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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Flame Blaze

2006.03.20 03:38

갈가마스터 조회 수:118 추천:1

extra_vars1 겨울의 지배자 
extra_vars2 Fire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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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e]

  그것은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시계추처럼 양 옆으로 흔들리는 금화의 움직임과 은발머리 소녀, 네야의 몽환적인 음성. 마치 자장가같은 그 음성에 내 의식은 저 어둡고 차가운 심해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팔 다리의 감각과 전신의 감각을 연이어 잃고 발아래로 펼쳐진 끝없는 무저갱의 틈새로 침몰해간다.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하는 느낌, 그와 동시에 어머니의 품속에서 포근한 잠에 빠져드는 느낌에 두뇌조차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 그 안정된 무중력 공간의 끝이 어디에 도달할 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작은 곧 끝이 있기 마련이고, 어둠의 끝에는 빛이 나타나기 마련이란 말이 있듯, 발아래의 한 점에서 시작된 빛이 내 망막 전체를 새하얗게 물들인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어두운 밤을 밀어내는 새벽의 여명 속에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천천히 눈을 뜬다. 백열광에 노출돼 흐릿한 시야 사이로 뜨겁게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빠아앙! 아직도 몽롱한 의식 사이로 육중한 트럭의 경적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꿈속을 헤매듯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자,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트럭과 경악하는 운전자의 표정이 뚜렷하게 보였다.

  “은태야! 위험해!”
  “아…?”  

  귓가를 때리는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누군가 급하게 내 뒷덜미를 잡아당겨 준 덕에 트럭은 아슬아슬하게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트럭 운전수는 운전석 안에서 뭐라뭐라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그대로 내빼듯이 사라져버렸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낭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가 무척이나 귀에 익어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그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고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우선 어깨까지 짧게 깎은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태양을 등에 업은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나를 걱정스럽게 주시하는 그 진주같은 검은 눈망울을 보자, 왠지 모르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얘? 얘? 은태야! 정신 좀 차려봐!”
  “아?”

  그렇다, 이 사람은 나의 누나다. 이름 주희, 나이 11살에 나보다 2살 위인 조숙한 사람이었다. 어째서 그걸 잊고 있었지? 그런데 누나의 머리카락이 저렇게 흑단처럼 윤기 있는 흑발이었나? 눈동자도 검은 색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복잡한 머릿속에 문득 어떤 영상이 뿌옇게 그려졌다.

  ‘은태야.’

  바람에 흐느끼듯 흩날리는 붉은 머릿결. 나를 바라보는 그 애처로운 석류색 눈빛. 내 이름을 부르는 나긋하고 슬픈 음성. 누굴까? 이 기억은 대체….

  “은태야!”

  때마침 누나가 크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는 상념에서 간신히 깨어날 수 있었다. 깜짝 놀라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화난 얼굴의 누나를 바라봤다. 잔뜩 찌푸려진 아미에 ‘나 열받았어’라는 듯 작은 실핏줄 몇 개가 솟아있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누나 깜짝 놀랬잖아! 왜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넋을 놓고 서 있어?”
  “아, 미, 미안해. 근데 누나는 여기에 웬일이야?”

  아직도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인 머리로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그에 대한 누나의 대답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누나는 내 이마에 잠시 손을 대고 열을 재보더니

  “열은 없는데?”

  라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손에 든 봉투를 어깨 높이로 들어 보였다. 가볍게 흔들리는 OO마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비닐봉투, 안에는 파를 비롯해 각종 반찬거리들과 과자가 들어 있었다. 그제야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났다.

  “아, 맞아. 엄마 심부름으로 장을 보고 있었지.”

  아직도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어느 정도는 맑아진 것 같았고, 누나는 내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걱정스럽게 굳혔던 아미를 활짝 피며 말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오늘 너 나에게 빚 하나 진거야.”
  “아, 응. 고마워 누나. 이 빚은 나중에 꼭 갚을께.”

  누나가 활짝 눈웃음 짓는다. 꽃보다도 화사하게 빛나는 듯한 그 사랑스러운 웃음은 누나의 전매특허나 다름없었고 지금 이 순간 복잡한 내 머리를 상큼하게 만들어주는 각성제 역할도 되어주었다.

[Introduce out]

.
.
.

[interlude]

  네야 프로즌 리버, 과거 캐서린이란 이름을 가지고 은태에게 접근했던 이 은발의 소녀는 지금, 혼이 날아간 듯 초점없이 축 늘어진 은태 앞에 다소곳이 앉아 그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아.”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은태의 간절한 눈빛을 접해 어찌어찌 최면술을 걸긴 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찜찜한 구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끊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과연 좋은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을까?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요’다. 평범한 사람이 기억의 단편을 무의식중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면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기억인지 쉽게 판단이 가능하지 않은가.

   십중팔구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슬프고 괴로운 기억이리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기에 네야는 지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만약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바로 깨워줄 요량으로 그녀는 은태의 상태에 세세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흐음? 우리 귀여운 고양이께서 왕을 어디로 보내신 걸까?”
  “!”

  갑자기 들려온 비아냥거리는 음성에 네야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어두운 방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창문, 그리고 그 빛의 뒷켠에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차이나드레스풍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앵두같은 입가에 물려있는 기다란 담뱃대와 입술 아래에 옥의 티처럼 박혀있는 검은 점. 비록 물결치듯 내려오던 풍성한 머리카락을 위로 치켜 올려 비녀를 꽂아두었지만, 틀림없었다. 그녀는 바로 준 페이였다.

  “후우.”

  준 페이의 입에서 기다란 연기가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치 연못 속에서 잠자는 교룡처럼 조용하면서도 격렬하게 움직이는 담배연기가 어두운 대기 중에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났다.

  네야는 순간, 벌떡 일어나 본능적으로 준과 은태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봐? 설마 날 방해할 생각?”

  준이 흥미롭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경멸이 가득 섞인 오만에 가까운 그녀의 음성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보잘 것 없는 힘에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준은 담뱃대를 다시 입에 물고 입가를 길게 찢어 올리며 말했다.

  “량.”

  그 순간, 네야의 뒤편에서 거짓말 같이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마치 주변 배경에 녹아 있었던 듯 투명하게 일렁거리던 몸이 원래의 회색 빛깔을 찾아가며 코트를 입은 사내의 모습으로 변했고, 사내는 급하게 몸을 돌리는 네야의 왼쪽 어깨의 혈도를 빠르고 단순명료한 동작으로 찔렀다.

  “아?”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네야는 그대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신의 모든 기운이 한 번의 공격으로 모두 빠져버린 것이다. 이건 분명, 그림자의 린 가문 중에 ‘이령(李靈)가(家)’ 전승의 혈도 집기였다. 전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경락을 연구하는 이령가 독자의 마술. 한 번의 시선으로 생물체의 기의 흐름을 모조리 파악하고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동작으로 그 기(氣 : 마력, 에너지, 생명력)의 유동을 정지시키는 마술 아닌 마술로서, 페이가의 사람들이 사용한다면 가장 무섭다고 할 수 있는 마술이었다.

  “아, 아… 아.”

  떨리는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네야의 시야에 가늘게 웃고 있는 량 페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회색 중절모 아래, 하얗게 빛을 내는 안경 너머로 색 바랜 무심한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이, 당분간만 가만히 있어 주면 돼. 나라고 ‘프로즌 리버’가의 ‘명예로운 죽음’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명예로운 죽음’, 네야는 그것을 떠올리자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원천(링커 코어)’을 잃은 자에게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하는 ‘프로즌 리버’의 처벌 의식. 그것을 떠올리자마자 준의 앞을 가로막을 때와 같은 실낱같은 용기따윈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좋아, 착하지 귀여운 은색 고양이.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 가여운 목을 잠시나마 붙여둘 수 있을 거야.”

  준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네야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량의 옆에 멈춰 서서 멍하니 앉아 있는 은태의 모습과 침대에 누워있는 플레임 블레이즈, 즉 주희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노려보며 그녀의 머리맡에 다가갔다.

  “왠지 흥이 안나네. 이렇게 조용해서야. 그 동안 고생한 것이 말짱 헛거 같잖아.”
  “오늘따라 불만이 많군, 준. ‘용황정(龍皇庭)’의 늙은이들이 주문한 걸 잊지말라구.”
  “알아. 날 바보로 아는 거야?”

  준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누워있는 주희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아름다운 꽃은 쉽게 꺾이는 법이지. 가련하게도….”

  준은 주희의 볼에서 손을 내리고 뒤돌아섰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는 량에게 싸늘하게 미소 지며 말했다.

  “처리해.”
  “하아. 귀찮은 건 전부 내 차지인가.”

  량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양 옆으로 설레설레 젓고는 주희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섰다.

  “거기까지.”

  갑자기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에 량과 준은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어느 사이엔가 활짝 열려있는 창가에 한 남자가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었다. 싸늘하게 빛나는 노란 야수의 눈동자와 푸른빛이 도는 백색의 장발이 겨울바람에 실려 살랑거리고 있었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그의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 이상 다가선다면 ‘페이 가문’이고 뭐고 이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없애버릴테다.”

  위협조 섞인 그 목소리에 준은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헤에? 귀여운 강아지가 화를 내니 더 귀여운 걸?”
  “지금 같은 상황에 농담이 나와? 하여간에 너란 녀석은….”
  “훗, 내 순수한 감탄사를 농담으로 치부하지 말아줘.”
  “하아. 그래그래. 그나저나 어째 계획이 틀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군.”

  량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안경 너머 탁한 흑색의 눈동자로 잭을 노려보았다.

[interlude out]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예상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장과는 꽤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집이지만, 오는 내내 누나랑 담소를 나눈 덕에 시간이 그만큼 짧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말이지. 내가 그 녀석의 엉덩이를 이~렇게 걷어 차줬다니까.”

  누나는 발을 크게 휘두르며 엉덩이를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그에 맞춰 맞장구치며 크게 웃었다. 그러면 누나는 화사하고 더 없이 사랑스러운 미소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누나는 밝았다. 학교에선 여장부라고 불릴 정도로 씩씩하고 건강했으며, 주변에 친구도 무척 많았다. 그에 반해 나에겐 오직 누나가 전부였다. 누나의 미소와 따듯한 대화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었다.

  “어? 벌써 다 왔네.”
  “후우, 그러게.”

  나는 한숨을 크게 쉬며 대문 앞에 섰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초인종을 향해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 순간이었다. 누나가 나에게 소리친 것은….

  “은태야!”

  나를 와락 안고 도망치듯 누나가 문에서 멀어졌다. 그 순간, 시뻘건 불꽃이 담벼락 너머 우리 집의 모든 구멍에서 용암이 분출되듯 뿜어져 나왔고,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집이 돌연 폭발해버렸다.

  “아?”

  황급히 내 시야를 가리는 누나의 팔 때문에 그 끝을 볼 순 없었다. 단지 망막을 불태워버리는 새하얀 불꽃에 순간 시력을 잃어버린 것 그리고 고막을 뚫고 뇌를 울리는 그 소음에 순간적으로 기억이 연소되었다는 것이 내가 이해하는 전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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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lude]

  콰가가각!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잭의 날카로운 손톱이 허리를 굽힌 량의 머리를 지나 벽을 핥기고 지나갔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마치 연한 두부처럼 부수는 잭의 손톱은 그만큼 빠르고 강력했지만 요리저리 피하는 량의 몸놀림에 그는 마치 농락이라도 당하듯 심한 짜증을 느꼈다. 게다가 아까부터 손가락으로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찌르려고 드는데, 뭔가 강한 불쾌감 같은 것을 느껴 피하긴 했지만 자신의 화를 돋우는 것만 같았다.

  “반월문(半月門) 개(開).”

  그 틈을 타 준의 낭랑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담뱃대가 황금빛 한자에 빠르게 물들어갔다. 독특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오른손이 수인을 맺자, 한자들은 더욱 강한 빛을 내뿜었다.

  “이런 빌어처먹을!”

  잭은 그제야 저 량이란 놈이 자신을 유인했다는 걸 깨닫곤 재빨리 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준의 주문은 완료되어 있었고 그녀는 검지로 잭을 가리키며 외쳤다.

  “중력간섭(重力干涉) 압(壓).”

  쿠구궁! 그녀의 영창과 함께 잭이 있는 땅이 움푹 파이며 어마어마한 압력이 잭을 찍어 눌렀다. 등에 10톤 이상의 무게를 짊어진 듯 등을 구부린 잭은 이빨을 뿌드득 갈곤 소리쳤다.

  “큭! 웃기지마라!”

  잭이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서자, 그의 발아래가 두텁게 쌓인 눈 위를 걸을 때처럼 푹 꺼져버렸다.

  “캬아아아아아아!”

  그는 그렇게 한발자국을 내딛은 채 돌연 허리를 뒤로 크게 젖히며 거칠게 포효했다. 그의 상의가 터질듯 크게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귀청을 찢을 듯한 폭음에 집안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나갔고 그의 주변에 펼쳐져 있던 준의 중력 결계가 파공음을 내며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크르르르.”

  그리고 결계가 펼쳐져 있던 곳엔 한 마리의 거대한 은빛 늑대 인간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서 있었다. 결계가 흩어진 것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 항마력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잭에게 물리적인 의미가 없는 마술 공격은 전혀 타격이 될 수 없었다.

  “…….”

  준은 자신의 결계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이런 것쯤은 예상했다는 듯 여유롭게 담배를 입에 물었고 냉소하며 잭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크앙!”

  잭이 노란 눈동자를 불태우며 준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단 일보에 준이 있는 곳까지 날아간 잭은 그 커다란 손톱으로 준의 정수리를 부숴버릴 듯 내리쳤다. ‘쾅’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땅이 폭삭 주저앉았지만, 정작 목표물인 준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손톱에 갈기갈기 찢기려던 순간 공간이동 마술로 신기루처럼 사라져 잭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잭의 뒤쪽, 좁은 방 한 구석에 나타난 준은 흐느적거리듯 손을 활짝 펼쳐 잭의 머리 위를 겨누며 소리쳤다.

  “중력간섭, 압!”

  콰르릉! 그대로 잭의 머리 위 지붕이 폭삭 주저앉았다. 강력한 콘크리트 지붕과 철근은 순간적으로 가해진 5천톤 가량의 무지막지한 압력을 견뎌내지 못했고 곧 강력한 무기가 되어 잭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크아아앙!”

  하지만 잭은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괴성과 함께 자신을 깔고 뭉개는 기자재들을 부숴버리며 준을 향해 달려들었고 곧 그의 무지막지한 손톱이 준을 찢어발기기 위해 강하게 휘둘러졌다.

  그러나 준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왜곡술(歪曲術) 발동, 축(縮)!”

  그 때,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돌진하는 잭의 코앞에 돌연 량의 주먹이 공간을 뚫고 나타났다. 마치 공간을 꿰뚫듯이 나타난 그의 주먹은 강철 같은 잭의 코뼈를 부숴버리며 후려쳤고, 잭은 이내 코피를 줄줄 내뱉으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는 크게 놀랐다. 량은 분명 오른쪽 1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갑자기 주먹이 공간을 왜곡하고 나타난 것이다. 잭은 그것에 심하게 당황하여 뒤로 물러섰다. 짐승의 본능이 그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간간섭(空間干涉) 이(移)!”

  그 때, 주문 소리와 동시에, 뒤로 물러나는 잭의 코앞에 돌연 량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량은 잭이 미처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발을 크게 휘둘러 그의 턱을 후려갈겼다. 크게 휘청거리는 잭을 향해 땅에 착지한 량의 공격이 이어졌다.

  “축!”

  잭의 복부를 노린 량의 오른손이 중간에서 환영처럼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옆에서 불쑥 튀어나와 잭의 허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량의 손바닥이 그의 허리를 강타하자, ‘펑’하는 파공음과 함께 내부를 파괴하는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이 일격에도 잭은 쓰러지지 않았다.

  “크아앙!”

  잭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손톱을 휘두르자, ‘엇차’하는 기합과 함께 사라진 량이 이번엔 잭의 뒷머리 쪽에서 나타나 그의 정수리를 발꿈치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땅이 푹하고 꺼지며 잭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뇌를 직접 타격하는 공격을 받아서인지 곧바로 일어서지는 못했다. 잭의 괴물같은 회복 속도를 생각하면 이 타격자체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준이 그의 회복 시간을 순순히 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량이 다시 신기루처럼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손가락 사이에 황금빛 한자들을 내뱉는 담뱃대를 끼고 빙글빙글 돌리며 주문을 읊었다.

  “만월문(滿月門) 개(開),”

  황금빛의 한자들이 담뱃대 주의를 맴돌며 진을 구성하자, 그녀는 담뱃대의 끝으로 잭을 가리키며 주문을 영창했다.

  “오의(奧義), 환룡(幻龍)의 검진(劍陣).”

  쩌적! 그 순간 잭 주변의 공간에 마치 검으로 베기라도 한듯 수십 개의 상처가 새겨졌다. 그리고 그 벌어진 공간의 틈 사이로 수백 개의 수정같이 투명한 검들이 총알처럼 튀어나오더니 사방팔방에서 잭의 전신을 무차별적으로 난자하며 땅에 박혔다.

  “크아아아아앙!”

  폭우같은 검의 비 속에서 피륙을 꿰뚫는 끔찍한 소음이 이어지고, 전신에 무색투명한 검 수십 개가 박힌 잭이 피를 흩뿌리며 주저앉았다. 검은 이내 새벽이슬처럼 흐릿해지며 사라졌지만, 잭의 상처는 평소와는 달리 순식간에 아물지가 않았다. 오히려 검이 사라지자마자 전신에서 피를 소나기처럼 내뿜으며 땅에 쓰러져버렸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 검들은 육체를 공간채 베어버리기 때문이다. 공간이 직접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재생력이 강하다고 한들 육체가 재생될 리 만무했다.

  뚜벅. 뚜벅.

  량은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잭의 머리맡을 천천히 돌아 준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단단히 열이 받으셨나보군. 이걸 쓸 줄이야. 타이밍이 1초만 늦었어도 같이 꼬치가 될 뻔했잖아.”
  “멍청하긴. 당연하잖아, 시간을 끌었다면 우리가 더 불리해졌을걸. 이봐 량. 혹시나하니 혼자서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준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묻자, 량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 ‘화이트 팽 클럽’의 미친개를 상대로 혼자 싸웠다면 아무리 나라도 위험했겠지. 그나저나 이거 좀 분한 걸?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서는 절대 이기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니 말야….”

  량이 사뭇 시무룩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자, 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분할 것까진 없어, 량. 비록 녀석이 지금은 꼬리를 말고 있다지만 예전엔 중재자들도 두려워할 정도의 광전사였으니까말야. 그리고 너도 특기인 ‘혈도 집기’를 쓰지 않았잖아.”
  “아니, 쓰긴 썼는데 말이지….”

  량은 잠시 혈액의 바다에서 꿈틀거리는 잭을 바라보곤 씩 웃으며 말했다.

  “낌새를 챘는지 녀석이 다 피해버리더라고. 정말 짐승이란 녀석은 귀찮은 놈이야.”
  “짐승의 본능은 인간도 예측할 수 없는 각종 재앙조차 피해간다고들 하지. 애시당초 잔재주가 통할 상대가 아니란 뜻이야. 새겨듣도록 해.”
  “예에, 마님. 어련하시겠습니까.”
  “후훗, 그것보다 우린 할 일이 있었지 아마?”

  준은 아직도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네야 프로즌 리버와 축 늘어져 있는 은태를 바라보곤 곧바로 주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Interlude out]
  
.
.
.

  …….

  “은태야! 은태야!”

  흐릿한 누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하고 울린다. 하지만 대답은커녕 이상하게 전신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보이는 것도 없었다. 누나가 아직도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걸까? 아, 눈을 감고 있었구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꺼풀은 무거운 것이라도 매달고 있는지 무척 뜨기가 힘들었다.

  보고 싶어! 누나의 얼굴이 보고 싶어! 온 몸의 힘을 모두 눈에 끌어와 간신히 두 눈을 열어본다. 희뿌연 안개같은 것에 둘러싸인 누나의 희미한 영상이 들어왔다. 먼지를 수북이 쓰고 있는 피투성이 얼굴에 가늘게 떨고 있는 검은 진주 같은 눈동자가 눈물에 울먹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나의 목소리는 먼 산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았다. 누나는 내가 눈을 뜬 것도 모르는지 하염없이 날 부르짖을 뿐이었다.

  ‘어? 그나저나 누나는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왜 목소리가 멀지?’

  누나의 목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들린다. 혹시 누나의 저 모습도 꿈속의 모습이 아닐까? 졸려, 추워, 더 없이 피곤해. 이젠 쉬고 싶어. 추위에 몸을 말 기운도 없이 내 의식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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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lude]

  뚜벅. 뚜벅.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들려온다. 량 페이, 저주받을 지옥의 사자가 피투성이 잭을 지나 주희를 향해 다가가는 소리다. 마치 시계의 초침같은 규칙적으로 돌려오는 끔찍한 소리는 이내 네야를 지나, 은태를 지나, 침대에 누워 신음하는 주희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왜 이다지도 무력한가? 네야는 전신이 마비된 채 가늘게 떨고 있는 자신의 몸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힘이 없는 자의 분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

  ‘하지만, 내가 싸울 이유가 없잖아?’

  네야는 문득 분노하는 자신에 대해 의문점을 던졌다. 생각해보면 이곳에 온 이유도 단순히 엉망이 된 불꽃의 파괴자를 보며 마음껏 비웃어주기 위해서였으니까.

  ‘내가 플레임 블레이즈 따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할 이유는 없어. 그렇다면 나는 왜 분해하는 거지? 뭣 때문에?’

  네야는 한참을 생각했다. 1초가 마치 1시간이라도 되는 듯 주변의 시간은 느릿하게 유동했다. 하지만 답은 쉽사리 나와 주지 않았다.

  “어?”

  주희의 옆에서 량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는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서 맴돌았다. 준이 담배 연기를 짙게 내뱉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거… 경락이 보이지 않아.”
  “뭐? 설마….”

  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량을 노려봤다.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정확히 말하면 ‘이터널 블레이즈’가 보이지 않아. 용황정의 늙은이들, 보이지도 않는 걸 어떻게 적출하라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기가 가장 많이 응축되어 있는 부분이 있을 거 아냐? 그 녀석이 생물이라면.”

  량은 주희의 이마와 심장과 배꼽 아래를 천천히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일반적으로 이곳에 가장 큰 기가 유동하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그게 없어. 전신이 하나의 용광로같다고나 할까? 나 이거 참, ‘이령’가에서 이걸 봤다면 기절초풍했겠는 걸? 세상에 이런 생물체가 있었다니.”

  놀랍다는 듯이 얼굴에 이채를 가득 내뿜으며 주희를 살펴보는 량의 모습에 준이 코웃음을 흥하고 내뱉으며 말했다.

  “뭐, 상관있어? 계획이 잠시 변경되는 것뿐이야. 영원의 불꽃을 빼앗지 못한다면 적어도 목숨은 빼앗아야지.”
  “으음. 안타깝군. 최고의 연구대상이 눈앞에 있는데 말야.”

  량은 한숨을 크게 내뱉으며 주희의 심장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그 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내지르는 비명소리. 은태가 내뱉는 고통의 신음소리였다. 갑자기 발광을 시작하는 은태와 그것을 두려운 얼굴로 바라보는 네야. 은태는 초점없는 두 눈동자에서 눈물을 가득 내뿜으며 몸을 감싸 안고 바닥에 엎드렸다.

  “아퍼! 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아퍼!”

  마치 시베리아의 얼음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진 사람처럼 벌벌 떨며, 끊임없이 아픔을 호소하는 은태의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 미쳤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깨워줘야 해!’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깨워줘야 한다! 네야는 지금 반쯤 정신 나간 은태의 모습에 심한 공포심을 느꼈다. 자칫 잘못하면 은태가 정신적인 트러블로 인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할 나위 없는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털썩!

  억지로 몸을 움직이자 네야는 그만 얼굴부터 볼썽사납게 쓰러지고 말았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떠올렸다. 량에게 혈도를 짚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다시금 절실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발버둥을 치다가 이젠 꼼짝도 않는 네야의 모습을 보며 준이 낮게 조소했다.

  “이런, 발버둥치는 모습도 참 귀엽네? 천박하긴.”

  준은 우아하게 네야에게로 다가와 그녀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짙게 내뱉으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사랑하는 님’은 ‘우리’가 친절히 모실테니까.”

  준은 그렇게 말하곤 네야의 귓가에서 멀어져갔다.

  “…….”

  네야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갔다. 페이가의 손에 은태가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 네야의 머리가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성에 의한 회전이 아닌 감정에 의한 거친 소용돌이가 그녀의 뇌를 넘어 전신에 급속도로 퍼져갔다. 결론은 쉽게 도출되었다.

  죽는다. 은태는 왕의 힘과 생명을 모조리 적출당하고 마치 쓰레기처럼 ‘용황정 안뜰’이라고 불리는 시체 처리소에 묻힐 것이다. 자신들의 영생을 위한 왕의 탈취, 그것이 페이가의 목적이며 페이가가 이때껏 알게 모르게 자행해온 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중재자의 일을 해온 ‘프로즌 리버’가에서 자신을 여기로 보낸 것도 차기 ‘왕’을 페이가를 비롯한 다른 외세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안….”

  ‘안돼’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전신을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네야는 분노했지만 몸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단지 꿈틀거리는 것이 전부….

  왜 이리도 무력한가! 손가락조차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성대조차 진동해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자신은 단지 피가 흐르고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인형에 불과하지 않은가.

  두근.

  그 때, 심장의 맥동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넘어 뇌까지 울려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벅찬 느낌에, 어째서인지 지금까지 뇌를 연소시키던 분노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두근.

  두 번째 맥동. 시계(視界)를 돌려본다. 모두 멈춰있다. 아니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량의 창 같이 뻗은 손은 주희의 심장을 향해 느릿하게 다가섰으며 준은 몸부림치는 은태의 옆에서 그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 저 여자는 은태의 정신이 붕괴되든 말든 상관없겠지. 단지 꿈틀거리는 벌레가 재밌어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리라.

  두근.

  세 번째 맥동. 그 영원같던 순간이 지나가자 주변의 시계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갑자기 촉감이 예민해지며 주변에 흐르는 공기와 마력(mana)의 유동이 느껴졌다.

  더 할 나위 없이 충만하다. 지금 이 공간에 들어차 있는 마력의 흐름은 감히 지구 전체에 비견할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으며 전신을 압박해오는 마력의 무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소녀여.』

  룬어? 갑자기 들려온 환청 같은 소리에도 네야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운 룬어의 음성을 듣자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룬어의 신비한 떨림은 마치 신성처럼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목소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얼어붙은 강의 의지를 잇는 자여. 왜 그리 떨고 있는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힘이 없는 것에 대한 분노?』

  『아니면 단순한 공격성인가.』

  갑자기 목소리의 톤이 바뀐다. 어떻게 들으면 서릿발 같은 노인의 지혜로 그득한 속삭임 같았고, 젊은 기사의 용맹스러운 외침 같기도 했으며, 자애롭기 그지없는 호수의 여신처럼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있기도 했다. 하긴 그것도 당연하리라. 저 음성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다. 이 공간에 가득 차 있는 마력(mana)들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저마다 전파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그녀에게 의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테니까.

  네야가 어찌할 수 없는 경외감에 침묵하자, 저마다 떠들던 목소리들이 단 하나의 음성으로 통일되었다.

  『소녀여, 그대에게 흥미를 가진 자의 의지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 왔다.』

  『듀랜달.』

  “듀랜…달,”

  네야는 천천히 그 ‘이름’을 되새겼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 이름 자체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많은 생각을 할 순 없었다. 지금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만도 그녀의 뇌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지배자. 그것이 그를 부르는 영광스러운 명칭.』

  『우리는 그의 부탁을 받아 너를 인도하리라.』

  『얼어붙은 세계, 그가 이루고 있는 세계의 중심으로 우리들이 인도하리라.』

  갑자기 시야가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물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눈으로 하염없이 뒤덮인 세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곳은.”

  『나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사방팔방에서 울려오는 굵직한 음성에 경직된 고개를 들자, 눈밭에 꼿꼿하게 서 있는 지팡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송처럼 새하얀 몸체에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두 마리의 검은 뱀. 뱀들이 향하고 있는 지팡이의 정점엔 싸늘한 백광을 내뿜는 커다란 사파이어가 마치 새로 태어난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아….”

  난생 처음으로 보는 그 경외감에 부닥쳐 네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눈의 입자 하나하나, 거기에다가 볼살에 부닥쳐오는 살파랑의 흐름에서조차 강맹한 마력이 흘러넘쳤는데, 그것은 전부 저 지팡이를 중심으로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 공간 자체가 저 지팡이가 펼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결계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네야는 뭔가에 이끌리듯 지팡이를 향해 한걸음한걸음 다가섰다. 그녀가 지팡이를 잡을 수 있는 위치에까지 도달하자, 차가운 사파이어가 말을 이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얼어붙은 강의 후계자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 힘과 지혜. 그 모든 것을 그대에게 빌려주겠노라.』

  네야가 지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이름은 듀랜달. 과거 나의 주인이었던 ‘웃지 않는 광대’의 못 다한 이상과 꿈을 그대를 통해 이룰 것이다.』

  듀랜달이라는 경외를 잡자, 뇌를 불살라버릴 정도의 거대한 지식들이 마치 둑이 터진 강처럼 네야를 향해 쇄도했다. 잊혀진 고대의 마법들과 지팡이에 쌓여 있는 전 차원의 지식들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강줄기와 더불어 그녀의 뇌 속으로 여과 없이 흘러들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강렬한 마력의 흐름에 네야는 황홀감을 느꼈다.

  『계약은 완료되었다. 나의 의지는 이제 당신의 것이다.』

  와장창! 백색 창연한 빛과 함께 얼음으로 가득한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탄생이 도래했다. 이 세계의 왕을 위해 나와 세계는 축배를 들리라.』


[Interlude out]

.
.
.

  아퍼! 아퍼! 왜 이렇게 아프지?

  추워! 춥다고! 왜 주변은 불꽃으로 뒤덮여 있는데 내 몸은 이리도 춥지?

  ‘어?’

  가늘게 벌어진 시야 사이로 뒤틀린 몰골로 쓰러져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불꽃에 휘감겨 쉴 새 없이 타들어가는 몸과 그 불꽃 사이에서 보이는 얼굴이 꽤나 낯이 익었다. 아아, 그래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엄마.’

  다시 시선을 옮겼다. 엄마의 손을 다정하게 붙잡고 오열하는 아빠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아빠가 원래 왼팔이 없었나? 저렇게 피를 철철 흘리는데 아빠도 나처럼 아플까?

  휘이잉.

  다시금 불꽃 섞인 바람이 지나가자, 아빠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순풍에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불꽃같은 머리카락과 백지보다도 창백한 얼굴 위에 불꽃처럼 빛나는 선홍색 눈동자가 오열하는 아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은 마치 그림자에 뒤덮인 것처럼 볼 수가 없었다. 영상이 흐릿하여 초점을 맞추려 노력하는데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어?’

  펑!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게 여성의 손에 휘감겨 있던 불꽃이 아빠와 엄마를 휘감아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간단하여 마치 영화라도 보는 것 같았다.

  “……!”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기는 한데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문득 시야를 닫고 다시 눈을 뜨자, 붉은 머리의 여자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

  누나는 붉은 머리의 여자를 향해 격정적인 어조로 소리치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 여성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붉은 머리의 여성이 소리친다. 영상은 아까보다 더 흐려져 더 이상 여성의 표정을 식별해낼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성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잠시 동안 이상하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그녀는 이내 누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누나는 이상하게도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플레임 블레이즈가… …라면, … 은태를 …….”

  뭐라는거지? 플레임 블레이즈? 전혀 모르는 단어일텐데 어쩐지 낯이 익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나는 누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분명 아까보다 귀는 명확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누나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끊어져 들려왔다. 뭔가 이상했다.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왜 울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거야? 나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귀와 눈에 온 신경을 집중해 누나의 목소리와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노력했다.

  화르륵.

  아까보다 더 강해진 불꽃들이 누나와 나를 휘감는다. 누나가 여성을 향해 몇 마디를 더 하자,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끊겨서 들려왔다.

  “알았다. 각성하면 죽이겠다.”

  죽여? 누굴?

  “……미안해요.”

  의문을 해결할 틈도 없이 불꽃이 누나의 몸을 휘감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걸까? 나는 서서히 재로 화해가는 누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누… 나.”

  힘겹게 누나를 불러본다. 누나는 불꽃의 기둥 속에서 슬픈 웃음을 짓곤 내 손을 향해 손을 뻗어주었다. 살이 녹아내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검은 재로 화해가는데 누나는 나를 향해 마지막 미소를 지어주고 있었다.

  ‘미안해, 은태야.’

  간신히 잡았다 생각한 누나의 손이 검은 재로 변해 흩어진다. 그와 함께 으스러지듯이 불꽃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누나의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아, 아아. 아아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살갗을 태우는 뜨거운 열기에 눈물조차 말라버려 흐르지 않는다. 이것이 꿈이라면 제발 깨워줘. 내일 아침이면 눈을 뜨고 누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줘. 아빠와 엄마와 누나와 함께 다정하게 식사를 하고 싶어.

  제발.

  내게서 누나를 빼앗지 말아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내 사고와 시야는 그대로 닫혀버렸다.

  “미안.”

  마지막으로 흩어지는 망막 상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내려다보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맺혔다. 한층 뚜렷해진 시야는 아무런 여과도 없이 여성의 창백한 얼굴을 비춰주었고, 그와 동시에 뭔가에 대한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은태야.’

  다정하게 나를 부르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

  ‘은태야.’

  온화함 속에 작은 슬픔을 내포하고 있는 선홍빛의 눈동자.

  “누, 나?”

  그렇게 내 사고는 정지했다.

.
.
.

[Interlude]

  휘이잉.

  어두운 방 안에 갑자기 한기가 섞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

  준과 량은 갑자기 실내를 싸늘하게 식히는 냉기에 고개를 돌려 네야를 바라봤다. 바람은 분명 그녀를 중심으로 불고 있었다.

  “어라?”
  
  네야가 바람에 실려 흐느적거리며 일어섰다. 그것에 놀란 것은 비단 량뿐만이 아니었으며 준은 한없는 불쾌감에 담배연기를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며 말했다.

  “량, 어떻게 된 거야? 네 혈도 집기가 이렇듯 간단하게 풀 수 있는 거였어?”
  “그럴 리가 없잖아! 원천도 없이 내가 막아놓은 혈도를 풀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가!”

  준은 네야 때문에 생긴 불안감이 더 불쾌한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손가락 사이에서 담뱃대를 빙글빙글 돌렸다. 황금빛의 한자들이 마치 꽃잎처럼 담뱃대에서 흩어져 내렸다. 그녀는 담뱃대에 마력을 가득 모아 네야를 가리키며 주문을 읊었다.

  “반월문 개, 중력간섭 압!”

  쾅! 강력한 압력이 네야의 주변 땅을 짓누르며 쇄도했지만 그 중심에 있는 네야와 그녀의 발을 지탱하고 있는 땅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평온했다. 준은 얼굴을 경악에 가까운 짜증으로 굳히며 소리쳤다.

  “결계!”
  “말도 안돼! 원천을 잃은 인간이 결계를 친다고?”
  “이건 또 뭐야! 이 주변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일제히 진동하고 있잖아! 저 년이 무슨 수작을?”

  그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없다는 듯 무아지경의 네야가 앞을 향해 조용히 손을 뻗곤 중얼거렸다.

  “겨울, 눈, 얼음, 얼어붙은 심장, 차가운 지배자.
  싸늘하게 굳은 왕좌에 앉아
  겨울을 지새우는
  고독의 왕이여.
  나 얼어붙은 강의 살얼음판을 걷는 순례자는
  그대의 부름에 응하여,
  지금
  그대의 위대한 이름을 입에 담노라.”

  룬어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목소리. 그 가녀린 손끝에 벌어진 공간의 작은 틈 사이로, 얼어붙은 백색의 빛과 차가움만이 가득한 바람이 마치 폭풍처럼 불어 닥쳤다. 네야는 그 새하얀 균열 속으로 부드럽게 손을 집어넣고 나지막이,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듀랜달(Durandal).”

  쾅! 공간에 균열이 가버리며 망막을 불태우는 백광을 뿜어져 나와 은태의 집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저, 저거!”

  빛의 폭풍이 사라지자, 네야의 오른손엔 두 마리의 검은 뱀에 휘감긴 새하얀 지팡이가 하나 들려있었다. 두 마리의 뱀이 찬양하듯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그 지팡이의 정점엔 새하얀 냉기를 흘리는 사파이어가 지배자의 별처럼 싸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걸.”

  량은 얼굴을 창백하게 굳히며 중얼거렸다. 왜곡술과 혈도집기를 병행해서 공격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녀의 주변에 어느새 겹겹이 둘러싸인 결계들이 그의 술법을 방해하고 있었다. 위험했다. 저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방안의 공기는 성에가 낄 정도로 내려간 상태였지만 등 뒤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고하노라."

  척. 네야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지팡이가 향하고 있는 것은 준이었다.

  “윽! 이거 위험하군!”

  량이 소리치며 준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Forest of Glacial brambles(얼음의 가시나무숲).”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의 앞, 발아래에서 땅을 뚫고 수십 개의 얼음 창들이 튀어나왔다. 마치 가시나무와도 같은 그 창들은 땅을 뚫고 마치 쇠창살처럼 이리저리 얽히며 준을 향해 달려들었고, 준은 경악하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얼음 창들을 바라보았다. 땅을 꿰뚫고 튀어나오는 얼음의 창날들은 분명, 자신의 장기인 공간간섭의 마술 영역이었다. 한낮 프로즌 리버 가문의 사생아 따위가 공간의 틈새를 연결해 자신의 발아래 통로를 만들고 얼음 창날을 생성하다니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멍하니 서 있는 준의 얼굴을 향해 얼음 창날 하나가 빠르게 늘어나며 다가왔다.

  “악!”

  창날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시뻘건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장미 꽃잎처럼 비산했다.

  “이, 이런!”

  때마침 량이 준을 잡아 당겨 품에 안고 재빨리 창문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마치 가시나무처럼 이리저리 얽히며 확장해가는 얼음의 창날들은 건물들을 이리저리 꿰뚫으며 그들이 빠져나간 창문을 벽채로 부숴버리며 쫓아갔다.

  “Stop!”

  와장창! 얼음의 창들은 네야가 지팡이를 거두자마자 사방으로 아름답게 비산하며 얼음 알갱이가 되어 흩어졌다. 네야는 그대로 엉망이 되어버린 창문을 뛰어넘어 마당으로 나섰다.

  “!”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왼쪽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고 네야는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공간을 뚫고 튀어나온 량의 주먹이 그녀의 머리가 있던 공간을 아슬아슬하게 휙 하고 지나쳤다.

  “이런, 역시 안되려나? 성가시군.”

  고개를 들자 준을 품에 안고 공간의 틈새에서 손을 빼내는 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준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왼쪽 얼굴을 부여잡고 네야를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너, 너어….”
  “어, 어이!”

  준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네야를 향해 한발자국 다가서자 량이 그녀를 제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막무가내로 마치 마녀와도 같은 표정으로 소리칠 뿐이었다.

  “놔! 저 년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발겨주겠어!”
  “이런, 어쩔 수 없군.”

  쿡. 량은 준의 혈도를 짚었다. 그러자 마치 수면에라도 빠진 듯 준이 발광을 멈추며 축 늘어졌고, 량은 그녀를 품에 안아들고 네야를 향해 말했다.

  “이번엔 아쉽게도 물러가지만. 이 일로 인해 넌 우리 페이 가문을 비롯해, 그림자의 린 전체의 적이 된 거다. 각오하는 게 좋아.”

  량은 그 말만을 남기곤 노을에 녹아드는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렸다. 홀로 남은 네야 프로즌 리버는 돌연 전신의 기운이 빠져버렸는지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육체의 한계를 가볍게 넘겨버리는 마력량 때문인지 한 번의 마술을 펼친 것만으로 전신의 세포가 요동치고 있었다. 아마 량이 1초라도 늦게 물러섰다면 이 사실을 눈치 챘을 지도 몰랐다.

  ‘그림자의 린에 산개한 가문들의 공적…인가.’

  비록 페이 가문 녀석들의 목적이 불손했다곤 하지만, 왕의 적인 플레임 블레이즈를 도와준 결과가 되었다. 이 일은 페이 가문을 통해 프로즌 리버 가문를 비롯한 전 가문에 통보될 것이고, 진실은 알 필요 없이 자신을 척살하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그야말로 공적, 이젠 린이 마도사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후회되지는 않는가? 은발의 소녀여.』

  듀랜달이 가늘게 떨며 네야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듀랜달을 소환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네야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정도쯤은 이미 각오했어.”

  『그렇다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맞서라. 나와 얼어붙은 세계는 그대와 ‘왕’을 위해 함께 할 것이다.』

  네야는 듀랜달을 쓸쓸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잘 부탁해, 듀랜달.”
  『Yes, my boss.』


[Interlude out]


BGM : DJMAX : Phoenix 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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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닷, 길어서 쓰느라 힘들었어요. 칭찬해주셈!

여튼 이렇게 준 페이의 얼굴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남고, 캐서린 = 네야는 듀랜달을 얻고 화이팅 모드가 되었단 말씀.

참고로 듀랜달은 아란님의 설정으로서 '웃지 않는 광대'가 쓰던 디바이스래요.

아참! 그러고보니... 잭 안 죽었어요. 다음 턴에 좀 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