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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단편] 양철인간은 왜 마음을 가지고 싶어했을까

2006.11.07 04:52

Mr. J 조회 수:884 추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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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인간은 왜 마음을 가지고 싶어했을까?”

햇빛아래에서 새하얗게 비추는 금발을 가진 작은 물체가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말했다. 그것이 가진 새파랗고 유리알처럼 청명한 두 눈동자는 그것이 펼쳐 들고 있는 책 한 권에 고정되어 있었다. 약 13세 소년 같은 얼굴을 가진 그것은 그가 들고 있던 ‘오즈의 마법사’라는 책을 덮고, 옆에 내려놓았다.

“라일라.”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말했다. 라일라는 소년의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더 샛노랗게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한껏 뽐내고 있는 듯 했다.

“양철인간은 여행이 끝나고 마음을 상으로 받은 거잖아, 그렇지?”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물었지만 라일라는 대답이 없었다.

“라일라, 궁금하지 않니?”

소년이 다시 물었지만 라일라는 부서진 건물의 천장 사이로 스며들어 그녀의 얼굴위로 환하게 쏟아지는 빛 줄기에 얼굴을 고정시킨 채 말이 없었다.

“라일라, 양철인간에게 마음이 생겼다면 그건 어떤 모양이었을까? 마음도 몸처럼 양철로 되어있었을까?”

라일라는 대답이 없었다.

“라일라, 양철인간에게 마음이 생겼다면 그건 무슨 색깔이었을까? 양철처럼 은색이었을까?”

라일라는 대답이 없었다.

“라일라, 양철인간에게 마음이 생겼다면 그건 어떤 느낌이었을까? 응? 라일라.”

라일라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잠시 그런 라일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포기한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것은 앉은 채 말없이 라일라를 쳐다보았다. 조용한 바람이 그녀의 샛노란 드레스 끝자락을 살랑거리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몸은 바람이 조금만 더 세게 불어도 툭 하고 부러질 것만 같았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그렇게 라일라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잠시 후 입을 열고 조심스레 물었다.

“너에겐 마음이 있니?”

하지만 라일라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잠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했으나, 다시 마음을 접고 라일라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드러누웠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벌렁 드러눕는 바람에 바닥에 쌓여있던 흙먼지가 피어 올랐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대자로 누워 천장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는 전부 잘 계실까?”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잠시 눈을 감고, 그것의 부모와 헤어지게 되었던 날을 기억했다. 주말이면 언제나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던 중앙 거리였지만 그날은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여느 주말 때보다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달랐다. 쇼핑을 나온 행복한 가족, 연인들은 언제나 즐거운 표정으로 거리의 이 방향 저 방향을 어지럽게 섞여 돌아다녔지만 그날은 달랐다. 모두들 우거지상을 한 채로 한 방향을 향해 경계 페로몬을 감지한 개미떼처럼 번잡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은 울고 있었고, 어른들마저 울듯한 표정들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엄마의 손만을 꼭 잡은 채 거친 파도처럼 흐르는 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바닥에 앉아 울고 있던 한 작은 아이를 보고는 그만 엄마의 손을 놓고 말았다. 엄마는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에게 애타게 소리쳤지만, 그것은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바닥에 앉아 울고 있던 아이를 달랬고, 그 동안 엄마는 거친 인파에 밀려 저 멀리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계속 울던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있었지만 누군가가 그것에게서 아이를 데려갔고,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홀로 인파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이리저리 쏠리다가 정신을 잃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기억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등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었다.

“라일라, 잠시 바깥 좀 보고 올게.”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말했다.

“밖엔 별거 없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잠시 나가보고 싶어.”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중얼거리듯 말하곤 그와 라일라 그리고 먼지가 가득했던 방을 나와 복도에 나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새파란 바닷물이 창가 바로 아래까지 차올라 있었다. 창문 밖엔 물에 잠긴 도시가 있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이 외딴 건물에서 라일라와 만난 직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도시엔 물이 흘러 넘쳤고,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지금까지 ‘집’이라고 불렀던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이 물에 잠겨버렸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그의 청명한 눈동자를 통해 잠시 물 밖으로 솟아나와 있는 고층건물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라일라는 여전히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일라, 나 왔어.”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말하며 라일라의 앞에 앉으려는데, 순간 그것의 눈앞에 뿌옇게 되며 그것은 몸의 중심을 잃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의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것은 바닥에 코를 박은 채 쓰러져있었다.

“아, 자꾸 왜 이러지?”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년은 잠시 라일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그의 배에 난 커다란 상처, 시커멓게 뚫린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옅은 갈색 액체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쳐버렸잖아. 하지만 괜찮아, 난 아직 버틸 수 있어.”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말하며 라일라 앞에 앉았다.

“라일라, 우리 남은 시간 동안 뭐하고 놀까? 난 심심해.”

라일라는 말이 없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라일라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는 듯 했다. 잠시 후 소년이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우리 술래잡기 하자!”

소년이 자리를 박차며 벌떡 일어섰다.

“나, 술래잡기 안 한지 오래됐어. 라일라도 하고 싶지? 라일라가 먼저 술래 해!”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말하며 라일라의 주변을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라일라는 술래잡기엔 관심 없는 듯 여전히 말없이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래 역을 맡을 생각이 없는 라일라를 무시하고 혼자 신나게 뛰어 놀던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지친 것인지, 술래 없는 술래잡기에 싫증이 난 것인지 놀기를 멈추고 바닥에 몸을 뉘였다.

“힘들다, 그렇지? 라일라.”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말했다. 라일라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힘들지 않은 듯 했다. 왜냐면, 방정맞게 뛰어다녔던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과는 다르게 라일라는 줄곧 앉아서 해님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라일라.”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슬슬 졸리다. 그렇지?”

라일라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졸리지 않은 듯 했다.

“……이젠 왠지 양철인간이 마음을 가지고 싶어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아.”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말했다.

“마음이 있었다면, 즐거운 일이 있을 땐 진짜로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잖아?”

라일라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마음이 있었다면, 싸워서 삐쳤을 때 얼굴을 찡그리며 화낼 수도 있잖아?”

라일라는 듣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슬플 땐 눈물을 흘릴 수 있잖아?”

라일라는 말이 없었다.

“너에게도 마음이 있니 라일라? 너에게도 마음이 있다면…… 한번만, 딱 한번만 나를 위해 울어주련?”

라일라는 대답이 없었다.

“라일라, 나에게도 마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응? 라일라.”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라일라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샛노란 꽃잎을 어루만졌다. 화분에 담긴 노란색 꽃 한 송이는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에게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그녀의 노란 꽃잎들을 활짝 펼친 채 천장의 구멍으로 스며드는 햇빛만을 향해있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무표정으로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이럴때 울곤 했지만 그것은 울 수 없었다. 그것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무표정으로 샛노란 꽃 한송이를 바라보는 것이 소년의 얼굴을 한 것이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 같은 양철인간. 에게도. 마음이 있었다면."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말을 잇기 힘겨운 듯 한마디 한마디 끊어가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라일라를 바라보는 그의 파란색 눈동자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나 같은. 양철인간. 에게도 마음이. 있었다면. 나는. 너를 위해. 울어주었을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데. 텐……”

노란색 꽃잎을 어루만지던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의 손이 멈추었다. 그가 홀로 핀 노란 꽃에게 지어주었던 라일라라는 이름을 계속해 부르던 그의 입술이 멈추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푸른색 눈동자에는 애처로움이 서려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의 푸른 눈동자에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Low Battery-’

라일라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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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배경
때는 2086년, 한 무리의 과학자들이 우주를 떠돌던 거대 운석이 자신들의 나라 바로 옆 바다에 떨어질 것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거대 운석은 그 크기가 매우 거대해, 대기권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그 크기가 별로 줄어들지 않고, 그들의 나라 바로 옆 바다에 떨어질 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었던것. 결국 정부는 해일의 여파가 미치는 지역의 주민들을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과학자들이 예언했듯 거대 운석은 지구를 향해 떨어졌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피난을 갔고, 엄청난 교통난 등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결국 운석은 나라의 바로 옆 바다에 떨어졌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주변 지역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 지역에서 살아남은 생존체는 꽃 한송이. 그리고 사이보그 하나.

#캐릭터
-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은 사이보그.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부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아이 사이보그이다. 모델명 42d7은 새하얀 금발에 귀여운 외모와 맑고 푸른 눈을 가졌으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유모프로그램이 어느정도 탑재되어 자신에게 설정된 나이(약 13세)보다 어린 인간들에게 친절하며, 부모로 설정 된 인간들에게 프로그래밍 된 대로 그들의 자식처럼 행동한다. 제작사인 프로보그사는 구형의 단점이었던 지속적인 인포메이션 업데이트를 개선하여, 42d7에겐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로인해 42d7은 보통 아이처럼 뭔가를 가르쳐 주면 어느정도 그것을 배우고 적용시킬 줄 알았다. 기술은 획기적이었으나 그 가격이 엄청나 매우 일부, 부유한 가정만이 사이보그 아이를 자녀로 두었다.
추가설정(다들 현실성에 의견이 많길래 추가합니다.)
제작사인 프로보그사는 42d7을 기본적인 테스트만 거친 후 그들의 VIP고객들에게 먼저 선보임으로서 일종의 시장테스트를 한다. 그러므로 혁신적인 기술인 학습능력에 의한 여러가지 outcome, 즉 학습능력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여러가지 결과에 대해 불확실한 것이다. 소년의 얼굴을 가진 그것이 부모들에게 입양된 때는 프로보그사가 42d7를 처음으로 도입한 때, 그러므로 프로보그사는 42d7이 학습능력을 통해 뭔가를 원하게 되거나 인간의 '감정'과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 42d7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이보그 회로의 '오류'라고 불릴만한 '감정'의 [일부]를 가지게 되었다.

- 라일라
화분에 심어진 노란색 꽃 한송이. 해일이 지역을 덮치기 전까진 한 사무실에서 주인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꽃 한송이였지만, 주인이 해일으로부터 피난간 후 홀로 건물안에 놓여져 있었다. 인파에 휩쓸려 양부모와 생이별하고 발에 밟혀 몸이 부서진 소년의 얼굴을 한 그것이 건물에서 깨어나 만나기 전까진. 소년이 제멋대로 꽃에게 라일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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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불타오르는 지옥의 도마 위로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