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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스토리구성 '설정'과 '독창성'

2007.07.18 06:13

Evangelista 조회 수:640 추천: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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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는 스토리구성이지만 딱히 거기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문학동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얘길 많이 듣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 그러그러한 이야기를 설정까지 다 잡아놓고 있음" 이런 식인데요.


이런 분들께는 무례한 질문 하나 드립니다.


 


그래서 그 작품 언제 쓰실 겁니까?


 


 


 


전 꽤나 소심해서 시작해보려는 작품(주로 단편입니다)이 있을 때 선배들이나 선생님들께 찾아가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자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답은 100% 동일. "일단 쓰고나서 얘기해라."


먼저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심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설정 참 대단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과시욕을 가진 경우. 문제는 남이 봐도 이게 작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참 대단한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작가 본인이 그 내용에 좀 자신이 없기 때문에 동의를 얻으려는 심리.


셋째, 기타


 


여하튼, 어떤 경우라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 '설정'이란 게 암만 대단하다 한들 글 쓰는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 그걸 쓴다면 '설정'한테 미안한 일입니다. 우선 글을 쓰십시오. 설정? 그런 거 솔직히 필요 없습니다. 전 체계를 잡느라 노트에 주요한 사건이나 인과관계 등을 기록하긴 하지만 예를 들어 뭐시기 전고 20미터 무장 가슴미사일 로켓펀치 기타등등 이런 건 전혀 안 씁니다. 쓸 필요가 없거든요. 곁다리일 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설정'에 대해 꽤나 오해하시는데 작년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면 창조도시 문학동의 어느 단편제... SF단편제에서 설정은 필히 첨부하라고 해 놓은 걸 보고 솔직히 속으로 배꼽 도망가도록 웃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서 나온 발상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시나리오공모전 같은 데에 시놉을 내라고 하니까 그걸 따라한 건지, 아니면 설정이란 게 'SF라는 장르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 건지. 좋은 글은 곁다리 설명 필요 없이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글입니다. 창도 내에 애니메이션을 보시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서 드는 예이지만, 최근 방영중인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봅시다. 전 그렌라간 전고가 몇인지 중량은 몇인지 무장은 뭐가 달려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 나이가 몇살인지도 별로 안 궁금합니다. 작품 내에서 추정가능하도록 묘사가 되고 있으니까요.


 


글을 쓸 때 설정이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의 '설정'은 그렇습니다. 오늘도 '설정'을 열심히 만들고 계신 분들한테 여쭙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작품 몇 페이지나 쓰실 거냐고.


 


'설정'에 목을 맬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뭔가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진 지극히 초보적인 행동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번엔 '독창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이 독창성이란 것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목을 매는 부분입니다. 네. 중요하죠, 독창성.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이것 역시 여기에 집착하기 전에 따져 봐야 하는 게 있습니다.


독창적인 작품이 그렇지 않은 작품보다 무조건 좋으냐는 것입니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예로 들어 봅시다. 어쩌면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독창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남한 사회에서 섣불리 꺼내기 힘든 분단 문제를 가지고 빨치산에게도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여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그전까지 이런 작품은 없었죠. 정확히 말하면 '별로' 없었지요.


이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독창성'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혹시 여러분은 저 말의 의미를 '스토리상 이전에 나오지 않았던 신선한 전개나 구성을 사용함'이라고 이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떤 작품도 독창적이지 않습니다. 독서량이 많은, 아니 굉장히 많은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미 세상은, 나올 소재는 다 나온 시절입니다. 결국 전개, 구성, 플롯, 기법 어느 측면에서도 독창성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즉, 자신의 지식 한계 내에서 '독창적'인 작품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교집합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지요.


 


반문하자면, 어째서 옛날에 나왔던 소재를 가져다 쓴 작품이 나쁜 작품입니까?


아마 그런 작품의 경우 신경을 쓰지 않아 주면 독자에겐 '어디선가 들었던' '이미 들었던' '왠지 흔한' 이야기가 되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작품이 될 가능성이 조금 높을 뿐이지 옛 소재를 활용한 작품이 나쁜 작품이라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셰익스피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정전, 즉 Canon이라고 불리는 작품군에 대해서 그것을 분류하는 기준에 꽤나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만 작품들 자체는 왠만해선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셰익스피어같은 경우엔 여러 면에서 훌륭한 작품군이지요.


셰익스피어는, 스스로가 짜낸 '독창적'인 작품을 (제가 알기로는) 단 한 편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전부 다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설화나 역사적 사실 등을 모태로 하여 작품을 썼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셰익스피어가 독창적이지 않다고 욕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거대한 문학권력 자체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문학권력이 되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를 못 깐다는 건 백 보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학권력이 되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반독창성을 못 깐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전 희곡을 공부하면서 이런저런얘기를 엄청나게 많이 들었습니다. 그 중엔 셰익스피어극이 안고 있는 다소의 문제도 있었지요.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독창적이지 않기 때문에 허접하다는 얘긴 단 한번도 접한 적이 없습니다.


 


뭐 결론은 이겁니다. 목 매지 말라.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구성 / 스토리 / 플롯' 이것만이 아닙니다.


글을 잘 쓰고 싶으시다면 일단 쓰십시오. 그리고 나서 글을 좀 볼 줄 아는 사람한테 까이십시오. 그게 제일 좋습니다. 만약 욕먹는 게 두렵거나 남이 자기 작품에 대해 좋지 않다고 평한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이 보아도 그 말이 맞는데도 끝까지 자기가 잘 썼다 / 그래도 괜찮지 않냐고 우긴다거나 하는 사람은 부탁컨대 글 쓰는 거 때려치고 다른 거 하시기 바랍니다.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다소 도발적인 글이 되었지만 진짜 글을 쓰고 싶으신 분들은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특정 분야에 집착해서는 절대 뭔가를 이룰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