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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두개의 모자

2005.05.22 16:32

책벌레공상가 조회 수:97 추천:4

extra_vars1 걸인모금체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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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 근처의 길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길 모퉁이에 한 걸인이 쭈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냥 그저 걸인이려니 하고 그냥 지나치려 했었다.
그런데 무심코 그 걸인을 쳐다 보니 그 걸인 앞에서는 모자가 두개씩이나 있던 것이였다.
모자 하나는 오래된 낡아빠진 모자였고, 다른 모자 하나는 최근에 마련한 듯한, '베르바' 메이커를 달고 있는 누가 봐도 명품인 아주 비싸 보이는 모자였다.
그 두개의 모자를 본 순간, 나의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그래서 그 걸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물음에 답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보통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냥을 받을때에는 모자가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근데 왜 당신은 모자가 두개입니까?"
그 걸인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이, 아가씨는 그렇게 남 일에 관심이 많소? 그러나 물었으니 대답을 해 드리리다. 요새 영업이 아주 잘 되어서 체인점을 하나 차렸다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걸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듯 했다.
그리고는 그 명품 모자를 손에 들고는 말을 계속하였다.
"이 모자로 말할것 같으면, 내가 그동안 설렁탕을 사 먹을것을 칼국수를 사 먹으면서 한푼 두푼 모아 마련한 모자라오. 좀 비싸더군."
나는 그 걸인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이봐요, 명품 모자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동냥을 덜 줄거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왜? 내가 돈모아서 명품 모자를 샀는데 무슨 잘못이오?"
"그러니까...일종의 위화감 때문이라고나 할까...당신이 명품 모자를 가진 것을 보면 사람들은 분명히 이렇게 생각할 꺼에요. '아니, 나만도 못한 저 거지가 나보다 더 좋은 모자를 가지고 있다니! 에이 기분나빠! 건방져!'"
그리고 나는 이어서 계속 말하였다.
"제가 충고 하나 하겠는데, 차라리 그 명품모자를 팔아서 그 돈으로 설렁탕을 사먹는게 더 나을 겁니다."
그 걸인은 내 말에 약간 기분이 상한 모양이였다.
이내 흥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 그럼 거지는 명품을 가지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내가 강남거리에서 있어봐서 아는데, 돈 많으면서도 나한텐 한푼도 주지 않는, 아니, 오히려 내가 무슨 전염병 환자인듯 나를 피해다니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명품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도 누구 하나 비난하는 자가 없더군. 기껏해야 신문이나 뉴스가 비난할 뿐이더군."
"비난하는 자가 없긴요, 그 사람들 보다 못사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그런 자를 비난할 겁니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비난하여 밖으로 표현을 안할 뿐이지만..."
나는 이어서 계속 말하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다른 자가 자신보다 더 잘난 점이 있을때 은근히 마음 속으로 질투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옛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원래 이 사회가 그런걸요."
"......"
"그러니까 이런 사회 안에서는 괜히 남 보다 잘난척 하려고 튀려기 보다는 그냥 평범하게 지내는 편이 신상에 좋은 것이죠. 이봐요, 눈이 있다면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 보세요. 당신처럼 명품 모자를 가진 걸인이 어디 있는지..."
그 걸인은 내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1분이라는 시간이 흐른뒤,
그 걸인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명품 모자를 그대로 소유 하겠소. 이 명품 모자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니까......"
"메세지라뇨?"
"그건 아가씨가 더 잘 알텐데요?"
그리고 이어서 말하였다.
"내 모자에 후원금을 넣지 않을거면 그만 가보시오."
나는 그 걸인의 명품 모자에 만원짜리 지폐를 한장 넣고는 갈길을 계속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