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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FE]장님 소녀와 외팔이 용병의 이야기

2007.08.17 08:44

Rei 조회 수:1001 추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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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제가 1등이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핫[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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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No. 2 장님 소녀와 외팔의 용병의 이야기




지저분한 몰골의 소녀가 구부정한 나무작대기로 앞을 더듬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오랫동안 손질을 안 한듯 한 산발한 머리는 먼지와 기름때로 지저분하다. 꾀죄죄한 얼굴도 마찬가지, 씻은 적이 언제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얀색이 아름다웠을 모직 치마는 낡고 헤져 그 모습을 짐작하기 힘들다. 붉은빛이 감도는 모직상의 또한 군데군데 찢어진 곳이 보이지만, 소녀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어깨에는 숄인지 걸레인지 구분이 안가는 천 조각을 얹은 채였고 등에는 왜소한 체구에 비해 커다란 류트(lute)와 그보다 조금 작은 꾸러미를 메고 있었다. 류트도 소녀처럼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여기저기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고 있었고, 그 현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큼 낡아있었다.


류트의 무게가 부담스러운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소녀는 이따금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이고 다시 지팡이에 의지하여 앞으로 걸어갔다.


소녀는 장님이었다.


탁, 탁, 사락, 사라락.


지팡이가 풀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소녀는 길가를 벗어난 곳이라 생각하고 잠시 그곳에 앉았다. 길가를 벗어난 곳인지, 길 위에 난 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녀는 바닥에 앉아 허리춤을 뒤적거렸다.


『아... 물이...』


수통을 거꾸로 뒤집어 보았지만, 몇 방울의 물을 제외하곤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 길을 가는 사람에게 조금 얻은 물은, 이 주변에서는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소녀에게는 무척이나 귀중한 것이었다. 물이 다 떨어진 것에 우울해 하던 소녀는 다시 수통을 허리춤에 차고 길을 걸었다. 수통은 새고 있었다.


며칠 전 만난 사람의 말로는 앞으로 죽 걸어가면 제법 큰 마을이 하나 있다고 하니, 어떻게든 그곳에서 겨울을 지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소녀는 자신의 눈인 나무작대기를 짚고 일어나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걸었다.


몇 번이나 걷다가 쉬기를 반복한 소녀는 마침내 저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다. 너무나 기뻤던 소녀는 발걸음을 조금 빨리 놀렸지만 그 바람에 앞에 있던 돌멩이에 부딪혀 넘어졌다. 소녀는 쓰리란 곳을 쓰다듬으면서도 바보처럼 헤헤거리며 일어나 마을을 향해 걸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던 경비병들은 척 봐도 거지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소녀를 들이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던 소녀는 소중하게 간직하던 작은 돈주머니를 꺼낸 후 그것을 거꾸로 털어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돈을 양손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굽실거리며 경비병들에게 내밀었다.


소녀의 악취에 코를 싸매던 경비병들은 정말 몇 푼 안 되는 돈이라 고민을 했지만, '나리들 한 번 만 들여 보내주시면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연신 굽실거리는 소녀를 마을 안으로 들여 주었다.


『예, 예. 감사 합니다 나리님. 저기 죄송하지만 가까운 여관이나 펍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경비병들은 돈도 없는 거지가 여관을 찾는다고 이상해 했지만, 등에 메고 있는 류트를 보고는 짤막한 음악이나 이야기를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음유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나마 마음이 착했던 경비병 한명이 가까운 펍으로 데려다 주었다.


펍에 도착한 소녀는 경비병에서 크게 허리 굽혀 절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무척이나 어지러웠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느릿느릿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구석에 앉았다.


소녀는 등에 메고 있던 류트를 내려놓고 가슴에 꼭 품은 채로 조심스럽게 현을 퉁겼다. 팅, 팅 여전히 소리가 나자 얼굴이 환해진 소녀는 목을 몇 차례 가다듬고, 제대로 자세를 잡은 후 류트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시끌벅적하던 펍이 고요해졌다. 류트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소녀의 목소리가 펍 안에 퍼져나갔다. 한 소절을 마친 소녀는 류트를 내려놓고 일어나 깊게 절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몇 번이고 연거푸 노래를 부른 소녀는 바닥에 엎드려 손을 위로했다.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그 노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탓에 사람들은 저마다 동전을 한두 푼씩 꺼내어 소녀에게 던져 주었다.


마지막으로 짤랑 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 한참동안 소리가 들리지 않아 허리를 일으킨 소녀는 손을 더듬으며 동전들을 줍기 시작했다. 한동안 바닥을 기어 다니며 동전을 줍던 소녀는 더 이상 동전이 손에 잡히지 않자, 왼손에 가득 쥐고 있던 동전을 주머니에 담고는 밖으로 나가려고했다.


『잠깐만.』


걸걸한 목소리가 소녀의 등 뒤에서 들렸다. 소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린 후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예, 나리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네가 못 주운 동전이 있어. 받아가.』


『어휴, 감사합니다. 나리.』


소녀는 주춤주춤 다가가 공손히 양손을 내밀고 동전을 받았다. 동전을 품속에 넣은 소녀는 펍 밖으로 나서기 위해 나무작대기를 바닥에 두드렸다.


『너 어디 갈거냐?』


아까 자신에게 동전을 주었던 남자가 소녀의 옆에 서서 물었다. 소녀는 고개를 조아리고 대답했다.


『예, 예... 날이 추워지니 여관에 가려고합니다.』


남자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수염이 가득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데려다 줄까? 앞이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어이쿠, 감사합니다. 나리.』


남자는 소녀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이끌었다. 평소 느릿느릿 걷는 것에 익숙했던 소녀에게는 빠른 속도였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들였다.


『주인장 손님이야!』


카운터에 앉아있던 주인은 웬 거지가 하나 왔나 싶어 침을 탁 뱉었지만, 소녀가 굽실거리며 돈주머니를 풀어놓자 얼굴이 환해졌다.


『저어... 혹시 욕실이 어디 있습니까?』


『욕실? 저쪽에 가면 있는데.』


소녀는 주인의 추상적인 대답에 당황했다. 그냥 저쪽이라 하면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당황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던 용병은 주인에게 이 소녀가 장님이라고 귀띔해 두었고, 주인은 한숨을 내쉬며 종업원 하나를 불러 소녀를 욕실로 안내하게 했다.


나무작대기를 문 밖에 세워놓고 욕실 안으로 들어간 소녀는 옷을 몽땅 벗은 후 천천히 몸을 씻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을 씻은 소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도 빨기 시작했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익숙한 동작이었다.


역시나 오랜 시간에 걸쳐 옷을 다 씻은 소녀는 등에 메고 있었던 꾸러미를 풀어 그나마 양호해 보이는 옷을 꺼내들었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본 소녀는 이정도면 입을 만 하다고 생각했는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젖은 옷과 빈 꾸러미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2층으로 올라간 소녀는 잠시 복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변에 사람이 다가오자 허리를 조아리고 그 사람을 불렀다.


『거기 가시는 나리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던 용병은 반반해 보이는 소녀가 자신을 부르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곧장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예, 예. 제가 앞이 보이지 않아 제 방을 찾을 수 없으니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소녀가 방에 들어가자 문을 닫기 전, 발을 집어넣어 문 닫는 것을 방해 하고 자신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반쯤은 예상을 하고 있었는지 별로 당황하지 않고 용병이 안으로 들어오자 완전히 문을 닫았다.


『저어 나리...』


용병이 나무작대기를 빼앗아 버려 힘겹게 침대에 다가간 소녀는 자신 위에 올라탄 용병에게 말했다.


『왜?』


『일이 끝나면 몇 푼이라도 좋으니 돈을 좀 주십사하고...』


용병을 킬킬거리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뭘?』


조금 짜증이 난 용병은 바지를 벗으며 대답했다.


『예에. 옷이 이것밖에 없는지라 찢지 말아 주십사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옷을 찢어 벗기려 했던 용병은 뜨끔한 표정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옷을 다 벗은 용병이 다가왔고, 눈을 감은채로 별 표정 없이 누워있는 소녀위로 올라탔다.


침대가 삐걱였다.




소녀는 주섬주섬 흩어 진 옷을 끌어 모아 다시 입었다. 그래도 용병이 양심은 있었던지, 50코페짜리 동전 하나를 주고 갔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동전을 어루만진 후 돈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는 문을 잠그고 침대에 돌아와 편안히 누웠다. 기분 나쁜 냄새가 침대와 몸에서 진동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소녀는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소녀는 옷을 입고 잤던 그대로 류트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값이 싼 빵과 우유로 아침을 해결한 소녀는 주인의 도움을 받아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 후, 빵 덩이 두어 개를 산 다음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마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향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하는 탓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는 곳에 주저앉아 류트를 꺼내 현을 퉁기기 시작했다.


아직 아침이라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여행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한가롭게 이곳을 거닐던 사람들이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목이 마르면 수통에 담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빵 덩이를 베어 먹던 소녀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물어 저녁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 몸을 일으켜 가까운 펍으로 향했다.


펍의 저녁은 시끄러웠고, 소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펍 구석으로 간 다음 류트를 퉁겼다. 하루 종일 퉁기고 있었기에 손가락도 쓰라리고 목도 아팠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  뿐이어서 최대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감미로운 노래가 끝나고, 동전이 쏟아지고. 그것들을 주운 후 여관으로 돌아갔다.


녹초가 된 몸을 움직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소녀는 이번에는 제법 많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소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문 열어!』


소녀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문을 열었다. 대번에 소녀의 방으로 서너 명은 족히 될법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봐 내말 맞지?』


소녀는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어, 나리는 어제...』


『이번에는 네 명인데 괜찮겠어?』


그는 대뜸 소녀에게 물었다. 소녀는 잠시 주저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거부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문을 잠그고 소녀를 침대로 데려갔다.




50코페 동전이 세 개. 한명은 돈을 내지 않았다. 뭐 하러 앞도 안 보이는 병신계집에게 돈을 주냐며 비웃으며 돌아갔다. 밤새 네 명의 사내에게 시달린 소녀는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정오가 되어 일어난 소녀는 1층으로 내려가 곧장 욕실로 향했다. 찬 물밖에 없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하여 몸을 씻은 후 저번에 씻어두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1층으로 올라간 소녀는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주인에게 저녁이 되면 부르러 와달라고 말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소녀는 너무 피곤하여 오늘은 저녁까지 쉬기로 하고 침대에 누웠다. 기분 나쁜 냄새가 방안을 진동했다. 소녀는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고, 눈을 감았다.


똑! 똑!


저녁이 되어 소녀를 깨우러 간 종업원은 몇 차례 문을 두드려도 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자,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직접 소녀를 깨우러 들어갔다.


창문을 열지 않아 환기가 안 되고 있던 방안에는 께름칙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종업원소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녀를 깨웠다.


『일어나세요! 저녁입니다!』


몇 차례 소녀의 몸을 흔든 종업원은 소녀가 옹알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창문을 열어 환기라도 좀 시키라고 핀잔을 주고 밖으로 나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소녀는 종업원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벽을 더듬어 창문을 찾아낸 다음 활짝 열어 젖혔다.


신선한 공기가 방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소녀는 잠시 그 공기를 한껏 들이킨 후 류트와 나무작대기를 들고 펍으로 향했다.


첫날과 둘째 날 이후 소녀가 가서 노래를 부를 때 마다 점차 수입이 줄어들었다. 그 대신 몇 푼 안 되는 돈에 별의별 짓을 다 해도 받아준다는 창녀로 이름이 나게 된 소녀는 밤마다 사내들에게 시달렸다. 개중에는 돈을 내지 않고 연달아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관 주인은 자신의 여관은 갈보집이 아니라며 못마땅해 했지만, 소녀가 한번만 봐달라며 돈을 얹어주어 그럭저럭 여관에서 버틸 수 있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여전히 저녁에 펍으로 노래를 팔러 가던 소녀는 누군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는 것을 알았다.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굽실거리며 물었다.


『저어, 나리 죄송하지만 좀 비켜주실 수 없으십니까?』


『싫은데.』


소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부탁했지만, 그는 여전히 '싫은데'라고 응수했다. 소녀가 어쩔 줄 모르는 동안 소녀의 앞을 막은 남자가 소녀에게 물었다.


『너, 돈은 충분히 벌었을 텐데 왜 매일 노래를 팔러 나가는 거냐?』


소녀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더욱 조아리고 대답했다.


『예에,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너랑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돈이라면 내가 주지.』


『그런 게 아닙니다. 나리』


외팔이 용병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아니면 뭐야?


『그게 아니면 대체 뭔데?』


『예, 예. 돈이 있어도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되서...』


용병은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소녀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소녀는 자신을 끌고 가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놔 주십시오 나리!』


한참을 말없이 소녀를 끌고 가던 용병은 한적한 곳에 도착하니 소녀의 손목을 놓았다. 소녀는 손목을 주무르며 자신을 끌고 온 남자에게 물었다.


『나리, 무슨 일입니까?』


『그냥.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서. 좀 앉지?』


소녀는 불안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용병은 소녀가 앉는 것을 보고 덩달아 그 옆에 앉았다.


『이름이 뭐야?』


『예에, 이즈라고 합니다.』


『이즈? 성은 없어?』


『아닙니다 나리. 이즈 아드렘 입니다.』


『그래? 난 릭슨, 릭슨 시가드레스. 성이 좀 특이하지?』


『네, 그렇습니다.』


외팔이 용병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소녀를 보며 물었다.


『넌 왜 모르는 사람한테도 나리, 나리, 그러고 존대 말을 쓰는 거지?』


소녀는 용병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헤헤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예. 저는 미천한 음유 시인인데다 앞도 안 보이는 병신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용병은 실없이 웃는 표정을 짓는 소녀가 한없이 불쌍해 보였다. 그는 소녀가 생명처럼 꼭 쥐고 있는 나무작대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난, 용병이다. 예전에는 불사조 릭이라고도 불렸지. 그거 다 개소리야. 불사조가 팔이 잘리나? 넌 안보이겠지만 난 외팔이다. 그래도 그동안 착실하게 벌어둔 돈이 있어서 굶고 지내지는 않지만... 넌 목표가 뭐냐?』


『목표 말입니까?』


『그래, 목표. 난 한때 이르니아 제일의 용병이 목표였다. 지금은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그래서 나중에는 근사한 용병대를 한번 이끌어 보고 싶었어. 너도 이런 것 쯤은 있을게 아니야?』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합니다.』


용병은 소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없어?』


『예, 나리.』


『정말? 정말 없어?』


『예, 그렇 습니다 나리.』


『그럼 그냥 죽지 왜 살아있나?』


소녀는 말이 없었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소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했다.


『사실, 꿈이 하나 있습니다. 나리.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서 작은 가정을 이루는... 너무 큰 꿈이라 도저히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서...』


용병은 말없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한참동안 용병이 말이 없자 치마를 털며 일어났다.


『하실 말씀이 더 없으시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리.』


『기다려.』


막 출발하려던 소녀는 걸음을 멈췄다. 외팔이 용병은 소녀에게 다가가 나무작대기를 쥔 손목을 잡고 말했다.


『내가 데려다 주지.』


『감사합니다. 나리.』


용병은 소녀를 이끌고 가까운 펍으로 향했다.




『너 나이가 몇이냐?』


『모르겠습니다 나리.』


용병은 소녀를 이끌고 가며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스무 살은 넘지 않은 거 같고... 그럼 대충 열여덟 살 정도 됐나?』


『나리가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게 제 나이입니다.』


『난 스물일곱 정도. 정확한 나이는 아니지만 대충 비슷하지.』


『예.』


용병은 다시 말없이 소녀를 이끌었다. 한동안 걷다가 펍이 보이기 시작하자 다시 소녀에게 말했다.


『너, 몸을 팔고 있다고 하던데.』


『아닙니다. 나리.』


용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꽤나 유명하던데?』


『나리, 그게 아닙니다. 그냥 그분들이 절 쓰시고 돈을 내시는 겁니다. 전 몸을 팔지 않습니다.』


용병은 이 이해 못할 사고를 하는 소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녀를 안으로 인도한 용병은 적당한 자리를 잡아 주었다. 소녀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노래를 불렀다. 펍의 사람들은 매일같이 펍을 돌며 부르는 소녀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는 듣기 좋은 목소리였지만, 너무 많이들은 지금은 부르던 안 부르던 상관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노래를 끝낸 소녀는 동전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자, 풀이 죽은 채 몸을 일으켰다. 용병은 소녀의 곁에서 노래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소녀가 노래를 끝내자 손목을 잡고 여관으로 이끌어 주었다.


용병은 소녀의 방까지 데려다 준 다음 자신도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소녀는 조금 피로한 기색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탕탕탕!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소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용병이 문 앞으로 다가가 소리쳤다.


『썩 꺼져 이것들아!』


문 밖에 있던 사람들은 너 혼자만 재미 볼 생각이냐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용병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 라는 식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침대위에 앉아 자신에게 다가오는 용병을 향해 물었다.


『나리, 왜 그러셨습니까?』


『너 몸은 안판다면서.』


『예.』


『그러면 저런 잡것들을 아예 안으로 들이지 않으면 될 거 아니야.』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하지만 고맙습니다. 나리.』


소녀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고, 용병은 밖에서 왈왈거리는 것들이 다 사라질 때 까지 기다라다가 투덜거리며 한두 명씩 돌아가기 시작하여 이윽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제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이후 용병은 소녀와 함께 다녔다. 소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고, 도리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줄때마다 감사를 표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척이나 비굴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소녀에게는 자연스러운 듯 보였다.


펍에서 노래를 불러도 더 이상 돈을 받지는 못했지만, 소녀에게는 충분한 돈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낙심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밤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용병이 쫓아내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올 무렵 소녀는 주섬주섬 자신의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용병은 소녀가 떠날 거라는 것을 알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소녀에게 물었다.


『갈 거야?』


『예, 겨울도 다 지났으니 다른 곳으로 가볼까 합니다.』


『항상 이렇게 움직여? 겨울에는 한곳에 있고?』


『예, 그렇습니다.』


소녀는 오물거리며 빵을 먹었다. 용병은 그 모습을 보다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예?』


소녀는 조금 놀란 얼굴로 용병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뭐... 나도 딱히 할 일은 없고, 혼자서 그렇게 떠돌아다니면 위험할 텐데. 아, 돈은 걱정 하지 마. 아껴 쓰면 죽을 때 까지는 걱정 없을 테니까.』


소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나리. 저 같은 것을 걱정해 주시고...』


『뭐, 나도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게 지겨워서 그러는 거니까 그렇게 안 고마워해도 돼.』


소녀는 용병의 말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한 뒤 남은 빵을 먹었다. 소녀가 빵을 다 먹자 용병은 그녀를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지금 갈 거야?』


『아닙니다. 나리. 오늘만 여기 있다가 내일 떠날 생각입니다.』


『그래? 그럼 저녁에 데리러 올 테니까. 그 때 보자구.』


『예, 나리.』


용병은 소녀에게 받은 열쇠로 밖에서 문을 잠그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이 마지막인가.'


용병은 침대에 누워 멋없이 만들어진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이 이곳 에코메브에서 소녀의 마지막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저녁이 되어 소녀를 데리고 펍으로 간 용병은 그날따라 자신과 소녀를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시선이 제법 된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그 사실을 몰랐고, 평소와 다름없이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공연이지만, 사람들은 소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쭉 이어진 대로 허탕만 친 소녀는 용병의 손에 이끌려 여관으로 돌아갔다. 용병은 소녀에게 '내일 아침에 보자'라고 말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따라 몇 번을 뒤척이며 잠을 설치던 용병이 막 잠이 들 무렵 다른 방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나리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용병은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에 뭔가 일이 터졌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은 단창을 꼬나 쥐고 소녀의 방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방문을 열었는지, 십여 명의 남자들이 소녀를 방 중앙에 내동댕이친 채로 둥글게 둘러싸고 킬킬거리고 있었다.


『나, 나리들 이러지 마십시오!』


소녀는 앞이 보이지 않아 허우적거렸지만,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되려 웃으면서 소녀를 욕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용병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목에 창을 찔러 넣었다. 피가 튀고, 창에 찔린 남자가 쓰러졌다. 한창 소녀위에 올라타 재미를 보던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들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죽인 용병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죽었다!』


소녀를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녀위에 올라타고 있던 남자도 사색이 되어 도망치려 했지만, 용병에게 목이 꿰뚫려 죽고 말았다. 소녀는 바닥에 누워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합니다 나리들... 제가 아무리 미천해도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용병은 소녀의 짐 꾸러미를 뒤져 온전한 옷을 한 벌 찾아내어 소녀에게 입혔다. 소녀가 옷을 다 입자, 곧장 소녀를 붙들고 도망쳐야 한다고 말했다.


『도망쳐야 돼! 시간을 끌면 그 녀석들이 자기 패거리를 끌고 오거나 경비병들이 들이 닥칠지도 모른 다구!』


소녀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은 소녀를 이끌고 재빨리 여관을 벗어나 마을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몇 명인가 용병을 멈춰 세우려고 노력을 했지만, 용병의 창술이 제법 뛰어난 탓에 외팔로 창을 휘두르는 용병을 당해내지 못했다.


용병은 창을 휘두르랴, 소녀를 끌고 가랴, 한팔 밖에 남지 않은 자신을 저주할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간신히 마을을 벗어 날 수 있었다.


창은 등에 메고 느릿느릿 뛰어 마을을 벗어난 용병은 마을과 제법 거리가 멀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쫓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금 안심하고 천천히 움직이던 용병은 마을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네 발끝만 새하얀 말을 타고 온 남자는 용병을 앞질러간 다음 그 앞을 막아서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으쌰! 당신이 그 살인자야?』


용병은 자신 앞에 있는 남자의 말을 듣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 버러지 같은 놈들 몇 죽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용병 앞에 있는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했다.


『그건, 그거고 당신을 사람을 죽였잖아. 지금 급히 수배가 내려졌단 말이야.』


『뭐?』


『무고한 사람 일곱을 헤치고 달아난 외팔이 용병, 무기는 창을 쓴다. 당신 맞지? 현상금은 20실버. 큰돈은 아니지만 내가 요즘 자금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해서 말이지.』


용병은 눈앞의 남자를 보며 슬그머니 창을 쥐었다. 이즈를 뒤로 물린 다음 창을 겨눈 용병은 고함을 지르며 눈앞의 남자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하압!』


하지만 용병을 막아섰던 남자는 여유롭게 용병의 단창을 피하고 창대를 잘랐다. 용병은 순식간에 반절이 되어, 쓸모없는 나무작대기로 변한 자신의 창을 보며 새하얗게 질렸다.


『흐음, 그럼 조잡한 수로는 안 돼. 자아 죽은 채로 갈래? 살은 채로 갈래?』


남자의 말을 들은 용병은 분노하며 창대만 쥐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창대마저 다시 절반이 되어 버리자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이런, 그냥 죽여서 데려가야 하나?』


『안됩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소녀는 급히 용병 앞으로 뛰어 들었다.


『나리, 한번만,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소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앞에 있는 남자에게 빌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한다...'


하지만, 곧 결심을 굳힌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살인자는 용서할 수 없어. 레트인의 교리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야.』


소녀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하지만, 나리께서도 이분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남자는 제법 아귀가 맞는 소리를 하는 소리를 하는 소녀에게 대답했다.


『틀려.』


『예?』


『살인자를 죽이는 것은, 이르니아를 수호하는 기사의 의무이자 레트인의 성기사의 도리이기도 하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랑 나를 동급으로 놓지 마라.』


소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에게 간청했다.


『그, 그러면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이분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다 제 잘못 입니다!』


남자는 굳은 얼굴로 소녀에게 말했다.


『그것도 안 돼. 사람을 죽인 건 저 녀석이지 네가 아니니까. 그럼 너, 네 목을 가져가겠다.』


남자는 그 말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아악!』


용병은 꼼짝없이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비명이 들려오자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엎드려있던 소녀가 어느새 일어나 용병 대신 남자의 검을 맞았다. 소녀는 꺼져가는 생명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남자에게 간청했다.


『나리... 제 목숨으로 제발 이분을 대신...』


용병과 남자 모두,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무고한 생명을 헤치게 된 남자는 자신의 검에 분노를 터뜨렸고, 용병은 자기 대신 죽은 소녀를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


『이-즈!!!』


이즈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리... 짧지만 절 보살펴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 뿐이라...』


이즈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어둠, 어둠, 어둠.


죽은 소녀는 깊은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빛, 빛, 빛.


환한 빛이 어둠을 뚫고 소녀에게 다가왔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 지키고 싶습니까?』


[네]


소녀는 입으로 대답하지 않고 온몸의 의지로 자신에게 다가온 빛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될 것 입니다. 당신이 진정 지키고자 했던, 그 사람. 당신은 그 사람을 지키게 될 테니 까요.』


그 말을 끝으로 빛은 사라졌다. 이즈는 아득해 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자신에게 다가왔던 빛이 건넸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내가 진정 지키고자 했던 사람?'




죽은 소녀를 끌어안고 있던 용병은 갑자기 소녀의 몸에서 빛이 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여서, 레트인의 천사가 강림한 것이 아닌 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환한 빛이었다.


눈부실 만큼 환한 빛이 사라지자. 소녀의 시체는 온대간데 없고, 한 자루의 검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즈...』


용병은 소녀대신 나타난 검을 어루만지며, 그것을 뽑아 들었다.


팔 길이는 될법한 검신, 피처럼 붉은색. 톱날 같은 검날. 몇 킬로그램을 될법한 무게. 용병은 한손으로 그 검을 잡고 당혹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휘둘렀다.


『네가 죽인 이즈다아!!!』


하지만 평생 창만 휘둘러 왔던 용병의 검술은 조잡하기 그지없었고, 남자는 잠시 당황하여 뒤로 물러났지만 조잡한 용병의 검술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스걱!


남자의 칼이 용병의 목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자는 칼이 뼈를 끊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기분이었다. 용병은 힘없이 쓰러졌고, 주인을 잃은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남자는 착잡한 눈빛으로 남자가 마지막에 휘두른 검을 잡았다. 묵직한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즈라... 사람이 검으로 변하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이걸 말하면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자는 이즈를 검집에 꽂아 넣고 자신의 검을 바라본 뒤 죽은 용병 옆으로 집어 던졌다.


쨍그렁! 검이 땅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남자는 검집을 허리춤에 차고 자신의 말 스노우풋에 올라탔다.


『죽은 건 안됐지만 넌 잘못을 했으니 어쩔 수 없지. 대신 이 검은 내가 쓰도록 하지, 이유없이 소녀를 죽인 사죄다. 대신 이 검은 이로운 일에만 쓰도록 하겠다. 이정도면 만족 하겠나?』


대답이 들려올리 없었지만 말에 탄 남자는 죽은 용병에게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잠시 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말에 박차를 가해 마을로 몰았다.


남자는 착잡한 기분을 떨어 버리기 위해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분 나쁜 초승달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