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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당신이 잠든 사이

2010.10.08 01:59

윤주[尹主] 조회 수:170 추천:1

extra_vars1 #3. 귀신들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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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신들의 왕


 


 늦은 밤 현아는 마을로 내려갔다. 시골 동네라 사는 이들은 죄다 늙은이들밖에 없어서, 현아가 동구 어귀로 들어선 그 시간에 불이 켜진 집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현아는 그 집 주위로 둘러진 담장을 따라다니며 골목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돌아다녔다.



 가끔 어떤 집에선 개가 짖는 소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현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싫어서 일부러 동구 밖 외진 산그늘 아래까지 멀찍이 떨어져 산 지 벌써 수 년째였다. 지금도 현아는 금방이라도 저 개 짖는 소리를 피해 마을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지 않은 것은 모두 집에 있는 이선을 위해서다.



 골목 여기저기를 한참 동안 헤매던 그녀가 이윽고 걸음을 멈춘 건 막다른 길 앞에서였다. 비슷비슷한 막다른 길을 벌써 여러 차례 지나왔지만, 현아는 그것이 곧 자기가 찾던 곳임을 깨달았다.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안 것은 아니었다. 그런 종류 지식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느낌이 먼저 아는 것이니까.



 막다른 길 안으로 들어서서, 현아는 자기 눈앞에 있는 시멘트 벽 위에 손을 대었다. 차가워야 할 벽은 신기하게도 미지근했다. 아니, 미지근하다기보단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벽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도 없고 창도 없는 벽은 현아가 미는 힘에 마치 종잇장처럼 안쪽으로 말려들어갔다. 현아가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 벽에서 손을 놓았을 때, 벽은 다시 현아 뒤에서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밤도 낮도 아니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그 곳에서 현아는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딛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처음엔 등 뒤에서, 조금 지나자 오른편에서도, 나중에는 머리 위쪽과 정면 아래서부터도 시선이 느껴졌다. 하나였던 시선은 수십 개로, 다시 수백 개로 나뉘어져 보이지 않는 곳에 숨은 채 사방에서 그녀를 지켜본다. 현아는 그 시선들을 역겨워했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생각이야?"



 이윽고 멈춰선 그녀가 보이지 않는 그 시선들을 향해 물었다. 키득키득 대는 소리가 사방에서, 마치 개구리 우는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현아는 그 소리에 진저리를 치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것으로 바닥을 탕, 소리가 나게끔 세게 내리쳤다.



 "어디 한 번 덤벼보시지!"



 그녀가 쥔 금속제 야구방망이는 바닥에 부딪치자 텅, 하는 다소 묵직한 소리를 내며 가볍게 진동했다. 지켜보고만 있던 귀신들이 하나둘 숨어있던 곳으로부터 뛰쳐나와 현아에게로 뛰어들었다.



 현아는 그 귀신들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퍼벅,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어지고 새하얀 조각이 흩날린다. 현아가 든 배트는 유난히 묵직한데다 벌써 서너 위 귀신들 머리통을 깨트리고도 휘어짐 없이 멀쩡했다. 이쯤 되면 당황할 법도 한데 귀신들은 그저 무작정 현아에게 달려들다 머리통이 깨어지고, 어깨가 나가고, 발목이 제멋대로 돌아간 꼴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날렸다.



 "저리 꺼져!"



 다가오는 상대를 모조리 때려눕히며 현아는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귀신들은 한 번에 많은 수가 오는 건 아니었지만 끈질기리만큼 계속해서 연이어 달려들었다.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한 이래 현아는 단 한 순간도 숨을 돌릴 여유를 잡지 못했다. 심지어 놀림당하고 있단 생각마저 들었다. 이정도 숫자라면 한꺼번에 달려들면 진작 자신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딱 자신이 겨우 상대해볼만 하다 싶을 정도 수씩만 달려 들어오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자 현아는 더 분이 치밀어 주변을 향해 마구잡이로 배트를 휘둘러댔다. 그녀가 휘두른 배트에 걸린 귀신들은 온갖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뼈가 무너지는 둔탁한 소리, 살점을 두들기는 소리, 유리병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 등등. 어찌나 다양한 소리가 나는지 현아는 혹 자신이 귀신들의 땅에 와 있는 게 아니라 실은 자기 집 거실에서 이런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다.



 "누군가 했더니 당신이군요오."



 낯익은 목소리와 말씨다. 현아는 소리가 난 머리 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전날 이선에게서 심장을 빼앗아 갈기갈기 찢어놓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워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사랑하는 딸'은 청삽살개 적막 위에 올라탄 채 그녀를 여유롭게 내려 보고 있었다.



 현아는 벌컥 화를 냈다. 때맞춰 그녀에게 다가온 불운한 귀신 하나가 고스란히 제물이 되었다. 현아는 한 손으로만 그 귀신 얼굴을 붙잡더니, 온 몸을 회전하는 힘을 이용해 그것을 통째로 '사랑하는 딸'에게 날렸다.



 "크릉."



 '사랑하는 딸'이 뭐라 말하기 전에 삽살개 '적막'이 미리 앞서 그것을 처리했다. 자기 주인에게 직통으로 날아오는 귀신을 본 '적막'은 큰 입을 쩍 벌려서 귀신을 통째로 씹어버렸다. 현아가 던진 귀신은 곧 두 토막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료를 이런 식으로 대해도 좋아?"



 그것을 본 현아가 '사랑하는 딸'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딸'은 대수롭지 않단 듯 말했다.


 


"저희 귀신들 가운데 희생 없이 무언가 얻어지리라 기대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없죠오. 여전히 저는 다른 이들에게처럼 그를 사랑하고, 죽어서도 그는 저를 사랑해줄 거예요오."
 "어느 누구도 상처입지 않는 영원한 행복이라며?"



 현아가 반문하자, '사랑하는 딸'은 웃었다.



 "피 흘리지 않고 얻는 행복은 가치 없는 법이죠오."



 청삽살개 등 위에서 '사랑하는 딸'은 일어섰다. 손에는 전에는 못 보던 긴 창이 들려 있었다. 자신보다도 큰 그 창을 황홀하단 듯 쓰다듬던 그녀는, 적막이 어느새 지면에 내려섰단 걸 깨닫자 현아를 내려다보며 거만하게 말했다.



 "어때요, 계속하시겠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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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이번에 연재하는 <당신이 잠든 사이>는 약간 수위가 있는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위가 있다라고 해봐야 별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또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약간 걱정이 되네요;;


 따로 표시는 안하겠습니다. 15세 영화 정도라고 염두에 두시고 읽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럴 땐 그림이나 영상이 아니라 글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ㅠㅠ


 


 오늘은 좀 일찍 올려봅니다...짐에 손님이 오시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