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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당신이 잠든 사이

2010.10.05 07:08

윤주[尹主] 조회 수:240 추천:1

extra_vars1 #2. 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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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군'이라 함은 바로 현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추한 것에 대한 지독한 혐오, 그리고 이소(日)에게만 고스란히 바치는 무한한 동경과 변함없는 사랑. 현아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스(月) 계통 중에서도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완벽하다는 것은 완고하게 돌려 말하길 좋아하는 그네들식 표현으로, 실은 눈에 띄게 극단적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자랑스럽진 않지만 더할 나위 없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 별명을 현아는 사랑하면서 또한 증오했다. 이선을 사랑할 때는 스스로 폭군으로 칭했지만, 좀 전처럼 대단히 혐오스러운 것을 보며 무시하고 끔찍이 여길 때면 폭군이라 불리길 원치 않았다. 길을 걷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서슴없이 꺾어다 이선과 함께 쓰는 더블베드 머리맡 창가에 놓으며 '이것은 폭군의 작품'이라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었지만, 누군가를 두들기고 윽박지르고 집어던질 때 상대방이 자신을 폭군이라 부르면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혀를 뽑아 내던져 버렸다. 마치 지킬 박사가 하이드를 싫어하듯, 모순투성이 자신을 현아는 싫어하면서도 어김없이 모순을 일으켰다. 현아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이 현아에게 취향으로 여겨졌지만, 그 중에서도 현아가 가장 사랑하는 건 단연 이선이었다.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으며 여섯 번 키스를 해주는 게 연인이라면, 현아와 이선은 충분히 연인이 되고도 남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잠자리에 누웠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눈뜨고, 그리고 그날 하루 몇 번을 더 나눌지 모를 진한 키스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현아는 이선과 정확히 하루 24시간을 함께 보냈다. 세 끼 식사, 잠자리, 잡다한 집안일, 목욕,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조차 둘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특별히 이선이 마음을 쓰고 신경을 기울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마치 그림자나 공기, 그보다는 손발 그 자체처럼 현아는 이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며 무엇이든 같이 하려 달려들었다. 어느 누구라도 두 사람을 말릴 수도, 떨어트릴 수도 없었다. 이소를 지키는 게 이스의 역할이니 어찌 보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선과 같은 입장이라면 누구나 현아가 너무 지나치게 달라붙어 불편하단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선은 그 모든 불편함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현아를 사랑했다. 소위 말하는, '눈에 콩깍지가 낀 상태'인데 이쯤에서 슬슬 두 사람 관계를 다음 단계로 진행시켜주는 것도 괜찮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연인에서 다음 단계가 뭐겠어? 당연히 행복한 결혼이지.


 


 결혼에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주례자, 하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한 고난.



 이선이 달래는, 현아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 거신은 한 번 없애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생겨난다. 당연하다. 인간이 있는 한 그들이 저지르는 죄도 없어지지 않을 테고, 스스로 죄를 납득하지 못해 도려내 버리는 더럽혀진 고름 덩어리들도 완전히 사라질 수 없을 테니까. 이선과 현아가 한차례 소란을 피운 바로 그 직후에도, 인간이 내버린 죄는 서서히 한데 뭉쳐 커가며 노인도, 청년도, 어린 아이도 아닌 거인이 되어갔다. 그것을 멀찌감치 서서 불쾌한 듯 쳐다보는 건, 이선이나 현아 외 또 다른 여자였다.



 "대체 뭐죠오, 저 이도저도 아닌 건."



 마치 중국 궁정 복식을 보는 듯 붉고 화려한 옷차림, 작은 유리종으로 엮은 발 따위 몸에 지니고 걸친 화려한 장식들. 많이 봐줘도 16세 미만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에게 이토록 과분할 정도 치장이 되어 있는 건 그녀가 가진 세 가지 칭호 탓이다. '그림자의 왕', '귀신들의 군주', 그리고 그 어떤 칭호보다도 흔히 쓰고 또 그녀 역시 가장 좋아하는 호칭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딸'은 못마땅한 듯 점점 커가는 거신을 바라보며, 자기가 쓰다듬는 커다란 삽살개에게 말을 걸었다.



 "저건 우리에게 속한 것도, 저쪽에 속한 것도 아니네요오. 그냥 양쪽 사이에 걸쳐 있을 뿐이죠오. 말이라도 통해서 이쪽으로 완전히 건너오기나 하느냐며언, 그건 또 아니란 말예요오."



 앉은 채로도 이미 '사랑하는 딸'보다 훨씬 커다란 청삽살개 '적막'은 붉은 혀를 빼고 헥헥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딸'은 마치 '적막'이 매우 가까운 말동무인 양 그를 대했다.



 "있죠오, 적막. 난 저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요오. 저 있어선 안 될 것은 당장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던져 버려도 시원치 않을 것 같단 말예요오."



 헥헥, 적막은 바보처럼 웃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알아요오. 방해할 사람이 하나 있죠오. 제가 저걸 찢어발기려 하면, 틀림없이 그녀가 저희를 가로막을 거예요오."



 '사랑하는 딸'은 거기서, 말을 잠시 멈추곤 씨익 웃었다. 순진무구하지만 어딘지 소름끼치게 하는 그런 미소였다.



 "그러면 그 가로막는 여자까지도,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사방에 흩뿌려버리면 어때요오?"



 멍, 적막이 짧게 한 번 짖었다. 아니, 짖지 않은 걸까. 겉으로 보기엔 적막이, 입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어쨌거나 '사랑하는 딸'은 그 대답에 만족한 듯 보였다.



 "그래요, 그러엄. 저 괴상망측한 것도, 그 여자도 전부 없애버리는 거예요오. 상처입지 않는, 영원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에!"



 '사랑하는 딸'이 뒤로 돌아 그의 영토를 보았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림자의 땅, '사랑하는 딸' 자신이, 여기 어느 누구도 과거나 잘못 때문에 상처입지 않게 된다는 기적과도 같은 지표 위를 끝도 없이 수많은 귀신들이 디디고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굶주림도 목마름도 모르는 귀신들의 무리는 환호는커녕 웃지도, 손을 흔들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사랑하는 딸' 눈에는 어느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든든한 자기 팬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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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매일 연재 들어갑니다...끝까지 완성해버렸기 때문에;;


 저번 달까지만 해도 글 쓰면 봐줄 사람이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보여줄 사람이 없네요..덕분에 이번 글은 다소 과격하게 나갈수도 있습니다. 양해바라옵고;;


 


 그건 그렇고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네요? 이번 회부터 부제가 바뀌었습니다. 1, 2회는 (#1. 이선)이었고, 3회는 (#2. 현아)로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부제가 바뀔 거에요. 평소 쓰는 글에 비해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파트는 일곱 개나 만들었거든요;; 이번에 실험해보려고 적용해보는 게 있어서, 그것 때문에 챕터 구분이 좀 잦습니다. 읽는 데는 크게 신경 안쓰셔도 되리라 믿지만 불편하실까봐, 양해해 달라는 얘기 먼저 해드리고 싶네요^^


 


 왠지 이번 화에선 '양해의 말'만 자꾸 드리게 되는 것같습니다. 어쨌건 즐겁게 쓴 글이니, 좀 더 많은 분들께 재미있게 전해졌으면 좋겠는데요. 요사이는 다들 바쁘신 듯 ㅠㅠ


 


 횡설수설 줄이고 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