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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Plus? = Minus!

2007.02.01 08:40

롤빵 조회 수:3393 추천:1

extra_vars1 <제 4사건> -흡혈에 대한 연구 및 고찰- by Dr.야마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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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연금술사라는 존재가 전 세계에 성행하면서, 세계의 물리법칙은 조그마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들의 존재 중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어떤 이는 이런 말도 남겼다.


 


-등가교환의 법칙-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을 거라는 그들의 무언의 법칙.
그들은 이것을 철칙으로 하여 살아왔으며, 언젠가부터 그것이 족쇄가 되어 자신들의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채워진 족쇄를 스스로 끊었으며, 등가교환의 법칙따윈 무시하고 불법을 행하였다.


그것이 세계 각지에 퍼져, 민중과 왕은 연금술사를 탄압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 존재가 이 세상에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족쇄를 영원히 풀지 않고, 그것을 자신에게 맞게 승화시킨 자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로키'
자신의 신앙과 금지된 주술을 세계 각지에 퍼뜨리고 다녔다.
그리고...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서, 그 영향을 받은 자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


 


"크..크악!! 살려주십시오!! 아..안돼!!"


 


선혈의 피가 목 동맥에서 뿜어져나온다. 선명하게 박힌 이빨자국은 독사의 그것과 같았으며 공포는 드라큘라의 그것과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미쳐가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난 이야기.. 우리들은 그 사건을 <제 X사건>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번에 한국에서 일어난 흡혈귀사건은 4번째로 일어난 불가사의로 <제4사건>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국제 과학 수사 연맹-


 



~ 딩동.. 댕동.. 딩동.. 댕동~


 


"어이! 거기 자는 놈 당장 일어나!"


 


스르릅..
아.. 깜박하고 잠이 들었다. 어제 밤에 그만 잠을 설쳐버린 나머지 아침 잠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입가에는 시퍼렇게 침자국이 남아 떡진 아밀라아제가 끈적거린다.
아따..한마디로 찝찝한게 기분이 이상하다. 게다가 담임 선생님의 화난 얼굴을 보아하니.. 아마 나를 보고 그러는 것 같은데..
게다가 저 손짓은 따라오라는 신호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모두 뻗어버린 교실에서 조용히 선생님을 따라 복도로 나왔다.
그러자 우리반 담임은 나를 보자마자 눈썹이 八자 모양이 되어서는 슬픈 표정을 짓는다.


 


"박소리.. 너.. 몸이 안 좋은 건 이해한다만 계속 그렇게 대놓고 자고 그러면 주위에도 악영향을 미치잖냐.. 미안하지만 조금만 참아다오. 다른 애들을 위해서.."


 


아.. 또 이 선생은 또 이런 나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음? 보통학교같았으면 바로 몽둥이 날라왔을 상황인데 왜 나는 예외냐구?
왜냐하면 나는..


 


".............."


 


말을 못하거든.
언젠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성대가 완전히 상해버렸다고 의사가 그랬다.
사람들은 이런 내 몸 상태때문에 주위의 시선은 모두들 동정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아.
말 좀 못하면 어때.. 친구를 못사겨? 그런 것도 아니다. 말을 할 수 없다면 글로 쓰면된다.
그러니까 사실상은 난 아무 문제 없는 거다. 그렇게 나는 굳게 믿고 있다.


 


"...휴.. 2교시 시작하겠군. 자아. 들어가봐라."


 


"........."


 


나는 죄송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담임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음 강의를 하러 가셨다.
자아..그럼~! 2교시인가..?
2교시라면 아..맞다. 수학이었지.
깜박하고 수학책을 안가지고 왔는데..


 


"여...여기..수학책.. 안들고 왔지? 빌려줄게.."


 


크엇! 깜짝이야!
여기 안경을 쓴 반장스타일의 여자애의 이름은 모토카리야. 이름 답게 일본에서 왔다.
우리 A고교는 어째선지 교환학생도 받고 그러는 모양이라서 이 녀석이 아마도 그 부류라고 생각된다. 그러고보니 우리 학교는 쓸데없이 외국인이 많단 말야.어째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른다. 교장의 취미인가? 아니면 그런 방침인가? 복잡하다.
그나저나 이 녀석  뭐랄까? 약간 음침하고 스토커 기질이 있다.
옆반 반장인 주제에 항상 나를 챙기고, 평소에 잘 웃지도 않는 음침한 여자애가 나만 보면 웃는다.
뭐냐? 놀리는거냐?! 하고 글로 써서 보여줘도 웃기만 할뿐이다.
하지만 뭐 어때? 그녀의 호의.. 받아둬도 내가 손해볼 건 없다. 아니 오히려 감사해야지. 아참~ 말나온김에 감사의 인사를 지금 해야겠구나~!
나는 즉시 왼손 펴서 손등을 위로향하게 하고, 오른손으로 칼질하듯이 왼손등을 두드려줬다.
그러자 녀석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쪽이야말로.."


 


어이어이..책을 빌려줘서 고마운건 이쪽인데 어째서 네가 고맙다는 시늉을 하는거냐?
하하.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니까..


 


딩동댕동~


 


"아 종쳐버렸네? 그러면 가볼게."


 


모토카리야는 손을 흔들면서 저멀리 가버렸다. 그러고보니 모토카리야는 한국에 와서 꼭하고 싶다고 한 게 있었지 뭐였더라..?


 


"나..? 음.. 심신이라는 가수를 만나는 게 꿈이야"


 


라고 언젠가 말했었지. 심신이라.. 도대체 언제적 사람을 이야기하는거야? 어디보자. 내가 개초딩..? 아니 유치원생때 노래부르던 아저씨잖아. 그때라면 녀석도 일본에 있었을테고, 심신이라는 가수를 접해보지도 못했을텐데...
뭐, 상관없나? 자기가 좋아서 한국에 온거니까 내가 왈가왈구 할 이유는 없지 뭐.


 


"박소리! 수업시작했다. 어서 교실로 들어가"


 


쳇. 벌써 수학선생이 와버렸군. 대머리에 쭈그렁탱이 할아범. 여름이라 더워죽겠는데 매일매일 양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흐음..


 


"소리야~ 어서 들어와서 앉어~!"


 


음. 내 짝인 김매니아의 목소리다. 맨뒷자리 1분단 창문에 앉고 있는 녀석인데, 나랑 가장 잘 통하는 녀석이다. 근데 왜 김매니아냐구? 아, 원래 본명이 있는데 잊어버렸다. 이녀석은 그냥 김매니아다.
그나저나 연예인으로 따지자면 누굴 닮았을까...? 아, 축구선수 박지성을 딱 빼닮았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거..


 


"박소리이~ 어서. 선생님 화났다구."


 


"....."


 


어쩔수없구만. 나는 흐느적거리며 1분단 맨 끝자리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조용하고, 재미없고, 지루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할 것도 없고.. 옆에 있는 이 김매니아라는 녀석은 자기네 엄마가 워낙 극성이라 덕분에 고교공부는 다 끝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뒤에서 나랑 장난치기 일쑤.
아~ 나도 공부잘해서 녀석이랑 장난치는거냐고? 전혀.
내게 공부따윈 아웃오브 안중일 정도로 관심도 의지도 없다. 무엇보다도 지루하니까..
공부이야기를 꺼낸것만으로 지루해진다. 다른 주제를 생각해보자. 아~ 맞아.
아까전에 심신이라는 가수는 어떤 가수였을까? 내가 무진장 어렸을때라 기억이 전혀 안난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저번주 도전 1000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마가 반쯤까진 아저씨가 나왔는데 그 분이 바로 심신이었다는것..보자마자 인생이란 허무하구나라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다. 19살주제에..말이다.
김매니아녀석은 심신이라는 가수를 알고 있을까? 나는 조용히 연습장에다가 써서 물었다.


 


-저기 심신이라는 가수를 알아?-


 


-알지. 1990년에 솔로로 데뷔해서 그 당시 소년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잖냐. 그...제일 유명한 곡이 뭐였더라?
아 맞다. <오직 하나뿐인 그대>였던것 같은데?-


 


오직 하나뿐인 그대? 그게 뭐야. 그런 곡 제목으로 들어봤자 전혀 알아먹질 못한다. 왜냐~ 뇌에 기억된 기록이 없거든.
그러니까..심신은 나에게선 미지의 존재라는 것인가...?
내가 고민하고 있는걸로 보였는지 김매니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내게 물었다.


 


"근데 그런 걸 왜 물어보는건데?"


 


-아, 모토카리야가 동경하는 사람 같더라고-


 


"뭐? 심신을? 정말 특이한 녀석이네."


 


-우에노 쥬리 좋아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헤헤-


 


"우에노 쥬리는 현역이지만 심신은 늙다리잖아. 비교대상이 다르다구. 비교대상이~! 그나저나 그거 들었냐?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제4사건>..."


 


 


"어이! 김매니아! 어디서 떠들고 있어? 나와!"


 


"크헉.."


 


화염의 이중 몽둥이라고 불리는 수학선생의 엄호령에 따라 끌려갈 수 밖에 없는 나의 전우 김매니아.
지옥 화염 마그마 구더기에서 살아돌아오도록 이 몸께서 빌어주마..
나는 친구의 죽음을 앞두고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같이 떠든 박소리! 네놈도 나와!"


 


"?!"


 


엉? 나는 기본 옵션이 벙어리인데 어떻게 떠든다는 거지?
나는 부당한 권력에 힘껏 무음의 저항을 해보았지만 막무가내 수학선생에게는 소용없었다.
그리고...열심히(?) 몽둥이 찜질을 받은 우리들은 엉덩이를 싸매고는 선채로 수업을 들었다. 왜?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앉을 수가 없었으니까..
얼마 후 엉덩이가 치유되기까지의 시간 3시간이 흐르고......
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소리야. 오늘도 밥 없냐?"


 


-응..-


 


조용히 문자를 써내려간다.
김매니아의 말대로 내 도시락은 없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게 된 나는 자취로 근근이 먹고 살아야할 정도로 돈줄구하기가 급급했다.
도시락? 그런 건 사치인 건 물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나는 절대로 준비할 수 없는..그런 물건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나는 수돗가로 향한다. 물로라도 배를 채워야지. 안그러면 오후 수업은 버틸 수가 없다. 김매니아 녀석이 내게 나눠먹자고 제안했지만 언제까지나 얻어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오늘은 사양했다.
진짜 배가고파서 죽을 것 같다!라고 느낄 때, 그 때가 되면 김매니아 녀석에게 쬐끔 의지해보는거다.


 


"... 그래 안먹는 건 좋은데.. 네 놈 밥 안먹고 약 먹으면 안되잖아? 약은 항상 식후에 먹는것일텐데"


 


"아.."


 


김매니아 녀석이 약 이야기를 꺼낸다.
녀석의 말대로 약간의 지병이 있어서 나는 약을 먹고 있다.
의사들은 어째서 식후복용이라는 걸 만들어내서 나를 괴롭게 만드는걸까? 집이 가난해서 밥도 못사먹는 애들을 배려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아~ 아니다. 대개 밥사먹을 돈이 없으면 약살돈도 없겠구나. 착각했다. (내가 쓰고 있는 약은 의료보험에서 자동으로 나온다. 어떤 시스템으로 되어있는지 당사자인 나는 당최 알 수가 없다)
어쨌든간에...식후복용이고 뭐고, 이제 난 모르겠다. 오늘 점심은 패스!
얼른 수돗가에 가서 물이나 한잔 마시러가야겠다.


 


-수돗가-



'꿀꺽~! 꿀꺽~! 꿀꺽~!'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목구녕까지 올라오는 물때문인지 구토가 밀려오지만 공복상태보다야는 정신이 살아있다.
이런 몸때문에 조금이라도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폭주(?)해버리고 만다..
그나저나 덥구나.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되는지 햇볕의 저주와 함께 찌는 듯한 공기가 콧구멍에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이런 상태엔 평소때보다 더욱 폭주하기 쉽고, 더욱 정신을 잃기 쉽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싫다.
근데 아직까지 모두들에게 폭주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는데.. 얘기해줘도 괜찮을라나? 에라~! 모르겠다. 잠자코 입다물고 있자니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바엔 차라리 모조리 불고 후련해지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내 비밀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단 첫마디를 꺼내기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여러분들 중에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작품을 본 사람이 있는가? <-참고로 애니매니아


그 작품을 보면 <등가교환>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주석을 달자면 얻은만큼 잃게된다라는 뜻이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내가 바로 그 경우다. 내가 어렸을 적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말을 잃어버리고 얻은 게 있다면 바로 이 능력...


 


 


"육갑떨지 말고 교실에 들어가는 게 좋을꺼다. 멍청아."


 


"닥쳐! 네 놈이야말로 어디론가 뽑혀가버려! 그렇게 커플들한테 자기 보금자리 뺏기는 주제에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솔로!"


 


"훗훗. 멍청하구만. 나는 내 맘 속의 연인을 품고 있기 때문에 솔로가 아냐! 들어나 봤냐? 자웅동주라고!"


 


자웅동주. 암 수가 한그루라는 뜻이다.
한 그루라 하면.. 나무. 그래. 나는 지금 나무와 대화하고 있다. 학교에서 제일 큰 소나무라고 하는데 자기 소개로는 일렉트릭 쇼크라고 한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나무주제에 락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기가 그렇게 지은 듯하다.
이렇게 나는 사물, 그리고 동물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인간의 말을 잃어버린 대신에 그 외의 모든 사물 동물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 것이다.
나름대로 등가교환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나쪽으로 부등호가 치우쳐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능력.. 너무 좋단 말야. 절대 쓸쓸함이란 걸 느낄 수 없으니까. 심지어는 내가 밟고 있는 풀밭마저도 나와 대화가 가능하니까.
그렇지? 풀밭?


 


"흥! 네 놈 놀이에 장단맞춰줄 이유는 없다! 매일 나를 밟고 있는 주제에! 노인공경도 모르는 녀석!"


 


"하아. 죄송합니다."


 


내가 밟고 있는 풀밭이라는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이 곳에서 정착했었기 때문인지 지식이 풍부하다. 인간으로 예를 들자면 보자.. 꼭 마을에 하나 쯤은 있는 만물박사 할아버지정도? 그 쯤 될 것이다. 고지식한 할아버지라서 그런지 누군가가 자신을 밟고 있는 걸 굉장히 싫어하신다. 하지만 그도 남자인지 여학생들이 풀밭을 밟는 건 굉장히 좋아한다. 이유는 위로 보이는 팬티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가끔 반바지를 입고 오는 여학생들은 싫어한다고 하던데, 음.. 뭐 아무렴 어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나저나 방금전까지 요상한 녀석이 여기 있었다."


 


"엥? 요상한 녀석이요?"


 


풀밭할아버지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190cm정도 되어보이는 키에 왁스를 덕지덕지 발라서 세운 머리카락, 그리고 콧수염에 쪼그만 뿔테안경이 인상적인 남자를 봤지."


 


"응? 그게 뭐가 요상한데요?"


 


"이 학교 교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따뜻해보이는 조끼와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지. 그리고 뉴튼의 중력작용의 법칙을 외면서 환호성을 지르더군."


 


"그건 확실히 이상한 녀석이군요.."


 


여름에 그런 두터운 걸 입고 다니는 것만해도 비정상인데 요상한 공식마저 입에 달고 다닌다면 그건 더할나위없이 이상한 녀석이 아닌가.
풀밭할아버지는 할 이야기가 더 남았는지 말이 더 길게 이어진다.


 


"정신없는 녀석이었다. 소나무 밑에서 솔잎떨어지는 걸 보고 계속 환호성을 질러댔으니까. 녀석때문에 소나무군 팔(나뭇가지)에서 짝짓기를 뜨고(?)있던 참새CC(캠퍼스커플)들이 무드깨져서 전부 날아가버렸다. 눈꼴 시련 애정공세에다 파탄을 가져다준건 나로써도 고마운 일이지만, 녀석은 너무 시끄러워.
그러고보니 정확히 5분 전에 이 곳을 떠났군. 누군가의 호출을 받고 떠나는 것 같더구만."


 


"하하..그런가요? 근데 그런거 일일히 설명안해주셔도 되는데요?"


 


"떼끼! 어른이 하는 말에는 뭐든지 애정이 담겨있는 법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들어라! 딴지 걸지말고!
그나저나 네놈 늦지 않았나? 수업종 친 지 오래됬다."


 


"컥!"


 


이런.. 손목시계를 보니 정말로 늦었다. 이 놈의 풀밭할아버지는 맨날 설교에 설교.. 그리고 항상 끝은 내게 지각선물을 안겨준단 말야..
안들을려고 해도 분위기때문에 안들을 수가 없다. 다음부터는 이 할아버지의 경로를 피해서 돌아다녀야겠다.
자자.. 서두르지 않으면 다음 수업에 늦을 것 같다. 어서 뛰어가야지.
하지만.. 또 이 나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도움 요청의 목소리가 저멀리서 들린다.
목소리의 발원지점은 학교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 직전의 화단 옆에 세워진 게시판이다.
여느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게시판인데, 아무래도 이 게시판에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내게 헬프를 요청한 것은 게시판의 보드 부분인 녀석이다.
명확히 녀석의 목소리가 잘 안들리니 좀 더 다가가지 않으면 안될 듯하다. 그래서 나는 게시판 쪽으로 전속력으로 뛰었다. 그러자 게시판보드의 목소리가 확고하게 들려온다. 그건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


 


"아아~ 소리군! 도와주세요~! 넘어질 것 같아요!!"


 


그렇군. 게시판의 보드와 대 부분의 이음새가 잘 맞지 않아 게시판 보드가 앞쪽으로 쓰러지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된다면...
게시판 바로 앞에 사람이 서 있다. 저 게시판이 그대로 쓰러지면 그대로 보드가 사람의 머리를 강타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뇌진탕이겠군.
얼른 서둘러서 저 보드를 받쳐야한다. 그때까지 잘 버텨줘! 보드군!


 


"크윽!! 잘 버텨야하는 건 나다!!!"


 


게시판보드와 대의 이음새부분인 나사못의 목소리였다. 늠름한 사나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걸 보아하니 힘겨움이 느껴진다. 아참. 그리고 보니 최근에 게시판 보드와 나사못이 사귀고 있다는 정보가 흐르고 있던데 그게 정말이냐? 나사못?!


 


"크으...진짜다. 하지만 그런 말하기전에 어서 도와줘!!! 이대로라면 보드양의 얼굴이 엉망이 되버린다고!"


 


"라져. 이제 얼마안남았어!"


 


나는 전속력을 다해 게시판쪽으로 뛰었고, 쓰러지기 직전에 게시판보드를 받칠 수...!!!
없었다.


쾅!


 


"쿠헉!!"


 


게시판 보드 앞에 서있던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게시판에 머리를 정타로 직격한 것으로.. 내가 게시판을 받친 것이 아주 간발의 차로 엄청난 데미지를 입히고 말았다.
하지만..나로써는 최선을 다했다고. 이 남자의 부상이 큰 게 아니기만을 빌어야지 뭐.


 


"으으.."


 


헛. 벌써 회복된건가?  남자가 얕은 비명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게시판을 다시 바로 잡아 세우고는 내 쪽을 쳐다본다.
젤을 덕지덕지 바른 머리, 안경에 콧수염.. 그리고 엄청난 키. 더워보이는 복장 등등..오버랩되는 장면이 몇 개 있다. 이건 분명 아까전에 풀밭할아버지가 말한 그 남자일 것이다. 남자는 고통에서 해방된 후 내게 말을 걸었다.


 


"소년! 나를 도우려 한 점 고맙게 생각하지. 하하! 하지만 그전에 위험해라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피했을텐데, 왜 그러지 않았나? 덕분에 나의 엘레강트한 뇌세포들이 생명을 잃었어! 세계의 지적유산의 막대한 손실이라고 하하! 자네 듣고 있나? 어디가는건가!"



기껏 구해주고 나니 저런 떨거지 같은 소리를 하다니.. 흥미가 떨어진다. 오히려 잘됐지. 저런 녀석에게 흥미를 계속 가지고 있을바엔 얼른 교실에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덜 혼나는 게 낫다. 얼른 돌아가버리자.


 


"어이! 상큼 발랄하면서 남자다운 소년! 왜 대답을 안하는가?! 나의 질문을 무시하면 큰 손해다! 나중에 울고불고 사인해달라고 해도 안해준다! 엉? 소년! 안들리나? 벙어리냐! 어이?!!"


 


씹자.
씹는게 건강에 이롭다... 후..
오늘도 평범한 나날이 되긴 글러버린건가? 저런 녀석과의 조우는 왠지 불길하다.
과연 오늘의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