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DESTINY」 運命의 系統樹

2005.10.24 02:52

갈가마스터 조회 수:248 추천:5

extra_vars1 함락 
extra_vars2 13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장소를 알 수 없는 어떤 곳에 위치한 거대한 숲. 산새들조차 침묵하고 있는 이 숲의 중심, 그곳엔 인공적으로 숲을 도려낸 듯한 큰 공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공터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이들은 출신국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지각색인 군인들이었다. 단 하나, 이마에 'XI(로마자 11)'이라고 표시된 해골과 그 뒤 엑스자로 교차하는 번개무늬가 새겨진 붉은 완장을 팔뚝에 차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난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의 귓가에 너무나도 또렷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전 부대 정렬!”

검은색 레인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그렇게 소리 지르자, 한참을 웅성거리던 그들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제자리에 꼿꼿이 선 채 한 곳을 향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은 방금 전과는 달리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듬뿍 받으며 한 남자가 등장했다. 백발이 창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괴상한 머리카락에 검은 선글라스, 게다가 길게 말아 올린 입 꼬리 사이로 누런 금니가 번뜩이는 괴상한 남자였다. 하얀 털로 카라를 장식한 갈색 코트를 어깨에 걸친 그 남자는 검은색 레인코트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여 넓은 공터 중앙에 마련된 단상으로 향하였다.

그가 단상 위로 올라서자, 단상 앞에 절도 있게 도열한 레인코트의 장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 부대 블라디미르 카미코프 장군님께 경례!”

명령과 함께 공터에 몰려 있는 모든 이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지크 저스티스(Siege JUSTICE)!
- 지크 크로스 파이어(Siege Cross Fire)!
- 지크 하일(Siege heil)!

총 세 번의 구호가 끝나고 단상 위에 서 있는 자, 지금 이 숲에 몰려 있는 저스티스 제 11부대 ‘크로스 파이어(Cross Fire:십자포화)의 총대장, ‘더 라스트 제너럴(The Last general:최후의 장군)’이라는 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블라디미르 카미코프가 한 손을 들어 답례했다.

“쉬어!”

처척! 모든 이들이 명령에 따라 열중 쉬어 자세로 단상을 주시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단상 위의 블라디미르 카미코프는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 너머로 절도 있게 도열한 군인들을 살피던 중 뒤편에 마련된 그물 침대에 누워 태평하게 잠을 청하고 있는 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군청색 머리카락이 눈에 띠는 이 청년은 군인이 아닌 듯 청바지와 청 자켓을 몸에 걸치고 그물 침대에 몸을 뉘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단단하게 짜인 근육과 풍겨져 나오는 기도를 모두 숨겨주진 못했다. 카미코프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 꼬리를 말아 올리곤 시선을 군인들에게 돌리며 금니가 번뜩이는 입을 열었다.

“제군들! 드디어 때가 도래했다! 마치 제 세상인양 주변국들을 조종하던 진마국이 멸망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이것을 바랬던가! 저 증오스런 마드라엘의 바보들과 동조하여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버리고! 주변국들을 힘으로 눌러버리면서도 세치 혀론 자신들은 정의롭다는 궤변이나 늘어놓는 진마국이 우리 영광스러운 저스티스에 의해 사분오열된 것이다!”

파칫! 카미코프가 공중에서 손을 한번 휘젓자, 그의 손길을 따라 작은 뇌전이 번뜩였다. 카미코프는 잠시 침묵함으로서 청중의 모든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킨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우국(愚國)의 지배에서 벗어난 저 어리석은 민중들이 피 터지는 싸움을 시작했고 우리들에게 협조를 요청해왔다!”

꿀꺽! 군침을 삼키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환희로 가득한 표정이 떠올랐다.

광기.

지금, 아니 전부터 이들을 지배하는 힘은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쾌락인 광기였다. 한번 맛을 보면 절대 손을 땔 수 없는 쾌락, 사선을 넘나들어 죽이고 또 죽이고 최후에 살아남는  쾌감! 그것이 저스티스 제 11 부대 ‘크로스 파이어’의 강함이었고, 이들을 묶어주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군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점점 카미코프에게 감화되어 갔다.

- 우오오오오오!

군인들의 함성과 함께 뒤이어 카미코프가 질풍노도와 같이 말을 이어나갔고, 그에 동조하여 붉게 상기된 군인들의 입에선 이구동성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제군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 전쟁!

“제군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가!”

- 전쟁!

“제군들이 살아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 전쟁!

“제군들의 타오르는 갈증을 채워줄 것은 무엇인가!”

- 전쟁!

벌써부터 쾌락을 느끼는 지 얼굴을 벌겋게 상기시킨 카미코프가 마치 하늘을 두드리듯 오른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좋다! 그렇다면 나는 제군들을 지금부터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쾌락의 세계로 인도하겠다! 제군들의 앞에 전쟁의 쾌락이 가득하길! 지크 저스티스!”

- 지크 하일! 지크 저스티스!
- 지크 하일! 지크 크로스 파이어!
- 지크 하일! 지크 제너럴 카미코프!

그들의 외침이 고조될수록 하늘은 점점 그 빛을 잃고 탁해져갔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군청색 머리카락의 청년은 어둠속에서 얼음처럼 싸늘한 두 눈동자를 밝히며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권태로 젖어 눈에 띠게 생기가 없었다. 그는 곧 눈을 감아버리곤 낮게 중얼거렸다.

“따분하군.”

그가 바로 저스티스 12번 부대 ‘로젠 크루세이더스(Rosen Crusaders:장미 십자군)’의 총대장이자, ‘로젠 크로이츠(Das Rosen Kreuz:장미 십자가)’라는 아명을 가진 프레이저 크로바인츠였다.







「DESTINY」
運命의 系統樹
第 13夜. 전투의 함성, 그리고 함락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건.”

한참 기차에 몸을 실고 있는 가로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책에서 눈을 떼며 유이를 주시했다. 맞은 편 유이의 옆에 앉아 있는 카인은 묵묵히 앉아 상념에 잠겨 있었고, 가로드 옆에 앉아 있는 글릭세르는 눈에 띠게 창백한 얼굴로 가로드처럼 유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방금 전에 한 유이의 말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이빨을 뿌드득 간 가로드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침묵하자, 글릭세르가 유이의 말을 곱씹으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 전용 기차가 한창 전쟁 중인 라이나즈 왕국으로 가고 있고, 우리는 진마국의 이름을 빌려 그 전쟁을 외교적 압력으로 저지하기 위해 이곳에 타고 있다는 거지? 게다가..... 만약 양측 다 씨알도 안 먹히면 전선에 개입해서 양쪽 다 쓸어버리는 거라고?”
“정확하게 맞췄어, 글릭세르.”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하는 유이에게 글릭세르는 단지 입만 쩍 벌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신이시여. 과학과 만능의 신이시여. 제가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이까?”

글릭세르가 모자를 쥐어뜯으며 의자에 몸을 눕히자, 가로드가 말을 이어나갔다.

“포트폴리오 공국과 라이나즈 왕국. 이 두 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대립과 반목을 일삼아온 국가다. 지금은 라이나즈 왕국이 소유하고 있는 폴리오 평원 때문에 그들의 사이에선 싸움이 끊이지 않지. 그건 국민들도 마찬가지야. 거의 반강제로 빼앗긴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나마 진마국의 강력한 힘의 중재 하에 두 나라 다 자제를 하고 있지만, 폴리오 평원을 빼앗긴 포트폴리오 공국 국민 전체가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사실이다. 그러니....”
“헤에? 제법 잘 알고 있잖아? 용병출신이라 그런가?”

유이는 감탄했다는 듯 가로드에게 말했다. 말하는 도중에 상대방의 말을 끊는 건 대단한 실례였으나, 가로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한창 때 그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란에 투입되곤 했으니까. 어쨌든 계속하지. 지금은 그들 사이를 중재하던 진마국도 없는데 아무리 이름을 빌렸다고는 하나 재기가 불투명한 진마국의 이름을 빌린 우리의 말이 먹힐 것이라 여기나? 가뜩이나 한 달 전 저스티스 놈들의 ‘수도 습격 사건’에 의해 샷셀의 힘이 의심받고 있는 이 시점에.”

수도 습격 사건. 그 말을 들은 카인의 몸이 꿈틀거렸다. 쉐도우킬러 에스게일과의 싸움을 상상하는 카인의 이마에서 굵직한 핏줄이 부풀어 올랐다. 끓어 넘치는 증오와 화를 극도의 인내심으로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가로드는 그런 카인을 슬쩍 바라본 뒤 시선을 돌려 유이와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면, 두 나라의 군대를 쓸어버리라고 보내는 건가? 달랑 4명으로? 그것도 우리와는 거의 상관도 없고, 저스티스와의 연관성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그 분쟁에?”
“......”

유이는 눈을 감은 채 침묵할 뿐이었다. 그런 유이를 지켜보던 가로드는 이내 얼굴을 구기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칫. 맘에 안 들어. 윗대가리 놈들도 이놈의 샷셀이라는 조직도... 어설픈 위선자들 같으니.”
“가로드.”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유이가 조용히 가로드를 부르곤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일은 네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야. 무엇보다 진마국이 사라지고 첫 번째 일어난 전쟁이란 점이 그 중요한 측면 중에 하나지. 진마국이 작은 조각으로 깨어져나가고, 그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
“.......”
“바로 진마국이라는 고삐가 풀린 망아지들이 미쳐서 날뛰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해. 이 싸움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것은 세 가지의 목적을 이룰 수 있어. 첫째, 본국이 보유한 샷셀이라는 무장 조직의 힘을 다시금 세계에 각인시킬 수 있지. 네 말마따나 지금 우리들의 입지는 많이 줄어든 상태니, 이건 필수적인 사항이야. 둘째, 진마국의 이름을 동원함으로서 진마국의 후계자는 무사하며 진마국이 부활했음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전 세계에 퍼져있는 마족들과 나누어진 진마국의 제후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겠지.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은 이 포트폴리오-라이나즈 전쟁에 몰려 있으니 그건 쉬운 일이야. 셋째, 뒤이어 일어날 수많은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한 점이지. 바로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라이나즈로 가고 있는 거야, 이젠 알겠어?”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조를 보내지. 왜 하필 우리냔 말이야. 그것도 유리 녀석이 가 있는 혈맹성의 이름을 사칭해서. 빌어먹을.”

그렇다, 가로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동료의 이름을 사칭한다는 사실 만으로 그는 샷셀이라는 조직에 혐오감이 들었다. 동료를 팔아먹는 짓을 가로드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후우.”

유이는 가로드의 생각을 알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사물들이 휙휙 지나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미안해 유리. 하지만 너라면 이해해주겠지.’

한없이 순진하기만 했던 유리를 생각하던 유이는 어느새 그의 맑은 미소가 그립다는 것을 느꼈다. 그 때, 갑자기 다가온 엄청난 불길함이 유이의 뇌리를 강타했다.

“?!”

갑작스레 글릭세르를 제외한 조원들 전부가 안색을 굳히며 병장기에 손을 올려놓았고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글릭세르가 당황하며 물었다.

“왜, 왜들 그래? 두렵게시리..”

- 드르륵.

갑작스레 들려온 문 여는 소리에 글릭세르가 의자 위로 머리를 빼꼼 쳐들어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용히 문을 닫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드레스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귀부인과 그녀의 발 뒤에 숨어 있는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 아이가 들고 있는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뭔가 꺼림칙한 느낌의 기운이 풍기는 것 같았지만, 글릭세르에게 있어서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아이의 얼굴에 씌워져 있는 거무튀튀한 방독면이었다.

- 쉬익. 쉬익.

쉬익쉬익 거리는 기분 나쁜 숨소리에 잔뜩 얼굴을 구긴 글릭세르는 문득 떠오른 의문에 유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조장, 이 기차..... 전용기 아니었어?”
“맞아. 이 기차에 있어야 될 사람은 기차 후미, 무장차량에 있는 경비중대와, 차장. 그리고 우리뿐이야.”
“그럼.. 저들은?”
“모르지. 하지만 결코 평범한 자들은 아니야.”

글릭세르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유이의 얼굴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의자에 몸을 숨겼다. 유이는 가만히 앉아 귀부인과 아이를 주시했다. 귀부인이 얼굴을 반쯤 가리는 망사를 들어 올리자, 앵두처럼 탐스럽고 도톰한 입술과 티 없이 깨끗한 피부를 가진 중년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평범하다고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여인은 정중하게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샷셀 여러분. 전 카트린느라고 합니다.”
“그래요?”

유이는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짐짓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예를 다하는 상대에겐 예로 답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이들의 존재가 너무나도 의심스러웠다.
카트린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귀부인은 무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7조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갑자기 당황한 투로 자신의 치맛자락 뒤에 숨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꾸짖듯이 말했다.

“어머? 요한, 그럼 못써요. 정중하게 인사해야죠.”
- 쉬익. 쉬익.

아이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7조원들에게 슬쩍 고개만 숙인 뒤 후다닥 카트린느의 뒤로 숨었다. 아이는 심각한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카트린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요한이란 아이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용건이나 말해. 저스티스.”

더 이상 참지 못한 가로드가 낮고 위협적인 말투로 말하자, 카트린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어머? 굉장히 무례하군요. 전 저스티스가 아니에요.”
“우릴 바보로 아는군.”
“가로드, 흥분하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보지. 지금 저들을 자극해도 얻을 것이 없어. 그리고....”

카인은 가로드를 제지하며 귀부인 뒤에 숨어 있는 방독면 쓴 아이에게 집중했다. 등줄기를 타고 저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지, 이 검고 탁한 기운은. 저 여자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 마력의 출처는 어디지?’

카인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유이가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나요. 미세스 카트린느.”
“어머? 실례지만 전 결혼하지 않았답니다. 레이디 카트린느라고 불러주세요.”

유이는 짜증이 벌컥 솟아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인내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레이디 카트린느.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주셨으면 합니다만...”
“아, 내 정신 좀 봐. 이런 무례를....”
“됐으니까 빨리 진행하지요,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란 것이 있으니.”

유이가 위협적인 어조로 건 슬라이서에 손을 가져가자, 요한이란 아이가 카트린느의 치맛자락을 몇 번 당겼다. 카트린느는 잠시 요한을 바라본 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요한, 그만두세요. 이곳은 당신의 연주를 듣기엔 적당한 곳이 못 되요. 이 유모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세요.”
- 쉬익, 쉬익.

‘정말 괜찮아?’라는 듯한 요한의 걱정스러운 모습에 카트린느가 슬며시 미소지어주며 말했다.

“예, 이 유모는 정말 괜찮답니다. 위험한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위험해지면 헬무트 아저씨께서 도와주실 거예요.”

카트린느는 요한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준 뒤, 유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전 저스티스 소속은 아닙니다만 그들의 말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을 해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주세요.”
“그걸 어떻게 믿지?”

가로드의 적대적인 물음에 잠시 입술을 축인 카트린느는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당신들을 해할 생각이었다면 이곳에 나타날 이유가 없지요. 그렇죠? 미스터 가로드.”
“으음.”
“가로드, 물러나있어.”

유이의 제지에 가로드가 신음을 흘렸고, 카트린느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블라디미르 카미코프님의 전언을 낭송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샷셀 여러분, 이미 전선은 붕괴되고 라이나즈의 수도는 함락되었다. 그러니 헛수고 하지 말고 냉큼 꺼져라.’ 이상입니다.”
“뭐, 뭐라고?!”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가로드가 소리쳤다.

“함락이라니! 전쟁이 터진지 아직 열흘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함락이라고?! 게다가 저스티스가 전쟁에 개입했다는 말이냐!”
“자세한 상황은 저도 모릅니다. 전 저스티스 소속이 아니니까요. 정 궁금하시다면 스스로 알아주세요. 그럼 전 이만.”
“보내줄 성 싶으냐!”
“가로드!”

유이가 제지할 틈도 없이 가로드가 할버드 라이플을 치켜들고 귀부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뇌리를 스친 불길함과 피하라고 하는 용병 특유의 전투 본능에 그는 뒤로 한 발작 재빨리 물러났다.

카가가가가가각!

그 뒤,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이어지고 귀부인과 아이가 서 있는 차량 끝부분과 가로드들이 서 있는 차량이 마치 잘 썰린 두부처럼 끊어졌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점점 멀어지는 뒷 차량을 바라보며, 가로드는 신음했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갔다면 기차와 함께 두 동강이 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리고 그는 멀어져가는 뒤쪽 차량 천장에 검은 셔츠를 말끔하게 차려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그 남자는 온통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검은 구두, 새하얀 바지, 검은 셔츠, 하얀 넥타이. 그리고 핏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피부. 하지만 그런 것보다 훨씬 눈에 박히는 것은, 그의 입이 검은 실로 꿰매어져 있다는 것과 눈동자가 거짓말처럼 하얗다는 것이었다. 그는 허리에 총 여섯 개의 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기차를 잘라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강하군.”

유이는 그의 온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도를 읽고 식은땀을 흘렸다. 거의 12제급에 필적하는 기운을 내재한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전력을 다해도 이기리라 장담하진 못하겠어, 굉장하군.’

멀어져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유이 R 세이비어의 얼굴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
.
.

그 날, 유이가 저스티스의 일방적인 전언을 받고 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는 상태였다. 저스티스의 11부대 ‘크로스 파이어’에 의해 수도가 잿더미로 변한 라이나즈 왕국군은 그대로 전선이 사분오열되어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던 전황이 순식간에 포트폴리오 공국군에게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잔당의 처리를 위해 남은 공국군 제 3군단 이외의 모든 포트폴리오 공국의 주력부대가 라이나즈 왕국의 수도로 입성하여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만천하에 공포하였다.

피에 들끓은 승리의 함성이 라이나즈 왕국의 수도에서 울려 퍼졌다. 라이나즈 왕궁의 첨탑 꼭대기에서 그것을 가만히 주시하는 아크리치 ‘몬타나 맥스’는 흥분 섞인 음성으로 소리쳤다.

- 좀 더! 좀 더! 이걸로 끝나지는 않아! 피와 죽음의 광시곡은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제 제 2 악장으로 들어간다! 크하하하하하!

그의 퀭한 눈구멍에서 광기 섞인 시뻘건 불빛이 탁한 공기 중으로 음울하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전쟁의 불길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BGM : 반지의 제왕 OST 中 Helm's deep


-----------------------------------------------------------------------------------------------
짜잔~ 시험이 끝난 분들을 위해 재빨리 써서 올렸습니다. 원래, 생각한 것은 라이나즈 왕국의 수도로 도착한 뒤, 크로스 파이어의 급습을 받아 프레이저랑 만나게도 하려고 했으나, 그건 나중으로.. 쿄쿄쿄 일단은 등장이 미뤄지고 있던 '절망의 연주자' 요한 베르캠프와 최근에 만든 '소리없는 죽음' 헬무트를 등장 시켰습니다.

그럼 등장인물 소개에~~


1. 요한 베르캠프 - 절망의 연주자(Das musiker der verzweiflung) - 12제
나이 : 10세

방독면을 쓴 10살짜리 꼬마아이. 최상급의 '소리의 악마 플뢰레'가 봉인되어 있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저주받은 연주자로, 항마법 처리가 된 방독면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저주받은 바이올린을 연주함으로서 플뢰레를 사역하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으나, 그 강력한 능력에 비해 연주 지속 시간은 30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30분으로도 사역마 플뢰레가 일단 풀려나게되면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쓸어버리기 때문에 요한은 감히 12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6살 때 자신을 죽이려한 부모를 살해하고 심각한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아이로 유모 '카트린느'없이는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역시 아이인지라 생리적으로 베리도트를 가장 무서워한다.

제 6 부대 '죽음의 악단'의 총대장



2. 블라디미르 카미코프 - 최후의 장군(The last general) - 12제
나이 : 49세

뾰족한 백색 가시머리, 검은 선글라스, 웃을 때마다 보이는 누런 금니. 이것이 그를 괴짜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아크리치 몬타나 맥스 못지 않은 심각한 전쟁광으로서 10만 볼트 이상의 전격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건만 뒤에서 전쟁을 지휘할 뿐 자신이 직접 전선에 나서는 일은 없다. 휘하에 간부 대신 친위대 '쉐발리어Chevalier)'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들은 카미코프 자신이 직접 발탁하고 훈련시켜 엄청난 협동 공격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12제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협동 공격을 맞대한다면 감히 승리를 점치지 못할 정도라니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제 11 부대 '크로스 파이어(십자포화)'의 총대장



3. 프레이저 크로바인츠 - 장미 십자가(Das Rosen Kreuz 로젠 크로이츠) - 12제
나이 : 24세

어깨까지 부드럽게 물결치는 군청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 검도 없이 주먹질만으로 사물을 절단할 수 있는 검기를 구사한다. 그가 사용하는 기술은 팔 뿐 아니라 몸 전체를 이용할 수 있으며, 몸 자체가 하나의 날카로운 검이라고 볼 수 있다.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의 검기는 단순히 근접전 뿐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 멀리 떨어진 적에게도 날릴 수 있으며, 상대를 체술을 사용하는 단순한 무술사로 본다면 이미 패배는 정해진 순서일 것이다.
언제나 청색 자켓과 청바지를 입고 다니지만, 전투 시엔 자켓을 벗어던지고 맨 몸으로 싸움을 구사한다. 그의 등엔 장미가 얽힌 십자가 문신이 새겨져 있으며, 거기에서 뻗어나온 가시 덩쿨이 양 팔을 감는 듯 새겨져 있는 독특한 문신을 하고 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지만, 자신의 사부를 쓰러트리고 12제 자리에 오른 이후 늘 권태에 젖어 있어 강한 자들과 싸우는 것 외엔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제 12 부대 '로젠 크루세이더스(장미 십자군)'의 총대장



4. 헬무트 - 소리없는 죽음(The silent death) - 베리도트 휘하 제 1 부대 간부
나이 : 미상

온 몸이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뱀파이어, 언제나 하얀 넥타이를 맨 검은 셔츠에 하얀 면바지를 입고, 여섯 자루의 검을 허리에 찬 그는 피를 혐오하는 뱀파이어로서 자신을 절제하기 위해 입을 검은 실로 꿰맨 괴짜다.
전 뱀파이어 폭력그룹 'Ri'의 행동대장인 그는 피를 마시면 거의 이성을 잃고 피아 구분 없이 모조리 찢어 죽이며, 한 때 '베르세르크(광전사)'라 불리며 같은 뱀파이어는 물론 전 대륙에 악명을 떨쳐왔다.

한 손에 3개의 검, 양 손에 6개의 검을 끼워들고 싸우는 독특한 검법을 구사하며, 냉정하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무시무시한 검사. 베리도트보다 강한 것은 아니나, 피를 마시면 베리도트도 승부를 점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기 때문에 베리도트도 그를 중용한다.



색은 시험 끝나고~

5. 레이디 카트린느 - 요한의 유모.
나이 : 32세

늦은 나이에 자폐증 꼬마를 돌보는 정신나간 중년 부인. 항상 상냥하지만 때론 엄한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요한에게 부여하고 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이기에 요한을 자기 자식보다 더 끔찍이 여긴다. 거의 제 6 부대 '죽음의 악단'에게 명을 내리는 것도 그녀며 때론 사람을 죽이는 명령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둥 무시무시한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한 여자다.


덤~ 레드 샤크님의 캐릭터 12제 엘리스 카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