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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DESTINY」 運命의 系統樹

2006.05.10 04:14

갈가마스터 조회 수:127 추천:3

extra_vars1 최후의 결전 Part 1 
extra_vars2 33(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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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Y」
運命의 系統樹
第 33 夜. 배신, 와해, 벼락, 혈맹성 붕괴의 날(下).



  콰과광!

  천장을 뚫고 들어온 검은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흑마궁 홀 중앙에 있는 유신을 덮치자 삽시간에 땅바닥이 푹 꺼지며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었다. 그 순간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듯 강한 빛과 함께 홀 안을 뒤덮을 정도의 먼지와 살인적인 돌풍이 몰아쳤고 유신에게서 가장 가까웠던 근위대장이 지푸라기처럼 날아가 멀뚱하게 서 있는 부하들에게 처박혔다.

  “유, 유신 각하!”

  폭풍이 잠잠해지자 근위대장은 벌떡 일어나 크레이터의 중심을 노려보았다. 몸 이곳저곳이 충격으로 욱신거렸지만 그의 충심이 육신의 고통을 잊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먼지가 서서히 걷히는 순간에도 육중한 몸을 천천히 일으키는 검은 그림자의 모습 외엔 어디에서도 유신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 이… 네 이노옴! 감히 각하를!”

  유신이 죽었다고 판단한 근위대장과 병사들이 검을 뽑아들어 그 검은 ‘짐승’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그들의 용감한 돌진은 그것에게 있어서 단순한 날파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고, ‘짐승’은 호랑이와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근위대를 향해 그 육중한 손을 휘둘렀다.

  『캬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내지른 단 일격에 근위대장과 수십명의 병사들이 비명소리도 없이 찢겨져나갔다. 피와 육질들이 먼지와 섞여 사방으로 흩어지는 그 잔인한 광경과 흉포한 짐승의 무시무시한 일격은 용맹하기로 소문난 진마국 근위대원들조차 공포로 얼어붙게 만들 정도였다.

  『크르르르.』

  키가 거의 3m는 넘을 듯한 노란 털의 짐승이 갑자기 금빛의 눈을 불태우며 분노로 가득한 소리로 포효하더니 놀랍게도 인간의 언어로 말을 내뱉었다.

  『메두사! 설명해라!』

  짐승, 아니 수인화한 ‘레이 미스테리오’가 묻고 있는 것은 현문 쪽에 서있는 메두사와 사라진 유신에 대해서였다. 방금 전 레이가 미처 방어 준비를 하지 못한 유신을 깔아뭉개려는 순간 메두사가 미리 준비라도 한듯 유신을 어디론가 전송했고 이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면 그녀가 레이의 일을 방해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만 묻겠다. 메두사! 이건 ‘네’ 의지냐, 아니면 ‘그’의 의지냐!』

  레이가 천천히 메두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하자, 그녀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대답하지 않을 생각인가. 좋다, 그렇다면 그 충성심을 안고 죽어라!』

  콰광! 레이가 땅을 박차고 올라 메두사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들었다.

  “뇨르그!”

  그에 질세라 메두사가 자신의 몸을 감고 있는 신수의 이름을 외치자,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뱀소리를 내는 뇨르그의 전신에서 불길한 빛과 함께 수십 덩어리의 불꽃이 다가오는 레이를 향해 방사되었다.

  『크엉!』

  그러나 불꽃들은 레이의 사자후 한 방에 질풍 앞에 놓인 촛불처럼 픽하니 꺼져버렸고, 레이의 억센 발톱이 대기를 가르며 뇨르그의 빛에 휩싸인 메두사를 할퀴었다. 그러나 갈기갈기 찢겨진 메두사의 육체는 환영이었으며 레이의 손아귀에 조각난 환영은 마치 안개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져갔다. 레이는 분노로 얼굴을 크게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잔재주를!』

  그 때 이미 메두사는 아까 레이가 떨어졌던 크레이터의 중심에 서서 레이 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Stoß(폭발).”

  그녀가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하자, 레이의 손아귀에서 사라져가던 메두사의 환영이 돌연 크게 부풀어 올랐다.

  『메두사아아아아아!』

  콰광! 천지가 뒤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레이를 중심으로 홀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이 정도 공격을 지근거리에서 직격당한다면 아무리 12제라도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기습을 성공했으니 기뻐할만도 하건만 메두사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공격으론 레이 같은 괴물을 처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시나…. 요행은 통하지 않는군요. 레이님.”

  『크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서서히 걷히는 연기 속에서 사지가 멀쩡한 레이의 모습을 발견한 메두사는 질렸다는 듯 미소지었다. 역시나 12제 중에서도 육체적으로 최강인 레이였다. 이런 정도의 공격으론 시간벌이도 안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는지, 메두사는 뇨르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뇨르그, 미안하지만 무리 좀 해줘야겠어. 부탁해.”

  - 쉬이익!

  그녀의 애정 어린 손길이 매끄러운 뇨르그의 비늘을 매만지자, 뇨르그의 전신이 자줏빛의 불길한 빛을 발했다.

  - 키에에에엑!

  뇨르그가 비명같은 귀곡성을 내지르자, 몸을 삼킨 거대한 빛이 삽시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빛이 사라지고 홀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흑룡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와이번따위가 아닌 전설이나 설화에서 등장하는 용이었다.

  - 캬오오오!

  흑룡으로 변한 뇨르그는 몸의 일곱 배는 됨직한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쳐 흑마궁을 부수며 그 긴 목을 굽혀 레이를 향해 거칠게 포효했다. 목구멍 속에서 일렁거리는 화염은 그 무엇이든 불태워버리겠다는 듯 새하얗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그래. 착하지.”

  뇨르그의 머리 위에서 요염한 자세로 누워있는 메두사가 바윗돌같이 거친 비늘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돼. 그 분이 오실 때까지.”

.
.
.

  “여, 여긴!”

  한편 메두사에 의해 전송된 유신은 갑작스럽게 바뀐 배경에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함정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화이트블레이드를 쥔 자세 그대로 주변을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반경 100m 이내에 느껴지는 인기척이라곤 그 자신이 전부였다. 사람들의 손이 오랜 시간동안 닿지 않았는지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무릎까지 올라오고, 주변은 온통 가을의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 어두운 나무로 뒤덮여 있는 곳. 특징적인 침엽수들을 보아서 이곳이 혈맹성 동쪽으로 길게 숲을 이루고 있는 ‘안개숲’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빛?”

  한참을 헤매던 유신은 수풀너머로 보이는 붉은 빛을 발견하곤 그것을 쫓아 허겁지겁 수풀을 헤치며 지나갔다. 거의 늪지대 같이 느껴지는 거친 수풀 속을 빠져나오자, 유신은 그 ‘불빛’의 정체를 깨닫고 탄식했다.

  “아!”

  지평선 전체가 훨훨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생명이 지고 있는 황혼과도 같아, 유신은 슬픔어린 신음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야 말았다.

  “우, 우욱…. 으아아아아아악!”

  유신은 땅에 이마를 처박고 오열했다. 분함과 수치가 울분과 함께 치솟아 올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혈맹성을 뒤덮고 있는 불꽃의 향연은 그대로 진마국의 몰락을 여과 없이 비춰주고 있었기에 그가 느끼는 감정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했다.

  그 때, 유신의 귓가에 조소 섞인 광기가 말을 걸어왔다.

  “아-아, 이거 정말 아름답군. 그렇지 않나? 퀘브레.”

  바람결에 흩날리는 검은 곱슬머리와 짙은 선글라스 아래에서 빛나는 선홍빛 광기어린 눈동자, 뺨을 일그러뜨리며 비웃듯 슬쩍 올라간 입술 틈새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는 그 흡혈귀는 유신이 익히 알고 있는 자였다.

  “베-리-도-트!”

  챙! 유신은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벌떡 일어났고, 단숨에 화이트블레이드를 휘둘러 베리도트를 일단했다. 그러나 양단된 베리도트의 몸은 순간적으로 까마귀 떼로 변하며 산산이 흩어져 버렸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퀘브레의 등 뒤였다.

  베리도트는 유신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주마, 크리올란. 네 사랑스러운 동생에 대한 거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지. 크크큭.”

  마치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며 끊임없이 속삭이듯 그의 음성은 달콤하고 또한 매혹적이었다.

.
.
.

  쩍!

  잘 익은 수박이 통쾌하게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을 든 검은 제복의 쉐발리어가 검과 함께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일도양단되었다. 맨 손으로 사람을 두 조각내버린 프레이저는 그에 멈추지 않고 상체를 숙여 재빨리 몸을 움직였고 뒤이어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탄피와 함께 수십줄기의 예광탄이 어두운 숲 속을 가르며 프레이저가 지나가는 자취를 향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들의 사격은 프레이저의 움직임을 한정시킴과 동시에 근접공격조의 접근을 도와주는 엄호사격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40, 50. 아니 그보다 많나?’

  프레이저는 냉정한 시각으로 쉐발리어들의 규모를 살피며 몸을 움직였다. 벌써 30명 이상은 죽인 것 같은데 그들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수가 더 많아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끝이 없었다.

  사삭!

  또 다시 매복하고 있던 두 명의 그림자가 병장기를 꼬나들고 프레이저의 앞길을 막아섰다.

  “우오오오!”

  콰앙! 탕! 탕! 키 작은 사내가 나무 위를 종횡무진으로 날아다니며 프레이저를 향해 쌍권총을 난사하고 거구의 사내가 괴성을 지르며 전투망치를 무식하게 내리찍었다. 그러나 이 모든 연계 공격도 프레이저에게는 단순히 귀찮은 장난에 불과했고 그는 전투망치와 쏟아지는 총탄들을 가뿐하게 피한 뒤 거구의 턱 밑까지 파고든 다음, 오른손에 검기를 모아 거구의 복부를 향해 강한 일격을 가했다.

  펑!

  프레이저의 주먹에 복부를 관통당하자, 뭉쳐진 검기가 순식간에 뿜어져나와 거구의 전신을 난자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깨끗하게 조각난 탓일까? 피눈물을 머금은 거구 쉐발리어의 눈동자가 프레이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생을 마감했다.

  쉬익!

  그 순간 사방으로 흩어지는 피와 고깃덩어리들의 장막을 뚫고 외팔이 검사의 가느다란 샤벨이 번개같은 속도로 프레이저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덩치 큰 한 놈이 미끼가 되어 굵직한 해머를 휘두르고, 다른 놈은 접전하는 순간까지 프레이저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쌍권총을 난사한다. 이윽고 미끼가 죽으면 동료의 시체를 그림자 삼아 적의 사각을 노리고 가느다란 샤벨로 적의 심장을 꿰뚫는 것이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이것이 쉐발리어가 자랑하는 연계 공격이며 이 공격이야말로 쉐발리어들이 무서운 이유였고 개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는 자들이 강력한 적을 맞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캉!

  그러나 외팔이 쉐발리어의 샤벨은 프레이저의 심장을 꿰뚫지 못했다. 오히려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검끝이 잘려져 나갔고 뭉뚝해진 샤벨은 프레이저의 몸에 작은 생채기도 남기지 못하고 그 역할을 다하고야 말았다.

  “제법이군.”
  “!”

  쉬익! 짧은 감탄사를 끝으로 프레이저가 오른손을 크게 휘두르며 외팔이 검사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지나가자마자 놀랍게도 외팔이 검사의 샤벨은 그의 하나 남은 오른팔과 함께 잘게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외팔이 검사의 머리가 비스듬하게 갈라지며 사방으로 뇌수와 피를 흩뿌렸다.

  투타타타탕!

  외팔이 검사의 생명이 미처 다하기도 전에 프레이저를 노리고 달려드는 수백발의 총탄이 외팔이 검사의 전신을 난자하며 지나갔다.

  탕! 탕!

  동료가 둘이나 죽었음에도 공중을 날아다니며 쌍권총을 난사하는 쉐발리어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공격을 지속했다. 그러나 그 혼자 행하는 모든 공격은 프레이저에게 있어서 귀찮은 날파리정도의 의미밖에 되질 않았으며 프레이저가 가볍게 팔을 휘둘러 무형의 검기를 방출하자 쌍권총의 쉐발리어는 사지가 절단되어 허무하게 땅으로 추락해 절명했다.

  푸슝!

  그 직후, 쉴 틈도 없이 멈춰선 프레이저를 향해 로켓포가 날아들었다.

  “건방진!”

  프레이저는 하얀 꼬리를 매달고 다가오는 로켓을 향해 질렸다는 듯이 소리치며, 두 손을 엑스자 형태로 교차하고 재빨리 휘둘러 검기를 방출했다. 검기에 십자형태로 조각난 로켓포는 중간에서 폭사했고, 로켓포를 방사한 쉐발리어도 네 조각으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 사사사삭.

  그 사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는 쉐발리어들이 프레이저를 둘러싸고 신속하게 몰려들었다. 아군끼리 사격하지 않도록 고려해 물 셀 틈 없이 촘촘한 십자포위망을 형성한 그들의 뒤에서 날카로운 카미코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프레이저? 네 등 뒤에 얹어 있는 장미 십자가의 불은 아직도 밝게 빛나나?”
  “이 정도의 산들바람으론 죽어가는 촛불조차 끌 수 없다. 최후의 장군.”
  “그래? 아직도 쌩쌩하군. 그렇다면 살려달라고 헐떡댈 때까지 몰아붙여주마. 크큭.”

  철컥! 위로 올라가는 카미코프의 손짓에 따라 주변을 둘러싼 쉐발리어들이 중화기로 프레이저를 겨눴다. 가늘게 벌어진 카미코프의 입술 사이에서 금니가 빛날 때쯤 그가 팔을 내리며 소리쳤다.

  “Feuer(fire:발사)!”

  투타타탕! 다시금 어두운 숲 속을 환히 밝히며 프레이저를 향해 수천발의 총알이 십자포화를 그리며 쏟아졌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몸을 웅크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의 주변에서 검기가 폭발할 듯 시퍼렇게 빛을 발했다.

  “12제를…얕보지 마라아아아아아!”

  돌연 프레이저가 기합소리와 함께 웅크리고 있던 몸을 활짝 펼치자, 전신을 감싸고 있던 검기가 돌풍을 일으키며 사방팔방으로 분출되었고 강한 먼지바람과 함께 공중에서 불꽃을 튀기며 총알들이 모두 튕겨나갔다. 그 뿐 아니라 순식간에 십수명의 쉐발리어들까지 눈 먼 검기와 아군끼리의 총격에 휘말려 나무들과 함께 갈기갈기 찢겨지며 쓰러졌다.

  “사격중지! 사격중지!”

  쉐발리어들이 죽은 것보다도 짙은 먼지바람으로 인해 함부로 총을 쓸 수 없게 되자, 카미코프가 다급히 사격을 중지시켰다. 이미 프레이저의 기척은 남아있지 않았고 서서히 걷히는 먼지사이로 보이는 것은 걸레짝이 되어버린 청색 자켓과 캡(cab)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프레이저의 동선을 놓쳤다는 사실에 분개한 카미코프가 자신도 모르게 작은 전격을 방출하며 소리쳤다.

  “녀석을 찾아라! 아직 멀리는 못 갔을 거다!”
  “자, 장군님! 뒤를!”
  “뭣이?!”

  그 때, 다급히 소리치는 쉐발리어의 목소리와 함께 카미코프의 바로 뒤에서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어.”
  “!”

  푸욱! 카미코프가 미처 돌아볼 틈도 없이 그의 심장과 갈비뼈를 뚫고 길쭉한 손이 튀어나왔다. 구릿빛 팔을 감싸듯 새겨진 독특한 가시덩쿨 문신과 손의 윤곽에서 희뿌옇게 빛나는 투기…. 그 손의 정체는 바로 프레이저였다. 웃옷은 모두 찢겨져나가 장미에 휩싸인 은빛 십자가가 등 위에서 꿈틀거리며 그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몸을 둘러싼 검기도 분명하게 옅어진데다가 숨까지 헐떡거리는 것이 방금 전 공격에 사활을 걸고 대부분의 기를 방출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수적으로 열세인 프레이저 쪽이었고, 도박이긴 했어도 왕을 노리는 것이야말로 불리한 상황을 타파할 최고의 묘수였던 것이다.
  
  “커, 커걱!”

  카미코프는 목구멍에서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팍을 뚫고 삐져나온 프레이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체, 체크 메이트로군. 이, 이 내가. 이토록… 허무하게. 쿨럭.”

  카미코프의 허탈한 목소리에 프레이저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냉정하게 답했다.

  “…내가 12제라는 사실을 간과한 네 녀석의 오만을 탓해라, 최후의 장군.”
  “크아아아아악!”

  뿌드득! 프레이저가 팔을 비틀며 천천히 손을 빼내자 카미코프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카미코프 또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없었고, 그는 최후의 힘을 짜내어 빠져나가려는 프레이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아닛?!”
  “쿨럭. 나만 가면 섭하지. 쿨럭쿨럭. 그렇지 않나? 장미십자가.”
  
  파직! 파직! 생명이 꺼져가는 카미코프의 전신에서 여느 때와는 다른 시뻘건 전격이 튀겼다. 언제나 무표정을 잃지 않던 프레이저의 권태로운 얼굴도 지금만큼은 당황으로 일그러져 손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정도였으나, 기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고 최후의 힘을 다하는 카미코프의 기계손은 그의 탈출을 쉽게 용인하지 않았다.

  “키킥. 키키킥. 캬하하하하하하! 좋아!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전장이다! 죽음의 문턱이란 이 얼마나 유쾌한 순간이더냐! 캬아하하하하하!”

  번쩍! 미친듯한 카미코프의 웃음소리와 함께 망막을 태워버릴 정도의 강력한 번개가 그의 전신을 불태워버리며 솟구쳤다. 순간적으로 팽창하는 공기와 함께 천둥소리가 고막을 찢어버릴 듯 울려 퍼졌으며 시뻘건 번개가 숲을 불태우며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
.
.

  - 키에에엑!

  쿠아앙! 흑룡으로 변한 뇨르그의 거대한 꼬리가 대리석 바닥을 뒤집어엎으며 레이를 공격했다. 그 둘의 싸움이 지속될수록 천장은 무너지고 기둥이 뿌리 채 뽑혀나가고 천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흑마궁이 그 고귀한 풍모를 잃고 급속도로 폐허가 되어갔다.

  『크륵?』

  -캬오오오!

  콰앙! 문득 레이가 뇨르그의 꼬리를 피해 공중으로 뛰어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뇨르그의 억센 앞발이 그를 공중에서 강하게 후려쳤다. 뇨르그에게 일격을 허락한 레이가 폭음을 내며 땅에 내리꽂히자 메두사가 소리쳤다.

  “뇨르그!”
  - 캬오오오오오!

  쿠궁! 메두사의 손짓에 따라 뇨르그는 거대한 발을 들어 레이가 낙하한 지점을 강하게 밟아버렸다. 순간적이나마 ‘승리’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던 메두사였지만, 그녀는 뒤이어 들려오는 짐승의 소리에 이내 자신의 생각을 부정해야했다.

  『크르르…』

  놀랍게도 뇨르그의 거대한 발을 양 손으로 밀어내는 레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메두사는 저절로 “괴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

  레이가 괴성을 지르며 뇨르그의 발을 밀어내자, 놀랍게도 백 톤은 가뿐히 넘을 뇨르그의 육체가 공중에 살짝 뜨며 뒤로 넘어가 버렸다. 비늘을 붙잡고 튕겨나가려는 것을 간신히 버틴 메두사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레이의 모습을 발견하곤 뇨르그를 급히 불러 깨웠다.

  “뇨르그!”
  - 캬아아아!

  메두사의 날카로운 음성에 두 눈을 번쩍 뜬 뇨르그가 육중한 머리를 치켜세우며 입을 쩍 벌려 레이의 육체를 삼켜버릴 듯 달려들었다.

  『캬아아앙!』

  쾅! 그러나 날카로운 사자후와 함께 레이가 주먹을 휘둘러 뇨르그의 턱을 강하게 후려쳤고, 구슬픈 비명을 지르는 뇨르그의 머리가 땅에 내리꽂혔다.

  “꺄악!”

  그 순간 결국 메두사는 비명을 지르며 뇨르그의 머리에서 떨어졌고, 쓰러진 뇨르그의 턱 밑으로 레이가 착지했다.

  - 키아아악!

  뒤늦게 뇨르그가 목을 뒤틀어 레이를 향해 입을 쩍 벌려 달려들었고, 레이는 우렁찬 사자후를 내지르며 양손으로 뇨르그의 윗니와 아래턱을 붙잡았다.

  - 캬아아아아아!

  화르르륵! 그 순간 지옥불보다 더 뜨거운 불꽃의 소용돌이가 뇨르그의 목구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불꽃은 레이의 상체를 뒤덮으며 매캐한 유황냄새와 함께 흑마궁의 현관을 녹여버릴 정도였으나, 아무리 강력한 불꽃이라 하더라도 이 한계를 뛰어넘은 ‘괴물’을 처치할 수는 없었다.

  - 키엑?!

  『크르르르.』

  온통 지글지글거리는 시꺼먼 재로 뒤덮인 레이의 얼굴에서 황금빛의 눈동자가 환히 빛을 발했다.

  『이 정도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우매한 피조물이여!』
  - 끼아아아아아아!

  콰지직! 크게 부풀어오른 레이의 육체가 그대로 뇨르그의 아가리를 찢어버렸다.

  “뇨, 뇨르그! 쿨럭!”

  그 순간 메두사의 입에서 선혈이 왈칵 솟구쳐 올랐고 비명조차 지를 틈 없이 절명한 뇨르그의 거대한 육신이 시뻘건 지옥 불에 휩쓸려 활활 타올랐다.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소환물의 죽음은 메두사의 영혼과 육체에까지 타격을 입히며 그렇게 서서히 소멸해갔다.

  『메두사! 각오는 되어 있겠지?!』

  분노어린 목소리와 함께 불꽃을 뚫고 나온 레이가 메두사에게 천천히 걸어오며 소리쳤다. 매캐한 연기를 지독하게 내뿜는 시꺼먼 몸에선 이미 재생이 시작되었는지 노란 털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이네.’

  죽음이 다가왔음을 깨달은 메두사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워 다가오는 레이에게 말했다.

  “각오는 이미 오래 전에 마쳤습니다. 금수들의 제왕이시여.”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온 레이가 허리 높이까지밖에 안 오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아직 재생을 마치지 않은 시꺼먼 턱에서 잿빛 그윽한 연기를 잔뜩 내뱉으며 소리쳤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이것은 ‘네’ 의지인가? 아니면 ‘그’의 의지인가?』

  그러나 메두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레이를 올려다보며 약간은 쓸쓸함이 내포되어 있는 구슬픈 음색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아직까지도 ‘그’를 두둔할 셈인가!』

  쾅! 레이가 손등으로 매섭게 메두사의 뺨을 후려치자, 메두사가 선혈을 내뿜으며 날아가버렸다.

  “콜록! 콜록!”

  레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연신 피를 토해내는 메두사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아름다운 창포색 머리카락을 잡아채며 분노어린 목소리로 다그쳤다.

  『너를 이런 사지에 몰아넣은 그를 저주하지 않는가! 메두사!』
  “콜록, 콜록. 맘대로 하시지요, 금수들의 왕이시여.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목숨, 삶에 대한 갈망 따위 이미 오래전에 버린 몸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그 구차한 목숨과 함께 사라져라!』

  퍼억! 레이의 날카로운 손이 메두사의 작은 복부를 뚫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손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적포도주를 연상시키는 선혈과 내장조각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레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풀썩 무너져버린 메두사의 새하얀 육체에서 천천히 스며나왔다. 땅을 적시며 빠져나가는 자신의 생명을 바라보며 그녀의 머릿속에 슬며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베리…도트…님.’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붙잡고 있는 것일까? 배가 뚫린 상태에서도 아직까지 숨이 붙어 생을 갈망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이는 매정하게 등을 돌려버렸다.

  푸득. 푸드득.

  그 때, 까마귀의 날갯짓소리와 함께 메두사의 주변으로 검은 깃털이 수없이 내려앉았다. 마치 시꺼멓게 탄 화산재같은 깃털들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메두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아, 와주셨군요.”  

  그 순간 사방으로 흩어지는 검은 깃털들과 함께 베리도트가 그녀의 머리맡에 모습을 드러냈다. 메두사를 내려다보는 그의 선홍빛 눈동자는 짙은 선글라스 뒤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나.”

  조소 섞인 베리도트 특유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천천히 그에게 손을 뻗으며 속삭였다.

  “그래요, 정말 오랫동안…. 너무나도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왔어요.”
  “그런가? 이거 미안하게 됐군.”

  베리도트가 메두사를 배려하듯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눈높이에 맞추자, 피로 물든 메두사의 새하얀 손이 천천히 그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이젠 눈조차 보이지 않는 듯 흐릿해진 눈동자로 베리도트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쫓았다. 마치 죽어서라도 잊지 않겠다는 듯 손으로 그의 윤곽을 그리고,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후훗. 레이디를 기다리게 해선 좋은 남자가 못된답니다. …베리…도트님.”
  “그런가? 크큭.”

  베리도트는 얼핏 쓸쓸함이 내비치는 미소를 짓곤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잡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잠시만 더 기다려다오 메두사. 영원의 시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Ja, mein lieb. Ich warte sie immer(Yes, my love. I am always waiting for you).”

  메두사의 목소리가 사라져가는 생의 마지막 시간처럼 나지막이 사그라지자, 베리도트는 메두사의 손을 부드럽게 내려놓곤 일어섰다. 그는 잠시동안 메두사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짓다가 이내 레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광기에 찌든 선홍빛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레이를 비추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차례인가? 레이군.”
  『베리도트!』
  
  쾅! 레이의 분노어린 손톱이 질풍을 일으키며 베리도트가 있던 공간을 휘몰아쳤다. 베리도트가 가벼운 몸동작으로 그와의 거리를 벌리자, 레이가 황금빛 금수의 눈동자를 빛내며 소리쳤다.

  『변명할 시간을 주겠다! 베리도트!』
  “뭐, 간단한 얘기다.”

  뚜득. 베리도트가 가볍게 손가락 관절을 풀어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모스베라토 카나드 대공과의 싸움 이후 그의 광기가 지금보다 불길하게 불타오르는 것은 본 적이 없었으며, 주변의 공기도 그의 일그러진 표정에 공포를 느꼈는지 일말의 미동조차 없었다. 베리도트가 상어의 그것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따분해진 왕의 단순한 변덕이랄까.”
  『따분하다고? 변덕일 뿐이라고?! 웃기지 마라!』

  쉬익! 한달음에 베리도트가 있는 곳까지 날아온 레이가 괴성을 지르며 그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큭, 큭큭큭. 크크크큭. 크하하하하.”

  퍼드득! 퍼득! 퍼득!
  사사사삭.

  그러나 우르르 무너지는 베리도트의 검은 육신은 광기어린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흡혈거미와 까마귀 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베리도트는 레이를 조롱하듯 그의 등 뒤에서 다시금 육체를 재구성하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즐겁다. 레이! 더! 더욱 더 나를 즐겁게 해다오! 이 따분한 세상에 다시금 눈 돌리도록 만들어봐!”

.  
.
.

  “헉. 헉. 헉.”

  한편 카미코프의 번개에 휩쓸렸던 프레이저는 놀랍게도 그 참상 속에서 혼자 살아남아 있었다. 카미코프의 번개가 몸을 불태워버리려는 순간 오른팔을 절단하고 재빨리 몸을 피한 것이다. 지금 그의 오른팔은 상완의 중단부분이 깨끗하게 절단되어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우욱…!”

  돌연 프레이저가 피를 왈칵 토해내며 고꾸라졌다. 몸에 남아 있는 검기를 최대한으로 뽑아내어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지만, 이젠 더 이상 움직일 기운조차 없었다.

  ‘나, 나는. 죽을 수…. 없어. 놈, 놈을 죽여야만….’

  그는 왼팔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그만 균형을 잃고 볼썽사납게 쓰러졌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는 몽롱해지는 의식으로 자신이 죽인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얼굴을 잊어버린 것은….

  저벅. 저벅. 저벅.

  그의 흐릿해져가는 귓가에 누군가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누군가는 프레이저의 머리맡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프레이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가는 마당에 자신을 죽일 자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

  이제서야 기억났다. 길게 땋은 잿빛의 머리카락과 유일하게 자신의 것과 닮아 있는 사파이어색의 빛나는 눈동자. 약간 마른 얼굴에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까지. 늘 엄격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남자였지만 훈련을 끝내면 언제나 인자하게 웃어주던 남자. 그리운 얼굴이 지금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는 자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쿤, 미안해. 정말. 나는.”

  갈망하던 것을 쫓듯 프레이저의 손이 그를 향했다. 메마른 눈동자에서 눈물이 물밀듯이 솟구쳐올랐다.

  ‘쿤, 미안해. 정말. 나는.  이, 이럴 생각이…. 하, 하지만 내, 내가 어째서 이런?’
  
  쏟아지는 선혈과 어린 프레이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작은 단도. 눈물이 얼굴을 가득 적시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복부에 꽂혀있는 작은 단검에서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말을 더듬는 그의 머리에 쿤의 따스한 손이 내려앉았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모든 것을 잊고 자거라. 내일 아침쯤이면 악몽은 모두 사라질게다.’

  “나는… 나는….”

  현실로 돌아온 프레이저는 용서를 구하듯 쿤의 얼굴을 한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탕!

  그러나 프레이저에게 돌아온 것은 머리를 헤집는 뜨거운 총탄 세례였다. 쿤의 얼굴을 한 그 남자는 싸늘하게 굳어가는 프레이저의 머리맡에서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편히 쉬시오, 프레이저. 모든 것은 ‘그 분’의 이상을 위해.”

  이반 아이작은 가면으로 ‘가짜 얼굴’을 가리며 숲의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 얼굴은 프레이저의 마지막을 위한 최후의 자비. 이제 더 이상은 필요 없었다. 그렇다고는하나 불살이란 이름이 무색하게도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죽인 이반의 얼굴은 놀랍도록 무표정했다. 아니, 애초에 그 얼굴은 가짜. 이반 자신은 자신의 원래 얼굴과 표정을 잊은 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조차.

.
.
.


  휘이이잉.

  불꽃을 머금은 뜨거운 바람이 하이드레드 공작가를 휘감고 있었다. 재로 변해가며 떨어지는 건물의 잔해 속에서 수십 개의 은색 총검(Bayonet)에 몸을 꿰뚫린 콘라드 공작은 죽어가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자신을 죽인 아름다운 여동생의 환영을 바라보았다. 크롬웰 백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건만 그의 가늘게 떨리는 팔은 아직도 아름다웠던 여동생의 뒷모습을 쫓아 움직이고 있었다.

  “크, 롬…웰. 가여운….”

  툭. 결국 콘라드는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하고 무거운 몸을 힘없이 떨궜다. 방 안을 휩쓰는 불꽃은 이내 그의 육신과 건물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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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화가 너무 길어짐에 따라 마지막으로 어지러운 당신을 위해 제가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길로틴 배신 -> 자폭 테러 등등으로 진마국 중추부를 붕괴시키고 전멸
쉐발리어 -> 카미코프의 자폭에 휘말려 전멸

지금 저스티스의 각종 특수부대들은 진마국을 철저하게 재로 만들어버리며 혈맹성으로 진군중.

메두사 死

프레이저, 카미코프 死

콘라드 死

유신은 메두사에 의해 안개숲으로 날아가버리고,

발터는 지금 열나게 살아남은 프리벤터 요원들을 구하고 있음.

마지막에 베리도트와 레이의 전투씬을 다르칸님께 넘기면서~ 길게도 끌어온 33야를 마침니다!

(어잌쿠! 홀가분해라!)


PS : 제 케릭들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을 기다려주신 아란님께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PS2 : 거의 최종화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이라 무리 좀 했습니다~ 다르칸님 다음화 부탁드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