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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Flame Blaze

2006.07.27 02:53

갈가마스터 조회 수:84 추천:2

extra_vars1 라그나뢰크 
extra_vars2 Fire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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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e]

  푸르스름한 빛으로 가득한 동굴. 아무것도 없는 것에 비해 꽤나 넓게 느껴지는 그곳은 지금으로부터 반만년 전,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싸들고 들어간 굴처럼 아무것도 없이 휑한 공간이었다. 물 셀 틈 없이 꽉 막힌 굴 안은 그 어떠한 곳에서도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야 정상이건만 동굴 내벽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빛 덕분인지 주변을 살피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어둡군.”

  어느 사이에선가 그 한가운데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잭 데르만은 기절한 민정을 안아든 채 주변을 둘러보며 짧게 말했다.

  “…으응….”

  잭은 낮게 신음을 흘리며 뒤척거리는 민정을 약간 쓸쓸한 표정으로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이 기묘한 오드아이의 소녀를 보고 있자면 미처 지켜내지 못한 로니아가 생각나, 한없는 아쉬움과 회한이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 때 잭의 귓가에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신시(神市)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젊은 친구.”

  동물적인 직감으로 목소리에 아무런 살기가 없음을 느낀 잭은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과연 그의 뒤쪽엔 황금색 봉황무늬가 새겨진 붉은 도포를 차려입은 백발노인이 깔끔하게 다듬은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서 있었고, 잭은 그에게서 풍기는 미묘한 기운에 위화감이 들어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신시?”
  “그렇다. 신시.”

  잭의 물음에 답해준 것은 붉은 도포의 노인이 아니고 출렁거리는 공간의 물결너머로 불쑥 튀어나온 동양식 청색 갑주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잭의 기억에 그는 분명 ‘해모수’라는 이름을 가진 24선 중에 하나였으며 키가 거의 2미터는 넘을 것 같은 이 무거운 인상의 사내는 특이한 늑대형상의 투구 안쪽에서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을 이어나갔다.

  “칠선 중에 하나이며, 초월자이신 환웅님이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엿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극동의 조선 출신 아니랄까봐. 환웅 놈 띄어주기는.”

  그 뒤를 이어 황금으로 치장된 붉은 갑옷의 원숭이 꼬마가 손가락 사이에 낀 황금 여의봉을 불량스럽게 빙글빙글 돌리며 나타났다. 그는 바로 ‘제천대성’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일명 ‘해탈한 원숭이’였으며, 과연 원숭이답게 긴 꼬리를 살랑거리며 양아치처럼 나타나 이죽거리는 그의 모습에 심기가 상했는지 해모수는 묵직한 철곤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시비거는거냐, 원숭이? 다시 오행산(五行山)에 들어가고 싶나보군.”
  “어? 이 오랑우탄이 아픈 데를 건들이네? 뒈지고 싶어?”
  “오냐, 네 놈이 기어코 죽고 싶다면 내가 상대해주도록하마. 하지만 내게서 석가모니님과 같은 자비는 바라지마라.”
  
  비록 무기를 들고 직접적인 공격 자세를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튀는 불꽃과 살벌한 기운은 충분히 일촉즉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붉은 도포의 노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빙그레 웃으며 그 둘의 대치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마치 재밌는 구경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척.

  이윽고 그들이 서로간의 손속을 겨루기 위해 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갑자기 그들 사이의 공간이 파도처럼 밀려나가며 기다란 낚싯대를 어깨에 걸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짚으로 만든 삿갓을 슬쩍 들어 올려 해모수와 제천대성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이 살벌한 분위기 좀 보게. 이것들은 꼭 내가 눈을 떼면 싸움질이라니까. 도대체가 네 녀석들은 24선이라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죄송합니다. 태공망 어르신.”
  “칫, 원숭인 놈 운 좋은 줄 알아라.”
  “뭐라고?!”
  “그만!”

  태공망은 아직도 으르렁거리는 해모수와 제천대성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 이내 붉은 도포의 노인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봐, 단군! 도대체가 24선의 장이라는 녀석이 이 녀석들도 통제 못하면 어찌하나?”
  “하하하. 너무 그렇게 역정 내지 마십시오. 태공망.”
  “쯧쯧쯧, 하여간에 이놈이나 저놈이나….”
  “하하하하.”
  
  정말로 유쾌하게 웃는 붉은 도포의 노인, 즉 단군을 바라보며 이번엔 잭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이, 생쑈를 하는 건 좋은데…, 볼 일 없으면 이만 가도 되겠지?”
  “아차, 내가 본제를 잊고 있었군. 미안하이 젊은 친구.”

  단군은 그제야 잭과 민정이 생각났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잭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단군은 잭의 품에 안겨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민정을 바라보며 무거운 어조로 잭에게 물었다.

  “그럼 묻지. 자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아이를 지키고 보살필 수 있겠는가?”
  “뜬금없는 소리군. 노친내. 나이가 나이니만큼 정신이 오락가락한가보지?”
  “내 말에 대답이나 하게. 앞으로 평생토록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난 아직 젊다네.”
  “내 눈엔 오천년이나 지난 퇴물로 보이는데? 쭈글쭈글한 피부가….”

  퍽! 순간 단군의 번개같은 주먹이 잭의 정수리를 휩쓸고 지나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잭의 머리에 혹이 봉긋하게 떠올랐다. 잭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뭐라 소리치려고 했지만 이내 안면을 싹 바꾸며 분위기를 잡는 단군의 술책에 휘말려 불만을 토로할 찬스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다. 여하튼 단군은 계속해서 같은 물음을 되풀이했다.

  “다시 한 번 묻지, 자네는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겠는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하더라도?”
  “뭐야, 꼭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소리나하고.”
  “대답해라.”
  “으윽. 그걸 꼭 내 입으로 얘기해야 하는 거야?”

  무거운 표정. 가벼워보였던 첫인상과는 달리 단군에게서 느껴지는 진지한 기백에 잭은 이내 신음을 흘리며 말을 멈추었다가 쑥스러운 듯 모기만한 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지켜낸다. 그것이 로니아에 대한 속죄가 될 순 없겠지만.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순 있겠지. 이기적이고 추하다고 경멸해도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게 전분걸….”
  “그걸로도 충분하다, 어린 늑대여.”

  인자하게 미소 짓는 단군의 뒤로, 해모수가 철곤을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네 목숨과 신념을 걸고 그 아이를 지켜라. 설사 이 세계가 끝난다하더라도….”
  “이 세계가 끝난다고?”

  쿠르릉.

  그 때 천장이 울리며 천둥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어지는 비명소리같은 진동을 느끼며 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단군과 다른 24선들을 바라보았다. 해모수가 안광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그들이 왔소, 단군.”
  “이런, 좀 이른 것 같은데.”

  단군이 한층 무거워진 얼굴로 대답했다. 제천대성, 태공망 또한 방금 전의 가볍고 즐거웠던 분위기에서 무겁고 음습한 살기들을 내뿜고 있었다.

  “태상노군의 꿈이 오랜만에 틀렸군. 한 달 가량 여유가 있다고 들었는데 말야.”

  태공망이 삿갓을 가볍게 들어주며 말하자 제천대성이 킥킥거리며 말을 이었다.

  “킥킥. 그것보다 ‘절대적인 예언’의 틀을 깨트리다니, 엔젤 놈들 예상보다 더 뒤틀어진 녀석들 아냐? 어떻게 생각해 해모수.”
  “흠, 글쎄.”
  “칫 마지막까지 딱딱한 녀석이로구만. 뭐, 좋아 그럼 슬슬 나가볼까?”

  제천대성은 황금 여의봉을 붕붕 휘둘러 겨드랑이에 끼곤 목 근육을 슬슬 풀어주며 앞으로 걸어갔다. 해모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철곤을 어깨에 걸치고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음?”

  파직, 파지직!

  그들이 막 나가려는 찰라, 갑자기 동굴 한 구석에서 파란 스파크가 튀기더니 곧이어 동굴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파동이 공간을 뒤틀어버리며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희뿌연 빛과 함께 거대한 뭔가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으며 몇 초의 시간이 흐르자 높이가 9에서 10미터는 됨직한 웬만한 건물크기의 ‘하얀 괴물’이 나타났다.

  『그워어어어.』

  고릴라를 닮은 외관의 그것은 몸보다도 크게 느껴지는 육중한 팔뚝으로 땅을 짚고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크워어어어어어어!』

  펑! 괴물의 머리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꽃이 솟구쳐 오르나싶더니 곧이어 육중한 장갑으로 둘러싸인 전신에서 뜨거운 증기가 맹렬하게 뿜어져 나왔고 괴물은 고릴라처럼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크게 포효했다.

  “엔젤…….”

  잭은 포효하는 괴물을 바라보며 질렸다는 듯 말했다. 정말 질리지도 않고 저렇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콜록, 콜록. 이런 빌어먹을! 네 녀석 내가 어깨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거냐?』

  그 때 기계음 섞인 기침소리와 함께 화염과 뜨거운 김이 이글거리는 ‘괴물’의 어깨 위로 검은 망토를 펄럭이는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엔젤 13군단장 중 하나, 오미크론이었다.

  『우어? Sorry, 스미마셍(미안, 미안). 오미크론.』
  『콜록-콜록,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타우(tau, Τ τ). 그나저나 네놈 그 고장 난 번역기 손 좀 보지 그래? 콜록.』

  오미크론의 핀잔에 타우라고 불린 거구의 기계 생명체가 고릴라의 그것 같은 둔탁한 턱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우워어? 남 Privacy에 don't 신경 OK? 오미크론(남 일에 신경 끄셔, 오미크론).』
  『쿡, 쿡, 쿡. 하긴 내가 남 말할 처지가 못 되지. 콜록콜록. 애초에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네 말마따나 신경 끄도록 할까?』

  오미크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타우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땅에 가볍게 착지한 오미크론은 역관절로 휘어진 다리를 잘각잘각 움직여 일어서며 주변을 슬금슬금 둘러보더니 갑자기 뭔가 당황한 듯 기침을 크게 내뱉으며 천장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 이오타(iota, Ι ι)! 이런 빌어먹을 겁쟁이 자식! 콜록-콜록! 이 자식 우리만 텔레포트 시키고 어디로 내뺀거야?』

  삑. 오미크론이 역정을 내며 소리 지르자, 돌연 그의 곁으로 왜소한 크기의 희뿌연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겨우 오미크론의 반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작은 로봇, 마치 깡통 캔처럼 생긴 몸통에 촉수 같은 팔이 두개 달려있는 어처구니없으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의 ‘그것’은, 믿을 수 없게도 엔젤 13군단장 중에 하나이자 통칭 ‘겁쟁이 이오타’라고 불리는 자였다. 그를 발견한 오미크론은 화가 단단히 난 듯 땅을 격하게 발로 내리찍으며 분노어린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오.타!』

  이오타는 오미크론의 호성에 화들짝 놀라 파들파들 떨며 말했다.

  『미, 미안해. 오미크론. 하, 하지만 무, 무서운 건 무서운 거라고!』
  『콜록콜록! 너 이 자식! 네 녀석의 ‘텔레포트 능력’없이 어떻게 여길 빠져나가란 거야! 여긴 결계라는 빌어먹을 것에 둘러싸여 있어서 보통의 공간 이동 프로세서로는 빠져나갈 수 없단 말이다!』
  『괘, 괜찮아. 거기 좌표와 너와 타, 타우 고유 파장도 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이동시켜줄 수 있어. 이따가 연락만 줘, 바, 바로 모선으로 텔레포트 시켜줄께. 그럼 이만.』
  『어, 어이! 이오타! 콜록! 콜록! 코-올-록!』

  삑. 애처로운 오미크론의 손짓을 무시해버리듯 이오타의 영상은 귀엽게 느껴지는 원통형 머리를 연신 꾸벅거리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오미크론은 황당하다는 듯 애꿎은 땅만 쾅쾅 구르며 화풀이를 할 뿐이었고 타우는 뭐가 웃긴지 연신 어깨를 들썩거리며 기괴한 목소리로 웃을 뿐이었다.

  “… 엔젤이 아니고 코미디언인가?”

  잭의 짧은 감상에 정신을 차렸는지 오미크론은 헛기침을 ‘큼큼’ 내뱉으며 그제야 단군들을 향해 인사했다.

  『인사올리겠소이다. 고명하신 중재자여러분. 콜록. 콜록.』
  “곧 죽을 녀석에게 인사따위 받고 싶지 않다. 쥐새끼 같은 놈.”
  “그래, 감히 단 둘이서 이곳에 숨어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해모수는 경멸어린 시선으로 오미크론을 노려보며 앞으로 나섰고 제천대성도 손가락의 관절을 뚝뚝 풀어주며 특유의 이죽거리는 음성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얼굴은 기분 나쁜 듯 살짝 실룩거리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24선중 1:1이라면 그 누구도 견줄 자가 없다는 해모수, 제천대성, 관우, 그 셋 중에 둘씩이나 있는 이곳에 덩치만 큰 멍청이와 병색이 짙은 환자같은 놈 단 둘이 쳐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마치 그들에게 1:1 매치를 제안하는 것 같았고 그 점이 해모수와 제천대성의 심기를 건들이고 있었다.

  『쿡, 쿡쿡쿡. 쿡쿡.』

  그러나 응당 당황하여 도망칠 궁리를 해야 할 오미크론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기분 나쁘게 웃을 뿐이었다.

  『숨어들어와? 쿡쿡. 이거 저 진화가 덜된 원숭이들께서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시는구먼? 어이 타우 그것 좀 보여줘. 콜록콜록!』
  『워후? 아! This?(이거?)』

  툭툭. 고릴라처럼 생긴 타우의 육중한 손아귀가 벌어지자 안에서 뭔가 호박처럼 둥근 물체 열개 정도가 피 같은 검붉은 액체를 흩뿌리며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아닛!”

  그것들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해모수와 제천대성은 분노와 슬픔, 온갖 악감정이 뒤범벅된 살기등등한 얼굴로 오미크론과 타우를 노려보았다. 호박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24선들의 머리였던 것이다. 그 중 검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단군들을 노려보는 관우의 수급을 바라보며 단군이 중얼거렸다.

  “운장까지 당했단 말인가….”

  관우를 위시해 밖에서 엔젤의 습격을 대비하고 경비를 서고 있던 24선들. 24선 중 열 명은 지금 반고님이 계신 곳에 있으니, 지금 저기에서 나뒹굴고 있는 머리들은 신지 밖에서 경계를 맡고 있던 인원 전부라는 말도 안되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7선을 제외하고 이 은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들이 이렇게 쉽게 당하다니!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뭐야, 24선이 이렇게 약한 녀석들이었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 잭의 물음에도 단군은 슬픈 얼굴로 신음만 흘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콜록콜록. 쿡쿡. 쿡쿡쿡. 카카카카카! 코~올록! 콜록! 콜록!』

  제각기 다양한 표정으로 수급(首級)을 바라보는 단군들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 쿡쿡거리던 오미크론은 해골같이 앙상한 손으로 관우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크게 웃었다. 마치 너무 싱거워서 재미없었다는 듯 그것의 웃음소리는 높고 조롱으로 가득했다.

  “너 이 자식!”

  쉬익! 오미크론의 도발에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제천대성이 자리에서 박차 올랐고 순식간에 오미크론의 코앞까지 날아가 황금 여의봉을 찔러들었다. 바람을 음속으로 팽창시킬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운 일격이 일순간에 쇄도했지만, 오미크론은 사레라도 걸린 듯 기침만 격하게 내뱉을 뿐 능글맞은 눈빛으로 관우의 머리를 까딱거리는 게 전부였다.

  슈욱!

  그 순간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이던 공중에서 돌연 시꺼먼 물체가 튀어나오더니 번개같은 속도로 제천대성을 향해 발을 내질렀다.

  “이런!”

  쾅!

  순간적인 감각으로 여의봉을 돌려 기습적인 발차기를 막은 제천대성이었지만, 눈치도 채지 못한 상태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데다가 그 위력이 실로 무시무시했기에 그는 멀찌감치 날아가 동굴 벽 깊숙이 처박혔다.

  “큭! 어떤 개자식이야!”

  그래도 별 타격은 없었는지 욕지거리를 크게 내뱉으며 반쯤 무너진 벽에서 뛰쳐나온 제천대성은 자신을 날려버린 검은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철컥.

  검은 그림자는 철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사뿐하게 땅에 착지했다. 그것은 마치 달걀귀신이라도 되는 듯 눈, 코, 입조차 보이지 않는 우윳빛의 가면과 기계답지 않은 매끄러운 검은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몸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붉은 전선들과 뒷목과 척추를 이어주는 은색 파이프라인만이 그가 기계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희뿌연 기체로 가득한 가면 너머로 얼핏 미소 짓는 해골 그림자가 보인 것 같았다.

  스르륵.

  정체불명의 괴한은 곧이어 부드럽게 주변 배경으로 녹아들었다. 마지막으로 얼굴까지 사라지려는 순간 불투명한 가면 너머로 얼핏 보이는 창백한 해골이 제천대성을 보면서 피식 비웃는 것만 같았고 그는 이내 아침 이슬처럼 소리 소문도 없이 모습을 감췄다.

  “위장(camouflage)? 아니… 이건 그런 것 따위가 아니군.”

  제천대성의 감상처럼 그것은 카멜레온같이 단순한 위장이 아니었다. 차원의 틈새로까지 숨어들고 시간조차 속이는 절대적인 위장. 만약 관우나 루시퍼가 당했다고 한다면 바로 이 절대적인 은폐에 암습 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오냐! 꼭꼭 숨어봐라! 건방진 자식!”

  제천대성은 그렇게 소리 지르며 황금 여의봉을 움켜쥐고 자신의 뒤쪽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콰광!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불똥이 튀기며 투명하게 실루엣만 일렁거리는 그림자가 황금 여의봉에 밀려나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제천대성은 피식 웃으며 실루엣만 얼핏 보이는 그림자를 향해 다시금 여의봉을 찔러 들어갔고 여의봉의 황금빛 궤적이 날카로운 직선과 복잡한 궤도를 일순간에 그리며 그림자를 향해 쇄도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주시하며 오미크론은 감탄조로 중얼거렸다.

  『호오, 람다(lambda, Λ λ)녀석의 기습을 두 번이나 막아내다니. 저건 웬만큼 감이 좋지 않으면 알아내기 어려울텐데 대단하군. 과연 제천대성이란 건가? 콜록.』
  『우워어! 我 boring!(나 따분하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괜히 가슴만 쿵쿵 두드리며 포효하는 타우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오미크론은 람다와 제천대성의 싸움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독기가 올랐군 람다녀석. 하긴 오랜만에 만난 싸움다운 싸움이니까 즐거운 것도 당연한가? 콜록.』

  오미크론은 관우의 머리를 마치 쓰레기 버리듯 어깨너머로 휙 던지곤 허리춤에서 광검 네 개를 꺼내들었다. 곧이어 ‘철컥’하고 철끼리 맞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양 팔이 두 갈레로 갈라지더니 마치 아수라처럼 손마다 들려 있는 네 개의 광검에서 시퍼런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웅웅웅웅!

  손목의 관절을 몇 번 회전시키며 광검들을 휘두른 오미크론은 무겁게 공기를 진동시키는 광검들의 음색을 감상하며 말했다.

  『콜록. 그럼 가볼까?』
  『우워워워! Krieg! Guerra! War! 戰爭! 전쟁~~!(전쟁! 전쟁! 전쟁! 전쟁! 전쟁~~!)』

  콰르르릉! 오미크론이 막 시위에서 당겨진 화살처럼 앞으로 몸을 내던지는 순간, 타우의 육중한 손에 의해 통째로 뒤집힌 땅이 마치 해일처럼 단군들에게 밀어닥쳤다.


[Introduc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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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끌었습니다. ㅜㅡ;

변명을 하자면 아란님이 다음 화에 완결낸다고 하시는 바람에 써보려고 하다가;;;;

10쪽 쓰고 바로 GG 쳐버린.....


뷁귀~ 여튼 너무 늦어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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