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겨울E]기사를 위하여

2007.02.04 11:37

문학소년 쉐르몽 조회 수:914 추천:4

extra_vars1 Epilogue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기사를 위하여 건배. 수많은 전장을 헤치고 달려 나온 바보를 향해 건배.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서도 제일 먼저 달려 나간 용사를 위하여 건배. 다섯 번 죽고 여섯 번 살아난 모든 걸 잃은 바보 같던 마법사를 위하여 건배. 태어난 후로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패한 마왕에게 건배. 그래, 그 바보들을 위하여 건배.







  내가 처음으로 싸움을 하고 나서 들은 한마디는 나의 어리석음을 혼내는 꾸중도 아니었고, 나의 무모함을 칭찬하는 극찬도 아니었다. 단지 쌀쌀하고 냉정한 단 한마디뿐이었다.


  “검으론 사람을 살릴 수 없어. 검으로는 죽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때, 울컥하는 마음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때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듯이 달음박질 친 길에는 아무것도 없고 주위에는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그런 상태가 된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퍼뜩 깨달았다. 아버지가 옳았다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사람을 구하겠다고 달려왔다. 하지만 내 뒤에 선 것들은 무엇인가. 괴물인가, 인간인가? 그래, 그건 내가 벤 인간의 수만큼, 아니 내가 죽게 방치해둔 수만큼의 인과응보였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죽여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 그리고 그 구원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매달린 이상, 용사가 아니다. 인간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무적의 인간이 되어야한다. 난, 인외마물(人外魔物)이 되어야 했다. 더 이상 사람을 살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직 기계처럼 죽을 사람과 살 사람을 구별해야만 했다.


  …그게, 뭣도 모르고 이상만을 쫒아 사람을 구하기로 한 멍청한 놈의 최후였다. 그 앞에는 오직 무한한 악마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들 내 방식을 이해해줬다.


  “그래, 알아. 다 구하고 싶지만 다 구할 수 없는 거지?”


  사실 그게 아니었다. 구하려고 할 수 있었으면 더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걸 거부했다. 더 많은 사람을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으니까. 아예 선을 그었다. 이쪽은 살 사람, 저쪽은 죽을 사람.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를 한 번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워했다. 내가 버린 사람들의 유족들마저 나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째서? 나는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을 죽게 했다. 그리고 반대쪽의 사람들만 구해왔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감정을 죽였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더 이상은 망가지려고 하지 말자. 나는 이미 망가져 있다.


  베고, 또 베고, 시체의 산을 넘어서, 나는 이미 마왕이 되어 있었다. 그때, 나에게 한 마법사가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무엇을 갈구하는가, 불쌍한 기사여. 그리하면 그저 모두 잃을 뿐인데.”


  나는 그저 마법사를 무시했다. 갈구하는 것? 그딴 것 없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간절히 원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그렇게 되면 사람이 죽는다. 나는 인간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강하지 못하다. 그러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감정을 가지고는 그걸 해나갈 용기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행동만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죽여야 한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씩 잃어 가면, 잃은 것의 소중함만큼 다른 사람들을 더 구할 수 있다. 그게 진리다. 그게 합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또 시체의 산을 넘었다. 그 앞에는 또 마법사가 있었다.


  “용사는 그저 달려 나가는 사람이지. 사람들은 그 등을 보고 희망을 얻어. 용사가 무엇을 만나 엉망진창이 되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 빛나는 등만을 바라보지. 결국 용사의 일생은 베드 엔딩일 뿐이야, 불쌍한 기사여.”


  참자, 참자. 이것은 그냥 마법사가 지껄이는 말일 뿐이다. 미치기 가장 좋은 일은 마법사가 되는 일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마법사를 거세게 밀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암흑의 탑, 칠흑의 성, 미노타우르스의 미궁, 비홀더의 유리성, 쉐이드의 지하동굴, 블랙드래곤의 레어까지. 많은 적을 죽였고, 나는 점점 더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다시 마법사를 만났다.


  “기사여,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인간은 희망을 보고 사는 동물이야. 하지만 자네에게는 희망이 없어. 오히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희망이 사라지게 만들어. 자네는 그저 앞으로 달음박질치는 바보에 불과하지. 인간은 그런 무감각한 감동을 보면 다른 희망을 찾는 것에 소홀해져.”


  나는 그 마법사를 만난 이래로 최초로 화를 냈다. 네가 무얼 아냐고.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냐고. 내 뒤에서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 대해서 뭘 아냐고. 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있냐고. 내가 쓰러지면 내 뒤의 사람들은 누가 지켜주냐고. 그러자 마법사는 쓸쓸히 웃었다. 나는 그런 마법사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건틀렛을 낀 손으로 마법사의 얼굴을 후려치고 말했다.


  “그저 앞으로 달음박질치는 바보에 불과하댔지? 그럼 난 아직 용사군. 기대에 부응할 가치가 있어. 그렇지 않아?”


  마법사는 쓰게 웃었다. 나는 그대로 마법사를 지나쳐서 다음 관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상했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서러운 걸까, 라고. 피 묻은 건틀렛으로 눈가를 닦았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고 행동을 하자. 생각할 시간에 한명이라도 더 살리자. 그리고 거의 끝까지 갔다. 발록의 궁전. 그곳에서 처음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쓰러질 수는 없었다. 내 뒤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나는 그것을 등에 진 사람이다. 일어서서 간신히 발록을 베어 넘겼다. 움직일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한참 있었을 때, 마법사가 다시 나타났다.


  “결국 모든 걸 해치우려고 하는군. 혼자 짐을 드니까 행복한가?”


  나는 그렇게 말하는 마법사에게 슬슬 감기는 눈에 힘을 줘서 다시 뜨이게 하면서 말했다. 행복하다고. 무척 행복하다고. 남을 이런 사지로 몰지 않게 되어서 기쁘고, 내 뒤의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임에 매우 기쁘고, 다른 사람이 하나씩 잃어도 되지 않으니까 무척이나 기쁘다고. 그러자 마법사는 또 다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게 쓸쓸한 말을 넘겼다.


  “우리도 짐을 나눠들 수 있는데도, 자네 혼자 짐을 메는 것은 보기가 심히 안쓰럽네.”


  나는 그제야 마법사와 동행을 했다. 행동 전부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는 열심히 싸웠다. 그리고 싸울 때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갔다. 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그가 싸우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그는 그저 허허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게 자넬세. 이제 알겠나? 우리가 얼마나 마음이 편치 않은지.”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가슴을 퍽퍽 치면서, 오열했다. 어째서, 어째서 당신이 죽어가는 건데. 죽어가는 것은 나 혼자로도 족한데. 더 이상 누군가가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데. 검으로 사람을 살리자는 말도 안 되는 이상은 나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한데. 어째서 당신이, 이상을 말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씩 잃어야만 하는데. 그러자 마법사는 내게 말했다.


  “대신 자네가 하나씩 다시 찾고 있지 않은가?”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왜 나를 위해서 희생하는 건데. 나는 당신과 이해관계는 하나도 없는데, 왜 그러는데. 나는 원래 잃었으니까 이렇게 계속 살면 되고, 너희는 그냥 그대로 살아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나를 이렇게 슬프게 하는 건데. 마법사는 그런 내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화난 듯이 완고한 어조로 말했다.


  “잃었으니까 이렇게 살면 돼? 웃기지 마시게. 우리가 자네를 몰아세웠네. 그래서 당신이 잃었네. 그러면 우리가 갚아야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몰아세우지 않았다면 자네도 평범한 인간일 것 아닌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평소 그가 애용하는 지팡이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봉인의 주문을 외웠다. 눈물이 얼굴을 메우고, 하늘은 울부짖었다. 갚지 않아도 되는데.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 따위는 동물의 이야기일 뿐인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너희가 나를 슬프게 하는데. 마법사는 최후의 순간에 내게 희미하게 웃으면서 물어왔다.


  “내 이름은 아트레이드 쉘링거. 자네는?”


  나는 울음을 삼키고 당당하게 외쳤다.


  “나의 이름은 리니엘 라인슈테트!”


  그리고 땅을 보자, 이미 마법사는 봉인되어 있었다.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 그대로였다. 나는 그의 장비를 모두 내 배낭에 넣었다. 추억이 간직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불쾌한 것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이건, 내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가 남겨준 것이다. 그의 마지막 유산이다. 위대한 유산이다. 이것을 내가 함부로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유산이다. 나는 분명 이 유산을 죽을 때까지 다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섰다. 수많은 괴물들이 덤벼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매달린다. 지킬 수 있어. 나는 혼자가 아니야. 아트레이드의 수호자들이 나를 지키고 있어. 앞으로 나아간다. 뒤를 돌아본다. 앞만 보지 않아도 돼. 나는 인간이야.


  그렇게 배덕의 궁전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카오스 더 오리진(Chaos The Origin)을 만났다. 그는 그저 웃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편의 영화인 마냥.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자신은 셀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고. 이제 더 이상 버틴다면 미칠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을 죽일 용사를 선발했다고. 분노했다. 진심으로 분노했다. 자신을 죽일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수십억의 사람을 죽였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리고 그는 나를 더 분노시키기 위해서인지, 자기연민에 빠지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 모를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어.”


  나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인간이라니. 인간이라니. 우리가 그 이름을 가지고 싶어서 얼마나 염원했는데, 너 따위가, 너 따위가, 감히 너 따위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다니. 그렇게 간단하게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니. 분노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분명 이건 잘못되었다고, 그만 검을 멈추라고. 이 혼돈은, 아니 이 사람은. 그저 인간이 되고 싶었을 거라고. 오랜 시간동안 모든 것으로부터 유리된 것이라 힘들었을 거라고. 그리고 내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몸을 던지자, 그는 기쁜 듯한 얼굴로 팔을 벌려 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 나는 웃으면서 검을 반대로 돌렸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중얼거렸다. 들려라. 들려라. 그에게 들려라. 그리하여 나의 염원에 가까이 올 수 있도록.


  “…인간 사이에 섞여라, 인간 사이에 섞여라, 인간 사이에 섞여라. 그리고 인간의 삶을 살아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나의 모든 것으로 보장하겠다.”


  “…왜지, 왜 신경을 쓰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하는 카오스 더 오리진에게 말했다.


  “내가, 갚을 수 없을 만큼 받았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갚아야할 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남한테 옮기는 거야.”


  카오스 더 오리진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내 얼굴을 밀었다. 그러더니 한마디 했다.


  “정말, 당신은 어리석군.”


  나는 칼을 내 배에 꽂은 채로 말했다.


  “아아, 나는 원래 한번 잃었으니까, 또 잃어도 별 감흥이 없을 거잖아. 그럴 거라면 차라리 남이 더 얻는 게 낫잖아. …그리고 검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가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렇게 마왕은 쓰러졌다. 아니, 인간의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되어서, 아이를 데리고, 배덕의 궁전에서 나왔다. 그곳에서 나의 용사와 기사가 쓰러졌고, 마왕이 쓰러졌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를 얻었고, 아트레이드의 전인인 라니엘 라인슈테트를 얻었다. 모든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젊은 시절의 아이가 늙어가듯, 나무가 계절이 바뀌며 모습을 바꾸듯 우리는 그렇게 인간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피가 흐르고, 수많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자의 피가 흐르고 나서야, 우리는 진짜 인간이 어떤 것인지를, 숭고한 희생이 무엇인지를, 소중한 시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깨달음을 위하여 떠났던 여행을 위하여 건배. 인간이 되어버린 용사를 위하여 건배. 더 이상 아무런 짐을 지지 않는 기사를 위하여 건배. 일곱 번째 살아나서 모든 것을 되찾을 마법사를 위하여 건배. 마지막으로 인간이 되고 싶은 염원을 이룬 마왕을 위하여 건배.


  “아빠아~!”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지도 어쩐지도 모를 딸, 라니엘을 위해 건배.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잃은 바보 같은 용사와 기사를 위하여, 건배.










  작가의 무념무상 - 한글 2007 여기 호환이 안 되는군요. 덕분에 한참 삽질하다 메모장으로 일일히 수정하는 귀찮은 작업을 거쳤습니다. 울고 싶어라~ 새벽에 뭐하는 짓이람.. ㅠ_- 소재는 대강 치자면, 기사, 인간, 짐승의 길이 되겠군요. 으음. 이상한 작이 나와버렸습니다. 시간에 쫒겨서 그럴 듯. The Dark Mind, Shrmong인 걸까요. 여튼 우선 1작 찍어놓고, 이제 마지막 작 찍으러 가야겠습니다. 여튼 이번에도 좋은 평가 받기는 글러버렸군요. 후음. 주제라고 따지자면 주제는 고귀한 희생.. 일 겁니다. 아마. (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