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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백조의 호수

2005.05.25 18:13

책벌레공상가 조회 수:151 추천:2

extra_vars1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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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청량호 호수가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호수가에 몇몇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 몸풀이로 아침산책을 하는 사람들,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들, 자전거로 호숫가를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에 벤치에 멍하게 앉아서 가만히 호수를 응시하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

이선아.
나이 방년 27세.
현재 무직.
사람들은 그녀를 '백조'라고 부른다.

외환위기사태 이후로 최대의 실업난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능력있고 패기있고 혈기왕성한 젋은 인재들로 하여금 집에 부모님 눈치를 보아가며 방안에 뒹굴뒹굴거리며 라면으로 생계를 연명하게 만들었다. 그녀라고 예외는 아니였다.

석달전만 해도 그녀는 회사에 출근을 하는 회사원이였다. 그녀는 발로 열심히 뛰었고, 손으로 열심히 결재를 하였다. 정말 열심히 하였다. 진짜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고야 말았다.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이 발표되던날, 그녀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샹냥한 부모님의 표정이 자신을 잡아먹을듯한 눈초리로 바뀔 것만 같았다.
할수 없이 친한 친구인 김을숙이네 집에가서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회사에서 장기간동안 해외출장이 있거든. 나 당분간 집에 못들어올것 같애...아, 미리 이야기 안해서 미안하고, 앞으로도 전화 연락은 힘들것 같애...왜냐고? 그..그러니까...거긴 아프리카 오지라서...저...전화도 잘 못되거든...어? 여..여긴 공항이야...그...그러니까...그...그럼 끊어. 엄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에게 수화기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긴 처음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석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친구집을 나와서 할일없이 호숫가를 돌아다니다가 일일 정보지의 구직난을 신문이 뚫어지지 않을 정도로 살펴보고는 언제나 처럼 실망에 가득찬 눈초리로 일일 정보지를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그리고는 이내 주위에 간혹 부모님이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지나갈까봐 주위를 슬쩍 둘러 보았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것인지는 장담할수가 없다.
긴장이 풀어지니까 배고픔과 함께 심심해졌다. 백수,백조에게는 배고픔은 거의 일상사이므로 그리 큰 일이 되지는 못한다. 문제는 심심함이였다.

"...심심해......뭐하지?"

불행히도 자본주의 사회는 무엇인가를 하려면은 반드시 그 행동에 대응하는 돈을 지불하여야 하는 사회이다. 현재 그녀에게는 돈이 한푼도 없다.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단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뿐이였다.
마침 한 아이가 '땅그지송'을 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젤무서운 땅그지~
(놀아줘)
너랑놀면 왕따당해 안놀아~
(놀아줘)
싫다해도 계속 놀아달래~
(놀아줘)
세상에서 젤무서운 땅그지~
(놀아줘)

할일이 없으니 그녀는 지금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호수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호수는 아침해의 햇살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었다.

마침, 하얀 새 한마리가 하늘에서 날아오더니 호수 한가운데에 사뿐히 앉았다.
백조였다.
그녀는 무엇엔가 이끌린듯 벤치에서 일어나서 호수가로 서서히 걸어갔다.
백조도 호수 한가운데에서 호수가로 움직였다.

두 백조는 호수가에서 서로 마주쳤다.
한동안 조용했다.
10분쯤 지난뒤 '인간' 백조가 입을 열었다.

"넌 참 좋겠다...회사에 짤릴 걱정도 없고...먹을것 입을것 걱정할게 하나도 없으니..."

5분뒤에 또 입을 열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가 있니?"

......백조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