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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물총새 공주

2005.05.21 21:25

원자리 조회 수:199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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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 한 마리가 살았다. 아니 물총새가 아니라 공주였다. 물총새 무리들 중 아니라 그 물총새는 원래 인간세계의 공주였다. 그러나 마법에 걸렸는지 아니면 저주를 받았는지 그 물총새는 어느순간부터 물총새로 살게 되었다.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름답고 슬픈 저주에 걸린 물총새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총새는 오늘도 물가에서 물고기를 낚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은 은구슬같은 물방울을 튀기며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물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물총새 공주에게는 목표로 잡은 물고기만이 보일 뿐이었다. 드디어 물총새 공주는 힘차게 날아올라 수직으로 자신의 부리로 물고기를 덮쳤다. 그리고 펄떡펄떡 뛰는 은빛 비늘의 신선한 물고기를 낚았다. 바위에 한두번 부딫혀 기절시킨 후 한번에 삼키는 그 물고기 맛은(한번에 삼키는데 어떻게 맛을 알 수 있느냐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정말 매혹적이었다. 궁궐에서 먹어본 어떤 회도 이렇게 신선한 맛을 낼 순 없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천연의 맛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총새공주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행운으로 느꼈다.

한편 어느 나라의 왕자는 허름한 성을 향해 말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곳에 몇백년동안 공주가 잠들어 있다는 이유때문이었다. 괴팍한 왕자는 가시덩굴에 찔리고 조약돌에 채이는 말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채찍으로 말을 때리기만 했다. 빨리 공주를 구하고 그 성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드디어 왕자는 성에 도착했다. 성에는 공주를 지키려고 온갖 괴물들이 왕자를 방해했다. 이 괴물들도 마법사가 풀어놓은 것인지 사람들의 나쁜 마음 때문에 생겨 이곳으로 모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그들은 오랜만에 닥쳐들어온 침입자에 놀랐고 왕자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용감한 왕자는 (비록 성정은 괴팍할지라도)그들을 모두 죽여서 이겼다. 그리고는 공주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공주를 만나지 못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공주의 방으로 들어가는 길은 괴물들을 맞아 싸우는것보다 더 힘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였기 때문이다.

그때 물총새 공주는 자신을 좋아하는 어떤 수컷 물총새에게 온갖 구애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그 물총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언젠가 왕자가 자신을 구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읽었던 책속의 동화도 그렇고 언제나 할머니나 어머니가 자신을 무릎에 앉혀 놓고 옛날 얘기를 하면 항상 똑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위험에 처하든 공주는 왕자를 기다려야 했고 그 왕자가 자신을 구해주면 왕자와 결혼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 운명이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어떤 것에도 저항하지 않고 어려움에 처하거나 마법에 걸린 공주들은 그런 운명에 따르면 되는 것이었다. 물총새 공주또한 그랬다. 그래서 수컷 물총새를 피해 멀리 날아갔다.

왕자는 드디어 미로를 통과했다.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성격은 괴팍했지만) 한쪽 손을 벽에 대고 계속 지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했다. 왠지 주변의 사물들이 자신이 봤던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미로는 통과할 수 없는 이상한 미로였다. 이 성은 공주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로를 이중으로 쳐놓았던 것이다. 밖에 있는 미로의 출구는 입구로 연결되어 있었고 공주에게 가는 방은 또다른 미로가 얽혀져 있는 이상한 구조였다. 왕자는 머릿속으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포기하려던 찰나 머리를 썼다. 왕자는 말은 미로 입구에 묶어두고 미로의 벽을 타고 올라갔다. 오직 공주가 갇힌 탑끝의 방을 쳐다보면서 그는 계속 미로를 타고 넘고 있었다.

한편 물총새 공주는 또 수컷 물총새의 구애를 받고 있었다. 수컷 물총새는 자신을 따라 이 먼곳까지 따라 온 것이다. 이곳에는 맑은 물도 없고 먹이도 부족하고 공기도 탁했다. 공주는 수컷 물총새를 피해서 사람들이 사는 도시와 시골마을을 지나 어떤 허름한 성 중턱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왜 자신이 여기로 왔는지는 몰랐다. 단지 어떤 이끌림에 의해 막연히 날아온 것이 이런 황폐한 곳이었다. 물총새 공주는 자신때문이 이런 곳까지 따라온 수컷 물총새에게 미안했다. 결국 물총새 공주는 수컷 물총새를 받아들이기로 허락했고 그들은 짝짓기를 했다. 나중에 물총새 공주가 바라보니 (물총새의 안목에서 봤을때) 너무 멋지고 잘생기고 예의가 바르고 게다가 아름다웠다. 짝짓기를 끝내고 그는 자신이 물총새 세계의 왕자라고 하며 공주를 구하기 위해 결혼했다고 말했다. 물총새 공주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왕자는 왕자인데 분명 물총새 왕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편 공주를 구하기 위해 미로를 넘던 왕자는 외곽에 있는 미로를 다 넘고 쉬고 있었다. 너무 지친 마음에 그는 짜증이 났다. 공주 하나를 구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왕자라고 다 같은 왕자가 아니었다. 큰형님은 당연히 나라를 물려받기 위해 궁에 남아있지만 둘째부터는 제대로 된 직책도 없이 내쫓겨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신세인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면 다행이었다. 왕위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큰형님이 왕위에 오르면 그 형제들은 반역죄로 몰려 죽임을 당하기 일쑤였다. 온갖 끔찍한 경험들이 왕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 눈앞에 보인 것은 다정해 보이는 물총새 부부였다. 왕자는 자신의 신세가 물총새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단지 주변에 보이는 짝이 마음에 들면 구애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었다.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서 성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공주를 구해야 하는 자신과는 딴판이었다. 갑자기 왕자는 부아가 났는지 자신이 어깨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물총새 중 한 마리의 가슴에 화살을 정확히 명중했다. 그리고는 툭툭 털고 일어나 또다른 미로의 입구로 들어갔다.

한편 물총새 공주는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맞은 물총새 왕자 때문에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물총새 왕자는 자신을 아껴주고 게다가 자기 대신 화살을 맞은 것이었다. 이런 물총새 왕자를 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억센 발로 왕자를 데리고 숲으로 갈 참이었다. 그러나 왕자의 몸에 꽃힌 화살이 너무 무거웠다. 물총새 왕자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한마디 못하고 죽어버렸다. 공주는 더더욱 슬프게 울었다. 그러다 물총새 공주는 자신을 부르는 어떤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 어떤 이끌림에 의해 물총새 공주는 죽은 물총새 왕자를 버려두고 구슬프게 울며 성쪽으로 날아갔다.

그때 왕자는 미로를 다 통과해서 공주의 방에 도달했다. 이 미로는 정상적인 미로였던 것이다. 왕자는 방문을 벌컥 열고 공주가 누워있는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왕자는 공주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주의 얼굴은 이미 미라가 된 상태였다. 하긴 몇백년동안 이곳에 있었다 하니 정상적인 얼굴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일게다. 창밖에는 어떤 물총새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푸른 색의 깃색이 아름다웠다. 울음소리 또한 너무 구슬프고 아름다웠다. 왕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 물총새와 공주의 몰골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마법이 풀린다지만 이런 공주보다 저 물총새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는 물총새가 우는 소리가 마치 ‘마법을 풀어주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문득 왕자는 저 물총새도 마법에 걸린 공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라보다는 저 물총새에게 키스를 하는 편이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침 물총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왕자는 물총새에게 키스를 하려고 다가가다가 미라가 된 공주의 시신을 보고 갑자기 두려움인지 끔찍함인지를 느끼고 공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왕자는 물총새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물총새 공주는 구슬프게 울며 성 꼭대기에 있는 창문으로 갔다. 어떤 영혼이 자신을 이쪽으로 부른 것 같았다. 그곳에는 어떤 시신이 누워있었다. 물총새 공주는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이 자신의 옛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비록 얼굴은 흉했지만 옷차림새라던가 얼굴형이라던가 하는 것이 옛 기억속에 어렴풋이 남았던 것이다. 물총새 공주는 긴장했다. 만약 왕자가 저 공주에게 키스를 한다면 자신의 영혼은 이 껍데기를 버리고 다시 원래 인간 공주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왕자가 왔다. 물총새 공주는 하늘을 날며 빙빙 돌면서 ‘마법을 풀어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리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왕자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공주의 미라를 보고 그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하더니 공주의 가슴에 칼을 꽂고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왕자는 물총새에게 다가갔지만 물총새는 다시 구슬프게 울며 날아갔다. 마법이 풀리는 원칙은 본체인 시신에 입을 맞추어야 물총새 공주의 영혼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서 살아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왕자는 급하게 옛날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공주의 몸에서 칼을 빼고 열렬히 입을 맞추었다. 공주의 몸에 생기가 돌고 살이 붙었다. 그러나 왕자가 꽂았던 칼자국에서 피가 분수처럼 흘러내렸다. 이 상태에서는 영혼이 돌아온다고 해도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생기가 돌아 잠시 아름답게 됬던 공주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몸도 식고 있었다. 가슴에 난 상처를 아무리 눌러보고 지혈을 하려 해도 피는 멈추지 않았다. 왕자는 자신의 실수를 한탄했다. 그리고는 공주를 찔렀던 검을 자신의 목에 꽂아 그 곁에서 죽었다. 아마 후세의 사람들이 핏빛으로 물든 공주와 왕자의 시신을 보면 분명 아름다운 사랑을 하다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둘이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게 되리라.

물총새 공주는 자신이 살던 물가로 내려갔다. 또 매혹의 맛을 느끼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먹으려고 했던게 아니었다. 어디론가 날아갔는데 그곳엔 둥지가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물총새 공주는 자신이 삼켰던 물고기를 토해내서 어린 새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다른 물총새들은 부부가 함께 알과 새끼를 지키고 먹이를 구하는데 물총새 공주는 혼자새 그 일을 해야 했다. 비록 몸은 고달팠지만 물총새 공주는 새끼들이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그렇게 물총새 공주는 행복했다. 죽는 순간까지 다시 물총새 공주를 구하러 오는 왕자는 없었다. 이미 두명의 왕자를 보낸 셈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물총새 공주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새끼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아마 지금 그 물총새 공주의 후손들이 공주다운 아름다운 기품을 가지고 물가에서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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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데르센 동화집을 보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네요. 공주는 결국 왕자들이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을 개척해 나간 셈인겁니다.

왕자가 모두 좋다고 할 수 는 없잖아요. 저 왕자를 저렇게 괴팍하게 표현한것은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하지만...그래도 그냥 캐릭터 설정이라고 봐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