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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릴레이연재 Neptunus Story

2010.11.07 07:33

크리켓 조회 수:162 추천:5

extra_vars1 쥐구멍의 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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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하셨습니다. 위버츠씨. 이번 해 의무노동일은 끝나셨군요.”


 


 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하고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수려한 외모의 남자가 전자서류를 나에게 내밀며 서 있었다. 난 잠시 그의 모습이 진짜인지 환각인지 구분하기 위해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흔들림이 없는 눈동자였다. 그러면서도 눈에서 나오는 야망은 이 사람이 나중에 얼마나 큰 사람이 될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자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수면장애를 가지고 있고 지금 막 노동이 끝나 피로함을 느끼는 초췌한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뭔가 이상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점검하였다. 그가 낯이 있었다. 사실 요즘 같이 잠을 이루지 못해 환각현상까지 보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낯이 있다는 생각을 나 자신도 믿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런저런 그에 대한 생각을 하는 중에 그 남자가 다시 한번 말하였다.


 


 “위버츠씨? 이 서류에 사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뭔가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 예. 죄송합니다.”


 


 나는 그에게 실례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전자서류에 손가락으로 아무렇게나 휘저었다. 그는 그 서류를 들어 잠시 확인해 보더니 자신의 케이스 안에 넣고는 막 다시 돌아서서 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혹시 로렌버츠 고등학교에 다니시지 않으셨습니까?”


 


 “네? 예, 그렇습니다만….”


 


 그러자 그는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오른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는 내밀었다.


 


 “역시! 저 기억 안 나 십니까? 선배님 동아리에서 1학년 부장을 맡았던 크리스 이자르라고 합니다.”


 


 동아리라고 한다면 아마 고등학교 시절에 했던 테니스 동아리를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3학년 대학 진학반에 들어가면서 동아리장이었지만 참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1학년 부장이 누구였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고 이자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지만, 그가 나를 알고 있기에 나는 악수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며 매너 있는 멋진 신사였기에 악수를 거부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고등학교 시절 스쳐 지나간 동아리 후배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기억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 반갑군. 헤르메스 소속 공무원이 됐나 본데 축하하네.”


 


 “아닙니다. 모두 선배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한 것도 없는 무늬만 동아리장이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인 환영의사를 띄고 다가온 걸 보니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좋은 말 하는 사람에게 침을 뱉을 순 없지 않은가?


 


 “선배님이 뉴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꼭 축하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이자르라는 남자의 입에서 시작된 기본 안부 인사와 그동안의 현황 등등 사람을 매우 귀찮게 만드는 지루한 말들이 이어졌지만 중간마다 나오는 나를 존경한다는 듯한 말 때문에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그와 그렇게 약 3분 가까이 말을 나누다가 그의 뒤에서 다가오는 한 남자를 보았다. 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이자르 또한 뒤를 돌아보았고 다시 환하게 웃으며 그 남자를 반겼다. 그리고는 한 발짝 옆으로 물러서더니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배님. 현재 뉴 하버드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과장으로 일하는 제임스 윌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윌이라는 남자는 꽤 성공한 남자인 것 같았다. 이자르의 친구로 보이고, 꼭 친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젊은 사람이 한 부서의 과장을 맡고 있다는 것이 그를 매우 유능한 남자로 보이게 하였다.


 


 “반갑네. 나는 오렌 위버츠라고 하네. 현재 한화 소속 무기개발원에 있다네.”


 


 윌이라는 남자는 이자르를 잠시 쳐다보다가 내가 손을 내밀자 그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스르르 나타났지만 곧바로 사라졌다. 서로 악수하는 게 끝나는 것을 본 이자르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같이 술이라도 마시러 가죠. 제가 내겠습니다.”


 


 평소라면 좋다고 하하거리며 갔겠지만 요즘 내 상태는 좋지 않은 수준을 넘어서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미안하네. 요즘 피곤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네.”


 


 “아, 그러시군요.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여기 제 명함입니다.”


 


 이자르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명함을 하나 주었다. 나 또한 그에게 내 명함을 주었고 자세히 살폈다. 요즘 시대에 전자명함도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이자르의 명함은 특이하게도 구 명함의 형태였다. 명함에 적힌 직업란에는 ‘아이도란츠 주식회사’라고 적혀 있는 것이 그저 그런 곳에서 일하는 남자인 것 같았다.


 


 “난 이만 가보겠네. 언제 한번 꼭 연락 주게.”


 


 “예,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이 피곤함 때문에 황급히 돌아서서 걸어갔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무례까지 범할 정도로 나는 지금 피로하다. 돌아서기 전에 그 남자의 기분 나쁜 미소가 신경 쓰였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됐을까.


 


 


 


 한 달 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계속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바라본다는 느낌에서 넘어서서 사실이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나와서 공원에서 간소히 밥을 먹고 있는데 자주 느끼던 그 불길한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았을 때, 공원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 동시에 눈이 마주치며 시끄러웠던 공원이 한순간에 정적에 휩싸인 모습은 너무나도 불쾌했고 소름 끼쳤으며 또한 매우 무서웠다. 내가 하얗게 질리며 벌떡 일어서자 공원에 있던 사람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기 할 일을 하며 내 시선에서 벗어났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모든 순간순간이 누군가에게서 감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살아왔다. 최근에는 단순히 나를 감시한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나와 지나치면서 눈을 마주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했다. 나와 마주친 사람에게 화를 내며 다가갔지만, 그들은 나라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행동을 하며 천천히 사라졌다. 또한, 나와 눈이 마주친 모든 인간이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는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에게 평소에 쌓인 불만을 폭발시키기 위해 다가가서 주먹을 휘둘렀고, 그는 그냥 지나가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폭력을 휘둘렀다는 말과 함께 합의금을 제시하였다. 지금까지 보였던 무관심의 태도와는 상반된 행동이라 한순간에 그는 나를 감시하던 사람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 일 때문에 나는 그저 이 스트레스를 참으며 살아왔고 계속되는 무관심의 감시 속에서 시름시름 앓았다. 나는 곧 수면장애와 함께 신경쇠약에 걸렸다. 그뿐만 아니라 환각 현상에다가 누군가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환청 현상도 시달렸다.


 


 의무노동일이 있기 3일 전, 나는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다. 평소처럼 일이 끝나고 늦은 시간에 돌아오던 도중 5명의 불량청소년 무리에게 습격당해 쓰러졌었다. 그저 불량청소년에게 우연히 걸렸다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5명 중 그냥 가만히 서서 지켜보던 남자애의 눈동자가 평소에 나를 감시하는 듯한 사람들의 눈동자와 닮아 있었다. 무표정하고 무관심하며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쓰러진 나에게서 지갑에 든 현금만을 들고 다른 친구들과 사라졌다. 그게 나를 감시하는 인간들의 의도된 행동인지, 아니면 우연히 나를 공격하던 불량 청소년 중에 한 명이 나를 감시하는 모습으로 변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첫 번째 경우일 때는 이제 감시를 넘어서서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일 테고, 두 번째 경우일 때는 나를 감시하는 인간은 단순한 인간을 뛰어넘은 자라는 것이다. 첫 번째라면 난 이제 내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무기를 들고 다녀야 할 것이고 두 번째라면 직장 동료와 친구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식까지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 이후엔 아이들과 아내를 처가로 보내서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다. 1시간 단위로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잠이 부족하여 수면제를 먹고 완전히 곯아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환각현상과 함께 요즘엔 내가 언제 어디서 자는지도 모르며 마치 술을 마신 듯이 필름이 끊길 때가 있었다.


 


 


 


 “으음. 또 잠들었군.”


 


 눈을 뜨자 내가 모르는 으슥한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 냄새와 더러운 오물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쓰러져 잠자고 있었다. 나는 스르르 감기는 눈을 억지로 위로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곳에 도시의 불빛이 번쩍이는 걸로 보아 먼 곳에 오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막 일어나서 한 발짝 내디뎠을 때, 평소에 윙윙거리며 속삭이듯 들리든 환청이 뚜렷이 들렸다.


 


 “여기 있구나.”


 


 나는 멈춰 서서 뒤돌아보았다. 내 뒤쪽의 골목 끝에서 어느 남자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남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가 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위버츠.”


 


 갑자기 내 주위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어가며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던 남자는 뭔가 흠칫하고 놀라며 멈춰 서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떨어져 내려왔다.


 


 “위버츠.”


 


 그 이상한 무언가는 내 이름을 부르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 스며들어 간 그것은 그저 징그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를 뿐이었다. 그 징그럽고 불쾌한 목소리는 천천히 내 머리를 헤집고 들어왔다. 희미하게 앞에서 들리던 그 목소리는 금세 내 오른쪽에서 들려왔고, 그 차갑고 불분명한 목소리는 메아리쳐서 왼쪽에서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나를 먹잇감같이 휘돌아서 사방을 옥죄여 오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징그러운 듯한 목소리는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에서 여자의 하이톤으로, 또다시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목소리로 들려왔고 나는 부들부들 떨다가 뛰기 시작했다. 앞에 두 갈래 길이 보이는 지점이 다가오자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그림자가 골목을 천천히 먹어치우며 무섭게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다시 앞을 집중하며 있는 힘껏 달렸다. 오른쪽 골목으로 빠져나가자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길은 큰 담벼락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왼쪽 길이 보였다. 내 뒤쪽에서는 들개 같은 무언가의 숨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쓰레기통이 박살 나는 다리가 떨려왔다.


 


 “위버츠! 위버츠!”


 


 그 괴물은 내 이름을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듯이 되새겼고 난 계속해서 달려갔다. 왼쪽 길로 빠져서 뛰어가니 저소득 주민을 위한 작은 아파트 단지의 어둠침침한 놀이터가 나타났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그네가 끄덕거리는 그런 기분 나쁜 공간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림자는 바짝 다가와 있었다. 주변의 집을 하나씩 삼키며 다가오는 그림자의 뒤쪽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아파트를 관통하는 오래된 구식 고가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세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아파트 안으로 뛰어들어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막 2층으로 올라가려는 계단 위에 서자 1층에서 문을 부수고 벽을 뜯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과 나의 거리가 너무나 좁혀졌다.


 


 "사람 살려요!“


 


 나는 고가도로가 보이던 4층까지 뛰어 올라가며 그렇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함께 몰고 온 어둠이 아파트를 감싸 안았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둠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것’의 몸은 커서인지 계단을 뛰어 올라갈수록 나를 따라오는 소리는 멀어져 갔고 고가도로 입구에 서자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고가도로를 넘어서 그대로 달리기만 하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그러한 곳으로 나올 것이다. 나는 기뻐서 다시 힘을 내서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곧 내 다리 밑에서 엄청난 진동과 함께 고가도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소리를 들어보니 ‘그것’이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것이 안 되자 한층 한 층을 죄다 부숴가며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런, 젠장!”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달려갔다. 그러자 내 바로 뒤에서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올라왔는지 묵직한 진동이 고가다리를 흔들어놓았다. 나는 뒤로 있는 힘껏 서류가방을 던지고 다시 뛰어갔다. 서류가방이 부서지면서 마치 전기톱에 갈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눈물을 머금으며 도망쳤다.


 


 “으악!”


 


 무언가 채찍 같은 것이 내 종아리를 찰싹하고 때렸다. 다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마치 불에 탄 것 같은 고통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뜨거웠다! 내려다보니 강한 산성을 뛰고 있었는지 내 종아리가 조금 녹아들어 있었다. 그리고 종아리가 녹은 것을 보자마자 내 다리는 힘이 풀려서 앞으로 굴러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더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고 두려움에 차 뒤를 돌아보았다.


 


 “오, 이런 세상에!”


 


 ‘그것’은 너무나도 흉측했다! 서류가방을 갈아버린 건 그 녀석의 입이었다. 거대하고 둥그런 입안에는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이빨이 마치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었고 가슴에는 피부가 없이 검은색 뼈대 안에 초록색의 작은 바위같이 생긴 심장이 쿵덕거리고 있었다. 팔은 거대한 문어의 다리 같았고 거기서 산성 물질이 떨어져 내려 고가도로를 야금야금 구멍을 내고 있었다. 몸 주변에서부터 감싸서 다리까지 내려오는 칠흑 같은 어둠은 ‘그것’이 마치 다리 없는 사신과 같이 보이게 하였다. 나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어 ‘그것’의 가슴에 있는 심장을 조준하고 쐈다. 하지만, 너무나 공포에 질려서인지 총알은 심장을 빗나갔고 검은 뼈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그것‘은 크게 포효를 내지르고는 팔을 휘둘렀다. 채찍같이 휘어지는 팔이 내 손목을 때리자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팔이 떨어져 나갔고 상처부위를 산성용액이 천천히 지져갔다.


 


 “으아아!”


 


 강한 산성이 내 손목을 녹이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막 떨어진 손은 어느새 산성용액 구덩이 속에 떨어져 권총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내 팔은 이미 팔꿈치에 가까운 부분까지 녹아가고 있었다. 살은 거의 다 녹았고 뼈는 완전히 녹지 않았지만, 살짝만 쳐도 부러질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고통스러워하자 매우 즐겁다는 듯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왜?’라는 의문을 떠올리며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신음하며 바라보았다.


 


 “이런 너무 늦었군.”


 


 그때 갑자기 ‘그것’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더니 크게 ‘그것’의 몸이 흔들렸고 ‘그것’이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구식 대검이 가슴을 뚫고 심장을 관통하여 등까지 쑥 하고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검날은 ‘그것’의 몸 아래로 한번 가르고 다시 위로 쳐 올리며 완전히 반으로 갈랐다. 반으로 갈라진 ‘그것’은 각기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고 주변을 물들이던 어둠과 함께 천천히 사라져갔다. 나는 바닥에 숨을 헐떡이며 ‘그것’을 죽인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온 거지? 이건 수인도 아니잖아.”


 


 눈앞이 흐릿해져 갔다. 과 출혈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이런 이러다가 죽겠군.”


 


 남자는 황급히 다가와 내 팔에 어떤 주사를 놓아 주었다. 신비하게도 금방 피가 멎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마약을 한 듯한 몽롱한 상태가 되어 바닥에 뻗어버렸다.


 


 “어서 옮겨야 하겠는걸.”


 


 그 남자가 바짝 다가와 내 목에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 남자는….


 


 


 


 너무나 어지러웠다. 눈앞에 흔들리는 구식 백열등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웠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곳은 무척 춥기까지 했다. 조금씩 정신이 들려고 하지만 약 기운이 느껴지며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또한, 내 몸을 결박한 어떤 족쇄 같은 것이 느껴졌다. 후각 신경이 살아나자 곧 나는 역겨운 냄새에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토악질을 하였다. 내가 힘없이 다시 머리를 돌리자 따끔한 느낌이 팔에 들었다. 무엇인지 보고 싶었지만, 곧 밀려오는 나른한 느낌과 함께 가만히 있게 되었다. 살짝 눈동자를 돌려보니 흐릿한 시야에도 한눈에 들어오는 하얀 가운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과 대조되는 검은색 책. 뭔가 윙윙거리는 것이 들렸다. 내가 좀 더 그 소리에 집중하자 완전히 청각 신경이 살아나서 그 말을 듣게 되었다.


 


 “…어둠이여 오라. 죽음과도 같은 공포 속에서 나는 웃으리라.”


 


 남자는 그 말을 끝내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반쯤 떠있는 내 눈과 마주쳤다. 그 눈과 마주치자마자 불현듯 내 팔에 조금씩 감각이 되살아나며 저릿한 기분이 들었다. 팔이 마취되었을 때 드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병원인가? 이자가 나를 맡은 의사이고? 여기는 수술대인가? 온갖 궁금증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고 그럴 때마다 머리는 찢어질 듯이 아팠다. 남자의 등 뒤편, 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철문 옆의 빛이 닫지 않는 어둠 속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는 이자르였다. 나는 그를 알아보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뻐금거렸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서 하시지요.”


 


 나는 ‘뭘?’이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그럴 사이도 없이 남자가 내 팔에 주사기를 다시 찔러 넣었다. 파란색 찰랑거리는 어떤 것이 주사기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보였고 그것이 내 정맥을 따라 들어와 천천히 사라지는 게 보였다.


 


 “으읍! 으브븝!”


 


 엄청난 고통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내 온몸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아아! 소리도 제대로 지를 수 없는 그 엄청난 고통이! 머리가 아프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지고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뇌의 혈관 하나 하나가 펑펑 터지는 듯한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으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세상이 빨갛게 물들어간다. 빨갛게. 너무나 선명한 빨간색으로…….


 


 


 


 “실패했군요.”


 


 이자르는 가증스러운 놈이다. 그에게서 받은 도움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내 앞에 머리가 터지며 죽어간 남자를 보았다. 아까 헤르메스 공청 앞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아마 이름이 오렌 위버츠일 것이다. 이 사람의 머리가 터지며 완벽히 죽자 실험대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서 시체를 처리하는 곳으로 보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이자르가 서 있었다.


 


 “그 이상한 괴물도 당신의 것입니까?”


 


 “아, 그 흐느적거리던 괴물 말인가요? 글쎄요. 저도 그 괴물은 본적이 없네요. 갑자기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이자르는 이 넵튜너스 안에 있는 수많은 썩은 뿌리 중에서도 근원을 알 수 없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내가 이자르와 협력하며 안 것은 넵튜너스 안에서 가장 비밀리에 움직이는 길드의 어느 하위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매우 무섭게 유능하였다. 위버츠를 24시간 감시하는 방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는 이자르가 얼마나 무섭고 미친놈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위버츠가 마시는 물, 커피 등등에다가 조금씩 환각을 유발하는 LSD를 넣어서 그를 천천히 마약중독자로 이끌었고 LSD의 청각 이상 감각 현상과 비현실적인 공상, 망아 현상으로 그를 언제나 불안하게 만들어갔다. 급격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위버츠를 감시하는 것은 그 이후엔 식은 죽 먹기였다. 마약공급을 중단한 1주일 전에는 천천히 금단현상이 오기 시작하였고 의무노동일 내내 시체같이 행동하였다. 그는 사람을 이용할 줄 알았고 심리적인 면을 잘 파고들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 성격 때문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1년 전부터 계획한 것 같은 완벽함을 보였고, 그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측근에게조차도 자신의 진짜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언제나 이자르로 불리기를 원했다. 더러운 놈이다. 이자르(Izar = 가장 아름다운 자)라니.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크레이츠먼씨.”


 


 “제임스 윌이라는 이름도 나쁘지는 않더군요.”


 


 “그런가요? 윌슨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마음대로,”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자르의 알 수 없는 이 비밀실험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완벽한 실험대상을 찾는다며 감시를 하는 그의 모습에선 광기가 느껴졌다. 한 때 그냥 납치하면 되는 것을 왜 그렇게 질질 끄는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냥 기분 나쁘게 웃으며 지나갔다. 아마 그는 실험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또한 즐기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나와 함께 나가기 전에 내 머리에 어떤 자루를 뒤집어씌웠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어둠 속에서 그의 팔에 붙잡혀 움직였고 그가 팔을 놓고 떠나자 나는 자루를 벗었다. 자루 안에 무언가 약이라도 뿌려져 있던 것일까? 언제나 봐도 신비하지만, 자루를 벗고 나오면 언제나 이자르와 만나는 집안의 식탁 앞이었다. 궁금증이 들어 이 집안을 살펴봤지만 내가 실험한 그 실험실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느낌이었다.


 


 내 눈에 새벽 해가 뜨는 것이 보였다. 아마 일주일 정도의 휴가가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다시 지겨운 실험을 도와 이자르와 함께 할 것이고.


 


 “피곤하군. 빌어먹을.”


 


 나는 식탁에 놓여 있는 호밀빵과 우유를 대충 먹고는 그 집을 나와 아내가 있는 내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괴롭지만, 이자르와 나의 관계는 이 실험이 끝나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이 더러운 쥐구멍의 암흑 속에서 나만의 출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내 아내와 나의 행복을 위해.


 


-프롤로그 쥐구멍의 암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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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노동일 : 넵튜너스의 시민은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환경보전의 의무를 지닌다. 성인 남성은 국방의 의무를 실행하기 위해 만 20세가 되면 징병을 받아 2년 간의 군 복무를 받을 의무가 있고, 그 후 만 35세 까지 매년 마다 예비군 복무 또는 의무노동을 하게 되어있다. 매 해 연속적으로 같은 일을 할 수 없으며 예비군 복무와 의무노동을 반복한다. 성인 여성은 만 20세 부터 만 35세까지 매 해 의무노동을 해야한다.


 


로렌버츠 고등학교 : 그저 그런 고등학교


 


뉴 하버드 대학교 : 넵튜너스 안에서 가장 큰 대학교로 의과가 유명하다.


 


LSD :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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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르 : 나이, 본명은 알 수 없다. 넵튜너스의 어둠 속에 존재하는 많은 길드의 조직 중에서 어느 작은 조직을 움직이는 우두머리라는 정보만 있다. 매우 유능하다.


 


윌 크레이츠먼 : 주인공. 뉴 하버드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과장이자 한화 생명공학 연구원. 생명공학 석사 학위도 있는 엘리트. 과거, 이자르와의 계약에 의해 이자르의 비밀 실험을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