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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Flame Blaze

2006.01.12 23:26

다르칸 조회 수:105 추천:4

extra_vars1 혼란 
extra_vars2 Fire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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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 - 제길! 이게 뭐야!"

누나는 도대체 알 수 없는 불을 움직이질 않나, 왠 개새끼가 나타나서 친근한 척을 하질 않나 악마가 날 데려가려고 하는 것 까지! 지난 시간 누나와 함께 했던 시간은 내게 좋은 추억이 되었고 그것들은 날 평범한 이 세상의 사람 중에 하나로 키워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모습은 전혀 평범하지 않아!

"은태야 - "

"몰라! 이건 꿈이고 나는 꿈을 꾸는 거야 꿈!꿈!꿈!"

콩, 언제나 느껴지던 장난스러운 주먹이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간지러운 느낌을 주었다. 눈을 감고 응석부리는 젖먹이처럼 세상을 부정하던 나의 눈에 미소와 함께 눈물 짓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은태야, 그래서 너는 누나의 동생 안 할꺼야? 응? 그래, 나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지만 동생은 영원히 내 동생이야. 네가 그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내 동생이란 말이야, 나는 이렇게 널 동생으로 여기는 데 은태는 내 동생 안 할꺼야?"

숨이 턱 막혔다. 가끔 내가 토라지거나 누나와 다투었을 때의 저 표정은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굉장히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늘 그렇듯이 삐쳐 있는 나를 도닥이는 누나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때론 엄마처럼 때론 친구처럼 내 옆에 있어주는 누나는 그 존재 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될 수 있었다.

"하 - 아."

숨을 골랐다. 누나는 눈물이 맺혔던 눈가를 쓸어냈고 한 손으로는 휘날리는 먼지 때문에 더러워진 머리를 털어주었다. 고개를 돌리자 머쓱하게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거이거, 그 대단하신 플레임 블래이즈의 동생분은 이렇게 평범하다니! 놀랍네"

"잭! 시끄러"

"아하 - 무섭네 무서워 ~"

그를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푸른 색 머리카락은 윤기가 없어 보여 자칫 개털같았다. 새빨간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넘쳐 보였는데 이것도 굉장히 강아지 같은 분위기가 났다. 물론 방금 전만 해도 성난 늑대같은 분위기였지만, 지금 실실 웃으면서 누나에게 농을 거는 모습은 영낙없는 강아지였다. 바지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사람으로 돌아오면서 빠진 털이 틈틈히 붙어 있어 굉장히 더러워보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는 늘씬한 근육이 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신용이 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너무..가벼워 보여'

나는 예전부터 가벼워 보이는 사람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는 무작정 가볍기 보다는 때를 아는 가벼움이었다. 흔히 분위기 메이커라고 할까.

"아아 - 중재자께서 늦게 도착하셨구만"

잭이 시큰둥한 표정이 되어서 저 멀리 무너진 시장골목을 바라보았다. 거기서는 태권도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검은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흘렀고 다부진 체격에 여기저기 튼튼해 보이는 근육이 엿보였다. 뿐만 아니라 피부는 황색이어서 누가 보더라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아 - 싸움소리가 들려서 뛰어왔는데! 끝난 모양이군요"

왠지 그는 심하게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갈망하는 그의 눈빛은 굉장히 반짝거렸다.

"아아, 나는 저 인간이랑 싸우기 싫은데"

"그렇지만, 잭 데르만! 당신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의 축!! 갱생시켜드리겠습니다!!"

"아니아니, 아직 이 나라에서는 아무 짓도 안 벌렸..으아아악!"

쾅! 놀라웠다. 아까의 악마나 누나가 보여준 신기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화려하고 큰 울림은 너무나 단순한 동작에서 터져나왔다. 그는 뛰어오면서 다리를 잭에게 내리찍었을 뿐인데 땅에서는 그 키의 수배는 됨직한 흙더미가 튀어올랐다.

"저,전사범님..?"

누나의 나지막한 소리는 잭과 함께 뜀박질을 하고 있던 그의 고개를 돌려냈다. 굉장히 굳은 표정으로 잭에게 발차기를 날리던 그는 재빨리 누나의 곁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거 플레임 블래이즈 님을 알아보지 못 해 죄송합니다, 저런 악당과 어울리시다니 요즘 플래임 블래이즈 님의 행실이 좋지 못하게 보이는 군요!"

학생주임 선생님과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학생의 모습과 비유를 한다면 가장 적절한 비유라고 할만큼 둘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둘의 모습에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여 궁금증을 표시했지만 뭔가 비밀스럽울 것 같은 대화를 나누길래 잭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시장주변은 아예 초토화가 된 것 같았는데 드릴로 땅을 파헤친 것 처럼 두껍게 깔려있던 아스팔트나 벽돌등은 가루가 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기침을 콜록거리면서 잭이 쓰러져 있었다.

"으..아...망할 놈 - "

애석하게도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인 듯 했다. 기절을 한 것인지 골아떨어진 것인지(확실히 저 상황에서 골아떨어졌다면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강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질 않던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 동생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전병준! 강남에서 변변치 못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새하얀 도복과 검은 띠는 누가 보더라도 태권도와 혹은 그 비슷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추측하게 만들었고 그런 추측은 어김없이 맞아 떨어졌다. 그는 꾀나 큰 손으로 아직까지도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지만, 여태까지 보아 온 상상 이상의 사건들 덕택에 다리는 힘이 풀렸다. 솔직히는 오줌을 저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괜시리 날 일으켜줬던 그에게 미안해졌다.

"아아! 다리가 풀리신 모양이군요, 제가 데려다 - "

"아뇨, 사범님. 사범님은 할 일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전 사범님이 나에게 친절한 모습으로 양해를 구하려 했지만, 누나가 왠 일인지 거절을 했다(누나가 매일 해주는 말에서 남의 친절은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돈은 더!) 누나를 한참 바라보던 전 사범님이 고개를 돌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상가의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아직도 갱생이 필요한 녀석들이 넘치는 군요! 조만간 찾아가겠습니다. 플레임 블래이즈님"

"아, 감사합니다"

누나는 나를 업고 재빨리 뛰어올랐다. 세상에! 이렇게 높이 뛰어오르다니 청룡열차도 못 타는 데 이렇게 빠르게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면 어지럽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아 그만 두었다. 열심히 건물 사이를 날아다녀 어느 정도 정신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풍경이 익숙해지고 혼자서나 늘 돌아다니던 골목에 다다랐을 때 누나가 나를 땅 위에 내려놓았다.

"자, 이건 청심환이야"

"으응"

나는 예전부터 심장이 그렇게나 약했다. 그래서 늘 청심환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녔는데, 오늘은 오기에 그걸 안 가져왔더니, 누나가 또 챙겨서 왔다. 하얀 껍질을 벗겨 금색 알맹이를 쳐다보다가 누나의 재촉에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아, 써.

"아까 봤던 분은 누나가 어렷을 때 정신교육(어떤 것인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을 받았던 분인데, 무척이나 정의로운 분이시거든."

"...누나 보다 강해?"

이런 걸 물어봤자 무슨 도움이 된다고! 아아, 나는 정말 바보였다. 누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에 그녀가 피식 하고 웃었다.

"강하셔, 나도 솔직히 그 분만큼 강한 분은 못 봤어....다만 잘 안 싸우셔서 그렇지"

"그런데 - 왕이 뭐야 ?"

"..."

아아, 정말 나란 놈은 멍청하다 못해 병신같은 놈이었다. 대체 왜 자꾸 누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만 하는 걸까? 질문을 하자 마자 굳어지는 그녀의 표정에 손을 꼼지락 거렸다. 긴장되고 무서울 때의 습관이 절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누나는 이내 굳었던 표정을 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집에 가서 설명해 줄께, 어서 들어가자"

조금씩 걸어오는 사이, 익숙한 녹색 대문이 있는 반지하의 집에 도착했다. 스무평 남짓한 작은 집이지만 누나와 내가 아늑하게 함께할 수 있다는 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컸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나는 기분은 가끔 내가 누나에게 혼나 집 밖으로 쫓겨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느껴질 만큼 이 집으로 돌아갈 때 만큼은 모든 긴장감이 일순간에 풀려버렸다. 앗, 자빠졌다.

"에이구, 바보야! 자빠져서 상처났잖아"

무릎이 조금 까져 피가 나자, 그걸 세심하게 털어주는 누나의 모습은 그래. 여태 보아온 우리 누나가 틀림없었다.









*







"흐아아 - . 중재자"

"응? 이거 걸출한 악당이구나"

아직 무너지지 않고 기울어지기만 한 상가의 귀퉁이 위에는 수많은 무리의 검은 무언가를 이끌고 있는 악마의 형상을 한 그 마도사 A가 있었다. 검은 무언가는 끈임없이 움직여 마치 액체같기도 했는데 가끔 붉은 입 속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생명체임은 분명했다.

"확실히 갱생시켜주지, 악당"

"전 사범님, 비켜주시지요오"

악마가 되어서 그런 탓일까? 발음이 주욱 늘어져 쇠가 긁히는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 마저 전 사범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플레임 블래이즈님에게 위해가 가는 것은 볼 수 없다"

"별 수 없지, 성가신 놈이긴 하지만...죽여라!"

비명소리 같은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면서 검은 것들이 뛰쳐나왔다. 느릿느릿하게 온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작 속도는 전혀 느리지 않았다. 재빠르게 달려들어 가끔씩 비치던 입이 그 몸통 만하게 커져 전 사범을 덮치자, 그는 그 특유의 눈을 번뜩이며 다리를 들어올렸다.

"축(amass)"

쾅. 높이 올려졌던 다리가 그대로 검은 것들을 향해 내리꽃혔다.

"퇴(kill)"

기울어져 있던 상가건물이 흔들거리다가 눈깜짝할 새에 무너져 내렸다. 마구잡이로 달려들 던 검은 것들은 건물에 뭍혔는지 아니면 그의 발차기에 박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무너진 상가건물의 잔해 위에는 전 사범과 악마. 둘 뿐이었다. 그 사이로는 그 아무리 매서운 바람조차 지나가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내 슬라임이!"

"약자에게도 최선을! 정의의 근본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

"제기랄, 중재자랑 시비 붙지 말라고 한 게 이런 것 때문이었나!"

발악을 하듯이 악마는 날개를 곧게 펴 날아갈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준비가 조금 필요한지 아니면 바람이 불지 않아 제대로 날 수 없는 것인지 날개를 퍼덕이는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렸고 그 사이에 전 사범의 자세가 변했다. 양 팔을 뒤로 젖혀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마치 뿔처럼 만들었고 오른쪽 무릎을 들러올렸다가 땅을 내리치며 악마에게 튕겨나갔다. 튕겨나가는 순간 올라간 왼쪽 무릎과 함께 그 모습은 용처럼 보였다.

"오의(五義) 청룡각(a blue dragon cut)"

날아 오르려던 악마의 가슴에 뒤로 젖혔던 양 팔을 박는 것은 자세로 허공에서 양 주먹을 번갈아가면서 가슴에 박았다 뺐다. 뿐만 아니라 발도 움직여 온 몸을 난타하기 시작해 하늘을 향해 뻗쳐있던 날개가 땅으로 수그려질 때가 되서야 끝난 타격은 어림잡아도 수십대는 때린 것 같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전 사범이 악마의 형상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말라고. 그보다 또 도복 더러워졌구만, 마누라한테 맞게 생겼군"

마치 농사를 짓고 난 뒤 뿌듯함을 느끼는 농사꾼의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전 사범이 길가로 나와 택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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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허허헛.


.....


그냥 정의의 사도가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