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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문속의 세계

2006.01.17 04:43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1335 추천:2

extra_vars1 0화 下편(2). 세계의 적, Chaos(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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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상식이라는 가치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그것은 단지 상식선에선 먹을 수도, 쓸모도 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룬 언그알레이-




“커억!”

눈 앞에서 수많은 주먹과 발길질의 잔상들이 오갔다.
수백 명으로부터 집단구타 당하는 것처럼 몸을 때려대는 고통과 진동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러 대의 굴착기가 몸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주먹조차 내밀 수 없었다. 움직이면 그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은가? 약한 네겐 어둠이 필요해. 포기해라. 어둠과 내게 복종해.

입술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났고 고막이 터져 웅 하는 바람소리만 맴돌았다.
곳곳의 근육이 파열되고 뼈에 서서히 금이 갔다.
맥박이 희미해져 갔다. 곧 죽을 거라는 것을 나는 실감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나 자신이 어찌 되어도 좋을 일이었다.

“제길... 누가 어둠 따위에...”
-네 힘이 되는 것은 어둠 뿐이다. 네 육체를 나에게 잠시 빌려준다면 저런 녀석쯤은 간단하지.
“육체를... 빌려준다고?”
-안심해라. 네 마음까지 지배하지는 않겠다. 내 이름에 걸고 약속하지.
“웃기지 마, 누가 너같은 녀석의 말을 믿을 것 같아?!”
-쯧쯧, 아직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군. 네 뒤엔 아직 키메라가 있다는 것을 모르나?

과연 어떻게 린치를 날린 직후 공중제비를 돌 수 있을까?
자신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공격에 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졸지에 무릎을 꿇은 꼴이 되었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자칫하면 더한 공격도 당할 수 있었다. 방어도 여의치 않았다.

“제길, 어쩔 수 없는 건가. …알겠다.”
-탁월한 선택이다. 나락에 온 것을, 환영하지.

마음 속 깊이 즐거운 듯이,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이 귀에 들어온 순간, 억누를수 없을 정도로 피가 몸 속을 날뛰기 시작했다.


──── 순간, 뭔가 섬광이 번쩍 하는 듯했다.


“이 감각- 큭! 대체 뭐지...!”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
머릿속에서 수많은 격철이 동시에 당겨지는 듯 한 느낌.
눈앞에는 ‘굉장하다’던가, ‘압도적이다’
등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세계가 펼쳐진다.

눈앞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선(線)

가는 선.
굵은 선.
곡선.
직선.

아니, 자신을 제외한 움직이는 ‘존재’에서 어지러이 선이 뿜어져 나온다.
시야를 가리는 빛은 이미 그 힘을 잃었다.

남아 있는 것은 그저 무한에 가까운 수의 선들.
그 모든 선들의 ‘정보(情報)’가 머릿속으로 억지로 새겨지고 있다.
이런 것 따위, 뇌가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머리가 아파온다.


──── 머리를 잘게 부숴내는 듯한 고통.


그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날아오는 거대한 팔에서 뻗어 나온 선의 궤도는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다.
불쾌하다. 부셔버리고 싶어. 짜증나는군.

“이건…도대체…뭐야? 머리가…지끈거려.”
-너의 육체와의 동조를 위해 잠시 조정하는 것 뿐이다. 몇초 후면 끝난다.

눈앞에 보이는 괴물─그렇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나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다.
그런데 여태까지와 달리 두렵지, 않다. 그건 이상하다.
들소같은 돌진을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피해냈다.

“뭐지? 움직임이 전보다 더 빨라졌어. 마치, 내 몸이 아닌 것같은 느낌이군.”
-좋은 감각이군. 그러나, 상대편에서는 운이 나빴다. 인공생명체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도록.

적의 헛점이 보인다. 목표는 확실히 들어오고 있다. 괴물의 팔 부분.
그것을 주시하며,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이거나 쳐먹어랏!”

휘릭!

공격은 단 한번, 단 한번으로 족했다. 왜나하면 두번째란건 그만큼 위험한 것이니깐.
괴물의 팔이 밖으로 그냥 떨어져 나갔다. 골절된 뼈가 피부를 찢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괴물은 피를 뿜는 팔을 한쪽 손으로 부여잡고 놀랍게도 인간의 말을 했다.

─네 녀석... 도대체 뭐냐! 네 녀석도 ‘능력자(能力者)’인거냐!


────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존재에 대한 증오.


증오(憎惡)... 그것만이 공포를 이길 수 있었다.
몸을 채우고 있는 것은, 눈앞의 괴물에 대한 증오. 오로지 증오스러웠다.

아버지의 얼굴이 지워졌다.
어머니의 얼굴이 지워졌다.
삼촌의 얼굴이 지워졌다.
친구의 얼굴이 지워졌다.

이 짧은 순간 동안 나의 기량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말도 안되게 전투감각이 발달해 갔다.
너무나도 무력해 보이는 사냥감. 시시할 정도로 그 녀석은 무력해보였다.


──── 뭘 망설이는거지?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나?
           하찮은 양심따위나 정의감 따위에 얽매이는 거냐?
           그게 아니라면 뭘 더 바라지?
           사냥감을 두고 참겠다는 거냐?
           몸이 버티지 못하잖아.
           이대로 죽어도 좋은거냐?
           그게 아니라면....
           그냥 죽여버려.



어지럽던 머릿속은 드디어 정리되어 단 하나의 표적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정 따윈 봐줄 필요 없다. 인간도 아니다. 단지 괴물일 뿐이다.
그러니깐 마음 것 죽여버려도 된다.

“자아.. 죽여보자고. 이 붉은 피의 살육에서!!!!!”

나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달렸다. 피가 온 몸을 빠르게 맴돌고 있다.
피가 역류한다. 그대로 나의 이성은 소멸해간다.
순간, 나의 눈이 번뜩였다. 고양되어 가는 흥분이 날 지배해 간다.

우드득!

괴물의 목이 나사처럼 돌아가 나의 눈과 맞닿았다. 허나, 동공은 풀려져 있지 않았다.
나는 확실하게 끝장을 내기 위해서 괴물의 목을 통째로 뜯어냈다.

푸-!

동맥이 끊어지며 피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붉고 뜨끈한 액체가 나의 짧은 흑발과 얼굴을 뒤덮었다.

기분 나쁜 이 촉감. 그러나 이 정도의 나쁨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왜나하면 지금 왠지 모를 이 고양감은 그 기분조차 커버할 수 있을테니.
누군가를 죽여도 아무 상관이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지금의 나는 뭔가에 취한 느낌이다. 아, 뭐 이정돈 괜찮겠지. 하지만 말이야.
절대 살해당하진 않아. 이 공간에 있어서 사냥꾼은 나고 사냥당하는 쪽은 네녀석이니깐.

‘죽인다.’라는 행위는 나에게 더할나위 없는 흥분과 쾌락을 줄 뿐이다.


──── 아... 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어디에서 오고 있는 것일까.


‘부셔라. 부셔라. 파괴하고 찢고 죽여라.’

그걸로 멈추지 않았다. 나는 괴물의 머리를 양손으로 조이기 시작했다.
눈알과 이빨이 튀어나오고 코와 입에서 걸죽한 피가 쿨럭쿨럭 흘러나왔다.

‘모든 것을 죽이는 거다. 인간.’

그는 외치고 있다. 파괴의 춤을.. 파괴라는 이름의 살육을...
그저 ‘죽여라’라는 감정이 내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뿌드드득!

두개골이 으깨지며 곧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무자비한 발이 짓밟았다.
사방으로 살점과 피와 뇌수가 튀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손톱을 세워 괴물의 배를 갈랐다.

‘죽이고.. 죽여서 나에게 쾌락을 선사해라..
  인간.. 그것이 네가 살아있는 이유다.. 흐흐흐흐하하하하하하하하핫!!!!!!!!’


더욱 거칠고 빠르게 괴물의 피육을 자신의 손톱을 이용해 베기 시작했다.

슈욱-!

창자들이 뒤엉켜 쑤욱 빠져 나왔다.
힘의 강약을 조절하자, 넓적한 내장도 흘러나왔다. 위였다.
힘의 강약과 내장들의 줄다리기는 계속되었다.
괴물의 입, 코, 귀, 눈 등 신체에 뚫린 모든 구멍에서 피가 쿨럭쿨럭 흘러나왔다.


──── 이루 말할 수없이 전율이 노래하듯 흐르고 있었다.


그대로 기듯이 몸을 틀어 손을 더욱 잡아당겼다.
괴물의 창자가 줄줄이 줄에 매달려 늘어지고 식도까지 튀어나왔다.

아무런 이유없이,
단순한 행동, 행위일 뿐인 이것에...


──── 길들여지고있어.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즐거웠다.
나의 육체와 정신은 살육의 피비린내에 매료되어 버렸다.

나는 구역질날 것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촤아악!!

모든 내장기관이 괴물의 몸 속에서 쑥 빠져 나왔다.
피가 폭발하듯 괴물의 찢어진 배속에서 분출했다. 그것이 나의 전신을 덮었다.
괴물이 키메라라는 형태(形態)를 이루고 있던 것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

세상이 전부 붉은 색으로 뒤덮인 듯한 착각이 나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리고 내 주위로 펼쳐진 참상.
내 오른손엔 이미 형체도 알 수 없는 고깃덩이가 피에 절어 들려있다.
동시에 흥건히 묻혀져 있는 것은 홍혈(紅血)이였다.


──── 자신은 망가져 있었다.


“나는…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린거지?”

내가 한 이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아무리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죽인다」라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 대상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나는 나 자신이 살기 위해 결국 죽여버렸다.

나온 결론은 그것 뿐이다. 그때 자신이 이길 방법은 어떤 것도 없었다. 그를 받
아들이지 않았다면 이길 수 없었다. 도와줄 사람 따윈 애초에 없었다. 말려줄 사
람도 없었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 또한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겠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용서해도, 세상이 나를 받아들인다 해도, 나는 오늘 있었던
이 일을 한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방금전까지「죽인다」라는 행위를 마치
즐겁다는 듯이 한 나는 과연 미친 것인가? 아니면, 미치지 않은 것인가?

-재능은 있군. 마인(魔人)이 될 자질이 충분히 넘치고도 남겠는데.

고뇌에 젖어있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의 말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답례라긴 뭣하지만 선물을 주지. 받아라.

칠흑같은 어둠으로 가득찬 허공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피같이 붉은 로자리오와
푸른 빛을 띄고 있는 한 자루의 창.
그것은 전설에 나오는 롱기누스의 창(The Spear Of Longinus)과 닮아있었다.

“뭐야? 그건.”

-문속의 세계로 단 한번 이동할 수 있는 차원이동장치와 ‘열쇠(Key)’다.
이세계(異世界)를 여행하는 데에 언젠가 필요할 날이 있을 것이다.
너의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세계를 진행하면, 너도 이해할 수 있을 테지.
빛은 어둠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끝내 어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넘겨라. 내 기억이 만든 세계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 승리다.”

-기다리지, 에이이치! 네가 포기하고 어둠의 힘에 몸을 맡기는 때를. 하하하하!


꺼저가는 한줄기 어둠, 다가오는 빛.
빛과 어둠의 틈새 사이에서 나는 한가지 다짐을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나는 내 방식대로 힘을 얻겠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비드와 시빌레와의 예언대로,
   이 세상이 재로 돌아가야 할 그 날이야말로 분노의 날이 될 것이니.
  「심판자」가 모든 것을 엄히 심판하기 위해 찾아올 때,
   사람들의 공포는 얼마나 클 것인가.』-룬 언그알레이-




바람이 불어온다.
날카로운 바람은 그녀의 볼을 장난스럽게 쓰다듬고 스쳐지나간다.
길게 늘어진 흑발과 함께. 그녀는 그 바람을 느끼듯 잠시 눈을 감는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인상... 인형(人形). 그것이 그녀의 주된 분위기였다.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고요하면서도 처절한 전운(戰雲).
무거운 공기를 더더욱 꽉 조이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

새까만 두 눈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이 타오르는 검은 불꽃을 연상시켰다.
푸른빛이 감도는 분홍 장미 같은 입술,
인형을 연상시키는 순백의 피부와 그것을 더욱 빛내주는 검은 로브.
그리고 그 얼굴. 그녀의 그늘진 얼굴은 너무나 창백해서 밀랍인형같은 섬뜩함을 주었다.

그녀는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무음의 세계.
그 위에서 그녀는 올곧게 그어져 나가는 새벽의 빛을, 촛점 없는 눈으로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선의 끝에 있는「누군가」를 응시하는 검은 눈동자. 표정이라고는 전혀 없어 마치 인형같았다.

묵시룩의 야수(비스트)가 깨어났군요.”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 그런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남자.

복장은 검은색 일변. 그녀와 짝을 맞춘듯 검은색의 로브에 검은색의 가죽조끼에 검은색의 부츠.
그것은 덧붙여서 어둠 사이에서 인간의 존재감을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이기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어둠」은 무시무시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검은 테의 안경. 그것에는 어딘가 학자의 느낌도 나는 것 같았다.

그의 별칭은 참으로 남다르다. 그를 두려움과 멸시의 대상으로 삼아 부르는 별칭은,
세계의 적(콘트라 문디), 심판자(Executioner), 질서의 집행자(Order`s Enforcer).

“나도 그 파동을 느꼈지. 이게 얼마만인가, 『형제(Brother)』.”

억양이 절제된 목소리엔 어딘가 그리움이 풍기는 듯했다.

“능력자는 이로서 5명이 되었군. 뭐, 한명은 그들과 적대하게 될 것 같지만.”

“그리고, 백색의 존재. 지금의 백색은 선홍의 타락으로 변했어요. 조만간
‘Master(방관자, 본래의 뜻은 관리자)’의 눈에 들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군요.”

그의 얼굴은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 정도의 것은 충분히 예상범위 안.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
‘가디언(수호자)’들은 여러 가지 시련을 주겠지만,
  그것은 녀석의 마음 속에 잠든 어둠을 키우는 꼴 밖에 되지 않겠지.”

“그렇다면 ‘개입’을 할건가요?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나는 방관자. 그저 상황을 지켜볼 뿐. 설사 개입을 한다고 해도, 그건 ‘계기(契機)’
  를 주는 것에 불과해. 방관자를 자처하고 있는 ‘Master’와 같은 취급은 사양하겠어.
  그건 말하지 않더라도 네가 잘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더욱 말을 해야 해요.
「그것」은 당신의 육체와 ‘동화(同化)’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녀는 할 말을 잃는다. 문득 자신이 드높여버린 그 한마디가 그에게 상처를 줘버린 것
이라고 생각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에 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래서, ‘Master’에게 목숨이라도 구걸하라고? 그 녀석들이 왜 나를 ‘세계의 적’
  으로 찍어 ‘추적자’를 보내는 건지는 나와 같이 행동한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그러니까 그냥 날 내버려 둬. 내가「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그의 말투는 매우 심드렁했다.
비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닌, 그저 지치다 못해 기운이 빠질 것 같은 말투.
그가 보인 얼굴은 마치 이 세상 전부에 싫증이 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언제나 당신은……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는군요.”

그녀의 말투는 어딘가 화를 내는 듯한, 슬픈 듯한 말투였다.

“짊어진게 아냐. 그들이 멋대로 올라탔을 뿐이지.”

“…희미하지만 ‘추적자’의 기척이 느껴지는군요. 숫자는 333명.”

“사람이 모처럼만에 감상에 젖어볼까 했더니만. 도대체 몇주만에….
  정말이지 감시위성이라도 설치해놓았나? ‘Master’도 찰거머리처럼 끈질기군.”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짓다가,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드디어, 발견했다. ‘세계의 적’!

그는 갑자기 눈앞에 들이닥친 ‘그것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세계의 적을 뒤쫓는 ‘추적자’. 그들을 이르길,
불완전(不完全), 죽음을 능가할 존재로서 부적합(不適合), 실패작(失敗作).
제멋대로다. 자신들이 바래서 탄생시킨 키메라(합성인간)가 자신들이 바라던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이런 용도」로 내다 버린 것이다.

“언제까지 날 쫓아올 생각이지? 그 전에 ‘세계의 적’이라는 호칭은 빼줄 수 없겠나?
  가끔은 ‘플루토(Pluto : 명왕, 하데스)’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건 ‘자칭’이지 않은가요?”

“…그냥 한번 해본 소리다. 저런 쓰레기들로 나를 죽이겠다는 거군 ‘Master’?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건가. 아니면, 나를 ‘최악(最惡)’으로 본다는 건가?”

여유로운 그의 음성에는, 그만큼의 자신감도 있었다. 그를 보며 그르렁거리는 자들은
과거의 기억으로 이미 귀찮고 나약한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움직임이 가까워진다.

─죽, 인, 다.

그의 왼팔은 거대한 발톱에 의해 그대로 사라졌다.
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콰직!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그는 웃음을 지었다. 아무런 의미없는, 텅 비어버린 웃음을.
그리고, 떨어져 있는 자신의 왼팔을 주워들었다.

그러자, 그의 팔이 찢어진 부위에서 소리를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거품이 아니었다. 작은 ‘입’이었다.
매우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 있었고, 그 이빨은 마치 말미잘처럼 기분 나쁘게 꿈틀댔다.

아그작 아그작!

문득 뭔가 고기를 씹는 듯한 매우 섬뜩한 소리가 잇달아 울려 퍼졌다.
‘입’이 활동을 시작하여 탐욕스럽게 꿈틀대며 왼팔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지금 그의 왼팔을 탐욕스럽게 먹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입’이었다.

손가락에서 손, 손에서 손목, 손목에서 팔….
무시무시한 식사와 동시에 그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왼팔의 절단면에서 뭔가 벌레 같은 것 다섯 마리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벌레가 아니었다. 기분 나쁘게 꿈틀대며 상처에서,
기어 나온 것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었다. 곧 손가락에 이어 손이, 손목이, 팔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의 아무 이상 없는 팔로 되돌아온다.
그의 몸은 피가 흥건히 묻혀져 있었다.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그 몸.
세계에게 죽음을 부정당한 그 몸은, 이 정도의 상처는 존재하는 것 조차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한 시선을 던졌다.

─바보 같은..?! 너는 인간이 아닌거냐?

“…그런 공격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 그저 죽일 뿐이다. 자신이 죽인 수천명의 키메라들을 무차별로 찢어버렸듯이
             자신의 손은 묵묵히 움직일 뿐이었다.


그가 손을 부드럽게 올리자 희생자는 무참하게 두 동강 나버린다.
마치 부드러운 칼이 살을 벤 것처럼 그를 노리던 한명의 키메라는 피를 토해내며
떨어지지만 푸른 빛속에는 서서히 번져가는 검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실패작’들이군. 말로 통할 상대는 아닌가. 하긴, 그랬다면 도망칠 이유가 없지.
  현세에서 부르는 ‘인공지능(人工知能)’이라는 ‘감정(感情)’을 담은 존재이기에 어쩌면
  그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는 무덤덤하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거기에 담겨져 있는 것은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악의였다.
그의 눈은 점점 예리해지다가, 마치 칼날처럼 예리해졌다.

“하지만 ‘오류(誤謬)’라는 게 있지. 완전한 것은 없는 것처럼 말이야. 오류라는 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고 어쩌면 지금 나와 ‘Master’가 있는 위치에서 미세하며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것일지도 몰라.”

“카이토….”

죽는다. 라는 개념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그에게는 살아있는 인간이 갖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상처가 걱정이 되지만 지금 그녀가 묻는다면 그는 괜찮다며 말을 바꿀 것이다.
아무리 자기복구(自己復具)가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하는 데에 소비되는 체력은 상당했다.

“안심해, 겨우 저런 상대에게 내가 당할 리가 없잖아? 아, 그전에 이 안경을 부탁하지,
  시아(Xiah). 전투 도중에 깨지거나 하면 꽤나 짜증나니까.”

“알았어요. 하지만, 무리는 절대 하지 말아요.”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조심스럽게 벗어서 그녀에게 건내준다.

“알았어. 그럼, 피의 축제를 시작해 볼까.”

짧은 말과 함께 그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가 검게 변하며 휘몰아쳤다.
그 바람은 역겨운 바람을 뚫고 들어와 키메라들에게 전해질 만큼 강력했다.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눈동자를 고정시킨체 그 바람에 몸을 맡겼다.

“나 세상을 멸(滅)하는 자. 여기, 무한(無限)의 혼돈(渾沌)을 개방(開放)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그는 양손을 옆으로 뻗었다.
갑작스럽게 근처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어둠은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어둠은 그의 모든 것을 삼키듯 감싼다.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검은 눈.
자신을 바라보는 키메라라는 존재가 그의 눈속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자신과는 다른 알 수 없는 형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무언가, 대단히 거대한 것이.

그리고, 그의 주위에「무언가」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불꽃처럼 흔들리는 검은 색의 안광이 빛을 거칠게 먹어치우며 솟아올랐다.
검은 색의 기류가 뭉쳐서 거대한 형상을 만들고 있다.
곧, 기류는 훨씬 더 강해지며 「무언가」는 완성되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그것」은 빛과 어둠을 단숨에 갈라버릴 정도로 강대했다.
「그것」에는 우리가 코와 귀라고 부르는 기관이 없었으며, 입은 지옥의 입구 마냥 엄청 컸다.
마치 오로지「먹기 위해서」존재하는 것처럼….
그 형상에 딱 맞는 말은 단 한마디. 즉 ‘이형(異形)’이리라.

그의 주위로 둘러싼 키메라들을 단숨에 삼켜버릴 정도로 흉측하면서도
마치 마왕(魔王) 아니, 마신(魔神)과도 같은 엄청난 위압감과 강함을 풍기고 있었다.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의「무기」는 칠흑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머리를 숙인 채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옥같은 느낌의 무기.. 하지만 그것은 어둠의 일부였다.
인정조차 할 수 없을정도로 지옥으로부터 소환된 무기 같았지만,
고개를 숙인 무기는 육안에서 느껴지는 지옥보다는...
속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한 줄기의 어둠의 일부인 것 같았다.

“카오스(Chaos). 무장(武裝) 완료.”

어둠은 그저 단순하게 그를 보호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거대한 카오스를 손에 쥐면서 이미 상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속에서 ‘눈(眼)’들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공포(恐怖). 증오(憎惡). 원한(怨恨). 흥분(興奮). 쾌락(快樂). 광기(狂氣).
기쁨(喜). 슬픔(悲). 분노(憤怒). 불안(不安) 평온(平穩). 파괴(破壞). 망각(忘却).

희번뜩!

카오스 저편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감정들과 수많은 악마 적인 이색의 붉은 눈동자를
가진 눈들이 공간(空間)을 뚫고 그들을 직시한다.

오싹!

공포라는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할 존재들이 공포를 느꼈다.
자신들을 ‘소멸(消滅)’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있다는 것.
그리고, 단 하나의 존재의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는 절대적인 살기.

“「이것들」은 혼돈에 잡아먹힌 자들의 ‘감정’이 구체화된 것. 부(否)와 정(正)의
  감정들로 체워져 있다. 나는 이것을 ‘혼돈의 눈(Choas Eyes)’이라고 부르고 있지.”

그는 키메라들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다.
정확히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 시선은 곧 다가올 거대한 울림을 암시하는 것인가.

“그럼 이젠 내가 알려주지. 내가 왜 ‘세계(世界)의 적(敵)’이라고 불리는 지…….”

표정 없는 그의 얼굴에서 잠시 미소가 보인 것은 착각이었을까.
그리곤 크게 외친다.




          
                  
                            
                                      
                                                
                                                         라 !


카오스는 ‘거대한 입’을 벌려 순식간에 키메라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가로로, 그러자 뒤쪽에서부터 키메라들은 무너져갔다.
변질된 팔들이 이리저리 휘날렸고, 그는 그것에 선율을 맞추 듯이,
검은 기류에 휩싸여 없어지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쿠로다 카이토(黑田 海東). 영겁의 시간동안, 네놈들이 증오해야할 자의 이름이다.”


──── 카오스가 다시 ‘입’을 벌렸을 때,


키메라들의 전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수백개의 목이 튀어오르고, 수백개의 손목이
피를 뿜고, 수백개의 발목이 찢어져 선혈이 홍수처럼 퍼부는듯 했다.
그만큼 카이토가 가진 무기는 강했다. 인간이 가진다. 고 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무기.

“키메라들이여,「죽음」을 얻게 되는 기쁨을 맛보아라!!”

카오스를 감싸고 있던 기류가 휘몰아쳐서 모든 키메라들을 쓸어 담았다.
그것들은 허공에서 춤을 추다가 전부 찢겨져 산화했다.


──── 이것이 최후.


순식간이었다. 전멸(塡滅).
불과 그 찰나라는 사이에 333명이라는 키메라 전대를 ‘소멸’시킨 것이다.
피와 살점, 뇌수에 둘러쌓인체 키메라들이 소멸된 모습을 공허하게 바라보는
카이토는 마치 죽음을 관장하는 심판자와 같았다─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질적이다.


──── 주위의 모든 것은 이미 피범벅.


남은 것은 오직 싸움의 흔적을 보여주는 핏덩어리들.
그러나 다르다. 그의 얼굴은 잔혹한 진실을 여가 없이 전해왔다.
마침 시야에 들어온 자를, 한 순간의 변덕으로 밟아 죽인다.
그가 한 일은 그 정도의 일이었다. 굳이 싸우지 않고 끝낼 방법은 있었다.

카이토의 능력은 ‘무한혼돈(無限渾沌)’ 만이 아니라는 것을.
거짓이라는「빛」, 진실이라는「어둠」─그는 과연 어느 쪽일까.

“모두 죽었군.”

그 참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를 움직이게 하는 삶의 원동력은 대체 무엇일까? 증오? 아니면, 슬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덧붙인다.

“이제「이 녀석」도 만족하겠지.”

“하지만….”

“지나쳤다는 건가? 그래…. 확실히 인간이 가지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힘이다.
  그래서 나를 ‘세계의 적’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겠지. 물론「그 사고」건도 있겠지만.”

“……….”

“나라면 몰라도 너는 이런 광경에 익숙해질 필요가 없어. 왜 아직까지 나를 따라다니지?”

“정녕 몰라서 묻는 건가요…. 너무 짓궂군요.”

고개를 떨군다. 이 사람은 정말로,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머리속을 더 모르겠다.

자신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다. 수백년의 시간동안 묵묵히 이 사람을 따라왔던 것.
카이토에게만큼은 항상 웃으며 바라보아야한다는 것. 그런 건 카이토 자신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아는 좀 더 카이토를 웃게 만들고 싶었다.
슬픔이라는 감옥보다 기쁨이라는 빛 속에서 카이토를 계속해서 곁에 있어주고 싶어했다.

“그런데, 하크얀이 말한 목적지는 어디였지?”

“동쪽으로 400미터 가면 표식이 보인다고 들었어요. 지금부터 가도 세 시진도 힘들겠지만요.”

“반 시진이다. 그렇다면 빨리 출발해야겠군. 늦게 도착하면 녀석이 화를 낼테니.”

그리고는, 뒤로 돌아선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준비된 물품(物品)은, 모두 11가지.

안배(按排)된 자들은, 5명.

얽히고 뒤엉키는 인연(因緣)과 인과(因果)와의 경계(境界).

그 뒤편에서, 좌우(左右)한다.


세계(世界)를.




                                                And that's all …?
                                              그래서 이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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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후기>

드디어 下편(2)로 0화가 끝났습니다~! 당분간은 잠시 쉴 수 있겠군요. (안도의 한숨)
새로이 각오를 하는 에이이치와 세계의 적의 막강한 위력(?) 잘보셨는지요?
이번편은 룬 언그알레이 씨의 격언이 두번 나왔다는 점을 제외하면 큰 특징은 없군요.
그럼,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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