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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Fly Away [단편]

2005.05.19 09:39

L.V.Verdinihi 조회 수: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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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Away

오늘은 정말로 안 될 것 같았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어머니의 격앙된 어조는 내가 가진 모처럼 만의 외박의 꿈을 단념하도록 하는 데 아주 효과 만점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더 이상 이렇게 어지러운 거리를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굳이 내가 목숨 걸고(까지의 표현은 과장되었지만)친구들을 따라 갈 필요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시내의 한 커다란 학원에서 거의 부모님의 권유에 떠밀려 세사긴 동안이나 그 명강의라는 걸 듣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명강의라도 학생이 하기 싫으면 그저 자장가에 지나지 않을 뿐이어서, 거의 반은 졸다시피 하면서 겨우겨우 끝나는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학원을 빠져나오던 중, 우연히도 나는 이 친구들 무리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버스가 거의 끊겨가는 시간인 지금에 도대체 이 번잡한 시내에서 무엇을 하려 했느냐고, 의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으면 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내가 참 도덕적인 사람임을 믿는 터이고, 어차피 이상한 부류의 인간이었다면 나는 이들을 친구로 가까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나 내 친구들이나, 단지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어쨌든, 나를 포함해 네댓 명이 된 우리 일행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한 친구 집에 우르르 몰려가 하룻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니까,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가 씻고 나와 교회로 바로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도 또한, 이 일상적이지 않은 일, 줄여서 약간의 일탈 비슷한 것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왠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고, 집에 전화를 한 순간, 나는 예의 그 격앙된 어조를 들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내가 핸드폰을 열어 집으로 전화를 했던 것은, 친구들에게서 어떤 미묘한 반발심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 데도, 그냥 지나쳐 갔으면 좋았을 걸, 좋은 말로 하자면 어쩌다 그냥 은근슬쩍 한 무리에 적당히 편승해 버리는 나의 태도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리라. 그것은 내가 통화를 마치고, 아무래도 안 되겠노라고 이야기했을 때에 비로소 확실해졌다. ‘그래? 그럼 잘 가라’고 이야기하던 그 표정. 그걸 보아 하니 마치 내가 없어도 자기들이 노는 데에는 상관이 없는, 차라리 원래 멤버대로니까 그리 신경 쓰일 일은 아니므로, 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하는 표정이란. 그 말을 꺼내는 것이 내 친구들에겐 아주 쉬운 일이었으리라, 마치 오래 된 포스트잇 노트를 붙어 있던 벽에서 떼어내듯이.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추운 날씨에 오지도 않을 거 같은 버스 막차를 기다리며 이곳 정류장에 앉아 있게 된 것이었다. 아마 이 거리에 청바지에 갈색 목티, 그리고 검은 코트를 입고 책이 꽤 많이 들어 덕분에 많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리라.
마침내 버스 한 대가 정거장에 왔다. 그러나 나는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비현동, 비현동 가요?”

하는 말에 기사는 마치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차 시간 끝났으니 택시나 하나 잡아타고 가라는 다소 점잖은 충고까지 하고, 그대로 차를 달려 종점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도 모른 채로 가만히 있다가, 문득 시계를 보고 아직 차가 끊길 시간인 11시가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그 기사의 말에 어떤 묘한 반발심 같은 것이 생겨, 그 자리에 죽치고 앉아 적어도 11시 10분까지는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럼 혹시나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5분가량이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는 전화일 것으로 생각했더니, 알고 보니 집에서 온 전화였다.

“야, 너 왜 아직도 안 들어와?!”

예의 그, 격앙된 어조였다.

“아, 지금 가려고 하고 있다니까…….”
“너 지금 어디야?”
“아까 이야기 했잖아, 학원 근처라고.”

그러더니 어머니는, 막 공부해야 할 때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둥, 니 애비도 지금 늦게 들어오는 데 니 애비나 너나 똑같다는 둥, 그 긴긴 잔소리를 또 토씨하나 안 틀리고 반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야 마땅히 할 말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저 잠시 수화기에서 귀를 떼고 있다가 적절한 때에 엉, 엉, 하며 대답만 하면 의외로 금세 끝날 일이므로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불현듯 어머니가 아니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께서 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많으셔서 이러는 거겠지 하고 늘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스리슬쩍 밀려들어오는 이 아니꼬움을 참을 수 없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그것은 마치 불처럼 다른 것에도 번져, 아까 그 친구들도, 기사 아저씨도, 심지어 그 학원에서 멋들어진 명강의를 들려준 학원 강사도 아니꼬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버스 몇 대가 더 지나쳤지만, 나는 이미 그 버스를 잡아 봤자 아까와 같은 상황에 놓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아니꼬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참고 기다렸다. 그러나 결국 원하는 버스는 오지 않은 채로 11시 10분은 허무히 지나가버렸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영원히 그곳에서 오지도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나는 그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안 순간 바로 택시를 한  대 골라잡았다.
택시 안은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네온사인의 빛을 연상하게 하는 파아란 빛에, 안에서는 흥겨운 테크노 댄스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나의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리는 데 한 몫을 해 낸 듯 싶었다.

“비현동, 날개아파트요.”
“예~.”

택시기사가 택시 안과 딱 맞는 즐거운 듯한 말투로, 그러나 누가 보아도 꾸며진 것이 역력한, 정말로 택시 안과 딱 들어맞는 분위기로 대답하였다.

“학생은 근데, 뭐하다 거기 서 있었던 거예요? 버스 다 끊겼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저 택시기사에게, 버스기사가 아니꼽고, 아까 그 친구들이 아니꼽고, 학원 강사가 아니꼽고, 부모님이 아니꼽고, 시지어는 이러는 나까지도 아니꼬워서 죽치고 앉아있었노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한 들 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저 얼버무리고 넘기려 했다.

“학원에서 공부하다 왔나?”

그러나 택시기사는 굳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이런 저런 말로 얼버무렸다.

“그럼, 여자친구라도 기다린 건가?”
이쯤 되자 나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뭐 그럴 여유라도 있나요.”
“왜요, 공부하느라고? 아니면 돈이 없어서?”
“에,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 말에 나는, 이상하게도 웃음 이외에 마땅히 택시기사에게 할 대답을 찾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차 안이 조금은 화사해지는 듯 했다.

“아……, 하긴. 여자친구 없게 생겼네.”

그 말에 나는 웃음을 멈췄다. 이상하게 또 그 말이 아니꼬웠다. 왜냐하면, 그 말은 완전히 틀렸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얼마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왜 그랬는지를 이야기하자면 이 문단이 너무 길어질 것이다. 다만, 나는 너무나도 일상화된 그녀가 지겨웠고, 그녀는 너무 튀려고만 하는 내가 이상했을 뿐이려나. 하긴 그랬다. 난 어딜 가나 별종이란 소리를 듣지 않고는 못 배겼다. 나 자신이 일상화를 거부하면서 그런 꼬리표가 붙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턴가 그 꼬리표가 일상화되면서 그것을 다시 거부하기 위해 나는 처음의 일상화에 어쩔 수 없이 편승하면서도 속으로는 그것이 영 아니꼬웠던 것이다.
어쨌든 아직도 그 일은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후회밖에 안 남는 기억, 그것을 한번 들춰내고 나니 정말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속에는 아주 조금의 눈물이 섞여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들춰내려고 하니, 기분이 나빴다. 더 이상 들춰보기가 싫을 정도로.
내 주변을 감싸는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감지했는지 택시기사는,

“내 차에 들어오면 음악들 들어야 하지”
라며, 오디오 버튼을 눌러 곡을 바꾸었고 소리도 더 크게 틀어놓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 나의 귀를 자극하든지간에 그것은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 음악마저도 아니꼬웠다. 하지만 좁은 차 안에서 달리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그것을 듣고 있었다. 얼굴로는 애써 즐거운 표정을 만들어 보이고, 일부러 발로 박자까지 맞춰가면서. 노래는 일본어로 되어 있었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 아저씨가 저걸 알아들을 수 있으려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러다가문득, 귓가에 ‘Fly away’라는 말이 들려왔다. 후렴구 비슷한 거였을까. 오디오에서는 계속해서, ‘Fly away’라는 가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말을 곱씹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이상하게 이 ‘Fly away’라는 말이 귀에 걸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가 나오다가도, ‘Fly away’라는 후렴구가 반복되고, 그 말은 계속해서 내 귀에 메아리처럼 와닿는 것이었다.

“학생은 어느 학교 다녀요?”

갑자기 소리가 줄어들더니 택시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Fly away’라는 말이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된 것이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질문에는 대답을 해야 했다.

“전일고요.”
“어디?”
“전일고라구요.”

모두들 그랬다. 전일고라고 하면 한 번씩 물어보게 마련이었다. 심하면 그게 어디 있는 학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만큼 내가 그 학교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할 정도로.

“전일고라, 아, 전일고 말이지.”

아저씨는 다행히도 전일고를 아는 눈치였다.

“몇학년인데?”
“고2요.”
“흠, 전일고 고2라…… 담배는 피우나?”
“……네?”

분명히 택시기사에게서 나온 그 말은 의문문이었지만, 말하는 어투는 확실히 이 놈도 전일고라면 담배를 피우겠군, 하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뻔했다.

“술은 할 줄 아나? 내가 말이지, 중2때부터 술 담배를 입에 대가지고,니 나이때는 많이 마시면 소주 두병쯤……?”

그러나 뒤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아니꼬워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믿는 대로 보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귀신을 믿으면 귀신이 보이고, 진리를 믿으면 진리가 보인다더라는. 그 말 덕분에 가뜩이나 심란하던 내 마음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된 기분이었다.

“뭐, 꼭 그런 사람만 있으라는 법은 없지요.”

나는 그런 말로 나를 둘러댔다. 택시기사가 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해서 그 이야기를 한 번 더 해야 했다.
결국 다시 분위기는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대뜸 그런 식으로 나온 택시기사 아저씨의 잘못도 있었지만, 나 또한 그런 대답을 하고 나서 왠지 모를 후회를 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왜 그런 식의 대답을 했을까. 그저 안 피웁니다, 안 마십니다, 등등의 대답을 했더라면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진행되었으리라. 그러나 이상하게 나는 그 대답을 하고 싶었다.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아까부터 자꾸만 앞만을 쳐다보면서 운전을 하고 있는 저 택시기사 분께 무어라 소리소리 쳐가며 말하고 싶었다. 아까 여자친구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였던가, 그때부터 나는 나의 마음속과 나의 겉모습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겉에서 보기에는 누구도 내가 이런 아니꼬움 들을 가지고 있을 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꼬웠다. 이제는 마음속에 그것들이 꽉 들어차서, 그것을 내뱉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의 얼굴 가죽은 아직도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뒤로 택시기사는 나를 완전 모범생으로 알았는지, 성적이 어떤지, 부모님은 어떤지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아까 어머니의 통화 때처럼 거의 수화기를 내 귀에서 떼어 놓은 듯이 네, 네, 하는 대답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고선 나는 다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어, 다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도 ‘Fly away’라는 가사가 끝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대체 몇분 동안이나 계속된 것이었을까. 그러나 저 ‘Fly away’라는 말이 아까 전부터 나에게 주는 무언가는 택시기사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자꾸만 머릿속에 걸려 왔다.
바깥을 바라보았다. 온도차가 있어서 그런지 이슬이 맺혀 뿌연 창가였다. 나는 창문을 내렸다. 조금 춥더라도 상쾌한 바깥 공기를 들이쉬고 싶었다. ‘Fly away’라는 가사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그걸 계속 듣고 있노라니, 결국 나는 눈을 감고 확실히 이상한, 그러나 상쾌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매고 있는 가방이 갑자기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의 그것과도 같은, 날 수 있는 날개로 변하는 것이다. 어깨가 한결 가볍다. 나는 기왕 창문을 내린 김에 나는 날아서 그 위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Fly away’라는 가사대로다. 그러고서 나는 누구도 해 보지 않았던 경쾌한 비행을 혼자서 해 보는 것이다. 아무도 올려다보지 않을, 혹시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이지도 않을 하늘에서. 바람이 나의 몸을 기분 좋게 스쳐 지나가고, 나는 창공을 유유히 떠다니며, 이 거리에서 황급히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실컷 웃는 것이다. 내 마음의 온갖 아니꼬움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고서 말이다. 택시기사는 그걸 보고 멍히 서서, 달랑 5000원 가량의 택시값쯤은 생각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선 무얼 할까.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진심을 내뱉고 빨리 올라가 버릴 것이다. 아무래도 부끄러우니까. 택시기사이든 어머니이든 친구들이든 학원 강사이든, 혹은 여자친구이든지간에 그것은 상관이 없다. 나는 날개를 얻음으로서 자유를 얻고, 모든 걸 정말로 ‘Fly away’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어딘가 모를 곳으로 ‘Fly away’하는 것이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내 상상이 끝났다는 것을 투덜대기도 전에, 요금을 내라는 말이 들려왔다. 대충 5000원 가량의 택시비가 나왔고, 나는 지갑에서 무성의하게 돈을 꺼내 들고 대충 거스름돈을 받았다.

“잘 가요, 학생.”

내리면서, 나는 택시기사가 나에게 인사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서 어떠한 정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차에 탔을 때와 같은 그런 꾸며진 듯한, 그리고 일상이 되어버린 인사.
과연 택시기사는 내가 내린 뒤에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일까? 아니 모르겠다. 아마 잊어버렸을 것이다. 잊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택시에서 흐르는 노래가 점점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귀에서는 아직도 택시를 타고 있었을 때의 그 ‘Fly away’라는 가사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사가 귀에 맴돌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서 나는 다시 집을 향한 발걸음을 걷고 있었다.
기분이 무거웠다. 마치 내가 짊어진 가방 속에 누군가 계속해서 책을 집어넣는 느낌이 들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가방이 앞뒤로 움직이며 나를 치고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눈에 선했다. 부모님은 분명히 나의 행위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다신 그러지 말라는,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를 하겠지. 그것이 다시 아니꼬웠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Fly-away해 버릴까.”

그러고 싶었다. 나는 택시 안에서 보았던 그 꿈같은 상상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언제나 바라왔던 상상이었다.
언젠가 나는 이 세상이 거대한 기계로 변해버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각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각자 정해진 자리로 가고선, 톱니바퀴로 변해서 기계를 돌리는 것이다, 서로 맞물려 가면서. 나에게도 그 자리가 있었고, 자그마한 톱니바퀴가 되었다. 엄청나게 빨리 돌아가는 바람에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나는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몸에는 이미 나사가 있었다. 누군가 나사를 돌려주기 전까지는 내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싫었다. 차라리 내가 기계 자체가 되고 싶다면 되었지 작은 부품이 무엇인가? 그래서 남들에게 없는 날개를 달고, 남들이 상상하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고, 아까부터 징징대면서 상상까지 그럴듯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의 어깻죽지에 갑자기 날개가 달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가방을 멘 나는 너무나도 작았다. 이제는 아주 가방을 땅바닥에 질질질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길을 걷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큰길가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 멀었을까.
그러다가 문득, 마음을 가볍게 하면 마음이라도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묶여 있던 멍에를 하나씩 풀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꼬움을 풀려고 하는 순간 나는 다시 화가 난 것이었다. 이건 이렇게 넘어갈 수도 있다, 라고 내가 말하면, 그 다음 생각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매듭을 풀려고 하면 할수록 다음 단계의 매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꼬운 것은 나이지, 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내가 계속해서 해답을 찾고 그것에 제동을 걸고 하는 순간, 모든 점이 나를 향해 모여 있었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점은 나를 향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내뱉고 있었다. 이러저러한 자극이 들어오면 그 점은 다시 또 다른 아니꼬움의 매듭을 묶고 나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매듭을 푸는 나이거나 또 다른 매듭을 바라보며 이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나도 아니었다. 매듭을 짓는 나였다.
결국 내가 조금이라도 너그러워지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전차의 묶인 줄을 무섭게 쏘아보는 알렉산드로스인 마냥 칼을 들었다.
그리고 그 칼을, 줄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줄이 풀리고, 전차는 마치 그 위에 파에톤이라도 태운 마냥 하늘로 날아갔다. 정말 ‘Fly away’해버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까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느꼈던, 그리고 방금 전까지 걸어가고 있었던 그것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나의 걸음이 빨라졌던 것을 나는 느꼈다. 아니, 나의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날아가 버린, 아니, ‘Fly away’해 버린 듯 한 기분이 들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차라리 그야말로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서 나의 걸음이 빠른 것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가볍고 경쾌한 듯한, 그 이면에는 여전히 찝찌름한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 아니꼬움을 만들어내는 점과도 같은 나란, 어쩌면 나 자신이 나 자신임을 확인하게 만드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내가 풀려고 했던 매듭은 나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는 대신, 물렁한 나 자신의 형태를 유지시켜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나는 내 마음속의 무거운 쇳덩어리를 놓아 보내는 대신 나 자신이 주르륵 하고 녹아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 아니꼬움이 ‘Fly away’하는 대신 나는 그 자리에 무언가 바깥바람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나 자신을 무척이나 썰렁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쩌면, 조금 세상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대신 나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나는, 세상을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가는 대신, 나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켰던 그것을 또한 ‘Fly away’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럼으로써 나는 더더욱 ‘Fly away’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패러독스로군’하며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결국 이 지겨운 상상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상상을 하는 순간 나는 집 앞에 다다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엘리베이터 앞은 조용했다. 나는 조용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내 집이 위치한 13층을 누르고, 다시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 무언가 나를 살며시 누르는 듯 한 느낌이 들다가, 다시 그것에 몸이 익숙해진 듯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13층에 다다른 순간 나는 몸이 아주 살짝 붕 뜨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나는 나가서 문 옆에 있는 벨을 누를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벨을 누르기 위해 문 앞에 다가선 순간 멈칫했다. 무언가 새로운 상상이 펼쳐졌다. 나의 아니꼬움을 잔뜩 싣고 떠나가 버린 전차는 과연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부모님? 친구들? 혹은 택시기사? 나의 예전 여자친구? 아니면 명강의를 내뱉던 그 강사 분? 아니, 그건 그렇고, 전차는 정말로 떠나가긴 한 거였을까. 나는 문득, 정작 풀어야 할 것은 그 전차가 아니라 전차 대신에 묶여 있는 나 자신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찔하였다. 나는 저 하늘 높이 ‘Fly away’해 버린 전차를 보고는 잠깐 후련했을 따름이다. 다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뭘 어째야 하는 걸까.

“알 게 뭐야.”

나는 혼잣말인지 한숨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벨을 눌렀다.
문득 내가 가방을 아직도 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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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입니다. 본인은 순수문학을 지향하기 때문에.
판타지를 쓸 지 안 쓸 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접은 지 오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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