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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sdf

2008.09.14 05:11

칼르베른 조회 수: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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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차내에서 졸고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률적으로 흔들린다. 예외는 없다. 마침 도원경의 경계를 넘으려 하는 찰나에 눈이 떠져버리는 바람에 허망해진 나는 괜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이들을 졸음에 젖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둘러보았다. “......” 어, 음... 입가를 타고 흐른 침을 소매로 닦아낸다. 괜스레 민망해져 엉덩이를 들고는 뒤쪽 좌석에 앉은 승객들의 동태를 살피는 척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이쪽을 주시한다. 모두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는 정적인 버스 안에서 수선스럽게 두리번거리는 승객이 신경 쓰이는지 힐끔힐끔. ‘뭘 봐 이 양반아, 내릴 정거장 안 놓쳤으니까. 운전에 집중이나 하시지. 승객 얼굴 살피라고 백미러 달아 놓은 줄 알아.’ 이런 눈빛을 쏴 주고는 다시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침에 널어 둔 이불을 걷어 들이자. 하루 종일 쾌청한 날씨였으니 분명 푹신푹신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날 것이다. 오늘밤은 아무 생각말고 이불에 살을 부비며 잠자리에 들자. 종일 혹사당한 몸을 달래며, 달콤한 포상을 속삭여 준다. 버스의 부자를 누르는 사람도, 이런 벽지에서 게다가 자정에 가까운 시간대에 정거장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기에 버스는 멈추는 일 없이 종점을 향해 달렸다.


 훌륭한 폐가 대열에 오를 만큼 허름한 맨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푹신한 이불만이 아니었다. 아래층에 사는 고시생인 양군이 계단을 오르는 내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현관을 박차며 뛰어 나와 앞길을 가로 막았다. “뜬금없지만 일조권이 뭔지 아십니까?” 정말 뜬금없다. 고시생이 왜 나한테 조문을 구하는 것인지 멍한 눈으로 양군을 잠시 바라본 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고졸의 니트(NEET)에게 뭘 기대하는 것인가. 일조권이든 당랑권이든 난 지금 몹시 피곤해서 얼른 방으로 돌아가 이불에 몸을 묻고 싶단 말이다. “그렇다면 설명해 드리죠.” 나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일조권이란 말이죠...”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군은 일조권에 대해 조밀하게 설명해 주었다. 친절하게도 알기 쉬운 예를 들면서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빠르지 않은 어투로 말이다. 덕분에 대학중퇴생인 나조차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햇빛이 안 들어오니 베란다에 널어놓은 이불을 치워달라는 얘기죠.” “이해해주시니 다행이군요.” 이해 이전에 그럴 셈이었다. 가지고 있는 이불도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럼 먼저 실례...” 서둘러 계단을 오른다. 더 이상 마주하고 있어 봤자 서로에게 아무런 시너지 효과도 없으니 말이다. “아, 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 곳에 양군이 아직도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계단에 불을 오래 켜놓고 있으면 주인아주머니에게 또 잔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밥은 드셨습니까?” “예..?” “......” 난 겸연쩍게 웃었다. 양군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안경을 번뜩이더니 ‘아닙니다.’ 하고 한마디 내뱉고는 열평 남짓한 방으로 돌아가 버린다. 괜히 기분이 뒤숭숭해져서, 애꿎게도 피로한 다리를 재촉하며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녹슬어서 열고닫을 때마다 기괴한 소리를 내는 방문 앞에 도착했고, 여느 때처럼 능숙한 솜씨로 문을 열어젖혔다.  “하아...” 일단은 한숨부터 내쉰다. 물에 흠뻑 젖은 노견이 물을 털어내듯 피로함을 토해내는 것이다. 방안은 온통 어두웠고, 현관에서 한판 춤사위를 벌인 후에야 백열등을 켤 수 있었다. 동공에 새겨지는 것이라고는 한칸의 방과 화장실이 전부인 실내, 그 위로 산란하게 흐트러진 옷가지와 갖은 생필품뿐인 좁은 방에서 나는 백팩을 살며시 바닥에 내려 놓고는,베란다로 발을 옮겼다. 기분 좋게 몸을 휘감는 푹신함을 상기하자 의식치 않게 안면의 근육이 완화되며, 오늘 하룻동안 쌓여 있던 노곤함이 양털에 파묻혀 형체를 감추는 듯했다. 그래, 양털이다. 쾌청한 하늘에 떠 있는 한 점의 구름같이 순결하고 새하얀...


 나는 매우 들떠있다. 지금이라면 피터 팬의 유혹을 받아 밤하늘을 가로 질러도 두려움에 오줌을 지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눈빛을 빛내며 어서 들어가고 싶다고, 소리를 질렀다. 흥분했다.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천식으로 기침이 심해져 에페드린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다물어 지지않는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터졌다. 한시라도 빨리 저 눈앞에 펼쳐지려 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도약하고 싶다. 어서! 어서! 아, 입장권?
 내가 동물원에 입장한 것은 아버지가 매표소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곳에서부터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쫓든 아주 느린 속도(나의 마음속에서는 2번이나 우주가 재탄생했다.)로 걸어오기 시작해 도착한 매표소에서 두장의 종이쪽을 가지고 온 뒤였다. 7살짜리 어린애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려 할 찰나에 말이다. “자, 그럼 갈까?” 한손에는 모르는 남자에게 절반을 빼앗겨 버린 종이쪽을, 남은 한손으로 팜플렛을 집어 들고, 아버지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동물원의 입구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의 걸음에 맞추기 위해 속도를 늦췄지만 얼른 안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지면을 찼다. “그래. 어디부터 갈까?” 팜플렛을 펼치며 동물원 전도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내게 물어왔다. “양! 양!” 두 번이나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지상에 내려온 듯한 형상을 한 동물을 곧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입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나의 손을 아버지는 조용히 감싸 잡으며 초췌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조급하게 굴러대는 발소리, 발소리만큼이나 채신없이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 서두르는 법 없이 나를 조용히 이끌어 주는 아버지의 낡은 구두의 소리. 어색하면서도 위태롭게 화음을 이루었고,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초인데도, 눈싸움이라도 하고 온 듯 찬 아버지의 손 때문에 나는 도중에 몇 번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 날씨가 흐렸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덜컹거리는 차체의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대부분의 아침방송이 그러하듯 차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철지난 가요였다. 가요라는 것은 최신의 트렌드에 맞춰 만들어지는 ‘일회성’ 짙은 것이라 수명도 짧아 길어야 1년 짧게는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쉬 잊혀지는 것이지만, 시간이 흘러 우연히 다시 듣게 된 철지난 가요는 당시의 기억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버스가 멈춘다. 내 옆에 서서 MP3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고 있던 남학생이 열려진 뒷문으로 내리고, 앞쪽에서는 무기질적인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하나둘 사람들이 비좁은 버스 안을 비집고 들어온다. 좌석에 앉은 나의 객관적인 시점에서 볼 때 이것은 마치 콩나물시루 같기도 하고, 통조림 같기도 하다. 혹은 콩나물 통조림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이른 아침부터 참 고생이구나, 하고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삐익’ 소리와 함께 채 문도 닫히지 않았는데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다음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노래는 머지않아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구름 낀 날씨 때문인지 온종일 나른했다. 겨우 하루 정도 햇볕을 쬐지 못했다고, 정신적으로 병들어 버릴 일은 없겠지만, 잿빛의 하늘은 질색이다. 나는 한 모금의 물을 들이키고 나서 창밖으로 흑운(黑雲)의 흐름을 지켜본다. 흐르는 것인가. 바람이 볼을 스치는데도 온통 하늘을 뒤덮은 그것들은 부동인 채 하늘을 부유하고 있다. “종일 잿빛이구만.”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한손에 종이컵을 든 정장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눈이 마주친다. “그렇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하루 중 절반이 지난 것뿐이지만, 그는 그것을 ‘종일’ 이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종이컵을 입으로 옮기며 남자는 킬킬 웃었고, 이렇게 잔뜩 먹구름이 낀 것을 보나, 맞바람이 부는 것을 보나 오늘 중으로 비가 쏟아질듯 했다. 그러나 나는 이번만큼은 그의 말에 동조하지 못했다. “비를 좋아하세요?” “......” 동시에 나는 내 자신에게도 자문했다. 비를 좋아하세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즉답이 나오긴 했지만. “비는 질색이야.” 정장차림의 남성은 내용물이 사라져버린 종이컵을 꾸긴 후 자판기 옆 휴지통에 던져 넣는다. ‘그런데, 어째서….’ 그 의문이 입 안에서 맴돌다가 맥없이 삼켜진다. 그리고 시침이 1시를 가리켰다.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서류정리를 위해 아래층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워드프로세서가 가동되어 있는 PC가 아닌 산처럼 쌓여있는 A4용지로 가득 찬 박스들이지만.


 이상향과 현실의 갭은 우리가 상정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불행이 우리가 예측하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듯 꿈꾸던 이상 역시 현실에 반영된 모습은 너무나도 참담하다. 난데없이 나치주의자들에게 쫓기게 된 모리츠의 기분이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른 침을 삼켰다.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아버지의 차디찬 손의 감촉이 혈관을 타고 심장을 향하는 오한마저 들었다. “왜 그러니?” 그렇게도 동경하던 동물을 눈앞에 두고 얼어붙어버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한가로이 서로의 몸을 부비고 있는 동물들에게서 구토 감을 느꼈다. 그들의 잿빛 털색에 애증의 갈증이 목을 타고 흐른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첫 마디를 뗐다. 마음을 굳히고. 당시의 내가 전지전능할 것이라 믿고 있었던 아버지에게. “저게 양이야?”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그림책을 통해 동공에 새겨왔던 그 형상을 잊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에겐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했고, 누군가가 그 격철을 당겨주길 바랬던 것뿐이다. “아냐.” 눈을 떴다. 아니, 놀라움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올려다 본 아버지의 얼굴은. “저건 가짜야. 진짜 양이 아니야.”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쾌청한 하늘과 같은 청량함으로 웃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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