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DESTINY」 運命의 系統樹

2005.12.28 07:03

갈가마스터 조회 수:84 추천:2

extra_vars1 귀환 
extra_vars2 19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5년 전 프란시스 평원.

“크악!”

쿠당탕. 3미터가 넘는 라이플에 핼버드를 달아놓은 기묘한 무기가 꼴사납게 난도질당한 주인의 몸뚱이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수백 명도 더 베어온 무구가 이제는 검붉은 피에 섞여 꼴사납게 부러지며 땅에 박힌다. 땅에 대자로 누워 연신 피를 토해내는 핏덩이, 가로드는 오랜 세월 함께 해온 파트너를 안타까운 눈짓으로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허나 이미 모든 기운이 다한 건지, 그는 힘없이 고개를 땅에 떨군다.

“…….”

가로드를 난도질한 청년-프레이저는 여전히 공허한 눈초리로 가로드를 내려다본다. 프레이저는 문득 자신의 구멍 뚫린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몸을 버려가며 달려든 가로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찌른 창을 손으로 막았기에 생긴 상처…. 어떠한 무기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건만, 생명을 담은 무딘 창은 그의 갑옷을 뚫고 큰 상처를 입혔다. 프레이저는 손목부분의 혈도를 짚어 출혈을 막은 뒤 다시 가로드를 바라보며 저음으로 중얼거린다.

“상처를 냈는가…. ‘쿤’조차 건들이지 못한 내 몸에….”

쿤. 프레이저는 과거 자신의 사부이자 전 12제였던 이의 이름을 이렇듯 건방지게 인용하며 가로드에게로 다가갔다.

“쿨럭!”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전신이 마비되고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있는 가로드로선 그걸 저지할 수 없었다. 이제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가로드의 몸에 프레이저가 손을 가져간다.

- 파밧!

그러나 프레이저는 가로드의 숨통을 끊는 것 대신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가로드의 몸 이곳저곳을 찍어 출혈을 막았고, 가로드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던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어, 어….”

‘어째서?’라고 묻고 싶었으나 이제 입술을 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가 궁금해하는 것이 뭔지 아는 프레이저가 홀로 중얼거렸다.

“단순한 변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프레이저는 가로드에게 등을 돌린 뒤 전장의 연기가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가 전장의 안개로 사라지기 전, 낮게 울리는 공허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흥미를 잃은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너 같은 이를 기다리는 것뿐일지도….”

전과는 달리 약간의 흥분을 띠고 있는 그 목소리는 가로드의 귓가에 수백, 수천 번 되풀이됐다.





「DESTINY」
運命의 系統樹
第 19夜. 붉은 밤 그리고 잊혀진 자의 귀환







“하하하하! 자 불타라! 불타올라라, 배덕의 도시여!”

불바다가 되어버린 쉴레이드 시 광장. 그곳엔 백발이 삐죽하게 솟아 있는 성질 더럽게 생긴 한 남자가 빛나는 금니들을 씨익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바로 블라디미르 카미코프, 일명 ‘최후의 장군’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후하하하!”
- 파칫!

그가 미친 듯이 웃으며 손을 한번 휘두르자 백광으로 빛나는 수만 볼트의 번개가 수십, 수백 줄기로 갈라지며 병사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전격에 꿰뚫린 병사들은 산채로 통구이가 되어 시꺼먼 재로 산화해갔다.

“그만둬!”

- 쿠와악!

갑자기 날카로운 노성과 함께 빛조차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구체가 블라디미르 카미코프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나 카미코프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움켜줬다가 검은 구체를 향해 펼쳤고, 그의 손가락 끝에서 발사된 백광의 전격이 검은 구체와 부딪히더니 공멸하며 사라져 버렸다.

“…….”

검은 구체를 날린 유이 R 세이비어, 신생 프리벤터 특무부대 데스티니의 대장이자 그림자의 여제라고 불리는 그녀는 두 눈에 이채를 표하며 카미코프를 바라봤다.

“휘-익. 왔는가, 세이비어.”

카미코프는 하얀 털로 칼라가 장식된 가죽코트를 휘날리며 몸을 돌려 유이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흉한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그 안면에서 풍겨 나오는 불쾌한 기운은 주변 공기를 싸늘하게 얼리며 유이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늦었군. 네 년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좀이 쑤셔서 죽는 줄 알았다고….”
“흥, 저번에 다친 팔, 다리는 잘 붙어있나 모르겠군. 최후의 장군.”

유이가 조소하자, 카미코프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에 낀 가죽 장갑 끝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누런 스파크가 자신도 모르게 파칫하며 올라왔다.

“킥킥. 오히려 난 지금 꽤나 만족하고 있다. 그동안 그 둔하고 느린 걸 어떻게 달고 다녔는지 모르겠더군. 하지만 말야… 아직도 잘려나간 팔 다리에서 가려움이 느껴져. 왜 그런지 아나?”
“흥,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정 뭐하면 긁어보지 그래? 그 팔뚝으로.”

주름 잡힌 카미코프의 얼굴에 싸늘한 냉기가 거침없이 올라왔다.

“안 그래도 네 년의 육신을 무참히 태워버려야 이 가려움증이 해소될 것 같아서 이렇게 친히 납시셨다. 반갑지? 앙? 그림자의 여제.”
“네 염소수염 낯짝은 아무리 봐도 반갑지 않아. 아니, 구역질이 밀려올 정도군.”
“킥킥킥. 키햐햐, 캬하하하하하하하!”

번쩍! 미친듯이 웃는 카미코프의 양 손에서 솟구친 무지막지한 백광이 망막을 새하얗게 물들이며 유이에게로 다가갔다.

.
.
.

한편, 시 외곽의 작은 신전. 신전에서 가장 높은 첨탑 위에 검은 옷을 맵시있게 차려 입은 남자가 위태롭게 서 있다.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곱슬머리가 흑단처럼 윤기 있게 빛나고 있는 이 남자는, 신전 아래 서로를 물어뜯으며 꿈틀대고 있는 시체들을 바라보면서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삐죽하게 솟아나온 송곳니가 불빛에 반사되어 도드라지게 빛났다.

“캬-하. 드디어 왔는가.”

그의 진홍빛 두 눈동자가 시체들의 앞에 나타난 한 남자를 바라보며 흉물스럽게 빛났다. 진홍색 망토에 휘감긴 풀 플레이트 아머를 몸에 두른 남자, 바로 모스베라토 카나드였다.

“하, 하하. 하하하하. 베에에에-리이이이-도오오오-트으으으!”

시체들의 뒤에 우뚝 선 첨탑 위에 유유히 서 있는 남자, 살인귀 베리도트의 모습을 확인한 카나드가 지옥 밑바닥같은 목소리로 크게 웃는다. 그리곤 손에든 검은색과 은색의 권총 중 검은색의 권총을 들어 베리도트를 겨누며 소리친다.

“하․하․하․하, 이 꼴이 뭐냐 베리도트. 지옥 밑바닥을 구경하고 오더니 이젠 시체들의 왕 노릇이냐?”
“후훗, 네 녀석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말이지. 저 불쌍한 종자들은 단지 심심풀이 대상이었을 뿐이야.”

- 펑!

돌연 흑색의 권총이 대포같은 소리를 내며 베리도트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러나 총알에 반쯤 날아가 버린 머리가 붉은 기가 도는 까마귀들 수십 마리로 나눠지더니 마치 부서지는 파편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가 다시 한곳으로 몰려들어 베리도트의 몸을 재구성했다.

- 푸드득, 푸드득.

아직도 날아다니고 있는 까마귀들에 둘러싸여 흉물스럽게 미소 짓는 베리도트가 카나드를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슬슬 티타임을 가져볼까.”

- 쾅! 콰광!

갑자기 이전과는 규모가 다른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려오며 제법 멀리 떨어진 도시 중심부에서 시뻘건 불꽃이 뿜어져 올라왔다. 그러자 언제나 광기서린 웃음만 짓던 카나드의 얼굴이 놀랍도록 굳어져 갔다. 그곳이 귀빈들이 머무는 호텔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지금 카나드의 머릿속엔 미소 짓는 소녀의 얼굴 외에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었다.

바로 아카네였다.

- 꺄아아아아!
“큭!”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귀곡성을 울리며 베리도트의 손톱이 카나드를 핥기고 지나갔다. 카나드는 재빨리 찢어진 몸을 재구성하고 총을 들어 베리도트의 검은 몸을 향해 연달아 갈겨댔다.

- 펑! 펑! 펑! 펑!

그러나 베리도트는 가볍게 비웃어줄 뿐이었다.

“훗.”

파악! 순간적으로 베리도트의 몸이 수천마리의 검붉은 까마귀와 수억 마리의 흡혈거미로 변해 하늘과 땅으로 흩어져버린다.

“이거이거, 천하의 카나드께서 무슨 바람이 부셨나? 싸우는 도중에 한 눈을 다 팔고?”

정신없이 시체를 뜯어먹는 좀비들 틈새에서 몸을 재구성한 베리도트는 조소하며 말했다. 그러자 카나드의 웃음소리가 더욱 기괴하고 흉포하게 메아리치며 울려왔다.

“큭큭, 큭큭큭, 크하하하! 못 본 사이 많이 영악해졌군 베리도트. 그 정도로 내가 무섭던가?”

- 키릭키릭키릭.

카나드의 몸 안에서 기괴한 소리와 함께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쟈칼의 형상이 드러났다. 마치 지옥을 한 몸 안에 담고 있는 듯, 카나드의 몸속에서 어지러운 형상으로 꿈틀거리던 늑대-쟈칼들이 돌연 수백 개의 시뻘건 눈을 뜨고 한꺼번에 뛰쳐나왔다.

“그렇다면 전보다 더한 공포를 네 놈에게 선사해주마!”

- 크르릉! 컹! 컹!

붉게 물든 밤하늘 아래, 지상에서 가장 악질인 두 괴물이 주변을 피와 육질의 바다로 만들며 처절한 싸움을 시작했다.

.
.
.

콰앙!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호텔 유리창이 모조리 깨어져 나갔다.

“위험해!”

날카로운 유리창 파편이 방에 있던 일행을 덮치려하자, 아카네가 손을 뻗어 커다란 방어막을 생성하였다. 파편들과 열 폭풍이 방안을 헤집고 지나가자 방어막 안에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주변이 온통 쑥대밭으로 변해버린다.

"후우."

폭풍이 잠잠해지자, 아카네가 한숨을 내쉬며 방어막을 걷어 내렸다. 준비할 틈도 없이 일순간에 커다란 방어막을 펼친 결과였다.

“엘, 괜찮아?”
“으, 으응. 역시 한동안 학원을 떠나있었더니 몸이 많이 둔해졌네.”

시네프스 왕국의 공주, 엘스틴…(이하 생략)은 머리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호기 있게 일어섰다. 아직까지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는 시녀들과는 대조적이었다. 아카네는 그런 엘의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웃음 지었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총성과 폭음에 다시 얼굴을 굳히며 창가 옆에 몸을 기대고 섰다. 한 200미터가량 떨어진 호텔 입구 쪽에서 근위 소대가 바리케이트에 몸을 숨기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 덜컹!

“공주님! 적입니다! 서둘러 피하실 채비를!”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리며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근위대 소속의 사관이 들이닥쳤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귀족 여성들은 응당 겁부터 집어먹기 마련이건만 엘은 당당한 왕족의 품위를 잃지 않고 명을 내렸다.

“적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됩니까?”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서둘러주십시오! 지금 1차 저지선이 뚫리기 일보직전입니다!”
“가까운 곳에 연락을 취할만한 다른 아르마다(해병대)는 없습니까? 프리벤터는요?”
“없습니다! 다들 도시 곳곳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저스티스 게릴라 놈들을 잡기 위해 나간 상태입니다! 카나드 각하의 헬싱부대도 게릴라부대 때문에 이곳으로 오는 것이 늦어지고 있답니다! 열심히 연락을 취하곤 있지만, 저지선이 뚫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놈들의 목적은 공주님이 분명합니다!”

긴박하게 말하는 사관의 말을 경청하던 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병사들을 방패로 삼고 도망가는 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쓰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앞장서세요.”
“예스, 마이 로드!”

사관을 따라 모두 문 밖으로 나간 그 순간,

- 촤르륵!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철퇴가 쇠사슬을 꼬리에 길게 매달고 사관의 머리를 수박처럼 으깨버리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피와 뇌수가 우수수 흩어지며 뒤따르던 엘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아….”

너무나 쉽게 사람이 죽어버려서일까, 아무도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탄성만 지르고 있을 때, 아카네가 엘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 질렀다.

“누구냐!”

자신도 바보 같다라고 생각하는 질문을 서슴없이 내뱉은 아카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방어막을 칠 준비를 취했다. 이 순간, 바로 이곳에, 그것도 나타나자마자 근위대 사관의 머리를 날려버린 자가 누군들 무슨 상관이랴.

“…….”

긴장하며 앞을 주시하는 아카네의 앞에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레인코트를 입은 거구의 남자와 붉은 머리의 단정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 중에 피 묻은 철퇴를 쥐고 있는 더벅머리 거구의 남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의에 검은 레인코트만 달랑 걸치고 있었고, 레인코트는 물론 셔츠에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차려 입은 적발의 남자는 목이 답답한 듯 넥타이를 자꾸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천지 차이처럼 느껴지는 둘 사이에서 유일한 공통점이란, 바로 오른쪽 팔에 차고 있는 완장뿐이었다. 두개의 번개가 교차하는 지점에 그려져 있는 흉측한 두개골의 문양.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가이아나 행성상에 단 하나뿐이었다.

“쉐발리어!”

아카네는 거칠게 적의를 드러내며 두 명의 사내를 째려보았다. 최후의 장군-카미코프의 최측근에서 친위대 역할을 맡고 있는 ‘쉐발리어’들은 둘 이상이 모이면 최강의 연계기를 펼치기로 유명한 조직이었고 지금의 아카네로서는 1대1이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벅찬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엘이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시녀들은 저들의 공격을 피할 수조차 없었다.

“휴우- 염동력인가. 골치 아픈데.”
“…….”

아카네를 알아본 붉은 머리의 쉐발리어가 여전히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거구의 쉐발리어는 그저 야수같은 두 눈동자로 아카네를 노려보기만 할뿐 다른 말은 일절하지 않았다. 그에게 달린 입은 숨을 내쉬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냥 갈 수도 없겠지? 드레이코.”

붉은 머리의 쉐발리어, ‘리히터’가 정신 사납게 만지작거리던 넥타이에서 손을 뗀 것은 바로 그 때쯤이었다.

“흡!”
- 촤르르르륵!

거구의 쉐발리어, ‘드레이코’의 손에 들려있던 거대한 철퇴가 힘찬 기합과 함께 굉음을 내뿜으며 아카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 챙그랑!

그 때 누군가 복도의 창문을 와장창 박살내며 들어왔다. 지저분한 망토를 뒤집어쓴 그 자(者)는 아카네를 향해 달려들던 철퇴와 드레이코 사이에 길게 늘어진 쇠사슬을 들고 있는 기다란 창대로 낚아채며 땅에 착지했다.

“쿠오오오오!”

리히터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순간적으로 비도를, 그리고 거구 드레이코가 쇠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철퇴를 추로, 창대를 중심점으로 하여 발생한 원심력에 의해 풍차처럼 빙글 돈 철퇴가 복도를 있는 대로 부수며 이 갑작스럽게 난입한 자에게 달려들었고, 리히터의 비도는 남는 공간 구석구석을 메워가며 이 건방진 난입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철퇴가 적을 향해 달려들고 그 때 생기는 빈틈에 비도를 날린다. 이것이 쉐발리어 내에서도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이 둘의 연계 공격이었다.

“흥!”

그러나 그 자는 철퇴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면서 들고 있는 창을 빙글빙글 돌려 쇠사슬을 있는대로 얽어가며 비도까지 쳐내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마침내 쇠사슬의 길이가 줄어들고 철퇴가 힘을 잃으며 축 늘어지자 난입자는 창을 잡아당겨 드레이코와 팽팽하게 맞섰다.

“…….”

190은 될 듯한 훤칠한 키의 마른 자. 그렇지만 드레이코와 맞대결을 할 만큼 체격이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레이코와 힘 대결을 하다니…. 바보가 아니면 시도하지 않을 짓이었다.

‘피할 수 있으면서 굳이 피하지 않고 막아서다니…. 게다가 이 녀석과 힘 대결을? 그건 뒤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단순히 바보라서? 아니야. 그렇다면 어째서?’

리히터는 뒤에 멍하니 서있는 아카네와 이 난입자를 번갈아 주시하며 난입자의 이 기괴한 행위의 목적을 찾아보았다. 아카네의 표정을 보아하니 프리벤터의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우오오오!”

그 때, 드레이코가 묵직한 고함을 지르며 철퇴를 잡아당겼고, 리히터는 갑자기 스쳐지나가는 불길한 예감에 소리쳤다.

“그만둬! 멍청한 자식!”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거한의 힘을 빌려 그들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난입자가 날아왔고, 갑자기 창이 구렁이처럼 쇠사슬의 틈새에서 스르륵 빠져나오자 드레이코가 자신의 힘을 못 이겨 뒤로 크게 휘청거렸다. 이 틈에 난입자는 리히터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칫!”

쉬쉭! 리히터의 비도가 3미터 남짓한 거리까지 접근한 난입자를 향해 기관총처럼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난입자는 천장을 발로 쳐서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땅에 착지한 다음, 창을 돌려 비도를 쳐내고 리히터를 향해 창을 빠르게 찔러왔다.

“헉!”

위협적으로 찔러 들어온 창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으나, 갑자기 창날의 중간부분에서 세 줄기의 날카로운 갈퀴손이 튀어나오더니 리히터의 어깨를 찔렀다.

“뭐, 뭐야! 이건!”

어깨에 깊숙이 박혀 들어간 갈퀴손에 신음을 흘릴 새도 없이 난입자는 올가미에 걸려든 동물처럼 리히터를 잡아 당겼고, 코앞까지 다가온 리히터의 복부에 가볍게 왼손을 가져갔다.

- 퍼벙!

그러자 맹렬한 폭음과 함께 리히터의 등짝이 찢어져나갔고, 그것으로도 모잘라 10여미터나 날아가더니 복도 끝에 처박혀버렸다.

“크아아아!”

리히터가 쓰러지고 때를 맞춰 드레이코의 철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갈퀴손을 다시 창으로 변형시킨 난입자는 드레이코가 무식하게 휘두른 철퇴를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이젠 낫처럼 변한 창을 거칠게 그러나 아름답게 휘둘렀다. 낫은 드레이코의 두터운 목을 너무나도 깔끔하게 베어버렸고, 드레이코의 머리는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고 휘청거리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멍청하게 바라보며 생을 마감했다.

“대단해….”
"으응."

엘과 아카네는 순식간에 쉐발리어 둘을 쓰러뜨린 그 자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잊지 않았다. 난입자는 아카네와 엘 쪽을 잠시 바라보더니 곧바로 창밖으로 몸을 날려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곧이어 아래쪽에 있던 저스티스 병사들의 총성이 비명소리와 뒤섞여 이들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
.
.

- 콰르릉!

공기를 음속으로 팽창시키는 새하얀 백광이 기나긴 꼬리와 수많은 가지를 엮으며 유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이는 재빨리 중력장을 발생시켜 직격하려는 전격을 슬쩍 흘려보냈으나 전격에 한눈이 팔려 카미코프가 지근까지 접근하는 걸 막지 못했다.

“죽어라! 개념 없는 년!”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카미코프의 손이 유이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유이는 힘겹게 검을 들어 카미코프의 팔을 옆으로 쳐냈다.

“큭!”

- 콰가강!

빗나간 카미코프의 손끝에서 시작된 은색의 번개가 땅을 시꺼멓게 물들이며 충격파를 발생시켰고, 충격파와 중력장의 반발로 생긴 힘을 빌려 유이는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칫.”

녹아버린 지면을 바라본 유이는 전과는 달리 긴장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런 것에 직격당하면 중력장으로 막을 수 있으리라 감히 장담할 수 없었다.

‘저번에 목을 베지 못한 게 한이군.’

저번엔 카미코프의 움직임이 느려서 공격하기에 수월했지만 기계팔과 기계다리로 민첩성을 극상까지 올린 이번 카미코프는 욕이 나올 정도로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마음 놓고 축퇴포를 쓸 수도 없었다. 잘못했다간 자신은 물론 마을까지 날아가 버릴지도 몰랐다. 이것이 강한 힘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자신은 카나드같이 대량학살에 맛이 들린 미친놈이 아니었기에 이런 제약을 감수해야만 했다.

- 지글지글지글.

용암처럼 녹아버린 지면을 바라보며 흉측하게 웃던 카미코프가 돌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귓가에 울리는 왕녀 확보 작전의 실패를 알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카미코프는 미간을 쭈글쭈글하게 구기며 유이를 향해 말했다.

“흥, 운도 좋군 그림자의 여제. 하지만 다음번엔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카미코프는 힘차게 땅을 박차고 건물 위로 날아오르며 다시 수백 줄기의 번개를 유이에게 쏘았다. 유이가 번개를 피하고 다시 그 자리를 보았을 때, 카미코프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
.
.

시체들이 즐비한 호텔의 1층 정문으로 내려온 엘과 아카네는 그곳에서 예의 창을 든 그 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는 지저분한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시체들 사이에서 멀쩡하게 서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 많은 인원을 정리하고도 상처는커녕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엘은 치맛자락에 피가 묻는 것에 아랑곳없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후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듬성듬성 엉망으로 자란 머리카락을 뒤로 한데 묶은 마른 얼굴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코에 걸친 안경 뒤 칠흑처럼 어두운 눈동자를 빛내며 엘에게 말했다. 왕녀를 대하는 태도가 아닌 굉장히 건방진 태도였지만 엘은 개의치 않았다.

“가로드 샤갈.”

그는 짧고 간단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왕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붉게 물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


가로드 등장~~ 이제 가로드도 활약할 수 있겠당~ 잇힝~
왕녀랑 썸씽이나 시켜볼까나. 케케케
여튼 이번에 나온 리히터와 드레이코는 죽었심. ㅋㅋㅋ
개인적으로 맘에드는 녀석들이었지만 죽였심~ 음헐헐헐~

ㅡㅜ(아, 괜시리 눈물이.. 이것이 바로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죽었을 때 느낀다는 전설의 그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