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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DESTINY」 運命의 系統樹

2006.02.16 13:15

갈가마스터 조회 수:145 추천:2

extra_vars1 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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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타타타타탕!

  엄청난 총격. 마리앙과 돌로레스가 쏟아내는 총알은 1초에도 수백 발씩 가로드와 유리가 지나가는 땅을 벌집으로 만들며 발사되었다.

  “키득. 오빠, 도망치지마. 놀자.”
  - 야하! 이봐 형씨! 도망치는 솜씨가 굉장히 늘었는걸!

  유리의 뒷덜미를 잡고 총탄을 피하길 수차례, 드디어 쓸 만한 엄폐물을 차지한 가로드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엄폐물 밖의 마리앙과 돌로레스를 살폈다.

  “칫, 맘대로 떠들기는….”
  “켁, 켁. 가로드씨. 이거 좀….”
  “으이그.”

  가로드는 괴로워하는 유리의 뒷덜미를 놓아주며 혀를 끌끌 찼다. 계속해서 도망치기만 했던 것은 바로 이 애물단지 때문이었다. 총탄이 귓가를 스치는데 멍하니 구경만하는 꼴이라니!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왕자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그 힘’은 조절하지 못하나?”
  “아, 이젠 어느 정도까지는 조절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
  “아, 그게…. 이젠 각성했을 때 필름도 안 끊기고 또 가끔 제 의지로… 악!”

  딱! 가로드는 유리의 정수리에 정통으로 알밤을 먹이곤 고개를 돌렸다. 유리는 욱신거리는 정수리를 감싸 쥐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피잉! 펑! 펑! 펑!

  그 때, 휘파람소리와 함께 남쪽 하늘에서 불꽃 세 개가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연이어 폭발하며 색색의 빛을 발했다. 빨강, 노랑, 하양 순으로 터진 불꽃은 밤하늘의 달보다도 밝고 찬란하게 빛났다.

  “적, 황, 백…. 저건 철수 신호잖아?”
  “설마! 본진에 무슨 일이라도?!”

  유리가 사색이 되어 신호탄들을 바라보자, 가로드는 잠시 철사같이 지저분하게 자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긴급 철수. 저기 뚫려 있는 뒷문을 빠져나가 남문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면 간단한 일이다. 허나 그는 밖에 있는 녀석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전에 당한 수모를 그대로 갚아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내 생각을 마친 가로드는 유리에게 말했다.

  “어이, 마왕. 내가 저 녀석들을 상대할 테니까 빨리 가봐.”
  “네?! 다시 한 번….”
  “거 참, 마왕이 되니까 내 말이 귀에도 들어오지 않나 보지? 저기 뒷문 보이지? 거기를 통해 얼른 가보라고! 우리들이 본진에서 가장 가깝고 무엇보다 네 녀석은 왕이잖아! 철수 신호가 내려온 것은 보통 일이 아냐! 네 녀석의 그 ‘힘’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가로드의 말뜻은 금새 알아들었지만 유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어째서인지 매번 동료들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목적만 취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도 가로드의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갈색 눈빛을 접하자 곧 수그러들었다. 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쌍흑의 눈동자로 신뢰의 뜻을 가득 내비치며 말했다.

  “그럼 밖에서 뵙겠습니다, 가로드씨. 부디 몸조심하시길.”
  “아아. 빨리 가보기나 해봐.”
  
  유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나 반쯤 무너진 뒷문을 통해 사라졌다. 유리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가로드는 기쁜 듯 미소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 그럼 가볼까?”

  그는 수은처럼 일렁거리는 은색 창을 불량스럽게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폐허에서 나왔다. 그가 나오는 모습을 확인한 돌로레스가 기쁜 듯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 야하! 마리앙! 마리앙! 저 꺽다리 형씨가 드디어 같이 놀 생각이 든 모양이야.
  “어? 정말? 아이 좋아라~ 어? 그런데 같이 있던 키 작은 오빠는 어디 갔지?”
  - 글쎄? 아마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친 거겠지! 야하!
  “아? 그렇구나. 키득. 생긴 것만큼 소심한 오빠였네?”
  
  마리앙이 조소하듯 작게 키득거리자 돌로레스가 맞장구치며 과장스럽게 몸을 뒤흔들었다. 그들의 만담을 들으며 길게 입 꼬리를 올린 가로드는 어깨에 걸친 창을 내려 그들을 겨냥하며 말했다.

  “그 녀석은 사내가 맡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 떠났다. 나도 그 녀석에게 지지 않도록 내가 맡은 일은 끝내야겠지. 어때? 아직도 나와 놀 생각이 남아 있나?”

  정면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가로드의 모습을 바라보던 마리앙이 돌연 미소를 거두고 갑자기 흥미가 사라진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핏, 저런 건 재미없어. 돌로레스, 그냥 죽여버리자.”
  - 야하! 이런! 마리앙이 슬퍼하다니! 으흐흑! 어이 꺽다리 형씨! 아쉽지만….

  통! 경쾌하게 땅을 박차고 오른 돌로레스가 양 손을 가로드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 놀이는 이만 끝이야! 야하하하하하!

  투타타타타탕! 또 다시 총탄의 비가 가로드를 향해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가로드는 몸을 낮추고 재빨리 앞으로 몸을 굴려 돌로레스의 공격을 피했다. 그의 코앞에는 마리앙이 짐짓 무섭다는 듯이 꺅꺅거리며 치마를 흔들고 있었다.

  “꺄악. 또 숙녀를 괴롭힐 생각이야? 오빠? 꺄르르.”

  위이이이잉! 빙글빙글 춤을 추며 달려드는 마리앙의 허리부분과 우산처럼 펼쳐진 드레스자락 사이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톱날들이 튀어나와 가로드를 향해 다가왔다.

  “흡!”

  쉬익! 재빨리 멈춰서 자세를 잡은 가로드는 순간적으로 창을 휘둘러 톱날과 톱날 사이를 공격해 마리앙을 옆으로 쳐내버리고는 서둘러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그의 심장을 노린 돌로레스의 드릴같은 팔이 등과 뒷머리를 스치며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 아라? 빗나갔네?

  퍽! 그대로 가로드의 뒷발차기가 돌로레스의 복부를 강타하며 그를 멀리 날려버렸다. 돌로레스를 날려버리자마자 연이어 마리앙이 날린 칼날들이 가로드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가로드는 창을 번개 같이 휘둘러 두 개의 칼날을 쳐내곤 바로 칼날 사이를 돌파하여 마리앙에게로 달려들었다.

  “!”

  그러나 가로드는 달려들던 중 코를 자극하는 이상한 냄새를 느끼고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와중에 칼날 하나가 그의 어깨를 스쳐지나가며 상처를 냈지만 가로드는 괘념치 않았다. 이제까지 자신의 목숨을 지탱해준 직감을 믿었기 때문이다. 곧 그의 직감이 가르쳐준대로 엄청난 열기를 머금은 화염이 그가 있던 자리의 공기를 불태우며 지나갔다.

  화르륵.

  불길은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금새 사라졌고 가로드는 땅에 착지하자마자 불길의 출처로 눈을 돌렸다. 불길의 출처는 바로 돌로레스였다. 가면째 밑으로 쩍 벌어진 턱과 아직도 불이 붙어 있는 목구멍의 화염방사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의 회심의 일격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돌로레스가 고개를 가로드 쪽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 아라?! 이것도 빗나가?
  “돌로레스! 그것도 못 맞춰? 돌로레스는 바보야! 바보!”
  - 에잇 시끄러워 멍청아!

  이제 그들에게 여유란 없었다. 늘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에 희열을 느끼던 그들이 지금은 가로드를 만나 난생 처음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에잇! 이제 적당히 죽어라! 인간!

  화륵! 돌로레스의 등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또 다시 거대한 화염을 용처럼 토해냈다. 재빨리 폐허 안으로 몸을 날려 불길을 피했지만 발바닥이 살짝 닿았는지 연기를 내며 화끈거렸다.

  “빌어먹을! 롤러코스터에 이어 이젠 불꽃놀이인가? 정말 상대하기 까다롭군!”

  가로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쉴 틈도 없이 재빨리 일어서서 뒷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활짝 열린 돌로레스의 가슴에서 대포처럼 발사된 원뿔형 거대 가시 수십 개가 건물을 통째로 부숴버리며 가로드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큭!”
  “캬아아아아아아!”

  가로드가 무너지는 건물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마리앙처럼 보이는 괴물이 떨어져 내려왔다. 기괴하게 열려진 가슴에서 마치 벌어진 갈비뼈처럼 튀어나온 수십 개의 칼날들과 허리와 드레스 자락에서 튀어나온 회전 톱날들 그리고 등에서 튀어나온 거미 다리 같은 4개의 칼날.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닌 괴물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마리앙은 기괴한 비명을 질러대며 가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에 피할 틈이 없어 가로드는 창을 세로로 들어 마리앙의 칼날을 막아야했다. 그는 마리앙과 맞닿자마자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창을 마치 거미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키곤 사방에서 조여드는 칼날을 막아냈다. 가로드가 모든 것을 막아내자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얼굴을 한 마리앙이 목구멍에서 기괴한 비명을 질러대며 칼날에 더욱 더 힘을 가해왔다.

  “캬아아아아아!”
  “이런 젠장! 정말 고약한 처자군!”

  - 야하! 체크 메이트!

  때마침 마리앙의 뒤로 돌로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로레스는 마리앙에 관계없이 또 다시 불을 쏠 준비를 하며 꼽추처럼 등을 크게 부풀렸다.

  “꺄하하하하! 오빠 이제 죽어!”

  마물(魔物)스럽게 웃는 마리앙의 얼굴에 가로드는 가볍게 싱긋 웃어주며 대답했다.

  “그렇게는… 못하지!”

  순간 거미줄 형태의 창 중심부에서 더듬이같이 날카롭고 가는 촉수 한 줄기가 맹렬한 속도로 뻗어 나오며 마리앙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만큼 줄어든 금속의 양 때문에 마리앙의 칼날 하나가 가로드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으나 가로드는 회심의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무, 무슨 짓을?!”

  툭! 늘어난 창이 노린 것은 마리앙의 뒷목에 연결 되어 있는 은사 한 줄기였다. 은사가 끊어지자,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처럼 이제 막 화염을 뱉어내려던 돌로레스의 머리가 아래로 푹 주저앉았다.

  - 아라?

  막 화염이 발사되려던 찰나에 생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돌로레스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으며 곧 돌이킬 수 없는 용의 불꽃이 돌로레스의 몸을 태워버리며 발사되었다.

  - 아아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아!

  불길이 전신에 옮겨 붙자 돌로레스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뒹굴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마리앙과 돌로레스를 연결하는 은사들이 어지러이 얽히기 시작했다.

  “아앗?!”

  은사가 얽힌 탓일까? 갑자기 가로드를 감싼 마리앙의 칼날들이 돌로레스처럼 발광하기 시작했고 그 틈에 마리앙의 품에서 벗어난 가로드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나 창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비스듬하게 들어 땅을 겨누는 독특한 자세를 취했다.

  “후우.”

  가로드가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하자 창의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끊임없이 요동쳤다. 주변에 가느다란 빛까지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그것에 위험을 느낀 마리앙은 아직도 불붙은 몸으로 이리저리 뒹구는 돌로레스를 찾으며 절실한 도움을 요청했다.

  “도, 돌로레스! 도와….”
  “간다!”
  “꺄아아아아!”

  쉐엑! 마리앙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일점에 모든 투기를 집중시키는 무시무시한 공격이 가로드의 창에서 뻗어나갔다. 가로드가 내지른 그것은 공기조차 폭풍처럼 팽창시키며 마리앙의 품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어 끝을 알 수 없는 육신의 파괴가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흩어지는 퍼즐조각처럼 창이 박혀 들어간 마리앙의 중심부부터 절대적인 파괴가 뻗어나갔으며, 단 일격에 부품수준으로 철저하게 난자된 마리앙의 몸 조각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색 액체와 함께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덜걱거리는 기괴한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후두두둑.

  땅에 굴러가듯 몇 번 튕기며 이윽고 완전히 멈춘 마리앙의 머리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 돌로…레…스…으. 브…아……보.”

  모든 잔해들이 땅에 떨어지고 이젠 아무런 말도 않는 마리앙의 머리를 무심하게 내려다본 가로드는 잠시 힘에 겨운 듯 비틀거리더니 이내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액체 상태인 창의 형태를 유지시키기 위한 기조차 남지 않아서인지 창은 그 날카로움을 잃고 흐물거리고 있었다.

  “후우우…. 아직은 한 발 정도인가.”

  가로드는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며 이제는 검은 재로 시꺼멓게 뒤덮여 완전히 멈춰버린 돌로레스를 무거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는 그 녀석을 이길 수 없어.”

  가로드는 5년 전 자신에게 철저한 치욕을 안겨준 프레이저를 생각했다. 개처럼 패배하고 피 흘리며 쓰러진 자신을 바라보던 그 무심하고 차가운 푸른 색 눈동자. 그 이후 가로드는 자신의 힘의 한계를 느끼고 그야말로 미친 듯이 수련에 임했다. 그 기간 동안 눈에 띄게 성장한 가로드였지만 이 정도로는 프레이저를 상대하기는커녕 그 밑에 있는 녀석들도 상대하기 벅찰 것 같았다.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돌로레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 야하…하. 이거 당해버렸군.

  가로드는 미동도 못하는 돌로레스를 바라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젠 쫓아가서 끝장낼 기운도 없는데다가 그럴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뭐야. 살아 있었냐? 거참 끈질긴 놈이다. 너나… 나나.”
  - 야하. 하. 마리앙이 아직 살아 있으니 나도 죽을 리가 없지.  
  “…….”

  가로드가 마리앙의 머리 쪽으로 눈을 돌리자 과연 아직 살아 있는 마리앙의 검은 눈알이 데굴데굴 움직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입을 열 힘은 없었는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뒤통수에 연결되어 있는 단 하나의 은사, 저것이 아직 이들의 생명을 연결해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 야하. 하지만 이제 곧 우리는 죽는다. 인간. 마리앙의 생명이 다하면 나도 죽게 되어 있으니까.
  “그거 참 유쾌하고 상쾌한 얘기군. 이왕이면 빨리 가줬으면 좋겠는데?”
  - 하지만 우리만 가기엔 너무 쓸쓸하지. 안 그래 형씨?

  펑! 갑자기 돌로레스의 둥근 가면이 압력을 이기지 못한 주전자 뚜껑처럼 튕겨나가며 안쪽을 훤히 드러냈다. 그곳엔 돌아가는 것을 멈춘 톱니바퀴들과 붉은 숫자 10이 새겨진 전광판이 하나 있었다.
  
  삑. 10이라는 숫자는 곧 9로 내려갔고, 정확히 1초에 1씩 숫자가 다운되기 시작했다. 명백했다. 이것은 카운트다운이었다. 전후사정을 파악해서 가로드는 그것이 곧 폭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빌어처먹을!”

  가로드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저 하나 남은 실을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 야하하하하하하하! 소용없어! 소용없어! 우린 같이 가는 거야!
  - 오빠, 우리 영원히 같이 놀자.

  돌로레스의 목소리에서 마리앙의 목소리가 뒤섞여 주파수가 섞인 라디오처럼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개소리 작작해!”

  콱! 가로드는 힘겹게 창을 도끼로 변화시키고 은사를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돌로레스의 웃음소리가 뚝 끊어졌지만 숫자는 여전히 내려갔다. 자폭장치는 이들의 생명과는 관계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빌어먹을! 이런 개 같이 더운 곳에서 죽을까보냐!”

  가로드는 식은땀을 훔칠 새도 없이 창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유리가 있을 남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최대한 빨리….

  “!”

  그러나 돌로레스의 몸에서 시작된 파괴의 불꽃은 가로드의 기도를 처참하게 뭉개버리며 거칠게 시작되었다.

  ‘빌어먹을….’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폭발과 함께 가로드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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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광!

  “이, 이건….”

  같은 시간,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폭발소리에 유이는 폭발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멀리 중앙광장 너머의 건물들 틈새로 지옥의 불꽃같은 폭풍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폭발소리였으나 이상하게도 심장이 쿵쾅쿵쾅 크게 맥동했다. 전에도 느껴본 듯한 아찔하고도 저릿한 감각 그리고 묘하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

  “세이비어!”

  문득 멍하니 서 있던 유이의 귓가에 SIA 1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디스 아스트라나간의 푸른 검신을 타고 검은 구체가 흐르듯이 날아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이는 피하기엔 늦었다는 판단에 똑같이 검은 중력의 구체를 날려 맞받아쳤다.

  콰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검은 구체들이 소멸하며 반발성 충격파를 만들어냈고 폭풍에 휩쓸린 건물들이 가차 없이 무너져 내렸다. 가벼운 도약으로 다른 건물의 지붕 위에 올라선 유이는 다시금 다른 지붕에 착지한 SIA 1호의 움직임에 집중했지만 마음만은 불타는 방금 전의 폭발을 향하고 있었다.

  ‘뭐지, 이 안 좋은 예감은?’

  유이는 망토 속에 잘 갈무리한 창백한 은 목걸이(Nihil of scapegoat)의 떠는 듯한 진동을 느끼며 검을 으스러져라 꽉 쥐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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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랏차아!”
  「끼아아아아아아아」

  젠가의 삼식 참함도가 빛 같은 검기에 휩싸여 플뢰레의 손과 맞닿았다. 그 순간, 새하얀 빛과 푸른 불꽃이 합쳐져 거대한 폭풍을 생성했고 사방 1km가 넘는 지역이 순간적인 먼지와 돌풍에 휩싸였다.

  “칫! 이것도 안 통하나?”

  온 몸이 그슬리고 베인 곳 투성이인 젠가는 먼지 속에서 플뢰레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플뢰레의 오른쪽 팔 하완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만족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번 일격이 통했다는 것을 확인하자 녀석이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끼아아아아아아」

  그러나 플뢰레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와 함께 사라진 오른팔이 푸른 불꽃에 휩싸이는가싶더니 순식간에 팔을 재생시켜버렸다, 젠가는 허탈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보다 더한 호승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재생할 틈도 없이 베고 또 베어주마. 괴물놈!”

  젠가가 다시금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할 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플뢰레가 괴로운 듯 온 몸을 뒤틀기 시작했고 곧 발목 아래부터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털썩.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느새 그친 바이올린 소리, 먼지 속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요한의 모습이 이 모든 것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요한은 마치 경기에라도 걸린 듯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런 꼬마 아이가 12제라니. 하긴 저번에 날 공격한 꼬마도 12제였었던가. 저스티스 놈들.”

  연주가 그치자 검은 악마가 사라져버린 것도 그렇고 바이올린에서 어두운 기운이 맴도는 것을 보아, 그것이 매개물이란 걸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젠가는 그걸 파괴하기 위해 천천히 요한의 곁으로 다가갔다.

  “응?”

  갑자기 요한과 바이올린의 모습이 물결처럼 일렁이는가 싶더니 새벽안개처럼 스르륵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흑마술.”

  젠가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사라진 요한의 자취를 살폈다.

.
.
.

  - 크아아아앙!

  수인화한 레이의 일갈과 함께 내리쳐진 일격.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뿜는 주먹은 류네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지면을 강타했고 마치 운석이 떨어진 듯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며 땅이 폭삭 주저앉았다. 레이의 일격을 피한 류네는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뇌격총을 연사했으나 레이는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며 다시금 류네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이런 미친!”

  뇌격을 머금은 총알이 레이의 복부, 어깨, 팔에 연이어 명중했으나 레이의 돌진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고 그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오히려 류네가 당황해버렸다.

  - 크르르릉!

  부웅! 바람을 밀어내는 레이의 강력한 일격이 기어코 류네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고 류네는 급한대로 뇌격총에 번개의 힘을 가득실어 레이의 주먹을 막아냈다.

  퍼엉!

  귀청을 찢는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뇌격총이 박살나며 류네가 뒤로 부웅 날아갔다. 공중에 붕 뜬 채 발뒤꿈치로 브레이크를 걸어 간신히 멈춰선 류네는 부서진 뇌격총을 흘낏 내려다보고 다시금 레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충격을 상당하게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직격했으면 어찌되었을 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 크르르르….

  툭. 멈춰선 레이의 복부, 어깨, 팔에서 찌그러진 총알이 툭하고 튕겨 나왔다. 수인족 특유의 강력한 재생력과 레이의 강인한 육체가 결부되어 이런 가공할 만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통상 라이플의 100배에 해당하는 관통력을 가진 뇌격총이 저 정도라면 수인화한 레이가 얼마나 괴물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으리라.

  “응?”

  그런데 갑자기 레이의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털이 모두 빠지고 크게 부풀어 오른 등이 스르륵 내려가더니 건장한 육체를 가진 레이의 본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 가지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얼굴을 가려주던 가면이 수인화로 인해 반쯤 찢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순간 자존심이 상한 류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지? 이젠 변신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거야? 총 하나 부순 거 가지고 아주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

  류네의 도발에도 레이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 뭔가를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굳은 표정으로 류네를 노려보던 레이가 입을 연 것은 10여초가 흐른 뒤였다.

  “알겠습니다….”

  어흥! 돌연 레이가 크게 사자후를 터뜨렸다. 그러자 레비아탄, 길로틴 연합 부대와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몰살 부대’가 귀를 쫑긋 세우며 전역에서 일제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것도 신속해서 후퇴하는 ‘몰살 부대’의 뒤를 향해 레비아탄의 저격이 이루어졌지만 쓰러진 것은 고작 한두 명에 불과했다.

  “훗, 이제야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네?”
  “쿡쿡쿡. 크하하하. 불리하다고? 우리 저스티스가?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분’의 명만 아니었다면 단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우린 싸웠을 것이다. 류네.”

  뚜벅뚜벅. 레이 미스테리오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류네에게 다가왔다. 류네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전신의 긴장을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이윽고 류네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레이의 입에서 단 한마디 짧고 간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음엔 죽인다. 프리벤터의 삼연성.”
  “얼마든지… 저스티스의 사천왕.”

  레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류네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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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칫, 타임 오버로군. 가자! 헬무트!"

  레이가 사라지는 것을 기점으로 헬무트와 엘리스도 아쉬움을 뒤로하며 사라졌고 곧 모든 저스티스 전사들이 시체만 남기고 전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피 투성이의 시체들 위로 한 줄기 순백의 유성이 밤하늘을 가르며 지나갔다.

  “어라? 유성?”

  아직도 본진에 도착하지 못한 유리는 언덕을 오르다가 문득 아름다운 꼬리를 길게 매달고 지나가는 유성을 발견하곤 멈춰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윽!”

  유성을 보자 유리는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마치 심장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린 듯한 허전함….

  “에? 어째서?”

  주륵. 유리의 볼을 타고 이슬같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가슴을 움켜쥔 유리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불꽃을 담고 있는 듯한 루비 반지(Saudade of laevantine)가 불길함으로 가득 빛나며 타올랐다.

.
.
.

  “응?”

  백금발을 허리까지 아름답게 기른 여인, 카렌티어스는 어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중 문득 창밖으로 떨어지는 유성을 발견하곤 슬픈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아이들 중 가장 성숙한 듯이 보이는 곱슬머리의 남자아이가 부스러기만 남은 쿠키 상자에 새로운 쿠키를 담으며 카렌티어스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 그녀가 멈춘 것은 저번 엘스틴 왕녀 사건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카렌티어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곤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다. 날이 많이 저물었구나, 얘들아. 이제 들어가 자겠니?”
  “히잉! 엄마 조금만 더요.”
  “맞아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하얀 천사가 이겼나요?”
  “아냐! 검은 천사가 더 강하잖아!”
  “자자. 그건 내일의 이야기로 남겨두고 어서들 들어가 자거라.”
  “어머니 곤란하게 하면 안돼. 들어가자.”

  곱슬머리의 남자아이가 카렌티어스를 대신해 아이들의 투정을 부드럽게 달래며 침실로 안내했다. 아쉬운 얼굴로 옹기종기 침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자상하게 배웅하던 카렌티어스는 다시금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명의 별이 떨어졌다. 이젠 멈출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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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안타까운 님은 갔습니다. 가로드를 죽였심. ㅜㅜ;

그것보다.. 마지막에 쓰다가 지쳐버려서 엘리스, 헬무트의 전투 장면은 쏙 빼버렸습니다. 젠장... OTL

여튼.. 간신히 마무리는 졌습니다. 상편은 맘에 드는데 끝이 만족스럽지 않네요. 그래도 이젠 지쳐서 고칠 기운도 없심....

만약 애초에 기획한대로 썼다면 40쪽 정도 나왔을 지도 모르겠심..... 에라! 다음부터는 이렇게 크게 알 안 벌릴테닷! ㅜㅜ; 그냥 아란님에게 맡길 걸 그랬나?



PS:카인하고 글릭세르가 안나오는 건... 대충 지금 엘스틴 왕녀 호위 중이라고 하죠 뭐... 애초엔 그 녀석들까지 집어넣으려고 했었는데 분량 때문에..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