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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밤의 제국』The Unholy Comedy

2007.06.17 17:49

Mr. J 조회 수:568 추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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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제국 


The Unholy Comedy


 


입장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에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그들에게 유쾌함을 주는 내 작품을 사랑했고, 배우들은 나의 새 작품이 나오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그것을 상연하였다. 신문지엔 언제나 커다랗게 광고가 실렸고, 거리는 나와 악수를 하고 싶어하는 신사들로 가득했다. 우스꽝스럽게도 나는 글로 많은 사람들을 웃겨 왔지만 정작 내 자신만큼은 웃길 수 없었다. 젊은 날의 기억도, 찬란한 빛의 경험도 전부 소용 없는 것이다. 언제나 가식이라는 이름의 익살맞은 가면을 쓰고 난 즐겁게 살아왔지만, 가면 뒤의 나는 언제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로움에 고통스러워 하던 나는 어느 날, 그 어느 날 갑자기 그 이유를 알아내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였지만 그것이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와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뚜렷하게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비극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희극이 나에게 슬픔을 주었다면, 비극은 나에게 웃음을 줄 것이다. 내 마음속 어둠의 강물을 퍼 올려 비극이라는 조각을 완성한다면 그것은 피 눈물로 젖은 나의 광대 가면을 벗겨주고, 부르튼 내 눈을 닦아 줄 것이다. 구부정한 내 어깨를 잡아 펴 줄 것이고, 쳐진 내 입 꼬리를 끌어올려 줄 것이며 흐리멍텅한 눈동자엔 색을 집어넣고 잿빛 얼굴엔 생기를 집어 넣어 줄 것이며 가슴엔 당당함과 밝은 영광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서재에 들어온 지도 한나절은 되었을 것이다. 내 마음속 깊숙한 곳의 어둠에 도달하기 위해 펜을 잡고 종이를 펼쳤지만 답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이 마음이라는 미궁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마치 나의 어두운 마음 속이 그 안에서 튀어나와 방을 악몽처럼 휘젓고 다니는 듯, 방 안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그 어두움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일까?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시커먼 것은 어두움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불확실한 정체성에 내가 머릿속으로 지어내고 있는 환상인 것일까.


 


어쩌면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가식의 행복함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나의 마음속을 미약하게나마 묶어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의 마음속 깊이가 어떤지도 모르면서 순진하게 그 구정물 속에 발을 뻗은 것이다. 이 시커멓고 끈적끈적한 어둠은 나를 천천히 빨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나를 잠식해 가며 내 정신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서서히 내 몸 밖으로 빠져 나와 모든 존재를 집어 삼키고 있다. 양초의 불빛과 창문으로 스며 들어오던 여린 달빛은 전부 그 짐승에게 잡아 먹혀버렸고, 내가 서 있던 방은 이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어떤 숲 속에 떨어져 있었다. 손엔 펜과 종이를 구겨 잡은 채, 위치를 알 수 없는 장소에 와 있었다.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그 어두움이란! 주머니를 더듬어 종이와 펜을 쑤셔넣고 어둠 속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정말로 내 스스로의 마음에 잡아 먹혀 버린 것일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그 놈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 공포? 분노? 슬픔? 무지? 배신감? 불안함? 난해함? 부끄러움? 그 어떤 단어도 지금 나의 머릿속을 표현 할 수 없다.


 


“안녕하세요?”


 


누군가의 말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으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었다기 보단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 그 어떤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소리가 들려온 어둠 속으로 손을 뻗는데, 갑자기 나타난 흐릿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램프의 불빛 이였다. 멀건 빛에 하나의 허연 얼굴이 귀신처럼 어둠을 가르고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기겁했지만, 소리를 지르진 않았다. 새하얀 얼굴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긴 했지만 서도, 그 얼굴은 20살도 채 안되 보이는 소년의 앳된 얼굴이었기 때문이니라. 게다가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열하거나 잔인한 미소가 아닌, 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한, 진정한 미소 – 적어도 나에겐 그의 미소가 천사의 가호처럼 보였다.


 


흐린 불빛에 비추이는 온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소년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당신은 이곳 사람이 아니군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소년은 손을 내밀어 그가 들고 있던 은은한 불빛의 램프를 건네었다. 그리곤 얼굴처럼 새하얀 살결을 가진 그의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북쪽으로 가면 문이 나올 거에요.”


 


나는 뭐라 대답도 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 램프를 받아 들었다. 램프 속의 불 붙은 심지는 마치 꺼질 것 같이 애타롭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꺼지지는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 불빛이란 것도 그렇게 밝지 않아, 내 주변만을 밝혀 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빛은 마치 자장가처럼, 폭풍우를 일으키며 종횡 하던 내 마음속 짐승을 쓰다듬어 그것을 진정시켜 주었다. 불빛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나는 얼른 제정신을 되찾고 고개를 들어 소년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오른손을 저으며 괜찮다는 표시를 하였다. 그런데 이 소년은 누구인가. 아니 그것보다 이 알 수 없는 장소는 무엇인가. 램프를 들고 주변을 살펴보던 나는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기괴한 풍경에 경악하고 말았다.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들이 달려있는 나무들. 하나같이 인간의 고통스러운 일면을 담고 있는 얼굴들은 나무에 박혀 그 생기를 잃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저것들의 정체란 무엇인가. 나무라 부르기 힘든 그것들은 뿌리와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로 서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암흑 속이었지만, 마치 그것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귓가를 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소년이 나의 손을 움켜쥐었다.


 


“자, 문으로 가자구요.”


 


그런데 이 소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문’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문이란 말인가. 이곳은 정녕 내 마음속이라는 것인가? 나는 기어코 마음속의 어둠에 잡아 먹히고 만 것인가. 그렇다면 이 소년은 누구일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으나 소년의 걸음걸이엔 망설임이 없었다. 손아귀 힘이 얼마나 센지 잡힌 손목을 잡아 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끌려가는데, 갑자기 소년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지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을 때, 어둠 속에서 소리도 없이 거대한 나무 문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짙은 검정색으로 칠해진 문은 매끄럽게 손질이 되어 있었으며, 알 수 없는, 그러나 신비하기도 하면서 웅장하기도 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어둠 속에 놓여져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매일 열심히 손질을 해 준 모양인지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았으며 금빛 문고리는 흐린 램프의 불빛에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지친 바람에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누워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머리가 아프고 안개가 깔린 것처럼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램프만은 꼭 잡고 놓질 않았다. 이것마저 놓아버렸다간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소년은 그 거대한 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처음 본 물건을 자세히 살펴 보는 모습은 아니고, 문에 이상이 있나 검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지금껏 문을 잘 관리해 왔던 것일까? 그는 길쭉하고 하얀 손가락으로 문의 매끄러운 표면을 쓰다듬어 내렸다. 마치 작고 소중한 것을 다루듯, 부드럽게 그것을 애무하던 소년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마저 띄고 있었다. 이윽고 나에게 고개를 돌린 그는 내가 몸을 가누고 있지 못하는 것을 보곤 다가와 예의 놀라운 힘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손목이 시근거리긴 했지만, 두통과 뿌옇던 눈앞은 아까보다 좀 나아 진 듯 했다.


 


그는 금빛 문고리를 잡고, 거대한 문을 당겨 열었다. 문은 아무 소리 없이 그 아귀를 벌리었다. 나는 얼굴을 들고 문 안쪽의 광경을 바라보려 했으나, 문 안쪽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건지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것인지, 문 안쪽이 어두운 것인지 안쪽이 어둠으로 차 있는 것인지, 아무리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보아도 그 곳은 마치 완전히 다른 세상, 혹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장소인 것만 같이, 보고 있어도 볼 수가 없었다.


 


“안을 들여다 보세요.”


소년이 나에게 속삭였다.


 


그렇다, 여기서 바보같이 뭐하고 있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다면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면 될 것을. 나는 천천히 걸어, 문 앞에 다가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문 안쪽에서 나고 있던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좀더 얼굴을 들이밀어 귀를 기울이자, 소리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마치 메아리처럼, 문 안쪽에서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마치 그 소리는 내 마음이 지르고 있는 소리인지, 복잡한 감정이 섞인 느낌이었다. 그것은 분노에 내지르는 고함도 아니었고 슬픔에 흐느끼는 소리도 아니었으며 기쁨에 젖어 웃는 소리도 아니었고 고통에 찬 신음소리도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는 내 자신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일수록 그 소리는 작아져 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애타게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들을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밀치는 바람에 나는 몸의 중심을 잃곤 문 안쪽의 어둠으로 넘어져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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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 기종님 (badsmile.wo.to)

 


 


 


 


 


 


 


 ㅠ.ㅠ 2기를 써봤습니다.


1기에 쓰였던 표현을 많이 가져다가 썼습니다.


1편 부턴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