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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E.M.A.

2010.07.20 04:47

윤주[尹主] 조회 수:97 추천:3

extra_vars1 1.Every Women have a sec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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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랑이란 없다, 여자에게 비밀이 있는 한. 
 그리고 여자의 비밀은, 그녀가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한 영원할 테지.
 



 비단 연애뿐일까. 여자아이의 비밀이란 장소불문, 형태불명으로 존재하는 법이다. '누구나 자기 찬장 안에 해골을 숨겨둔 법'이라는 영미 속담이 있지만 꼭 비밀을 찬장 구석에만 감추란 법 있나? 비밀이 꼭 연애나 해골일 건 또 뭐라지.



 이제 고등학교 2학년, 한참 고민 많을 시기에 있는 은비야 감추고 싶은 거야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외모. 172cm라는, 여자로선 다소 큰 편인 키는 감출 수 있다면 좀 감춰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턱 선도 좀 갸름하면 좋겠고 코도……. 외모 이야기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한편 낯선 상대 앞에서 은비는 자기 이름을 될 수 있는 한 비밀로 한다. 왜? 촌스럽게 들리니까. 상대방이 물어오기 전, 어쩔 수 없이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그녀 이름은 비밀이 된다.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가급적 상대에게 어떠한 인상도 남기지 않도록 무덤덤한 말투를 가장해, 빠른 시일 내에 자기 이름을 잊어줬으면 바라며 말해 준다. 될 수 있으면 그것이 이슈가 되기 전에 재빨리 다른 소재거리를 찾아 함께 쥐어주면서. 예를 들면, '윤은비요. 근데 이 옷 어디서 파는 거예요? 정말 예쁘다~'라던가, '은비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근데 물어볼 게 그것뿐이야? 취미라던가, 특기 같은 건 안 궁금해?' 이런 식이다.



 키나 이름도 상황에 따라선 비밀이 된다. 하물며 정말 아무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진짜 비밀은 얼마나 많을까. 은비가 자기키를 감출 순 없어도, 그게 콤플렉스란 건 감출 수 있다. 이름은 감출 수 없어도, 자기가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은비에게 최근 또 한 가지 비밀이 생겼다.



 "언니야, 잠 안 자?"



 어두운 방 한쪽에서 말소리가 들여와, 은비는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같은 방에 쓰는 동생 목소리였다.



 각자 한 방씩 차지하고 살면 좋으련만 형편이 그렇지 못했다. 동생과는 한 방에 각자 자리 하나씩 깔고, 책상 하나씩 차지한 채 아옹다옹하며 지냈다. 따로 이불 쓰고 지낸대도 바로 옆에 붙어 자는 거나 다름없다보니,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누구 하나가 잠도 안자고 이어폰을 꽂은 채 PMP 액정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경우는 두말할 것 없다.



 "금방 잘 거야. 신경 꺼."



 은비는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반쯤 누웠다. 한 살 아래 동생에게 향하는 액정 불빛은 확실히 좀 더 줄긴 했다. 은비 동생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금방 자긴 뭘. 어제도 새벽 늦게까지 안 잔 걸 다 아는데."



 이어폰을 꽂은 귀에 들릴 리 없이 작은 목소리였지만, 굳이 들을 것 없이 은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유독 잠자리에서 예민한 동생이 은비 자신의 수면 방해 행위를 가까스로 참아주고 있단 사실을.



 벌써 며칠 째다. 매 밤마다 은비는 잠들지 않으려고 버텼고, 그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숙면을 취하진 못했다. 깊은 잠에 빠져들기 전에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야 했으니까. 한 번 그렇게 깨어버리면 다시 잠들지는 못했다. 심장이 쿵쾅대고 머리털이 전부 일어나 곤두서기 때문이었다.



 그 지독한 경험을 한 지 삼일 째가 되자 은비 눈엔 하루 종일 핏줄이 곤두서고 피부는 눈에 띠게 거칠어졌다. 눈 아래 생긴 다크서클은 이미 가벼운 화장만으론 어쩌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더 짙은 화장을 했다간 담탱이가 가만있지 않겠지.



 밤도 낮도 은비에겐 진퇴양난이기만 했다. 머릿속은 이미 새하얗게 변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밤마다 잠에 들지 않기 위해 PMP로 틀어놓는 외국 드라마도 이미 봤던 건지 그렇지 않은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저 졸음을 쫓기 위해 틀어두었을 뿐이고, 이 어두컴컴한 밤에 오로지 그것 하나만 빛을 내니까 본능적으로 거기에 이끌릴 뿐이다.



 PMP 화면 속 인물들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온갖 갈등 속에서 행복과 좌절, 화합과 파탄을 반복해온 남녀는 그들 주위 모두로부터 멀어져 처음으로 1:1,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다. 남자는 세상이 그에게 준 수많은 기대와 고통들 속에 좌절했다. 그의 손에 현실에서 도피할 약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 손에서 그 약을 빼앗지 않았다. 그저 삶과 현실에 찌들어 지친 얼굴로 남자를 내려 볼 뿐이다. 침묵 끝에 여자는 그동안 수많은 시청자들이 기대해왔고, 또 다른 수많은 시청자들은 바라지 않았을 세 마디 말을 남자에게 던졌다.



 'I love you.'



  남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행여나 자신이 잘못 듣지는 않았나 의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여자는 진심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서로를 얼싸안고 키스하는 두 남녀는 기뻐하는 듯 보이지만, 그 모습은 어쩐지 퍽 슬퍼 보이기도 했다.



 은비에겐 드라마 속 이 커플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사랑한다고 필연코 행복해지진 않겠지만, 만일 그것이 조그마한 행복이라도 보장해준다면 은비는 바로 지금 사랑을 하고 싶었다.



 은비는 불행했다. 그게 지금 그녀의 최대 비밀이었다. 잠들지 못해 불행하다는 것도, 잠들지 못하는 이유도 모두 지금 그녀가 감추는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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