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대사] 균열

2008.01.13 12:10

베넘 조회 수:894 추천:3

extra_vars1 깨어진 세계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 균열 - 깨어진 세계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밤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침대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앉아 빌려온 소설을 읽고 있었다. 바닥에는 하다 말고 팽개쳐둔 숙제들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고, 조금 전부터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밖에서 식사 준비를 마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른다.


"지영아, 와서 저녁 먹어라-"


"네. 지금 갈게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고는 읽던 책을 접어두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잉-


기압 차 때문인가,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나한테는 그리 자주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수롭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때 무언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방문을 열려던 나는 문득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동작을 멈추었다.


"                                "


그 순간, 나는 시커먼 형상이 내 앞을 휙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의 그것이 바로 내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뭔가가 변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집안 풍경이었는데도, 무언가가 달랐다. 마치 꿈속에서 익숙한 풍경을 보고 있는데도 미묘한 어색함을 느끼는 것처럼, 현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비현실 속에 서있는 그런 기분.
한 걸음, 한 걸음, 방 밖을 벗어날수록 그 느낌은 줄어들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엄마,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 하면 분명 이 이상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식당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식탁 옆에 가만히 서 계셨다. 왠지 몇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한 듯 반가운 기분이 들었고, 울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던 나는 엄마의 행동이 굉장히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멍하니 벽을 응시하고 서 계신 엄마는 한 번씩 몸을 움찔 움찔 거리는 것 외에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불현듯 얼마 전 하던 게임에서 버그에 걸린 캐릭터가 명령한 행동을 수행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던 그 모습이 생각나 오싹해졌다.


"어..엄마?"


엄마겠지? 엄마일 거야. 저건 엄마가 맞을 거야...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이끌고 엄마를 향해 다가가던 나는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경악하고 말았다. 식탁을 덮고 있는 두터운 유리. 거기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즐비하게 차려진 음식그릇의 형상, 식탁 위에 환하게 켜진 전등, 그 무엇도 유리에 비치고 있지 않았다.


이건 뭐야? 왜 이래?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다른 이상한 건 없는지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식당 한쪽 벽에 걸린 거울에서 나의 시선은 멈추었다.
거울 속의 내가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적어도 지금의 내가 저것과 동일한 표정을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라는 사실이었다.


"뭐야, 이거..."


그리고 거울 속의 내가 울먹이며 이쪽으로 손을 뻗는다.
 
"이거 꿈이지?"


-안 돼


어설픈 초보가 들고 찍은 홈비디오처럼, 거울 속의 풍경이 아래위로 세차게 흔들린다.


"꿈이야. 분명히 꿈이야!"


-안 돼, 그러지 마!


거울 속의 풍경이 아래로 무섭게 곤두박질친다.



챙-!!!


 



-      =      -      =      -      =      -      =      -      =      -      =      -


 



거울을 깨뜨리고, 무서워진 나는 덜덜 떨며 식탁 아래로 기다시피 들어갔다. 옆에서는 엄마가 역시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널브러진 거울조각들을 응시하고 있다.


달그락, 달그락-


깨진 파편들이 사방에서 계속 시끄럽게 달그락거리며 요동쳤다. 그 소리가 마치 '왜 그랬어? 왜 깨뜨렸어?' 하고 원망하는 듯이 들려서, 나는 귀를 막고, 눈도 감고, 조각들의 꿈틀거림이 완전히 잠잠해 질 때까지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


 


이히히, 참여에 의의를 둔 썰렁한 단편입니다. ^^


답이 쉽다 못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같고...음,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