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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당신이 잠든 사이

2010.10.06 09:10

윤주[尹主] 조회 수:244 추천:1

extra_vars1 #2. 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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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은 현아가 보는 바로 앞에서 일어났다.



 어느 밤, 잠을 자던 이선은 또다시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선이 나가자마자 곁에서 자고 있던 현아는 졸린 기색도 없이 바로 눈을 떴다.



 이선이 어쩔 수 없으리란 건 현아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잠든 사이, 인간들에게 부정당하고 버려진 그들의 죄가 흐느끼며 우는 소리는 오로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이선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아무리 이선이 신경 쓰지 않고 자려 한대도 그 섬뜩하고 짜증스럽도록 길게 이어지는 그 울음소리를 무시하고 편한 잠을 잘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선은 단 한 번도 그것을 일부러 외면하려 한 적 없지만.



 현아는 어떤가. 이선과 함께 이 세상에 남은 거의 유일무이한 신비였지만, 그녀조차도 인간의 죄로 더럽혀진 백이 우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녀 취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달빛은 가장 아름다운 것, 제 맘에 드는 것 위에만 잠시 동안 희미하게 어릴 뿐이니까.



 이선이 울음소리를 쫓는 동안 현아는 이선을 뒤쫓았다. 한밤중 시골 마을에서 저 기괴한 울음소리를 제외하곤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 건 이선과 현아, 이들 둘 때문이다. 세상에 남은 유일한 신비로서 두 사람은, 인간과 동물, 혹은 곤충과 같이 작은 미물조차도 감히 근처에 범접하는 걸 허락지 않았다. 그들 주변은 죽은 땅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풀과 꽃과 나무, 수십만 종 식물들은 무사했는데, 그녀들 자신이 무의식 중에 동물 아닌 이들 식물로부터 태어났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조금 걸어 이선은 기어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대 공간을 가득 채운 거대한 몸이 웅크린 채 떨며 흐느껴 울고 있다. 이선이 그것에 다가가는 걸 현아는 질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난날 이선에게 못되게 굴었던 기억이 못내 남았던 탓에 될 수 있으면 참아줄 생각이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도무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선은 또다시 거인을 안고 자장가를 불렀다. 현아는 짧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몰랐다. 감히 저 거인 이외에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무언가가 근처에 있으리라곤.


 



 아차 하는 사이에 어둠 속에서 낯선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선과 현아와 같은 신비들, 그러나 그녀들과 전혀 다른 하등한 족속들이 밭고랑 그늘에서, 전봇대 아래 그림자서, 나무그늘 아래서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현아가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그것들은 마치 수십 개 칼날처럼 변하여 거인에게로 쏟아지고 또 거인을 안은 이선에게로 쏟아졌다.



 "이선아!"



 현아가 소리쳤지만 이미 칼날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가까이 다가간 상태였다. 비명 소리와 함께 거신은 그 잔인한 칼날 아래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신기하게도, 거신을 품에 안았던 이선은 겉보기엔 아무 상처 없이 무사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일순간뿐으로, 현아가 그녀에게 다가가기 전 갑자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존재가 균형을 잃고 쓰러져가던 이선을 붙들어 품에 안았다.



 "그 손 놔!"



 이선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유일한 연인으로서 현아가 그것에 대고 외쳤다. 상대는 크르르르, 하고 낮은 목소리로 위협할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현아는 곧 상황을 확인하고 이해했다. 자신에게 으르렁대며 위협을 가하는 건, 이선과 그녀를 껴안은 한 명의 소녀를 뒤에서 떠받친 커다란 삽살개였다. 화려한 복식으로 온 몸을 치장한 소녀, '사랑하는 딸' 본인은 삽살개 품 안에서 이선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일이이 너무우 쉽게에 풀렸네요오~"



 마치 현아를 도발하려는 것처럼 '사랑하는 딸'은 느릿하게 말을 뱉었다. 그녀 품에 안긴 이선은 정신은 잃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에 다소 충격을 받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현아는, 두 사람을 보호하는 커다란 삽살개 때문에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조금 떨어져 이만 갈았다.



 이선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딸'은 무언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좀 더 드라마틱하안, 그런 상황이 일어날 주울 알았어요오. 그런 거어, 있잖아요오. 다치지 않게 하려고 감싸준달지이, 대신 희생하려 든달지이……."
 "너희가 좀만 천천히 움직였다면 당연히 그랬을 거야."



 이선이 다소 가시 돋친 투로 말하자, '사랑하는 딸'은 배시시 웃었다.



 "그러니까아, 어쨌거나 막을 생각은 있었다는 거죠오? 설령 생명이 위협당하는 한이 있더라도오."
 "그래."
 "그럼 안돼죠오. 우리를 방해하면 안되요오. 모두 행복해지려고 하는 일인데에, 그걸 가로막으면 내 사랑스런 가족들이 곤란해 하지 않겠어요오?"



 온갖 그림자들에 반쯤 파묻힌 귀신들을 힐끔 쳐다보며 '사랑하는 딸'이 말했다. 이선은 현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현아는 이제 거의 울먹이기 직전이었고, 분노를 삭이지 못해 씩씩대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이 조금만 더 그녀를 자극한다면, 현아는 아마 무작정 그들에게 달려들어 한바탕 사투를 벌이리라.



 '사랑하는 딸'은 곧 결정을 내렸다. 푹, 하고 마치 예리한 칼날이 살점을 파고드는 느낌에 이선은 거의 혼절할 뻔했다. 그녀는 겨우 약간 남은 정신줄을 붙들고 자신과 '사랑하는 딸', 현아를 보았다. 현아는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이었다. '사랑하는 딸'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본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리고 자신은, '사랑하는 딸'이 품에 찔러넣은 그녀 손 탓에 심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



 '사랑하는 딸'은 이선에게 찔러 넣은 손으로 그녀 안을 더듬어 심장을 찾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그것, 마지막 삶의 보루인양 생동하는 장기를 손에 붙든 순간 그녀는 주저 없이 쥐어든 심장을 잡아떼었다.



 "이선아!"



 현아가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바닥을 박차고 두 사람에에게로 달려 나갔다. 거대한 개나 그림자 틈에 숨은 귀신들, 이런 것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원래 그녀의 것인 이선, 또 그것을 빼앗아간 '사랑하는 딸' 이 두 사람만이 극도로 좁아진 시선 안에 들어왔다.



 귀신들이 달려 나와 현아를 가로막았다. 현아는 귀찮다는 듯 그것들을 쳐내고 밀어냈지만 워낙 수가 많은 탓에 금세 따돌리고 빠져나오진 못했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딸'은 이선에게서 뽑아낸 심장을 경탄에 차서 바라보고는, 두 손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그러기에 앞서 땅바닥에 내팽겨쳐진 이선은 피를 흘리며 몸을 심하게 떨었다.



 "아쉽네요오. 당신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에."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사랑하는 딸'은 양 손에서 그림자 조각들이 칼날처럼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칼날 속에서 심장은 버티지 못하고 산산 조각나 사방에 튀고 흩어졌다. 이선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현아는 말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과 고함을 질러댔다. '사랑하는 딸'은 만족스런 듯 깔깔댔다.



 "이제 가볼 때네요오. 잘 놀았어요오, 덕분에."



 삽살개 '적막' 등에 올라탄 '사랑하는 딸'이 하늘로 떠올라 사라지자, 현아를 가로막던 귀신들도 어느 순간 일제히 종적을 감췄다. 그것들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다투던 현아는 갑자기 떠받치던 것들이 사라지자 발을 헛디뎌 꼴사납게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곧바로 이선부터 챙겼다.



 "이선아, 너 괜찮아? 야! 이선아!"



 심장을 잃었어도 이선은 간단히 죽어버리진 않았다. 충격에서 벗어난 것인지 숨은 고르게 쉬고 몸이 떨던 것도 상당히 가라앉아 있다. 심지어 두 눈을 깜빡이기까지 했다. 그녀가 인간이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현아는 금세 이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장을 빼앗기고 찢겨진 순간 이선은 그녀 얼굴에서 모든 표정을 지웠다. 손발은 기계적으로, 그러나 통제 불능인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여서 스스로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눈동자에선 반짝이던 빛이 사라졌다. 태양이 그 빛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아는 잠시 이선을 안고 흐느꼈다. 그러나 곧 울음을 그치고 이선을 부축해 함께 일어났다.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현아는 주먹을 꾹 쥐었다. 반드시 복수하고 말겠어. '사랑하는 딸' 얼굴을 떠올리며 현아는 분을 삭이고 또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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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정 지나 겨우 한 편 또 투척.


 다른 일 하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다들 좋은 꿈 꾸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