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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문속의 세계

2006.01.15 00:09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1748 추천:2

extra_vars1 0화 中편. 진혼미사곡, 2개의 인격을 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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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아(Memoria)를 지닌 모든 이여, 죽은 이들을 위해 레퀴엠(Requiem)을 불러라.
  깊고도 깊은 아텔(Ater)에 젖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여(Christe), 가엽게 여기소서(Elelson).』-룬 언그알레이-




2005년 7월 XX일. 제주도 경찰서. 오전 7시 10분.

“젠장, 딸내미 응석받아야 될 시기에 이런 곳에서 코나 파고 있어야 한다니.
기분 잡쳤구만. 권 선배, 잠시 이쪽으로 와주세요.”

가죽 재킷의 젊은 사내가 프린트한 파일 뭉치를 내치며 불만스레 말을 토해냈다.

검은색의 머리칼을 모조리 뒤로 넘긴 그 사내는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말쑥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훤철한 큰 키에 약간은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팔불출 새내기 아빠로 인식되고 있었다.

“수 형사, 무슨 일이야?”

젊은 사내, 수 형사가 고개를 돌리니, 투박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다가와 있었다.
듬직한 체구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 역시 오랫동안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가죽 재킷은 지저분했고, 안에 입은 셔츠는 잔
뜩 구겨져 있었다. 그를 본 젊은 사내가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아, 별일은 아닌데. 저기… 오늘 하루만 어떻게 좀 부탁할 수 없을까? 권 선배?”

중년 사내, 권 형사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한다.

“그 팔불출 기질을 한 두번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 어떤 시기인 줄은 너도 알
고 있지?”

그가 말한「어떤 시기」란 최근 곳곳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약 3주일 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그 사건은, 나이가 어린 편인 10대 소년 소녀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늘 거리에 있는 녀석들은 물론, 학교에 착실하게 나가는 녀
석들도 이 실종 사건의 대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수 형사는 수첩을 한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폰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알고는 있지만, 우리 리즈가 몇일 씩이나 아빠를 보지 못했는데 혹시라도 삐져있
으면 좀 그렇잖아.”

“…딸 핑계 대면서 사실은 이 사건에서 손때고 싶은 게 아니냐?”

뜨끔!

“귀찮은 심정인건 나도 동감이다. 하지만, 단서라도 하나 나와야 잡던지 말던지
하지. 그래, 증언 수집은? 인근 상점 할 것 없이 밑의 애들 다 풀었지?”

“참 나, 선배도. 언제 이 도시 인간들이 남의 일에 관심 가지는 거 봤나……. 다
들 모른다고 했대. 그나마 봤다는 사람들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게
진짜 일어난 일인지도 의심이 간다.’ 라나 뭐라나.”

“사실 별 기대도 안 했다. 씨발. 그보다, 어떤 할 일 없는 개 후레자식이 애를 납
치했을까? 실종 사건의 대부분은 납치. 뭐, 납치라는 뚜렷한 증거는 없긴 하지만.”

상당히 사나운 말투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형사가 아니라 무슨 조직폭력배로
알았을 법한 거친 태도였다. 그와 권 형사가 그다지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
는 사이 수 형사의 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오~예! Mr.G와 함께 놀아봐요! 헤이헤이~ 북치고 박치고 부수고~

“……벨소리 한번 되게 시끌벅적스럽군. 뭐하냐, 빨리 안받고.”

찰칵.

“수희조 입니다.”

-수 선배? 저 최수민입니다, 선배가 조사하고 있으시다던 그 실종사건 있지요?

“최 형사? 갑자기 무슨 일이야? 증거라도 나왔어?”

-글쎄요, 나온 것 일 수도 있고, 나오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내가 누누히 말했었지? 할 말 있으면 확실하게 하라고.”

-그럼, 요점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건의 새로운 실종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실종된 피해자 들중 일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

“뭐야?!”

수 형사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그를 바
라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권 형사조차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멋쩍은 얼굴로 주변 동료들에게 사과를 했다. 처음 그
사실을 들었을 때 그는 그것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전화
속 상대방에게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누구야? 아니지, 어차피 남자 아니면 여자겠군.”

-그게 저기… 선배도 아는 인물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뭐? 난 애들 중에 아는 녀석들은 없는데? 아차, ‘에이이치’가 있었지.”

-이름이 ‘인현신’이라고 선배가 맡아 기르는 아이와 같은 학교 동급생이라고 하던
데요. 실종 된지는 이제 한 1주일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인현신? 처음 들어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옆에 앉아 있는 권 형사를 바라보았다. 권 형사는 간밤에 샀
는데도 그새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담배를 물고 있었다. 물에 젖었다가 말렸는지 담배
여기저기에 잔뜩 얼룩이 묻어 있었다. 권 형사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 녀석, 네가 전에 에이이치에게 늦께나마 친구가 생겼다며 말했던 녀석 아니야?”

“전에 에이이치가 말했던? 젠장할……. 그보다, 실종되었던 피해자 들중 일부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고?”

-예, 그런데 특이하게 시체의 등마다 칼로 찍어서 새겨진 듯한 글자가 보였습니다.

“글자? 설마, ‘이것은 나의 복수극이다.’ 뭐, 이런 건 아니겠지?”

-음… 그게 그 글자들을 조합해보니까 ‘너희들은 '그곳'에 들어갈 자격 따윈 없다.’
라는 이상한 문장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선배, 괜찮아요?

“너희들은 그곳에 들어갈 자격 따윈 없다라.. 의도가 뭐든 간에 시체에 칼로 글자
를 새기다니 이런 씨발놈이. 최 형사, 미안하지만 나중에 다시 예기 하자.”

뚝.


──── 확실히 질이 나빠도 너무 나쁘다.
             역겹다. 그래, 아주 역겹다.


잠이 확 깼다. 뱃속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왔다. 형사 노릇을 하면서 온갖 종류의
미친놈은 다 봤지만, 미쳐도 이 따위로 미친놈은 처음 봤다. 창문을 열고 침을 퉤
뱉은 뒤, 권 형사가 사납게 말했다.

“뭐야? 이런 씨발……. 그럼 실종 사건은 이제 납치 사건으로 이름 바꿔야 한다는
소리 아냐. 그거. 그래서 인명 파일, 요청했지?”

“그렇지. 어떤 정신 나간 새끼가 애들을 납치해서는 등에 칼로 글자를 새기고 있다
는 거야……. 연락받자마자 해뒀지. 장 형사보고 여기로 올 때 가지고 오라고 했
어. 이딴 일 벌일 만한 새끼, 별로 없지.”

“단서고 나발이고, 잡아서 실토하게 만들면 그만이야. 새끼들 정신이 나가도 단단
히 나갔구만.”

그리고는 갑자기 침묵이 몰려왔다. 둘의 뇌리에 같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잠시
권 형사의 눈치를 살피던 수 형사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그보다 먼저 권 형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툭 뱉었다.

“피해자 가족 만나는 것은 우리가 할 일 아냐. 신경 꺼.”

“그렇지. 우리가 맡은 건 이게 누군가의 소행에 의한 납치 사건인지 조사하는 일이
니까, 피해자 가족들은 실종 사건 맡은 애들이 알아서 만나겠지?”

이런 대화들을 나누고 크게 한번 웃었지만, 침묵은 또다시 둘의 어깨를 짓눌렀다.
권 형사나 수 형사나, 인상이 어두운 건 마찬가지였다. 피해자 부모들의 울부짖음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자식이 돌아오지 않아 밤에 잠도 못자고 소식만을 기다
렸는데, 자식이 지금 등에 글자가 새겨진 채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는 걸 알면…….

“엿 같은 새끼…….”

“개 같은 새끼…….”

둘이 동시에 이를 바드득 갈았다. 권 형사는 끊임없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품안의
뭔가를 만지작거렸다. 그건 분노가 극에 달할 때만 볼 수 있는 그의 버릇이었다.
여간해서는 화를 잘 표현하지 앟는 수 형사도, 범인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매서운
눈을 드러냈다. 권 형사가 조용히 입술을 떼었다.

“꼭 잡자.”

그 말에 수 형사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고갯짓에는 말보다도 강한
의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인현신이라는 녀석 실종된 거, 에이이치에게 말할 거냐?”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선배도 알다시피 에이이치는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 입
원을 자주하니까... 지금 이 사실을 말해주면 병이 악화될지도 모르고. 어차피 오늘
은 퇴원하는 날인데다, 학교에 가면 다 알게 될텐데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어도, 수 형사의 굳어버린 인상은 쉽라리 풀리지 않았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문(門)과 문사이(間)의 경계(境界)를 조절(調節)하는 자. 사쿠라이 에이이치─

언제부터인가 나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라고 불리는 존재도 없었으며, 형제같은 것도 없었다.
다들 당연한 듯이 말하는 부모님의 자랑거리나 형제의 자랑거리.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 계속해서 고립되어 갔으며 그 누구와도 말을 안했다.
부모가 없다고 놀림을 받아도, 부모님이 안계셔서 외롭냐고 물어도,
그 질문에 맞는 대답을 난 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피했다.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경멸했다.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런 태도의 변화조차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 아마도 그건,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계속 옆에 있어줬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시각, 제주도의 어느 병원.

두근!

격한 고동이 들려온다.

두근!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두근!

그것은 나의 심장소리.

두근!

아직 멈추지 않은 나의 격한 심장소리다.

두근! 두근! 두근!!

“헉!”

눈을 떴다. 온통 식은땀이 배어있는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눈을 뜨며 잠에서 깼다.
눈을 뜨면 항상 같은 천정. 변함없이 아침을 맞이한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눈을 비볐다. 그리고 내 침대 옆에 나 있는 커다란 창문.
창밖에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온다.

“……꿈이었…나.”

꿈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생생한...................이라기 보단 뒤죽박죽이다.
시야가 조금 흐릿해서,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떴다. 이상한 꿈이었다.


──── 단지, 기억나는 것이라곤.... 기억나는 것은 바닥에 흥건한 선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본다.
새하얀 방. 아니, ‘방’ 이라기보다는, ‘실’ 이라는 느낌이었다.
얇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모포 같은 이불.
연초록색 십자가가 물방울 무늬처럼 새겨져 있는... 잠옷, 병원복.

“그렇군. 여기는 병원이군. 이제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 기억나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지은 웃음. 그리고....


머리가 아프다.
관자놀이를 눌러 두통을 조금 참아봤지만 그럴수록 더욱 두통은 심해져왔다.
흰 대리석에 서린 이슬처럼 이마에는 물처럼 투명한 땀이 흐른다.
꼼꼼하게 접은 손수건을 펴들어 얼굴에 살짝 댄다. 척척하게 배어든다.


──── 그 녀석의 가슴을 꿰뚫었을 때의 감촉.


하루를 꼬박 굶고 거리를 헤맬 때처럼,
식은땀을 후줄근히 흘린 뒤의 한기와 현기증이 온몸을 저릴 즈음,
얼굴은 납을 칠한 것처럼 흰 금속성 광채가 난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두통이 있었지만 그런건 상관없다.
침대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나는 세면실로 걸어간다.


──── 한번쯤 생각해본다. 어떤 것일까?
            죽임을 당한다는 기분은...



이른 아침의 병원 복도는 매우 한산했다.
발자국 소리는 너무나 미세해서 들려오지도 않는다.
아니면, 최근에는 입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입장에서는 시끄러운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소음 따위에 익숙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촤아!

입을 헹군 후 물을 얼굴에 묻힌다.
시원한 물이 얼굴을 때리고 멍해있던 정신은 일통되어 더 이상 정신이 나가있지 않게 된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눈꺼풀이 또 반쯤 감겨 있었다.

짧은 흑발. 동양인 남성의 가장 좋은 혈색이라고 칭할 만한 매끈한 피부.
여성과 혼동될 정도의 중성적인 아름다움이지만, 매력적인 얼굴.
「금색」의 왼쪽 눈을 제외하면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는 평범한 학생의 모습이다.

섬뜩하게 돌아가는 금색의 눈동자가 거울 속에 비치는 나에게 고정된다.

“쿄우(Kyo).”

단지, 단지 그 한마디 뿐이었다.
그 한마디로도 충분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거울에 비친 눈꺼풀은 어느덧 잔뜩 치켜 올라가 있다.
입술이 팽팽해진다.

“큭큭큭큭……. 덕분에 ‘재미있는 것’을 구경했어. 일단, 감사의 말을 올리지.
에이이치. 너의「예지몽(豫知夢)」도 쓸만한 것을 보여주긴 하는군.”

예상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설마「그」로 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상체가 스르르 앞으로 숙여진다.
얇게 쌍꺼풀 진 눈은 긴장이 풀려 반쯤 감긴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 동공이 풀려 있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다시 거울 속의 나에게 고정된다.


──── 나는 전한다.「그」에게.


“네가 감사를 하다니, 조금 의외로군. 어차피 우리들은 운명공동체.
어느 한쪽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지.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은 나인걸.”

그리고는 한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면서 말한다.

“적어도 인간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지. 너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말했기에
  그 한마디는 지킨다. 그것이 너에게 할 수 있는 약속이니까.”



──── 아련한 기억.


내 이름은 사쿠라이 에이이치(櫻井詠一). 17세. 한국계 일본인이다.
성을 모친 쪽을 따른 탓에 아직도 약간은 나를 외국인 취급하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삼촌의 집에 있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
이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혹시라도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나의 몇가지 특이점을 지금부터 소개하지.

12년 전의 금환일식(金環日蝕)을 계기로,
‘타인의 죽음이 보이는 마안(魔眼)’과 미래를 엿보는 예지몽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리고, 몇 주 뒤 제2의 인격인「쿄우」라는 존재와 접촉하였다.
자신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그는 나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보호자다.

다중인격(多衆人格)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제2, 3의 인격이 발휘될 때 기존의 인격은 사라진다.
하지만, 자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인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나는 자신의 내면을 시시각각 그렇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는 왼쪽 눈이 금색의 빛을 약간 띄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오드아이(Odd Eye)라고 삼촌께서 설명해주신 기억이 난다.
또 하나는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왼쪽 눈이 금색으로 바뀐 이후에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한 기억이 있다.

물론 괴롭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99%의 확률로 거짓말일 것이다.
단지 눈색이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상당히 짜증났다.
하지만「그 녀석」도 그런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지금은 그렇게까지 불쾌한 추억만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쁨은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내가 기쁨을 느꼈고.. 언제 감정을 느꼈는지 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 때로는 이 세상을 증오하곤 한다.


부모가 사고로 죽고 삼촌에게 입양되기까지의 모든 기억을 망각 속에 묻어 버렸다.
길지도 않은 세월에 잊혀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망각이 작용하던 또 다른 시절이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왜 그런 지도 스스로 자문해본 적도 없다.

그 다음으로 내가 이 병원에 입원한 이유로군.

먼저 호흡을 하기 상당히 곤란해졌다.
처음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냥 단순히 조금 지나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정도 전의 이야기다.
힘겹게 숨쉬기를 시도하다 가까스로 한숨을 쉬고 일상생활을 반복했다.
그리고, 자주 심장 쪽에 고통을 느끼며 침을 삼키다가도 그런 것이 발생했었다.

2일 정도 그런 상태가 계속된 시점에서야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이 된 삼촌과 아주머니께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한 결과,

“입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는 소리가 나왔다. 병명은 호흡곤란증후군.

일반적으로  치명율이 아주 높은 증후군으로, 혈액내 충분한 산소량이 존재하지
않아서, 폐의 기계적인 기능의 변화, 흉막 X-ray 사진의 비정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호흡장애증후군을 가진 환자는 아주 짧은 호흡과 호흡부전 때문에 호흡기의 부착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이 병은 폐렴, 쇼크, 패혈증 또는 외상과 같은 여러병에 의해
심각한 폐기능부전을 갖는다.라는 설명도 있었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죽을 병은 아니다. 이것의 특별한 치료법은 없다고 한다. 치료법은
오직 보조적인 치료와 호흡장애증후군을 일으키는 복잡함 때문에 치료법으로는 통
일된 단일법은 없다. 개개인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질뿐.

특별히 유의사항이나 그런 것은 없어서 오히려 다른 병보다 나을 지도 모르겠지.

세면을 끝낸 뒤 옷걸이에서 옷을 꺼내 입는다.
보통은 그런 것이 없겠지만, 자주 입원 하는 나를 위해 편의상 설치해놨다고 한다.
키는 170cm, 몸무게는 57kg되는 보통보다 약간 마른 체형.
이래뵈도 평소에 밥먹듯이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로 몸은 적당히 다져져있다.

“오늘이 퇴원이라. 매번치르는 일례행사라도 이 순간 만큼은 기분이 좋아지는군.”

그렇다. 3주 전, 갑작스런「발작」으로 입원을 했고, 오늘 드디어 퇴원을 해도 좋
다는 것이다. 어차피, 매번 진단을 받을 때마다 ‘원인불명’이라고 나오니까 이게
정말 호흡곤란증후군이라는 병이 맞는 지조차 의심이 가긴 하지만.

휠체어용 슬로프를 지나자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너스 스테이션이 보였다. 서쪽 병
동 출입문에 가기 위해서는 이쪽으로 가는 편이 거리가 가장 빨랐다. 입구에는 언제
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환자들로 북적거렸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 수가 눈으로 봐도 확연하게 줄어있었다. 아무래도 이곳보다
시설이 더 좋은 병원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병동 출입문을 나서자 바람이 몸을, 얼굴을, 머리카락을,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오싹오싹한 감각에 나 자신도 모르게 킥킥거리며 웃었다. 30걸음 정도 걸은 상태에
서 뒤를 돌아보았다. 병원이라기엔 조금 작은 정사각형 크기. 길게 늘어서 주차되어
있는 차들. 얼핏봐서는 병원이라기보다 요양원에 더 가까웠다. 입구를 나서기 전 손목
시계를 본다. 시각은 7시 20분 전을 가리켰다. 학교에 가기에 적당히 알맞은 시간.

다행이도 그런 증상이 잦은 나를 위해 삼촌께서 학교와 거리와 비교적 가까운 병
원에 입원을 시켜주신 덕분에 수고스럽게 차로 데리러 와주실 필요는 없었다.

입구를 지나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내 거리에 도착했다. 거리를 걷고 있는 나
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드물어, 유유자적 걷고 있는 할머니들과, 느긋하게 조깅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 이제 와서 헐레벌떡 공원을 가로지르는 샐러리맨 정도와, 나와 같
은 대다수의 등교중인 학생들 뿐이었다.

“알고 있을까? 언젠가 자신들이 죽는다는 것을.”

나 역시 예외는 아니지만 말이지.

“이제 따분한 일상의 반복인가…. 그래도 병원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단지 언제나 반복되는 일상,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같은 행동을 취하며,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그게 그것인 일상. 그게 싫었다.
단지 반복될 뿐이라면, 그런 일상 따위에서 무엇을 얻을수 있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 산다는 것조차 그냥 반복되는 나선의 흐름에 묻혀지는 것인가.
그 일상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지루함과도 같았다.


──── 나는 일상이라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불만은 없었다. 이유야 어찌하던 그것은 사실이니까.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 아니, 오히려 나는 미치고 싶은 걸까.
             광기(狂氣)라는 이름의 어둠의 쾌락에 몸을 맡긴채─



약 25분의 시간이 흐른 뒤, 학교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다지 경치를 감상하면서 걷는 취미는 못되었다.
거기다가 이 동네는 볼 것도 없었지만. 반듯한 걸음걸이로 학교의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 손목시계를 본다.
시침과 분침은 7시 40분 전을 가리킨다.
시계를 보는 나의 눈은 김이 서린 듯 흐려 있었다.
아침에 꾼 그 악몽 덕에 컨디션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를 처음 맞은 것은 왁자지껄한 소음이었다.
내 기준으로 약간 이른 시각인데도 학생들로 붐볐다. 조용히 그 사이를 걸어갔다.

“아, 에이이치군. 오랜만이네.”

등 뒤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아아, 생각났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정선희 였던가 하는 선배였을 것이다.

“예, 오랜만이군요. 선배.”

나는 짐짓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다분히 계산적인 천진난만함, 거기에 어우러진 중성적인 아름다운 미색─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나의 이런 외모에 종종 빠져들곤 하였고,
나 자신도 그러한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데 익숙했다.
이런 얼굴은 남녀 모두에게 대부분 불쾌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경우는 예외 같았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방법일 뿐이었다.
이 방법으로 중학교 생활부터는 따돌림을 받지 않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조차 이용해야 했었던 것에 아주 약간 환멸감이 일었다.

정선희 선배의 교복에는 3학년을 뜻하는 흑색의 장미가 달려 있었다.
성숙한 티가 물씬 풍기는 외모의 완전히 계란형의 얼굴에 차분한 표정,
선천적으로 쌍꺼풀 진 큰 눈망울, 긴 머리.
약간 마른 듯한 체구는 보통키를 크게 보이게 했다.

유일한 특징이라면 새하얀 목에 뚜렷하게 보이는「검은 띠」랄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하게 하는’종류의
감각이었기에, 학생들은 그녀로부터 어떠한 꺼림칙함도 느끼지 않고 그녀를 지나쳐갔다.

아니지,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절대 없다.「이것」은 나에게만 보이는 거니까.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아니, 학교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어. 또 입원했던 거야?”

「그 사람」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의 안색을 살핀다. 다른 사람의 호의
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동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딱 질색이었다.
집어치워. 금방 다르게 변해버릴 수 있는 적당한 호의 같은 건 필요 없단 말야.


──── 그 사람에게 나는 일종의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가식적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지마.



하지만 자신은 화를 낼 수 없다.


──── 왜 당신이 그딴 표정을 짓는 거지? 어차피 타인 ‘따위’에 불과할 뿐.
             아무래도 상관 없을 존재에 당신이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안그래?


“뭐, 그렇죠. 하도 많이 다녀서 이제는 질릴 정도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자기 몸은 알아서 관리해야지.
에이이치군은 척 보기에도 병약 미소년으로 보이니까. 후훗.”

그 사람은 입가를 가리고 작게 웃는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꽤 괜찮은 인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본인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나로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을 아이취급 하는 그녀가 정말 싫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께. 다음에 또 봐.”

그렇게 말하며 그 사람은 자신의 말을 귀울여 줄 또다른 타인에게로 달려간다.
이제 얼마 후에 닥쳐올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듯이.

“「다음」이라는 기회가 당신에게 남아있다면 말이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지금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중얼거린다.
「이것」을 굳이 그 사람 앞에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결과」는 오늘 중으로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다.

다시 학생들 틈을 지나 서편의 문을 지나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계단 통로의 네모난 스테인레스 휴지통 위에 담뱃재와 꽁초들이 수북히 넘쳐난다.
분명, 학생들이 피운 것이 과반수가 넘을 것이다.
작은 창문 밖에는 장마가 끝난 후 뜨거운 햇살이 낮은 건물들의 옥상을 달구고 있다.

“이 새끼 이거 안되겠는데? 이나마도 인간이 불쌍해서 적당히 해준 줄 알아.
네가 너무 ‘허약한게’ 죄야. 우리들은 그런 너를 차마 못본체 하지 못해서
‘단련’시켜주고 있는거라고. 돈 안받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2층, 서편의 화장실에서 구타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욕설이 들린다. 정말
질리지도 않고 잘도 하는군. 이라고 생각했을 때 문이 열리며 한눈에도 결코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 생김과 어수룩한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인 김철진 선배와
그 ‘유쾌한 친구들’이 하나 같이 씩씩거리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지나간다.
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도무지 선배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싶지 않았다.

옆을 스쳐 지나갈 때도 나는 결코 시선을 주지 않는다. 저런 인간 이하의 녀석
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더구나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남을 괴롭히는
짓을 서슴치 않게 자행하는 꼴따윈 보고 싶지도 않았다.

“…한심한 인간들이군. 상대할 가치도 없겠지.”

특별히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지만, 열린 화장실 너머로 구타당한
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놈들에게 사정없는 린치와 발길질이 퍼부어진 뒤였다.
패거리가 사라진 후에도,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뺨은 퉁퉁 부어있다. 입술가로 한줄기의 피가 흘러 흰 교복 위로 뚝뚝 떨어진다.
입술을 깨물고 몸을 일으킨다. 휘청거린다. 다시 벽을 짚고 몸을 가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으나, 그 누구도 도와줄 생각조
차 하지 않는 듯하다. 당연하다면 매우 당연한 현상이겠지. 딱히 그것에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나도 결국은 그들과 마찬가지. 정의의 용사인양 행동하는 것
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악(惡)을 지향하고 있으니까.

잠시 동안의 생각을 정리하고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 구타당한 그의 모습은 이미 나의 머리 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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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 설명-

*메모리아(memoria) : 라틴어로 ‘기억’
*레퀴엠(requiem) : 정식명은《죽은이를 위한 미사곡》
*아텔(ater) : 라틴어로 ‘검은, 침울한, 음울한, 음산한, 슬픈, 비통한, 불행한'

                                             <작가 후기>

이번 편에서 갑자기 문체가 바뀌어 놀라신 분들도 계실듯 합니다.
사실, 그것은 모두 계획된 각본에 의해 실행되어진 것이었[끌려간다]
...은 물론 아니고, 비주얼 노벨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여 이번 편에 적용시키기가
상당히 어려운 관계상 제 본연체(?)로 돌아와서 쓰게 되었습니다.

0화 下편의 경우 분량이 A4용지 29장(먼산)이나 되는 관계로 그걸 그대로 올려야 될지
아니면, 가뜩이나 0화도 분량이 많아서 쪼개었는데 또 반으로 올려야 될지 모르겠군요;
아무튼 빠른 시일내로 다시 찾아뵙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 작가 후기 역시 본문의 내용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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