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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Flame Blaze

2006.02.19 10:33

갈가마스터 조회 수:79 추천:4

extra_vars1 폭풍전야 
extra_vars2 Fire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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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roduce>

  쿠우우. 2만 피트 상공을 유영하는 구름들 위로 하늘색 점보기 한대가 굉음을 흩뿌리며 날고 있었다. 유선형 동체 중앙에 그려진 태극무늬와 'KAL'이라는 이니셜은 이 비행기가 대한항공 소속의 여객기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기장님.”
  “음? 왜 그러나? 난기류라도 발견했나?”
  “그건 아니고요. 요즘 미 일 연합군과 중국, 러시아 연합군이 다투고 있죠?”
  “그렇지.”
  “그런데… 저희들 이렇게 비행해도 괜찮나요? 위험한 건….”
  “하하, 이 친구 무슨 소리하나 했더니. 걱정하지 말게 이 친구야. 이 제주 해협은 확실히 미일 연합군과 우리나라 해군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치만. 얼마 전에 미 제 7 함대, 일 제 1 연합함대가 동해에서 대판으로 깨졌잖아요. 그만큼 위험해지는 거 아닙니까?”
  “어허, 이 친구 위험한 소리만 골라서 하는군. 이 친구야 우리 해군은 뭐, 종이호랑이인 줄 아나? 이미 2010년 이후 우리 해군도 어느 정도는 대양함대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고. 현존하는 세계 최강이란 평가를 받는 이지스구축함에, 작지만 항공모함까지. 아무리 중국 떼놈들이 악을 써봐야 이지스 함에는 못 당해. 게다가 아무리 양키 놈들이 패배를 했다손 치더라도 러시아 함대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구. 부기장 뉴스 좀 보고 살게.”
  “그래도….”

  삑. 기장과 부기장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레이더에 밝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부기장으로, 심각한 얘기를 하던 중에 발생한 거라 그런지 평소엔 무심코 지나쳤을 일이 그에게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기장님, 방금 보셨어요? 레이더에….”
  “이 항로에 다른 비행기는 없을 테고, 아마 지나가던 철새 무리 아니었겠어?”
  “그, 그렇겠죠? 설마 폭격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어라? 기, 기장님!”

  더듬거리는 말투로 자기 최면을 걸며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부기장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 기장을 부르짖었고 기장은 혀를 끌끌 차며 호들갑 떠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정면의 하얀 구름들 사이로 뭔가 시꺼먼 점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검은 점은 점점 그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 여객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스, 스텔스 기?”
  “기장님! 다가오고 있습니다! 즉시 항로 변경을!”
  “트, 틀렸어! 너무 가까워!”
  
  「끼아아아아!」

  흡사 거대한 가오리처럼 생긴 납작하고 검은 ‘괴물’, 그 넓적한 등 위엔 사람이라 보기엔 너무나도 피골이 상접한, 마치 해골처럼 보이는 인영 하나가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서 있었다. 사슴 두개골같은 머리를 흔들거리며 웃는 ‘그것’의 손아귀엔 시퍼런 불꽃을 날름거리는 광검이 하나 들려 있었다.

  「와하하하하하하!」

  ‘검은 괴물’이 KAL기의 동체 밑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 짧고도 길게 느껴지는 억겁의 순간, ‘그것’의 손에 들려있는 광검이 푸른 잔광과 함께 KAL기를 세로로 가르며 지나갔다.

  끼기기기기기기긱!

  불꽃을 튀기며 공중에서 반으로 갈라진 KAL기는 그대로 산산조각나며 비명소리와 섞여 망망대해로 추락해갔다.

  「큭큭큭…. 콜록, 콜록.」

  검은 괴물의 등 위에서 그 모습을 재미있게 내려다보는 ‘그것’, ‘오미크론’은 기침을 내뱉으며 음흉한 웃음을 터뜨렸다.

  「끼아아아아!」

  오미크론을 태운 검은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이내 하늘은 다시금 평온함을 되찾았다.

  “어이, 준. 막았어야 하는 거 아냐?”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페이 가문의 ‘준 페이’와 ‘량 페이’였다. 중절모를 멋들어지게 쓰고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곤혹스러워하는 량의 목소리에 신선처럼 거대한 학의 등에 앉아 길쭉한 담뱃대를 빨고 있는 준 페이가 담뱃대를 입에 문 채 대답했다.

  “헤에? 언제부터 인도주의자가 되셨나. 뭐, 괜찮잖아? 어차피 ‘왕’이 한라산으로 가는 것은 늙은이들이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할 일을 엔젤이 대신 해준거니까 오히려 고맙다고 여겨야지.”

  아무 감흥도 없이 담배연기만 내뱉는 준과는 달리 량 페이는 쓰고 있는 선글라스 코를 슬쩍 들어 올리며 여전히 언짢은 표정을 짓곤 말했다.

  “그렇다곤 하지만… 역시 죽어가는 영혼들이 지르는 비명은 기분 나쁘다고.”
  “호호, 우리 ‘페이 가문’의 사람답지 않은 말이네 그거. 하긴 넌 어려서는 ‘이령’ 가에 있었으니까.”
  “확실히 너를 비롯해 페이 가문 사람들은 정상이 아냐 준.”
  “어머? 자기는 페이가 사람이 아니라는 듯한 말투네? 벌써 무감각해졌으면서? 보통 사람들은 1초도 안돼서 타인의 죽음을 잊어버리나봐?”

  죽음에 대한 무감각, ‘페이 가문’ 사람들은 대상이 타인이든 육친이든 이상할 정도로 죽음에 대한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그것은 다른 가문에 비해 페이 가문이 더 죽음에 가깝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태초부터 그들의 피에 각인되어 있는 본능 때문이기도 했다. 친자식이나 혈육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페이 가문이었다. 하긴 그런 성격적인 결함 덕분에 ‘페이 가문’의 피는 오랜 세월동안 걸출한 전사들을 많이 배출했으니 이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인정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전투를 하는 ‘전사’들에게 있어서 분명한 적이었으니 이들만큼 전사라는 직종에 어울리는 가문은 그림자의 린 내에서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음?”

  방금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턱을 긁적이던 량은 이내 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코트깃을 여미며 말했다.

  “여하튼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이제 돌아가자구. 엔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용황정(龍皇庭)’의 늙은이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 걸?”
  “글쎄, 적어도 울지는 않겠지.”

  준은 ‘훗’하고 보일 듯 말듯하게 웃으며 천천히 추락하는 비행기의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살려달라며 벌레처럼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영혼이 불꽃에 휩싸인 비행기의 주변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도는 것을 바라보며 준은 낮게 조소했다.


   <Introduce out>

.
.
.

  「…해서 당국은 당분간 민간인의 비행운항은 중지한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자세한 상황은 보안상 보도가 금지되어 있지만 군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어떠한 형태로든지 정부의 명확한 방침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날 새벽, 한라산으로 출발하기위해 준비하던 우리들은 공항에서 비행이 중지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TV에서 이런 긴급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제주도와 일본으로 향하던 비행기 3대가 추락해서 승객 전원이 실종 혹은 사망했다던가. 여하튼 요즘은 뒤숭숭한 일투성이라 그런지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네, 그렇군요.”

  한편 주희 누나는 전화기로 누군가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누나가 존댓말을 쓰는 것과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그 전 사범이라는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리라 쉽게 추론이 가능했다. 난 귀를 쫑긋 세우며 누나의 전화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전용기는요?”
  - 그것도 말해봤지만 안된다고 하는구나. 아무래도 한라산으로 가는 비행편은 추락한 여객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고 나서나 확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겠죠? ‘엔젤’의 소행일 수도 있으니.”
  - 지금 상황으로선 그게 확실할 것 같구나. 만약 ‘엔젤’의 소행이라면 비행기로 이동했다간 뼈도 못 추릴게야. 이건 녀석들의 경고인 셈이지.
  “배편은?”
  - 군함을 타고 가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 주희야, 설마하니 그 아이를 달고서 바다나 하늘에서 녀석들을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절망적이군요.”
  - 으음. 녀석들 왕을 죽이지 않고 포획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것 같구나. 한라산에 보내자니 두고 볼 순 없고, 하늘과 바다에서 너와 싸우자니 십중팔구 소년이 죽을테니  이런 식으로 머리를 굴린 거겠지.
  “녀석들의 특기죠. 그렇다면 조만간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 습격해온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게다. 녀석들 감히 내가 있는 이 나라에서 민간인을 해치는 중죄를 범하다니. 반드시 요절을 내버리고 말테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사범님.”
  
  주희누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 말도 없이 또 혼자 고민 속에 빠지는 것이 어째서인지 화가 났다.

  “…….”

  그러나 나는 이내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뭐가 있을까? 생각만 해도 실소가 터져 나온다.

  “어이.”

  갑자기 들려온 잭의 목소리에 난 화들짝 놀라 창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과연 어느 사이엔가 열려져 있는 창문 사이에 비스듬하게 걸터앉은 잭이 푸른빛이 도는 은색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광기가 도는 홍색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 게겍! 잭씨?”
  “뭐야? 그 반응은?”
  “아니, 그게 저….”

  잭은 ‘늑대 인간’이었다. 영화나 책에서 본 늑대인간은 흉폭함의 대명사처럼 묘사되고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난 저 사람만 보면 괜스레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이걸 대놓고 말하는 것도 실례라는 생각에 난 대충 얼버무리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엉거주춤하게 인사하는 내 꼴이 우스워보였는지 주희 누나가 싱긋 웃어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본 누나의 미소에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봐 잭. 추우니까 문이나 닫고 들어와.”
  “OK.”

  잭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창턱에서 내려와 창문을 닫았다. 그리곤 잠시 누나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다가 잘났다는 듯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어이, 어이. 손님이 왔는데 따듯한 코코아도 대령하지 않는 거야? 인심이 바닥을 기는군.”
  “어이, 하얀 강아지. 언제부터 네가 나에게 명령을 하게 되었지?”

  후안무치하기 이를 데 없는 잭의 태도에 누나가 아미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잭 제발 참아줘, 더 이상 막나갔다간 누나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까. 내 이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잭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아 올랐다.

  “물론 난 고명하신 파괴자님의 사랑스러운 동생을 구해준 은인이잖아. 은인에게 그 정도 대접은 해줘야지.”

  문득 누나는 싸늘게 굳힌 얼굴로 빤히 잭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수화기를 집어 들고 번호를 눌렀다. 어디에 전화를 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나의 표정으로 봐서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그걸 느낀 건지 잭이 사색이 된 얼굴로 더듬더듬 누나에게 말했다.
  
  “어, 어이 이봐… 지, 지금 어디로.”
  “아, 여보세요? 전 사범님? 지금 저희 집에 그 똥개가 찾아왔는데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이 마약을….”
  “와아악! 와악!”

  쾅! 누나가 말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잭이 허겁지겁 달려들더니 수화기를 강제로 낚아채고 끊어버렸다. 허억허억- 살았다는 듯이 가쁜 숨을 내뱉으며 안도한 잭은 두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고 누나를 노려보며 불만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못 꺼내요! 쯧!”
  “흥. 다음부턴 상대를 봐가며 농담을 건네. 그나저나 여긴 대체 무슨 일이야?”
  “뭐 별거 없어. 그냥 얼빠진 당신 동생이 걱정돼서 찾아왔을 뿐이야.”

  얼빠져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뭘 할 수 있었겠어? 난 당신같은 괴물이 아니라고….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난 애써 무시하며 TV에 주목했다. 비행기의 잔해와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망망대해에서 헬기에 탄 기자가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작고 큰 여러 종류의 함선들이 잔해 사이에서 사람들을 건지는 장면이 얼핏 보였지만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이미 죽은 시체처럼 보였다.

  “어때? 저 비행기 사고.”
  “흥, 틀림없어. 녀석들이다.”

  엔젤. 아까 누나가 수화기에서 전 사범님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어찌되었건 녀석들이 너희들의 한라산 행을 방해한 건 나름대로 노리는 바가 있겠지. 아무쪼록 몸조심하라고.”
  “화이트 팽(White pang) 클럽에서는 별 말 없었나?”

  화이트 팽? 또 모르는 이야기다. 도대체 이 세상은 얼마나 되는 비밀을 나 같은 일반인에게 숨기고 있는 걸까? 누나의 물음에 잭은 피식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별 말이야 없지. 녀석들이 언제 이쪽 일에 간섭이라도 했냐?”
  “하긴 화이트 팽 클럽이 이 일에 간섭할 이유가 없지.”
  “새삼스럽군. 천하의 파괴자님도 불안한 건가?”
  “그다지. 단지 우리들의 확실한 안전을 확보하고 싶을 뿐이야.”
  “게엑. 그게 불안하다는 말과 뭐가 다른 건데?”

  왠지 소외되는 기분에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조심스럽게 누나와 잭에게 물었다.

  “저, 저기. ‘화이트 팽’이라는 건 또 뭐야?”
  “응?”

  잭이 멍청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오호라. 그게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왕이시여?”

  왕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미묘한 뉘앙스에 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놀리지 말고 대답이나 해줘. 나도 알 건 알아야 될 거 아냐.”
  “칫. 붙임성 없기는…. 좋아, 그럼 간단하게 설명해주지. ‘화이트 팽’이란 건 다시 말해 늑대인간들의 모임 비슷한 거야. 5세기쯤에 카톨릭 놈들이 우릴 탄압하면서 생겨난 반 크리스트, 게릴라 집단으로 시작된 건데. 지금은 각 지역의 늑대인간들을 보호하고 연결하는 걸 그 목적으로 하는 클럽이 되었지. 그 중에 이 아시아 지역의 늑대인간들을 보호, 관리하는 조직을 ‘화이트 팽 클럽’이라고 하는데 그것 말고도 영국 쪽의 ‘다이어 울브즈(Dire wolves)’, 유럽의 ‘베오볼프(Beowolf)', 북미의 ’토테믹 신드롬(Totemic syndrome)‘ 정도가 대표적인 늑대인간 클럽이야.”
  “헤에, 뭔가 멋지네.”
  “멋지긴 뭐가 멋지냐. 겉으로 보기엔 친목도모회니 어쩌니 하는데 하는 짓거리는 마피아나 다를 바 없어. 그 중에 ‘베오볼프’랑 내가 속한 ‘화이트 팽’은 거의 앙숙이나 다름없지. 허구헌날 만나기만하면 싸우고 물어뜯고 죽이고 죽고…. 여하튼 넌 그런 것은 신경 끄고 살도록 해. 녀석들도 세력 다툼 외에는 아예 관심도 없으니까.”
  “호오. 화이트 팽의 '매드 커스피드 잭(Mad cuspid Jack)’이라고 불리던 네가 하는 말이라곤 믿겨지지가 않는 걸. 참 많이 발전했네?”
  “어이어이, 쓸데없이 옛날이야긴 하지 말자구 우리.”
  “어머? 그렇게 옛날 일이라고 여겨지진 않는데?”

  누나의 말에 잭이 잠시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북북 긁더니 “쳇, 그럼 불청객은 이만 사라져 주지.” 하곤 손을 흔들면서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드륵 열고 난간을 훌쩍 넘어가는 것이 저 인간, 현관은 폼으로 만들어 놓은 줄 아는 건가? 그의 등 뒤에 대고 누나가 소리쳤다.

  “다음부터 창으로 드나들면 꼬랑지를 불태워버릴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꽤나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지만, 누나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누나는 저 잭이라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듯 했다.

  “어? 눈이다.”

  창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얀 눈송이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졌다. 마치 꽃잎과도 같은 그 흔들림, 아직 방학도 안했는데 첫 눈이라니 오랜만에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것 같았다.

.
.
.

   <Interlude>

  은태의 집에서 나오고 잠시 후 온 세상은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에 파묻혀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새벽빛에 반사돼 아름답게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잭은 고향인 러시아를 생각했다. 그곳에서 눈은 온통 피와 매연으로 범벅된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군. 눈이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은.”

  잭은 허탈하게 웃고는 골목길을 서성였다. 뽀얗게 쌓이는 눈발 위에 뽀득거리며 남는 발자국의 자취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응?”

  문득 잭은 앞길을 막고 있는 회색 정장의 사내를 발견하곤 그 자리에 멈춰섰다. 모자의 중간부분이 동산처럼 둥근 중산모를 쓰고 콧수염을 두툼하고 멋들어지게 기른 그 신사는 인자하게 웃으며 손잡이에 늑대상이 장식되어 있는 오크나무지팡이를 짚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네 놈.”

  초면부터 더럽게 인상을 구기며 노려보는 잭의 눈초리에도 신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모자를 들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우선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매드 커스피드’. 본인은 ‘비숍 트라이튼’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비숍이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자신을 비숍이라고 소개한 신사는 다시금 모자를 쓰고 지팡이에 손을 얹어놓았다. 차분하고 고요하게…. 신사의 주변에선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눈송이는커녕 공기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이름은 ‘잭’이다.”
  “아, 이거 실례를.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잭님.”
  “그나저나 비숍인지 뭔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누구지?”
  “아, 다른 분들은 절「무심하게 내려다보는 일곱 번째 별, 운명의 바퀴에서 벗어난 자」라고 부르지요.”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일곱 번째 별, 운명의 바퀴에서 벗어난 자. 그 명(名)을 듣자 전에 본 마도사A가 생각난 잭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렇군. ‘탑(Tower)’에서 나온 녀석인가?”
  “총명하시군요.”
  “흥, 그 따위 센스 없는 이름을 듣고도 모른다면 그 놈이 바보인 거지.”

  순수하게 칭찬을 받았건만 잭은 오히려 흥 콧방귀를 뀌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상호간에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말자고. 날 찾아온 목적이 뭐야?”
  “너무 경계하지 마십시오. ‘매드 커스피드’, 이번엔 단지 인사차 나온 것뿐이니까요.”
  “인사차?”
  “그렇습니다. 사실은 왕께 친히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옆에 무시무시한 처자가 있어서 말이죠.”
  “큭큭, 그렇지.”

  잠시 주희 생각에 실실거리던 잭은 붉은 눈빛을 살기로 가득 채우며 비숍을 노려보았다.

  “경고다. 저번에 병원에 실려간 녀석과 같은 짓은 하지 않는 게 신상에 좋아.”
  “후훗, 저도 그렇게 바보같은 짓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다만 일개 ‘구경꾼’일 뿐. 운명의 바퀴가 굴러가는 세계의 밖에서 유수처럼 흐르는 시간의 물길을 흥미롭게 지켜볼 따름입니다. 단지 흥미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흥, 여하튼 주희와 그 꼬맹이를 건드렸다간 너희들도 좋은 꼴은 못 볼거야.”
  “하하하, 과연 과거 ‘매드 커스티스’라 불리며 모든 변종인간들이 두려워하던 분답군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전 아무런 힘도 없는지라 아무런 확답도 못 드리겠군요. 모든 것은 ‘탑’과 세계가 판단할 일이지요.”
  “칫, 개소리만 늘어놓긴.”

  잭은 비숍의 웃는 낯짝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아쉽지만 다음에 뵙도록하겠습니다. 잭님.”
  “꺼져.”
  "후훗, 그럼 '왕'께 안부 전해주시길."

  비숍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존재의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그는 마치 애초에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발자국은커녕 그가 내뱉던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폭풍 전야인가? 조만간 폭풍이 몰아치겠군.”

  비숍이 사라진 곳을 지긋이 노려보던 잭이 문득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Interlu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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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이번엔 그냥 지루한 대화만 죽죽 늘어놨군요. =ㅅ=~

ㅋㅋㅋㅋㅋ~~ 이제 죽이고 죽고 싸우는 일만 남았심.

이번 편엔 마음대로 설정을 구겨넣었으니 모르는 거 있음 물어보세요~

아 참고로 '용황정'은 페이 가문 중심의 종가 회의 기구입니다. 그림자의 린 중에서도 독보적인 녀석들이죠. 목적은 왕의 보호가 아닌.... 탈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