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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아프지 않은 손가락

2007.11.18 01:15

Mr.럭키맨 조회 수:1080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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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 고3들의 생활은 그동안 힘들었던 생활을 보상이라도 하듯 무척이나 자유로웠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으로 4교시를 마친 후 아직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고1,2 학생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며 하교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불쌍한 것을 정작 나 자신일지도 몰랐다. 수능을 본 지도 벌써 두어 달이 있었다. 그동안 많은 수험생들은 자신의 성적으로 대학에 지원하고 그리고 붙었다. 나는 그들 중에 포함되지 못했다. 가군과 나군에 지원한 대학마다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으로 지원한 대학의 발표 날이었다.




  “재혁아, 오늘이 너 대학 발표 날이지?”


  그 동안 쌓인 게 많았던 고3들의 수다 사이로 내 친구의 물음이 들려왔다. 김영준이었다. 그의 물음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웃으며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 또한 너무나 걱정되어 지금은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이야기의 주제를 은근히 돌렸다.


  “어, 오늘이 발표 날 맞아. 그런데 너 어제 징병검사 받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됐어?”


  “아, 그거? 나 어떻게 하냐? 어차피 대학도 안 갈 거 빨리 군대나 가려고 했는데…….”


  “어? 너 면제 나왔어?”


  “아니, 4급 공익근무요원.”


  “그럼 빨리 지원하면 되잖아. 면제도 아니고.”


  “공익은 바로 지원이 안 되더라고. 아, 나도 복잡해서 잘 모르겠어. 하여튼 올해는 공익도 못해. 뭘 해야 할지 걱정이다.”


  왠지 그의 걱정이 꽤 부러웠다. 어차피 이 녀석은 집에 돈이 많기에 빨리 군대나 갔다 와서 유학을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익이라니……. 이건 그에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런데 어떻게 4급 나왔네. 어떻게 나왔어? 너 눈도 그리 나쁜 편 아니고 몸도 건강하잖아?”


  “아, 그게 내가 네 살 땐가 교통사고가 났었데. 그 때 머리를 다쳤는데 아직도 CT촬영을 하면 그 상처가 있다고 하네.”


  “그래도 그걸로 용케 4급이 떴네?”


  “그러게, 나는 네 살 때 기억도 없는데. 교통사고 났었다는 길, 요즘에도 매일 지나는 데 감흥도 안 느껴져. 너는 네 살 때 기억 있냐? 난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나는 세 살부터 기억나. 그것도 꽤 선명하게.”


  “세 살 때가? 어떻게? 대단하다.”


  “잊을 수가 없거든……. 야, 우리 여기서 헤어져야겠다. 나 오늘 동생 데리고 집에 가야해. 오늘 엄마가 집에 안 계셔서.”


  영준과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동생의 학교로 걸어가며 결국 옛날 기억에 빠지고 말았다. 잊을 수 없던 그 때로. 사랑이란 걸 느끼고 있던 그 때로.






  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의하면 다섯 살까지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내 곁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언제나 내 옆에서 같이 놀아주시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공부도 했다. 어린 나는 이런 생활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딱 다섯 살 때까지였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뱃속에서 작은 아이가 나왔다. 예쁜 눈을 가지고 있는 남자아이였다. 어린 내가 봐도 깨물어 주고 싶은 작고 귀여운 아기였다. 그런데 그 귀여운 아이는 나의 엄마의 사랑을 빼앗아 갔다. 엄마가 나를 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울고 칭얼대는 대신 직설적으로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엄마는 재율이가 예쁘게 생겨서, 그래서 재율이만 좋아하는 거예요?”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리 재혁이는 재율이 보다 똑똑하잖니? 재율이가 아직 재혁이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재혁이 보다 더 사랑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재율이가 똑똑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서 내가 더 멍청해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그 날은 오지 않았다. 재율의 정신은 6살에서 뚝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재율은 정신지체였다.


  재율이 정신지체인 걸 엄마가 안 뒤 엄마는 나를 점점 더 돌봐주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나마의 사랑도 내가 15살이 되던 날 끊겼다. 그 날은 아빠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날이었다.


  재율이 보다 멍청해 질 수 없기에 나는 똑똑해 지기로 결심했다. 학교에서 언제나 제일 마지막에 집에 가는 것은 나였고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하는 것도 나였다. 결국 과외 한 번 받지 않아도, 학원 한 번 다니지 않아도, 나는 학교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침내 나의 상상이 현재시점까지 흘러왔을 때 재율의 학교에 도착했다. 엄마의 강력한 주장으로 재율은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일반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재율을 데리고 학교에서 나왔다. 재율을 나를 보자마자 엄마부터 찾았다.


  “엄마는 오늘 노조에 가셨어. 엄마는 별로 하기 싫어하시는 거 같지만 하셔야 한다고 해서 오늘은 내가 데리러 온거야.”


  엄마는 지하철 청소부 저녁반이시다. 재율이와 아침과 낮에 함께 있어주기 위해 엄마는 직업을 밤에 하는 것으로 택하셨다.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엄마는 지하철에서 일하셨다. 그리고 재율을 위해 아침을 차리시고 재율을 학교에 데려다 주신다. 낮이 되면 또 재율을 학교에서 데리고 오시고 같이 숙제하거나 돌봐주신다. 도대체 엄마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주무시는 지 알 수 없었다.


   재율은 학교에서 오는 동안 시끄럽게 재잘재잘 혼자 잘도 떠들어 댔다. 중3 주제에 키는 나보다 컸다. 그리고 옷매무새만 좀 다듬으면 겉보기에도 멀쩡했다. 하지만 옆에서 이렇게 떠들어 대면 뭔가 모자라는 애라는 걸 주위에서 다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녀석과 이렇게 집에 같이 걷는 게 정말 창피했다.


  “조용히 좀 해줄래? 조용히 집에 가자- 응?”


  정색을 하고 그를 노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금방 풀이 죽더니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 다문 입술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 재율은 오늘 집에 잊고 두고 간 휴대폰부터 찾았다. 휴대폰엔 부재중 전화가 꽤 와 있었다. 모두 엄마의 전화였다. 그는 엄마에게 바로 전화했다. 그렇게 그가 통화하는 동안 내 휴대폰도 작동하고 싶었는지 진동하기 시작했다. 대학 결과가 떴다는 문자메시지였다. 컴퓨터 스위치를 켜고 인터넷에 들어갔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에 내 수험번호를 치고 이름을 쳤다. 사용자 수가 많은 지 인터넷은 느렸다. 어쩌면 느리게 느껴진 것일 지도 몰랐다. 합격자 발표 페이지로 바뀌었다.


  합격이었다.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걸 억지로 막았다. 대신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놀이터까지 뛰어갔다. 몇 명의 꼬마아이가 놀고 있었다. 나는 그곳까지 와서야 기쁨을 들어냈다. 후련하게 모든 기쁨을 내뱉고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먼저 엄마에게 전화했으나 엄마는 통화 중이었다. 물론 재율과 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 다음은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궁금하면 물어볼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집에 들어서기 전에 우편함을 보니 그 새 우편물이 와 있었다. 그것을 집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통화는 끝났는지 재율은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엄마는 받지 않았다. 나는 재율에게 엄마가 왜 전화를 안받는 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재율은 엄마가 바쁘시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와에 통화도 중간에 끊었다고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 집에 온 우편물을 확인했다.




  엄마는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오늘은 일주일에 하루 있는 쉬는 날이었다.


  “재율아, 엄마왔다.”


  재율은 엄마를 보자마자 자신이 오늘 만들었다던 종이접기를 보여주었다. 엄마는 웃으며 재율을 칭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그렇게 기뻐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매정하게 그들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야만 했다.


  “엄마, 이게 뭐야.”


  나는 엄마에게 오늘 온 우편물안에 있던 종이를 보여주었다.


  “응? 그게 뭐야? 어? 독촉장?!”


  우편물 안에는 독촉장이 들어있었다.


  “엄마, 누구 보증 서 줬어? 이거 보니까 한, 두 푼도 아닌데? 일억 오천이야, 일억 오천! 이제 어떡할 거야!”


  “아, 이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들, 분명히 갚겠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 이름 보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도 아니야. 그럼 엄마랑 그리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 아냐? 별로 잘 알지도 않은 사람들 보증을 서줘?”


  “아니야, 얘, 내 초등학교 동창이야. 일억 오천만 보증 서주면 그 중 천 만원을 나 준다고 했어. 잠깐 사업자금이 필요해서 돈을 꾸는 거라고 했어. 그럴리 없어.”


  빠른 속도로 엄마의 입술은 떨렸다. 초점이 흐려졌다. 재율은 그런 엄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재율도 눈치가 있어 지금 뭔가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 집은 알아? 내일 당장 찾아가.”


  “아, 알아. 그 사람네 집 알아. 내일 가자. 그래.”


  다음 날이 되어 나는 학교도 가지 않고 엄마와 함께 그들의 집에 갔다. 어차피 대학교야 붙었고 출석부 정리는 학교에서 이미 해서 개근상은 당연히 나올 테니 그다지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보증 서 준 사람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꽤 사는 사람들 같았다. 분당에서도 비싼 축에 속하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들이 사는 층에 도착했다. 그 층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뭐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엄마가 보증서 준 사람의 집은 열려 있었고 그 집부터 복도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여기 온 목적을 물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엄마가 보증 서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 준 사람들 같았다. 그 사람은 사업이 망했거나 또는 처음부터 사기 치려고 접근한 사기꾼이었던 거 같다. 엄마는 몰려있는 사람 중 아는 사람이 있는 지 어떤 사람에게 들려가 사정을 듣기 시작했다. 엄마가 보증 서 준 사람은 며칠 전부터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꾸고는……. 이 집의 물품들은 전부 압류를 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활용품들은 있어도 돈 나가는 귀중품은 모두 가지고 집을 나간 것 같았다.


  엄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을 않았다. 그러다가 고개와 눈은 돌리지 않고 입만 움직여 나에게 말하였다.


  “재혁아, 오늘도 재율이 좀 집에 데려다 줄래? 나는 오늘 여기 있어야겠다.”


  “엄마가 데려다 줘. 내가 여기 있을게. 그리고 좀 집에서 쉬어. 엄마 많이 피곤해 보여. 오늘 밤에 일도 나가야 되잖아.”


  “아니, 엄마가 있어야 돼. 그러니까 재율이 오늘도 좀 데려다 줘.”


  “그럼 같이 있어. 엄마 피곤해 보여. 재율이도 벌써 열여섯 이야. 혼자 집에 오고 할 수 있어.”


  엄마는 드디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시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재혁아. 엄마 힘들어. 그냥 말 좀 들어주면 안 되니? 응?”


  엄마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엄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나는 대답 않고 내려가 피로회복제와 자양강장제 하나 씩 사 엄마에게 전해준 다음 재율의 학교로 향했다. 재율도 오늘만큼은 별 말 않고 조용히 집에 왔다. 중간 중간에 그가 나의 눈치를 힐끔 보는 것이 느껴졌다.


  7시 쯤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있을 때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


  “엄마, 오셨어요? 저녁은?”


  “아직.”


  “바로 차려드릴게요.”


  난 치우던 반찬들을 다시 상에 올려야 했다. 엄마는 재율을 찾았으나 재율은 방에서 텔레비전보다 자고 있었다. 상을 다 차리고 밥을 올렸다. 엄마는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집었다. 한 숟가락에 밥을 가득 담아 입에 털어 넣으셨다. 밥 넘어가는 소리가 힘겹게 들리는 듯했다. 엄마가 밥을 다 먹자 나는 다시 상을 치웠다. 내가 상을 치우는 동안에도 엄마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한 참 식기를 씻고 있을 때 엄마가 물었다.


  “재혁아, 너 어제 대학 발표 날이었지?”


  “응.”


  그렇게 묻고 엄마는 침묵을 지켰다. “붙었니?”라고 물은 것은 시간이 약간 더 지난 더 지난 후였다.


  “응, 붙었어.”


  엄마는 다시 침묵하셨다. 점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엄마의 다음 말을 애써 예상하지 않았다. 머리 속에 든 잡념을 지우려고 애쓰며 계속 설거지를 했다. 하지만 엄마는 결국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너, 대학 꼭 다녀야겠니?”


  순간 나의 손이 멈췄다. 눈동자도 멈췄다. 그리고 심장도 멈췄다. 점점 코가 뜨거워져 왔다다. 눈이 뜨거워졌다. 목에는 무언가가 걸렸다. 걸린 것을 뱉으려고 억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헛기침을 두 번 이나 했는데도 목에 걸린 것이 나가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천천히 멈춘 나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멈춘 손이 움직임과 동시에 입도 같이 움직였다. 하지만 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의 입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뭐, 알았어. 어차피 공부하기도 싫었는데……. 12년을 공부했는데 또 공부라니……지겨워. 에이, 그럴 거였으면 내가 실업계 고등학교 간다고 중학교 때 말했을 때 허락해주지. 이럴 거였으면 작년에 우리 학교에서 직업반 모집한다고 할 때 그리로나 갈걸.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목에 자꾸 뭔가가 걸렸다. 자꾸 헛기침을 해봐도 나가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 타이밍에 맞게 설거지를 마쳤다. 나는 그릇 없는 싱크대를 바라보며 엄마에게 말했다.


  “피곤해서 그러는데 나 먼저 들어가 잘께.”


  엄마를 보지 않고 바로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방은 어두웠다. 하지만 불은 켜지 않았다. 문에 기대어 위에 있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엄마는 어떤 표정을 하고 계실까? 또,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결코 알고 싶지 않았다.


  내 심장에 있는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었다. 그 수증기는 나의 눈이 있는 위치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 수증기는 다시 액체가 되었다.




  아침은 일찍 찾아왔다. 눈을 떠보니 시간은 7시였다. 엄마가 벌써 일에서 돌아왔을 시간이었다. 방에서 나와 보니 엄마는 상을 차리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오늘 늦잠 잤네. 밥은 내가 해놨어야 되는 건데.”


  “됐어. 재율이나 깨워줄래?”


  안방으로 가 재율을 깨웠다. 재율은 밍기적거리며 겨우 일어났다. 재율은 아직 졸린지 밥 먹으러 오지는 않고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엄마와 나는 먼저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 엄마가 입을 열었다.


  “어제는 엄마가 돌았었나보다. 어제 엄마가 한 말은 잊어.”


  엄마가 눈치 못 챌 정도로 나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식사를 재개하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말?”


  엄마의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대학은 다녀. 그 좋은 대학에 붙었으면서 왜 안다녀. 돈은 엄마가 어떻게 해 볼 테니까 대학은 다녀.”


  어제 몸 안에 있는 수분을 너무 많이 빼서 그럴까? 목에 뭐 걸리는 것도 없었고 눈도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말에 나도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싫어, 내가 초, 중, 고 12년을 공부했는데 또 공부하라고? 됐어. 그 정도면 충분히 배웠어. 아쉬울 것도 없고.”


  엄마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찬을 집어 삼켰다. 그 때 재율이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물었다.


  “형, 왜 이렇게 눈이 부었어?”


  나는 재율을 보고 그리고 고개 돌리면 볼 수 있는 안방에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의 눈은 상당히 부어있었다.


  “이거? 그러니까… 그게, 너무 많이 자서 그래. 내가 어제 쫌 일찍 잠자리에 들었거든.”




  나는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맘에 드는 아르바이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가깝고 시급 높고 오래 일하고. 가까우면 시급이 높지 않았고, 시급이 높으면 오래 일하지 않았다. 오래 일한다 싶으면 가깝지 않거나 시급이 너무 낮았다. 결국 나는 번화가에 직접 나가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나가도 마음에 드는 아르바이트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전까지는 집안일이나 도우며 지내기로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졌다고 하나 엄마의 힘으로 재율과 나는 그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티 안 나게 하려고 상당히 애를 쓰는 듯 싶었다. 사흘이 지나서야 나는 오래 일할 수 있고 시급도 센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그곳은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월급이 120만원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하는지는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는 버느냐, 였기에 그날 전화를 하고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장에 10분 정도 일찍 갔다. 유리창이 복도로 나 있는 한 룸에서 단체로 면접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대략 8명 정도 되는 인원이었다. 직원은 나에게 이력서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미리 가져온 이력서를 제출했다. 하나 둘 나와 같이 면접 볼 사람들이 왔다. 먼저 온 사람들의 면접이 끝나고 그들은 룸에 우리를 불렀다. 나와 같이 면접 보는 사람도 대략 8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면접관은 전 면접이 끝남과 동시에 룸에서 나가있다가 우리가 룸에 모인지 5분 정도 뒤에야 다시 룸에 돌아왔다. 그는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부터 설명해줬다. 우리가 해야할 일을 매장에 가서 물건을 파는 것이었다. 파는 물건은 시즌 마다 다른데 이번 시즌에 팔아야 할 물건은 와이퍼였다. 일은 인센티브제였는데, 우리는 한 달 기본급 이십 만원을 받는다. 그리고 만 원짜리 물건 하나 팔 때마다 우리는 이천 원씩 소득을 얻는다. 결국 인터넷 아르바이트에 적혀있던 한 달에 12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에 물건을 스물다섯 개나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6시까지였으니 한 시간에 세 개 정도만 팔면은 120만원은 가능했다. 인센티브제라는 소리를 듣고 왠지 배신당한 느낌도 들었으나 면접관이 설명을 잘해서 그런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은 설명을 마치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회사는 그리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정말 판매를 잘할 수 있는 몇 명의 직원만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 면접 보시는 분 중에서도 대략 한 두 분만 붙으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이 중에서 한, 두 명만 고용이 된다니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눈빛도 달라졌다. 면접관은 이력서를 보며 한 사람씩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나의 차례도 왔다.


  “박재혁씨…, 음,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으셨네요?”


  “예, 2월 10일에 졸업식이 있습니다. 학교 수업일 수는 이미 마쳤고요.”


  “대학은 포기하시고 바로 취업으로 뛰어드는 건가요?”


  “대학은 Y대 영어영문학과에 붙었으나 집안 사정으로 취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아르바이트는 이번이 처음이시겠네요?”


  “고등학교 때, 용돈을 벌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두어 달 정도 했습니다.”


  “아, 이력서에 적혀 있네요? 만약 고용이 되시면 얼마나 할 수 있으시죠?”


  “일단 한 달해보고 수입과 일이 저와 맞으면 1년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네, 잘 알아들었습니다.”


  나에 대한 질문은 이게 끝이었다. 이 짧은 대화로 나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면접을 할 때마다 나는 초조해졌다. 모든 사람의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은 자신을 조금 더 어필하고 싶은 사람은 어필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그리고 면접관에게 말했다.


  “저는 한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 중, 고 과외나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습니다. 그래도 친구들만큼 또는 친구들 보다 더 공부를 잘했다고 자부합니다. 만약 이번에 저를 고용해 주신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면접관은 웃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자신을 어필하고 싶은 사람은 어필해보라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절실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면접 때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줬다고 생각하거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자신을 어필한 건 나밖에 없었다. 버스에 타면서 계산을 해보았다. 한 시간에 두 개씩만 팔아도 보통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받을 수 있다. 한 시간에 여섯 개를 팔면 한 달에 2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빚이 일억 오천만 원이란 걸 생각했을 땐 앞이 까마득해졌다.


  7시에서 8시 사이에 합격자는 연락이 온다고 했다. 저녁을 먹자 시간은 7시를 바라보았다. 나는 휴대폰을 옆에 끼고 텔레비전을 보며 조용히 연락을 기다렸다. 마침내 시계의 시침은 7을 가리켰다. 7시에서 8시 사이라고 했으니 바로 전화가 올 리 없었다. 시계의 분침이 5를 가리킬 때 내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전화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목소리는 나에게 합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 9시까지 회사로 나오라고 말했다.




  다음 날 회사에 가니 회사 직원은 어제 면접 봤던 장소에서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와 같이 붙은 사람은 총 두 명 더 있었다. 둘 다 여자였는데 모두 처음 본 얼굴이었다. 아마 나보다 먼저 면접 본 그룹 사람들 중에 있던 사람들이리라. 우리는 조금 어색하지만 인사를 나눴다. 두 분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말이 잘 통했다. 여자끼리라서 그럴지도 몰랐다. 두 분이 수다의 꽃을 피우는 동안 어제 면접관이었던 직원이 들어왔다. 그의 손엔 종이 세 장이 들려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눠줬다.


  “여러분은 오늘과 내일, 매장에 교육을 나갑니다. 오늘과 내일은 여러분이 파셔도 여러분 수입에는 들어가지 않으니까 적당히 어떻게 파는 지만 보시고 실습 몇 번 해보시고 오시면 됩니다. 여러분은 경험자 분들과 함께 매장에 나갈 텐데요, 내일까지는 그렇게 하시고 모레부터는 매장에 혼자 나가시게 됩니다. 지금 나눠드린 종이는 여러분이 판매하실 때 쉽게 하시라고 대본을 적어 놓은 건데요. 꼭 따라 할 필요는 없구요. 여러분이 더 팔기 편하신대로 말하시면 되요. 2분 후에 매장으로 출발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직원은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조용히 각자 나누어준 종이에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는 몇 줄 읽다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로 몰랐던 눈치였다.


  “매장이라는 곳이 주유소였어요?”


  한 분이 물었다. 우리는 답해 줄 수 없었다.




  봉고차를 타고 각자 주유소로 향했다. 본래 한 주유소에 한 사람씩 배정되어 물건은 판매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선배 아르바이트생이 신입 아르바이트생을 교육 시켜야 하는 날이라 한 주유소당 두 명이 배정된 주유소도 세 곳 있었다. 나를 교육시킬 선배는 나보다 세 살 위의 누나였다. 누나와 서현역 근처 주유소에 배정되었다. 누나는 오늘 팔 물품을 주유소 사무실에 보관했다. 그리고는 주유소 직원복을 나에게 주었다.


  “다른 곳은 이런 거 안 입고해도 되는데 여기는 직원복 입고하라네. 화장실에서 입고와 나도 입고 올게.”


  옷을 갈아입고 오니 곧바로 일은 시작되었다. SM5가 주유하기위해 주유소에 도착했다. 운전자는 주유소 직원에게 얼마어치 넣어달라고 말은 했다. 직원은 주유기를 빼서 자동차에 주유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타이밍은 지금이었다. 누나는 시범 보이겠다면서 자동차에 달려갔다. 인사부터 하며 누나의 상품판매는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신제품 하나 홍보해드리려고 하는데요. 혹시 ‘카스타’라고 들어보셨어요?”


  누나의 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나눠준 대본과 누나의 말은 조금씩 달랐으나 내용은 일맥상통했다.


  “이 제품은 KBS VJ특공대 아시죠? 거기에서도 소개된 제품으로…”
  “안사요.”


  운전자는 말은 끊고 매정하게 창문을 닫았다. 물건 팔기에 실패한 누나는 아까 서있던 매점 옆 자리로 걸어갔다. 나도 뒤따랐다.


  “하루에 얼마나 팔아요?” 이 아르바이트에 의구심을 느끼게 된 난 누나에게 물었다.


  “나는 되게 못파는 편이라 하루에 열 다섯 개 정도 팔면 잘 파는 거구, 뭐, 잘 파는 사람들은 하루에 30개도 팔고 그러더라.”


  “어제는 몇 개나 팔았는데요?”


  “아홉 개.”


  이 말을 듣고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하루 아홉 개면 기본급 하루 만원을 합치더라도 겨우 이만 팔천원 아닌가. 이런 아르바이트에 채용되기 위해 그렇게 가슴을 떨었던가.


  그래도 왠지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열심히 해보고 잘 팔면 계속 할 것이고 만약 몇 개 못 팔고 간다면 내일부터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말이 그렇게 빠른 편도 아니고 그리 실없이 많이 웃는 편도 아니라 적응이 힘들었다. 대본을 다 외웠다고 생각하고 나 홀로 판매에 나서보았다. 말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바로 나와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이 중간에 막히면 앞이 까마득했다.


  이 아르바이트는 할수록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점심 제공이 안 되서 점심은 우리가 나름대로 해결해야 했다. 주유소 식당을 사용할 수 있냐고 주유소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안 된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먹어야 했다.


  계속 서서 하는 아르바이트라 상당히 피곤했다. 날씨는 추웠다. 우리는 쉬기 위해 각자 화장실에 들어가 양변기에 앉아서 쉬었다. 감시하는 사람이 없기에 얼마를 쉬던 우리 마음이었다. 물론 그러면 우리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끝나가며 이 아르바이트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나름 열심히 물건을 판매해 보았지만 나는 다섯 개 밖에 팔지 못했다. 누나는 그 반면에 열 한 개를 팔았다. 누나는 처음이라 그렇다며 나를 격려했지만 처음이 아닌 누나가 열한 개 판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버스를 회사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갔다. 주유소에서 우리를 회사로 데려다 줄 봉고차를 기다려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러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30분은 길었다. 일은 너무 지루했다. 물건을 팔며 필요 없다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계속 말은 하는 나도 싫었다. 내일 나는 여기 있지 않으리라. 집에 있거나 다른 아르바이트 면접 자리에 있으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정류장에서 회사에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바지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재율이에게 온 전화였다.


  “왜 전화했어?”


  “혀…형, 형…”


  재율의 목소리는 다급해 보였다. 뭔가 겁에 질린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겁 많은 바보라 나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아, 빨리 말해. 무슨 일인데? 뭐 무릎이라도 다쳤냐? 돈이라도 잃어버렸어?”


  “그런 거 아니야…형…”


  재율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울음기가 가득했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엄습했다. 평소와는 다른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재율은 처음 본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와서야 나도 조금 두려움이 느껴졌다.


  “뭐, 무슨 일인데? 뭔 일 터졌어? 너 그러다 별 일 아니면 죽는다.”


  재율은 이미 울고 있는 거 같았다. 훌쩍거리며 그는 겨우 말을 이었다.


  “엄마가……쓰러지셨어.”




  엄마는 지금 분당재생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재율은 말했다. 서현역 바로 옆이기에 나는 누나에게 말하고 바로 병원으로 뛰어갔다.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분명 엄마가 너무 과로해서 쓰러졌다고 생각했다. 그러게 몸 챙기라고 말할 때 좀 듣지, 이런 생각이 마구 들었다. 또 엄마가 이런 상황에 이런 비싼 병원에 입원한다고 생각하니 문득 원망스러워졌다. 생각을 자꾸 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내 대학 등록비를 엄마 병원비로 다 날려버리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이번엔 엄마에게 한 소리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 꼭 입원해야겠냐고, 그러게 처음부터 내가 몸 챙기며 생활하라고 할 때 왜 말 안 들었냐고, 입원비가 하루에 얼만지 아냐고, 당장 나오라고 지금 우리 집 입원비도 없다고.


  병원에 물어 우리 엄마의 병실을 찾았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화를 낼지 뭐라고 하며 화를 낼지 다시 생각을 정리 했다. 그 다음 문을 열었다. 병실은 4인실이었다. 그러나 병실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엄마는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채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의 행동을 저지하며 말했다.


  “엄마, 지금 뭐해!”


  엄마의 행동을 저지하는 나의 행동을 엄마는 뿌리쳤다.


  “조금 과로해서 쓰러진 거야. 별 거 아냐. 지금 내가 여기서 쉬고 있게 생겼니? 여기 하루 입원비가 얼만데. 빨리 짐 챙기고 나가야지.”


  너무 어이가 없어 잠시 몸을 움직일 수 가 없었다. 내가 할 말을 엄마가 다 해버렸다. 정신을 챙긴 뒤에 나는 느리지만 온 힘을 다해 엄마의 행동을 막았다. 그래도 엄마는 짐을 챙기려 하자, 엄마의 어깨를 잡아 억지로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그 상태로 말했다.


  “쓰러졌으면, 좀 쉬어. 그래야 더 빨리 나서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지. 그리고, 나 오늘 취직했어. 기본급은 얼마 안 되는데 열심히 하면 이백 만원도 넘게 벌 수 있데. 이제 나도 돈 벌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까 엄마, 지금은 좀 쉬어.”


  “그래도 여기 하루 입원비가 얼만지 아니? 쉬려면 집에서 쉬어도 돼. 내 집 놔두고 밥맛도 없는 왜 이런데서 쉬어?”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다시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말했다.


  “알았어. 그럼, 검진 받고, 의사선생님한테 검진 받고, 의사선생님이 엄마 몸 이상 없다, 집에 가도 된다, 라고 하면 그 때 가자. 그러면 그땐 엄마가 가기 싫다고 해도 내가 끌고 갈께.”


  엄마는 그제야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커튼을 치고 엄마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게 해줬다. 옷을 다 갈아입은 엄마는 커튼을 걷으며 나에게 말했다.


  “알았어, 엄마 여기 있을 테니까 너는 얼른 집에나 가봐.”


  “재율이 집에 보냈어?”


  “어, 지금 집에 재율이 혼자 있어. 재율이 밥 챙겨주고. 숙제 봐주고.”


  “알았어. 엄마 진짜 집에 안 갈꺼지?”


  “옷 또 갈아입기도 귀찮다.”


  나는 희미하게 웃고는 병실을 나갔다.


 


  결국 다음날 나는 또 그 회사에 가야 했다. 그리고 다시 그 판매 일을 해야 했다. 어차피 오늘까지 물건을 팔아도 수입은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누나에게 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을 편히 가지고 좀 더 일을 잘하는 법을 익히기로 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 본 결과 역시 사람들은 침을 뱉을 수 없는 웃는 얼굴의 사람을 더 좋아하는 거 같다. 웃는 얼굴로 다가서면 초장에 무시당할 확률이 조금은 더 낮았다. 그리고 판매 도중에는 질문을 하면 안 됐다. 예를 들어 “혹시 ‘카스타’라고 들어보셨어요?” 라고 물건 판매를 하다가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대답할 기회가 생겨 ‘아니요’라고 말하며 창문을 닫아버린다. 나는 그들에게 말할 시간을 주어선 안 되었다. 그래서 질문을 하지 않고 계속 제품 정보만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 그러면 처음에는 제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조금씩 관심이 생겨 제품을 사는 경우가 생겼다. 그렇게 그 날도 아르바이트를 마쳤다. 조금씩 요령을 익혀가는 것 같았다. 말만 조금 빠르게 그리고 멈추지 않고 하면 훨씬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 같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따로 주유소를 배정받았다. 나와 같이 채용된 두 명에 아르바이트생은 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그만 둔 것 같았다. 어제와 달리 혼자 일을 하니 더 지루했다. 어제 갔던 주유소, 직원들하고도 친해졌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한 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김연옥씨 보호자 되시죠?”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여기는 재생병원인데요. 김연옥씨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거든요? 오늘 6시까지 병원에 나와 주실 수 있어요?”


  “가능 할 거예요. 그럼 6시까지 갈게요.” 




  엄마와 나는 단 둘이 진료실에 앉아있었다. 의사는 잠시 뭔가를 가지러 나가있었다. 아마도 엄마 건강 검진 결과를 가지러 간 것 같았다. 벽지, 컴퓨터, 책상, 칠판 모든 것이 하얬다. 지나친 하얀색은 나에게 왠지 모를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곧 의사가 봉투를 가지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봉투에서 몇 가지 사진을 꺼내서 하얀 칠판에 올렸다. 의사가 앉기 무섭게 나는 질문했다.


  “저희 엄마 왜 쓰러지신 거죠? 단순한 과로 인가요?”


  “그게…” 의사는 안경을 한 번 고쳐 썼다. 그리고 말했다. “뇌종양입니다.”


  “네?”


  나는 제대로 알아들었지만 믿을 수 없어 되물었다. 의사는 친절하게 다시 대답해 주었다. 게다가 더 자세하게.


  “뇌종양입니다. 그것도 악성입니다. 이곳을 보시면…”


  “아니, 저희가 그런 사진을 보고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줘요. 우리 엄마 몸 상태 나빠요? 그것만 말씀해 주세요.”


내 마음 상태를 눈치 챘는지 의사는 일단 나를 진정부터 시켰다.


  “일단 진정부터 하세요. 그렇게 흥분하시면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해집니다. 심호흡부터 한 번 해주세요.”


  나는 의사의 말은 듣기위해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리고 말했다.


  “진정됐어요. 이제 말해줘요.”


  “환자분도 진정 되셨나요?”


  엄마는 고개만 끄덕였다.


  “네, 그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뇌에 악성 종양이 퍼졌는데 그게 너무 깊게 퍼져서 수술을 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아쉽지만 지금 환자분께 드릴 수 있는 말이라곤 마음에 준비를 하시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나는 의사의 말을 듣다가 참지 못해 끝까지 듣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니! 지금 이게 말이 되요! 며칠 전까지는 멀쩡하신 분이었다고요! 아프단 소리 한 번 하지 않으셨는데 지금 와서는 종양이 너무 깊게 퍼졌다니, 마음에 준비를 하라니 그게 말이 되요?”


  “보호자 분께서는 눈치 못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환자분께서는 나름대로 고통이…”


  “지금 장난해요? 저번 주 까지 말짱하셨다니까요? 진짜 하나도 안 아프셨다구요! 지금 제 말, 이해 안 돼요?”


  “환자분 진정하시고…”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저번 주 까지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다니까요? 비록 우리집은 가난했지만 빚 한 푼 없었구요. 가족 모두 건강했어요. 나도 희망이 있었구요. 그런데 일주일 새…”


  눈물 한 방울이 땅에 닿자마자 다음 눈물이 곧바로 눈에서 나왔다. 그 다음 부터는 아얘 눈물샘이 터져버린 거 같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당신이 만약 일주일 새에 빚이 생기고 당신 엄마 뇌종양도 생겼다고 당신은 믿을 수 있겠어요? 한 달도 아니고 아니 일주일 새에, 며칠 새에 이런 일이 연속해서 벌어지는 게 말이 되냐구요? 네? 대답해봐요? 진짜 저번 주만 해도 아무 걱정 없었는데……. 걱정이래봤자 대학 걱정이었는데…….”


  진료실이 시끄러워지자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그걸 본 엄마는 나를 조용히 시켰다.


  “박재혁! 조용히 안 해?”


  엄마는 나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주위 분위기를 느끼고 나는 억지로 조금씩 마음을 가라 앉혔다. 내가 조용해지자 엄마는 의사에게 물었다. 엄마의 어조는 차분했다. 마치 미리 이렇게 될 걸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그럼, 선생님,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선생님?”


  “앞으로 길어야 세 달, 짧으면 한 달 정도 살 수 있으실 겁니다.”


  “네, 알았습니다. 재혁아, 일어나 가자.”


  엄마는 나를 끌고 진료실에서 나갔다. 복도를 지나며 나는 눈물은 닦고 아직 격정이 덜 풀린 어조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다른 병원 가보자. 이 병원 못 믿겠어. 다시 한 번 진찰 받아보자.”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병실 문 앞에 왔을 때야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집에 가서 재율이 밥이나 챙겨줘. 밥 먹이고 저녁 때 재율이 좀 병원에 데려와.”


  나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지만 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네.’ 하나 뿐 이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아서 일까, 그 뒤로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엄마는 말도 못 하실 정도로 몹시 아파하셨고 간호사를 부르셨다. 내가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다고 느낀 일은 돈을 버는 일 뿐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했다. 엄마가 아플수록, 그로인해 나의 마음도 아플수록, 나는 더욱 더 웃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야했다. 요령을 조금씩 터득해 가는 것 같았다. 이 아르바이트도 일주일이 지나자 처음 하루에 다섯 개 팔던 것을 지금 하루에 마흔 개씩 팔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달에 200만원 이상 버는 일도 가능할 거 같았다.


  내가 엄마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그래도 엄마는 재율이만을 사랑했다. 나는 일이 끝나면 언제나 엄마에게 갔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제나 재율이만 찾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일이 끝나면 집에 들려 재율이와 함께 병원에 갔다. 어차피 나는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시니까. 엄마가 보고 싶어 하는 건 재율이니까.


  엄마가 입원하신지 삼 주가 지났을 때 기다리지 않던 전화가 왔다. 엄마가 위급하시다는 것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말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엄마는 이미 중환자실에 옮겨져 있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재율은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재율을 진정시키고,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내가 갔을 때 엄마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상태로 자고 있었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엄마를 지켰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내가 엄마 옆에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엄마는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는 누운 상태로 팔을 뻗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눈 비비며 말했다.


  “일어 나셨어요? 밖에 재율이 기다리다 지쳐 자고 있을 거야. 데리고 올게요.”


  엄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됐어.”


  “왜? 나한테 뭐 시키실 일 있어요? 아님 더 주무실래요?”


  “재혁아, 재율이 말고,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믿기지 않았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니. 나에게만은 자유방임주의를 고집하시던 엄마가.


  나를 위한 엄마의 말은 힘들어 보였다. 말하는 데는 그리 큰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신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 같았다.


  “뭔데요?”


  “재혁아, 그동안 힘들었지? 너는 안 보살펴주고 재율이만 보살펴줘서.”


  입이 벌어진 채로 입이 막혔다. 지금 엄마 뭐 하는 거지?


  “재율이가 너에 비해 너무 모자라잖아. 그래서…그래서야. 그래도 엄마는 재혁이 너한테 고마웠어. 이렇게 잘 자라줬잖아. 그 들어가기 힘든 대학도 떡 하니 붙고.”


  “엄마, 지금 혹시……?”


  “재혁아 네가 어렸을 때 한 말 기억나?”


  “엄마 유언이에요? 엄마 지금 하는 거 유언이에요?”


  “네가 그랬었어. 왜 재율이만 좋아하냐고, 재율이가 예쁘게 생겨서냐고? 그러니까 엄마가 그랬지.”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있어 봐요. 재율이 데려올게요. 할 말 많죠?”


  “재혁아, 앉아 있어봐. 엄마, 지금 말하는 거 힘들어. 너한테 할 말 있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그랬지. 재혁이가 재율이 보다 똑똑해서 그래서 그래서 재율이를 더 사랑하는 거라고…….”


  “…….”


  “근데 그게 아니야. 말 못했지만. 계속 후회하고 있었어. 엄마는, 엄마는, 너희 둘 다 똑같이 사랑해. 그런데 재율이를 조금 더 돌봐줘야 해. 너는 혼자 잘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실제로도 그랬고.”


  출구를 일어선 상태로 엄마에게 물었다.


  “그래서요?”


  “재혁아, 대학은 꼭 다녀. 재혁이는 똑똑하니까, 대학에 가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엄마 죽으면 너는 안산에 있는 외삼촌댁에 가. 오빠도 넉넉지는 아니라서 두 사람은 어떻게 안 되도 너만은 어떻게 될꺼야.”


  “재율이는요?”


  “그리고 엄마 재산보다는 빚이 더 많으니까 상속포기 하면 너는 빚 없이 처음 상태로 살 수 있어. 엄마가 재산 한 푼 못 물려줘서 미안하다.”


  “재율이는 어떻게 해요?”


  “또 엄마 옷장에 보면 빨간 코트 있어. 거기 오른쪽 속주머니 보면 엄마가 시집올 때 가져왔던 패물이 있어. 돈이 정 없으면 그거라도 팔아서 써. 큰 돈은 안 되도 얼마간 버틸 수는 있을거야. 그래도 역사가 있는 거니까. 나중에 찾을 수 있으면 꼭 찾고.”


  “재율이는 어떡하냐구요!”


  엄마를 향해 몸을 돌려, 나는 소리쳤다. 나는 내가 버럭 소리쳤다는 걸 몰랐다. 또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재혁아, 이제까지 힘들었지? 엄마가 미안했어. 다음에, 만약 다음에도 재혁이가 내 아들 되면 그 때는 잘해줄게. 재혁아, 다음에도 내 아들 되어줄래? 응?”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울고 있다는 걸. 눈물을 닦고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 품에 안겨 말했다.


  “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엄마, 말 많이 해서 피곤하다. 좀 쉴게.”


  역시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엄마는 그날 그렇게 영원히 잠드셨다.




  며칠 후 장례식이 열렸다. 장례식에는 그리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다. 엄마 친척 몇 분. 내 친구 몇 명. 재율이 친구 몇 명. 장례식은 그렇게 간소하게 차리고 간소하게 끝났다. 장례식이 끝나던 날, 내 손에는 내가 그리도 싫어하던 담배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엄마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끝까지 재율이를 더 사랑하셨다. 재율에 대한 언급은 아무것도 없이 재율에게는 아무런 책임감도 지우지 않은 채 재율에 대한 모든 것을 나에게 위임했다. 재율의 모든 걸 그저 나에게 맡겼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가셨다. 대학금 등록금 고지서 영수증이 그것이었다.


  재율을 나에게 맡겼으니 나는 재율을 교육시킬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존재했다. 교육이라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박재율! 뭐하고 있어? 내가 빨래 걷어 올 동안 설거지 하고 있으라고 했잖아.”


  엄마가 죽고 나는 재율에게 집안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집안일을 혼자 하기도 벅찰뿐더러 이것은 앞으로 재율이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교육’이었다.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하수구가 막혀서 싱크대에 물이 가득 찼어. 물 다 빠지면 시작할려구.”


  물 빠지길 기다리고 있었다니.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재율을 데리고 싱크대로 데려갔다.


  “봐봐, 젓가락으로 하수구를 이렇게 저으면 바로 물이 다 빠져. 그렇지? 그럼 이제 설거지 시작해.”


  재율은 투덜댔다.


  “지금 텔레비전에서 유캔도하는데.”


  “설거지 다 하고 봐. 별로 많지도 않잖아.”


  재율은 끝까지 궁시렁거리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시작한지 얼마 가지 않아 재율은 꾀를 쓰기 시작했다. 실수인 척 하며 그릇을 깨트렸다. 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재율에게도 집안일을 가르쳐야 한다며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율에게 설거지를 시켰다. 그 때 재율은 실수인지 고의인지 모르겠지만 그릇을 깼고 엄마는 그릇 다 깨는 걸 보느니 당신이 하겠다고 했다. 재율의 꾀를 눈치 챈 나는 재율에게 소리쳤다.


  “재율아, 니가 깬 그릇 네가 치워. 그리고 그릇 다 깨먹어도 좋으니까 설거지는 끝까지 해라. 근데 그건 알아둬. 그릇을 깨면 깰수록 네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다는 걸.”


  집안일을 처음 하는 재율에게는 설거지조차도 벅찬 과제인 것 같았다.


  “재율아, 후라에팬을 그냥 퐁퐁으로 닦으면 어떡해? 이건 또 기름이 굳었잖아. 그럴땐 후라이팬에 불을 쪼여서 굳은 기름이 녹게 한 다음 불을 끄고 닦아야지 안 닦이는 게 있으면 소금으로 닦고. 후라이팬은 퐁퐁으로 씻으면 안돼. 상해.”


  나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재율은 결국 짜증을 부렸다.


  “아, 나 하기 싫어! 안 할래!”


  그리고는 더 가관으로 이제는 울기 시작했다. 이것은 엄마가 버릇을 잘못들인 결과물이었다.


  “하기 싫다고 울고 떼써? 네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야? 너 내일 아침밥 없어. 방에 들어가. 어서!”


  재율을 방으로 보내고 난 옥상으로 올라왔다. 밖은 추웠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하늘을 봤다. 하늘은 검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달만이 외롭게 세상을 밝혀주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다음 날 아침, 난 재율에게 아침밥을 주지 않고 일에 나갔다. 허나 자꾸 그게 그 날 마음을 괴롭했다. 아침밥을 안 준 것이 미안해 그날은 회사에 말을 하고 일찍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재율이 집에 보이지 않았다. 재율에게 전화해보니 벨소리가 방에서 들렸다. 아무래도 휴대폰을 두고 같 것 같았다. 나는 담배를 피기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옥상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누군가 저쪽 구석에서 콜록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재율이었다.


  순간적으로 주먹이 나갔다. 그가 방어할 시도 없이 나간 주먹이 그의 오른뺨을 격타했다.


  “담배 어디서 났어? 누가 담배피우래? 어?”


  재율은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또 울었다. 하지만 운다고 봐줄 내가 아니었다.


  “빨리 뚝 그치고 말해. 담배 왜 피웠어?”


  재율은 훌쩍거리기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았다.


  “한 대 더 맞을래? 빨리 말 안 해?”


  그래도 재율의 입은 울기위해서만 사용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주위에 있는 빗자루를 들었다. 그러자 재율이 겁을 내며 말했다.


  “알았어, 형. 말할게. 때리지마. 말하면 되잖아.”


  “말해. 왜 피웠어?”


  “엄마 하늘나라 갔잖아. 형, 엄마 하늘나라 가고 난 다음부터 담배피우잖아. 담배연기는 하늘로 올라가니까, 혹시 담배 피우면, 담배피우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하늘에 들릴 거 같아서…….”


  웃었다. 웃겨서 보라기 보단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담배피우는 행위를 그렇게 상상할 수 있는 거지? 과연 정신연령 여섯 살이라 이건가? 그런데 재율이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문득 화가 났다.


  “엄마한테 뭔 말이 하고 싶은데? 엄마 살아있을 때 그렇게 괴롭혀 놓고. 엄마한테 이르게? 형이 만날 괴롭힌다고 엄마한테 고자질 하게?”


  “아니……”


  “그럼 뭐?”


  재율은 머뭇거리다가 땅을 쳐다보며 조금은 애처롭게 말했다.


  “나…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러니까, 엄마도 잘 지내고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가 나 오래 못 보면 걱정하실 거 같아서. 그래서 그랬어. 나 그래도 꽤 잘 지내고 있으니까.”


  재율은 진심이었다. 재율은 거짓말을 못한다. 착해서 못하기 보단 뻔히 표정에서 걸리기 때문에 못한다. 재율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재율에게 화를 내겠는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단 담배를 뺐고 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을 때 재율이 미안한지 답답한지 말을 걸었다.


  “형, 화났어?”


  “아니.”


  “그럼?”


  반찬을 재율의 밥에 올려다 주며 말했다.


  “밥이나 먹어.”


  밥을 다 먹고 재율에게 다시 설거지를 시켰다. 재율은 투정 없이 묵묵히 과제를 해결했다. 나는 그가 설거지를 끝내는 걸 보고 편지지를 전해주며 재율에게 말했다.


  “재율아, 엄마한테 할 말 있으면 거기다 적어.”


  재율은 영문도 모른 체 적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철통을 준비하고 장작을 준비했다. 그 외에 또 불에 탈 수 있는 것을 밖에서 모았다. 방에 돌아왔을 때, 재율은 아직도 쓰고 있었다. 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편지지를 꽉 채워서야 글 쓰는 걸 멈췄다. 나는 재율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갔다.


  “네가 쓴 편지 여기 철통에 넣어.”


  재율의 편지는 장작사이에 끼워 넣어졌다. 나는 거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로 붙이는 거라 처음에는 잘 안 붙다가 한번 붙으니 타오르기 시작했다. 추운 옥상을 따듯하게 데펴주었다. 장작들이 타올라 연기를 피우기 시작했다. 재율의 편지도 같이 타고 있었다.


  “춥지? 철통 가까이에 앉아.”


  재율은 나와 같이 철통 옆에 앉았다.


  “재율아 봐봐. 연기가 하늘까지 올라가지? 네 편지도 타서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지?”


  재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보았다.


  “네 말은 이제 하늘로 전달되었어. 그러니까 이제 넌 담배 같은 거 안 펴도 돼. 알았지?”


  재율의 눈은 연기를 따라 위를 바라보았다. 연기가 하늘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야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말했다.


  “응…알았어”


  나는 재율이 말하는 것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재빨리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재율아, 날 봐봐.”


  나는 담배를 한 번 빨고 입으로 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재율을 보며 말했다.


  “재율아, 지금 내가 뱉은 게 뭐야?”


  “담배연기.”


  나는 웃었다.


  “틀렸어.”


  “거짓말. 분명히 담배 연기 뿜는 거 내가 봤는데?”


  “알았어. 그럼 정정할게. 넌 반만 맞춘 거야. 처음에는 분명히 담배연기를 뿜었지. 근데 그 다음에 또 뿜은 게 있단 말야. 그게 뭐게?”


  재율은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 ‘아!’라고 소리치며 외쳤다.


  “입김!”


  “맞았어! 형도 지금 깨달았는데 담배연기도 하늘로 올라가지만 우리가 말할 때 생기는 입김도 하늘로 올라가. 그건 뭘 의미하는 건지 알겠어?”


  “모르겠어.”


  “이게 의미하는 건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담배를 피울 필요도 없고, 편지를 써서 태울 필요도 없다는 소리야.”


  “왜?”


  “어차피 입김도 하늘에 올라가잖아. 그러니까 네가 말을 하면 그건 분명히 하늘에 있는 엄마한테도 들릴 거야. 입김이 나지 않는 여름이라도 입김이 보이지 않을 뿐 입김은 분명 있어. 그러니까 너는 언제나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늘에 대고 말하면 돼. 그럼 분명히 엄마가 들으실 거야..”


  재율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며 천진난만 하게 웃었다.


  “진짜?”


  “응, 진짜.” 나도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우리 둘은 추위도 잊고 옥상 맨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엄마가 계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달이 외롭지 않았을 거 같다. 오늘은 별이 유난히 많았다.


  “엄마…, 많이 보고 싶어?”


  재율은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응, 근데 지금은 괜찮아, 나.”


  “응? 왜?”


  나는 재율을 쳐다보았다. 재율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형이 있으니까.”


  이 녀석은 가끔 말을 막히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내 할말은 막아놓고 재율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제 엄마 없으니까, 집안일 형 혼자 할 수 없으니까, 나도 해야 되는 거 알아. 근데 아는데도 하기 싫어서 그래서 그랬어. 어제는 미안. 그래도 나 지금 형이 있어서 좋아. 지금은 엄마, 조금밖에 안 보고 싶어.”


  재율의 말을 듣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깨어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나 방금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게 생각났어. 너무 오랫동안 엄마 때문에 잊고 있던 거 같아.”


  “엄마 때문에? 뭔데?”


  다시 엄마 계실 곳을 향해보며 나는 재율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것은 누구를 향해 말한 건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나… 너 좋아했어. 그리고 지금도 좋아해.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쭉, 나도 그렇게 너 좋아해왔어.”


  찬 바람이 불어왔다.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온 나의 뜨거운 말은 찬바람과 만나 입김이 되었다. 입김은 내 안에서 소리 없이 나와 어느새 소리 없이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입김은 공기 속에서 위로 오르다 결국 그것은 무언가를 넘었다. 그리고 어떤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우리의 엄마가 계신 하늘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