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Flame Blaze

2006.03.19 03:21

아란 조회 수:107 추천:4

extra_vars1 폭풍 뒤에, 고요한 밤. 
extra_vars2 Fire 14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남청색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고 군용 쟈켓과 후줄근한 붉은 티를 입은 키가 무척 커서 2m가 조금 안되어 보이는 근육질의 남자가 여유롭게 주먹과 주먹을 맞잡아 풀었다. 그리고 남자는 폭격 맞은 꼴이 되어버린 도시 변두리를 주시하며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666개, 아니 실제로는 그 2배, 그 이상의 수많은 세계를 불사르고 멸망시킨, 소문의 파괴자, ‘플레임 블레이즈’라 길래, 얼마나 강한 가 했더니 고작 그 정도인가?”

남자가 한 걸음, 폐허의 저편, 정확히는 흙먼지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움푹 패인 곳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남자가 몇 발자국 내딛지 못해서, 갑자기 남자의 양발의 주변에 옅지만 강렬한 불꽃의 끈이 생성되더니 남자의 양발을 휘감아 묶었다. 그것도 모자라, 불꽃의 끈은 남자의 양팔과 양손, 양다리마저 묶어버려 구속해내었고, 그대로 남자는 한 발자국도 아니,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지만, 남자의 입가에는 결코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걸로!”

흙먼지가 채 가시기 전에, 흙먼지의 저편에서 한 인영(人影)이 번쩍 뛰어올라 소리치며, 섬광같이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디 엔드(The End)!!”

콰콰콰쾅.

엄청난 화염의 폭풍이 하늘 위까지 번져 올라갔다.


§ Flame Blaze §


“어라? 이 소리는?”

나는 갑작스레 들려온 폭발 소리에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도 잘 보일 정도로 하늘 위로 치솟아 오르는 화염의 폭풍. 저건 분명 누나가 또 누군가와 싸운다는 의미이겠지. 하지만 뭐지? 이 불길한 기분은?

“괜한 걱정일 거야. 누나가 얼마나 강한데.”

분명 누나가 얼마나 강한 지는 내가 목숨을 걸고 보증할 수 있어. 아니, 보증해. 그 전 사범도 누나를 이기지, 어라? 전 사범이 누나에게 당했었….

“아윽!”

가슴이 갑자기 아파온다. 마음이 아파온다. 몸은 결코 그 이상 생각하지 말라고 나에게 경고를 넘어 절대적으로 강요한다. 하지만 얼핏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 흐릿한 영상은 도대체 뭐지? 뭐든지 태워버릴 것 같은 화염 속에서, 화염 속에서….

“크윽!”

더 이상 떠올리기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픔에 내가 참을 수 없어서 그만두어버렸다. 방금 전 떠올렸던 그것은 어느 새 머릿속에서 몸이 강제로 지워버린 듯,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왜 이렇게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엎드린 채 있는 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뚝, 뚝.

장판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간신히 고통이 진정되고 보니 내가 엎드린 장판엔 물방울이 그득히 고여 있었다. 손을 들어 내 뺨을, 내 눈가를 만져보니 물 방울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뭐, 뭐야? 나 울고 있는 거야? 이 정도 아픈 거 가지고 이렇게 울어 버릴 정도로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는데, 몸이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을 지금 뒤늦게 흘린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데, 그런데 그때가 언제였었지?

콰지직, 콰쾅.

천장이 부서져 떨어지는 소리가 내 뒤에서 났다. 덕분에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곧장 현실로 다시 되돌아 올 수 있었고, 그래서 바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뒤돌아보았다.

“콜록, 콜록,… 도대체 누구야?”

바로 내 뒤에서 소리가 난 만큼, 피어오르는 흙먼지도 장난이 아니었기에 난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연신 기침을 해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장에는 구멍만 뚫리고 무너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보다 이 흙먼지, 누나가 보면 왠지 기절할… 가만, 그러고 보니 누나는 저 멀리서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설마?

- 치지직, 치직. 임무, 치지직, 실… 패. 치직, 자폭 코…

흙먼지가 워낙 짙어서 이렇게 가까운데도 잘 안 보였다기 보다는 기침을 해대는 통에 잘 못본 셈이지만, 어쨌든 흙먼지에 가린 검은 실루엣이 두 개 보였는데, 검은 실루엣 하나는 바닥에 엉망으로 쓰러져 있고, 또 하나의 검은 실루엣은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 기계음성은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아 설마!

“설마, 레나!!”

퍽, 치이익. 퍼석.

분명 그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는 레나의 목소리였다. 확실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레나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서 있던 검은 실루엣은 바닥에 엉망으로 쓰러진 검은 실루엣의 가슴에 단숨에 주먹을 꽂아 넣은 뒤, 무언가를 뽑아내어서는 가볍게 주먹질 쥐는 것으로 부숴버렸다.

“저를 그런 엔젤의 모조품과 착각하지 말아주십시요.”

흙먼지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들린 것은 청명한 레나의 목소리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차림새-검은 망토를 걸치고, 검은 붕대를 옷 대신 온 몸에 칭칭 감은-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레나의 발밑에 짓밟혀있는 것은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이보그가 만신창이로 부서져 있었다.

“저기 도, 도대체 저건?”

“엔젤이 당신을 포획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진 저급 메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레나는 칠흑의 금강석 세계의 엔트로피, 흑진주라고 누나가 말했던 것이 얼핏 생각났다. 아주 사이가 안 좋아 보였는데, 하지만 어째서 레나는 나를 지켜주는 것일까? 그것도 두 번이나 어째서? 그것보다, 비록 모조품이래지만 그래도 꽤 공들여 만든 것 같아 보이는 저 사이보그,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어라? 지금까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하지만 플레임 블레이즈라 불리는 자는 지금 위험할지도, 아니 죽을 지도 모르겠군요.”

… 뭐? 플레임 블레이즈라 불리는 자가 위험, 아니 죽을 지도 모른다고? 그 플레임 블레이즈라 불리는 이라면, 딱 한 명밖에 없어! 아니, 누나가 죽을 지도 모른다니? 설마 잭이 말했던,

“엔젤은 당신을 포획하기 위한 작전으로 저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든 저급 메카로 타국의 전투기들을 습격 추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모습으로 위장했기 때문에, 엔젤의 의도대로 그 자가 이 땅까지 왔고, 의도대로 플레임 블레이즈와 그 자가 서로 싸우게 만드는데 성공, 그 다음은 유유히 그 메카를 이용해 당신을 포획해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토테믹 신드롬! 아니, 그것보다 어째서 레나는 엔젤을 그렇게 잘 아는 거야?”

어째서 그들 엔젤은 나를 잡아가지 못해 그렇게 안달이 난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레나는 어째서 그렇게 잘 아는 거야?

“엔젤은 칠흑의 금강석 세계에서 태어난 종족. 그 이상은 알려고 해도 당신의 머리가 이해 할 수 없을 겁니다.”

“그, 그럴 수가?”

엔젤이 칠흑의 금강석 세계에서 태어난 종족이라니, 그렇지만 그 세계에는 어엿한 왕이 있는데 어째서 나 같은 것을 잡아가려고 하는 거야?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왜지?

“상대는 클러치 클라크. 당신이 말한 대로 토테믹 신드롬의 간부 중 한 명입니다. 이터널 블레이즈의 힘이 폭주하지 않는 지금의 플레임 블레이즈는 절대적으로 패배, 아니 목숨을 잃습니다.”

레나의 마지막 말, 순간 눈앞에 생생하게 익숙한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누나는 피투성이였고 그러면서도 선글라스를 쓴 2m가 조금 안 되는 남자에게 발악하며 덤벼들었지만 되려, 부서진 아스팔트에 내리꽂히는 건 누나였다.

“플레임 블레이즈가 설령 목숨을 잃는다 해도, 저의 왕께 이터널 블레이즈를 손에 쥐어드리기 한결 쉬워지는 결과에 지나지….”

“누나를 구해줘!!”

나도 모르게 소리쳐버렸다. 내가 지금 레나에게 무슨 소리를 했는지 스스로 이해할 틈도 없이 레나는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열었다.

“거절합니다.”

딱 부러지게 간단히 거절하는 레나는 그녀다웠다. 하지만 너무나도 그녀답다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나는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누나는 나의.”

“거절합니다.”

레나는 거절이란 뜻을 지닌 단어를 내뱉는 것 이상의 말은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뒤돌아서서 그대로 사라지려고 했다.

“같은 피를 나눈, 하나 뿐인 가족이란 말이야!!”

나에게 도대체 그런 용기가 어디서 솟았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어느새 레나를 뒤에서 꼭 껴안은 채 울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당장 제 몸에서 손을 떼세요. 화상을 입을 지도 모릅니다.”

레나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 부탁을 들어줄 때까지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다. 절대로!

타다닥.

작지만 누군가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 듯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 Flame Blaze §


주희 언니가 어딘가로 황급히 건물 옥상을 뛰어 넘으며 가는 모습을 우연히 보는 바람에, 행여 혹시나 해서, 은태네 집에 서둘러 달려와 봤다. 하지만 내가 은태네 집 창문을 통해 본 것은 그, 전학생 레나를 은태가 뒤에서 꼭 껴안고 있는….

타다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뛰어 집으로 돌아왔다.

“민정아?”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른 듯 했지만, 나는 내 방 침대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그렇겠지? 꿈이 분명하겠지?”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미어터지고 아파만 오는 것일까?

“내일 은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은태는 그걸 꿈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럼 되는 거야.”

뺨에는 어느 샌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 Flame Blaze §


클러치 클라크, 그는 처음에는 검은 망토를 휘날리는 소녀, 아니 괴물을 죽이려고 왔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는 플레임 블레이즈와 맞붙게 되었고, 파괴자 중에서 전설이라는 그 플레임 블레이즈였기에 클러치는 간만에 싸움의 의욕이 났지만, 현재 그의 상태는 화산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일어나라!”

클러치의 킥이 바닥에 쓰러진 피투성이의 주희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아무렇게나 찼지만 그것만으로 주희는 5m이상 날아가 버렸다.

“내가 들었던 플레임 블레이즈는 이런 나약해 빠진 계집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클러치는 주희가 건물 폐허에 떨어지는 것을 봐주지 않고, 그대로 다시 냅다 달려가 무릎차기를 먹이며 소리쳤다.

“내가 들은 너에 대한 소문과 기록은 전부 거짓이란 말인가!! 갓 태어난 아기조차 눈 하나 깜짝 않고 불살라버린다는 악랄한 불꽃의 파괴자가 고작 이정도인가?”

클러치의 말에 공중을 날던 주희의 몸이 잠시 꿈틀됐지만, 클러치는 주먹을 꾹 움켜쥐고 강렬하게 주희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파드드득.

클러치의 주먹은 주희의 안면을 맞추지 못한 채, 주희가 X자로 맞댄 불꽃에 휩싸인 두 손에 막혔다.

“이 정도라? 그래, 난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내 동생을 노리는데 그냥 있을 수가 없잖아?”

“하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클러치의 이마에 십자 모양의 혈관이 두 개, 아니 세 개나 툭 불거져 나왔다. 그 다음에는 클러치의 또 다른 주먹이 주희의 복부를 노리고 내질러졌지만, 역시 주희의 한 손에 아슬아슬하게 막혀버렸다.

“지금 네 녀석은 나랑 장난을 하자는 건가!!”

클러치의 상체가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입고 있던 군용 쟈켓과 붉은 티가 터져나가며, 이내 완전히 갈색의 성난 곰으로 변한 클러치의 상체를 드러냈다. 성난 갈색 곰은 주희에게 막힌 곰의 손을 빼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주희의 복부에 날렸다. 주희는 막았지만, 강력한 클러치의 힘에 그대로 복부를 관통당하고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며 쾅 소리가 나게 쳐 박혔다.

“미안하지만, 나는 플레임 블레이즈에게 동생이 있는지 없는지 내 알 바가 아니야. 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흑발과 흑색의 망토를 두른 괴물 뿐, 플레임 블레이즈는 어디까지나 우연한 보너스에 불과해!”

클러치의 우렁찬 고함 소리에 주희는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비록 안 좋은 관계지만, 흑진주-레나 세이어즈에게 들은 정보는 토테믹 신드롬의 간부가 은태를 노리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하며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이미 본연의 임무까지 저버리고, 시작한 싸움이니, 끝장은 내야겠지.”

곰으로 변했던 상체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두툼한 근육질의 인간의 상체가 보여 졌다. 클러치는 양 주먹을 뚝뚝 소리 나게 어루만지며 풀어 제끼며, 그대로 공중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주희를 내려찍으려고 내려왔다.

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발 소리와 더불어 흙먼지가 높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클러치는 상당히 불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발밑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엉망으로 부숴 진 고철 사이보그가 있었는데, 간신히 남아있는 형태는 바로 클러치가 원래 죽여야 하는 상대-흑발의 흑색의 망토를 입은 소녀 모습의 괴물-의 모습이었다.

짝짝짝.

갑작스레 어디선가 들려온 손바닥을 마주칠 때 나는 경쾌한 소리.
흙먼지가 가시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흑발의 흑안, 검은 망토를 걸치고, 옷 대신 검은 붕대로 온 몸을 칭칭 감은 하얀 피부의 소녀, 흑진주가 손바닥을 마주 쳐대며 톤 없는 목소리로 클러치에게 말했다.

“엔젤의 잔 수작에 걸려드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라고 말해드리지요. 토테믹 신드롬의 간부, 클러치 클라크.”

“네 녀석은?”

“클러치, 당신이 지금 짓밟고 계시는 것은 엔젤이 저를 본따 만든 모조품. 저급 메카입니다. 전투기를 추락시킨 것도 엔젤의 소행. 아시겠습니까?”

흑진주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클러치는 매우 빠른 속도로 흑진주에게 달려들어, 강력한 킥을 먹이지만, 거기에는 이미 흑진주가 없었고 클러치는 허공에 헛발질을 한 셈이 되었다.

퍼억.

“토테믹 신드롬의 간부시라면 냉정한 판단을 하실 거라 여겼습니다만.”

그런 클러치에게 어느새 흑진주가 뒤에서 팔꿈치로 클러치의 등을 강하게 내치며 여전히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싸움의 중간에 멋대로 끼어드는 이는 죽여 버리고 싶어서 말이야.”

“역시, 곰은 미련하군요.”

흑진주가 말을 마치며 공중으로 뛰어들었고, 클러치도 마찬가지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공중에서 강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 둘의 싸움은 보통의 인간의 눈으로는 쫓아갈 수 없는 아니, 근처에도 가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싸움이었다. 건물 폐허는 완전히 잘게 부서져나가 수십, 수천의 돌조각들로 변해버렸으며, 지면에는 크기가 제각각의 어마어마한 크레이터들이 마구잡이로 생성되고 있었다.

카캉.

그렇게 정신없이 얼마나 싸웠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한 번 두 사람은 공중에서 서로의 무기를 맞부딪치게 되었다. 클러치는 무기가 아니라 곰발바닥으로 변한 주먹이었지만.

“하아, 엄청나군! 플레임 블레이즈 따위와는 비교도 안 돼는 강함이다!!”

“헛소린 집어치우십시요. 클러치 클라크.”

“아하하하하!! 헛소리? 나는 내가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한 것일 뿐.”

클러치는 그렇게 말하면서, 왼 주먹에 힘을 순간적으로 빼내었고, 덕분에 왼 주먹의 발톱이 막아서고 있던 흑진주의 흑색 단검 하나의 밸런스가 순간 붕괴되었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클러치는 강렬한 킥을 흑진주의 복부의 날려 지면으로 추락시켰다.

콰콰쾅.

“이젠 끝을 내보도록 할까?”

클러치의 온몸이 부풀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온몸이 갈색의 털로 뒤덮이고 적어도 3m는 넘어가는 거대한 체구의 갈색의 곰의 몸에서는 기분 나쁜 녹색의 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이 클러치 클라크란 자가 가진 모든 힘입니까?”

흑진주가 지면에서 일어서며, 공중에 떠 있는 갈색의 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렇다! 어차피 한낱 엔트로피에 불과한 자가 나를 만난다는 것은 반드시 죽는 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렇기에 죽이기 전에 내 모든 힘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것!! 이 강대한 나의 힘 앞에 산산조각이 나는 거다!!”

클러치의 두 눈이 번쩍이며 빛을 내었다. 곰의 양팔이 좌우로 뻗어지고, 한쪽 다리는 위로 들려 올려졌다. 양팔은 기묘한 원을 그리며 가슴에 모였고, 그 순간 클러치는 한줄기 기분 나쁜 녹색의 섬광이 되어 지상에 서 있는 흑진주를 향해 맹렬한 성난 곰의 기색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달려드는 건 클러치뿐만이 아닌, 클러치 주위에 하나 둘 나타나 이젠 수천 마리에 달하는 녹색 빛의 성난 곰의 아지랑이들이 클러치와 함께 흑진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워어어어어.

성난 곰들의 무리는 폐허가 다 떠나가라 고함을 내지르며 울부짖으며, 흑진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거 하나 알고 계십니까? 클러치 클라크.”

수천 마리의 녹색 빛의 성난 곰들 앞에서 흑진주는 의외로 침착했다. 아니 오히려 한심하다는 눈빛이었다.

“당신이 강해서 엔트로피나 중재자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얼씬거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흑진주는 두 손에 쥐고 있던 흑색의 단검의 손잡이 끝을 팍 소리가 나게 마주쳤다. 그러자 흑색의 단검은 검보랏빛으로 빛을 내며 하나로 융합되더니, 검신이 길쭉한 흑색의 대검으로 변했다.

“당신을 죽여 드리기 전에, 저도 진짜 엔트로피의 힘을 5%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흑진주는 길쭉한 흑색의 대검을 한손으로 잡아 대지에 검끝을 닿게 한 채, 독특한 자세를 취했다. 흑진주의 주변에는 검보랏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그리고 흑진주의 등에서 흑색의 빛의 날개가 한 쌍 돋아나 펼쳐졌다.

- 쿠워어어어어어어!!

“발할라(Valhalla)의 춤, 보여드리지요.”





클러치와 흑진주의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폐허는 온데간데없고 검보랏빛의 꽃잎이 흩날리며 곳곳에는 검보랏빛의 수정으로 된 꽃들이 피어올라 기묘하지만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하였다.
그리고 그 한 편에는 사지가 모두 잘리고 상체 일부만 남아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피투성이의 클라크가 쓰러져 있었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흑진주가 있었다.

“나의 온 힘을 다한 공격을 어떻게 막아낸 거지?”

“당신은 몰라도 됩니다.”

클러치는 간신히 입을 열어 흑진주에게 말했다.
흑진주도 클러치의 말에 답하며, 왼손에 들고 있는 흑색의 대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써걱.

데굴데굴.

잘린 클러치의 목이 검보랏빛 수정의 꽃밭을 데굴데굴 굴렀다.
흑진주는 뒤돌아서며, 남아있는 건물 폐허를 향해 들어갔다.

“그녀의 상처는 어떻습니까?”

“급히 조치를 해서 일단은 자고 있네.”

흑진주가 건물 폐허에 들어가자마자 한 말에, 전 사범이 답했다.

“그렇군요.”

흑진주는 말을 마치며, 전 사범과 그 옆에 벽을 기대고 누워서 잠들어 있는 붉은 단발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나 묻지. 주희를 구해준 건 왕의 명인가?”

“미래의 왕이 될 자의 부탁이라고 일단 해두지요.”

“그렇군.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너의 왕은 그 힘을 원하지 않았던 건가? 주희가 목숨을 잃으면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텐데, 아니 지금도 마음을 먹는다면 가능하지 않은가? 그 토테믹 신드롬의 간부를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엔트로피라면.”

전 사범이 흑진주를 슥 노려보며 말했지만, 흑진주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망토 안쪽을 뒤척이며, 무언가를 꺼내서 전 사범에게 보였다.

“그, 그건 설마?”

“보시는 대로 대대로 플레임 블레이즈에게 대대로 내려온 증표가 되는 반지, 이 반지가 아니었다면 경험이 부족한 제가 클러치 클라크의 마지막 공격을 피할 수 없었을 테지요.”

“그래. 그랬군. 하지만 그거랑 주희를 구해준 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은태의 부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전 사범의 말에 흑진주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댔다.

“예리하시군요.”

흑진주는 그렇게 말하며 무릎 꿇고 앉아, 손에 쥐고 있던 붉은 돌이 박힌 반지를 잠들어 있는 주희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 반지는 흑진주라는 호칭을 가지게 된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엔트로피가 되었어야 할, 페이트 룬 플라티네스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흑진주는 말을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서서 나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엔트로피의 호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돌연 흑진주가 전 사범에게 들으라는 듯이 물었다.

“초대 ‘플레임 블레이즈(Flame Blaze)’이자 모든 엔트로피의 시초가 된 그 소녀를 우리들 중재자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는가?”

“예. 중재자 나부랭이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모르시는 군요. 그녀는 단순히 최초의 엔트로피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중재자이며, 그리고 그 유명한 반고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것은 모르시겠지요.”

“뭐! 잠깐! 어떻게 그런 사실을!?”

전 사범이 크게 놀라, 흑진주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 자리에는 흑진주가 없고, 그녀의 말만이 한 마디 바람에 실려 남아 있었을 뿐.

“파괴자 ‘플레임 블레이즈’가 아닌, 엔트로피로서 ‘플레임 블레이즈’를 동경했습니다.”


§ Flame Blaze §


“누나!!”

“괜찮다. 자고 있는 것뿐이니까.”

전 사범이 내게 안심하라고 하는 말을 누구더러 믿으라고!!
안 그래도 누나가 열 낼까봐, 알아서 집안을 후딱 치우고, 천장에 난 구멍을 어떻게 땜빵할 까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누나가 저렇게 피투성이인 채로 전 사범 아저씨의 등에 업혀서 집에 돌아오면 난!

“하지만! 지금 당장 병원에!”

“후우,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줄 알아라.”

“그런 말 어떻게 믿으라고!!”

딱콩.

갑자기 하늘에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이 보이나 했더니 머리에 강렬한 고통이, 크억!!

“쯧쯧,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물수건이나 몇 개 가져와라.”





지금은 밤 9시 10분.
누나는 오후 3시인가 전 사범 아저씨의 등에 업혀 들어와서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물수건으로 누나의 머리와 얼굴과 팔에 핏자국을 닦아냈지만, 옷은 새 옷으로 갈아 입혔다. 뭐, 설마 내가 갈아입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아니라고.
아니, 그렇다고 전 사범 아저씨가 갈아입혔다고 생각하면 안 돼지. 물론 똥강아지 잭이 자기가 옷을 갈아입히겠다고 좋아 죽으려고 하는 것을, 전 사범 아저씨가 두들겨 패 내 쫓았지만.
사실은 민정이를 부를까 생각했는데, 정말로 생각지 못한 뜻밖의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왔고, 그 사람이 누나의 피투성이 옷을 갈아입히고, 그리고 지금은 누나가 잠들어 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는 내 곁에 그 사람이 있다.

“저기, 캐서….”

“네야 프로즌 리버.”

그래, 그 사람은 네야 프로즌 리버. 그래서 정말 생각지 못했다는 거야. 네야가 우리 집에 찾아올 일은 물론, 정신을 잃은 누나의 피투성이 옷을 갈아입혀주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을 텐데도, 어째서일까?

“네야 저기, 어째서.”

“나도 몰라.”

“아, 그래.”

네야와 할 이야기 거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뭐, 당연하겠지.

“통쾌한 걸. 나의 꿈을 가볍게 부서뜨린 녀석이 저렇게 엉망인 꼴을 볼 수 있다니.”

“그래.”

“왜 화를 내지 않지?”

“화, 내야 해?”

무의미한 말들이 나와 네야 프로즌 리버 사이에서 오갔지만 말 그대로 별로 의미가 없는 말들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어째서 화를 내지 않는 거지?

“그림자의 린(麟)의 마도사 가문 중, 빙계 마술로 최강인 프로즌 리버 家의 양녀로 난 들어가게 되었어. 정말로 열심히 했지만, 하지만 플레임 블레이즈와 싸운 덕분에 나의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어. 나를 지탱하던 것들이. 아마 돌아가면 나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죄로 죽겠지. 아니, 그 전에 링커 코어를 잃었는데 돌아가기 위한 마술도 쓸 수가 없잖아.”

“내 누나가 한 일은 미안해.”

네야가 흐느끼며 하는 말들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꽤 많았지만 그래도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녀에게 말했다.

“너 말이야.”

“응?”

“그림자의 린이라던가, 마도사라던가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나도 몰라.”

“그래. 그렇겠지. 너와는 별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이제 와서 널 데리고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어져 버렸으니까.”

“저기, 하나만 물어도 될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네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야도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술이니 마도사니 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 마술이라는 것 중에는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것도 있어?”

“있어. 하지만 프로즌 리버 가문은 그쪽 계열의 마술은 전공이 아니야.”

“그래. 알았어.”

“하지만, 나 그쪽 계열의 마술에 약간 흥미가 있어서 그래서 조금 배워둔 게 있어. 뭐, 내가 배운 건 링커 코어의 마력을 끌어다 쓰는 게 아닌, 이 세계의 최면술이라는 것과 비슷한 계열이지만.”

최면술?
음, 최면술과 비슷하다면 사기 아닐까? 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래도 믿어보고 싶었다. 마침, 지금은 전 사범 아저씨도 돌아갔으니까, 제지할 사람도 말릴 사람도 없으니까.

“내게는 9살 때, 어떤 일의 대한 기억이 없어.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누나 말로는 사고래. 그 사고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어. 나는 사고의 현장에서 간신히 구조되었다고 들었고.”

“그때 그 사고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싶은 거야?”

“그래. 하지만 왠지 두렵기도 해. 그렇지만 네야가 있으니까.”

네야의 볼이 살짝 붉어진 것 같이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망설이는 듯 이곳저곳에 시선을 돌리던, 네야가 이내 결심을 한 듯,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후회할지도 몰라.”



==============================================================================================



# 초대 플레임 블레이즈 - 프리그(Frigg)
: 최초의 엔트로피이며, 최초의 중재자였던 작은 소녀. 그녀가 모든 엔트로피 체제의 시초이자, 첫 번째 중재자로 깨달음을 얻은 이이기도 하다. 나중에는 이터널 블레이즈의 힘을 자신의 안에 억제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제자에게 엔트로피의 힘과 이터널 블레이즈를 물려준 뒤에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반고의 어머니이지만, 그 사실까지 알고 있는 중재자나 왕은 그리 많지 않다. 더불어 그녀의 프리그(Frigg)라는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알고 있는 자가 손에 꼽을 정도. 현재 그녀의 마지막 행방은 반고 밖에 모른다.



# 플레임 블레이즈의 증표 - 붉은 돌이 박힌 반지
: 증표 그 이상이 되지 않는 이름도 없는 낡은 반지에 불과하지만, 몇 억 년을 이어온 만큼 수많은 플레임 블레이즈의 손을 거쳐 간 만큼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 라르크의 손도 거쳐 갔다.


==============================================================================================


흠흠, 간단하게 말해서, 일단 클러치 클라크는 사망.

# 순서
아란 → 갈가마스터 → 문학소년 쉐르몽 → BARD OF DESTINY → 다르칸


일단은 이번에만 임시로 순서를 변경합니다.


어쨌든, 이제 슬슬 은태도 9살 때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할 때도 되었고,

네야도 잊혀질 것 같아서...

그것보다 이번화 은태는 참...

어쨌든, 처치해야 할 숙제라던가,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퀼리티는 개쪽 난...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