 


“네, 알겠어요.”


 


곧장 서문으로 가보려던 병선은 곧 생각을 달리했다. 역시 마법사 길드는 참전하지 않은 것이다. 서문 성벽에서 몬스터들을 가격하던 불덩어리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풀기로 하고 일단 마법사 길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네?”


 


병선은 입을 딱 벌리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해보였지만 길드 마스터 김재범은 약간 한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일부러 놀라는 척 할 필요 없어.”


 


“...네.”


 


병선의 얼굴이 시무룩 해졌다.


 


“예상 했을거 아냐. 몬스터들이 시내까지 몰려와 우리 길드 건물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야. 왜 이 도시의 위급에 신경을 써 줘야 하는데? 어디가 이쁘다고.”


 


“그래도... 이건 임펠 자체의 긴급 상황인데...”


 


재범은 확고부동한 표정이었고 옆에 있던 견연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임펠은 임펠이고 우리는 우리야. 넌 이제까지 궁성의 대우를 쭉 봐 왔으면서 그러니?”


 


수년 만에 마법사 길드에 들른 병선은 길드원들에게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잠시동안 이 사람 저사람에게 악수를 받고 포옹을 당하고 하는 난리를 겪은 후, 곧장 길드장실을 찾아와 김재범과 비서 견연을 만나고 나서 현재 임펠이 공격받고 있는 현황에 대해 이야기 하자 재범은 당연하다는 듯이 거절 의사를 표명하여 병선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다.


병선은 시무룩하게 말했다.


 


“차... 참전하지 않으면 궁성의 대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참전 한다고 지금보다 좋아지리라는 보장도 없어. 아마 너희의 협력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생색을 낼 요량이면 차라리 협력을 하지 말아라 라는 투로 나올걸. 여태 한두번 당했니.”


 


견연이 다시 말하고 나자, 거기까지 가만히 듣고있던 재범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병선이.”


 


병선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다시 재범을 바라보자 재범은 약간 적의를 담은 눈으로 말했다.


 


“그간 방랑 생활을 하면서 어디서 뭘 보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태 탁씨 아저씨의 무덤을 부순 다음 외도를 걷다 갑자기 찾아와서 궁성에 협력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게 솔직히 좋게 보이진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서 넌 우리들에게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라고 말할 권한이 없어. 무슨 말인지 모르진 않겠지?”


 


“......”


 


병선이 당장이라도 [어떻게 그런 말을...!]이라고 외칠 듯한 얼굴로 재범을 바라보는 사이, 견연 역시 재범에게 [그건 좀 심한 말이 아닌가] 라는 말을 차마 하지는 못하고 대신 안타까운 시선으로 재범을 바라보았다.


 


“네가 다시 길드원으로 돌아와 준다면 진지하게 네 의견에 대해 다른 고위 길드원들을 불러서 회의를 열어줄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아냐. 우리 입장에서 넌 그저 방문객에 불과해. 그것도 우릴 적대시하는 궁성을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범 오빠...”


 


슥. 의자에서 일어난 재범은 몸을 돌려 벽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 다른 할말 없으면 돌아가줘.”


 


잠시 방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견연은 재범의 말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 주제에 관해서만큼은 재범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달리 항변할 생각은 없어보였고, 재범의 생각과 견연의 그러한 낌새를 느낀 병선은 크게 실망한 얼굴로 말 없이 몸을 돌려 길드장실을 나와버렸다.


 




사망자 약 250명.


경, 중상자 약 4300명.


서문 완전 파손, 남문 일부 손상.


 


단 한차례의 몬스터들과의 전투로 임펠의 병력 절반 가량이 전투 불능상태에 빠졌다.


전례가 없던 대규모 공습이었다. 먼 옛날 라이기르 영지를 공격했던(한원양이 전사한 그 전투다.) 몬스터 수백마리의 공격 이후 최초이자, 역대 최대 규모의 몬스터들이었다.


다른 기병들과 함께 육탄전도 하고, 간간히 마법을 섞은 공격도 감행하느라 한정완은 그야말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기 전에(?) 한가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만 마리에 가까운 몬스터의 공습.


아무래도 이상했다.


한창 싸우는 도중 정완이 문득 생각한 것은, 근 몇년간 인간이 그렇게 몬스터들을 도발한 일도 없었고, 몬스터들에게 겨울을 날 식량이 필요했다고 보기에도 너무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여! 정완!”


 


2소대 부소대장인 중사 한명이 고민에 빠져있는 정완을 불렀다.


 


“예. 구중사님.”


 


“자네 대단하던데? 마법까지 쓰고 말이야.”


 


“아, 예, 뭐... 어렸을때부터 라이기르 영지의 기병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것저것 배우게 되었습니다.”


 


“라이기르 영지의 기병들은 마법도 쓰나?”


 


“아뇨, 그런건 아니지만... 저희 아버지도 기병이셨고, 또 화염(火炎)계열의 마법을 사용하셨었습니다. 유전이겠죠.”


 


“그래...? 오... 맞아. 그랬지. 자네 부친도 라이기르 영지의 기병이었다고 했었지. 마법능력도 유전이 되다니, 놀라운 일인데?”


 


입을 딱 벌리며 감탄하던 중사가 정완의 손을 잡아 끌었다.


 


“듣던 대로군. 자네 모병시험 성적은 과장된게 아니었어. 가세. 문득 자네에게는 굉장한 호기심이 생긴단 말이야.”


 


“헌데 구중사님.”


 


정완이 멈칫 하며 중사를 부르자 중사도 의아한 표정으로 정완을 바라보았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인가?”


 


“이번 몬스터의 공습 말입니다. 얼핏봐도 이 임펠의 전병력인 만여명과 맞먹는 숫자였잖습니까. 지금 시기에, 몬스터들이 그렇게까지 몰려들어 인간의 도시를 공격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음... 그래?”


 


심사묵고 하던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구먼. 물론 궁성 본관의 위엣 놈들은 그런 신경도 안쓰겠지만.”


 


“쉬기 전에, 일단 임펠 내부의 순찰이 좀 필요할 듯 싶습니다. 몬스터들이, 별다른 까닭도 없는데 만마리나 모여서 수도를 공격할 리가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몬스터들을 선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 자네 말이 옳아.”


 


중사가 매우 기특하다는 듯이 정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모저모 자네는 훌륭한 인재군. 과연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알겠네. 나도 우리 소대장과 이야기 해서 자네 순찰을 돕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중사님.”


 


“감사하긴! 오히려 내가 미안하네.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전투 끝났다고 쉴 생각부터 했으니 군인의 자세가 아니지.”


 


그리고 중사는 곧장 몸을 돌려 자신의 소대원들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정완은 곧장 몸을 돌려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


 


스스로 마법을 섞어 전투를 하던 와중에 생각난 것은, 마법사 길드가 끝까지 참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판타지 로케이션 길드야 대부분 온드라 게릴라 부대를 상대로 하고 있어서 본부에는 별로 병력이 남아있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일대 다수의 전투가 가능한 마법사 길드가 임펠의 위급을 계속해서 못본 체 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궁성 본관에는 지금껏 전입 신고하러 딱 한번 가봤을 뿐이라 그 안의 대신들이 마법사 길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으나, 분명 신분의 귀천을 심각하게 따지는 자들이라 마법사 길드같은 평민들의 모임(그렇게 치면 판로 길드도 마찬가지지만 판로 길드는 온드라 견제에 공이 크므로)을 향해 고운 말을 해줄리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궁성 대신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누구 하나라도 힘을 써 줄수는 없었던 것일까?


 


걸으면서 시내를 둘러보니 임펠 시내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저마다 불안의 극을 찍는 얼굴로 어디론가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시내에까지 몬스터가 들어올까봐 장사판을 급하게 치우다가 망가진 상품들을 보면서 울상이 된 사람들, 군데군데 모여서 나는 이러했다 나는 저러했다 나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느냐는 등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곧 메니엄 대륙이 멸망할 징조라고 외쳐대는 종말론자 비슷한 사람도 보였다.


 


그만한 난리통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소녀가 있었다.


 


이제 10대 중반쯤 됐을까.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백발에, 또 어깨와 앙가슴이 다 보이는 새하얀 나시로브. 로브 치맛자락 아래로 다소곳하면서도 일정하게 움직이는 새하얀 발목구두. 거기다 피부 마저도 매우 고운것이 그마저도 새하얗게 보인다.


그 소녀를 보면서 정완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주변 풍경과는 너무 다른 특별한 자태였으나, 어디선가 한번 본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


 


소녀와 정완의 눈이 마주쳤다. 정완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랬군. 스타디 영지에서 새벽 순찰을 돌때였지. 어두울때 봤을때는 잘 몰랐으나 지금 날 밝을때 보니 소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에서 엄청난 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정완... 하사님?”


 


병선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정완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걸어가 병선과 가까이 마주섰다. 병선은 조금 뒷걸음질을 칠 뻔했으나 간신히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스타디 영지에서 뵈었던 분이군요. 오랜만은 아니지만.”


 


“아, 네. 저...”


 


병선은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이리저리 꼬았다. 그 새하얀 뺨이 어쩐지 붉어지는 것도 같다.


 


“언제 수도에 올라오셨습니까?”


 


“아... 쫌전에요... 몬스터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서 임펠을 공격하고 있길래...”


 


“그러셨군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정완은 다정한 미소로 병선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탁병선양. 맞지요?”


 


“......네.”


 


“병선양이 이곳 저곳에서 시프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좀 안타깝더군요. 아직 이렇게나 어린 병선양을, 대체 어떤 손길이 그렇게 이끌었습니까.”


 


“아, 전... 마법사 길드에서 자랐어요.”


 


정완에게는 의외의 이야기였다. 마법사 길드와 왕래를 자주 한건 아니었지만 그곳에 이렇게 어린 소녀가 “살고” 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마법사 길드에서 자랐다고요...? 부모님은 어떻게...”


 


“.........”


 


병선은 대답하지 못하고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 얼굴을 보며 정완은 조금 당황하며 질문을 거두었다.


 


“아... 돌아가신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괜한 것을 물...”


 


“아뇨... 괜찮아요. 돌아가신지 어떤지는 저도 잘 몰라요. 얼굴도 모르는걸요.”


 


“.....예?”


 


병선은 그 말을 끝으로 더 털어놓지 않으려는 듯 입을 다물었고 정완은 잠시 더더욱 안타깝다는 눈길로 병선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말했다.


 


“...알겠습니다. 헌데... 이제부터는 다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지요?”


 


“정해진 곳은 없어요. 마법사 길드에 좀 들러보려고 왔는데...”


 


말을 하던 병선이 뭔가 생각난 듯이 확 고개를 들고 약간 급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로 마법사 길드는 이번 방어전에 참전하지 않았나요?”


 


“예. 그렇잖아도 저 역시 마법사 길드에 이번 불참에 대해 물어보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아하... 하던 병선의 목소리가 다시 시무룩 해졌다.


 


“재범 오빠와 연이 언니는 이미 나라 자체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걸요.”


 


“궁성의 대신들만 길드를 함부로 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대신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 임펠의 수많은 시민들을 생각해서라도 나서줄 수 있는것 아닐까요.”


 


“네... 저도 같은 이야길 했지만... 마법사 길드는 오히려, 어째서 몬스터 습격에 대한 참전이 자신들의 의무인것처럼 얘기하느냐는 입장이예요. 별로 인간적인 말은 아니지만... 어떻게 더 할말도 없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야길 듣고 있던 정완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가족처럼 지내던 병선양의 말에도 그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궁성 기병인 제가 가서 이야기 해봐야 씨알도 안먹히겠군요. 마법사 길드로 가보는 것은 그만 둬야 할것 같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정완은 문득 다시 새로운(?) 눈길로 병선을 바라보았다.


 


“헌데... 그럼 이제 지내시는 곳은...? 마법사 길드가 아닙니까?”


 


“네... 옛날에, 제 양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길드를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냥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어요.”


 


“이런...”


 


정완의 눈빛이 어느덧 병선의 처지를 반영하듯 몹시 쓸쓸해졌다.


 


“혹시 한곳에 좀 머무를 곳이 필요하신 것은...”


 


“아뇨.”


 


설레설레. 그녀의 새하얗고 긴 머리카락이 곱게 좌우로 물결쳤다.


 


“아직은... 전 그냥 이곳저곳 돌아다니는게 좋아요. 한곳에 머물러 있는건... 왠지 좀 안맞는것 같에요.”


 


하마터면 “무서워요”라고 말할 뻔했다.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정착할 곳을 원하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판타지 로케이션 길드와는 친분이 있으니, 그쪽으로 지낼 곳을 알아봐 드리지요.”


 


“네... 감사해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꿉벅, 해 보인 정완은 다시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병선의 말을 들어보면, 괜히 마법사 길드로 가 봐야 눈살 찌푸릴 일 밖에 없을 듯 했다. 최악의 경우 그쪽 길드원들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감행할 우려도 없다곤 볼 수 없잖은가.


돌아가는 정완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병선은 자신 역시 쓸쓸히 몸을 돌려 남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곳에 정착한다.


아직 10대 중반에 불과한 병선 역시, 가족과도 같은 사람을 사귀고 자신의 집을 가져 따뜻하고 평온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몹시 간절했다. 그러나 자신이 마법사 길드에서 지낼 적에 길드장 권국현에게 당했던 끔찍한 기억에 대한 공포감은 그보다 더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곳에 머물러 있는것이 무섭다고 말하려 했었다.


그러나 분명 정완은 그 표정으로 볼때 자신을 동정하고 있다. 정착하는게 무섭다고 말하면 분명 그 이유를 물어올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또 긴 이야기를 하거나 대답하기 싫다는 내색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염려해주는 사람에게 계속 뭔가를 숨기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겨우 두번 만났을 뿐인 궁성 기병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줘 버린다는 것도 좀 그렇거니와, 어쩐지 정완에게 실례도 되는 것 같아 병선은 굳이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고, 그만큼 병선은 겉으로나 속으로나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병선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이미 정완은 어떻게든 병선을 지금 상태에서 구해내 줘야 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어버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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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가만히 놔두다간 끊임없이 덧나


사랑도 사람도 너무나도 겁나


혼자인게 무서워 난 잊혀질까 두려워


......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