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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죽음

2005.05.29 07:49

kalay 조회 수: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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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미래를 생각하면 꼭 죽음의 순간이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식으로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싫다.
나에게 이루어 내야 할 밝은 미래 따위는 없다.
다만, 이런 저런 방법의 죽음만이 있을 뿐.
나의 상상 속에서 나는 큰 성공을 하기도 하고, 일이 잘못 되어 거지가 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중요히 여기는 것. 그러나 나에게 있어 그따위 것들은 중요치 않다.
오직 하나, 중요한 것은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죽음.
모든 인간은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미래를 생각할 때면, 항상 미친 듯이 몸이 떨리곤 했으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것, 이를테면 귀신 등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 두려움의 깊이는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나는 죽음만을 바라보는 것일까.
믿을 만한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상담을 요청해 봐도, 그들은 모두 그냥 피식 웃어 넘기거나 나를 바보취급하며 농짓거리를 던지기 일쑤였다.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나의 공포를.
죽음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몇 번이고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해 보았지만 죽음의 공포에는 익숙해질 수 없었다.
미래를 상상해 본 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몇 시간씩 내 머릿속을 헤집곤 했다.
그 말도 안 될 정도로 끔찍한 공포와 함께.
또 한 번의 상상 속에서, 나는 사회학계의 거장이 되어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다.
흐뭇하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러나 시간은 그곳에서 멈춰 주지 않고 계속 흐른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그리고 맞이하게 되는 죽음.
죽음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죽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마치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을 가려 내는 어린아이들의 그것과도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유치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의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왜 나는 내 생각에서 죽음이란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걸까.
왜 내 생각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죽음을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잠재 의식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두려움이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요소, 그러니까 상상 속 시간의 급격한 흐름 같은 요소들에 반응하여 이성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과 한 번 대면하고 나면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될까.
공포에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이런 끔찍한 생각마저 머리를 헤집는다.
공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그냥 이대로 공포에 한 발짝씩 가까이 다가갈 뿐.
어쩌면 삶의 목적은 죽음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살아있지만 죽어 가는 존재이니까.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탄생. 그리고 죽음.
어떤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의 인생도.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인생도.
그렇다면 나의 인생도 덧없이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것 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두려워져서, 나는 재게 놀리던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짓쳐드는 노란 불빛 한 쌍.
둔탁한 충격.
잠시의 고통.
지쳐 있던 발에 느껴지는 대지로부터의 해방감.
이대로 죽는 건가?
두렵다. 너무도 두렵다. 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줄곧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던 죽음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도 가까이로 다가왔다.
죽음과 한번 대면하고 나면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될까?
문득 아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던 덧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동시에 뒷목에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
공포에 질려 아픔을 느낄 새 따윈 없다.
싫다. 이대로 죽기는 싫다.
내가 모르는 곳에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는 않다. 하물며 그것이 죽음이라면야.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려 노력해본다.
조금씩, 손가락은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내 의지에 반응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경련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아직 난 죽지 않았어..
나 자신이 기특하다. 아직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어. 아직. 아직 난 살아있다고!
다음 순간, 미세하게 떠리던 손가락이 툭 하고 떨어진다.
의식이 흐려진다.
너무, 너무 졸립다.
어째서 두려움 따윈 느껴지지 않는 걸까.
지금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왜 들지 않는 걸까.
이렇게 졸린데......



지금 다가오는 죽음이란 것이 저는 너무도 두렵습니다.
저만 그런 걸까요.
아니면 모두가 숨기고 있는 걸까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이 저에게 이렇게나 가까이 와 있고
저는 그녀가 내미는 손을 도무지 뿌리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려워했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