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기교사용 동일주어반복

2007.07.19 22:35

Evangelista 조회 수:562 추천:18

extra_vars1
extra_vars2
extra_vars3  

습작기에 가장 헷갈리는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문장의 주어를 계속해서 반복 사용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간단히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나는, 한 중학생이 옆에 서 계신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중학생은 정말로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중학생에게 다가가 일부러 삐져나온 발을 밟고 모른 체했다. 놀라 깨어난 중학생은 나를 노려보았으나 곧 다시 자는 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중학생이 참 몹쓸 놈이라고 생각했다.


 


어떻습니까? 이번엔 이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간단히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를 찾고 있을 때 한 중학생이 옆에 서 계신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앉은 채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정말로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서 다가가, 일부러 삐져나온 발을 밟고는 모른 체했다. 놀라 깨어난 젊은 놈은 이 쪽을 노려보았으나 곧 다시 자는 척하기 시작했다. 거 참 몹쓸 놈이라 생각했다.


 


첫 문단에서 반복하여 사용된 주어(조사 포함)는 '나는' '중학생이(는)' '자리를(에)' 등입니다. 느낌이 온다면 다행입니다. 동일한 말이 계속하여 반복됨으로서 글이 지루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두 번째 문단에서는 이 세 주어를 모두 한 번씩만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대상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그럴 때는 주어를 치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맨 처음에 사용한 화자 자신에 대한 주어인 '나'를 대폭 생략하였습니다. 1인칭에서의 화자, 혹은 3인칭에서의 현 상황에서의 주체는 특히 바로 앞이나 전전 문장 즈음에서 언급되었다면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실 첫 문단에서도 두 번째 문장에서 '나는 간단히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이렇게 쓰는 실수가 잦지만 그냥 없애 버렸습니다. 하도 말이 안 돼서요.


또한 문장에서 '중학생'이 주체가 되어 '나'를 목적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중학생이 어느 쪽을 노려보았는지 언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동되기 쉬우니까요. 만약 '놀라 깨어난 젊은 놈은 노려보았으나' 라고 한다면 어렴풋이 그가 '나'를 노려보았다는 것은 추측 가능하나 도통 내 발을 노려본 건지 내 얼굴을 노려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설마 할아버지가 밟은 것으로 착각하고 노려본 건지 헷갈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이 쪽'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경우에도 이 쪽의 발을 본 건지 얼굴을 본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어디를 보았는지가 설명이 됨으로써 독자가 의문 없이 이해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중학생'도 필요없는 사용은 생략하고 이번엔 '젊은 놈'이라는 말로 치환하였습니다. 사실 주인공도 젊은 축에 속할지 모릅니다. 설명이 없으니 알 수는 없겠지만 설령 젊다 치더라도 이 경우엔 어떻게 보아도 그 '젊은 놈'은 중학생을 가리키게 됩니다. 이렇게 동일한 대상을 다른 주어로 언급하여 반복의 지루함을 피하고 신선한 느낌이 들게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예시입니다. 또 염치 불구하고 제 작품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번 작품은 요전 단편제에도 냈다가 부끄럽게도 우승을 하였으나 대회 운영진의 파행운영으로 짬됐던 '눈'입니다.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 괴물의 굴의 문 틈새로, 본 적이 있는 똑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그녀. 이번엔 남자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회색의 눈을 가진 세상의 주인은, 여전히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고혹적으로 웃고 있었다.



 


이 문단은 사실 앞에 더 몇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만 이것만 가지고 설명하겠습니다. '괴물의 굴'이라는 것은 몇 개 전의 문장에서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방'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방'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로 치환한 것입니다. '그녀'는 다음 문장에서 '회색의 눈을 가진 세상의 주인'이라고 치환하였습니다. 이 긴 형용은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았을 때 1인칭의 주인공이 생각한 '그녀'를 설명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 주인공의 심리를 전해주고 싶었던 작가는 딱히 별다른 심리에 대한 설명 없이 저 주어 하나만으로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와 '이쪽'은 여기서도 사용됐군요. 사실 제가 흔히 잘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번엔 같은 작품에서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쩌면 난 그렇게 절실하게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저 눈에 현혹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메두사다. 사람이 그녀를 사랑할 수가 없다. 그저 눈, 단지 그 눈! 그녀의 눈은 아름답다. 눈에 끌렸다. 빛나는 눈, 아름다운 눈! 그것뿐이다. 내 실수가 아닌 그녀의 마력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버렸다. 단순히 마음이 동한 것뿐이다. 내가 느낀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다! 그게 확실하다. 확실할 것이다. 확실해야만 한다.



 


이 문장에선 지겨울 정도로 '그녀'라는 주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작가에 의한 의도적인 '룰'의 파격입니다. 이 장면에서도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앞의 예와는 달리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작가가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주인공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결국 작가의 설명이지 작품 내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무섭다'라고 말하는 것과 '뭔가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표현 방식입니다.) 또한 작가는 그것을 주인공 화자의 입을 빌려 설명해주고 있으며 이 부분에서 그의 심리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흥분하여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답을 끌어내고 있기 때문에 호흡을 빠르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호흡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문장의 길이를 짧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라는 주어의 사용은 어떨까요. 여기에서 '그녀'의 엄청난 반복은 주인공이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만약 그가 분명히 그녀를 떨쳐냈다거나 한다면 주인공의 결론에서 그는 '그녀'라기보다는 '하숙집 딸'이라던가 '그런 여자' 등으로 주어를 바꾸며 문장 또한 편안하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교란 그런 것입니다.


여전히 질문은 리플로 받습니다.


 


만약 예시로 든 단편 '눈'을 보고 싶으신 분은 이벤트게시판을 뒤져 보십시오. 지난 단편제 때 올린 작품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군대 갔다와서 쓴 단편 중 제일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