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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Angel Feather

2005.10.01 05:25

갈가마스터 조회 수:112 추천:3

extra_vars1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상 
extra_vars2 025(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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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 8. 10 AM 2:00 인천 한국 나리어스 지부]

“ES Drive라... 큭큭. 잘도 이런 괴물 같은 걸 만들어냈군.”

아카드는 자신의 기체 모스베라토를 보며 기괴한 웃음을 흘겼다. 그는 피로 범벅이 된 듯한 자신의 애기(愛機)에게서 눈을 돌리며 옆에 서 있는 꼬마에게 눈을 돌렸다.

“안 그래? 괴물.”
“당신에게 괴물이라 불릴 이유가 없다 생각되는데요.”

나사렛은 핑크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녀는 아르쟈논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이 기괴한 남자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긴, 과거의 자신도 전 인류를 진화가 덜 된 호모 사피엔스라 부르며 경멸했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 어린 소녀가 듣기에 괴물이란 소리는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흥.”

아카드는 볼을 크게 부풀리는 나사렛의 모습에 코웃음을 흘리며 다시 모스베라토에게 초점을 맞췄다.

“ES Drive. 초 고압축 에너지 입자를 내부에서 끊임없이 생성하며 핵의 10배에 해당하는 효율과 에너지를 가진 꿈의 엔진.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 듯싶은데. 아닌가?”

나사렛은 모스베라토를 바라보던 눈을 내리깔며 신음을 흘렸다. 아카드는 입 끝을 날카롭게 끌어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바로 핵의 100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전부 개방할 수 없다는 거지. 폭주할 경우 제어할 수가 없으니까. 평소 사용할 수 있는 힘은 고작해야 10분의 1정도일까? 전 무기를 개방했을 때도 5분의 1 정도는 제어에 소비될 테고. 그래서 전(前 )모스베라토의 출력에 10배정도밖에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오지.”
“우웅....”

아카드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사렛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꿈의 엔진 ‘ES Drive'는 아카드가 지적한대로 그 막대한 에너지의 태반이 실제적으로 엔진의 제어에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엔진의 안전도를 확보했지만, 그 제어가 풀릴 경우에 대해선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만약 엔진이 폭주한다면? 생각하기 싫지만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마지막이 되리라는데 이견은 없었다. 나사렛은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끄응....”
“큭큭... 크하하하!”

아카드는 아무 말 없이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나사렛을 바라보다가 돌연 기괴하게 웃더니 그녀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헝클기 시작했다.

“꺄악! 이게 무슨 짓이야! 이 호모 사피....”

나사렛은 무의식중으로 과거 습관적으로 내뱉던 말을 멈추었다. 아카드의 손이 의외로 따듯했기 때문이었을까.

“큭큭큭. 걱정하지마라. 괴물.”

아카드는 헝클어진 나사렛의 머리에서 손을 떼곤 숙소로 향하며 자신감에 가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난 ‘진홍(眞紅)의 성기사’니까. 큭큭.”

나사렛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따스한 손길을 매만지며 멀어지는 아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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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 12. 15 PM 4:59 부산 해상 전투 공역]

- 어이! 듣고 있는 거야?

통신기 너머로 케이지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아카드는 킥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소리 지르지 마라 엔디미온의 매. 잘 알아들었으니.”
- 으음... 이놈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투인데?
“큭큭. 저 반쪽짜리 놈 때문에 네놈 같은 늙다리와 연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맘에 안들  뿐이다.”
- 느, 늙다리! 오냐! 너 오늘 격납고에서 보자!
“큭큭. 그럼 이따가 보도록 하지.”
- 그 말 잊지 마라! 오늘은 우리가 못 다한 승부를 내는 역사적인 날이 될 테니까!
“그 머리나 잘 간수하도록.”

파슝! 또 다시 쏟아지는 생체 판넬의 빔 소나기 공격에 잠시 쉬고 있던 모스베라토와 G-saber가 회피기동을 실시했다. 케이지는 갑자기 불안한 마음에 한마디 덧붙였다.

- 그럼 행운을 빈다! 아카드. 이상!
“큭큭. 바보 같은 놈.”

슈우웅! 아카드는 모니터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빔의 폭풍 사이에서 굳건히 서 있는 은빛 Astray Feather와 그 발아래 불타고 있는 수십 척의 함선들을 광기에 젖은 두 눈으로 노려보며 예의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좋아! 죽음! 죽음! 죽음! 그래 이게 바로 전쟁의 냄새지! 정말 그리운 향기야! 하하하!”





Angel Feather
제 025 화(上).

진홍(眞紅)의 불꽃






[2031. 12. 15 PM 5:00 부산 근방]

콰가가강! 새하얀 AF(Angel Feather)의 손 등에서 검처럼 뻗어 나온 새파란 불꽃이 검은 기체, SF(Seraphim Feather)의 왼쪽 땅을 불태워버리며 지나갔다. 슬쩍 옆으로 피한 SF가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예상과는 달리 SF의 반격은 없었다.

“으음...”

제르크는 신음을 흘렸다. 비록 AF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으나, 그는 AF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암을 처리하기 위해선 AF와 미자르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방어만 하는 것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받아라아!”

파아앗! SF가 AF의 공격을 피하는 순간, AF의 왼손이 활짝 펼쳐지며, 제네레이팅 아머를 한 점으로 응축해 에메랄드 빛 바리어를 형성해서 SF를 거칠게 밀쳐냈다.

“크윽! 제법이군!”

퍼펑! AF의 바리어와 SF의 제네레이팅 아머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강한 반발력을 일으켰고, 미처 방비를 못한 SF가 뒤로 튕겨나갔다. 그런 SF에게로 AF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아카라는 거의 비명과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윌 나이프를 휘둘렀다. 싸울 필요를 느끼진 못했지만, 생각 외로 날카로운 아카라의 공격에 위협을 느낀 제르크는 신음을 흘리며 엑스칼리버를 들어 AF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맞받아내며 리미피트 채널을 열었다.

『적을 착각하지 마라. 아카라 에르나. 이 이상 공격을 감행하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착각하는 건 당신이야!”

아슬아슬하게 검을 맞대고 있는 AF가 돌연 검에서 힘을 빼더니 SF의 옆구리에 발차기를 가했다.

콰각!

“큭!”

기습적인 발차기를 그대로 먹었으나 충격을 간신히 상쇄시키고 공중에 멈춰선 SF의 앞으로 사파이어 빛으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AF의 윌 나이프가 찔러왔다.

“전력을 다해! 그러지 않으면 난 당신을 평생 동안 저주할 테니까!”
“....!”

카가각! 제르크는 재빨리 엑스칼리버를 가로로 들어 윌 나이프의 칼끝을 막아 옆으로 흘려보냈고 곧바로 AF의 등허리를 향해 발차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발끝이 AF의 등에 닿기 바로 직전, AF가 순간적으로 날개에서 맹렬한 추진 에너지를 내뿜었고, 그 압력과 반발력으로 튕겨나간 AF와 SF의 사이에 커다란 공백이 생기게 됐다.

“.....”

잠시 숨 고를 틈이 생기자 SF에게 변화가 생겼다. 황금색의 날을 가진 엑스칼리버를 세로로 들어 심장을 가리는 독특한 기수식을 한 SF에서, 차분한 제르크 에르나의 음성이 리미피트 채널의 울림이 아닌 육성으로 들려왔다.

“네 각오, 알아들었다. 아카라 에르나. 이제 진짜로 상대해주지.”
“그래,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멈춰선 SF에게서 뿜어지는 살기를 느낀 아카라는 문득 잘려진 오른 팔을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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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찌감치 떨어진 건물 잔해 위. 핑크빛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소녀와 금발을 길게 기른 미녀가 한동안 움직일 줄 모르는 SF와 AF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나사렛과 파넬리아였다.

“꼭... 저렇게 싸워야만 하는 걸까.”

나사렛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곁엔 금발을 길게 기른 미녀 파넬리아가 있었고, 그녀는 쓰고 있던 검은 선글라스를 슬쩍 올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이것이 인간과 우리들... 아르쟈논의 숙명이겠죠. 나사렛님.”

파넬리아는 여전히 나사렛에게 경어를 쓰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경어를 쓰는 파넬리아 특유의 성격 탓이다, 가만히 멀리서 대치하고 있는 ‘그릇(Vessel)'들을 바라보던 나사렛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요 파넬리아. 저 둘이 싸운다면 이제 이곳은 안전한 거리가 못되니까.”
“..나사렛님을 먼저.”
“괜찮아요. 아직 내 몸 하나쯤은 지킬 수 있으니까요.”
“예...”

나사렛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 파넬리아가 머뭇거리며 가기를 주저하자, 나사렛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암이 사라지면... 우린 적이 되는 건가요? 저 둘 처럼?”
“....그건...”

파넬리아는 대답을 주저했다. 인간과 아르쟈논은 생리적으로 공존을 할 수 없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인 나사렛에게서 정을 느끼는 그녀였기에 대답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암이 사라지면 이들은 적이 될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 아르쟈논을 증오하는 인간과 진화를 멈춘 인간을 경멸하는 아르쟈논. 그들은 물과 기름과도 같았다. 섞으려야 섞을 수 없는...
대답하지 못하는 파넬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사렛은 이윽고 활짝 웃음 지으며 말했다.

“난 믿어요.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거라고.”
“...저도 믿고 싶어졌네요. 그럼 잘 있어요. 나사렛.”

나사렛의 말을 곱씹던 파넬리아가 이윽고 보일 듯 말듯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 뒤, 바로 텔레포트로 사라져버렸다.

“....그럼 나도 가봐야겠지. 마마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빌딩 아래로 걸음을 옮기던 나사렛이 문득 붉게 물든 하늘 저편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알렉산더 안데르센이 타고 있는 은색 Astray Feather였다. ‘거짓된 생명의 열매’를 장착한 AF의 양산형 특화기. 그건 지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물건이었다.

“진홍의 성기사. 당신들이 반드시 해내줄 거라 믿어요.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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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 12. 15 PM 5:30 부산 해상 전투 공역]

『꺄-아하하하하하! 춤춰라! 춤춰라! 춤춰라!』

알렉산더의 귀기어린 목소리가 아카드와 케이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리미피트 채널을 이용한 이 고문에 케이지는 벌써부터 얼굴 표정이 기괴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아! 더럽게 징징거리네! 빌어먹을 자식!”
- 퀘엑!
“아! 짜증나! 이제 어지간히 좀 해라!”

퉁, 투둥! 뒤쪽에서 접근하던 박쥐형태의 생체 판넬을 양 허리 스커트에 달린 레일건으로 요격한 뒤 케이지는 몸을 비틀었다. 사방에서 벌떼처럼 밀려드는 ‘건 패밀리어’들을 지겹다는 듯이 바라보며 라이플을 연사하던 케이지의 귓가에 익숙한 울림이 들려왔다.

삑삑삑! 레이더에 고에너지가 잡혔다는 경고음! 바로 기다리고 있던 소리였다.

“좋아! 반격 시작이다!”

케이지의 생각과 같은지 아카드의 모스베라토도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은색의 Astray Feather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파지지직... 안데르센은 흉부의 고집적 에너지 편향포 ‘게이볼그’로 몰리는 충만한 기운에 쉽게 가라앉지 않을 흥분을 느꼈다. 몸 전체에서 두근두근 거리는 떨림이 느껴졌고, 곧 이어 노을이 짙게 깔리고 있는 하늘 너머 이쪽으로 다가오는 적색의 기체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몸을 케루빔과 함께 두 동강낸 저주받을 호모 사피엔스.

“꺄-아하하하하! 사라져버려라! 끼야하하하하!”

쿠구궁! 은색 Astray Feather의 흉부에 몰려있던 새하얀 빛무리가 이윽고 굵직한 빛의 소용돌이로 변해 적색의 기체, 모스베라토를 향해 내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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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르릉!

멀리 보이는 은색 괴물의 흉부에서 눈에 띨 정도로 거대한 에너지가 보였다. 그러나 아카드는 비릿한 광소(狂笑)를 풍길 뿐, 피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의 머리에 아까 케이지와 짠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단 한 번. 그래.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 뒤는 네게 달렸다. 아카드. 놈에게 유럽 전선에서 베히모스를 쓰러트린 우리의 저력을 보여준다!’

“큭큭. 건방진 소리를 하다니.”

아카드가 눈을 빛내는 순간! 거대한 에너지 빔이 일직선으로 그에게 방사되었다.

“케이지이이이이이이이이!”
“우오오오오오-!”

게이볼그의 방향을 예측하고 있던 케이지의 G-saber가 빔과 모스베라토의 사이에 껴들었다. 그와 동시에 G-saber의 윙에 달린 4기의 마더 판넬 전기(全機)가 미사일처럼 발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4기의 마더 판넬은 16기의 작은 판넬로 분리되었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곤 각자 AR(Aegis reflecter)를 펼치며 일정한 구형 진을 형성하였다.

“아-카-드!”

쿠오오오옹! 아군 적군 없이 일직선상의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리는 에너지 소용돌이가 쇄도하기 직전, 모스베라토가 부스터를 최고 속도로 끌어올리며 G-saber의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

아무 말도 없었다.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이 아카드는 나아갔고, 케이지는 방어진을 펼쳤다.

“...”

쿠와아아악! 간발의 차로 모스베라토의 옆을 스쳐 지나간 에너지 소용돌이가 G-saber가 펼친 AR에 적중했다.

퍼엉!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빔이 직각으로 꺾이는 순간, G-saber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판넬들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구형 AR 필드를 형성했고, 필드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하전 입자들이 그 주황빛 구체안에서 초당 수만 번을 왕복하며 G-saber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황색 AR 필드는 무너지지 않았다.

“키..키긱! 뭐, 뭐지!”

안데르센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빔이 구속되었다! 아무리 신경을 집중해서 빔을 움직여보아도 그것들은 주황빛 구체에 갇혀 전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이, 이건 대체...!”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다. 애초에 목표로 정했던 적색의 기체가 어느새 꺼내든 거대한 검 아론다이트 슈발츠를 길게 눕힌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론다이트 슈발츠 검신의 표면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플라즈마 입자 때문에 마치 기다란 붉은 선이 그에게로 그어져 오는 것만 같았다.

“저, 저 압력을 견뎌낸단 말인가?! 인간 주제에?!”

어림잡아 마하 7! 붉은 꼬리를 길게 매달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공기를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모스베라토의 모습에 마치 사신을 대면한 듯한 공포가 느껴졌다.

“히, 히이익! 히!히!히! 두, 두 번이나 당하진 않는다!”

은색의 Astray feather의 흉부에서 뻗어 나오던 빛이 멈추었다. 그와 함께 케이지의 G-saber가 엉망이 된 몸으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바다로 추락해갔다. 통제력을 잃은 판넬들은 이미 바다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모니터의 폭발 덕에 이마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는 케이지의 두 눈에 붉은 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모스베라토의 모습이 들어왔다.

“헤, 헹... 멋진 장면은 전부 저놈 차지군. 하지만...”

케이지는 힘겹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내리 꽂으며 말했다.

“..부탁한다. 진홍의 성기사... 응?”

쒜에엑! 갑자기 화면 너머로 검은 물체가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날아가는 모습이 잡혔다.

“이, 이건!”

케이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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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캬아아아!”

안데르센은 불꽃의 검을 내뿜고 있는 네 개의 팔을 펼쳤다. 게이볼그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저 악마를 어떻게 해서든 저지해야만 했다.

파바바밧! 게이볼그의 빛에 맞아 소멸한 ‘건 패밀리어’들 대신 새로운 생체 판넬들이 은색 Astray feather 등 뒤에서 쏟아져 나왔다.

- 퀘엑!

생체 판넬들은 안데르센과 모스베라토 사이에 벽을 이루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는 모스베라토를 향해 빔의 화망을 형성했다. 아카드의 얼굴은 이미 귀기로 얼룩져 옹기종기 모여 벽을 이루는 모습이 가소롭게 보일 뿐이었다.

“크하하하하하! 발악해라! 더! 더! 그것이 너의 마지막이 될 지니!”

모스베라토의 AR에 가로막힌 바이오 빔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고, 모스베라토가 ‘건 패밀리어’들로 이루어진 생체 벽을 질주하자, 공기의 벽을 밀어내는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주변을 둘러싼 수천의 ‘건 패밀리어’들을 갈기갈기 찢으며 뻗어나갔다.

“히! 히! 히! 히!”

부웅! 안데르센은 이성이 마비됐는지 마구잡이로 불꽃 검을 휘둘렀다.

“뒈져라, 괴물!”

피슛! 모스베라토의 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지나가자, Astray feather의 오른손 하나가 검은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지는 해에 붉게 물든 바다로 추락했다. ES Drive가 뿜어내는 특수한 입자에 의해 재생이 멈추자,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욱 짙어졌다.

“흐아아아아악!”
“크하하하! 울부짖어라 괴물! 체크 메이트다!”

안데르센의 비명이 커져감과 동시에 모스베라토가 붉게 타오르는 아론다이트 슈발츠를 길게 뉘어 Astray feather의 품 안으로 찔러 들어갔다. 한계 이상으로 에너지를 주입한 아론다이트 슈발츠를 Astray feather의 중심에 박아 넣고, 넘쳐나는 ES Drive의 에너지를 체내에 주입한다. 그리고 아론다이트 슈발츠를 매개로 ES Drive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폭주시킨 뒤 이탈. 이것이 케이지와의 협공의 최종 단계였다.
ES Drive 에너지의 폭주는 확실히 위험하지만, 이런 식의 공격도 가능했다. 다만 그 강대한 에너지를 간신히 견뎌낼 수 있는 아론다이트 슈발츠는 버릴 수밖에 없게 되는 일격필살의 기술이었다.

실패하면 죽음 뿐.

하지만 그것도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서는 승리의 환희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어도 모스베라토의 뒤에서 난데없이 등장한 검은 물체만 아니었다면....

“뭣이...!”

덜컹! 아론다이트 슈발츠가 Astray feather의 복부에 박히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검은 날개의 Astray feather가 모스베라토에게 몸통박치기를 감행했다. SF의 롱기누스의 심판에 맞아 하체가 원자단위로 분해되어 내장같은 것을 쏟아낼 정도로 위태위태한 상태였으나 특유의 강력한 재생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것도 체크 메이트를 눈앞에 둔 이 절묘한 시점에!

“큭! 개새끼주제에!”

부웅! 모스베라토가 떨어지는 와중에 몸을 돌리며 오른쪽 어깨에서 빔 토마호크를 꺼내들어 검은 Astray feather의 등을 찍어버렸다.

- 케엑!

보랏빛 피와 비명을 흩뿌리는 Astray feather였지만, 모스베라토의 몸을 부둥켜안은 자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칫!”

순간 아카드의 눈에 바다 위에 여전히 떠 있는 함선이 들어왔다. 상부 갑판이 모조리 불타 없어졌지만, 여전히 바다에 떠 있는 항공모함이었다. 아카드는 재빨리 모스베라토의 자세를 바로잡아 착지 준비를 했다.
쿠궁! 자세를 제어한 모스베라토가 항공모함에 힘차게 착지했고 그 순간 악착같이 붙어 있던 Astray feather가 손을 놓았다. 그 찰나의 순간 모스베라토는 그대로 갑판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상공에선 흉부에서 빛을 뿜어내는 은색의 Astray feather가 기다리고 있었다.

“크큭. 내 운은 여기까지군.”

이 거리에선 반드시 직격타가 온다. 게다가 자유자재로 꺾이는 빔을 어떻게 막아야 한단 말인가. 케이지가 말했듯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죽어라! 인간!』

번쩍! Astray feather의 게이볼그가 빛을 뿜었다. 의외로 아카드는 덤덤하게 그 빛을 바라볼 뿐이었다.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받아주겠다’라는 강한 집념과 광기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AR을 정면에 집결시키며 기분 좋다는 듯 외쳤다.

“와라! 하하하하!”

퍼벙! 공중과 바다 속에서 수십 수백 번 꺾이며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 작렬한 게이볼그의 빔은 모스베라토의 주변을 한참동안이나 헤집어놓은 뒤 사라졌다. 노을에 반사된 물안개가 아름답게 빛났지만, 인간을 위한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하악. 하악. 끼아아악! 호모 사피엔스 주제에!”

모스베라토에게 베인 오른 손은 부글대기만 할뿐 아직도 재생되지 않고 있었다. 나사렛이 만든 이상한 에너지원. 그것은 Astray feather의 재생력에 상당히 강력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분명했다.

『의외로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고전했군. 알렉산더.』

그의 머릿속 리미피트 채널에서 중후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데르센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그제야 지금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모두 깨달을 수 있었다.

『파키라! 네 놈이었군. 방금 그 검은 놈! 건방진 짓을 하다니!』
『쿠후훗. 호모 사피엔스들의 생각이야 뻔하지. 게다가 네놈도 꽤 힘들어 하는 것 같았고. 혹시나 해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놈을 보냈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데르센은 두 눈을 부릅뜨며 파키라 장로의 말을 곱씹었다.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던 파키라 장로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피카드가 죽었다. 제르크.. 그 놈이 나타나서 다 망쳐버렸다!』
『제르크!』

제르크의 이름을 들은 안데르센의 눈에 멀리 보이는 부산의 해안선이 보였다. 여기저기 불꽃이 피어오르고 완전 엉망으로 변해버려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부산의 상공에서 푸른 빛과 붉은 빛이 연신 번뜩이며 하늘에 화려한 불꽃놀이를 수놓고 있었다. 그 빛에서 익숙한 사이코 키네시스의 파장이 느껴졌다. 바로 집행자 제르크와 SF의 강력한 정신파의 흐름이었다.

“제르크! 킥킥. 제르크란 말이지? 킥킥킥킥.”
『지금 당장 돌아와라, 안데르센. 호모 사피엔스들 따위에게 휘둘린 네놈으로선 역부족이다.』
『닥쳐! 노친네. 내가 갈 곳은 오직 하나! 바로 전장이다! 캬하하하하하!』
『이젠 뇌까지 엉망이 되었는가.. 역시나 불량품이로군. 네놈은. 그럼 거기에서 뒈져라. 네놈을 대신할 자들은 널리고 널렸으니.』

그 말을 끝으로 파키라 장로와의 리미피트 채널 수신은 끊어졌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제르크를 만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비록 호모 사피엔스 놈들 때문에 기분을 잡쳤지만, 제르크와의 전투를 상상하자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은빛의 Astray feather를 서서히 부산 쪽으로 움직였다. 그 때 부산 방향에서 유유히 떠 있는 새하얀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앙?”

노을을 등진 새하얀 PT의 모습에 알렉산더는 얼굴을 구겼다. 몸체 여기저기가 검게 그을려지고, 여기저기가 깨져나간 처참한 모습의 기체. 바로 케이지의 G-saber였다.

케이지는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틈도 없이 기체의 밸런스 조정을 하고 있었다. 피가 눈에 스며들어 찡그리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후련해보였다.

“어디보자. 왼쪽 다리의 스러스터(Thruster)는 출력이 30%. 오른쪽 자세제어 프로그램은 완전 오류투성이군. 판넬은 다 떨어졌고. 이제 남은 건 몸뚱이 뿐인가? 칫. 아카드 놈 기껏 마련해준 기회를..”

철컥! G-saber의 양 팔 하완부에서 튕겨 나온 빔 샤벨 한 쌍이 G-saber의 양손에 쥐어졌다. 케이지는 두 눈을 부릅뜨곤 출력을 최대로 올리며 외쳤다.

“하지만! 쫀심이 있지! 네놈을 그냥 보내지는 않겠다!”

콰우우웅! 노을을 등진 백색의 기사가 붉은 빛으로 불타오르는 두 정의 빔 샤벨을 들고 맹렬하게 돌진했다.

“킥! 하찮은 인간 따위가 뭘 할 수 있다는 게냐!”

Astray feather의 등 뒤에서 ‘건 패밀리어’들이 벌떼처럼 뛰쳐나왔다. 그리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한 치의 틈도 없는 빔의 소나기를 G-saber를 향해 내리꽂았다.

“으아아아아아!”

그러나 G-saber는 빔의 폭풍우를 정면에서 뚫고 지나갔다. AR의 사각으로 뚫고 들어온 빔에 어깨 장갑이 날아가고, 왼쪽 다리가 정강이 째 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saber는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안데르센은 짜증과 함께 경악이 떠올랐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인간이란 놈들은 왜 이다지도 저돌적이고 무식한가!

『도대체 네 놈들은 뭐냐! 뭔데 이렇게 승산도 없는 싸움에 무식하게 달려드냔 말이다!』
“아아! 네놈이 마음에 안 들 뿐이야!”

퍼퍼퍼퍽! G-saber가 휘두른 빔 샤벨에 전방을 가로막은 수기의 ‘건 패밀리어’들이 터져나갔다. 아카드의 모스베라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음속을 넘어선 G-saber의 앞엔 진공의 막이 펼쳐져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장막을 뚫고 들어간 G-saber가 어느새 하나로 합친 빔 샤벨을 들곤 안데르센에게로 달려들었다.

“뒈져라아!”
“인간 따위가!”

콰앙! 케이지의 기도는 안데르센이 휘두른 붉은 불꽃에 처참하게 뭉개져버렸다. 자동적으로 AR이 발동하여 두 동강나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충격에 의해 부서진 파츠들이 조각조각 떨어지며 G-saber 본연의 주 골격(메인프레임)이 드러났다. 프레임은 이미 오버히트상태인지 내부에 흐르는 ES Drive의 강렬한 에너지가 체외로 방전되어 희미한 아지랑이를 내뿜고 있었다.

“우라야아아아아!”

케이지는 순식간에 기체를 돌려 Astray feather를 향해 양 어깨부에 장착되어 있는 ‘임펄스 캐논’을 발사했다.

“크억!”

굉장히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빔은 Astray feather의 왼쪽 팔 하나만을 태우고 지나갔다. 역시나 기체의 손상이 심해 조준이 1mm가량 어긋나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억지로 발사한 만큼 G-saber의 손상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큭! 젠장!”

퍼벙! 왼쪽 어깨에 달린 임펄스 캐논이 장갑 째 폭발하며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케이지는 폭발하는 모니터 파편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도 기합을 잔뜩 내지르며 빔 샤벨을 찔러 들어갈 뿐이었다. 안데르센은 오른 손에서 불타오르는 불꽃의 검을 휘둘러 G-saber를 날려버렸다.
알렉산더 안데르센, 그는 분노와 경악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네 놈! 네 놈! 이 호모 사피엔스 놈! 언제까지나 날 성가시게 할 생각이냐! 적당히 뒈져라!』

콰직!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G-saber에게 달려든 Astray feather가 깍지 낀 두 손으로 G-saber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건 패밀리어’ 수십 기가 수직으로 낙하하는 G-saber를 향해 입자 빔의 소나기를 내리부으며 G-saber를 공격했다.

“크윽!”

퍼펑! G-saber 등을 강타한 두 줄기의 빔에 의해 낙하하던 G-saber가 공중에서 잠시 멈추었고 그 틈을 타 안데르센의 Astray feather가 불꽃의 검을 휘두르며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하지만 케이지는 이제 피할 수 없었다. G-saber의 전신은 이미 충격으로 마비되었고, 메인 부스터까지 당해버렸기 때문이다.

케이지는 김새는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천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흐흥, 나도 아카드도 이런 식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건가? 킥. 하긴 우리 같은 놈들에겐 이런 것도 어울릴지 모르지.’

그는 아카드와 마찬가지로 놀랍도록 담담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여겼고 그 날이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후우...”

그는 눈을 감았다.

- 크큭, 멍청한 자식.
“.......?!”

촤아악! 돌연 아래 쪽 바다로부터 시꺼먼 물체가 물살을 터뜨리며 솟구쳐 올라왔다. 물체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G-saber를 스치고 지나가 Astray feather를 향해 부닥쳐 올라왔다.

“뭐, 뭣이!”

알렉산더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혹을 금치 못하며 Astray feather를 급정지 시켰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알렉산더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퍼걱! 검은 물체는 순식간에 Astray feather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었고, Astray feather와 같이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검은 물체는 그 상태로 Astray feather의 얼굴을 움켜쥐곤 공중에서 한바퀴 제비를 돌아 그것의 등으로 돌아간 뒤 오른손을 목덜미를 향해 그대로 박아 넣었다.

“우햐아아아악!”

주먹이 쑤시고 들어간 Astray feather의 목덜미와 입에서 석유같이 거무튀튀한 액체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검은 물체... 그것은 바로 검게 그을린 모스베라토였다! 케이지는 만면에 경악과 웃음을 떠올리며 모스베라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피처럼 붉었던 전신은 숯처럼 검게 그을렸고, 멋지게 휘날리던 망토도 걸레가 되어 꽤나 처참한 모습이었으나, 아카드가 돌아왔다!

“크큭..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모스베라토의 안에서 아카드의 광기에 젖은 기괴한 웃음소리가 공기 중으로 뻗어나갔다.

“엔디미온의 매. 과거의 명성이 아깝군. 네놈의 칭호는 개나 줘버려야겠구나. 크큭큭”
“흥! 죽다만 놈이 참 말이 많군. 지옥에서 돌아오니 어때.”

케이지는 짐짓 거슬린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피어오르고 있는 웃음까지 지워주진 못했다.

“지옥이라. 킥. 별거 아니더군. 한번 가볼만 한 곳이야. 크크큭.”
“그래, 그렇군. 갈만 하단 말이지?”

잠시간의 침묵. 케이지는 알고 있었다. 이 이상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엉망이 된 몸으로 아카드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케이지는 어느새 빼어든 담배를 입가에 물곤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약속은 지킬 수 있겠냐?”
“크큭. 먼저 간 마스터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순 없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먼저 가서 기다려라. 곧 따라갈테니.”
“키킥.. 네놈이 올 곳은 아니다. 패배한 개새끼는 적당히 찌그러져 있으면 돼.”

부우웅! 모스베라토의 몸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AR 필드의 독특한 반응 빛. 그것은 Astray feather의 몸을 뚫고 있는 모스베라토의 팔을 타고 Astray feather의 몸에도 펼쳐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끼야아아아아!』

전신을 감싼 AR 필드의 모습을 바라보는 안데르센의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안데르센은 발버둥을 치며 목덜미를 꿰뚫고 있는 모스베라토를 연신 두드렸으나, 모스베라토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 게이볼그를 날리는 것도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AR 필드에 반사된 빔이 전신을 난자할 테니까!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떠, 떨어져! 떨어져어어어어!』
“크, 크크... 크하하하하! 좋아! 이거야! 놀랍도록 그리운 향취! 진정한 죽음의 내음! 그래, 찾았다! 찾았어! 이곳이 바로 내가 죽을 장소다! 하하하하!”

콰드득! 모스베라토가 자신의 왼쪽 흉갑을 거칠게 잡아 뜯었다. 그리고 그 안에 황금빛으로 불타오르는 ES Drive의 엔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잘 봐라! 이것이 이 나, ‘진홍의 성기사’가 울리는 진혼곡이다!”
- 퀘에에에에엑!

번쩍! 순간 ES Drive 엔진의 황금빛 에너지가 AR 필드를 극도로 팽창시키며 작열했다. 태양의 수십배에 이르는 고밀도 고압축 고온의 열량이 그들을 감싼 AR 필드를 수백 배로 팽창시키며 불꽃을 토해냈고, 안쪽에 있는 모스베라토와 Astray feather를 순식간에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 퀘에에에에에에!

Astray feather가 내장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을 토해내며 손끝 발끝부터 시작해 처절한 재로 화해갔다.
찰나의 시간. 3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아카드는 콕피트에 몸을 뉘운 채 점점 꺼져가는 화면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5초. 모스베라토의 ES Drive를 폭주시키고 콕피트와 몸체가 버틸 수 있는 최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카드에게 있어선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크큭. 이걸로 마지막이군.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말야.’

- 아카드.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너머. 새 하얀 빛 속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는 빛 속에 서 있는 고귀한 여성을 알고 있었다.

단정하게 손질된 고귀한 블론드 색의 머리카락.
고풍스럽고 부드러운 드레스.
최고급 사파이어처럼 차갑지만 온화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

아카드는 광기가 사라진 노을 빛 눈동자 가득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나.”

아카드는 추억이 가득한 눈으로 티아리스트 M 아이라의 두 눈을 마주했다.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단 한 명의 여인.
여왕이라는 신분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고귀한 여신.

여신은 아카드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이제 쉬시렵니까. 아카드.

“아아. 멍청이 새대가리가 남았으니 이것도 괜찮겠지.”

티아리스트 M 아이라는 예전에 딱 한번 보여주었던 온화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최고의 선물. 지상을 떠나 먼 여행을 떠나려 하는 자신에게 보여주는 최후의 만찬이다.

- 편히 쉬세요. 진홍의 성기사. 나의 용맹스러운 기사시여.

아카드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Yes. yes.... My master..”

뒤 이어 백지처럼 새하얀 불꽃이 콕피트를 뚫고 아카드의 몸을 삼켜버렸다.

.
.
.

바다 위에 떠오른 또 하나의 태양은 5초가 지난 다음에야 사라졌다. 팽창한 AR 필드가 서서히 줄어들고 모든 것이 사라진 뒤.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하게 물결쳤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하얀 재로 화해가는 모스베라토의 전신을 바라보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케이지의 눈가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케이지는 웃었다. 웬일인지 웃음이 흘러 넘쳤다.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뜨거웠다.

진홍의 빛으로 타들어가던 노을도 이제는 완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
.
.

[2031. 12. 15 PM 6:00 부산 해상 전투 공역 전투 종료.]

모스베라토 소실.
은색의 Astray feather에게 임시적으로 부여된 CX-999 코드 자동 소멸.



BGM: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 OST 中 8번 트랙 Even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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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불태웠어... OTL

으므하하하하하!~~~ 겔겔겔~ 하편은 이번 주 일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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