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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ESCAPE」 가시덤불 성의 잠자는 공주님

2005.07.30 02:04

도지군 조회 수:75 추천:2

extra_vars1 굳게 마음먹으렴, 살아남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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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를 건넌 일행들은 눈 앞 멀리에 보이는 거대한 성을 응시했다. 불길한 분위기. 검은 새들이 성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고, 검은 벽돌로 만들어진 듯 안개로 가리워진 듯 희무끄레하게 형체만 보였지만, 그들 앞, 멀리 보이는 것은 성이었다.
  "성……."
  가슴에 담긴 말을 토해내듯 영시가 중얼거렸다. 흑인 마이클이 소리없이 권총을 철컥 장전했다.
  "…성으로 들어갈건가요?"
  코우라는 일본 남자가 루드에게 물었다.
  "물론 그래야죠……. 성이 있다는 건 사람이 산다는 거고……거기에 어쩌면 우리를 위한 구호 물품이라도 있을지…^."
  루드도 영시와 비슷하게 뭔가 성을 바라볼 때 뭔가가 억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일행에게 딱히 그런 말을 하지는 않고 그들 전체에게 말했다.
  "성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반대하시는 분 있습니까?"
  오만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콧수염을 씰룩댔다. 그의 툴툴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리스가 그를 곱지 않은 눈초리로 흘겨봤다. 그때 갑자기 성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부르고 있어. 성이… 성이 날 불러…부르고 있단 말야……."
  예기치 않은 말에 영시는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영시가 몸을 움츠리자 이리스가 그녀와 존 프랭크를 껴안았다. "무서워… 저 성……" 존이 독일어로 중얼거리며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울지마……."
  이리스가 그와 영시를 더 꼭 껴안았다. 코우가 루드를 바라보고 영어로 말했다.
  "왠, 왠지 기분 나쁜 성이에요…… 윤곽도 희미한데, 저거…너무 이상한 기분이."
  그 순간 들려온 소리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크와아아앙-!!"

  난데없는 괴물의 외침에 모두가 펄쩍 뛰었다. 마침내 존이 큰 소리로 울음을 와앙 터뜨리고 영시가 겁에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성은이 후다닥 그들 앞에 펼쳐진 숲으로 뛰어들어갔다.
  "앗, 안돼요!"
  루드가 한국어로 외치며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손은 헛되히 허공만 갈랐다. 성은이 뭔가에 걸려서 굴렀다. 그 와중에 생긴 생채기에 피가 흘렀지만 성은은 그런건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이 돌아가면서 입에서는 쉴새없이 이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디...ㅋ..."
  뭔가를 말하려고 하던 성은은 다시 뭔가에 걸려서 뒤로 호되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뒤로 코우와 루드,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왔다. 성은이 쓰러져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의 입에 난 상처가 제법 깊었다. 코우가, 성은이 부딪힌 가지를 보고 영어로 신음하듯 말했다.
  "가시…나무……."
  가시 나무…….
  어째선지 그 말은 모두의 마음속에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아주 깊은 울림을... 마치 한 소녀가 슬프게 웃고 있는 듯한 울림을…… 오직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영시만이 이빨을 부딪히며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는 온통 가시나무 천지였다. 간간히 곧은 나무 몇그루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모두 말라서 시들어져 비틀어져 있었고, 주위는 온통 가시나무였다. 손가락을 찔린 이리스가 신음을 냈다. 그 순간 무언가가 그들 앞에 불쑥 튀어나왔다.
  "…거북?"
  이리스가 중얼거렸다. 그때, 정확히 거북은 아니지만 거북같이 등딱지가 있고 그 틈으로 다리와 머리등을 내밀고 있는 기묘한 파충류 같은 것이 그들에게 천천히 기어왔다.
  "어디서 나타난거지?"
  코우가 중얼거렸다.
  갑자기 그 기묘한 파충류…거북이 입을 딱 벌렸다. 그러더니 희뿌연 연기를 냈다. 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존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게 뭐야."
  알이 손으로 연기를 흐트리며 고함을 쳤다. 영시는 문득 이 연기가 매우 불길한 것을 가져다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루드는 외쳤다.
  "이게 뭔지 모르잖아요, 다들 물러서요."
  영어를 모르는 영시만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루드가 영시의 손을 붙잡고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이리스는 존을 안아들었고 루드는 영시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알은 눈만 부라리고 있었다. 코우는 조심스럽게 옆의 쓰러진 나무의 줄기를 집어들었다. 성은은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그걸 본 마이클이 엇 소리를 내자 성은이 어느새 일어나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알리고 있네."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두 사람 영시와 루드만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미친것처럼 보이는 성은보다는 이상한 연기를 쉴새없이 내뿜어대고 있는 거북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의 장소... 우리의 수..."
  성은은 쉴새없이 말했다.
  "우리의 고기는 얼마나 질길까..."
  "그, 그만..."
  영시가 울상이 되었다. 루드가 성은에게 뭐라고 하려는 순간, 매우 불길한 느낌의 괴성이 모두를 강타했다. 어느샌가 거북은 사라지고 없었다.
  "저 거북에 대해서 뭔가 알아요?"
  루드가 신경질적으로 물었지만 성은은 킬킬거리기만 했다.
  쿵,
  쿵...
  어디선가 땅이 나즈막히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알이 중얼거렸다. 그가 뒤로 두어걸음 물러서고 마이클은 장전해 뒀던 총을 꺼내들었다. 영시가 덜덜 떨면서 루드에게 물었다.
  "아저씨…저거…뭐에요?"
  "별로 좋은 건 아닐 것 같지 않아? 헤헤헤..."
  성은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영시의 얼굴이 핼쓱해졌다. 루드는 영시를 달랬다.
  "괜찮을 거야…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어……,"
  이리스가 영시를 가엾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이리스는 영시의 말을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어를 알아 듣는 사람은 두 명, 성은과 루드 뿐이니까….
  쿵... 쿵... 쿵...쿵...쿵..
  발 소리가 규칙적으로 더 빨리 더 가깝게 더 큰 진동을 수반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말하지 않았지만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시, 싫어."
  존이 울음조차 그치고 모두는 적막속에서 나타날 뭔가를 기다렸다. 마침내 풀숲이 흔들리나 싶더니, 작은 쥐가 한마리 튀어나왔다. 비정상적으로 긴 앞니를 가진 쥐였다.
  "겨우 쥐야?"
  알이 김빠진 소리를 냈을 때였다. 이리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쥐가 움직이는데 쿵쿵 소리가 나요?! 좀 더 크고 몸무게가 육중한 게……"
  순간 모두에게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리스의 눈이 충격으로 커졌다. 이리스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공……룡…………."
  그리고 그것이 모습을 모두에게 들어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으아아아악!!"
  마이클이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난사해대고 있었다. 그것에게.
  "소용 없잖아!"
  알이 그런 마이클에게 외쳤고, 영시는 공포로 몸이 마비되었는지 주저앉았다. 주저없이 이리스는 존을 안아들고 더 깊은 가시나무 숲으로 뛰어들어갔다. 성이 있는 쪽으로. 마이클이 총을 난사해대다가 안되니까 욕설을 내뱉으며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알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꽁무니가 빠지게 달리고 있었다. 루드는 달리다가 순간 이상한 예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쿵쿵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거대한 공룡처럼 생긴 그 괴물은, 영시의 앞에서 멈춰 있었다.
  "안돼!!"
  루드가 무심코 외쳤다.
  그 소리에 이미 깊이 들어가버린 알과 이리스 존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성은은 어느새 사라져버린건지 보이지 않았다. 코우와 마이클이 멈칫하며 뒤로 돌아갈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루드는 엄청난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공룡이 시선을 자기쪽으로 돌린 것이다.
  "으...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것과 마주쳤을때의 당혹감.
  "안돼..."
  루드가 힘겹게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공룡은 성큼 영시를 내버려두고 루드를 향해 한발자국 다가갔다. 움직이지 못하는 영시는 나중에 잡아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으......"
  루드가 뒤로 움직이다가 뭔가 따끔한 것이 몸을 찔러대는 것을 느꼈다.
  "가시..."
  루드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여자애 만이라도 살아야 해...
  "뛰어 - !!!!"
  루드가 고함을 쳤고 영시가 놀라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가소로운 얼굴로 모두를 조소하고 있는 공룡.
  공룡의 입이 루드를 향해 덮치고 들어왔고 루드는 그대로 자세를 숙였다. 공룡의 입은 나무를 물어뜯었다. 이빨이 가시나무에 깊숙히 박혀선지 공룡은 입에서 가시나무를 좀처럼 떼어내지 못했다.
  "얼른 도망쳐!"
  루드가 머뭇거리고 있는 코우와 마이클에게 영어로 고함을 지르며 영시쪽으로 달려가 얼른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달려! 달리라고!!"
  귀가 먹을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며 루드는 영시를 잡아끌고 무작정 달렸다. 뒤에서 분노한 공룡의 포효가 들려오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일행들이랑 떨어져 버렸어요.. 어쩌죠?"
  영시가 계속되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부지런히 땔깜을 줏어와 라이터로 이리저리 불을 피울 궁리를 하던 루드가 말했다.
  "…어? 아... 괜찮을거야... 다들 성쪽으로 갔다고... 우리도 그쪽으로 가면 돼."
  모닥불에 불을 피우는 걸 성공시킨 루드가 영시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영시가 조심스럽게 모닥불 앞에 앉아서 물었다.
  "밤에 불을 피우면... 접근하지 않을까요..."
  "...그렇네."
  그러면서 루드가 말했다.
  "하지만 얼어죽을 순 없잖아..."
  그러자 영시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루드가 문득 영시를 불렀다. 영시가 미동도 하지 않자 루드가 마리화나를 작은 포켓에서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무서울 때는 달아나…힘껏 뛰도록 해. 그 여자애도 말했잖니. 살아남으라고…….
   힘껏 뛰어. 굳게 마음먹으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살아나가는 거야."
  영시는 지나를 생각하는지 목덜미를 움츠렸다.

  "그래... 모두 살아나가는거야..."



  
  "벌써 네사람이나 없어졌어요."
  이리스가 말했다. 헤어진 영시와 루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공룡의 마수에서 무사히 벗어나 있었다. 알이 심술궂게 말했다.
  "신경 꺼. 우리 일이 더 중하다고. 그래서 어쩔꺼야?"
  그러면서 알이 아직 4-5일은 더 걸어야 도착할 듯, 멀게만 보이는 성을 손가락질 했다.
  "성으로 들어갈거지? 얼른 잠이나 쳐주무시고 떠나도록 하지."
  "안돼."
  마이클이 반대했다.
  "그들 둘은 살아있어."
  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루드와 영시를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들 둘이 잔인하게 공룡에게 뜯겨서 사라지는 걸 보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 한국노인네는 어딜간거지."
  알이 투덜거리며 할 수 없이 돌아누웠다. 마음 같아서야 얼른 성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모두들 그들 둘을 찾자는 분위기라서, 혼자 성으로 가기는 무섭고 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찾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내일부터, 네명 모두를 찾아보도록 합시다."
  이리스가 중얼거렸다. 먼저 주변을 감시하기로 한 이리스는 피곤했던지 새근새근 잠이 든 존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