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이벤트] 리어카를 모는 남자

2006.08.09 04:34

갈가마스터 조회 수:863 추천:8

extra_vars1 리어카를 모는 남자 
extra_vars2 358-1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그것은 얼마 전 기타 학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기타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 장마가 끝나고 정말 오래간만에 더워진 날씨 때문이었을까? 나는 하얀 칠보 바지와 반팔 라운드 티를 입고도 더워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골목길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내 까무잡잡한 피부를 강하게 자극하던 태양은 이미 서쪽 능선 너머로 숨어버린 지 오래건만 땀은 멈추지 않고 나가기 전 새로 꺼내 입은 팬티와 옷을 적시며 점점 몸을 무겁게 만들어갔다.

  “아, 씨발 드럽게 덥네.”

  저절로 욕지거리가 나오는 걸 나는 당연스럽게 여기며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골목길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등에 메고 있는 가방엔 얇은 기타 교본과 오늘 빌린 소설책 한 권 뿐이었건만 지금의 내겐 시멘트 포대를 얹어 놓은 지게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고약한 냄새의 땀이 전신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몸을 끈적끈적하게 만드는 더위는 끊임없는 짜증과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픈 조바심을 불러일으켰고 걷는 내내 말하는 것도 귀찮아 ‘끄응끄응’거리는 불평불만 섞인 신음소리만 더위 먹은 개새끼처럼 계속 내뱉었다.

  혹시나 더위를 잊을 수 있을까 싶어 시원한 샤워 생각을 했다.

  ‘자! 이 산만 넘어가면 시원한 매실들을 맛 볼 수 있다!’

  조조가 갈증에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기위해 사기(?)를 친 것처럼 자기 최면을 걸어보았지만, 이게 웬걸? 오히려 집이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아 온갖 짜증과 분노가 내 육신과 정신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갔다.

  지금 상황에 왠지 뉴턴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생각났다. 시원한 물 생각에 짧은 시간이라도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이 ‘작용’이고, 그 뒤 얻게 된 짜증이 ‘반작용’이다. 그런데 이게 교과서에서 배운 작용 반작용과는 사뭇 다르다. 이론대로라면 작용 반작용은 같은 힘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반작용이 작용보다는 약해야하는데 작용으로 인한 행복감이 1이라면 반작용으로 얻게 된 불행이 5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래선 완전 손해 보는 장사다. 조조에게 속은 병사들도 만약 그 뒤 물을 볼 수 없었다면 이런 반작용을 겪지 않았을까?

  왠지 고사에서 얻었던 교훈이 못미더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아, 덥다. 그런데 오늘은 TV에서 뭐가 하드라?’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더위를 잊어보기 위해 최선을 다해봤다. 그러나 이놈의 더위는 잊으려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그 세력을 더욱 확장할 뿐이었다. 불쾌지수가 점점 올라가고 내가 느끼는 불행은 빠른 속도로 내 마음을 잠식해갔다.

  ‘마치 악덕 고리업자에게 책잡힌 피해자 같네. 노력을 하면 할수록 이자는 점점 불어만가고 결국엔 지쳐서 쓰러지는 건가?’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나는 문득 길 맞은편에서 리어카를 끌고 오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아래, 어둠속에서 허리가 굽어있고 언뜻 흰 머리가 보인 것 같아 순간 노인이라 지레짐작하고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비교적 가까이에서 본 그는 항상 볼 수 있었던 박스 줍는 어르신이 아니고 40대 후반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부스스한 검은 머리카락을 회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수많은 새치와 수척한 얼굴, 쭈글쭈글한 주름살. 나이를 한 20년 정도 늙어보이게 만드는 굽은 허리. 그가 끌고 있는 리어카에는 비닐 끈을 십자 형태로 덧대 대충 묶은 박스쪼가리가 반 정도 채워져 있었다.

  내 앞까지 리어카를 질질 끌고 오던 그는 순간 뭔가를 발견한 듯 리어카를 세워놓고 굽은 허리를 더욱 굽혀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그가 그늘진 얼굴로 주어든 것은 바로 반쯤 타들어간 담배꽁초였다. 담배를 피우려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땅에 버리고 밟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비교적 멀쩡한, 주인이 ‘버린’ 담배를 입에 물고 호주머니에서 일회용 싸구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니코틴이 누렇게 눌어붙은 필터를 그는 거리낌 없이 빨아들이며 연기를 푸우 내뱉었다. 삶의 고충에 찌들대로 찌든 그의 표정은 담배를 피면서 더욱 초췌해져갔다.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며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순간 화들짝 놀라 찌푸린 얼굴을 순식간에 굳히며 발을 멈췄다. 그리고 방금 전 내가 짓고 있던 표정과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 감정을 분석하며 더위에 녹아내릴대로 녹아내려 노골노골한 뇌를 굴려 생각에 잠긴다. 결론이 나오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고 그것을 파악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건 바로 경멸이라는 감정이었다.

  경멸? 경멸?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경멸이라고? 삶의 고뇌를 앓고도 열심히 살고 있는 저 남자를 보면서 느끼는 게 고작해야 경멸이라고? 내가 경멸하는 건 대체 뭐지? 남이 버린 담배를 주워서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불을 붙인 저 행위? 아니면 며칠 동안 빨지 않은 듯 후줄근해 보이는 저 옷차림? 아니면 저 나이에 박스나 줍고 다니는 그의 무능력을 혐오하는 건가?!

  자연스레 그의 마지막 모습에 내 얼굴이 겹친다. 구질구질한 갈색 난방과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긴 바지를 입고 이 폭서의 여름밤 묵직한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을 걷는다. 하나에 5원이라도 될까? 남들이 버린 박스조각들을 열심히 모아 리어카에 싣고 열심히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이렇게 해서 하루에 벌 수 있는 것이 고작해야 5~6천원. 없을 때는 이보다 못한 불규칙한 수입이다. 게다가 나 하나 코 붙이고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 그래도 이것이 내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사업에 실패한 걸까? 아니면 직장에서 정리해고당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워낙에 능력이 없어서 이날 이 때까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다만 이렇게 늙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40대 후반, 슬슬 새치가 날 때이긴 하지만 머리카락은 내 고통을 그대로 반영하듯 빠른 속도로 하얗게 새어가고 볼은 삭아가는 피부와 함께 그 힘을 잃고 푹 파인다. 눈은 이미 썩은 동태눈처럼 퀭하니 생기와 희망을 잃고 절망에 휩싸인 칙칙한 검은 색 심연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다. 기운 없는 몸은 점점 말라가고 피곤에 절은 허리는 저절로 굽는다. 담배 살 돈도 없어 어디서 주은 일회용 라이터를 주머니에 쓸쓸하게 처박아두고 어디 떨어진 담배가 없나 쉴 새 없이 흐리멍텅한 눈을 굴린다(비록 지금의 내가 담배를 피는 건 아니지만).

  이 내 고충을 알기는 아는 걸까? 새파랗게 젊은 놈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비스듬히 걸고 더워서 미치겠다는 듯 흐느적흐느적 내 앞을 지나간다. 나를 보는 그 녀석의 얼굴엔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경멸이 얼핏 스쳐지나갔고, 녀석의 얼굴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더러워.’

  이것은 충격이었다. 자랑하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지만 그 동안 나름대로 도덕적이고 부끄럽지만 착하다고 여겨왔던 나였다. 그건 주변 사람들로부터 늘 받아온 평이었고 나 자신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그냥 두지 못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내게 있어서 은근한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이건 손해 보는 성격인지라 부모님도 자주 지적하셨지만 당사자인 나 자신은 오히려 내가 떳떳하고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졌다.

  손해라도 좋다. ‘고맙다’고 하는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가 내게 있어선 더할 나위없는 행복 그 자체였으니까. 내 양심의 주머니가 두둑하게 채워지고 그 포만감과 그들의 계산 없는 고마움이 이 칙칙한 삶에 희망을 얻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일순간의 실수, 그래 실수라고 하자 더위 때문에 짜증으로 뒤범벅된 머리가 잠시 동안 어떻게 된 거라고! 그래서 바뀌는 것이 있는가? 일순간이긴 해도 내가 그 사람을 경멸하고 마치 오물 더미 위에 쓰러져 악취를 내뿜고 있는 음식쓰레기처럼 여긴 것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실수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고 금새 반성하는 자세를 취해도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악(惡)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내가 사람들을 도운 이유는 무엇인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할머니의 짐을 언덕 끝까지 들어다 드린 이유는 무엇인가? 신호등이 깜박이는 도로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아버님을 도와드린 건 도대체 무슨 연유에선가?

  싸구려 동정심? 위선(僞善)으로 내 눈과 귀를 틀어막고 내 속에서 들끓는 악을 부정한 거였나? 스스로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자위하며 나는 가난하고 무지한 이들을 경멸하는 추잡한 마음을 숨긴 거였나?

  나는 문득 몸을 돌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감히 볼 수가 없었다. 추하고 더러운 내가 그를 보며 다시 경멸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로인해 내가 이때껏 추구해온 이성과 도덕의 껍질을 부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감히 입 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하는 사죄 따위 전부 거짓이며 이제와선 저 분을 욕되게 하는 일 밖에 될 수 없다. 방금 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그 감정은 내 본성.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었던지 환경에 의해 그렇게 되었든지 숨길 수 없이 드러나 버린 내 악이다.

  내가 혐오스럽다. 가난하지만 이 더위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그를 경멸한 내가 미치도록 저주스러웠다. 분명 저 사람이 악한 사람이고 진정으로 혐오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내가, 그의 본성은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내가 감히 타인을 욕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죄를 범했다.

  ‘더러워? 그럼 너는 얼마나 깨끗하지? 진정으로 넌 타인에게 경멸을 받은 적이 없다는 거야? 자신만의 옹졸하고 오만한 잣대는 흑백을 멋대로 정할 자격이 없어.’
  ‘너는 잘났냐? 네가 무슨 자격으로 저 사람을 능멸해? 너는 저 사람이 안고 있는 삶의 무게를 한 순간이라도 겪어 보았어?’

  없다. 결단코 없다. 집은 가난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지만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작고 사소한 트러블이 몇 가지 있었을 뿐 부모님과의 사이, 하나 뿐인 누나와의 사이도 굉장히 좋다. 어려서 몸이 안 좋았고 눈을 심하게 다쳐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지만 지금에 와선 그게 딱히 고생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리어카를 끄는 그 중년인의 어깨에 짊어져 있는 삶의 애환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사소한 것이리라.

  “씨발.”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는 내 입에서 저절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한순간이긴 했어도 내가 가졌던 감정은 내가 그토록 경멸하는 ‘능력도 없이 부모 잘 만나 개망나니 짓하고 다니는 개새끼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달동네 중심에 세워진 타워 팰리스의 거주자들처럼 오만하게 가난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경멸어린 조소를 흘리는 인간들. 지들 잘난 것도 하나 없이 부모 잘 만나 호강하는 주제에 가난하거나 모자라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조롱하고 능멸하는 오만방자한 인간들. TV와 인터넷을 수없이 돌아다니며 욕만 죽어라 해댄 그 인간말종들같은 행위를 내가 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과연 앞에 나열한 인간말종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

  대답할 수가 없다.

  만약 자격이 있다면 내가 그들보다 뭔가 잘난 것이 있는가?

  “…….”

  역시 대답할 수가 없다.

  이 전만 해도 당당하게…

  “내가 잘난 것은 없어도 적어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도덕은 지킨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도덕시간에 배울 필요도 없이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건데 그런 기본적인 인간의 개념을 무시하는 네 놈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빈부의 격차로 계급을 나눈다면 너희들은 이미 인간이란 단어도 아깝다. 시대에 역행하는 테러분자다! 오물 속을 헤집고 다니며 주어진 먹이를 받아먹기에 급급한 돼지일 뿐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리어카를 끄는 남자를 경멸한 시점에서 나는 이미 패배자요, 위에 나열한 인간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인간으로 추락해버리는 것이다. 비난의 자격을 잃고 같은 범죄자가 되어 같은 서열에, 아니 그보다 못한 나락으로까지 추락해버린다.

  이 얼마나 추잡한가! 자신이 경멸하던 상대와 똑같은 짓을 똑같이 저지른다. 이만큼 추하고 혐오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자기혐오까지는 비약이 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그 무엇도 아닌 분명한 자기혐오였다.

  혐오를 부인하기 위해 가만히 내가 이제까지 이룬 것이 뭔가 없을까하고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나를 변호하고 싶었다. 이 추한 얼굴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없다. 지금도 다만 목적 없이 굴러다니며 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란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취미 삼아 기타를 칠뿐이다. 취미로 기타를 치고 취미로 글을 쓰고 취미로 인터넷을 하고 취미로 게임을 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또 다시 나열한 것들의 반복이다. 그 어떤 것도 생산적인 일은 없고 모두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꾀할 뿐이다. 즐기고 또 즐기고 그것도 귀찮아 집에서 뒹굴며 백수생활을 만끽한다. ‘아직 대학생이니까’라는 핑계로 일도 안하고 부모님께 빌붙어 그 단물을 쪽쪽 빨며 산다. 남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보다 못한 삶. 그것이 내 본성이고 이제까지 깨닫지 못한 내 과오(過誤)다. 대충대충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대충대충 졸업하고 지금 또 대충대충 대학을 다닌다.

  내가 리어카를 모는 중년인보다 하등 나은 게 없다. 부모님의 능력에 기대 돈이나 흥청망청 써대는 한량과도 조금의 다름이 없다. 생산성도 성실성도 그리고 그것을 모두 타파할 지혜도 내게는 너무나 부족하다.

  부끄럽다. 나는 이다지도 못난 인간이었단 말인가?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위선에 장님, 귀머거리가 되어 ‘선인(善人)’을 사칭하고 위선이란 이름의 방패를 무기 삼아 멀쩡한 입을 놀리며 타인을 공격한다. 그 어떤 노력도, 행동도 하지 않는 주제에 남을 헐뜯고 욕하기에는 전력을 다한다. 그러면서 ‘나는 올바르니까’라며 타인의 반박을 한 귀로 흘려듣고 자위한다. 이제는 자기변호를 위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혐오를 조심스럽게 부인하려고까지 한다.

  위선자, 비겁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말은 나 같은 이를 위해 있는 것이리라.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내 뇌리에는 리어카를 끌고 가는 파리한 인상의 남자가 잊어지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담배를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냉큼 줍는 그와 그것을 보며 ‘더럽다’고 경멸한 내 한심한 모습까지도.

  그토록 고대하던 샤워를 마치고 한결 맑아진 머리로 조용히 컴퓨터를 켜서 오늘 본 그 남자와 내가 느낀 감정을 기록했다. 나 자신의 미숙함을 찾아내고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본질을 끄집어냈건만 도무지 기뻐할 수가 없었다.

  내 그림자를 찾아냈다. 이제까지 유폐되어 있던 내 본성을 끄집어내 성찰(省察)하며 자기비판과 함께 조심스레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타인을 경멸하는 행위. 그것은 그야말로 아집과 편견의 말로다. 가령 아주 찰나적인 순간이었다고는 하나, 그 리어카를 끌던 중년인처럼 외관과 행동이 더럽다고 해서 그의 존재를 더럽다고 여긴 나처럼 편견과 아집은 보편적이지 못한 잣대를 이루게 된다.

  이건 내 자신이 별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한다면 그 자신도 언제가 타인의 잣대에 의해 악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몸과 마음은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행동하고 만 것이다. 이성(理性)을 가진 인간이 TV나 생활환경을 통해 거짓으로 각인된 후천적 본능(本能)에 졌다는 것만으로 나는 내가 아직 성숙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타인의 내면세계를 무시하고 외모만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나는 얼마나 미숙한가.

  조심스레 리어카를 모는 중년인의 위에 다시 나를 겹쳐본다. 쓰레기 보듯 나를 보며 스쳐지나가는 내 분신(分身)처럼 나 자신이 아무리 ‘선(善)’이라 우겨도 남에겐 단순한 ‘악(惡)’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 가슴 속에 슬픈 여운을 남겼다.




-----------------------------------------------------------------------------------------------

자자 다들 열심히 올립시다!

느림보 굼뱅이인 저도 분위기에 편승해 글을 올려봅네다.

참고로 위에 장황하게 읊은 헛소리는 제 경험담입니다. =ㅅ=;;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한 망상과 상념을 그대로 옮긴 거라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622 Last Hope 1부 프롤로그 [1] 닥터롯치 2009.01.04 879
7621 다중인격 2화 [2] 펠릭 2009.02.13 878
7620 Plan B - The From London - 1 file MiNi'M' 2008.10.07 876
7619 아주 짧은 이야기 한편 [8] 용호작무 2010.04.09 875
7618 Don Quixote [8] Bryan 2008.05.11 873
7617 중딩의 하루일과 [2] 평운 2009.08.08 872
7616 일곱별 乾天HaNeuL 2010.10.17 871
7615 Synthesis War 하노나 2009.04.18 871
7614 아포시오시스(Apotheosis)<습작> [1] 아버님ㅅ 2008.11.14 871
7613 [F.I.N]대[창조도시] [2] 무역장사 2007.08.03 871
7612 다중인격 5화 [1] 펠릭 2009.02.18 870
7611 일곱별 [6] 乾天HaNeuL 2010.10.17 868
7610 벽력활검(霹靂活劍) [7] Bryan 2009.02.06 868
7609 살인자 [2] 유도탄 2009.01.18 868
7608 § Last Soul § [1] 일렌 2007.10.07 865
7607 [아.들.이]아우에게 크리켓≪GURY≫ 2008.08.14 864
7606 The After Sunset [PL] [1] 크리켓≪GURY≫ 2008.06.02 864
» [이벤트] 리어카를 모는 남자 [10] 갈가마스터 2006.08.09 863
7604 다중인격 4화.. [1] 펠릭 2009.02.15 862
7603 잃어버린 우리의 이상향 [2] 소엽 2008.02.14 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