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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Angel Feather

2005.08.11 11:42

갈가마스터 조회 수:99 추천:3

extra_vars1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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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 Feather
제 018 화.

내분



[2031. 6. 14. 토요일 AM 2:30 인간이 모르는 어느 장소]

인공적으로 판 듯한 느낌이 드는 작은 굴 속.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침대 위에 한 소녀가 신음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핑크빛의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작은 소녀. 바로 나사렛 카트린이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금발의 젊은 여자, 파넬리아가 나사렛의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후우.”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던 나사렛은 파넬리아의 손길이 닿자,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지난 5월 5일. 인천에서 있었던 전투로 인해, 나사렛은 육체적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AF와 SF의 연계공격에 의해 산산 조각난 베헤모스의 고통이 나사렛에게 그대로 직격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건만, 나사렛은 쉽게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별 타격이 없었던 육체는 이미 회복되었지만, 그 때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여전히 나사렛에게 남아 있었다.

‘아마도. 안데르센이 죽기 직전 강력한 사이코 키네시스를 이용하여 일시적으로 정신을 공유했던 거야.’

몸이 반 조각난 안데르센과 완전히 해체되어버린 베헤모스의 고통이 나사렛의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준 것이 분명했다.

‘파키라 장로도... 뭔가 예전과는 다르고. 나사렛도 이 모양. 아크로안 녀석은 아무런 말도 없고. 휴우. 이래저래 꼬이네.’

정말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는 것 같았다.

‘빨리 돌아와요. 제르크..’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바로 파키라 장로의 모습이었다. 하체가 없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두 다리로 걷고 있는 파키라 장로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색했다. 분명, 최근에 다른 인간의 다리를 아르쟈논화 시켜 동화했다고 했던가. 하지만 파넬리아는 아직도 의문점이 많았다. 파키라 장로의 알 수 없는 실험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전무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고, 파키라 장로의 분위기도 어딘지 모르게 탁했다. 맑고 뚜렷했던 사이코 키네시스 파동이 마치 김이라도 서린 듯 흐릿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파넬리아는 여전히 앉은 자세 그대로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파키라 장로. 여긴 어쩐 일로?”

쿠웅! 돌연 파키라 장로의 몸에서 강력한 사이코 키네시스파가 파넬리아를 향해 쏟아져왔다. 방심하고 있던 파넬리아는 거의 본능적으로 사이코 키네시스를 펼쳐보았으나, 아니나 다를까 곧 파키라 장로의 사이코 키네시스파에 밀려 벽으로 형편없이 튕겨나가고야 말았다. 입에서 주황빛 선혈을 뿜어낸 파넬리아가 힘겹게 말했다.

“파, 파키라 님... 도대체... 왜?”
“......”

파키라 장로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나사렛 카트린을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나사렛의 이마에 손을 얹으려고 했다.

- 쿠구궁!

그 때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동굴 전체가 떨렸고, 파키라 장로가 비틀거렸다. 그 틈을 타 파넬리아는 남은 힘을 쥐어짜내며 파키라 장로에게 사이코 키네시스 파를 퍼부었다.
파키라 장로가 파넬리아의 사이코 키네시스파에 뒤로 물러나자 파넬리아는 재빨리 나사렛의 침대와 파키라 장로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섰다.

『네 년이 감히!』

파키라 장로는 육성대신에 익숙한 리미피트 채널을 이용하여 소리쳤다. 사이코키네시스파가 섞인 리미피트 채널에 의해 머리가 윙윙거렸지만, 파넬리아는 꾹 참고 소리쳤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미치기라도 하신 겁니까?!”

파키라 장로의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폭풍같은 사이코 키네시스파가 파넬리아와 나사렛을 덮쳤다. 이번엔 준비하고 있던 파넬리아가 방어막을 펼쳤지만, 아까 당한 타격이 워낙에 컸던지 입에서 다시 주황빛 액체를 뿜어냈다.

“큭!”

쿠구구궁! 파넬리아의 사이코 키네시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깨어지는 순간 천장을 뚫고 황금빛의 거대한 검이 파키라 장로와 파넬리아 사이를 막아냈다. 바로 엑스칼리버의 검신이었다. 엑스칼리버를 알아본 파키라 장로가 리미피트 채널을 열고 소리쳤다.

『제르크 에르나! 네 이 노옴!』

콰앙! 이번엔 파키라 장로가 있던 곳의 천장을 녹이며 붉은색의 빛줄기가 내리꽂혔다. 파키라 장로는 재빨리 텔레포트 하여 그 빛에 전신이 녹아버리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다. 에너지가 잔류를 남기며 사라지자 리미피트 채널을 통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 있나. 파넬리아.』
『제르크!』

일단 반가움을 가득 담아 제르크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파넬리아는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다. 파넬리아.』

파넬리아는 대충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갑작스런 AF의 파괴명령. 그리고 암을 처치하기도 전에 인간들의 군대를 몰살시킨 것. 그리고 파키라 장로의 공격. 분명 장로는 암에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카트린님을 데리고 지상으로 나와라. 일단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파넬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나사렛을 안아들었다. 그들의 모습이 약간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동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
.
.

[2031. 6. 14. 토요일 AM 2:35 인간이 모르는 어느 장소]

스르륵.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나사렛을 안고 있는 파넬리아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이윽고 완전히 제 모습을 찾은 파넬리아는 고개를 들어 SF(Seraphim Feather)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흑갑을 입은 날렵한 기사형태의 SF의 모습을 보자,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더 일었다.

- 캬아아악!

SF의 주변으로 3마리의 진화형 흑색 가고일들이 포효하며 착지했다. 다른 가고일과는 다르게 손이 4개,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친위대급의 아르쟈논들이었다. 가고일들이 낮게 크르릉 거리자, 제르크가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확보해둔 퇴각로로 이동한다. 전투중인 모든 부대에게 퇴각 명령을 하달해라.』

- 캬아아악!

친위 가고일들이 날개를 쫙 펼치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자 SF가 나사렛을 안고 있는 파넬리아의 앞에 왼 손을 내렸다. 파넬리아는 군말 없이 SF의 손 위로 뛰어 올라갔고 이어서 붉은 빛의 에너지 구가 손을 감쌌다. 제르크의 사이코 키네시스에 의한 왜곡공간이었다.

『그럼 가도록하겠다. 카트린님을 잘 부탁한다.』
『걱정 말고 출발하세요. 제르크.』

SF가 여섯 장의 날개를 펼쳐들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하늘에서는 이미 수천 마리의 아르쟈논들이 뒤엉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제르크 에르나 휘하의 정예 아르쟈논 부대와 파키라 장로 휘하의 변종 아르쟈논 부대였다.
제르크 에르나의 부대가 일당백의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면 파키라 장로의 부대는  끈질긴 재생능력과 둥지 형태의 모체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병력으로 상대방을 지치게 한다는 확연한 전술적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차이점을 극복할 방법은 의외로 쉬웠다. 바로 모체를 제거하여 병력의 충원을 끊어버리면 되기 때문이었다.
덜컥! SF의 오른쪽 허벅지갑주가 열리고 뼈와 같은 기관에 연결되어 있는 라이플이 튀어나왔다. SF가 그 라이플의 손잡이를 잡자 3분할로 접혀있던 라이플이 펼쳐지고, 라이플의 끝이 멀리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벌집형태의 아르쟈논을 향했다. 벌집형태 아르쟈논의 아래에서는 변종 가고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콰앙!

곧 SF가 붙잡은 라이플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하전 입자의 무시무시한 소용돌이를 방출하였다. 붉은 에너지는 일직선상에 있던 모든 아르쟈논들을 녹여버리며 벌집형태 아르쟈논의 빔 리플렉터에 맞닿았다. 그러나 벌집 형태 아르쟈논의 방어막은 SF의 출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으며, 막을 꿰뚫고 쏘아져 들어오는 에너지 소용돌이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다. 모체를 잃어버려 병력의 충원이 끊긴 변종 아르쟈논들은 제르크 에르나의 친위대에 하나하나 수가 줄어갔다. 그 틈을 타 제르크 에르나가 외쳤다.

『전 부대는 들어라! 지금부터 본 전투 공역을 전속력으로 벗어난다! 친위부대는 내 주변에 모여 쐐기 진을 유지하고 나머지 부대는 그 뒤를 따라와라!』

곧 검은 색의 친위대급 가고일들이 제르크의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그는 가고일들의 호위를 받으며 전투 공역에서 벗어나려했다.

“음?”

그러나 그는 곧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곤 손에 AT필드를 모아 앞에 장막을 펼쳤다. 그러자 두 줄기의 굵직한 백색 광선이 정확히 SF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 콰광!

평소의 SF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지금은 손에 파넬리아와 나사렛을 들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그들은 SF가 내는 가속도를 견딜 수 없었기에 마지못해 AT필드를 정면에 모아서 막아보았지만, 만만치 않은 에너지에 그만 AT 필드가 깨지고야 말았다.

“큭!”

그는 천부적인 감각으로 몸을 틀어 빔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왼쪽 어깨 장갑과 날개 2장, 그리고 왼편에 서 있던 3기의 친위 가고일들이 빔에 휘말려 녹아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왼손에 든 파넬리아와 나사렛은 무사했다.

“Restoration!"

제르크의 외침에 녹아버린 어깨와 날개 두 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천천히 재생되었다. 제르크가 빛이 날아온 곳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데, 리미피트 채널을 통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제르크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캬아하하하! 제르크... 제르크!』
『알렉산더 안데르센. 살아 있었나.』

멀리 지평선 너머 달을 등진 PT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색이 되지 않아 암회색의 금속성을 그대로 내보이는 몸체, 투박하고 육중한 몸. 치마처럼 허리 아래를 감싸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날개형 스커트. 거의 몸만한 크기의 길고 굵직한 손과 양 어깨 장갑에 새겨진 은색의 십자가가 그 PT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인류가 빼앗긴 2세대 PT. 케루빔의 모습이었다. 케루빔의 원통형 헤드 유니트 정중앙 십자형으로 갈라진 부분이 달을 등진 그늘 속에서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당한 이 고통! 네 녀석에게 그대로 돌려주겠다! 제르크!』

투둥! 퉁! 마치 대포알을 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살짝 벌어진 케루빔의 날개형 스커트 안쪽에서 원추 형태의 작은 비행물체들 수십 개가 불꽃을 튀기며 발사되었다.
바로 무인 능동 공격 시스템 ‘아즈라엘의 눈’이었다. 죽음의 천사의 이름을 딴 20기의 무인공격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제르크 에르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큭!”

제르크 에르나는 등 뒤에서 황금색 날을 가진 엑스칼리버를 꺼내들었다. 그와 동시에 불규칙한 궤도로 날아와 SF의 주변을 둘러 싼 아즈라엘의 아이들이 붉은색 에너지의 소나기를 퍼부어댔다. 제르크 에르나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빔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빔들은 엑스칼리버를 이용하여 튕겨내며 뒤로 물러났다. 주변에 있던 친위 가고일들이 빔 리플렉터를 펼치며 SF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그것은 제르크에게 있어선 방해에 지나지 않았다.

『방해다! 비켜라!』

친위 가고일들이 애써 빔 리플렉터를 펼쳐보았지만, 무인공격기들은 가고일들의 리플렉터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공격을 퍼부어댔다. 2 마리의 가고일들이 무참히 잘려나가고 공중에 퍼지는 가고일들의 살점과 피로 인해 가려진 SF의 사각지대에서 무인 공격기들의 빔 소나기가 쏟아져 나왔다.
제르크는 간신히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친위부대를 불러들여 파넬리아와 나사렛을 내려놓을 시간을 벌까도 생각해봤지만, 어느새 주위로 까맣게 몰려든 변종 아르쟈논들을 보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알렉산더가 그 시간을 줄지도 의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더의 음성이 리미피트 채널을 통해 머리에 울려왔다.

『나의 여화께서 원수의 고기와 피로 내 주린 배를 채워 주리라! 캬아하하하!』

갑자기 SF의 등 뒤에 나타난 케루빔이 빔 크로우 프람베르그를 치켜들며 SF의 등을 베어버렸다. 뒤로 날아가던 가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한 SF의 등에 네 줄기의 크로우 자국이 새겨졌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제르크에게 전달되었다.

“크윽! Restoration!”

케루빔의 공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케루빔의 육중한 다리가 SF의 등을 힘껏 걷어찼고, 추락하는 SF의 등 뒤로 무인공격기들의 빔 소나기 공격이 이어졌다. 손에 든 파넬리아와 나사렛을 필사적으로 지키며 간신히 추락 속도를 줄인 제르크 에르나는 이를 악물고 AT 필드를 펼쳐 빔 공격을 막으며 수평으로 이동하였다. 상처는 자동으로 회복되고 있었으나 알렉산더는 SF가 회복할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SF의 정면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케루빔의 모습이 제르크의 눈에 들어왔다.

『캬하하하!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꼴이 제법 잘 어울리는구나! 제르크 에르나!』

퉁! 투둥! 케루빔의 양 허리와 앞쪽 스커트에 달린 총 6기의 전자기포가 푸른 불꽃을 뿜어내며 분당 3천발이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량 탄두를 날려댔다. 하지만, 그 공격으론 SF의 AT필드를 뚫을 순 없었으나 알렉산더역시 SF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저 견제용으로나 썼을 뿐, 이걸로 제르크를 끝낼 생각따윈 애초에 없었다.
곧 SF의 코앞으로 다가온 케루빔이 양 손의 빔 크로우를 휘두르며 SF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르크는 손에 들고 있던 엑스칼리버로 그 공격을 힘겹게 막을 뿐이었다.

『캬아하하하! 제르크! 오늘은 꽤나 약해 보이는군 그래! 손에 들고 있는 거추장스러운 것 때문인가?!』
“큭!”

SF의 왼손에 들린 파넬리아와 나사렛을 본 케루빔이 오른 손을 들어 그 쪽을 공격하였다. 제르크는 엑스칼리버로 그 공격을 막았지만, 그 탓에 생긴 오른쪽 허리의 빈틈으로 케루빔의 빔 크로우가 비집고 들어왔다.

『크윽! 여전히 비겁하군. 안데르센.』
『캬아하하하! 네놈이 너무 무른 거다! 제르크!』

제르크는 잠시 눈을 돌려 파넬리아를 살폈다. 그녀는 이미 지친 기력이 역력했다.

‘이미 파넬리아는 지쳤다. 텔레포트를 쓸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아. 크윽. 위기로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알렉산더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킥킥! 내가 짐을 덜어주도록 하지!』

그와 동시에 케루빔의 오른손이 붉은 에너지 잔광을 남기며 파넬리아와 나사렛을 향해 내리 꽂혔다.

“크윽!”

제르크는 갑자기 쏟아진 공격에 엑스칼리버를 힘겹게 휘둘러 케루빔의 오른손을 쳐냈다. 그러나 그 순간 수십줄기의 빔 소나기가 SF를 노리고 전 방위에서 쏟아졌다. 재빨리 제네레이팅 아머를 펼쳐서 그 공격을 막은 제르크가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아까처럼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케루빔의 빔 크로우가 SF의 왼팔을 절단해버렸다. 왼손이 타는 듯한 강렬한 아픔이 제르크에게 전달되었지만, 뒤이어진 비명소리에 신음을 흘릴 여유조차 그에겐 없었다.

“꺄아아아!”
“빌어먹을! 나사렛! 파넬리아!”
『네 걱정이나 하시지! 제르크!』

다시 케루빔의 빔 크로우가 번뜩이자, 제르크는 등 뒤에 달린 여섯 장의 날개에서 일제히 진홍빛 빛의 날개를 전개했다. 그리곤 예의 엄청난 가속도로 떨어지는 파넬리아와 나사렛에게 다가갔다.

『제르크으으으으으으!』

파밧! 다시금 수십 기의 무인공격기가 내뿜는 빛줄기가 눈에 보이는 탄막을 형성하며 SF의 앞길을 막았다. 그것을 기민하게 피하며 SF가 엑스칼리버를 등에 걸고 파넬리아에게 손을 뻗었지만, 제르크는 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에너지 파동에 재빨리 돌아보았다. 케루빔의 양 어깨에 장비된 ‘메타트론’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며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까 SF의 AT 필드를 깨트린 무기임에 분명했다.

‘저걸 막으면 나사렛과 파넬리아는 죽는다! 그렇다고 막지 않아도 죽는다! 어떻게 해야..’

그 때 리미피트 채널을 통해 약간 중성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사렛과 파넬리아는 내가 맡도록 하겠다.』

그 목소리가 누군지 알고 있는 파넬리아가 리미피트 채널을 열고 회답했다.

『아크로안!』

피슉! 공중에 갑자기 나타난 아크로안은 파넬리아와 나사렛을 양 팔에 안은 채, 다시 텔레포트하여 사라졌다.

- 키아아악!

파밧! 아크로안들이 사라지고 곧바로 케루빔의 뒤쪽 하늘로부터 수십 줄기의 바이오 입자 빔이 번뜩였다. 그 빛들은 모두 케루빔을 향하고 있었다. 메타트론을 준비하고 있던 알렉산더는 등 쪽에 바이오 빔 3줄기가 박히자 급히 메타트론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날파리들이!』

알렉산더는 노여움을 가득 실어 뒤쪽을 노려보았다. 그곳엔 30여기의 강화 그리폰들이 날개 짓하며 떠 있었다. 외관상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아크로안 특유의 휘하부대였다.

- 쉬리릭!

알렉산더가 잠시 한눈 판 사이 SF가 던진 빔 부메랑 2기가 케루빔에게 날아들었다. 알렉산더는 재빨리 두 손에 빔 크로우를 뿜어내며 그것들을 두 조각 내버렸고, 뒤이어 황금색으로 빛나는 엑스칼리버를 오른손에 쥔 SF가 그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SF의 절단된 왼손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콰앙! 6장의 진홍색 빛의 날개를 펼치며 공기를 무제한으로 팽창시키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SF는 케루빔을 향해 가로로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그렇게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빔 크로우를 한데 모아 길게 만든 플라즈마 소드에 강력한 물리 방어막을 치며 엑스칼리버를 튕겨낸 것이다. SF가 케루빔을 스치고 지나가자, 알렉산더가 소리쳤다.

『이런 단조로운 공격을 하다니! 날 버러지같은 인간들이랑 같이 취급하지 말아라! 제르크!』

파앙! 케루빔의 왼쪽 손가락에서 5줄기의 굵직한 빔이 SF를 향해 발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20기의 원추형 무인공격기와 케루빔의 양 손가락에서 빔이 발사되며 SF의 주위에 화망을 형성했다. SF는 공중에서 급 기동을 하며 그 공격들을 모두 여유롭게 피해냈다. 어쩌다 SF에게 근접한 빔들은 SF의 몸에 펼쳐진 제네레이팅 아머를 뚫지 못하고 도로 튕겨나갈 뿐이었다.

『이건 어떠냐!』

더 이상의 공격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알렉산더는 육중한 케루빔을 움직여 SF에게 달려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이런 식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기체가 아니었지만, 알렉산더와 융합하여 아르쟈논화가 이루어진 케루빔은 통상 속도의 열 배 이상을 낼 수 있었다.
화르륵! 케루빔의 양 손에서 붉게 타오르는 플라즈마 소드가 용솟음쳤다. 무인공격기가 퍼붓는 빔 소나기를 피하느라 여념이 없던 SF에게 어느새 당도한 케루빔의 플라즈마 소드가 내리그어졌다.

『암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영원의 고통을!』

부웅! 그러나 알렌산더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베며 지나가버렸다, 순간 강하게 내리그은 힘을 이기지 못한 케루빔의 육중한 몸을 유지하고 있던 밸런스가 무너져 버렸다. 그 때 무감각한 제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술하군.』

그가 벤 것은 SF가 텔레포트한 뒤에 남은 잔상으로 진짜는 이미 케루빔의 뒤에 서 있었다. SF의 양 손엔 어느 새 꺼내어든 서바이벌 나이프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뜻하지 않게 뒤를 잡힌 알렉산더는 광소를 터뜨렸다.

『크, 크큭!』

콰직! SF는 케루빔의 두터운 장갑이 가려주지 못하는 양쪽 어깨관절에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던 서바이벌 나이프를 박아버렸다. 그리곤 곧바로 쏟아지는 붉은 빔 소나기를 피해 뒤로 빠졌다. 케루빔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거짓말처럼 공격이 멈추었고, 무인공격기들을 날개형 스커트에 수납하는 케루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캬아하하하! 제르크! 오늘은 이만 가도록 하지! 하지만 다음번엔 네놈의 목을 반드시 따버리고야 말겠다!』

두두두두! 서서히 흐려지는 케루빔을 향해 SF의 오른쪽 손등에 장착된 바이오 개틀링 건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이미 텔레포트가 끝난 케루빔의 잔상을 뚫고 허무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케루빔이 완전히 사라져버리자,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쉰 제르크는 리미피트 채널을 열고 아크로안을 호출했다.

『아크로안. 카트린님과 파넬리아는?』
『둘 다 무사하다. 그나저나 그 추악한 변절자는 죽였나?』
『죽이지는 못했다. 분석을 해본 결과 장갑이 미스릴과 거의 비슷한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더군. 게다가 두께도 상당했다. 그것보다 공격을 제한한 건 복부와 양 어깨 장갑에 몰려있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 때문이었다. 분석에 의하면 잘못 건드렸을 경우 이 일대가 쑥밭이 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더군.』
『빌어먹을. 호모 사피엔스 놈들. 저런 망할 물건을 제대로 간수도 못하고.』
『호모 사피엔스?』

제르크는 케루빔이 인간들이 만든 기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티칸 공격에 참여한 것은 아크로안의 부대뿐이었고, 그 공격의 목적이 케루빔의 탈취 혹은 제거였다는 것을 제르크가 알 리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자세한 것은 나중에 묻기로 하고 제르크가 말했다.

『이제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도록 하지. 리미피트 채널을 통한 대화는 파키라 장로나 암에 의해 도청 당할 위험이 크다.』
『좋아, 일단 휘하 부대와 함께 그곳에서 빠져나와라. 나도 내 아까운 친위대를 더 이상 잃고 싶지 않군.』
『그러지.』

그리고 SF는 신속하게 전장으로 뛰어들어 아군 아르쟈논들의 퇴각을 도왔다. 그 날 전투 이후, 아르쟈논의 지휘체계에 혼란이 일어나 중국 내륙과 남아메리카, 멕시코를 진공하던 아르쟈논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었고, 통제를 벗어난 아르쟈논들만이 간헐적으로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땅을 공격해올 뿐이었다. 당연히 인류는 아르쟈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에 대해 알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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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처리를 써볼까 했더니... 이게 더 땡기더라구요.

그래서 갈겨봤습니다. ㅋㅋㅋ

잇힝~ 아란님 혹시 이거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아란님 글 읽다가 생각난 건데. ㅎㅎ

여, 여하튼 전후 처리는 능력의 부족으로... OTL


PS:짤방은 SF, 케루빔은 색칠이 안된 관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