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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바람개비 홀릭

2008.03.17 05:30

영웅왕-룬- 조회 수:895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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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달린 일행이 지오나가 있는 여관에 도착한 것은 한나절이 지난 뒤였다. 그 동안 말

에게 영양 공급을 하는 시간을 제외했다면 한나절도 걸리지 않았을 터였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유서 깊고 명예 높은 가디언들로서 중무장을 벗는 것은 허락되지 않아 말들의 피로가 장난아니

게 쌓여버린 것이었다. 엔드슨이 열심히 여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동안 금세 30명이 족

히 머물 방들이 마련되었다.

 

"그대가 지오나인가?"

 

룬이 빠르게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키자 지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쳤다.

 

"그렇습니다 황자 전하. 앞으로 동행하게 된 것 영광입니다."

"눈이 많다. 앞으로는 날 도련님으로만 부르도록 해라. 지금 그대가 가지고 있는 인맥은 어느

정도지?"

 

룬은 간결하게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물어왔고, 지오나는 제법 꼼꼼하다고 소문만 들어온 황자

가  곧바로 용건을 꺼내오는 점을 미루어 이 일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감을 알 수 있었다. 빠른

시일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위험한 냄새가 확산될 거란 것도. 그리고 그리 되면 이 일에 연관된

자신부터 입막음을 당할 수 도 있었다.

 

"도둑과 사창가 같은 더럽고 저열한 무리들과 제법 연관이 있죠."

 

물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비치진 않았다. 적당히 자신이 어느정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자란 걸 확인시켜 주면 곧바로 내쳐지지는 않으리라는게 그의 계산이었다. 룬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것 아닌 용건으로 위장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적당히

머리 굴릴 줄 알지만 그 머리에 자멸할 줄 아는 자들이 필요했다.

 

"좋아, 그거면 됬다. 즉시 한사람 대려오도록. 시간은 넉넉히 주지. 나가면서 엔드슨 좀

불러다오."

"신용은 별로지만 쓸만한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대략 2시간 뒤 돌아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지오나는 방을 열고나가 대기하고 있는 엔드슨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이봐, 황자가 정말 보통이 아니긴 아니군.'

'아무렴. 내가 모시는 주군이 평범할리 있나.'

 

지오나를 뒤로하고 방안으로 들어온 엔드슨은 무거웠던 바이저를 벗어 옆구리에 끼운 채 룬을

향해 직각으로 인사하며 말했다.

 

"황자 전하. 어떠신지요?"

"그다지 마음에 든 건 아냐. 무엇보다 그의 눈은 너와 같은 눈이야. 이용해먹기는 좋지만 잘못

하면 뒤통수를 맞아버릴 우려가 있지. 내 옆에 있는 충신이란게 너같은 놈들이라니 참으로

황제되기 어렵구나 어려워."

"나이에 어울리시는 푸념이십니다만, 황자 전하에겐 어울리지 않는 푸념입니다."

 

그 말에는 룬도 그 누구도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룬 셰인 아르코 제 1황자. 그는 이미 내정

된 황제 이며 아르코 제국 역사상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의 정점에 선 자였다. 깍아도 깍

아도 눈부심과 정교함만이 되살아나는 그런 예술적인 광물이었다.

 

"난 한숨 붙이도록 하지. 엔드슨. 월드에게 일러둬라. 충분한 휴식을 3시간 정도 즐기라고.

그 뒤 다시 강행군이다."

"또 입니까? 후우, 알겠습니다 황자 전하. 그럼 편히 쉬시길."

 

그 뒤 그대로 곯아떨어진 룬 황자를 보며 엔드슨은 언제나 이런식이지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룬 황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마치 검과도 같다. 부러지지 않는 한 자신의 사명을 완수

하는 그런 자. 하지만 그 뒤에는 피폐해진 모습으로 휴식이라는 장인의 손에 만져지며 수리된

다. 아마 그와 룬이 맺어지게 만든 첫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황제라면 이런 자여야 된다는 그

만의 확고한 신념에 부합되는 황자. 잡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마굿간에 도착한 엔드슨은 자

신의 말을 돌보는 월드를 발견했다. 월드는 항상 그래왔다. 습관화 되어버린 말 돌보기는 무서

울 정도라 그의 말이 된 것들은 다른 말보다 더한 호강을 받았다.

 

"무슨일이지 엔드슨?"

 

차갑게 빛나는 그의 갈색 눈이 엔드슨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손이

정갈한 말의 갈기를 쓰다듬는 월드는 천천히 말에서 멀어져 몸의 방향을 틀었다. 군더더기 없

완벽한 동작에 잠시 감탄하던 엔드슨은 곧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황자 전하의 전언입니다. 유예시간 앞으로 3시간."

 

엔드슨의 말에 잠시 신음을 흘리던 월드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엔드슨의 옆을 지나

갔다. 이제 그에게 할 일이란 19명의 가디언에게 지시를 내리고 푹 쉬게 하는 일임을 잘 아는

엔드슨은 지오나라도 마중나갈 겸 여관 밖으로 나섰다. 하늘거리는 바람이 치마에 달린 레이

스 처럼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주 조금 비릿한 피냄새

그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이 평화롭고 조금 번화한 마을 안. 그것도 자신이 서있는 곳으

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싸움의 소리.

 

"거 참, 기분나쁘게 이게 무슨 일이야."

 

별로 커다란 싸움은 아니었다. 말소리와 함께 험악한 욕지기. 정황을 언뜻 느껴보니 아무래도

코피나 터졌을 법한 싸움일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이 엔드슨의 오판이었다. 죽죽 갈라진 거미

같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마자 눈에 띈 것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마을 주민과 죽어버

린 그 를 단도 같은 걸로 푹푹 찌르고 있었다. 아마 남자는 저항 한번 못하고 쓰러진 듯 믿을

수 없는 표정을 했다.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죽은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아무리 레이디라고 해도 봐줄 수는 없는 노릇. 떨어져라 여

까지 사체의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이것이 엔드슨의 두번째 오판이었다. 여자는 엔드슨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시선을 돌려

엔드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족히 수련을 한 기사라고 할 만큼 빠르고 강한 몸놀림으로 단도를

휘둘러왔다.

 

"읏?!"

 

예상보다 빠른 공격에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칼을 꺼내 공격을 봉쇄하기 위해 횡베기를 가하

며 앞으로 나아간 엔드슨은 여기서 세번째 오판을 저질렀다. 그녀는 단 한번의 공격에 제압될

만큼 약하지 않았다. 휙 하고 휘둘러진 횡베기를 자세를 낮춰 빠져나가며 사라진 뒤 곧장

뒤에서 단도를 찌른 그녀의 행동에 엔드슨은 그대로 등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오판은 아니

지만 예상치 못할 만큼 강한 힘으로 등을 찔린 엔드슨은 차츰 시야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어두워지고 몸의 반응이 둔해져갔다. 마치 엄청난 돌에 등을 가격당한 느낌이었다.

곧이어 엔드슨의 몸이 앞으로 거꾸러졌다. 바람이 그의 곁을 스쳐 그의 온기를 여관에 보내려

는 듯 빠르게 나아갔다.

 

때는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