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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FE] 투명 드래곤 (Invisible Dragon)

2007.08.18 01:49

갈가마스터 조회 수:935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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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언제부터 그곳에 존재했을까? 기원을 알 수 없을만큼 오래된 그것은 키가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극소량의 빛만 은은하게 깔리는 숲 속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석상이 세월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듯 그것은 다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것이 가진 힘과 권능, 무게와 존재감은 숨을 내쉴 때마다 열기 섞인 질풍으로 숲을 뒤흔들고, 뜸하게 몸을 움직일 때면 지진이라도 난 듯 땅으로 하여금 외마디의 비명을 내지르게 했으며, 날개를 펼쳐 기지개를 필라치면 작은 폭풍이 일어나 숲의 나무가 뿌리 채 뽑혀나갈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이것들이 전부였다. 몸의 윤곽은커녕 작은 세포조차 육안으로 볼 수 없었기에 마땅히 존재를 확인할 길이 요원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절대자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신이 이 별을 창세한 칠 일간의 천지창조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천둥벼락이 내리치며 만물의 창조주이자 어버이 바다가 최초의 생물을 탄생시켰을 때부터였을까? 언제부터 그것이 이곳에서 호흡하고 있었는지는, 보이지 않는 그것의 몸처럼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다만 시간의 흐름처럼 그것이 존재하는 게 당연시 되었고, 숲의 고생물들은 이 볼 수 없는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과 공포에 쉬쉬하며 본능대로 삶을 연명해 나갈 뿐이었다.



  그것이 아무런 의무감도 없이, 멍하니 그곳에 앉아 있길 수백, 아니 수천만년이 지나갔다. 바다에서 양서류가 올라와 육지에서 생물로서 정착하기 시작한 이래, 백악기를 지나 빙하기를 거쳐 생물들의 먹이 사슬 구도가 변해가는 동안 그것은 그 어떤 변화도 없이 태초부터 그가 자리하고 있던 숲 속에서 홀로 못 박힌 듯 앉아 있었다. 배가 고프면 지나가는 동물들을 잡아먹고, 탄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절대자로서의 힘을 이용해 본능적으로 신의 피조물들을 관리했다.



  그 어떤 희노애락도 없이 그것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Invisible Dragon


 








  그러던 중, 숲 속으로 이상한 생물이 하나 찾아왔다. 얼핏 고릴라와 체형이 비슷한데 꼬리도 없었고, 또한 털이 부족하여 다른 생물들의 가죽으로 체온 유지를 대신하는 괴상한 생물이었다. 다른 포식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발톱조차 뭉툭하고 물렁한데, 도대체 무슨 힘으로 타생물의 거죽을 벗기고 그것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일까?


  이때껏 살아온 기나긴 세월동안 처음으로 의문이라는 것이 생겼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은 어금니를 벌려 숲에서 제일가는 포식자를 불러들였다.



  크르르르.



  단지 짧게 그르렁거렸을 뿐인데 괴원숭이의 표정이 새파랗게 변해갔다. 얼핏 보기에 초식동물처럼 보일정도로 조악하고 그에 비례해 겁도 많은 생물이었지만 결코 도망치거나 쓰러지진 않았고 오히려 손에 든 날카로운 돌을 발톱 대신 삼아 꽈악 쥐었다. 천적에 대한 본능이 부족했던 것일까? 한참을 그곳에 서서 덜덜 떨기만 하던 그것은 결국 뒤이어 호출에 응해 나타난 샤벨타이거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음을 맞이했다. 손에 쥐고 있는 날카로운 돌도 엄격한 힘과 속도의 차이만은 극복할 수 없었다.


  그 괴생물이 포식자의 든든한 식량이 될 때쯤 되자, 절대자의 의문은 곧 물로 씻은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또 다시 의미 없는 나날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해와 달이 수 없이 뜨고 지길 반복하는 동안 그것은 여전히 그 숲을 지키고 있었다. 왜 자신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은 한 번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해본 적이 없었다. 비록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자신을 보며 고개 숙이는 동식물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시점만 해도 분명하게 존재했고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만들었을 창조주의 의도조차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존재하니 살아갈 뿐인, 다른 생물들이 그러하듯 자신도 그러할 뿐이라고 그것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또다시 숲 속으로 과거에 본 적이 있던 익숙한 모습의 괴생물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바로, 과거 수억년의 세월동안 처음으로 자신에게 의문이라는 것을 안겨줬던 기이한 생물들이었다. 이번에 들어온 것들은 예전에 본 것보다 털도 더 적어지고 피부조차 핏기가 뚜렷이 드러날 정도로 얇아진 한층 더 퇴화한 모습이었지만,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그룹을 이뤄 행동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게다가 몸에 걸치고 있는 타생물의 거죽대기와 손에 들고 있는 청록색의 날카로운 발톱들은, 처음 봤을 때와는 차원이 틀릴 정도로 섬세하고 단단하게 발달해있었다. 분명 이들은 머리가 굉장히 좋은 종족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종을 유지하고 있었던 거겠지.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 가져다 놓아도 쉽게 죽지 않을 적응력이 이 종(種)이 가진 유일한 장점 같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바로 뒤에서 괴생물들의 암컷임에 분명한 것이 몸을 비틀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따라오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 또 다시 호기심이 동했다. 정말이지 이 생물이 하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의미를 알 수 없어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크르릉!



  예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낮게 울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의 표정이 일순 굳어버리며 몸을 덜덜 떠는 것이 예전과 비교해 하등 달라진 게 없어보였다. 여전히 겁 많고 하찮은 녀석들이다.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던 암컷은 완전히 주저앉아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였다. 창백하게 질려 눈물 콧물과 함께 오줌까지 지리는 것이 애처롭기 이를 데 없었다. 헌데 그걸 보고 있자니 신기한 기분도 들었다. 이 종들은 지나치게 표정이 많은 편이었다. 그것도 이것들의 숨겨진 장점인 걸까?


  수컷들이 뭐라뭐라 소리치며 주저앉은 암컷을 억지로 부축해 일으켜 세우자, 암컷이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소리치며 수컷들의 힘에 저항해보지만 다 부질없어 보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일까?



  어느새 겁도 없이 절대자의 발 앞까지 다가온 괴생물체들은 암컷을 무릎 꿇린 채 보이지도 않을 그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의아한 기분에 절대자는 물끄러미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문득 수사슴의 두개골을 머리에 쓰고 있는 자가 앞으로 나서며 손에 든 오크나무 가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수컷들은 그를 보며 ‘제사장’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한참을 빙글빙글 춤을 추던 제사장이라는 생물은 춤을 멈추자마자 품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청록색 발톱-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생물들은 저런 형식의 발톱을 청동 검이라 부르는 듯 했다-을 하나 꺼내들더니 뒤돌아 암컷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월광을 받아 창백하게 빛나는 발톱을 바라보는 암컷의 얼굴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핏기가 싹 가시는 것이 보였다. 제사장이 말했다.



  “용신이시여, 그대에게 처녀의 생피를 바치나이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암컷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이 내리꽂혔다. 예리하게 도려내진 갈비뼈 사이로 피가 거품처럼 벌컥벌컥 뿜어져 나왔다. 그걸로 끝이었다. 암컷은 죽은 채 방치되었고 수컷들은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수차례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절을 한 뒤 우루루 숲을 빠져나갔다.


  오래된 숲의 절대자는 암컷을 죽인 그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껏 수도 없이 보아온 생물들 중 이렇게 무의미한 짓을 하는 생물들은 처음이었다. 그 어떤 생물이 종의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암컷을 해한단 말인가? 암컷이 자양분을 얻기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 행위는 많이 보았지만, 먹을 생각도 없이, 단지 생명을 앗아가는 목적으로 암컷을 죽이는 생물들은 정말이지 처음 보았다. 이런 행위는 그 앞에서 거의 매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숲을 찾아오는 그들이 자신들을 ‘인간’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을 용이라고 부르며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이용해 동물들의 말을 본능적으로 아는 그였기에, 가끔가다 숲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인간이라는 생물의 복잡한 대화로부터 그들의 생활 일부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용’이라.



  겁도 없이 하찮은 생물들이 그를 향해 지어준 이름에 그는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첫 인상처럼 하잘 것 없는 힘을 가진 그들은 서로 군집하여 무리를 이루고, 다른 동식물들을 사냥하는 한마디로 영악한 것들이었다. 나무를 베어서 추위와 더위를 피할 움집을 만들고, 광물을 뽑아내서 연약한 발톱을 대신할 각종 도구들을 만드는 것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적응력 하나는 대단한 종이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들은 곧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고, ‘배’라는 물건을 만들어 물고기처럼 물을 건너기까지 했다. 하나 흠이 있다면 별 것도 아닌 일로 동족 간에 싸우며 서로 죽이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서로 힘을 합쳐 살아도 시원찮을 약한 존재들이 또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면, 그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관찰자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인간들의 문명은 결국 그가 있던 보금자리마저 빼앗아버렸다. 그가 누워 있던 숲을 불태워 평지로 만들고, 거기에 신전을 지어버린 것이다. 용신을 모신다는 핑계로 신이 머무는 신성한 숲을 불태워 건물을 짓다니, 이들은 신이 그것을 좋아하리라 여긴 걸까? 하지만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수억년 동안의 지루함이 그에게서 보금자리를 빼앗겼다는 분노를 눌러버린 것이다.


  그는 예전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 위에 세워진 아치형 신전 꼭대기에 앉아 인간들을 보는 것을 즐겼다. 가슴 한켠에선 분명 인간이라는 것들을 동경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거의 영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세월을 산 그에 비해 짧은 생 동안 정열을 불사르며 장렬하게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들의 삶은 분명 동경 이상의 진한 감명을 주고 있었다.



  문득 그는 인간이 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가진 태초의 힘을 이용하여 그는 자신의 몸을 인간의 형상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인간들의 마을로 발을 내딛었다. 인간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그들의 삶을 엿보고 자신이 갖지 못한 열정을 간접적인 경험으로 얻어 한동안 행복함을 만끽했다. 그러나 곧 그는 커다란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인간으로 몸을 만든 것이 분명했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를 환청이나 메아리로 듣고 무시하는 인간들. 그가 내는 발자국 소리를 도깨비의 소행이라고 여기며 도망치는 인간들. 그는 이런 인간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게 되자 해결되지 않는 커다란 의문에 잠겨 그는 한동안 실의에 잠겼다.


  어째서일까? 왜 인간들은 다른 동식물들과는 달리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것일까? 모든 만물이 자신을 경외시하며 고개를 조아리는데 이들은 절대자에 대한 본능조차 없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호숫가를 거닐던 그는 문득 수면에 비치는 젋은 남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호숫가를 거니는 그들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문득 그는 자신의 형상이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은 현재 인간인가? 혹시 인간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의문에 잠진 그는 호수에 비쳐야할 자신의 모습을 찾아 미친 듯이 물가를 헤집고 다녔다. 달과 수초가 잔잔한 파면 위에 부드럽게 수놓아져 있건만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비춰지지 않았다. 파면 위를 유영하는 소금쟁이조차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그림자는커녕 흡사 바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크르릉!



  문득 화가 나서 호수에 비친 달의 그림자를 할퀴었다. 그림자를 잘게 부수고 흩뜨리고 표면을 뒤흔들어도 호수는 여전히 자신 외의 모든 존재들을 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 좀처럼 화가 가시지 않았다.



  왜?



  그는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커다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자신이 존재하는가 안하는가에 대한 의문. 끝도 없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또 다시 오랜 세월동안 답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여전히 인간들은 뭔가를 창조하고 파괴하기를 반복하면서 정열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그를 알아봐주는 이가 없었다. 그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지진을 일으키고 각종 천재지변을 일으켜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왔지만,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들은 더 이상 천재지변을 신의 분노라고 여기지 않았기에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는 마치 고립무원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 누구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끝도 없는 기나긴 여정, 그 긴 시간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고립무원의 중심으로 몰아넣은 인간들에 대한 중오심과 자신을 이렇게 만든 창조주에 대한 분노와 일말의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창조주의 뜻에 따라 수억년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존재하고 있던 그였기에 가슴 한 구석을 매정하게 뚫어버린 배신의 창날은 상상외로 아프고 저렸다. 그는 크게 포효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조차 볼 수 없어 그는 자신이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아니면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당신은 울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울지 말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는 울고 있는 자신이 과연 진짜 자신인지조차 의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닥치는 대로 인간 세상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해일과 폭풍을 일으켜 세상을 뒤엎고 자신에게 슬픔과 고독이라는 감정을 가져다준 인간이란 종족을 증오하며 그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전 세계를 뒤덮는 대홍수를 일으켰다. 거센 물살이 문명을 휩쓸고 인간과 함께 지상의 동식물들까지 덮쳤다. 그렇게 몇날 며칠의 오랜 시간동안 세상을 파멸로 이끌고 간 그는 온통 바다로 변한 세상을 내려다보며 그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또 다시 슬픔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눈에조차 보이지 않는 그것이 존재하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바닷물의 촉감을 느끼고, 바람의 흐느낌이 전신의 비늘을 곧추서게 만드는데 존재에 대한 의문과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은 도무지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게 슬픔과 고독을 껴안고 방황하던 어느 날, 망망대해 위를 활공하며 날아다니던 그는 문득 바다 위에 애처롭게 떠돌고 있는 작은 배 하나를 발견했다. 거센 파도와 폭풍우를 넘어온 듯,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목조선이었다. 그 선상엔 가지런하게 누워 있는 한 쌍의 늙은 남녀가 있었는데, 식수부족으로 바싹 말라 죽은 그들의 품에 딸로 추정되는 작은 소녀 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며 안겨 있었다.



  무슨 변덕이 있었던 것일까. 한동안 허공에 멈춰서, 곧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쌕쌕거리는 소녀를 바라보던 그는, 곧 배를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고산 꼭대기로 향했다. 그는 굳센 꼬리와 강함 힘을 이용해 절벽에 억지로 구멍을 뚫어 암굴을 만들고, 그곳에 배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늙은 부부의 시체를 꺼내 땅에 묻어주고, 소녀를 꺼내 한 손에 든 채, 보트를 부숴 땔감으로 만들었다. 땔감 몇 개를 모아 뜨거운 입김을 이용해 조심스레 불을 붙인 그는 체력이 떨어져 떨고 있는 소녀를 그 옆에 조심스럽게 옮겨주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낸 절대자는 곧 식수를 위해 비구름을 불러들였다. 편의상 인간형태로 몸을 축소한 그는 두 손을 모아 동굴 밖에서 빗물을 받아들고 소녀에게 다가가 입술이 다 말라버린 아이의 입가에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주었다.



  “으응….”



  소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지 신음을 내쉬며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너무 급하게 들이킨 걸까? 사레가 걸려 콜록콜록거리며 연신 기침을 내뱉은 소녀는 그제야 조금 살겠다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고맙습….”



  그러나, 소녀의 인사를 듣는 다음 순간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눈에 보이지 않을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줬기 때문이다. 그는 물이 담긴 두 손을 덜덜 떨 정도로 놀랐다.



  너는 내가 보이니?



  인간들의 언어로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녀에게 말을 거는 순간 이 환상이 깨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힘들게 웃으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내뱉던 갈색 머리의 소녀는 아직도 기운이 없었는지 뒷말을 흐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힘든 선상 생활과 식수 부족, 햇볕 등등에 의해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제 와서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자신에게 분노와 절망의 고통을 안겨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이제 와서 속죄라고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뒤 절대자는 소녀를 보살피며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손수 음식을 만들어 소녀에게 먹이고, 이따금씩 비구름을 불러들여 식수를 마련했다. 땔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물에 잠긴 세상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베어오고, 손수 소녀를 위한 책상과 침대까지 만들어주었다. 그 와중에 그는 소녀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망이 컸지만 예전과 같은 절망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을 향해 미소지어주고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주는 소녀의 존재는 그에게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답니다.”



  남자의 물음에 소녀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소녀는 이제 성숙한 여인이 되었고 그는 아직도 소녀의 곁에서 그녀를 보살피고 있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그의 얼굴엔 웃음이 늘어나고 말도 상당히 많아졌다. 소녀와 있는 시간은 그의 기나긴 생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변덕이다. 그 옛날 인간들을 보며 즐거워했다가 그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에 절망한 뒤 홍수로 지상을 쓸어버린 것처럼 그는 작은 카나리아를 기르며 그 노랫소리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든 싫증나면 버릴 수 있으리라 그는 그렇게 여겼다.



  “따뜻해.”



  어느 평범한 달밤, 소녀는 그의 품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체온을 느껴주고 그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게 해주는 소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그로 하여금 존재의 뚜렷함을 느끼게 만드는 소녀를 바라보며 문득 그는 그녀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머리를 가슴팍에 보듬어 안으며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소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젠 두려웠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그와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덧없이 사라질 그녀를 생각하니 소녀가 사라지고 난 뒤에 찾아올 지독한 고독이 떠올랐다. 수천년동안 이어진 고독과 슬픔을 다시 감내할 생각을 하니 덜컥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눈가에 어느덧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눈물이 윤곽도 없는 볼을 타고 흘러내려 소녀의 머리 위에 툭툭 떨어졌다.



  “울어요?”



  소녀는 슬픈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간의 체온을 교환하는 동안 문득 소녀가 팔을 들어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세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래, 바로 저 말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고 다니던, 그리고 갈증에 목이 말라왔던 그 한마디가 바로 저 말이었다. 고독의 늪 속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구원을 청하는 자신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던 존재의 자아가 이제야 그를 잡아 올려주었다. 그동안의 고통이 한순간에 복받쳐 올라온 걸까? 그는 소녀를 강하게 끌어안고 오열했다. 자애롭고 따뜻한 소녀의 체온을 느끼며 그는 끝도 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제야 그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아도 자신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길고 길었던 고뇌의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한 의문점을 소녀의 말 한마디로 확연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후 그의 마음을 옭죄고 있던 사슬이 한 꺼풀씩 풀려날 때마다 지상을 뒤덮은 바다가 서서히 그 수위를 낮춰갔다. 채워지는 행복과 함께 육지는 다시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빽빽하게 뒤덮은 먹구름들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었다. 태양의 성스러운 세례를 받은 축복받은 대지는 다시 녹음으로 우거졌고, 자연은 태생의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허나,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길 빌었건만 끝은 쏜살같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행복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50년? 인간에겐 길지 몰라도 그에게 있어선 눈 깜짝할 만한 시간이었다. 영겁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그와는 달리, 소녀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끝은 언제고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육지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살아남은 생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소녀가 정해진 수명을 다 써버리고 숨을 거두려 하고 있을 때였다. 병상에서 쌕쌕거리는 소녀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손을 잡아줘요, 내 사랑.”



  그는 소녀의 머리맡에 서서 소녀의 소원대로 손을 잡아주었다. 두 손으로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쓰다듬는 모습이 마치 처음 소녀를 손에 들었을 때와 같이 간절하고 조심스러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소녀를 구한 것은 변덕도 뭣도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너무나 사랑했기에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려야 했던 인간에게서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모습이 보이지 않아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안타까운 듯 소녀의 손등을 쓰다듬는 것에서 그의 복잡한 심경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최후의 미소를 지어주었다. 웃는 그녀의 얼굴 또한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감사하다고 미소지어주던 소녀의 얼굴이었다.



  “당신 손은 여전히 따뜻하군요, 가엾은 사람. 하지만 이젠 걱정하지 않아요."



  소녀가 마지막 말을 미처 다 하지 못하고 눈을 감는 순간, 기어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조차 투명하여 육안으로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리고 그것이 뜨겁게 느껴지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 날, 그는 소녀를 묻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더없이 아름답고 웅장하게 날개짓하며 태양을 향해 높이 비상했다. 여전히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지만, 그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Fin


 





 


우, 우려먹기라고 나, 나를 욕하지 마셈!!!!!!!!!


 


저, 저는 다만, 참가에 의의를 두자는 생각으로..... 이, 이건... 젠장!


 


 


 


 


도주!!!!!!!!!!!!!!!!!!!!!


 


 


 


 


 


 


PS:어쨌든 전에 올린 것보다 서술은 많이 고쳤으니. 덧붙인 말도 있고.... ㅡㅡ;;;; 엣탄올사마....... 훼이끄 친거 용서해드릴게요. 제발 자비를.....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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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2 [겨울E] 4월 29일 [4] 금강배달 2007.02.08 952
7681 또 다른 키라 [2] file 책벌레공상가 2007.12.08 952
7680 지구 멸망 카르고의날개 2008.05.30 951
7679 어둠을 먹다. 과자 2008.01.25 950
7678 The Blizzard Hell Cross 2007.12.11 950
7677 The After Sunset [1] [6] 크리켓≪GURY≫ 2008.06.07 947
7676 PANDEMONIUM [6] Rei 2008.05.19 947
7675 대장장이 소년의 이야기 [6] 씨말른아이 2007.05.26 947
7674 엘도라 [1] 김게맛 2008.11.03 946
7673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LiTaNia 2008.10.28 946
7672 ☆★☆★ 겨울 단편제 종료 ☆★☆★ [11] 에테넬 2007.02.11 945
7671 빛의 서사시 [2] 글쟁이 2010.11.13 945
7670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LiTaNia 2008.09.21 939
7669 32bit Sharone 2007.07.08 939
7668 또다시 엇나간 이야기 LiTaNia 2008.11.20 938
7667 nation information spy 혜힐 2007.08.07 936
» [FE] 투명 드래곤 (Invisible Dragon) [20] 갈가마스터 2007.08.18 935
7665 [F.I.N]對[창조도시] [4] 무역장사 2007.08.01 933
7664 maggot [8] idtptkd 2008.08.07 932
7663 왜곡 [2] 영웅왕-룬- 2007.09.09 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