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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leser The Magic

2009.11.16 09:15

Rei 조회 수: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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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Nameless


 


쏴아아-, 얼기설기 얽힌 지붕들 사이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을 보니 잠깐 내리고 그칠 소나기는 아닌 모양이다. 빗물과 오물이 뒤섞여 작은 내천을 이루고 있는 어두컴컴한 골목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두 명 있다.


춥다.


조그만 소년과 소녀는 더러운 모포조각을 뒤집어 쓴 채 어깨를 붙였다. 최대한 열을 보존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이만큼 쏟아지는 폭우 속에선 무리였다. 파랗게 질린 입술이 덜덜 떨려왔다. 소년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문가에 귀를 대 보았지만, 아직도 얕게 흐르는 교성(嬌聲)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오빠, 추워.”


“조금만 참아. 조금만…….”


이르닌. 이르니아의 수도에는 인정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비를 피해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더러운 모포조각을 뒤집어쓴 두 꼬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쓰레기가 버려진 것처럼 피해갈 뿐이었다.


손발의 감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뼛속까지 스며든 추위가 온몸을 얼음덩이처럼 만들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소년은 빠져나가려는 한줄기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하지만 서서히 감기는 눈은 어쩔 수가 없었다. 빗방울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누군가 날카롭게 지르는 비명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소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침대 안이었다. 소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에는 발가벗은 소녀가 조그만 화로(火爐)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시에나 괜찮아?”


소년이 시에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졸고 있던 시에나는 대답대신 화들짝 놀라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시에나는 잠깐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니 이내 소년을 올려다보며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시에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양 볼이 퉁퉁 부어오른 채로 미소를 지으면 바보 같아 보일게 틀림없었다.


소년은 시에나의 볼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물었다.


“세나가 때렸어?”


“응.”


“왜?”


“시끄럽다고…….”


“옷은?”


“저기”


시에나는 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이 두 벌 걸려있었다. 옷은 한 벌 뿐이니 옷이 마를 때 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알몸으로 있어야 했다. 소년은 시에나를 가볍게 토닥여주곤 마찬가지로 화로 옆에 쪼그려 앉았다.


화로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은은하게 불빛만 낼 때 쯤, 세나가 돌아왔다. 온몸이 젖은 채로 들어온 세나의 모습은 마치 귀신같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광기서린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레이! 시에나!”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모포를 뒤집어 쓴 채 졸고 있던 소년과 소녀는 세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세나는 침대 맡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하자 재빨리 다가가 레이와 시에나를 한번 씩 걷어찼다. 그리고 그녀는 그 누구보다 온화한 얼굴을 한 채 모포 사이로 고개만 빠꼼히 내밀고 있는 레이와 시에나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잘 자, 귀여운 꼬마들.”


입맞춤을 끝낸 세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레이는 세나가 잠이 들자 익숙한 동작으로 그녀의 신발과 옷을 벗겨 벽에 걸었다. 그리고 수건에 물을 적셔 분칠한 얼굴을 세심하게 닦았다. 대부분 빗물에 씻겨 내려가긴 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얼굴까지 닦아준 후 마지막으로 그녀가 깔고 있던 이불을 빼내어 덮어 주었다.


레이는 편안한 얼굴로 잠에 빠져든 세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정신 나간 여자는 자신과 시에나를 개나 고양이 새끼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덕분에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집도 생겼고, 따뜻한 수프와 빵을 먹을 수 있었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불행하지도 않았다. 쓰레기들이 뭉쳐 살아가는 이르닌의 빈민가에서 행복이나 희망은 너무 값비싼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