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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Cherry Butter and Sorcerer's Dung

2005.05.29 01:03

Arcturus 조회 수: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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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넌 어느 작은 방 안에 있다. 눈꺼풀은 어찌어찌해서 힘겹게 들어올리는 데에 성공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날림 잡문, 어떻게든 진행이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이름을 말하면 데이트 신청을 하는 그 자]가 다시 깨어났다는 말인가?”

“모르겠군. 하지만 난 느낄 수 있다네. 조금씩 강해지는 녀석의 힘을 말이야.”

“그래서 굳이 저 아이를 불러온건가?”

“그래, 저 녀석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니까. 또 저 녀석을 만난 다음 그 자는 왠지 모르게 사라졌고.”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막을 수야 없겠지. 알겠네. 단 책임을 우리가 질 순 없어. 어떻게든 자네가 노력해서 성공시키게.”

“...훗.”

“...무슨 의미인가, 그 웃음?”

“아닐세, 이제 그만 나가들 보게. 때가 된 것 같군.”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발걸음소리가 사라져간다. 하지만 잠시 후 누군가가 너에게 다가갔다.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수염이 마치 용변을 처리한 휴지처럼 대부분은 하얀데 가운데만 갈색이다. 덧붙여서 그 갈색 부분은 19금지 마크(⑲)를 그리고 있어서 묘하게 거슬린다.

“...”

“역시 깨어있었나, 체리.”

“꼭 이런 아무것도 모르면서 괜히 친한 척 하는 색히들이 있다니까.”

“...굴다리로 가지 않고 싶거든 조용히 해라.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더블족커다.”

“...누구야, 저런 이름 지은 건?”

“각설하고, 넌 이제 이 학교, 로그함수에 입학하게 되었다. 참고로 몇 가지 더 말해주자면 작가가 귀찮다고 기숙사는 하나만 건설했단다. 그래서 물론 방이 모자라지만 걱정 없다. 이 학교는 철저한 약육강식을 표방한다. 네가 강하면 방을 차지하는 거고 약하면 길바닥에서 구르는 거다.”

그렇게 말하며 더블족커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 손으로 안경을 올리려다가-

“Oh, shit the fuXXer!”

그는 그만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잠시 후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가누며 일어섰다.

“...장담하는데, 넌 방을 차지하겠군.”

“...왠지 기분 나빠지는 이유는 뭘까?”

“알아들었으면 나가라. 더 이상 너를 이 방 안에 들였다가는... 우욱!”

더블족커는 너를 들더니 저먼 스플렉스로 넘겨서 방 밖으로 내동댕이쳐버린다. 상대방을 등 뒤에서 껴안고 뒤로 넘겨버리는 허리힘이 중요한 기술이다.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관록이 있고 능숙한 몸놀림이다. 아마도 허리힘이 좋나 보다. 참고로 남자의 생명은 허리다.

...마지막 말은 아무래도 관계없다.

“Oh, shit! 침대 버리자!”

더블족커의 외마디 비명을 뒤로 하고 너는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지도같은 편리한 건 없다. 그냥 너는 터덜터덜 돌아다닐 뿐이다.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다가 싸대기도 몇 대 맞았지만, 결국 너는 어떤 커대한 그림을 발견한다.

“오, 이게 바로, 그 그림으로 된...”

순간 말문이 막힌 채 너는 그림만 바라본다. 그림은 하필이면 [비너스의 탄생]이다. 그리고 그곳엔 무언가가 잔뜩 씌어있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그곳엔-

“애인 급구. 010-6481-3475로 연락바람. 참고로 남자는 즐.”

라는 쓸데없는 문구나-

“어제 집에 혼자 있었는데 갑자기 꽤 친하게 지내던 옆집 누나가 찾아왔다.”

로 시작되는 야구소설이 가득 쓰여 있었다.

“암호는?”

난데없이 그림이 묻는다. 당연히 너는 대답한다.

“몰라. 알 게 뭐야.”

“그럼 님아 즐하삼.”

“...으음. 힌트는?”

“인터넷.”

“...!”

너의 머릿속에 순간 뭔가 스쳐지나간다.

“인터넷 종량제 즐.”

“통과.”

“...진짜였어?!”

“무슨 상관이냐고 너는 생각하겠지만,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그까이거 대충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되는 거지.”

...그래서 작가가 지금 요모양 요꼴인갑다.

각설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빈 방이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면- 2인실, 한 사람분의 짐이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너는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천천히 방 안을 뒤진다. 그때 갑자기 천장에서 사람이 하나 튀어나온다. 남자임을 확인한 너는 얄짤없이 면상을 갈겨버린다.

만약 여자였다면- 혹시 그냥 온건하게 비명만 지르고 그쳤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면상을 맞은 그 남자는 공중에서 3단 분해되며 날아가더니 벽에 피칠갑을...

...이러면 잔인하다고 영상물 등급 심의 위원회에서 잘라버리니까 다시 한번.

면상을 맞은 그 남자는 공중에서 3단으로 회전하더니 고속 스크류처럼 벽에 박혔다.

“크윽!”

“뭐냐, 넌.”

“나... 난 이 방의 사용자라고. 만일 네가 이 방을 쓰게 된다면 네 룸메이트가 되고.”

“흐응, 그래? 그런데 왜 천장같은 데 있던 거야?”

어느새 아픈 과거를 잊은 너와 그 남자는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 그야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까 묻지 마! 프라이버시야!”

너는 그 남자를 자세히 훑는다. 너 또래의 소년이다. 게다가- 정상인처럼 보인다.

아직까지 머리를 산발로 늘어뜨리고 목욕도 안 해서 누구 말마따나 화학 병기 뺨치는 냄새를 풍기는 어떤 인간과는 천지차이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기숙사를 가득 메운다.

“김춘삼! 김춘사아아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소년은 그 목소리를 듣더니 안절부절 못하다가 재빨리 천장으로 다시 틀어박힌다.

“김춘삼, 김춘삼 어디 있어! 이 자식 어디 있냐고!”

어디선가 안경 낀 대머리 선생이 나오더니 네가 있는 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한참을 뒤적거리던 그 양반은 이마를 번들거리며 너에게 묻는다.

“김춘삼 이 새끼 못 봤나?”

“못 봤는 데요. 전 오늘 처음 이 학교에 와서.”

하지만 너의 손은 이미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로 만들고 있다.

“...”

“모르겠다니까요?”

너의 말을 듣자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지갑을 꺼낸다.

“...알았다. 5000원 주마.”

“아, 그러고 보니까 천장에서 쥐소리를 들은 것 같긴 한데... 한번 뒤져봐야 좋지 않을까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요.”

대머리 선생은 당장 천장을 몽둥이로 쾅쾅 두들긴다. 어느순간 천장에서 쿵, 하고 아까 그 소년이 떨어진다.

“너 이 자식, 일로 와! 인수분해 문제다. 못 풀면 죽을 줄 알아라!”

소년은 그 대머리 선생에게 목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 나간다.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너를 바라보면서.

...이거, 보통 이런 만남은 심상치 않은 관계의 전조, 즉 복선이라고 해석하면 나중에 국어 선생님한테 칭찬 받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