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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어둠을 먹다.

2008.01.25 18:45

과자 조회 수:950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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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남쪽의 전라남도에 위치한 계획도시 염하. 이곳은 대한민국이 esp 선도국가로 부상한 후 KEFO의 주도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esp기술이 총동원되어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를 꾀하는 곳으로 이런 계획도시가 염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있는 7개 도에 각각 KEFO주도의 계획도시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주목적은 esp산업의 발전과 에스퍼 양성. esp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회 각 분야에 활용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도시에는 게토가 형성되지 있지 않았다. 정부에서 애초에 번화가의 사람들만 입주를 허용한 것이었다. 사회의 엘리트들과 에스퍼들만이 모인 곳, 그곳이 계획도시 염하였다.


 계획도시였던 만큼 도시 내부는 깔끔했다. 미로형의 게토와는 달리 KEFO사무실을 중심으로 방사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각 구획별로 정확히 나뉘어져 있었고, 시 의회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관리되어 다른 일반 시, 도보다 자치적 성격이 강했다. 도시 외곽 지역에는 불법 이주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 염력벽이 세워졌으며 관공서를 비롯한 중요 기관에는 에스퍼들이 파견되어 있었다.


 “여긴가…?”


 KEFO 사무실 앞에 한 소년이 서있었다. 하수구에서라도 막 빠져나온 듯한 꾀죄죄한 차림이었다. 머리는 어깨높이 만큼 길었지만 머리를 감지 못한 듯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얼굴도 오랫동안 씻지 못했는지 거무튀튀했으며 옷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KEFO 사무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뭔가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있던 소년은 사무실 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반듯하게 깍인 대리석 계단을 하나하나 올랐다. 겉모습은 거지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걸음걸이에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멈추십시오. 여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지역입니다. 신분을 밝히시죠.”


 사무실 정문 앞에서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소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짙은 남색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이 쓴 모자에는 KEFO의 공식 엠블럼이 새겨져 있었다.


 “저 말입니까? 여기서 에스퍼를 양성한다고 들어서….”


 “용건을 물은 게 아닙니다. 신분을 밝히십시오.”


 경비원은 표정을 찡그렸다. 소년의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염하의 시민이 아님이 틀림없었다. 번화가의 주민들이 저렇게 거지차림으로 돌아다닐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곳의 사람이 아니군요. 그 차림으로 보면…혹시 게토의 사람입니까?”


 옆에 있던 경비원 한 명이 소년에게 물었다. 그랬다. 거치차림의 사람이라면 다른 지역의 게토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번화가의 사람과 게토의 사람들은 확연히 구별이 되었다.


 “게토? 아아,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소년의 말을 들은 경비원 두 명은 그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


 “여긴 게토민들은 출입할 수 없다. 그것도 모르나? 아니지, 도시 외곽에 염력벽이 설치되어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들어올 수 없을 텐데…? 네놈,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거냐!” 


 경비원은 소년을 마주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냥 들어왔는데? 전 당신들을 보러 온 게 아닙니다. 비켜주시죠.”


 “이 놈, 넌 이 도시에 있을 자격이 없어!”


 한 경비원이 소년의 어깨를 밀쳤다. 소년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경비원은 어디론가 무전을 걸고 있었다. 도시방위대에 신병 인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자격? 단지 도시에 들어오는데 그런 게 필요합니까? 당신과 제가, 다릅니까?


 경비원에게 밀쳐진 소년이 나지막이 물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소년의 말을 들은 경비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큭큭, 당연하잖아? 우리들과 너희가 같다고 생각하는 거냐? 우리는 너희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야. 알어? 병신들.”


 경비원이 웃었다. 무전을 마친 경비원도 따라 웃었다. 번화가의 사람 두 명이 게토의 사람 한 명에게 비웃음을 퍼붓고 있었다. 소년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다. 단 한 명도, 보통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 똑같군.”


 소년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다.


 “네? 방금 뭐라고 했죠? 거지니임?”


 경비원의 말. 일부러 모욕감을 주기 위해 늘려 말하고 있었다. 그때-


 “…Pushing a Way.”


 상황이 반전되었다. 소년의 짧은 한마디에 경비원 두 명이 튕겨나가 정문의 유리창에 부딪혔다. 방탄 처리된 유리창이라 깨지진 않았지만 군데군데에 금이 갔다.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여자의 높은 비명소리, 남자의 낮은 비명소리, 방위대를 부르라고 외치는 소리, 모두 번화가의 말들이었다. 게토민의 말은 없다. 이곳은 번화가의 사람을 위한 곳. 계획도시 염화.


 소년은 어떤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 서있었다. 그 눈은, 마치 버러지를 보는 듯한 경멸의 눈빛이었다. 그 시선은 스쳐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응시하였다. 기절해있는 경비원을 쳐다보고, 고급스러운 투피스 정장을 입은 중년의 여자를 쳐다보고, 검은색 양복에 나비가 수놓아진 타이를 맨 젊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아, 다 똑같구나. 다 같아.


 “저기 있다! 저 놈을 잡아라!”


 사무실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예의 경비원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사무실을 지키는 경비들이었다. 똑같은 남색 제복을 입고, 똑같은 엠블럼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정문으로 뛰어들었다. 저 자를 잡아라. 거지같은 게토의 사람을 잡아라-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비원이 달려오는 상황은 분명히 위험했다. 소년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채 한 치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꼼짝 마라! 게토의 사람이 왜 이곳에 있는 거냐? 용병인가!”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비원들을 차례로 응시하였다. 같은 제복,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제각기 얼굴은 달랐다. 다르다.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다르다고.


 “…침입하려는 게 아닙니다. 에스퍼가 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드디어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왠지 모를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때, 경비원 무리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헛소리-”


 경비원들을 헤치고 한 건장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소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 같은 놈이, 에스퍼가 되겠다고?”


 사내의 손이 소년의 복부를 향했다.


 “웃기지 마라-”


 소년의 몸이 튕겨나갔다. 대리석 계단을 지나 그 앞의 풀밭 위로 떨어졌다. 엄청난 esp였다. 그 크기만이 아니라 소년의 복부로만 염력을 집중하는 컨트롤도 탁월했다.


 “에스퍼가 애들 장난인줄 아나?”


 대리석 계단의 맨 위에서 사내가 말했다. 사내의 몸은 탄탄했다. 운동을 많이 했다는 것을 보여주듯 다부져보였고 머리는 짧게 깍은 전형적인 스포츠 머리였다. 그는 계단 위에서 소년을 향해 눈을 내리깔았다. 소년은 충격이 컸는지 풀밭 위에서 무릎 꿇고 앉아 심한 기침을 했다. 그 때 소년의 뒤 쪽에서 또 다른 사람의 무리가 달려왔다. 몇 분전에 경비원이 부른 도시방위대였다. 그들 중 가장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연행하겠습니다.”


 계단 위의 사내에게 물었다. 소년을 쳐다보면 사내는 얼마 안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사내의 승낙을 받은 방위대들은 소년의 뒤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소년의 팔을 잡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양쪽에서 소년의 팔을 잡은 방위대는 소년을 밖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꽤 강한 힘이었다.


 “놔….”


 작은 중얼거림. 


 “놓으란 말이다!”


 소년이 외쳤다. 사무실 안까지, 밖의 거리에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그리고 소년을 잡고 있던 방위대들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아까와는 다른 전방위의 염력 방출. 특정한 대상이 없는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계단 위에서 몸을 돌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사내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다시 소년을 보았다. 소년 주위의 풀들이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삐쭉 서있었고 작은 돌들이 공중에 떠있었다.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주위의 공간이 왜곡되어 보였다. 염력이 가야할 방향을 모르고 소년의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방위대는 소년의 esp에 놀랐는지 어쩔 줄 몰라 소년의 뒤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건장한 사내는 다시 손에 염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방금 전 소년의 복부에 가한 esp보다 배로 강한 염력이었다.


 “그만 하거라.”


 그 때 사무실 안쪽에서 위엄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경비원들 사이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다부진 몸을 가진 노익장이었다.


 “모두 그만해라.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방위대 분들도 돌아가 주십시오. 경비원들도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그 즉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만하라고 했다.”


 노인이 다시 말했다. 전과는 다른 위압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방위대와 경비원들은 제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돌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방위대는 사령부로, 경비원은 경비대기소로 돌아갔다. 소년을 공격한 사내는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후회하실 겁니다.”


 사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작게 말했다. 노인은 웃고 있었다.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온화한 표정이었다.


 “그쪽의 너도 들어오너라.”


 소년을 향해 말했다. 소년은 여전히 염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소년의 눈빛은 주위를 경계하는 듯 날카로웠다. 믿지 않아. 아무것도 믿지 않아.


 “에스퍼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순간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뭔가 결심했는지 주위의 염력을 풀었다. 풀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흔들렸고 돌은 땅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사무실 안을 향해 걸어갔다. 소년의 뒤에 있던 정원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했다. 다만 소년이 있던 곳에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을 뿐이었다.




 소년은 노인의 뒤를 따라 사무실 위로 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가는 동안 소년은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자신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소년의 더러운 차림을 본 사람들은 누구라도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소년은 이 넓은 공간 속에서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다. 자신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예전에 있던 게토에서도, 지금 있는 번화가에서도. 이젠 익숙해진 것이다.


 소년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은 지나칠 정도로 깨끗했다. 엘리베이터 바닥도 로비 바닥과 마찬가지로 반듯하게 깍인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거울도 손자국 하나 없이 맑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소년과 노인 둘 뿐이었다.


 “이 곳은 전국에 있는 계획도시 중에서 4번째로 만들어진 곳이라네.”


 노인이 말했다. 소년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정부가 주도한 계획도시인 만큼 시설도 완벽하다네. 느끼고 있겠네만, 지금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도 일반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esp를 응용한 시설이라네.”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그런가.”


 소년과 노인의 대화는 얼마 가지 못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사무실로 쓰이는 빌딩의 중간층에 도착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나와도 층을 나타내는 표시는 없었다. 마치 층과 층 사이에서 엘리베이터가 잘못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이 곳이 염하 KEFO 사무실의 사령부라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위장되어 있지.”


 말을 마친 노인은 앞으로 나아갔다. 소년은 노인의 뒤를 따랐다. 노인해 습기로 인해 온통 곰팡이와 이끼로 가득 차있는 벽을 따라 걸어가다가 한 지점에서 멈춰 몸을 돌렸다.


 “여기가 입구라네. 앞으로 자주 와야 할 테니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걸세.”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곰팡이가 슬은 벽이 있어야 할 곳에 새하얀 문이 나타났다.


 “esp특수능력인 환영이라네. 유니에르온 분자를 이용해 에스퍼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사령부가 있는 층 전체에 상상의 벽을 만들어내는 거지.”


 “…환영?”


 “모르나? 설마 자네, esp에 염력만 있다고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요?”


 “맞나보군.”


 소년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던 노인은 앞에 나타난 흰색 문에 지문을 찍어 문을 열었다.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보네.”


 노인은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소년은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안 되겠던지 노인을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문 안의 공간은 밖의 벽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바닥은 로비와 같이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고 복도 양쪽으로 개방된 공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안쪽에는 많은 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문마다 방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걔 중에는 사람의 이름으로 보이는 명찰도 있었다. 많은 방들을 지나 하얀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다른 곳과는 달리 큰 문을 가진 방이 나왔다. 문 위쪽에는 검은색 글씨로 ‘국장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년과 노인은 국장실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노인은 몸을 돌려 소년에게 시선을 향했다.


 “KEFO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내 이름은 이현중. 에스퍼 육성 기구 염하 지부의 국장이네.”


 노인은 간단한 목례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 지문을 찍어 보안장치를 푼 다음 문을 열고 국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어이없다는 듯이 노인을 한참 쳐다보던 소년은 노인의 어서 들어오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국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국장실 안은 넓었다. 노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상 뒤로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있었고 그 앞으로는 회의장처럼 마주볼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옆쪽에는 esp에 관한 책과 행정 업무와 관련된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는 책장이 들어서 있었다. 국장실다운 느낌이 나는 분위기였다. 현중이라는 이름의 노인은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소년을 앞으로 불렀다.


 “그래, 에스퍼가 되고 싶다고?”


 “…esp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지랄 맞은 게토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흠, 역시 게토의 사람이었군.”


 노인은 등받이가 긴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 말을 해준 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


 “했던…? 그런가. 하나 더 물어보지. 게토의 사람은 esp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해서 얻게  됐나?”


 “마찬가지의 사람이 준 능력입니다.”


 소년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말해줄 수 없나?”


 “….”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노인은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흐음, 아까 밖에서 봤는데…esp의 크기는 정말 대단하더군. 나이가 어떻게 되지?”


 “18살 입니다.”


 “18살에 그 정도의 esp라. 역시 대단해. 하지만, 부족한 게 많아.”


 노인은 지긋이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부족한 점이라니, 뭡니까?”


 “아까 못 느꼈나? 자네에게 염력을 날린 사람, 그 사람은 여기 KEFO 소속의 요원일세. 상당한 실력자지. 자네에게 부족한 건 바로 컨트롤이야. 인내심이 없단 말 일세. 자네의 염력은 단지 주변으로 방출해내는 것에 불과해. 아까 그 사람의 기술을 봤나? 몸으로 느꼈으니 더 잘 알겠지?”


 “….”


 “그는 자신의 esp를 컨트롤 할 수 있어. 단순히 방출하는 것은 당연하고 한 곳으로 응축하는 것도 쉽게 할 수 있지. 자네가 당한 기술이 바로 주변의 염력을 한곳으로 끌어 모으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야. 한마디로 자네는 기본도 모른다는 거지. 자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지?”


 “…네.”


 소년은 자신의 esp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본이 안 되어있다니, 마치 선생님이 제자에게 훈계를 하는 꼴이었다.


 “그게 문제야. 단지 크기만 한 esp는 소용없어. 주인을 무시하고 길길이 날뛰는 야생마에 불과해. 초보한테나 통할 능력이지. 그걸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하네. 아까도 들어보니, 자네 esp에 염력만 있는 걸로 알고 있더군?”


 “그 외에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역시. 아까 본 상상의 벽도 esp가 만들어 낸 환상일세. ‘환영’이라는 esp 기술 중 하나야.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에스퍼들은 자신이 어느 esp에 특화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네. 염력은 모든 에스퍼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야. 자네만의 능력이 아니라는 거지.”


 “…그렇습니까.”


 훈계성 발언을 들어도 소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자네의 esp는 정말 대단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달까. 하지만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네. 따라서 정식 요원으로 채용할 수는 없네.”


 “….”


 “하지만, 기회는 있어. 연습생으로 들어오게. 연습생의 신분으로 교육을 받은 후에 실력이 검증된다면 정식 요원으로 채용하겠네. 우리도 에스퍼가 시급한 시점이거든. 어차피 에스퍼가 되려면 자네의 신분 문제도 해결해야 되니까 시간이 걸릴 걸세. 그 동안 교육을 받는다면 자네에게나 우리에게나 좋을 거 같은데, 어떤가?”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국가 소속의 에스퍼가 되려 하는가. 이게 그렇게 힘을 쓸 만큼 중요한 일인가. 얼마동안 가만히 고민하던 소년은 결심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교육만 받으면, 에스퍼가 될 수 있습니까?”


 “자네의 실력만 된다면야,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시켜주십시오.”


 소년은 결심한 듯 했다. 목소리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소년의 결심에 찬 목소리를 들은 노인은 씨익 웃었다. 만족한 듯한 표정.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뭡니까?”


 “왜 에스퍼가 되려고 그러나?”


 소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망설이는 건 아니었다. 표정에 망설임은 없었다. 대신, 웃음이 있었다. 재밌어서 웃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경멸하는 미소.


 “에스퍼 용병들을 쓸어버릴 겁니다. 그 자식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합니다.”


 낮은 목소리, 거기에는 살의가 가득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보게.”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그럴 겁니다.”


 “큭큭, 항상 자신감이 넘쳐있군. 하지만 하나 기억해 두게. 지나친 자신감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네.”


 소년은 별로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여전히 살의를 가득 띠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자네의 이름이 뭔가?”



 


 


 “태하, 김태하입니다.”


 소년이 짧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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