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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Destiny * 운명의 일곱 가지

2007.07.16 00:43

갈가마스터 조회 수:1521 추천:3

extra_vars1 이스트샤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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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소대 정렬!”
  철컹철컹, 우렁찬 소대장의 명을 받은 BK(베카)의 병사들이 재빨리 열 명씩 짝을 지어 이열(二列)로 늘어섰다. 육중한 청색갑주를 입은 병사들이 절도있게 열을 맞춰 자리를 잡자 이스트샤인의 좁은 길 한복판에 순식간에 거대한 바리케이드 하나가 세워진 것 같았다.
  “2소대, 브론즈사이드(Bronzeside) 준비!”
  쿵! 쿵! 소대장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앞 열의 병사들이 그들의 몸만큼 거대하고 함선의 장갑만치나 굵은 방패를 들어 앞을 가로막고 그 위로 두번째 열의 병사들이 중기관포를 걸쳤다. 그러자 즉석에서 병사들로 이루어진 참호가 구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중장갑으로 무장한 최정예 베카 부대의 공방일체인 독특한 전술, ‘브론즈사이드’였다. 총알도 뚫지 못하는 방어력과 화력의 집중력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이미 수많은 전장에서 증명된 바 있지만, 베카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강력한 밀집방진이기도 했다.

  적을 맞이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끝낸 그들은, 정면에서 진한 독구름을 안개처럼 몰고오는 한 거구를 주시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악마의 입김과도 같은 녹색의 독무(毒霧), 그 중심에는 비릿한 광소(狂笑)를 입에 걸친 맹독의 지배자, 이완 카타스트로프가 악의 군주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그 난전 속에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금발의 레게머리와 오싹한 광기를 여과없이 방출하는 녹색의 눈동자가 밤안개 틈에서 춤을 추듯 흔들거렸다. 그것은 그야말로 악마였다. 이미 수백에 이르는 병사들이 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건만, 그가 걸친 백색의 털코트는 티끌하나 없이 깨끗했으니 악마라는 말 외에 무슨 미사여구가 더 필요할까.
  그와 그의 독구름이 지나간 자리엔 오공에서 피를 토하거나 녹아내린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것은 비단 베카의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피아의 구분이 없는 두목의 공격에 휘말려든 불쌍한 바이퍼 트라이브의 조직원들도 대다수 섞여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이제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적을 죽이고 충복들을 죽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카타스트로프는 먹이를 발견한 독사처럼 윗입술을 핥으며 브론즈사이드의 장벽 속에 숨어 중기관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물이 브로드사이드의 유효사거리 내에 진입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베카의 소대원들은 방아쇠 위에 얹어놓은 손가락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동료들이 손도 못써보고 학살을 당했건만 이들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사기가 넘치고 있었다. 누구하나 공포에 떨지 않았으며 누구하나 동료의 죽음에 미쳐버리지도 않았다. 명백한 패배가 눈앞에 다가와도 되려 흩어진 대오를 정비하고 무기를 갖춰 당당하게 적을 맞이했다. 그것이 바로 실바니아 공화국이 자랑하고 수많은 전장에서 악명을 떨쳐온 BK, ‘청동기사연대’의 강함이자 긍지였기에 이들은 명예롭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것이 죽음이 되어 돌아온다고 할지라도.

  “발사!”

  마침내 카타스트로프가 사거리에 들어오자, 그들의 총구에서 불꽃이 터져나왔다. 집중호우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집중포화가 단 한명의 적에게로 집중되었고 7.62mm의 총탄이 저주스러운 12제의 주변 십여 미터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위해 날카롭게 쇄도했다. 그러나 표적인 카타스트로프의 입엔 비웃음만이 가득했다.
  “캬아——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벌레들은 발악을 해야 제맛이지!”
  카타스트로프는 광인처럼 크게 웃으며 오히려 총격의 중심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그의 몸을 감싼 독기의 방어막이 그 농도를 급속도로 증가시키며 날아오는 총탄들을 몸에 닿기도 전에 녹여버렸고, 그가 손을 한번 크게 휘두르자 질풍같은 독기의 바람이 중기관총을 난사하는 베카 병사들에게로 몰아닥쳤다. 폭풍같은 독풍이 해일처럼 몰아쳤고 결과는 처참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무적을 자랑하던 베카의 브론즈사이드가 우루루 무너져버렸다. 독풍에 휩쓸린 병사들은 갑옷채로 녹아내리며 비명횡사했고, 갑옷 틈새로 파고든 독가스가 병사들의 목구멍을 태워버렸다. 일격에 십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즉사했고, 생존자조차 10초를 못가 각혈하며 쓰러져버렸다.
  극도의 밀집력을 보이는 브론즈사이드의 단점이 바로 여기 존재했다. 브론즈사이드의 방어력과 공격력을 맹신한 나머지 카타스트로프를 상대함에 있어 최악이 될 수도 있는 단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투구에는 방독면이 결합되어 있고 몸은 총알조차 튕겨내는 갑옷으로 촘촘히 둘러싸여있지만, 카타스트로프의 독은 그런 것으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강철조차 부식시키는 극독의 저주를 뒤집어썼는데 평범한 인간이 무슨 재간으로 그것을 견뎌내겠는가.
  “흥, 이건 뭐 오리사냥이군.”
  자신이 뿜어낸 독기에 의해 녹아내리다못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지면을 밟으며, 이완 카타스트로프는 흡사 가벼운 산보라도 걷듯 여유있게 시체들 사이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시체들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생존자들을 찾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헬싱 대원들과 병사들을 죽였지만, 그의 피는 아직도 싸움을 갈구하며 적들을 찾고 있었다. 그의 투쟁본능이 해소되지 않는 갈증으로 부글부글 끓어넘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내 제 주변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카타스트로프는 흥미를 잃은 얼굴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봐, 아이언피스트(IronFist)!”
  문득 그가 오른편에 위치한 주택의 지붕 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제야 아무도 없을 것 같던 회색 지붕 위에 한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타스트로프의 목소리에 호응이라도 하듯,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허리까지 길게 땋아 내린 흑발과 그늘진 얼굴에서 서늘하게 번뜩이는 무감정한 눈동자. 만월처럼 터질듯이 부풀어오른 회색상의 안쪽에선 다부진 근육이 마치 호수 속에서 잠들어있는 교룡(蛟龍)처럼 조심스럽게 꿈틀거린다. 저스티스 12제의 일원이자 철권(아이언피스트)이란 아명을 가진 남자 ‘양 팡 라이덴’. 그것이 그 이국적인 황색 피부 남자의 이름이었다. 곧이어 만월 아래에 우뚝 선 그의 전신에서 숨 막힐 듯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냐, 베놈로드(VenomLord).”

  라이덴은 언제까지고 벌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을 열어 굵직한 저음을 토해냈다. 홀리웨이의 목소리가 만년설처럼 차갑고 사무적이라면, 라이덴의 목소리는 다분히 전투적이고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말투와 음성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언제까지 거기서 빈둥거리고 있을 참이야? 간만에 실바니아 녀석들이 공격해왔는데.”
  카타스트로프가 묻자, 라이덴은 입술을 살짝 뒤틀며 관심없다는 듯 답했다.
  “난 네놈처럼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다 이완.”
  “하, 정의의 사도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카타스트로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는 뒤이어 활짝 펼친 손으로 중천에서 환히 빛을 발하는 스텔라의 만월을 가렸다. 그는 마약중독자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손가락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달빛을 감상하며 큰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봐 라이덴, 이 세상에 약육강식의 룰만큼 완벽한 것은 없어! 자고로 약한 놈들은 강한 자의 먹이가 되어 뒈질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그것이야말로 천지창조이후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오는 절대불변의 진리란 말야! 자연이 정해주고 신이 내게 내려준 특권으로 지극히 인간답게 그걸 따를 뿐인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팍! 카타스트로프가 달을 삼켜버리듯 주먹을 움켜쥐자 녹색의 독기가 스펙트럼처럼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그가 신에게서 부여받은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에메랄드빛의 섬광. 그는 그 불빛을 황홀한 듯이 바라보다가 라이덴에게 고개를 돌리며 넌지시 말했다.
  “이건 나쁜 것이 아냐, 섭리지.”
  “훌륭한 사고방식이다, 역겨운 놈.”
  라이덴이 팔짱을 끼며 경멸조로 중얼거리자 카타스트로프는 킬킬거리며 답했다.
  “넌 아니라고 말하지만 너나 나를 비롯한 12제 녀석들 중 그걸 모르는 녀석은 아무도 없을 걸? 이 저스티스(Justice)라는 조직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딘가 조금씩 뒤틀어진 녀석들뿐이니까. 이름부터 정의잖아? 우린 무려 정의의 심판자라고. 킥킥.”
  카타스트로프의 목소리엔 ‘이러니저러니해도 넌 어쩔 수 없는 저스티스의 악당일 뿐이야’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섞여 있었다. 라이덴도 입술을 굳게 닫았을 뿐, 굳이 그걸 부정하진 않았다.

  피슈욱!

  그들이 그런 담소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녹색의 신호탄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한창 기분이 좋았던 카타스트로프는 인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신호탄보다 당장의 즐거운 순간을 방해한 녀석 때문에 짜증이 났고, 그것이 시체라고 생각했던 고깃덩어리들 사이에서 올라온 사실에 더욱 기분이 더러웠다. 과연 고개를 돌리자 로켓처럼 어둠을 가로지르는 연기가 죽었다고 여긴 한 병사의 손으로 이어져 있었다. 갑옷과 함께 몸이 반쯤 녹아내려 즉사를 했어도 이상치않았건만, 병사는 초인적인 인내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광택을 잃어버린 초점없는 눈동자가 피바다 속에서 카타스트로프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 임무…완료.”
  그는 내장이 훤히 드러난 가슴팍을 움직여 몇 번인가 숨을 헐떡이더니, 결국엔 피를 한 바가지 쏟아내며 절명했다. 그러나 분이 풀리지 않은 카타스트로프는 독기의 바람을 휘둘러 기어코 병사의 시체를 처참하게 짓뭉개고나서야 신호탄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뭐야 저건?”
  카타스트로프와 라이덴은 똑같이 눈살을 찌푸리며 밤하늘에서 별처럼 번쩍이는 녹색 신호탄을 올려다보았다.

  휘이이이이잉————

  뭔가 휘파람 비슷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빛이 사라진 직후였다.

  쐐액!

  휘파람 소리가 점점 커지나 싶더니, 갑자기 굉음과 함께 몸을 돌린 라이덴의 주먹이 번개처럼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던 불덩어리 하나가 그의 주먹에 맞아 튕겨나갔고, 그것은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옆 건물에 틀어박히며 자욱한 먼지구름을 하나 만들어냈다. 무너지는 벽면과 서서히 가라앉는 먼지 속에서 얼핏 형편없이 우그러진 강철 포탄 하나가 보였다.
  “후우우….”
  24파운드 대구경 포탄을 맨손으로 튕겨낸 라이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천히 심호흡하며 절도있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포탄의 궤도를 바꾼 그의 강철같은 손등에서 이글거리며 희뿌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호오, 확실히 멍청한게 힘은 좋구만.”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라이덴이 있는 지붕까지 올라선 카타스트로프는 한쪽 귀퉁이가 완전히 무너진 옆집을 흘낏 보며 이죽거렸다. ‘우드득’, 그는 대규모 혈전을 목전에 둔 불량배처럼 목 관절을 가볍게 풀어주며 느긋하게 라이덴의 곁으로 다가갔다. 베놈로드 카타스트로프와 철권 라이덴, 12제 내에서도 유난히 공격적인 그들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맞은편의 건물 옥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백 명 정도인가?”
  “멍청한 놈, 백사십 명이다.”

  라이덴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지붕과 옥상 위로 감쪽같이 숨어있던 그림자 여럿이 스르륵 일어서기 시작했다. 푸른색 베레모와 암회색 조끼를 입은 검은 옷의 군인들. 그림자 속으로 달빛이 스며들자, 그들의 베레모에 달린 은색의 펜타그램(Pentagram)이 신성처럼 작고 강렬하게 빛을 발했다. 마치 들짐승처럼 어둠 속에서 형형히 타오르는 눈동자가 흡사 사냥을 앞에 둔 야생의 맹금들 같았다.
  “어쭈, 진청색의 베레모와 은백색으로 타오르는 신성(SilverNova)이라. 이 녀석들이 말로만 듣던 베카의 ‘1 중대(1st company)’인가. 이거 거물들이 납셨구만, 큭큭.”
  카타스트로프는 사방을 포위한 병사들을 흘겨보며 그동안 서류로만 접할 수 있었던 ‘1 중대’에 대해 떠올렸다.

  ‘1 중대’ 혹은 ‘실버노바(SilverNova)’. 그들은 청동기사연대 내에서도 가장 독보적이며 가장 은밀한 집단이었다. 대규모 집단전이 중점인 다른 예하부대와는 달리, 그들은 전면전에서부터 요인 암살, 테러, 사보타지 등 현대전에 등장하는 온갖 특수작전을 광범위하게 수행하는 독립부대였으며, 부대원의 신상명세는 물론 그 정체와 규모까지 모든 것이 철저하게 베일에 감춰진 비밀부대이기도 했다. 실바니아 공화국이 관여하는 거의 모든 전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은 명실공이 실바니아 최강의 정예병들이자 최고의 베테랑들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전쟁터를 누비고 수많은 특수작전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해 파악된 정보는 이들이 청동기사연대의 예하부대라는 점과 은색의 펜타그램 엠블렘, 그리고 푸른색 베레모를 쓰고 있다는 점이 전부였으며 그 외에 1중대가 ‘잉고 바르텔로’ 장군의 직속 친위대라는 불확실한 소문이 가장 신빙성 있는 정보였으니 기밀에 대해서 할 말은 다 한 셈이었다. 이들은 샷셀은 물론 실바니아 군부대 내에서도 아는 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밀스러웠으며 거의 저스티스에 비견될만큼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자들이었다.
  그런데 순수 전투력만으로 두고 볼 때, 샷셀의 헬싱대나 저스티스의 간부급에 해당하는 녀석들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째서일까.
  “호오라, 이 녀석들 우릴 유인한 거로군?”
  그제서야 카타스트로프는 녹색신호탄과 처참하게 죽어간 다른 병사들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1개 대대 천여명의 병사들과 샷셀의 몰살부대가 고작 카타스트로프와 라이덴을 유인하기 위해 희생되었던 것이다. 이들을 지휘하는 자는 분명히 카타스트로프의 독공격이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12제가 단독 행동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염두에 두고 그들이 부하들과 떨어져 혼자가 되길 기다렸을 것이다. 마치 암살자가 그렇듯이 치밀하고 은밀하게 기다리며.

  쿠오오오오!

  그 때 돌풍이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맞은편 옥상위로 한 초로의 남자가 튀어 올랐다. 왼쪽가슴에 훈장이 주렁주렁 매달린 장군복을 입고 둔탁한 군홧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쿵 두드리며 착지한 그는, 뜸을 들이듯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곤 카타스트로프와 라이덴을 내려다보았다. 아래를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는 서릿발처럼 차가웠고 칼날처럼 예리했다.
  
  척! 척!

  그가 등장하는 순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포위진을 유지한 채 일제히 거수경례로 그를 맞았다. 실버노바의 지휘관이자 장군임이 분명한 그 남자는 손을 들어 그들의 예에 답례했다. 그가 손을 내리자 병사들도 자세를 풀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다. 한동안 아래를 주시하던 그는 버릇처럼 날카로운 콧수염을 매만지며 옆에 서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흠, 덫에 걸린 건 두 마리인가?”
  “예, 바르텔로 장군님.”
  바르텔로! 그 이름을 듣고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카타스트로프였다.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만면에 광기어린 웃음을 가득 띄우며 소리쳤다.
  “잉고 바르텔로라고? 저건 아까 대가리가 잘려나간 그 뻣뻣한 자식 아냐?!”
  “대가리가 잘려? 흐음, 선행대와 함께 보낸 내 대역을 말하나 보군.”
  의아한 듯 눈썹을 꿈틀거린 바르텔로는 뒤이어 카타스트로프가 말하는 게 뭔지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12제의 이목을 끌기 위해 미끼부대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대역을 하나 동반시켰는데 그가 그렇게 쉽게 죽어버리다니, 바르텔로는 실망한 듯 혀를 끌끌차며 중얼거렸다.
  “얼마간은 버텨줄 줄 알았더니 결국 죽었나. 어쨌든 아쉽게 됐군.”
  “캬하하하하! 하긴 실바니아의 대들보, 청동바람 잉고 바르텔로가 그렇게 쉽게 죽으면 섭하지.”
  화륵! 움켜쥐는 카타스트로프의 두 주먹 사이로 독기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특별 서비스다. 네 놈의 그 잘난 콧대를 엉망으로 뭉개주마.”
  카타스트로프를 내려다보는 바르텔로의 입가에 가느다란 비웃음이 걸렸다.
  “…살아남는다면 기회를 주지.”
  철컥! 철컥! 바르텔로가 왼손을 들자, 기백명의 실버노바의 대원들이 저마다의 병장기를 꺼내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탄약을 가득 쟁여 넣은 소총과 경기관총이 적의 급소를 겨누고 날카롭게 갈린 단도와 손도끼가 적의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서늘한 빛을 발했다. 물 셀 틈 없이 촘촘한 포위망, 사방 어디로든 도망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잔인하고 집요했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두 명의 12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하하! 이거 간담이 서늘해지는군. 즐거워, 정말 즐거워!”
  “네 놈은 너무 말이 많다 베놈 로드, 적을 눈앞에 두고 잡담이라니.”
  쿵! 라이덴은 힘차게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허리를 숙였다. 언제든지 튀어오를 수 있게끔 그의 다리 근육이 용수철처럼 팽팽하게 압축되어갔다.
  “포기해라. 네 놈들에게 활로는 없다.”
  “킥킥킥, 우리들을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고, 늙은이!”
  “흐읍!”
  돌연 라이덴이 내딛은 오른발을 들어 세차게 땅을 굴렀다. 그러자 지진같은 흔들림과 함께 그들이 서있던 건물이 지붕부터 완전히 무너졌고, 흩어지는 건물의 잔해와 희뿌연 먼지가 병사들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바르텔로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를 살짝 뒤틀며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군, 고작 그런 것으로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보는가?”
  바르텔로가 손을 강하게 휘두르자 갑자기 청동빛을 띈 돌풍이 몰아치며 진한 먼지구름을 모조리 흩어놓았다. 그의 특기이자 장기인 칼바람이었다. 벽돌도 사정없이 토막내며 몰아친 칼바람은 자욱한 먼지를 헤집고 그 속에서 낙하하고 있는 카타스트로프의 모습을 포착해냈다.
  “엥?”
  졸지에 엄폐물을 잃고 표적이 되어버린 카타스트로프는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떴고, 그 뒤로 바르텔로의 사격신호가 내려졌다.

  투타타타타타탕!

  소총과 경기관총 수십정이 내뿜는 화력이 마치 폭풍우처럼 표적을 향해 집중되었다.
  “이, 이런 빌어쳐먹을!”
  카타스트로프는 급한대로 몸을 틀어 그의 앞에 짙은 독구름의 막을 생성해 쇄도하는 총탄의 비를 막아보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급조한 독구름의 농도가 급속도로 약해지면서 녹다만 총알 몇 발이 그의 볼과 어깨에 붉은 혈선을 그어놓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었고 그는 공중에서 벌집이 되는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었다. 그가 안심하며 땅에 내려서는 순간, 갑자기 바람가르는 소리와 함께 로켓탄 세 발이 그의 독구름을 향해 달려들었다. 로켓탄들은 독구름에 닿는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불꽃과 충격파로 독구름을 완전히 흩어놓았고 그 사이로 수십개의 막대 수류탄이 안전핀이 뽑힌 채 우르르 쏟아졌다.
  “수, 수류탄?!”
 순간 당황한 듯 헛숨을 들이킨 카타스트로프는 재빨리 그의 주변에 독기의 장막을 펼치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했다. 수류탄은 폭발의 충격파와 불꽃으로 그의 독구름을 흩어놓고 파편으로 상대를 공격하기 때문에 카타스트로프에겐 쥐약이나 다름없는 공격수단이었다. 평소엔 수류탄 따위는 무시하고 적을 공격했을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적의 공격이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거세고 빈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높은 고지를 점령하고 위에서 아래를 공격하는 형국은 정말 최악이었다. 마치 강간당하는 기분이랄까.

  퍼벙! 펑! 퍼벙!

  수류탄들이 연이어 폭발하고 몸을 피하는 카타스트로프의 뒤통수를 노리고 저격수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다행히 라이플의 총알은 짙은 독구름을 뚫지 못했지만, 문제는 그에게로 모든 화력이 집중된다는 사실이었다. 수류탄과 로켓탄이 그의 방어막을 흩어놓기 위해 계속해서 쏟아졌고, 그 틈새로 라이플의 집중탄막이 이어지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래선 전투에 대한 즐거움보다 짜증만 솟구칠 뿐이었다.
  “라이덴! 이 빌어먹을 자식은 어디간거야?!”

  한 편 독안에 든 쥐 꼴의 카타스트로프를 주시하던 바르텔로는 콧수염을 매만지며 사라진 다른 12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뒤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과 상황을 산정하며 그에 맞는 대책들을 하나둘씩 생각했지만 결론은 의외로 쉽게 도출되었다.
  “녀석은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네?”
  결론이 내려지는 그 순간, 갑자기 그들이 서있는 콘크리트 바닥이 폭발하듯 위로 솟구치며, 라이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이언피스트!”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실버노바의 장교가 단도를 쥐고 라이덴을 공격했지만, 라이덴은 당수로 그의 목을 쉽게 날려버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당연지사 이런 송사리들이 아니었다. 최정예답게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다른 병사들의 번개같은 공격을 모조리 피한 그는 재빨리 낮게 도약하며 바르텔로에게로 달려들었다.
  “사, 사격중지!”
  당황한 병사들은 혹여 장군이 총탄에라도 맞을세라 재빨리 공격을 중지했다. 그러는 사이 라이덴의 번개같은 주먹이 천둥같은 소음을 지르며 바르텔로 장군의 안면을 노리고 퍼부어졌다.
  “흠!”
  그러나 바르텔로 또한 호락호락한 장수가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질풍같은 그의 일격을 피하고 그 자세에서 창처럼 날카롭게 모은 손날로 그의 목젖을 노렸다. 하지만 바닥에 다리를 박아넣고 그 자리에서 멈춰선 라이덴의 다른쪽 손이 바르텔로의 손을 옆으로 쳐냈고, 다음 순간 그의 무릎이 바르텔로의 복부를 노리고 번개처럼 솟구쳤다.
  바르텔로 장군은 접근전은 불리하다는 판단하에 그 일격을 피해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칼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오른손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나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라이덴은 바르텔로에게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콰광!
  
  그의 억센 팔뚝이 바르텔로의 오른손을 막아서는 순간, 폭음과 함께 갈 곳을 잃은 칼바람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라이덴이 말했다.
  “그 성가신 기술을 쓰게 두진 않는다, 청동바람.”
  “흥, 설마 가장 멍청한 수를 둘 줄이야. 동료를 표적으로 만들고 다짜고짜 적의 수뇌부로 공격인가? 내 허를 찌른 것은 칭찬해주마 아이언피스트.”
  서로간의 힘겨루기가 팽팽했지만, 바르텔로는 지지 않았다. 육체적인 능력으로는 이미 초인의 영역에 들어, 사천왕 레이 미스테리오에 필적한 라이덴인데, 그런 자신과 힘겨루기를 할 수 있다니. 라이덴은 간만에 호적수를 만난듯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자, 장군!”
  중대장급에 해당하는 장교가 불안하게 소리치자, 바르텔로가 말했다.
  “…너희들은 베놈로드를 맡아라. 이놈은 내가 맡는다.”
  실버노바의 장교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돌렸다. 리더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이덴은 그에 대해 감탄하며 경의를 담아 바르텔로에게 말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넌 이제껏 내가 만나본 인간 중 최고의 적이다.”
  “자 그럼 시작해보지? 일 대 일 대결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라이덴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노익장의 푸른 눈동자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가늘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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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올렸져요.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안들어서 몇번을 고쳐썼는지도 모르겠어요.

슬럼프라 슬퍼요.



이젠 지쳐서 그냥 올려요.



마지막에 이가엘이랑 샤이란, 히로 등장시켜서 모스베라토랑 싸우고 있는 에치슨, 올벤 전투에 난입(?)시키려고 했지만, 관뒀어요. 요거 쓰는데 어언 한달이 넘게 걸렸는데, 그거 쓰면 페이지가 몇장이 늘어날 지 모르니까요.




어쨌든...... 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