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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마지막 투신> 환상이 사라진 후에

2007.07.31 17:14

비욘더 조회 수:582 추천:3

extra_vars1 환상이 사라진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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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영원을 꿈꾸곤 한다. 그런 소박한 마음과 함께 기대를 품고는 한다. 그래, 그런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꿈과 함께 살아간다. 꿈이 없는 인간은 죽는다. 그렇다면… 나는 죽어있던 것일까? 그는 살아있던 것일까?


콰앙!


한차례 큰 폭음과 함께 원형관을 감싸던 철제문이 펑하니 날아가더니 한 짐승을 날려버렸고 그 충격에 놀란 소녀는 넘어졌다. 천장에서는 모래부스러기가 떨어지고 벽이 흔들리는게 연구실 전체가 그야말로 혼란 자체.


그 소동 속에서 커버가 박살난 원형관은 푸쉬쉭 소리를 내며 안에있던 가스를 배출시켰고 소녀는 머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장갑을 낀 손 하나가 텅하니 먼저 나오더니 푸르른 녹색 안개가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그 속에서 터벅터벅 한 명의 남성이 밖으로 나왔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에 낡아보이는 옷과 구두, 거기다 왼쪽 눈에는 가늘고 긴 상처를 가진 관 속의 남자. 그는 천천히 눈을 뜨며 연구실 문 너머의 기괴한 짐승 무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이를보며 옆에있던 노(老)박사는 전자기기의 레버를 당겼다.


"벌써부터 싸울 생각이란 건가."


찰캉. 짤막한 기계음과 함께 남자의 부근 바닥에서는 웬 수납장들이 솟아나왔고, 그것들은 곧이어 안에서 수십기의 총기를 내보여었다. 남자는 낡은 장갑을 낀채 하나씩 무기를 양손에 잡았고 이어서 그 짐승들을 향해 탄환을 발사. 연구실은 순식간에 전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괴성을 지르며 남자를 향해 달려드는 기괴한 짐승들. 그들의 앞에서서 방아쇠를 당기는 상처의 남자. 푸른 빛을 내뿜으며 총탄은 이곳저곳으로 날아갔고 그 괴수들은 반짝반짝 하얀 빛을 뿌리며 몸이 가루가 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생쥐라던지 들개 같은 평범한 짐승.


공포가 감도는 그 말도 안되는 전장속에서 소녀는 남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 투신> 환상이 사라진 후에


 


"서라! 당장 거기 서지 못해!!"


호버크래프트형 경찰차 수십대를 뒤로한채 컨테이너가 연결된 트레일러 하나가 황야에서 끈질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계속 저쪽에선 마이크로 서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벌써 발포까지 하고 있는 상황.


총성과 함께 이리저리 날아가는 총알을 보며 트레일러안에서 뚱뚱한 남자는 옆에있던 마른 남자와 함께 서로 부둥켜 안으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우으으으으윽. 그래서 내가 하지 말자고 했잖아, 록!"


"시, 시끄러워! 군용 컨테이너를 뺏자고 고른건 너라고, 벤!"


"두 사람 다 그 쯤 해둬!! 투정도 살고나서야 할 수 있을 것 아냐."


핸들을 거칠게 돌며 엑셀을 밟는 중년남성의 운전에 록과 벤은 그제서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중년의 남성 운전수, 존은 그런 그들에게 괜찮다며 연신 말을 해주기는 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나쁜듯 추격대와의 거리는 눈에 띄게 좁혀져만 가는게 가히 최악중의 최악.


애초에 이런 무거운 짐을 실은 채로 추적을 뿌리친다는 자체가 무리니 어쩌면 들킨 시점에서부터 그들의 운명은 정해졌다고 보는게 좋을 정도다. 존은 좌우의 사이드 미러를 번갈아보며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찾았지만 행운은 안타깝게도 그들의 편이 아닌듯 백미러에 최악이 하나 더 모습을 드러냈다.


"조, 존!!"


"마, 말도안돼! 어째서 저런게!!"


뚱뚱한 벤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미러에 비치는 것은 거대한 철제 석상. 아니, 그것은 그들을 바싹 날아서 쫓아오는 것이 하나의 거대 로봇. 30년전의 전쟁에서 이용되었다는 병기 테트로이드였다. 역시 군용 것을 훔친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란 것일까?


백에 달린 부스터에서 불꽃을 뿜으며 테트로이드는 순식간에 다가와서는 트레일러의 측면을 슬쩍 가격. 쿵하니 옆으로 밀리며 속도가 감속되자 이걸 노렸듯, 트레일러가 가는 방향에 미리 착지해서는 한 손에든 머신건으로 존을 향해 겨누기 시작했다.


"크윽!"


콰앙!


허나 소리가 들린쪽은 오히려 로봇쪽. 눈을 꽉 감고있던 남자 셋은 그 소리에 서서히 눈을 뜨자 그 곳에는 또 하나의 테트로이드가 나타나서는 그들을 공격하려했던 기체를 힘껏 어깨로 날려버리고 있었다.


"나, 나르쉘!!"


동시에 외치는 세 남자. 귀도 좋은지 그걸 들었던 것일까. 공격하던 중에도 그 테트로이드는 오른손을 까딱거리며 세 남자에게 인사표시를 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여간 애를 먹인다니까."


한숨을 쉬며 기체의 콕피트 안에서 레버를 당기는 나르쉘. 링형의 동그란 고글을 쓴채 그녀는 패달을 힘껏 밟았고 이에 상대 테트로이드는 완전히 밀려서 텅하니 나가떨어져 버렸다.


곧바로 때를 놓치지 않고 왼쪽 어깨에 장착된 쇼크웨이버를 발사. 하얀색 파장이 쌩하니 날아가며 상대 기체를 덮쳤고 이에 모든 기기들이 교란되기 시작. 적을 마비시키는데 손쉽게 성공,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욱!!"


순간 공중에서 날아든 미사일을 피하며 몸을 돌리는 나르쉘의 테트로이드 '페이즈'. 공격이 날아온 방향에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테트로이드나 그녀의 페이즈보다 훨씬 상위 것인 '카이레드'. 그것도 두 기씩이나 오고 있는게 여간 불리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최대한 멀리서 시간을 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착지를 한 순간 바로 부스터의 점화율을 상승시키기 시작. 허나 그 순간 상대방 카이레드로부터 발사된 쇼크웨이버가 페이즈의 왼쪽 다리에 명중되서는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됐다.


"크윽!"


"나르쉘!!"


"상관말고 먼저가요, 존 아저씨!"


트레일러를 근처에 세우며 도우려는 존이었지만 로봇끼리의 싸움에 무기도 없는 그가 방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누가봐도 뻔한 사실. 결국 묵묵히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라고 외친 후 그는 다시 트레일러에 올라탔다.


"흥, 뭐야. 테트로이드길래 기대하며 나왔더니 목소리가 꼬마잖아? 그것도 여자아이라니."


"뭐 어때. 어쨋든간에 저것만 포획하면 훈장은 따논 거라고."


무전으로 서로 연락을 하며 벌써부터 끝난 후의 일을 소곤거리는 군의 파일럿들. 하긴 따지고 보면 그들이 그럴만도 하다. 테트로노이드 같은 인간형 로봇은 레버나 버튼으로 움직여서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단지 보조적인 역할만을 수행, 결국 로봇을 조종하는 것은 링형태의 고글처럼 생긴 정신융합센서. 이것을 낌으로써 파일럿은 테트로노이드를 마치 자신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다.


허나 그렇게 쉬운만큼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높은 융합률. 대개 사람들의 평균 융합률은 40%이나 로봇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 50%이상이 필요. 파일럿으로써 될려면 최소 60%이상, 그리고 현재 이 두 파일럿이 타고있는 것은 엘리트를 위한 신형으로 그 최소요구치는 무려 70%이상인 것이다.


자기몸의 1%를 다룰 수 없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럼 더해서 10%를 다룰 수 없다면? 더해서 30%를 다룰 수 없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와 마찬가지로 로봇 파일럿에게 있어서 융합률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나르쉘과 맞붙는 두 명은 모두가 엘리트급의 파일럿. 기체성능에 더해 따라갈 수 없는 조종실력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하야아아앗!"


카앙! 카앙!


어느샌가 그녀에게 달라붙은 두 카이레드는 허벅지에서 초진동나이프를 꺼내더니 그것으로 페이즈의 머리를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다. 로봇의 조종이란 자신의 몸과 같은 조종. 그렇기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융합률을 늘리려고 인간형으로 설계가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에게서 만약 머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팔이 다치면 몸을 잘 겨눌 수 없듯 로봇의 팔이 고장나면 융합률또한 5,6% 줄어들게된다. 그리고 헤드의 격파는 최소 40%의 하락. 조종자체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헤드의 격파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크윽!!"


나르쉘또한 초진동나이프를 두 자루 꺼내어 방어하고는 있지만 아무리 상대방이 노릴 곳을 알고있더라도 힘든 것은 힘든 법. 이리저리 치이는 공격에 카메라가 빙글빙글 덩달아 그녀의 시각도 빙글빙글.


상대방은 전투의 프로인듯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않고 조금의 헛점도 용납하질 않고 있다. 게다가 거리상 쇼크웨이버를 사용했다가는 자기기체도 같이 전파교란장에 휩싸일 상황. 어떤 기체가 먼저 오작동에서 회복될지는 당연히 뻔했고 그렇다고 이렇게 있어봤자 1, 2분내로 당할 것이 틀림없다.


"아앗!"


채앵!


그리고 순간 그녀의 양 손에 있던 초진동나이프가 동시에 손에서 벗어나버리고 말았다. 이 짧은 사이 생각을 하는동안 떨어진 융합률, 그리고 그로 인하여 생긴 빈틈! 상대방은 두 명 다 이 틈을 노리지 않고 페이즈를 단숨에 무장해제시켰다.


이제 방법은 없다. 칼날은 페이즈의 헤드를 향해 곧장 날아왔고 나르쉘은 양 팔을 올려 그 공격에 정면을 맞섰다.


"아닛?!"


투콱!


곧바로 페이즈의 팔을 뚫고 헤드에 박히는 카이레드의 초진동나이프. 이 상태로는 곧바로 팔이 박혀있으므로 간격을 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작동되는 쇼크웨이버에 세 기체는 모두 전파교란에 휩싸여 무릎을 꿇은 채 정지. 그리고 나르쉘은 콕피트를 열고는 바로 자신이 처음에 쓰러뜨렸던 기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앗차! 먼저왔던 테트로노이드가!!"


기이이잉.


예상대로 파일럿은 이미 도망간 직후라 해치도 열려있는 상태. 카이레드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고는 있지만 곧바로 움직여서는 초진동나이프를 휘두르는 나르쉘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대로 헤드파츠를 박살내버리자 무릎을 꿇은 채 침묵하는 카이레드. 숨을 헐떡이며 나르쉘이 다음 상대를 노리려할 때, 그 상대는 고맙게도 미리 그녀에게 몸소 다가와주었다.


"네까짓 꼬맹이가 감히!!"


"크윽!"


불꽃같이 대각선으로 내리쳐진 칼날에 피하기는 했다만 동강나는 오른팔 파츠. 이로써 융합률 감소로 싸움은 더욱 힘들어졌고 상대방은 아주 기합을 넣고 달려드는게 아직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놀라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쇼크웨이버에 그정도 거리에서 당했다면 최소 5분간은 작동불가능인게 정상일텐데 상대는 단 2분만에 이미 반이상은 시스템을 회복. 이것이 엘리트와의 실력차이란 말인가. 상황을 보니 앞으로 30초만 있으면 상대방의 시스템은 복구가 될 것이 틀림없다.


오른팔 파츠가 잘린 것이 오른손잡이인 나르쉘에게는 패널티가 너무도 크게 작용. 고로 정상적으로 싸워 이기기도, 도망치기도 당연히 무리. 그렇다면 방법은? 방법은?? 나르쉘은 이빨을 꽉 물었고 순간 자신이 처음 양 팔을 들어 한 기를 해치웠던 것을 생각해내었다.


"이것으로 끝이다!"


일단은 나머지 한 팔부터 노리고서 날아드는 카이레드의 초진동나이프. 그리고 이에 나르쉘은 오히려 팔을 들이밀침으로써 상대방의 팔파츠를 자신의 팔파츠에다 끌어박아버리었다.


"아닛!!"


뺄려고하나 꽉 박혀있는게 쉽지가 않다! 순간 그 틈을 노려서 망가진 오른팔을 있는 힘껏 날리는 나르쉘. 서로가 팔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피하기는 당연히 무리. 카이레드가 안간힘을 써서 어떻게든 자신의 팔을 빼낸 순간 나르쉘의 기체는 오른손을 그것의 헤드에 박아 완전히 산산조각내버렸다.


 


 *  *  *


 


"어이, 벤. 너무 많이 먹지말라고."


"그러는 록이야 말로!"


시간은 벌써 달이 떠있는 것이 밤을 훨씬 지난 새벽. 나무가 우거진 산속에서 모닥불 하나를 피우며 록과 벤은 컨테이너에 있던 식량으로 배를 채우고 있다. 존또한 고기 한 조각을 구우며 오늘 얻은 수확량을 보고는 흡족히 만족. 다구운 스테이크를 접시에 옮긴뒤 야채볶음을 얹으며 그는 바위너머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곳은 바로 아래가 상당히 경사져 내려있는 것이 산 아래쪽이 완전히 다보이는 절묘한 위치. 그런 장소에 머리를 보자기로 감싼 한 소녀가 낡은 책을 열심히 정독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주황색 원피스는 이미 낡아서 여기저기가 헐은게 드레스로 보기는 너무도 무리. 그래서인지 아래에 입은 긴 청바지는 참으로 입는 이의 독특한 패션센스를 나타내주고 있었다.


존은 조심히 옆에 다가가서는 포크와 함께 음식을 건넸고 소녀는 그대로 왼손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오른손으로 그것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재미있냐?"


"정확히는 신기해서 보는거야."


입에다 잔뜩 음식을 잔뜩 쑤셔넣은채 대답하는 나르쉘. 뭣보다 여자아이가 음식을 튀기며 말하는 모습이 상당히 우악스러운데도 존은 이미 익숙해졌는지 보아왔는지 말없이 배낭에서 코코아통을 꺼내며 건넸다.


마찬가지로 나르쉘또한 익숙한지 그대로 받아마셔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대신 그녀는 존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존. 21세기에는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잘 살았다는데 사실일까?"


"글쎄. 적어도 지금의 수백 배는 괜찮았다고 하더군. 전화기도 집집마다 있었고 컴퓨터나 TV란 물건도 꽤 많았다고 들었어."


"…그리고 그때도 TV가 사람들을 속여왔단 말이지?"


"뭐…그랬다고 하더군."


나르쉘은 코코아통을 내려놓고는 다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왜 정부는 사람을 속였던거지?"


"사람이 사람을 속인게 어디 한 두번이던가. 2000년대 정부라고해서 크기외에는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이상해. 그렇게 이득만 추구하다 전쟁이 난거잖아. 계속계속 난거잖아. 핵전쟁마저 일어나서 모두가 망해버린거잖아. 하지만… 아무 것도 바뀐게 없어. 지금도 모두가 라디오에 속고 전쟁은 멈추지를 않아."


"…뭐, 그런거지."


존은 코코아를 배낭에 넣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매일 그런것만 볼꺼면 왜 책을 읽냐?"


"흐응~! 존은 뭘 몰라. 역사란건 말이지, 원래 나쁜 쪽을 읽는게 훨씬 재미있다고!"


"동네 싸움 구경같이 말인가?"


"우욱!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오!!"


턱. 나르쉘은 좀전까지 읽던 그 커다란 책을 놓고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역사란 말이지. 언제나 진실을 감추고 있어. 분명 여기써있는 것이 전부가 진실은 아닐꺼야. 그리고 여기있는 것 중에 믿을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자면 신화라던지 전설같은 것들도 무조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어. 무엇이 알아야할 것이고 무엇이 버려야할 것인가. 그런걸 알아가다보면 분명 무언가가 바뀔거라고 생각해. 그게 바로 재밌는 점이라고!"


"뭐야, 맞잖아. 싸움 구경도 계속 보다보면 뭔가가 바뀐다고."


"틀려어~~~엇!"


백과사전만한 두꺼운 책을 들며 존을 잡으러가는 나르쉘. 존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맞다가 결국 슬쩍 뒷춤에 숨기고있던 무언가를 꺼내고는 나르쉘을 향해 던져주었다.


"자, 받아."


"엣?"


반사적으로 손에 잡은 그 묵직한 물건. 그건 틀림없는 책이었다. 멍하니 손에쥔 물건을 바라보며 기쁜 마음에 나르쉘은 그에게 안기며 고맙다고 외쳤다.


"그렇다고 밤새서 읽으면 안되."


"응! 걱정말라고~!"


까딱까딱. 손가락을 흔들며 나르쉘은 ok사인을 보냈고 그대로 숲 속에 숨겨둔 자기만의 보금자리, 테트로노이드를 향해 달려들어갔다. 이번에 애용해오던 페이즈가 다 박살나는 대신에 가져온 카이레드. 뭐 머리는 다른 기체것을 박아넣었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해치를 열고 안에 들어가서는 나르쉘은 담요를 덮고서 얼굴만을 내민채 실컷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징기즈칸, 나폴레옹, 알렉산더등등 갖가지 전쟁속 장군들. 존이 가져온 책은 전쟁에 관한 역사를 차근차근 기록해놓은 역사서였다. 장미전쟁, 영일전쟁, 독립전쟁, 베트남 전쟁, 세계 1차 전쟁, 핵 전쟁, 그리고……


"…종말전쟁."


콰르르릉!


나르쉘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크게 진동을 하더니 카이레드는 기울어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한밤중에 갑자기 지진이라니, 그보다 존은? 록과 벤은?!?


나르쉘은 급히 융합센서를 끼고서는 카이레드를 움직였고 트레일러를 향해 다가간 헤드의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그 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이게 대체 뭐야!!!"


녹색 파도. 그 한마디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무, 바위, 흙, 철, 짐승등등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서 자신의 것으로 하는 녹색물질이 보이고 있다. 거대한 늑대 얼굴에 곰의 발톱, 사자의 얼굴, 탱크의 포대등등 이것저것들이 다합쳐서는 괴성을 지르며 모든 것을 먹어치워가고 있었다.


그들의 컨테이너와 트레일러도… 그리고 록과 벤, 존마저도 말이다!


"록… 벤… 존!!"


"도망가 나르쉘! 레퀴엠이야!! 닿는건 전부다 먹어치운다고!!!"


"그, 그럴리가 없어! 그것들은 30년전에 멸망당했잖아!!"


"도망가…도망가 나르쉘!!"


록과 벤, 존을 향해 달려가서는 급히 팔을 그 젤리같은 형태를 향해 집어넣었지만 순식간에 그것은 반대로 팔을 타고서는 나르쉘의 기체를 잠식하기 시작. 억지로 뺄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팔파츠가 그대로 부서져 동강나버리고 말았다. 존과 록, 벤은 이미 그것에게 먹혀버리고만 상태. 그리고 그것들은 몸을 나누며 거대한 늑대인간 혹은 기괴한 짐승의 형태로 나눠져서는 카이레드를 향해 덮쳐오기 시작하였다.


"큭!"


결국 부스터를 터뜨려 일단은 후퇴하는 나르쉘. 상공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로 떠돌아아다니던중 지상을 내려다보니 레퀴엠은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니었다. 보이는 곳 전체가 레퀴엠에게 휩싸이고 있다!


건물도 자동차도 모든 것이 먹힌다. 군인들도 총이나 대포, 테트로노이드로 공격을 하지만 그것의 압도적인 힘 앞에는 결국 무용지물. 거대한 녹색 레퀴엠속에서 나온 괴수형태의 놈이 테트로노이드고 뭐고 죄다 파괴해버리고는 순식간에 몸 안에 흡수해버리고 만다.


공중에서 입을 다물지 못한채 손을 떨며 이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나르쉘. 허나 그녀라고해서 안전하다는 법은 없었다.


쿠웅!


급격한 충격에 몸을 돌아서보니 새형태의 레퀴엠이 날아다니고 있는게 보였다. 물론 새형태라고 해도 날개는 커다란거 네 장에 머리는 뱀같은 것이 6개나 달렸고 그 끝에는 사자 얼굴이 붙어있지만 말이다. 이것은 실로 정말 위험한 사태이다.


나르쉘의 카이레드에게 달려있는 무장은 쇼크웨이버와 두 자루의 초진동나이프뿐, 총은 한 자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살인을 결코 저지르지 않기위해 이런 무장을 고집하는 그녀였으나 지금에 와서 그것이 후회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녀가 아는 지식안에서 쇼크웨이버는 기계한테만 소용이 있지 생물한테는 무용지물이다. 하물며 저것은 기계의 형태는 조금도 보이지 않은 것으로보아 생물만을 먹어서 융합된 형태. 공중근접전은 애초에 테트로노이드가 부스터 연료는 충분하지 않는 것이기에 현저히 불리하다.


일단은 도망을 치자. 그렇게 생각하며 급히 기체를 틀었지만 바로 상공에 있던 또다른 녀석에게 가격을 당하고 나르쉘의 카이레드는 땅으로 추락했다.


"아아아아아악!!"


이리저리 빙빙도는 것에 공포마저 느끼고 비명을 지르는 나르쉘. 반사적으로 패달을 밟고 레버를 당기자 카이레드는 몸을 돌려서는 낙하속도를 줄여서는 땅바닥에 부닥치기 바로 직전에 다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공비행으로 땅에 닿을락말락한 상태로 도망가는 카이레드.


부스터가 손상을 당해서 파워가 20% 떨어진게 속력이 더욱 줄어들고 말았고 손상또한 낮의 전투도 있었기에 만만치 않은 상태이다. 이대로는 곧 따라잡혀서 그녀또한 존처럼 되고 말 것이다. 일단 녀석들도 무리내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듯하니 이대로 최대한 도망가보자.


'그래, 일단은 도망가보자. 그렇게 살아남고서 생각해보는거야. 지금은 아무 것에도 신경쓰지말고 오로지 앞을…?!'


그렇게 또 마음먹은 순간에 나타나는 장애물 하나. 융합센서쪽으로 전달되 보이는 헤드의 카메라에는 카이레드의 진로전방쪽을 달려가다 이쪽을 쳐다보는 한 늙은 남자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이런 바보같으니!!"


철컹.


방향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르쉘은 감속함과 동시에 콘크리트 바닥에다 카이레드를 박으며 그대로 남자를 손으로 받고는 미끄러져 나갔다.


"크으으으윽!!"


지진마냥 나오는 큰 뒤흔들림에 악을 쓰고 버티는 나르쉘. 그렇게 카이레드는 그대로 바닥을 긁으며 미끄러지다가 한 창고에다 몸을 들이박았고 창고는 문부터 시작해 모든게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펑하니 큰 소리와 함께 뿌연 모래연기를 퍼뜨리고는 멈춰서는 카이레드. 나르쉘은 콜록거리며 해치를 열고나왔고 곧바로 카이레드가 손으로 감싼 노년의 남자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갔다.


"이, 이보세요! 괜찮으세요! 이보세요!!"


"아아, 뭐 괜찮다."


"에…?"


예상과 달리 너무 쌩쌩하게 손안에서 가운을 털며 나온 남자. 주름살이 집힌 얼굴이며 긴 하얀머리와 수염이며 손에든 가방을 보니 의사나 과학자인듯한 남성. 그는 바지를 털고는 나르쉘을 바라보고는 놀라서 물었다.


"꼬, 꼬마. 네가 저것을 조종한 거냐?"


"아, 네. 아니… 그보다 이런 곳에 있을 여유가 없어요! 어서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놈들이!!"


"음?!"


쾅! 이번엔 창고 벽을 부수며 나타난게 황갈색으로 치장된 쇳덩이 로봇이 아닌 녹색빛의 사람몸집만한 크기의 늑대. 레퀴엠! 그것도 수십 마리가 동시에 나타났다!!
다리를 부르르 떨다가 이윽고 카이레드의 콕피트를 향해 몸을 돌리는 나르쉘. 허나 나르쉘의 손을 턱 잡고서 노년의 남자는 창고 안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엣? 아, 아저씨…."


"박사라고 불러. 그보다 서둘러라!"


이쪽이 뛰기시작하자 저쪽도 덩달아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단거리 달리기가 시작되고 승리는 다행인지불행인지 소녀와 박사쪽. 둘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는 철제자동문을 열어젖히고 한 지하 연구실에 들어서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다시 닫고는 잠그는 노(老)박사. 나르쉘은 카이레드에 타려는 그녀를 이쪽으로 끌고온 그의 바보스러움에 한탄하며 소리를 질렀다.


"왜 날…!"


"늦었어. 만약 기체를 타려고했다면 녀석들이 순식간에 널 삼키고 말았을 거다. 이쪽이 훨씬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


"엣…."


"뭐,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겠지만…."


쾅. 쾅. 쾅. 쾅.


문에다 몸을 냅다 들이박는지 한번 소리가 날때마다 연구실 자체가 흔들려 천장의 모래가 떨어지는 것이 공포가 보통이 아니었다. 기체를 탈 수 없음에 불안감마저 커버려서인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는 나르쉘. 그러던 중 벽이라도 있는지 발 뒤꿈치는 무언가를 툭 치고 멈췄고 소녀가 돌아보자 그곳에는 커다란 원형관이 세로로 세워진채 푸쉭거리며 톱니를 돌리고 있었다.


겹겹이 철갑으로 감써져있으면서도 안에서는 푸른빛과 함께 안개같은 것이 꽉 차있는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요사스런 물건. 소녀는 그것을 보자 알 수 없는 뭔가에 가슴이 더욱 두근거림을 느꼈다.


"복원까지는 20분…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콰앙!


허나 그 순간 박살이나며 무너지는 철제자동문. 뿌연 먼지를 흩뿌리며 녹색피부의 늑대형 레퀴엠이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한걸음한걸음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사는 땀을 흘리면서 계속 기기를 만지작거렸고 나르쉘은 그대로 공포에 몸이 얼어붙음을 직감.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살려달라는 애원을 지르고 있는 그녀였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목소리는 계속계속 점차 커져나갔고 결국 레퀴엠 한마리가 그녀앞에 나와서는 침을 흘리며 이빨을 쩍벌리자 나르쉘은 울며 고함을 질렀다.


"사, 살려줘!!!!"


콰앙!!


그리고 이어서 들린 충격음과 함께 나르쉘의 뒤에서 날아간 철겹커버. 그것은 그녀와 레퀴엠 사이에 쾅하고 떨어져서는 땅바닥에 그대로 박혀 조각나 버렸고 레퀴엠들은 모두 이 현상에 몇걸음 뒤로 주춤거리며 이를 갈기 시작했다.


박사도 의아스럽게 이모습을 바라보지만 곧 스크린에 나타나는 수치에 자기 스스로도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라 말한다.


"스, 스스로 깨어났단 말인가…."


커버가 부서진 원형관에서는 푸른 녹색빛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속에는 한 명의 남자가 눈을 날카롭게 뜬 채 걸어나오고 있었다. 헐고 낡아빠진 흰색 장갑과 흑색 옷에 헝클어진 검은 머리. 왼쪽 눈에는 길고 가느다란 상처를 지니고 있는 그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채 나타났고 레퀴엠들을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굳이 노려보지 않더라도 그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심장이 너무도 뛰는 나머지 폭발할 것만 같은 나르쉘. 그녀는 이빨을 덜덜 떨며 원형관에서 나온 남자를 바라보았고 노박사는 전자기기의 레버를 당기며 말했다.


"벌써부터 싸울 생각이란 건가."


챠카강. 챠카강.


바닥의 커버가 열리면서 나온 수십 종류의 무기 수납장. 그곳에서 남자는 양 손에 총을 꺼내들고는 냅다 녀석들을 향해 탄환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한번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푸른 빛을 내뿜으며 나가는 총알. 그것은 레퀴엠과 접촉하자마자 하얀 빛으로 녀석의 몸을 분해시켜 터뜨렸고, 그렇게 분해된 곳에는 나무라던지 들개, 생쥐같은 것들이 놈들의 안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저건…."


"테트론을 사용해만든 특수탄이지. 놈들만을 제거해서 구속된 생명을 빼내는 탄환이다."


"…테트론."


나르쉘의 의문에 구해준 보답인지 친절히 설명을 해주는 박사. 허나, 그녀가 놀랐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레퀴엠이라는 압도적인 공포, 압도적인 파워, 압도적인 재앙. 그것에 정면으로 맞써는대도 그 남자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오히려 놈들을 물러서게 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윽고 옆에 있던 버튼을 눌러서는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이에 그가 서있던 부분이 점차 위로 올라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장의 문이 열리면서 올라가는 가운데 그는 수납장에서 새 코트와 바지를 꺼내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구두, 장갑, 셔츠, 혁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서 남자는 머리를 뒤로 휙 넘겼다.


쿠웅. 동시에 그가 패션쇼를 끝내자마자 멈춰서는 엘리베이터. 오랜만에 나온 바깥 세상은 검은 화재와 녹피부의 괴수들이 우글거리는게 구역질이 나는 아수라장. 그 속에서 남자는 터벅터벅 걸어가며 양 손에든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다시한번 난사가 시작되서 하얀 빛을 폭죽처럼 터뜨리며 안에든 짐승이나 나뭇조각들을 내뱉는 레퀴엠. 이에 녀석들 모두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남자는 순간순간마다 양손을 뒤로 옆으로 허리 아래로 머리 뒤로 포즈를 바꿔가며 모조리 총탄을 계속 명중시켰다.


이윽고 한 두 마리가 몰래 땅속을 파고들어가서 그의 뒤로 뚫고나와 그 커다란 입을 벌린다. 허나 남자는 그대로 몸을 휙 돌리는 머리를 땅바닥으로 내린채 360도 돌려차기로 녀석의 머리를 가격. 땅바닥에 떨어진 놈에게 하나하나 다시 총탄을 가격하였고 뒤에서 한녀석이 또 달려들자 허리를 휙 숙이고는 왼발로 다시 돌려차기를 먹여주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망설이지않고 놈들을 상대하는 움직임. 나르쉘은 그 모습을 보면서 나지막히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종말전쟁… 레퀴엠… 인류…."


툭. 그리고 품에서 떨어지는 낡은 역사책. 그것은 촥 펼쳐지면서 두 남자의 사진이 찍힌 내용을 보여주었는데 한 남자는 짧은 갈색머리에 담배를 문채 가운을 입고있었고 다른 한 남자는 흑색 군복을 입고있었는데 머리는 올백으로 넘긴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테트로노이드… 인공위성… 테트론… 그리고 그 전쟁을 홀로 끝낸 흑사병 부대의 최후 파일럿…."


연구실 밖에서 남자는 총탄을 교환하면서 날아드는 적을 향해 자기또한 날라차기를 먹인다. 그리고 떨어짐과 함께 장전된 탄환을 발사. 반대쪽에서 달려드는 녀석을 총을 쥔 왼손으로 막은후 오른손에 쥔 총으로 난사. 그렇게 주변에는 점차 구속에서 풀린 동물들과 사람들이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홀로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쿠르트 마이어… 30년전, 종말전쟁에서 전사한 테라스의 검은 악마…."


남자는 다시 기관총의 탄창을 갈고서 방아쇠를 당겼고 레퀴엠은 그를 감싸며 동시에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