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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여름이야기

2007.08.02 00:40

소엽 조회 수:570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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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의 달콤한 꿈은 내 두 뺨에 전해지는 아픔과 함께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잔뜩 찌푸린 인상을 하고 눈을 떴을 땐, 예의 환자가 내 양쪽 볼을 사정없이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제 깼어?”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질문과 함께 멋대로 잡아당기던 내 볼을 놓아주며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나는 아픈 볼을 달래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런 나를 도우려는 지, 작은 동물마냥 웅크리고 있던 그 애가 피식 웃으며 정적을 깨트렸다.


 “학교는 가야지.”


 그리고는 ‘으챠~’하며 일어나 기지개를 피고는 이내 가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집에 도착하니, 잔뜩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가 어디 갔었냐고 다그치셨다. 어머니는 심각해 보였지만, 나는 그게 어쩐지 기뻐서 실실 쪼개며 잠깐 바람을 쐬러 갔었다고 말씀드렸다. 얼빠진 놈처럼 실실 거리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보였을 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의 질문도 책망도 하지 않으셨다.




***




 하루의 시작이 다른 날과 다르다는 것이 꽤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을 오고 가던 길이 조금은 생소한 기분도 들고, 바람도 어딘지 모르게 부드럽고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꿈결에 들었던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학교로 향했다.




 1교시가 끝나고 운효 녀석이 자기자리로 나나 장태, 석진이 녀석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죄다 몰려갔더니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흘리며 뜸을 들였다.


 “야야,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말 안하면 우리 간다.”


 석진이와 나는 그렇게 녀석을 재촉하며, 한편으로는 녀석을 등지고 가는 시늉을 해보였다.


 “아~ 진짜! 자. 자. 자!”


 안달이 난 운효는 결국 숨겨둔 패를 꺼내 보이며 우리를 붙잡았다. 녀석이 책상 위에 꺼내 놓은 것은 다름아닌 mp3.


 “어, 이거 웬 거냐?”


 “으흐흐흐. 사촌 형이 자긴 신형 샀다고 이건 나 줬어. 부럽지, 자식들아~”


 “으이구…….”


 녀석은 실실 쪼개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조금 유행이 지난 모델이긴 했지만,  실은 나도 mp3을 사려고 용돈을 모으고 있던 중이라 은근히 부러움과 질투가 일었다. 하지만 석진이는 이미 가지고 있던 터라 그런지, 녀석의 유치한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 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장태는 슬쩍 입가에 미소를 띠더니만, mp3을 슬그머니 자기 호주머니에다 넣고는 복도로 도망쳤다.


 “야, 고맙다. 잘 쓸게. 으흐흐흐흐…….”


 “아씨! 야, 서장태! 너 인마, 거기 안 서?!”


 “어이구, 저것들을 친구라고. 야, 아는 체 하지 마. 아는 체 하지 마.”


 자신의 보물을 들고튀는 장태 녀석을 따라 운효도 복도로 뛰쳐나갔고, 석진이는 그런 둘을 보면서 내게 아는 체 하지 말라고 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녀석들을 보자니, 절로 웃음이 나와서 나는 연신 키득거리며 돌아갔다.


 앉아 있다 보니, 어째 새벽녘에 하진영이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그래서 무심코 그 애가 있나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려 확인을 해 보았으나, 화장실이라도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석진이 녀석에게로 갔다.


 “야, 너 혹시. 그 노래 아냐?”


 “뭐?”


 “그... 제목이 뭐라더라? ...아! 새!”


 “뭐냐, 그게?”


 “아~씨. 그러니까, 뭐더라?”


 나는 기껏 기억을 짜내어 녀석에게 제목을 말해주었지만, 그 정도의 정보로 무슨 노래인지 안 다는 것은 묘기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했고, 녀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멀뚱멀뚱 바라볼 따름이었다.


 “나-참. 뭔지, 말을 해야 알지.”


 “아씨~ 아, 음은 이런데. 으으음~으으으으으으음~”


 기억을 더듬어 음을 알려주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녀석은 여전히 무슨 짓거리냐는 듯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반응에 난처해진 나는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가사의 일부분이 떠올라 녀석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아!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그리고……. ‘죽은 새를 선물할게.’ 뭐, 이런 가사였는데!”


 “앙?”


 간신히 쥐어 짜낸 기억도 쓸모가 없었는지, 녀석의 반응이 영 시원찮아서 나는 기운이 좍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모르냐? 하긴, 그런 이상한 노래를 아무나 듣겠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멋대로 내뱉고는 자리로 돌아가려는 데, 석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나의 질문에 녀석은 스읍하고 숨을 들이마시더니만,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 건가 싶어 녀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맞다. 그거 ‘자우림’ 노래다.”


 “자... 뭐?”


 “자.우.림.”


 “그게 뭐냐? 가수야?”


 “어이구. 그래, 인마! 정확히 말하면 4인조 혼성 록그룹이다, 이 자식아!”


 “아, 그 자식 되게 재네. 모를 수도 있지…….”


 “넌 인마, 좀 심해.”


  녀석의 지적에 ‘록그룹 따위 알 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 봐야 나만 멍청하고 나쁜 놈이 될 것 같아서 그저 떫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내심 미안해졌는지 녀석은 괜히 코끝을 긁적이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네가 자우림 노래는 어떻게 아냐?”


 “아, 그냥. 누가 부르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가사가 하도 이상해서 물어 본거야.”


 “으음……. 하진영이 노래도 불러?”


 “응. 신기하더라. 어...!”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야기 하는 통에, 나는 그만 말할 생각이 없던 것 까지 털어 놓고 말았다. 그러나 깨닫고 난 뒤에는 이미 늦어서 낚시질에 성공한 낚시꾼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다. 나는 뭐라고 설명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다급해졌지만, 이윽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바람에 속으로 ‘젠장’을 연신 외쳐대며 자리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