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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TV 살인쇼

2005.06.04 02:57

외로운갈매기 조회 수:142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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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미친 듯이 달렸다.
왼쪽 눈은 갈수록 아파만 왔다. 총상을 당한 오른쪽 어깨도 계속 아파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앉아서 쉬었다가는 언제 어디서 날아온 무기에 죽을지도 모른다.

탁.

줄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흙바닥에 그대로 엎어져버렸다.

“아파...”

다행히 줄을 놓은 상대는 없어보였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철컥. 퍽.

녹슨 쇠가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잇달아 나는 소리. 그리고 극심한 아픔이 오른손 쪽에서 났다.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 순식간에 다른 살인마들이 몰려든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내었을 때는 이미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댄 뒤였었다. 난 그대로 오른손목을 물어뜯고 있는 녹슨 철제 덫-밀렵꾼들이 흔히 사용하는 발목 덫-을 왼손으로 부여잡고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목에서는 흐르는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아악... 아파... 아파...”

왼손으로 덫을 빼보려고 했지만 한 손만으로는 풀 수도 없을뿐더러 조금만 건드려도 끔찍한 아픔이 밀려들어왔다. 도망친다고 했지만, 이대로는 제대로 뛸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오른손을 잘라버릴 정도의 용기 따윈, 내게 없었다.

타앙.

또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26번 김지훈의 헤드 샷 미스 났음- 이번엔 왼쪽 배를 등에서 관통하는 것이 있었다. 붉은 피가 왼쪽 배 쪽에서 흐르며 찢겨져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오른 발은 밟으면 안대는 허공을 딛고 있었다.

데굴데굴.

절벽에서 그대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죽겠지.

“아파... 너무 아파...”

점점 정신을 잃어버리면 좋겠는데, 차라리 배가 아니라 머리에 제대로 맞고 그대로 골로 갔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미칠 정도로 아팠다. 너무 아팠다.

“하아... 하아...”

어느 순간 내 몸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바닥에 제대로 안 죽고 굴러 내려 온 모양이다. 이마-절벽을 굴러 내려올 때 다친 모양-에서 흐르는 피가 남은 오른쪽 눈에 시야를 가렸다. 덕분에 푸른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보인다.

“아윽...”

간신히 끊어질 것 같은 정신을 추슬러 일어섰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머리가 어지러웠다.

저벅, 저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공포에 어느새 몸은 본능-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출혈이 심한 몸-을 무시하고 미친 듯이 숲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른 손목을 물어뜯고 있는 덫으로 인한 아픔이나 왼쪽 배에 난 총상에 의한 아픔이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죽고 싶지 않았기에 미친 듯이 뛰어야 한다는 것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꽝.

고막이 터지는 뜻한 엄청난 굉음. 그리고 내 의식도 거기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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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빠가 내 눈앞에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난 죽었다는 건가? 죽는 다는 것도 별거 아니네.

‘살아라.’

아빠가 내게 말했다. 근데 왠지 대게 웃겼다. 아빠가 보인다는 건 난 이미 죽었다는 건데, 왜 ‘살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돌아가라. 그리고 꼭 살아서 돌아가라.’

갑자기 아빠가 나를 뒤로 확 밀어버린다. 그 순간 온 몸에서는 미쳐버릴 정도의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아악!!!”

“거, 대게 시끄럽네.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닥쳐.”

한 소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 목소리에는 정말로 죽일 뜻한 살기가 담겨 있어보였기에 난 애써 이를 악물며 극심한 아픔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아프다는 것은 그리고 소리가 들린다는 것, 더 이상 아빠가 보이지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은.

“나, 아직 살아있어?”

작게 내 입에서 어느새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럼 살아있지, 내가 죽였을까 봐?”

소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왜 나를 살려 준 거지? 무엇 때문에?

“아윽, 아윽...”

애써 이를 악물며 아픔을 참으려고 해도, 오른 손목을 물어뜯고 있는 덫으로 인한 아픔...

“아?”

힘겹게 오른 팔을 들어보았다. 피가 배인 붕대로 잘 묶여 있는 오른 손목이 보였다. 물론 군데군데 반창고가 붙어 있었지만.

“덫이라면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 빼두었지만 말이지.”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나한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열심히 무언가를 손보고 있었다. 대충 보니 내 오른쪽 손목을 물어뜯었던 그 덫 같았다.

“저, 어기?”

난 간신히 입을 열어 말을 걸어보려고 하였다.-예린의 목소리는 너무 작게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왼쪽 다리에서 극심한 아픔이 밀려왔다. 난 도로 이를 악물고 신음해야 했다. 그리고 어쩐지 왼쪽 다리 무릎 아래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이지 무기 중에 설마 지뢰 같은 것도 있을 줄이야. 미친놈들.”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뢰? 지뢰라니? 무슨 뜻일까?

“저어, 아윽... 지, 지...”

“시끄러.”

난 도로 입을 다물었다. 소년은 나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로 조용히 말하였다.

“그 지뢰를 네가 밟았다는 거야. 아 물론 왼쪽 발목부터 무릎 아래는 어쩔 수 없지만 절단해야 했고 말이야. 처음부터 얻은 무기가 수술용 메스라고 화가 났었는데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네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해 보니, 날이 장난 아니게 날카롭더라고.”

난 내 몸을 덮고 있는 이불-그냥 천 조각에 불과하지만-을 치워보았다. 왼쪽 무릎 아래가 없었다. 대신 왼쪽 무릎을 덮고 있는 붕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불을 치우면서 바람이 스쳤는지 굉장히 아파왔다.

“아윽...”

“그걸 꼭 남은 오른쪽 눈으로 확인해야겠냐?”

“저, 저기... 어, 어째서 나, 날 사, 살려준 거야?”

나는 간신히 아픔을 참으며 소년에게 말하였다. 묻고 싶었다. 이 쇼에서라면 보통은 죽이는 게 당연한데, 단지 살려주기만 한 게 아니라, 이렇게 내가 입은 상처를 보살피기까지 했다.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인간은 가족을 빼면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게 정상 아닌가? 뭐 이 미친 쇼에서는 이런 짓이 미친 짓이겠지만. 난 말이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적은 있어도, 고의로 죽인 적은 없어. 뭐 이 미친 TV 방송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소년은 말을 하면서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옷가지를 휙 건네주면서 말하였다.

“일단 그런 누더기는 벗어버리고, 그거나 입어.”

“고, 고마...”

“내가 널 안 죽인 건, 그 엉망진창인 꼴 덕분에 있으나 마나한 양심을 움직였다고만 해두지. 그러니까 착각 하지 마. 얼마든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총알받이로 이용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소년은 그렇게 말했지만 왠지 어딘가 떠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나도 그 소년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조금 힘들겠지만.

“저, 저기 이름...”

“민준. 성 따위는 태어날 때부터 고아라 그딴 건 없고...”

“신 예린... 올해 14살이야...”

“어려 보였는데 확실히 나보다 어리군. 쳇, 렌은 그래도 생각지 못한 장비로 도움이라도 되지만...”

렌? 누구일까? 민준이라는 사람의 동료일까?

“아, 렌 마침 도와줄게 있어. 예린이라는 녀석 옷 갈아입는 거, 아 나도 참...”

민준이 어딘가를 보며 하는 말에 나도 시선을 돌려보았다. 외국인인가? 어깨까지 오는 연한 금발, 짙은 청색의 두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검은 머리끈을 흡사 머리띠처럼 두르고 양쪽 매듭을 리본으로 묶어놓았으며,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민준은 그 소녀, 렌을 보며 종이에다 뭔가를 적더니 렌에게 보여주더니 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로 왔다. 민준의 말대로 렌은 조심스럽게 내가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 참, 예린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자질구레한 상처를 돌봐준 건 렌이야. 물론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건 내가 했지만, 그것도 렌이 알려주어서 가능했던 거고. 그리고 이  장소는 어지간해서는 들키지 않을 거야. 물론 그만큼 위장도 잘 되어 있고, 함정 같은 것도 철저히 설치되어 있고, 밖에 나가지 않아도 바깥에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장치도 충분히 되어 있으니까, 물론 렌의 죽은 동료라는 사람이... 일단 여기 있으면 안전해. 나가고 싶어도 워낙 함정 투성 이라, 렌이 길을 안내하지 않으면 나가다 함정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지만...”

민준의 말대로라면 이곳이 안전하다는 의미이다.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다른 사람을 일부러 죽이지 않아도 되겠지.

‘죽지 않아... 꼭 살아서 돌아갈 거야.’

다시금 결심했지만, 이젠 뛰는 것도 불가능한 몸인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 아니야 꼭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엄마랑 재원이 곁으로 돌아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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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이런 곡을 mp3에 담아두었지?”

정재훈은 왠지 슬프지만 잔잔한 노래가 mp3에서 들리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4년 전에 ‘황금의 천사’라고 불린 목소리를 가진 아이가 부른 노래였었지. 그러고 보니 그때는 상당히 좋아했던 노래였는데, 그때 노래를 불렀을 때 그 애는 무려 8살이었던가? 뭐, 지금은 뭐하고 산다더라? 뭐 나하고는 상관없겠지. 노래가 좋고 내가 편하면 그만이니까.”

정재훈의 mp3에 달린 lcd 액정에는 노래제목과 노래를 부른 사람의 이름-레네카 N 프로브-이 찍혀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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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레네카 N 프로브. 하지만 그 이름은 4년 전에 쓰던 이름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어머니는 한국이 고향이라고 했다. 그래서 틈틈이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고 한국말을 많이 들어보았다. 집사이자 친구인 카밀라에겐 미안하지만, 난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억하기 싫다. 평소에도 별로 이야기나 관심-아버지가 관심을 가져주었던 것은 내가 노래를 부름으로서 벌어들이는 돈 뿐이었다- 따위 가져주지 않았으니까. 어머니는 자선 사업가였다. 주로 노래를 하였고, 듣기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돈이 안대는 일을 한다고 막말을 했던 기억이 자주 난다. 가끔 어머니가 왜 아버지와 결혼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싫은 아버지에 의해 난 내가 지닌 재능-노래-을 일찍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원치 않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관심 가지는 돈은 순식간에 모여 갔다. 아버지가 관심 가지고 있는 돈은 싫었다. 하지만 그 돈이 없었으면 아마 카밀라를 만나지 못했을 테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 돈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집에 들이 닥쳐서 곳곳에 마구 스티커를 붙여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밀라와 헤어져야 했고, 집에서도 나와야 했다. 아버지는 그 후 보이지 않았고 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머니의 고향이라는 한국에 왔다.

이 유리.
한국에서 불리는 새 이름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나 외할머니나 친척 분들은 나를 렌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게 편했다. 하지만 한국에 온지 얼마 안대서 내게 사고가 났다. 무슨 사고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 난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에 의해 강요받아 부르던 노래, 이젠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대로 4년이 지나 나는 12살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익숙해졌다. 수화라던가 그런 것도 한글 수화와 영어 수화까지 완벽히 구사할 수 있었지만, 정작 수화를 알아듣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았다. 노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았기에 노래는 그저 한국 속담으로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공원에서 만난 오빠가 메모장에 적어서 보여준 글자.

[You can do it.]

4년 동안, 아니 이젠 평생 할 수 없을 거라고 포기했던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아무것도 안 들린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내가 부르는 노래가 마치 온 몸에 울리면서 들리는 듯 했다. 비록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오빠는 처음 보았을 때 우울했던 표정은 어디로 사라지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오빠 뿐 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사람들 모두 박수를 치면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용기를 얻어 노래를, 말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TV-살인쇼라는 곳에 참가자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카밀라도 어찌된 일인지 그곳에 참가자로 있었다. 카밀라가 아니었다면 난 죽었을 것이다. 카밀라는 나를 지켜주려고 했다. 이젠 나를 돌봐줘야 할 의무가 없을 텐데, 카밀라는 나를 지켜주고 그리고 이런 장소를 찾아 날 그 장소에 숨기고 그 외에도 나를 지켜주고 이런저런 잔일을 해주고, 그리고 내가 도망 갈 수 있게 하고 죽었다.
이젠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렸지만, 카밀라는 죽기 전까지 혹시라도 내가 혼자가 되어버렸을 때 살아남을 수 있게 여러 가지를 종이나 적을 수 있는 데는 뭐든 적어서 기록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나를 위해 적외선 레이더 센서 같은 것도 남겨두었다.

이젠 정말로 혼자다. 하지만 새로운 참가자로 보이는 오빠가 피투성이인 언니를 업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내가 있는 -카밀라가 마련한-비밀 장소에 안내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나를 해칠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 실제로 해치지 않았다. 민준과 예린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들과 나는 한 나흘 가량 예린이 언니의 상처를 돌보며 지냈다.

이곳에 비축된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카밀라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식량만 비축해 두었으니까. 식량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민준은 이곳에 설치된 함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민준에게 식량을 얻으러 간다고 하고 나왔다. 적외선 레이더 센서를 두고 나왔지만 밤이니까,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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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의 두 눈에 풀숲이 약간 부스럭 거리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풀숲 사이로 슬쩍 비치는 옷자락이나 달빛의 의해 생긴 약한 그림자라던가가 보였다. 김지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번에도 헤드 샷은 빗나간 모양이었다. 물론 빗나갈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쏜 것이었다. 단지 풀숲이 부스럭 거리는 것만 보고 예측해서 쏜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빗나갔다고는 하지만 목표를 맞추긴 맞춘 모양이다. 풀숲에서 약한 비명 소리와 쓰러지는 소리가 났으니까. 김지훈은 다시 예측 샷을 쏘았다. 이번엔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맞았다는 것은 대강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왠지 맘이 편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 된 짓을 하고 있다는 감이 왔다.

“쳇, 당연히 살인은 잘못 된 짓이겠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김지훈은 괜히 한마디를 내지르며 다시금 저격 총으로 조준하였다. 그리고 김지훈의 두 눈에 사람의 머리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대로 헤드 샷을 날리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였다. 달빛의 잠깐 사람의 머리가 얼굴이 비추었다.

탕.

작게 울리는 총소리.
김지훈은 저격 총을 안고 갑자기 제일 저격하기 좋은 그 장소에서 서둘러 내려가더니 헤드 샷을 날렸던 그 풀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김지훈의 두 눈에 보인 것은 개울을 붉은 피로 물들이고 있는 금발의 소녀였다. 김지훈은 소녀를 끌어안았다. 소녀는 초점이 흐려지는 짙은 청색의 두 눈동자로 김지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의 피를 손가락에 묻혀 김지훈의 팔에다 어떤 글귀를 적었다.

[You can do it.]

소녀의 두 눈이 감겼다. 팔이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소녀의 하얀 얼굴에 김지훈의 두 눈에서 흐르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다 이내 미친 뜻이 웃으며 소녀를 감싸 안으며 소리쳤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제기랄!! 이딴 의미로 잘 하라는 것이 아니잖아!!!”

그 와중에도 김지훈은 그때 공원에서 이 소녀를 만났을 때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름을 알고 있었다면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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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가긴 했지만 노래와 글귀로 서로를 기억하는 두 사람, 그 중 한명이 노래를 불렀던 한 사람을 죽이네. 죽임을 당한 사람은 죽음을 안겨준 사람에게 글귀를 돌려주네. 그리고 노래를 불렀던 사람을 죽인 글귀를 선물했던 사람은 웃고 있네.”

영희는 갑자기 저 하늘의 달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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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민준 오빠... 렌이 나간 지 꽤 된 거 같은데 돌아오지 않고 있어.”

예린은 민준에게 말하였고 민준은 간단히 대답하였다.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잖아. 누구에게 살해당했다면 돌아오지 못하는 거지.”

예린은 민준에 말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하긴 TV-살인쇼니까 언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예린의 눈에 뜨인 한 노트가 있었다. 그것을 펼쳐보았다.

“이거 렌이 쓴 건가?”

노트의 겉표지에는 영어로 된 한 문구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물론 예린은 영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몰랐지만.

[You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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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지훈의 외침을 누군가 들은 탓일까.운명이란 것은 지훈에게 쉴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싶었다.

'큭'

지훈은 흘리던 눈물을 황급히 닦고 주변을 살폈다.대충 닦은 눈물이 눈가에 아직 남아서 인지,시야가 흐릿했다.
무겁고 길기만 한 저격총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지훈은 저격총과 같이 받은 권총을 꺼내 들었다.

-부스럭

다시 한번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가 났다.아까 보다 더욱더 가깝고 확실한 소리였다.상대방은 지훈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 따위는 생각조차 않는 듯 했다.
지훈은 더욱더 세게 눈물을 훔쳐내었고,미친듯이 주변을 살폈다.그의 시선과 함께 총구가 여러 곳을 향했다.그러나 소녀를 감싸안은 왼손은 놓질 않았다.

-뚜벅 뚜벅

나뭇가지를 밟던 소리는 구두 소리로 변하였고,확실하게 지훈이 있는 풀숲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지훈의 총구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흐릿한 사람의 형체가 보이는 듯 했다.
지훈은 한동안 형체를 살펴보았다.점점 더 형체가 뚜렷해졌다.지훈은 형체를 쏠지를 생각하였지만,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또다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였다.죽이고 싶지도 않고,죽고 싶지도 않다라...지훈은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에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한편,지훈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 형체는 한 사람의 남자로 변해있었다.지훈이 언뜻 보니,검은 양복을 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남자였다.남자의 얼굴은 밤 하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말없이 지훈과 지훈이 안고 있는 소녀를 내려다 보았다.그리고선 말없이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쏴야해...쏴야...'

머리속으로는 끊임없이 쏴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몸이 들어 주질 않았다.남자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듯한 행동을 보였고,이윽고 총구로 보이는 것이 안주머니에서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탕!!"

남자가 지훈에게 말했다.지훈은 얼떨떨한 얼굴로 해명을 바라듯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총구를 내리지는 않았다.

"넌 죽었어,지훈군."

남자가 말했다.보통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언젠가 만났다는 뜻이지만,이 쇼에서는 다른 이야기다.참가자 명단으로 꼭 내가 아니라도,참가자라면 누구든지 이름을 알아낼수있다.

"미안하지만,그 총 치워주지 않겠나.내가 널 죽일 생각이었다면,조용히,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을 거야."

"아...아."

그러나 지훈은 정말 총구를 내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그대로 멈춰서 고민했다.그리고 분석했다.이 남자가 위험한지를.
그리고 재빨리 판단을 내려,총구를 내렸다.

"의심이 많군.뭐 그 점이 마음에 들었네."

"...죄송하지만...누구시죠 ? 전 아직 당신이 누군지도..."

상대방만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약간 찝찝한 지훈이 남자에게 물었다.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를 보았다.그리고,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지훈은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지훈은 천천히,그러나 확실히 입을 움직였다.그는 지훈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아니,지훈만이 아니었다.한국인이라면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한국이 아니라도,대부분의 세계인들도 그를 알고 있었다.그는...

"당신은...한국의...대...통...령..."

지훈은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아...진정해.별로 대단한건 못돼."

"하...하지만..."

'대단한게 못돼다니...대통령이란 직위에 있는 사람이 할말이 아니잖아 ? 게다가,어떻게 한낱 TV 쇼에서 대통령을 ?'

여러가지 의문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지만,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남자가 대통령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TV 쇼는 말야,사실은 엄청난 거야.그저 죽이고 죽이는 쇼보다 훨씬 더."

무슨 소리일까.이 쇼는 죽이고 죽이는게 최대의 묘미이지 않은가 ? 그런데 대통령은 그것보다 더 엄청난 것이 있다는 건가 ?


"모른다는 표정이군.그럼 내가 네게 묻지.넌 이 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

지훈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서로 죽이고...1명만 살아남고...어...그리고..."

'...서...설마...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은...!!"

드디어 대통령이 하려던 말을 깨달은 지훈이 놀라움의 표정을 짓자,대통령이 한숨을 쉬며 쭈그려 앉아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래.네 추측대로다.이 쇼는 시작되기 전에 이런 경고문을 보여주고 시작하지.'이 TV 쇼는 정부의 허락을 맡은 합법적인 프로그램으로,출연자들은 무작위 추첨으로 사회적 지위,명예,부,권력에 상관없이 무작위 선발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래! 이 쇼는 무작위 선발이 아니었던 거다!"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간다.그가 항상 느껴왔던 '의문'이 있었다.

'왜 이 쇼의 출연자들 대부분이 불행한 과거를 가졌는가 ? 혹은 정신병이거나. 장애를 가졌거나.'

"빌어먹을!!"

지훈이 외쳤다.그는 잠시 소녀를 내려 놓고,왼손을 꽉 쥐었다.

'하하...그래서 인가.자원 참여자를 받지 않았던게...자신들이 원하는 녀석들만 죽이기 위해서...나는...이 애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 때문에...?'

그와 지훈은 서로 쓴 웃음을 주고 받았다.
지훈이 소녀를 죽이는 것 조차 계획되어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자,지훈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게...다 계획되어 있군요..."

"그래.처음엔...자신들의 쇼에 반대한 사람들을 참여 시켰지.그래서일까.반대한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었고...이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아.오히려 모두들 이 쇼를 좋아하고 있어.다들 미친거지,이 쇼에."

"그렇다면 당신이 막았어야지!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권력자인,당신이! "

지훈이 막무가내로 그에게 우겼다.

"하지만 그런 법은 내가 만드는게 아냐.내겐 그럴 힘은 없어."

"아니. 당신은 있어."

"없어.있다고 해도,지금와서 이런 짓을 해봐야 바뀌는건 없어."

지훈이 위협적으로 대통령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흔들었다.

"시끄러워!! 당신이 잘못한거야! 당신이! "

"제길,말이 안통하는군! 그래,죽여! 죽이라구! 하지만 이건 알아둬.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넌 벌써 죽었어!"

그러나 지훈은 그의 말은 이미 듣지 않고 있었다.지훈의 손가락이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그리고...

-탕!

총알은 엉뚱하게도 대통령의 이마에 박히지 않았다.지훈이 이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의 머리를 맞추지 못할만큼 마음이 약해진걸까?

-털썩

대통령은 총알에 맞지 않았지만,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대통령은 황급히 쓰러진 사람을 살피러 갔고,지훈도 그를 뒤따랐다.
검은 철모,국방색 군복.그리고 길다란 소총을 움켜쥔 남자가 철모와 머리를 관통당해 쓰러져 있었다.그리고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차가운 땅을 촉촉히 적시는 것을,그 둘은 보았다.

"우리가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했나본데."

대통령이 조용히 내뱉듯이 말했다.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뒤,혼심의 힘을 다해 뛰었다.그리고 그 둘을 죽이기 위해,사방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그 와중에도 지훈은 소녀의 시체를 잊지 않았다.

"설마 그 시신을 가져가려고 ? "

대통령의 말 속에는 '그건 필요없어'라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지훈은 재빨리 그 의미를 알아챘고,신경질적인 어투로,

"일단은!"

이라고 대답하고 소녀의 시신을 안았다.소녀의 차가운 시신을 안으며,지훈은 자신의 팔뚝에 쓰인 글귀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살아남을테다! 그리고...죽여 버리겠어!! 모조리!! 이 게임을 만든 녀석들을!! 내가 아니라,이 아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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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뒤로 단정하게 묶으려고 하던 손을 잠시 멈췄다. ...고무줄이 없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영희는 다시 자신이 이성을 찾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도 잠시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아윽..."

  구멍이 뚫린 영희의 어깨. 반쯤 베여서 뼈가 훤히 드러나 있는 손... 영희는 아픔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영희는 '각성' 상태에 빠져들어가도 '각성'시의 기억을 잃지는 않는다.
  지혈... 지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영희는 자신의 웃옷을 벗어 약간 찢었다. 찬 바람에 드러난 어깨가 추웠다. 찢은 웃옷으로 대충 손의 상처를 묶고 난 후, 어깨의 상처를 묶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힘드니? 도와 줄까?"

  난데없이 들리는 소리에 영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영희의 눈 앞에서 단발을 한 여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혀 영희를 내려다보며 오른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손... 왼손은?

  영희는 순간 힘껏 발로 그녀의 턱을 걷어찼다. 여자는 방심한 나머지 윽 소리를 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영희는 얼른 일어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뒤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영희는... 영희는 여자의 왼손에 들려 있던 총을 봤던 것이었다. 총알 한발이 스쳐지나갔다. 피가 금새 영희의 얼굴에서 흘렀다.

  '아.. 안돼... 이대로는, 세번째가..."

  영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자신의 인격이 세번째로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 이미 늦었다... 랄까. 영희는 천천히, 자신에게 난사를 하고 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영희의 앞에 차례대로 총알이 후두둑 박혔다. 그러나 영희의 바로 앞에 꽂힌 총알이 탄창에 들어 있던 마지막 총알이었는지 탁탁 소리만 내며 단발 여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영희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의외로 무기가 없어지자, 대담히 접근했었던 여자는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뭐.. 뭘 하려는 거야..."

  여자가 사레가 들린건지 켁켁거렸다. 그러나 영희는 가볍게 무시하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음울한 그림자가 영희에게 다시 번지고 있었다. 영희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그림자 만큼이나 어둡고 침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영희 자신은 그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무시하지 말아줘. 나도 사람이야.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아... 너랑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구. 이것 봐, 피도 흐르고 있어... 킬킬킬...쿨럭,"

  영희가 미친사람처럼 킬킬거리다가 잔치침을 뱉으며 발을 여자의 목 위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힘껏 체중을 실으며 마치 여자의 목 위를 걸어가듯 하는 행동을 해 보였다. 여자가 숨이 막혀 켁켁거리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영희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온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산소를 절실히 바라는 듯 했다.
  그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척 하면서 사실은 간신히 다른 사물들의 도움으로, 다른 사물들을  착취해서 살아가는 주제에... 자신과 다르다고 자신이 아니라고 그런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이기적인 얼굴로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이기적인 표정으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
영희는 문득 생각난 듯  여자의 손에서 떨어진 권총을 줏어들었다. 영희는 소중하게 권총을 쓰다듬으며 총구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영희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찰칵하는 무심하고도 공허한 소리만 날 뿐이었다. 여자의 몸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다. 숨이 더 거칠어 지고 있었다. 여자의 목숨을 건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영희는 천천히 그녀의 몸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단발머리 여자의 눈이 순간 공포로 질렸다. 저 여자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

  영희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총구를 여자의 눈에 쑤셔넣었다.







* * *


  "듣던 대로군."

  총을 들고 있던 한 남자가 피식 웃었다.

  "정신 분열증... 감성과 지성, 그리고 이성이 서로 분리된 상황이군. 저것들이 주인이 상해를 입으면 돌아가면서 인격을 대변한다는 건가?"
  '그러나... 무서운건 그런게 아냐. 저 여자는 기껏해야 다른 사람들의 1/3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뜻도 되는거거든. 문제는... 저 여자는 어딘가... 어딘가 조금...'

  남자는 자신에게 드는 생각을 털어버리며 영희를 조준했다. 영희의 사악한... 그러나 왠지 애처로워 보이는 얼굴을.
  

  탕..

  남자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 * *


  "피슝."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순간 영희의 다른 쪽 어깨마저 관통했다. 영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총탄이 박혀 온 것은 알아차린듯 총탄이 박힌 반대 방향으로 쓰러졌다. 영희는 곧 몸을 부르르르 떨더니 그 자리에서 숨 쉬는 것을 멈췄다. 잇따라 발사된 총알이 영희의 가슴과 무릎에 각각 박혔다.


  영희의 몸 곁으로 새빨간 피가 번져나왔다......





  영희의 곁으로 한 소녀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영희에게로 다가왔다.

  "...헉..."

  영희의 처참한 모습..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더 끔찍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다른 한 시신. 소녀는 아직 영희가 살아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영희를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가고 싶다고 느꼈다. 비록 숨을 쉬지는 않았지만, 이건 마치 일부러 멈춘 듯한 느낌이...

  "쿨럭, 쿨럭"

  영희가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하며 땅에서 몸부림을 쳤다. 소녀는 깜짝 놀라 영희를 업어들고 소녀는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는 남자를 찾았다. 이 여자를 싣고 가기 위해서. 남자가 영희를 붙잡고 끙끙거리는 소녀를 보고 달려왔다.

  "은영아."

  두사람은 영희를 붙잡고 옮기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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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겨우 10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문을 살짝 열고 누군가를 불렀다. 형이라고 불린 남자는 20대 중반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는 흘러 내려온 안경을 다시 올리고는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등 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다.
그의 책상, 아니 수술대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아주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살아있다고 알수 있는 건 겨우 숨쉬는 가슴의 움직임이었다. 이미 큰 상처가 난 옆구리에는 구더기들이 가득 했다.

"성현아, 이건."
"읽은 적 있어! 형의 서재에, 그 두꺼운 갈색 책! 살아있는 생물에 파리가 알을 낳고 살아있는 조직을 먹고 구더기들이 자란다는 myiasis! 우리말로는 구더기증!"
"성현이는 오히려 이 형보다 똑똑하구나."

그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소년은 단지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은 수술대 위에 올려진 구더기들에 먹히고 있는 고양이와는 매우 이상하게 어울렸다.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살짝 웃다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소년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구더기증이 아냐."
"그러면 뭐야?"

소년이 그에게 물었다. 그는 고양이의 다리에 있는 구더기들을 제거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몇 이론이 성공했어. 이 고양이는 죽었었어. 그래서 구더기가 생긴 건 당연한거야. 하지만, 다시 살아났어."
"죽었다가 살아난거야?"
"응..."

소년은 전혀 그 잔인한 의미를 모른다는 듯이 그를 매우 존경의 눈으로 쳐다봤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제 죽은 것들을 살려 낼 수 있는 거야?"
"아직은 아냐..."

그는 소년에게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순간 수술대 위의 고양이는 발악인지 발작인지 모르게 몸을 심하게 떨었다. 그러더니 가슴의 두근거림도 사라졌다.

"이유도 모르게 이렇게 스스로 죽으니까."
"형..."

소년은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런 손을 그가 잡고는 소년에게 말했다.

"12번째 실험이야. 다들 살아났지만, 이렇게 죽었어.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그는 말을 꺼내기를 두려워 한 것인지 소년에게 말하기가 두려웠던 것인지 눈을 감고는 말을 이었다.

"마치 너무 괴로워서 '죽여줘.'라고 말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어."




"형!"

안조민은 건물 2층에 누워있다가 깨어났다. 온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하지만, 왼쪽 손만 땀이 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3층으로 올라갔다. 추기(추기물의 준말로, 송장이 썩으면서 나오는 물)의 냄새에 3층은 보통 사람이 버틸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조민은 마치 전혀 냄새를 맡지 못 한다는 듯 아무렇게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을 뒤졌다.
3층은 마치 영안실처럼 0도에 가까운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체들의 부패 속도만 떨어졌을 뿐, 냄새까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시체들도 다양했다. 어떤 시체는 하얀 천까지 덮혀있었지만, 어떤 시체는 토막까지 나 있는데다가 하얀 천은 커녕 죽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마치 바닥에 던져진 듯이 널부러져 있었다.

"이건..."

널부러져 있는 시체만 뒤지던 안조민은 한 시체를 보고는 입을 열고 말았다. 처음에는 시체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자 만들어 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모양은 사람과 흡사했지만 가짜 시체위의 피는 인간의 것보다 심하게 점성이 떨어졌었다. 안조민은 그 것을 조금 손에 묻혀 맛을 봤다.

"밀가루와 식용 색소잖아."

안조민은 그 가짜 시체도 뒤졌다. 1시간 정도 흘렀을까? 최대한 시체들의 원래 모습을 놔둔 채로 겨우 6구 정도 뒤졌다. 그로 인해 얻은 건 전혀 쓸모 없는 12만 2천 6백원―만원 짜리 11장과 오천원짜리 1장, 천원짜리 7장이었다. 그리고 백원짜리 동전 6개―과 피로 인해서 날이 무뎌진 단검과 긴 목검이었다. 그리고 전혀 소용 없을 것 같은 AA형 건전지 충전기, 유통기간이 아슬아슬한 복숭아 통조림 정도였다. 안조민은 겨우 얻은 성과에 실망했다. 그리고는 하얀 천이 덮힌 시체 하나를 뒤져보기로 다짐했다.
그 시체는 예상외로 가짜 시체였다. 뒤졌던 시체 중 하나같이 모양은 인간, 아니 시체와 매우 흡사하나 피 역시 점성이 떨어지는 밀가루와 식용 색소였다. 그 가짜 시체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오히려 저번에 뒤졌던 6개의 시체보다 더 성과가 좋았다.

'젠장, 오히려 천을 덮어 논 시체라 손을 댔을 줄 알고 안 건드렸는데, 더 좋은 게 나오잖아. 의사 였던 역할이라는 것만 알고 이 시체의 당사자의 소지품을 예상해서 넣은 탓인지 상태는 최상이야.'

그 가짜 시체가 안고 있던 진료 가방에서는 기막히는 것들이 나왔다. 주사기(물론, 주사기는 병 예방상 일회용으로 써야 하지만) 6개와 이렇게까지는 보관하지 않는 큰 통에 담겨 있는 tranquilizer라는 라벨이 붙은 시약병과 청진기, 메스 3개(크기는 각자 달랐다. 제일 큰 것은 보통 성인의 손목에서 팔꿈치 까지였지만 가장 작은 것은 겨우 검지 손가락만 했다. 크기가 중간의 것은 그 두개의 중간 정도의 크기였다.) 그리고 무거운 진료 가방에서 나온 예상치 못 한 것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부려져 있는 83개의 탄환(바닥에 있던 모든 탄환은 93개였는데, 10개는 이미 구부러지거나 모양이 변해 사용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과 그 탄환을 이용해 쏘는 권총(리볼버 였는데, 겨우 손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매우 깨끗했다.)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탄환으로는 불가능 하고 탄창(보충용 탄환을 넣어두는 통)이 없는 자동권총(이 것은 리볼버보다는 크기가 컸지만 손에 들고 다니는데 문제 없는 무게와 크기 였다.)이 있었다.
안조민은 만족 스러운 듯 진료 가방을 그만 뒤지고 가짜 시체의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는 역시 진료 가방과 맞춘 듯 진료 가방에 없던 자동 권총의 총알이 가득 찬 탄창 2개를 얻었다.



"젠장할! 도대체 여기는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정재훈의 옷에는 아직 피가 남아 있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듯 mp3의 음량을 최대로 올렸다. 하지만, 그의 가장 친애하는 동료―현재 상황으로 그에게는 mp3는 동료 이상이었다.―는 숨을 헐떡였다. 건전지 표시는 이미 깜빡이고 있었다. 일주일씩이나, 버틴 것도 대단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재훈의 이성은 날카로워 졌다. 그는 알아 들으면 오히려 욕도 안했는데 얼굴이 붉어질 만한 심한 욕을 해댔다.
건물들을 돌아다니며 옷을 빨았지만, 피는 지워지지 않았다. 비에 의해 옷에 피가 번지지는 않았지만,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남긴 자국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살인 치고는 전문 킬러 수준으로 해냈지만, 시체 처리는 아주 어설펐다. 겨우 옆에 있는 물건들로 가리는 수준 일 뿐.

"아, 기분 나뻐! 여자애도 아니지만, 일주일 씩이나 한 목욕이 겨우 비로 세차같이 하다니!"

그닥 목욕에 신경 쓸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정재훈은 농담을 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옆에서 그 농담에 웃어주지 않았다. 그는 뭔 일이 있을지도 모른 채 안조민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성현아, 일로 와봐."

겨우 7살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에게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이 손짓했다. 소년은 그런 남자 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혀서는 자신이 읽던 두꺼운 책을 보여줬다. 한자와 이해 못 할 영어들―일상적인 영어보다는 학명에 가까운 긴 단어들―이 가득한 책을 보여주며 책의 한 부분을 가르켰다.

"현재 그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이 죽으면 발작을 일으키는데, 많은 전쟁 영웅들은 자신이 죽였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발작을 일으키는 부분에 후유증을 앓는 경우도 많다고 적혀 있어."
"으음, 잘 모르겠어!"

남자 아이는 한문이 가득한 책을 보면서 머리 아프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살짝 웃어줬다. 그리고는 다시 책을 몇 장 넘기고는 책을 읽어줬다.

"tranquilizer, 진정제. 많은 종류가 있으며 2500종류가 있으며 실제로 쓰이는 종류는 60종이다. tranquilizer 중에는 투여하면 마약 증상을 보이는 류도 있고, 이 종류들의 상품명이 다양해서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형은 이걸 이해 할 수 있는 거야?"
"글쎄, 단지..."

소년은 약간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진정제라면 죽음의 순장을 연장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여기 아무도 없어?"

정재훈은 안조민이 있는 건물 앞에서 큰 소리를 쳤다. 안조민은 물건들을 정렬하다가, 누군가가 왔다는 것에 놀랐다. 아니, 누군가가 와서는 8번째 손님으로 처음으로 누군가가 없냐고 물었던 것이다. 물론 그 전에 7명은 최소한 하반신을 잃었다. 6번째 손님이 가장 오래 버텼는데 비명만 2분 정도 지르다가 죽었다. 안조민은 리볼버에 6개의 탄환을 넣고는 오른손에 들고 나왔다.
안조민은 2층에서 내려와 두꺼운 철문을 열었다. 건물 문 앞에는 정재훈이 서있었다. 정재훈을 보고는 안조민은 별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정재훈은 안조민의 모습에 좀 놀랬다.
물론 그가 175cm에 해동 검도로 몸이 단련되어 있는 편이라 그럴지 모르지만, 남자로 보이나 자기 또래 처럼 보이는 얼굴에 겨우 키가 165cm도 안되어 보이는 녀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녀석은 여태껏 생각했던 사람과는 틀렸다. 보통 누군가 죽일지도 모른 다는 공포에 질린 녀석들은 눈에 다크서클이 심했고, 음식을 잘 섭취하지 못 해 말랐다기 보다는 거의 뼈만 남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안조민은 약간 마른 체격에 오히려 잘 잔듯 눈이 부어있었다.

"아, 여기 살아? 혹시 참가자?"
"그런데, 초면부터 반말인가요?"

정재훈은 안조민의 등장에 약간 기운이 빠졌다. 아직 그가 오른손을 뒤로 숨기고 있어서 인지 모르지만, 저런 녀석 쯤은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야, 이 쪽이 나이가 많아 보이니까."
"키가 작고 동안이기는 하지만, 나이가지고 유세떠는 것 같아 싫기도 하지만... 23살 이예요."
"이렇게 사람하고 어설프게 대화 나누기도 오랜만이다."

정재훈은 오히려 차분차분 말하는 안조민에 최소한의 경계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건물에 발을 내밀려고 하자 안조민이 그의 발근처를 쐈다. 정재훈은 안조민의 행동에 놀랬다. 하지만, 곧바로 싸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안조민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거기 실패가 쓰러졌나요?"

안조민의 말에 정재훈은 자신이 발을 내밀려고 했던 곳을 봤다. 총탄은 자신의 발이 아닌 발 앞의 실패를 쓰러트렸다. 안조민은 총에 안전장치를 다시 하고는 주머니에 넣고는 말했다.

"날카로운 실이 있으니까, 들어올 때는 조심하세요."

그러더니 안조민은 등을 보이고는 2층에 올라갔다. 정재훈은 그런 안조민의 행동에 1분 정도 머뭇거리다가 건물에 들어섰다. 말대로 바닥에는 날카로운 실들이 있었다. 그가 1층 계단에 발을 내밀자 안조민이 다시 내려와 철문 쪽의 실패를 당겼다. 그러자 총에 맞아 쓰러져 있던 문쪽의 실패가 일어났다.



"이, 이건 뭐야?"

정재훈은 2층에 올라와서 약간은 놀랬다. 안조민이 옆 건물에서 훔쳐온 비상 식량들은 오히려 영양분이 가득한 식단을 꾸밀만큼 많았고, 그가 시체를 뒤져서 얻은 물건들도 가관이었다. 안조민은 그에게 식량들 중 아직 멀쩡한 딱딱한 빵 하나를 건냈다. 정재훈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자 안조민이 빵의 일부를 뜯으서 먹었다. 그러자, 정재훈이 안조민이 건낸 빵을 먹었다.

"혼자인거야? 몇몇 녀석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던거 같던데."
"혼자죠, 일주일째 여기에만 있었으니까요."

안조민은 물건들을 다시 분류하면서 말했다. 정재훈은 안조민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혼자인거야? 1층에 함정 장치가 잘되어 있었지만, 혼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설명을 들었겠지만, A급들은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어디있는지 다 아니까요."
"다 알아도 혼자선... 뭐라고?"

정재훈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안조민은 무딘 단검은 벽에 문지르면서 말했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심장의 파멸, 즉 이 도시를 계획한 사람 중 하나예요. 바보같은 스텝들은 그 계획안에 따라 아주 철저히 만들었어요. 거의 모든 건물에는 비상 식량이 있어요. 이 건물만 제외하고는."
"그러니까 네가 이 프로그램의 작가라는 거야?"
"뭐, 그렇죠."
"아아, 아주 잘나신 분이 있었군. 근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뭐죠?"

안조민은 벽에 단검을 문지르다가 정재훈의 질문에 멈췄다. 정재훈도 먹던 빵을 내려놓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째서 날 살려준거지? 그대로 놔뒀으면 그 실에 죽었을 텐데."
"...처음이니까요."

안조민의 대단에 정재훈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안조민은 살짝 웃고는 말했다.

"여태껏 8명이 왔어요. 그 8명중 유일하게 누구 없냐고 물어봤던 사람이니까, 예의상 살렸죠."
"단지, 그것 때문이라는 거야? 지금 난 널 죽일 수도 있... 아아아아악!"

정재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친애하는 동료가 서거했기때문이었다. 그는 당황한 듯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더니 mp3의 건전지를 빼내서는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고 했다. 그 때, 안조민이 건전지 충전기를 내밀었다.

"AA형이라면 4층에서 충전이 가능해요."
"아? 아! 고마워!"

자신이 어쩐 처지인가 보다는 mp3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 앞선 정재훈이었다. 그는 계단으로 올라가다가 3층을 쳐다봤다. 순간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엄청난 시체들, 그리고 그 냄새. 버티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안조민은 정재훈의 생각을 읽은 건지 간단히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한게 아니니까 빨리 충전이나 하지 않아요?"

안조민의 말에 마치 최면에 걸렸던 듯 멍했던 정재훈이 정신을 차렸다. 그러더니 4층에 올라갔다. 4층에는 이상한 기계와 테이프들이 가득했지만, 콘센트를 찾고는 건전지를 충전했다. 하지만, 오히려 운이 좋은 건지 AA형 건전지를 찾아서 mp3에 넣었다. 건전지는 전혀 쓰인 적이 없는지 mp3는 잘 돌아갔다. 정재훈은 패닉 상태에서 벗어났다.



"헤에, 그러니까 네 생각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녀석들이 뭉쳐 다니는 것이 한심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녀석'이라는 표현을 쓴 기억이 없는데요."

어느새 안정을 찾은 정재훈과 안조민은 2층에 앉아서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었던 양 말을 했다. 단지, 이상한 것은 정재훈이 키가 커서 더 나이가 많아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23세의 안조민과 17세의 정재훈이었는데 23세의 안조민이 존대말을 하고 17세의 정재훈이 반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아무런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모은 아이템들이 중요하기 때문―저에게는 언제든 손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기지만―에 그들 입장에서는 여럿이 다니는 게 안전할 지도 모르지만, 한 명만 배신을 해도 곧바로 무너져요."
"오히려, 긴박한 상황이니까 배신을 안하지 않을까요?"
"긴박한 상황이니까, 배신을 하는 거야,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배신을 할 이유도 없잖아."
"말이 되기는 하지만... 근데 언제까지 제 식량을 먹고 계실 거죠?"
"어?"

정재훈은 안조민이 모아둔 물건보다는 식량들을 계속 먹고 있었다. 이미 그가 먹은 식량만 해도 팔만한 바게트 4개에 1L의 식수 한 통, 지금 먹고 있는 딸기맛 요플레까지만 해도 안조민, 아니 이 상황에서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것이었기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어. 일주일동안 겨우 인간답게 먹은 건 가짜 맥주일 뿐이라고."
"술은 단순히 썩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예요."
"에에, 그래? 근데 여기에는 기호 식품이라고는 없나?"
"이런 거 말인가요?"

안조민은 2개의 담배갑을 내밀었다. '환타지아'와 '던힐 탑 리프'였다. 둘 다 비싼 담배 축에 속했다. 정재훈은 두 담배를 받아 들고는 '던힌 탑 리프'를 하나 물었다. 물론, 그에게 담배는 처음이지만 솔직히 그의 심정은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데 치워버리겠어'라는 거였다. 그가 불을 찾다가 안조민이 모은 물건 중 라이타로 보이는 것에 손을 대려고 하자, 안조민의 그 물건을 먼저 뺏어서 쥐었다.

"헤, 비흡연자라도 된다는 거야?"
"죽기 싫다는 거죠."
"한 대 피우는 거 옆에 있다고 안 죽어."
"아뇨, 잘 못하면 죽어요."

그러더니 그는 무딘 단검으로 한쪽 바닥을 찢었다. 그 안에는 이상한 푸대들이 가득했다. 정재훈은 '이게 뭐'라는 시선으로 봤다. 안조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 건물만 수도 시설이 없는 줄 아세요?"
"알리가, 당신이 작가라면 당신이 알거 아니야."
"이 것들이 폭약이기 때문이죠."
"뭐?"

정재훈은 왜 이렇게 위험한 곳에 있는지 안조민을 봤다.

"설정상 이유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미끼'로 이 건물이 존재 했죠. 폭발로 사람들을 끌어 당긴다. 하지만,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않는 이유는?"
"최소한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직은 '바보 같이' 죽은 사람은 없어요."
"이봐, 내가 바보같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거기까지는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안조민은 정재훈을 살펴봤다. 그러고는 이제 안조민이 정재훈에게 묻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잘 살아남았군요."
"어. 아, 내 소개를 안했네."
"아뇨, 이름이 정재훈이라는 것 정도 알고 있으면 됬죠."
"에?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4층에 이상한 기계 중에는 TV살인쇼가 나오는 기계도 있어요. 잘 하면 스텝들과 연락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시도는 아직 안 하고 있어요."
"그래?"
"...혹시 팀원이 있나요?"
"아니, 없어."
"그렇다면 이 쪽과 같이 있는 건 어때요."
"싫어, 겨우 160cm의 비실비실한 녀석을 뭘 믿고."

정재훈은 안조민의 요청에 거절했다. 그러자 안조민이 살짝 웃고는 말했다. 안조민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머리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 머리 안에는 모든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안조민이 목검을 정재훈에게 던졌다. 그리고 동맹이 무언 속에 성립되었는지, 자동 권총과 2개의 탄창 역시 그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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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여기는 수도시설이 없어서 물이 부족하다고?"

"씻을 물은 커녕 마실물도 없는게 현실입니다."

"..."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양치질이라도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어보니까 물이 안된단다.. 이런 개 같은 일이..

"그럼, 식수는 어떻게구했는데?"

"요 앞에 가면 개천이 하나있던데, 거기서 떠오시면 될거에요."

".... 그런물 마셔도 살긴 살어?"

"죽지는 않죠. 풍토병이나..."

"알았어. 그거라도 뭐 마시지. 기다려."

나는 그리고는 2L 생수병 3개를 들고 나가기로 하였다. 일단 먹을게 있더라도 물이 없으면 죽는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잠깐. 당신의 생명은 들고 가셔야죠."

"...?"

타악

목검. 그렇군. 아무리 여기가 안전해도 아무런 호신용 무기가 없으면 나는 위험하다. 일단 목검과 권총을 들고 나가기로 하였다.

" 휴우... "

다행히도 개천은 깨끗한 편이였다. 먹고 죽지는 않을 정도로... 그런데 갑자기 불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잠깐.. 이렇게 깨끗한 편이면 다른 참가자들도 마시러 올거잖아..?"

그러자 갑자기 진짜 인기척이 있었던듯...? 나는 옆에있던 언덕으로 뛰어올라갔다.

'.. 여기서 지켜보자.'

그러자 갑자기 어떤 군모를 쓴 군인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바지를 내려서 소변을 보았다.

"저자식.. 총도 없잖아. 녀석이 생명을 들고가라더니..."

그제서야 나는 이 목검의 소중함을 알았다.

"이야아아아아앗!!"

차캉

"뭐..뭐냐 네녀석은!!"

체엣. 녀석의 몸에 가려서 못봤는데 검이 하나 허리춤에 차여있었다.

"그런 장난감으로 나를 죽이려고해?"

그렇다. 녀석의 검은 햇빛에 반사되는 광을 뽐내며 빛이 안나는 나의 목검을 위압감으로 누르고 있었다.

"저녀석이 조금만 검에 힘을줘서 목검을 공격한다면, 목검은 잘릴것이다.."

꿀꺽

겨우로 얻은 목검이다. 여기서 잃기는 싫었다. 빌어먹을.. 목검을 버린다고 해도 저 검을 뺏을확률이 있는것도 아니다.

"크카카카 !! 목검따위로 사람을 죽일수 있다고 생각했냐? 보아라!! 나의 이 엄청난 검술을!!"

쉬익 샤악 휘리릭         타앙

"커억!!"

"...설치지마."

겨우 무기로 앞선다고 나를 죽이지 않은게 네녀석의 실수다. 나도 잠시 목검에 한눈이 팔려서 권총이 있다는 것을 잊었었어.

"크...크하하. 좋아. 일단 엄청난 초특급 레어아이템을 손에 들어오게 되었군."

그러나 mp3 이녀석은 나를 축하해주지 않는지 긴박한 음악만 흐르고 있었다.

"흐음.. 이 얼마나 멋진 광채인가?"

하여튼 간에 개천 하류에서 물을 뜨던 참가자들은 물마시기 힘들겠는걸?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다시 걸었다.



" .... 엄청난 수확품이군요."

" 그렇지? 이 광채를봐!! 멋지지않냐? 내가생각해도 말이야.."

"그걸 한번 휘둘러 보세요."

"...?"

갑자기 안조민은 그 검을 휘둘러 보라고 하였다. 그게 무슨소리야...?

"야. 그게 무슨.."

"휘둘러 보세요."

"치잇. 알았어."

휘이익!  퍼어억

"...!! 뭐하는거야!! 너 오른손 베인거 아니야?"

안조민은 갑자기 앞으로 오더니 오른팔로 나의 검을 막았다. 이자식아. 이건 목검이 아니라 진검이라는 말이다!!

".... 멍든것 말고는 상처가 없군요."

"..!"

뭐..뭐야. 그러고 보니까 아까 내가 기습할때도 목검에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목검보다는 타격치를 더 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역시 사람 죽이기는 힘들겠군요."

"그.. 그럴수가. 이건 뭐야?"

"레벨 2의 무기. 만화코스프레 아이템. - 바람의 검심 역날검 -.. 이쯤될까요?"

"....."

뭐야.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메이지 유신 어쩌구가 되라는 거야?

"하지만, 목검보다 타격치는 훨씬 높을거에요."

"... 그렇지만 충격이 너무 크단말이다.."

믿었던 검마저 나를... 크윽..

"아. 그렇군. 대신..."

"...?"

나는 왼손에 목검을 쥐고 오른손으로 역날검을 쥐어보였다.

"어때? 폼나?"

"이도류군요. 그렇게 폼은 안나지만.."

"그게 무슨소리야? 이게 얼마나 폼나는 검법인데!!"

"... 검이 짝짝이.."

크윽. 역시 검이 문제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깐 또 역날검이 타격치가 훨씬 높아서 좋다며..

"자. 일단 약속한 물이다."

"...? 안드세요?"

"나는 이 역날검이 얼마나 쓸모가 있다는걸 보여주러 가겠어."

"... 조심해서 가세요. 만약 여기가 다른 사람에게 점령된다면..."

"그런일은 없을거야. 나도 잠시 정찰좀 간다는 거라고."


하아.. 말은 그렇게 하고 나왔으나, 내가 없을때 정말 공격받으면 완전 개되는거다. 일단 나의 후방지원... 이라고 할까. 하여튼 그런쪽은 안조민이 맡고있는데, 뒤통수를 맞으면 완전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거고, 그러면 나는 우승은 커녕 헤븐스 도어가 열려 천사들이 데리러 올것이다.

타아앙

"크악!'

.... 뭐야. 나한테 쏜게 아니었잖아. 반사신경적으로..

"잠깐. 그럼 저 위에 누가 있다는거야?"

조금 숨기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언덕. 나는 그곳으로 숨죽여 올라갔다. 만약 들키면 나는 대가리에 총박혀서 죽는거다. 하지만, 저번에 나를 쏜녀석이 저녀석이라면, 찢어 죽여버리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올라갔다.

"...! 어린애잖아.. 나의 또래정도 되려나..."

녀석은 혼자였다. 정말 동료가 없는 것일까. 원래 참가자들은 거의다 동료를 만들어서 같이 협력할거라고 예상했는데..

"... 저녀석이 나를 쐈을 확률은 70%.. 높은확률이다. 죽여버리자."

그러고는 조금더 앞으로 향했다. 들키면, 녀석의 저격총이 나의 대가리를 명중시킬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앞으로 더 걸었..

따악

"....!!"

"!!"

"제기라아아아알!!"

타타타타타타탁

철컥.

"... 뭐하는 녀석이냐. 여기까지 숨죽이고 올라오다니. 대단한 녀석이군."

"여기서 참가자들을 저격하고 있었군. 나를 공격한 녀석이 너냐"

우리는 권총을 하나씩 머리에 겨누고 있었다.

"... 네녀석의 이름은?"

" 원래 이름은 물어본 쪽에서 먼저 말하는게 예의다."

".... 나의 이름은 정재훈이라고 한다. 너의 이름은?"

"...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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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귀찮게 한다니까...”

민준 오빠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잘도 날 업고 렌이 마련해 준 아지트를 나서고 있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렌은 돌아오지 않았다. 싫은 생각이지만 누군가에게 살해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렌이 함정에 위치나 그런 것을 적어놓지 않았으면 정말 아지트에서 인육을 뜯어먹을 뻔 했군.”

“에?”

“시끄러.”

민준 오빠는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 민준 오빠도 대단한 거 같았다. 단지 렌이 기록해 둔 공책을 몇 번 보고 그대로 함정에 위치나 길을 파악하다니 말이다. 나라면 항상, 공책을 보면서 한발자국 내딛었을 텐데.

“어쨌든, 함정이 득실거리는 길은 벗어났고...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괜찮은 것을 먹을 거 같은데...”

민준 오빠의 말대로 렌의 동료가 설치했다는 야생동물 포획 함정에는 보기 만해도 큼직한 멧돼지가 발목에 덫이 걸려서 버둥대고 있었다.

“저 멧돼지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덫은 네 오른손목을 물어뜯었던 그 덫이야. 좀 개량해서 설치했더니, 멧돼지가 걸리네.”

생각을 정정해야겠다. 멧돼지를 붙잡고 있는 덫은 민준 오빠가 설치한 건가 보다.

“그런데 원래 한국에 저런 게가 살았나?”

민준 오빠가 가리키는 곳에는 역시 함정-구덩이-에 빠져 못 나가고 있는 수박만큼 큼직한 게가 있었다. 대충 이런 미친 쇼 프로에 납치되기 전에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 때 세 식구가 맛있게 먹었던 킹 크랩보다 더 크고 모양은 그러니까 집게가 상당히 크고, 배 뒤에 둥그스런 주머니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뭐 어쨌든 아무리 봐도 야자 게군. 듣기로는 상당히 비싼 놈이라는데... 뭐 상관없겠지. 하지만 역시 예린 넌, 그냥 아지트에 있는 것이 나을 뻔 했군.”

“내, 내가 들...”

“됐어. 네가 대신 멧돼지나 야자 게를 들고 갈 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널 업고 가야 하는 건 나잖아. 어차피 여기 함정이나 이런 것을 알고 있는 다른 참가자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 아지트에다 널 내려다 놓고, 다시 멧돼지랑 야자 게를 가져다 놓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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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에는 별의별 도구가 다 있었다. 무기도 있었지만-왠지 전부 직접 손으로 만든 것 같은 석궁이나 대나무 창 등이 있었다. 물론 수류탄이나 섬광탄이나 가스총은 제외하고- 각종 요리도구들-냄비(사이즈 별로 있었다), 프라이 팬, 휴대용 가스레인지(부탄가스는 비상시 무기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압력 밥솥, 나무를 깎아 만든 주걱과 숟가락과 젓가락, 식칼(비상시엔 무기로), 과일 깎는 용도의 칼(역시 비상시 무기로), 성냥, 라이터, 냉장고(아지트에는 전기도 들어온다. 수도도 나오지만, 수질은 별로 좋지 않아서 식수로 사용하려면 간이 정수기를 이용해야 했다), 주전자,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과 컵- 여하여간 난 주전자에 있는 뜨거운 물을 야자 게에 머리에다 부어주었다. 수박만한 야자 게는 뜨거운 물이 갑자기 부어져서 그런지 날뛰었다.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주니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야자 게를 수돗물로 씻은 뒤, 그대로 냄비 중에서 가장 큰 냄비에다 담았다. 용케도 잘도 냄비에 들어갔다. 물을 조금 부어 준 뒤 그 무거운 냄비를 간신히 벽돌로 쌓은 틀 위에 얹고 밑에 쌓아놓은 태울 것들에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냄비 뚜껑은 닫아놓은 채였다. 연기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달도 뜨지 않은 밤인데다가, 무엇보다도 아지트에는 연기를 걸러내기 때문에 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후우, 제길, 죽이는 게 차라리 쉬운 일이잖아.”

민준 오빠는 다른 의무로 피투성이가 된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다. 민준 오빠는 자신만만하게 멧돼지의 목을 따서 죽이는 것까지는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후에 멧돼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내고 등등, 아 그만 생각해야지. 동물을 잡는다는 게 그렇게 끔찍한 것이라는 것은... 하지만 덕분에 몇 일분 식량이 생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셈이다.

“야! 예린!! 너도 와서 이 멧돼지 토막 내는 것 좀 도와!!!”

만약 멧돼지라는 말이 빠졌다면, 누가 보면 살인을 하고 시체를 토막 내는 것인 줄 알겠다. 내가 생각해도 어쩐지 범죄 같았다. 아니지, 어차피 여기서는 범죄가 아니라 쇼겠지만.

“민준 오빠... 역시 못하겠어...”

“누가, 토막 내 달래!! 넌 그냥 토막 낸 고기를 냉장고에다 넣어!!”

민준 오빠의 말이 바뀌었다. 도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하지만 수술용 메스로 멧돼지의 시체(?)를 미친 듯이 토막 내고 있는 민준 오빠를 보니 왠지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민준 오빠의 말대로 나는 토막 낸 멧돼지 고기를 냉장고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아지트에는 맛있게 다 익어가는 야자 게의 향이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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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던 대로 정말 코코넛 맛이 나잖아.”
-실은 코코넛 따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민준. 그냥 주워들은 말을 꺼내는 것 뿐.-

민준 오빠는 익은 야자 게의 다리를 뜯어 껍질을 까서 속살을 맛보면서 말하였다. 나는 코코넛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다 익은 야자 게에서 나는 향을 맡아 보니 꽤 맛있을 것 같았다. 나도 야자 게의 다리 하나를 뜯어 껍질을 까서 한 입 먹어보았다.

“달고, 맛있다...”

맛있었다.
얼마 안 있어 수박만한 다 익은 야자 게는 곧 껍질만 남아 아지트의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다. 민준 오빠와 나는 그대로 아지트의 바닥에 드러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아지트에는 향이 남아 있었다.

“만약 이런 게 TV 같은데서 보았던 여름 캠프 같은 것인가?”

“저, 민준 오빠가 하는 말 잘 모르겠지만, TV-살인쇼가 아니라 이런 것이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수련회나 수학여행 같은 거 가본 적 없어? 난 태어날 때부터 쭉 고아라서 학교 따위 가보지를 못해서 말이야.”

민준 오빠의 말에 난 조금 놀랬다. 하지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제가 4살 때 아버지가 크게 사업에 실패하셔서, 그래서 빚을 갚느라 학교 같은 거 도중에 그만 두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는걸요. 밤낮, 빚을 갚고 엄마와 동생을 먹여 살리느라 쓸데없이 달리기만 잘하게 되었지만요. 헤, 이젠 달리기도 못하게 되었네요.”

“그렇군.”

민준 오빠와 나 사이의 대화는 한 동안 없었다.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 동안 민준 오빠와 나는 말없이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준 오빠... 저 뒷정리 하고 먼저 잘게요.”

나는 두 손으로 상체를 일으킨 뒤, 두 손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무릎을 맞대고 기어보았다.

“아윽...”

하지만 왼쪽 무릎이 살짝 닿은 것뿐인데도 끔찍한 아픔이 밀려왔다. 하긴 금방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는데 그게 금방 나을 리가 없지.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는 상처인데.

“앗?”

갑자기 민준 오빠가 날 두 손으로 안아들었다. 당황하는 내게 민준 오빠가 말하였다.

“뒷정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잠이나 자라고.”

그리고는 아지트 내에 -누가 만든-간이침대에다 나를 눕혔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주며 말하였다.

“그런데 키스해도 될까?”

“에?”

민준 오빠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 말을 하였다. 나는 민준 오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영 알 수 없었다. 거기다 밤이라서 어두웠기 때문에 민준 오빠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별거 아니야. 아무리 안전한 아지트라지만 언제 갑자기 어이없이 죽을지 어떻게 알아? 그래서 그 전에 키스는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려는 거야. TV나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같은 느낌이 들지 말이야.”

“에에!!”

민준 오빠는 내가 당황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얼굴을 내 앞에 가져다 대었다. 나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쪽.

하지만 입술에는 아무런 감촉이 없었다. 다만 이마에...

“누가 입술에 키스한다고 했냐? 제길, TV나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이잖아! 아무 느낌 안 나는데 뭘.”

민준 오빠는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왠지 부자연스러워보였다. 민준 오빠와 내게 남은 오른쪽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민준 오빠는 고개를 홱 돌리며 부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뒷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넌 그냥 푹 잠이나 자. 아까 있었던 일은 몽땅 잊어버려. 잊어버릴 수 없다면 내가 죽여 버리겠어!”

민준 오빠는 그렇게 무서운 말들만 골라서 소리쳤지만, 난 조용히 오른손을 이마에 갖다대보았다. 아직 따뜻한 민준 오빠의 흔적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오른손을 내 입술에 갖다 대 보았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뭘까 이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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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하아..."

지훈과 대통령은 간신히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 도시 한가운데 인공조성된 숲 속으로 꽤나 깊숙히 들어와버렸다.일단 그들은 전력 질주로 흐트러진 숨을 가다듬었다.대통령은 60대의 연장자이고,지훈은 렌의-지훈은 이름도 모르지만.- 시신때문에 두 사람 다 한번 흐트러진 숨을 가다듬기가 무척 힘들었다.

"젠장,이런 일도 늙으니까 못할짓이로구만."

대통령이 얼굴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지훈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대통령도 욕을 쓰나요 ? "

"대통령은 인간아닌가 ? 욕이야 누구든지 한두번은 해봤을걸. 안그래 ? "

대통령의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어조였다.지훈은 다시 한번 피식 웃으며,콧등을 문질렀다.렌의 시체에서 풍겨나오는 피비린내와 그의 땀냄새가 뒤범벅되어 참기 힘든 악취가 그의 콧속을 간지럽게 살짝 찌르는 듯 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려 숲을 둘러보고는 안심이 드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지훈이 주저앉자,대통령도 잇따라 주저앉았다.

"그런데 말야.이왕 이렇게 쫓기게 됬으니,어서 빨리 카메라를 찾는게 좋을걸.아니면 계속 놈들에게 쫓겨."

지훈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잠시 렌의 시체를 내려놓았다.그리고 자신의 몸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카메라를 찾기 시작하였다.

"...찾았다."

지훈은 검은색의 손톱만한 크기의 소형 카메라를 잡아 잠시 바라보다가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당신은 ?"

지훈이 짤막하게 물었다.

"난 이미 뗏어.네게 접근하기 전에."

지훈은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였다.

"내가 카메라를 뗀 걸 알았으니,놈들이 더 달라붙을걸요.한시라도 빨리 여길 떠야해요."

지훈이 일어서자,대통령의 얼굴은 싫은 기색이 역력했으나 지훈의 말이 옳았으므로,뭐라 대꾸할수도 없었다.

"...이 나이에 내가 뭐하는거람."

대통령은 몇시간만에 극과 극으로 바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고선 다시 뛸 준비를 하였다.


               ***

-사사삭

국방색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풀 숲속에서 숨어 숲속과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한 세상을 바라보았다.그 중 대장인자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현재 상황 이상 없음.작전 개시에 아무 문제 없음.현재 시각 A.M.4시 26분.작전 개시하겠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모두 알고 있는지,대장의 명령없이 일제히 풀숲에서 일어났다.대략 그 수가 40~50은 족히 될 듯 싶었다.

"자,작전 개시다!돌격 앞으로!"

대장이 힘차게 외치자,그들은 일제히 숲속에서,도시로 향했다.그들 뿐만이 아니었다.그들과 비슷한 숫자로 여러 풀 숲 속에서 일제히 나온 수십명의 군인들은,무언가의 목적을 가진채 묵묵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


-투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탁

커다란 광장이 여기저기서 일시불란하게 움직이는 소리와 총성이 한데 어우러져 난잡한 상황이 되었다.1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넓은 광장에서 수십명의 군인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방금 전 까지 서로 죽이려고 안달하던 그들은 공동의 적을 찾아 일시적인 휴전을 했다.그러나 이 날을 위해 철저히 훈련 받은 프로들을 그들같은 민간인들이 당해낼리없었다.시간이 갈수록 죽어나가는 것은 그들이었다.

"제길! 우린 아무것도 안 했는데,저 놈들 왜저래!"

그 중 한명이 기관총을 난사하다가 외쳤다.

"왜 이러는거야,개새끼들아! 니네가 원하는 대로 싸워주고 있잖아! "

"완전 전쟁터잖아,썅! 니미럴! "

그들은 대부분 이런식으로 욕설을 퍼부어 대며 엄폐물을 찾아 숨었다.그러나 욕설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군인들은 여전히 그들을 향해 소총을 쏘아댔다.

"그만해,씨발!"

검은 반팔티셔츠의 남자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군인들을 향해 권총을 쏘아댔다.이윽고 권총의 총탄이 바닥나고,총에서는 틱틱거리는 소리만 나게 되자,그는 수십명의 군인들의 표적이 되어 수많은 총알을 몸으로 받아내며 쓰러져갔다.
그 광경을 본 그들은 더욱더 두려움을 느끼며 마침내 엄폐물 뒤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콰쾅!

군인들은 엄폐물 뒤에 숨은 그들을 총으로 사살하는 것 보다 수류탄 투척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여기저기서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와 수류탄의 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동료들이 -군인들이 나타나기 전엔 적이었지만- 수류탄에 힘없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무기를 버리고 두 팔을 하늘 위로 들어올렸다.

"하,항복!! 살려줘!"

-타탕!

그러나 그의 말을 묵살되었다.그는 항복의 대답으로 이마에 총알이 뚫고 지나간 구멍을 받아냈다.
그의 죽음으로 항복도 소용없다는 것을 느낀 남은 생존자들은 황급히 그 자리를 뜨려 엄폐물에서 벗어나면 여지없이 사살 당했다.
그리고 몇 초 뒤,그 광장은 10여명의 참가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그야말로 붉은 광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들 중 한명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붉은 광장 작전 지역,All Clear!!"

----------------------------------------------------------------------------

  "영... 영희야... 희야..."


  꿈속에서 누가 영희를 간절하게 부르는 것 같았다. '영희'가 누구지?

  ...아... 그래, 내가 영희야...

  "영희야..."



  다음 순간 환한 빛이 자신의 망막으로 내리쬐이는 것을 느끼고 영희는 벌떡 일어섰다. "... ...?"

  곳곳이 쑤셔왔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이 영희를 엄습했다. 영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영희가 있던 곳은 한 어두침침한 지하실이었다. 영희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잠시 가만히 있자 고통에 적응한 영희는 주의를 둘러볼 기력을 얻었다.

  채광창이 영희의 머리 위에 하나. 채광창에서 빛이 들어와 지하실을 은은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영희가 방금전까지 누워있었던 침대가 옆에 있었고, 방의 중간에는 커다란 탁자가 하나 있었다. 영희는 탁자에 다가가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한번 쓸어보았다.
  ...무언가가 묻어났다. 음식...

  식탁으로 쓰이는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영희는 방을 나서려고 하다 순간 흠칫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있을 터인데... 그 사람에게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영희는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되돌아왔음을 문득 깨달았다.
  지금 영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감성도 이성도 아닌 영희 자신이었다.

  '...왠지, 정상적으로 돌아오는게 굉장히 오랜만인것 같아.'

  이성 상태에서 보이는 혼잡하고 난잡한 미래의 상들은 언제나 이성이나 감성 등 다른 정신상태가 끊어지고 영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끝이 났다. 그래서 영희는 지금 미래도 알 수 없고, 약간 잔인해지는 면이 있는 감성 상태에서처럼 총알을 피할 정도의 몸놀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물론 지성 상태에서처럼 냉정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어떻게 죽이면 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단순한 여자일 뿐이었다.
  영희는 채광창으로 먼지가 풀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채광창때문에 오히려 먼지가 더... 들어오네... 그나저나 나가서 인사를 하는게 좋지 않을까?

  영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일 영희가 지성 상태였더라면... 먼저 찾아내 살해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전환되었을테지만. 영희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영희는 돌리지도 않았는데 문 손잡이가 저절로 돌아가더니 영희의 눈 앞에서 휙 열렸다. 그리고 그 문 사이로 두 남녀가 들어왔다...

  "와, 역시 굉장한 미인이야."

  남자가 감탄하며 손을 맞잡고 비볐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한 여자애의 이마에 힘줄이 솓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오빠, 바람 피면 죽여버릴거야."



  "저 영희라는 여자는 정상이 아니다... 정신이 네개로 분열해 있지. 보통 다른 곳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어. 그 뿐만이 아냐. 저 여자는 초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이상한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대로 콘트롤 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자신의 미래를 과거와 혼합해 투시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영희를 일전에 총으로 저격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가 들고 있는 망원경에 영희가 있는 방이 채광창을 통해 비추어졌다.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착 달라붙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던 여자가 선글라스를 치켜올렸다.

  "초능력? 그런게 가능한가요?"
  "... ...저 영희라는 여자의 감성.이성.지성.그리고 본래의 상태... 이것들을 각각 분수로 표현하면 1/3, 1/3, 1/3. 그리고 +a... 이것을 합치면 1(그러니까 즉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 넘어.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초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봤자 인간... 너무 커다란 정신을 담을 수 없어서 그릇, 즉 정신을 여러조각으로 자른거군요."
  "그래. 어느정도만 주의하면 저 여자는 쉽게 해치울 수 있어. 게다가 심하게 다친 것 같으니까. 문제는 저기 영희라는 여자를 보호하는 저 남자랑 여자."
  "...제거 할까요?"

  여자가 물었다. 남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저...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영희가 갑자기 출현한 사람들로 인해 당황해 하며 자리를 비키려 하자 두 사람이 제지했다.

  "아뇨. 맘 편히 푹 쉬어요. 우리들... 연인이거든. 괜찮다면 그쪽도 우리 살림에 끼워줄 수 있어요."
  "... ...에..."

  영희가 머뭇거렸다.

  "괜찮아요. 아마도 여기는 안전해요. 식량이나 물은 제가 조달할테니..."

  영희가 계속 결정을 못 내리자 여자가 다가와서 생긋 웃으며 속삭였다.

  "오빠가 야한짓 못하게 제가 감시할게요."


  ...그리하여, 세명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 -

20화만 남앗는데 짤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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