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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E.M.A.

2010.07.22 08:16

윤주[尹主] 조회 수:169 추천:1

extra_vars1 1.Every Women have a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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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로 들어서 얼마간 걸은 후, 작은 파출소 앞 교차로 위에서 그들은 서로 헤어졌다. 혜미네 아파트와 소리네 집은 교차로 위쪽으로 조금 걸어야 있었고, 은비네 집은 거기서 왼쪽으로 틀어 몇 분간 더 들어가야 했다.



 최근 들어 유난히 뉴스나 신문에서 온갖 뒤숭숭한 사건에 대해 자주 떠들어댄다. 어느 날 경기 광주 모처에서 일어난 여중생 성폭행 범죄에 대해 너나할 것 없이 떠들어대던 언론사들은, 다음 날이면 부산 모 동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해 사건을 보도하느라 정신없었다. 첫 기사로 동대문구의 실종 사건을 내보내야 할지, 혹은 목포에서 두 자매를 대상으로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 보도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해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 때문에 은비는 뒤늦게 혼자 골목길을 걷게 된 걸 후회했다. 사실 도시라고는 해도 이름조차 그리 알려지지 않은 남해 바다 작은 항구 도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사건이 없이 평온했다. 기차역 앞에 나가보면 아직도 분주히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열에 서넛은 아직 촌사람 티를 벗지 못한 모습이었다. 인근 큰 도시에선 그렇게 유명하다던 커피전문점도 이 작은 도시엔 점포 하나 없었다. 패스트푸드 체인점 점포가 아직까진 은비 또래는 물론 젊은 사람들이 만나서 수다 떨고 놀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고, 옷가게 수보다 배 삭구 취급하는 가게 수가 더 많았다. 대신 사람들은 그만큼 더 여유롭고 순진해서, 은비 같은 여학생들이 밤길을 거닌다고 해서 딱히 위협을 느낄 일은 흔치 않았다.



 골목길이 정(丁)자 모양으로 만나는 곳에 이르러서였다. 가로등 하나가 그 갈림길 가운데 불그스레한 불빛을 비추었다. 나방이나 날벌레들이 불빛 주위에 모여든 탓에 가로등 바로 아래 현란한 그림자 연극마당이 펼쳐졌다. 은비는 그 자리를 피해 길가로 비켜서 걸었다. 날벌레들이 몸에 붙는 건 끔찍이 싫었다. 지금껏 걸어오던 진행방향 그대로 얼마간 걷기만 하면 바로 집이었다. 자연스레 은비는 불빛을 바라보고 선 채 꺾여 나가는 길은 반쯤 등지고 선 자세가 되었다.



 그때 은비는 등 뒤에서 무언가 제 편으로 달음박질쳐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섬뜩하고 기괴한 느낌에 은비는 힐끔 등 뒤를 돌아보았다. 시커먼 무언가의 형상이 은비가 피할 새도 없이 달려들어 막 부딪치려는 순간이었다. 반사적으로 은비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깜짝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그녀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꺄악!"



 비명을 지르고서 한참이 지났지만 어째선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은비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살짝 눈을 떠 보았다. 시커먼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적에 휩싸인 골목길 모습 탓에 그녀는 걷다가 잠시 졸아서 꿈이라도 꾼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방금 전 그 커다란 검은 물체는 뭐였을까? 개나 들 고양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다기엔 크기가 너무 컸다. 사실 은비 본인은 자신에게 부딪친 게 사람, 그것도 어른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뛰어 들어와 부딪쳤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허깨비라도 본 거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지만, 사실 이 때부터 이미 불안감은 서서히 은비의 등 뒤를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서서히 감싸 조르기 시작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전과는 다른 이질감, 설명할 수 없는 이물감이 온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졌고 손발에 힘이 빠져 집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뎌 비틀댔다. 그럼에도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면서 은비는 별다른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다녀왔습니다."



 이윽고 문을 열고 마중 나온 엄마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를 건넸다. 별 것 아닌 일에 다른 사람이 걱정하고 개입하는 게 싫었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고, 그저 밤늦게 하교해 걸은 탓에 조금 피곤할 뿐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씻은 후, 시계를 보았을 땐 이미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은비는 잠깐 동안 읽을 요량으로 평소 보던 책을 꺼내 들었다. 오늘도 보통 때랑 똑같은 하루였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 잠들 시간이야. 은비는 책을 옆에 놓아두고 눈을 감았다. 동생이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빤 오늘 늦으시려나? 엄마도 언제나처럼 동생 곁에서 TV를 보면서, 아빠가 들어오기만 기다리시겠지. 모든 건 평소와 같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그녀는 안심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은비는 맘 편히 잠들지 못했다. 어째서 시작된 지도 정확히 모를 같은 꿈을 계속 반복해 꾸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계기가 될 법한 일은 이뿐이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란게 다 그렇지 않나? 꿈 많을 나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악몽이나 꾸며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깰 뿐, 평소에는 매일같이 학교 - 집 - 학교를 왕래하며 반복되는 삶에 지치고 지루해하는 게 전부일 뿐인 시절 아닌가. 이상한 일이 일어날 법한 이유는, 역시 평소와 다른 이상한 일에서 찾을 수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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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에선 주인공이 잠 못들게 만든 꿈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ㅎㅎ


 


 밤인데 날씨가 덥네요. 잠 설치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