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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신경질쟁이 할아버지와 철없는 손녀의 1대1 매치!

2005.05.23 10:05

원자리 조회 수:59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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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최대의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얘야, 빨리 내 손목시계 가져오너라.”
“네.”

나는 편한 자세로 누워서 그 세상에서 제일 재밌고 웃기다는 x맨을 보고 있었다. 비록 말로는 유치하다고 욕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실실 웃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고 있다가 할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서랍속의 시계를 꺼내 마루로 나와 할아버지에게 드리려는 순간이었다.

-꽈당-

나는 멋지게 슬라이딩하며 마치 힙합의 기술을 하나 보여드리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시계도 나무로 된 딱딱한 마룻바닥에 털썩 떨어뜨렸다.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난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했다. 빨리 수습하기 위해서는 방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나는 건방진 눈을 하고 일어나서 할아버지에게 걸어가 시계를 드렸다.

“이녀석이?”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집애가 조심해야지. 이게 뭐니 이게.”

절대로 안어벙의 부드러운 이게 뭐니 이게 선언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꽥 소리를 지르셨던 것이다.

“기집애가 조신하고 차분해야지. 어딜 넘어져 어딜? 그리고 시계 떨어뜨렸잖아. 이거 어떡할거냐? 응?”

“마룻바닥이 미끄러워서......”

“시끄러워! 어디 미끄럽긴 미끄러워.”

“양말이 미끄러워서.......”

“양말, 미끄러운 양말이 어딨어? 그 양말이 뭔데 미끄러워?”

“싸구려 양말이요!”

급기야 나도 화를 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만만히 가실 할아버지가 아니셨다.

“그딴 양말 버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상태에서 가만히 있겠지만 내가 누군가? 그 성미 급하고 신경질적인 지금 내 앞에 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열혈 소녀가 아니던가? 나는 당장 양말을 벗어서 쓰레기통으로 걸어가 집어넣었다.

“이녀석이?”

“싸구려 양말이니까 미끄러운거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양말이나 사 주셨어요?”

그리고 나는 방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속으로 ‘유 윈-!’을 외치며......뭐 잘한짓은 아니지만 우선은 나름대로 내가 이긴 셈이다. 약간의 통쾌함을 느끼며 방문을 쾅 닫았다. 할아버지는 에휴- 한숨을 내쉬더니 집 밖으로 나가셨다. 분명 할일없는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며 수다를 떨려고 하시는 게다. 나도 인터넷으로 메신저를 켜서 친구들을 모으고 있었다.

-야 짜증나 죽겠어.
-왜그러는데?
-몰라, 할아버지......내가 할아버지 앞에서 넘어졌는데...걱정은 안해주고 그냥 왜 넘어졌냐고, 기집애가 조신해야지 어쩌구 저쩌구...시계 떨어뜨린것만 걱정하고 그러잖아.
-그래서 어떻게 됬어?
-몰라, 내가 양말 때문에 미끄러졌다고 그랬더니 그딴 양말 버리라고 하시길래 눈앞에서 버려버렸어.
-야 그건 좀 너무했다. 양말이 아까워 큭큭
-괜찮아. 다시 주워서 빨아 말릴수 있을 곳에 버렸어. 화장실 쓰레기통만 아니면 되잖아?
-너답다. 푸하하하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에 난 기분이 조금 풀렸다.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 할아버지도 다른 노인들과 수다를 떨고 계시겠지?


-이놈의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어
-왜그러세요 선생님.
-아니 글쎄...기집애가 조신해야지, 아무데나 철퍽 철퍽 넘어지고...그래서 조금 혼을 냈더니......
-냈더니요?
-내앞에서 양말을 벗어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는게야 글쎄.......
-아이구 저런.......
-내가 이거 누워서 침뱉는거지만 정말 속이 상해서 말하는 거네.

푸하하하. 내가 생각해도 진짜 웃긴다. 우리 할아버지는 집에서는 신경질쟁이에 버럭버럭 화내는 다혈질이지만 웬일인지 밖에만 나가면 존경받는 샌님이다. 나도 그런 면이 있지만 할아버지는 완벽한 이중인격이 틀림없다. 오죽하면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을까......




-바삭 바삭 바삭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음악 볼륨을 낮추고 귀를 기울였다. 분명 마루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마루로 가봤다. 그리고 나는 쓰러질뻔 했다.

-바삭 바삭 바삭

언제 들어오셨는지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넘어진 마룻바닥을 사포로 갈고 계셨다. 나무로 된 그 마루는 하얗게 먼지가 일고 있었다. 나는 만화에서 나오는것처럼 뒤로 넘어질것같았다.

‘그래요, 할아버지 이번엔 할아버지가 이기셨어요. 그대신 쌤쌤이에요.’

마룻바닥을 갈고 있는 할아버지를 뒤로 한 채 난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그전에 양말을 버렸던 그 쓰레기통으로.......양말을 주워서 빨려고 했던 것이다. 양말도 몇켤레 없는데 버리면 나만 아깝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양말이 없다.”

분명 있어야 할 양말이 없었다. 분명 나는 이 쓰레기통에 양말을 넣었는데......그렇다고 쓰레기통이 비워진것도 아니었다. 쓰레기통에 쵸코파이 봉지가 그대로 있는걸로 봐서는 양말만 쏙 빼간 것이 틀림없다.

“할아버지 혹시 양......”

아......이럴수가. 그 양말은, 물론 예상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 양말, 빨간 딸기소녀가 그려진 회색 양말을........표면에 레이스 문양이 있는 양말을....... 할아버지께서 신고 사포로 마룻바닥을 박 박 긁고 계셨다. 난 이 개그만화 같은 상황에 어찌할 줄 몰랐다.

“누가 마룻바닥 긁으랬어요? 양말이 싸구려라 그랬다고 했잖아요.”

난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양말 내가 제일 아끼는 딸기소녀 양말이란 말이다!

“양말 사놨다. 안 미끄러지는걸로.”

그렇다 할아버지는 미끄러운 마룻바닥과 싸구려 양말 때문에 미끄러졌다는 손녀에 말에 양말을 사오시고 마룻바닥을 사포로 갈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순간 감동을 받았다.

“할아버지 됬어요. 그러면 안미끄러워요.”

“그럼 걸레질은 니가 해라”

할아버지는 사포질을 멈추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마룻바닥을 훔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갑자기 들어왔다.

“놀랐잖아!”

“할아버지가 사오신 양말이다. 너 주래.”

엄마가 검은 비닐봉지를 주셨다. 그 안에 양말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고맙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양말을 꺼냈다. 그 순간 엄마가 잠시 피식 하고 웃는 것이 보였다.

“왜 왜그래?”

“아니 풀어봐.”

꽤 고급으로 되어있는 듯 하나하나 불투명 비닐로 포장되어 있었다. 난 앉아서 뜯어보았다. 이것은...그 유명한......

“이걸 어떻게 신어!”

할아버지 할머니용 옥돌 양말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떨이로 파는......

‘자 이거 한번 신어봐. 아프던 다리가 싹 나아. 여기 촘촘히 박혀있는거 있죠? 이거 옥돌인데요 요게 그렇게 좋아요. 깔깔해서 넘어지지도 않아요.’

얼마전 버스에서 들었던게 떠올랐다.


그렇게 손녀와 할아버지의 1대1 매치는......

할아버지의 상큼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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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있었던 일에 픽션 50% 가미...

그냥 웃자고 꽁트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