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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2, 8 그리고 플러스 1의 청춘 prologue

2008.09.06 11:24

소나무 조회 수: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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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고등학생 하기 싫어. 그냥 이대로 중학교 다니면 안 돼?


 



 


나는 그렇게 물었다가 엄마에게 된통 혼났다. 엄마는 이 년이 미쳤나, 하는 눈으로 나를 흘겨보고는 커다랗고 두툼한 손을 들어 내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밥 안 묵나. 아야, 아파! 비명을 지르며 다시 내 엉덩이로 날아오는 엄마의 손을 간신히 피해냈다. 농담이야, 농담. 근데 나 때리지 좀 마. 엄마 손이 얼마나 매운 줄 알아? 나는 엄마가 또 내 이마를 쥐어박을까봐 얼른 몸을 추슬러 밥상 앞에 가 앉았다.


 



 


밥에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콩이 잔뜩 박혔다. 엄마 눈치를 보며 젓가락으로 까맣고 노란 콩들을 깨작깨작 밥그릇에서 다 빼냈다. 부스러진 콩들로 온통 밥상머리가 지저분해졌다. 에잇, 콩이 반이네, 반. 그러다가 혼자 뜨끔해서 엄마를 곁눈질로 흘끗 보면, 엄마는 아까부터 연신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니 고등학교 올라가면 지금의 두 배로 돈이 들 거 아이가. 우짜면 좋노, 지금도 충분히 벅찬디. 그러면 나는 우리 집이 그리 좋은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학원도 안다니고 과외나 학습지도 안하는데 그나마 가끔씩 문제집 사느라 일이만원씩 받아가는 그 돈을 건네 줄 때마다, 엄마는 요즘 아빠의 밥벌이가 영 시원찮다고 몇 분씩이나 하소연을 해댔다. 집이 폭삭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나 뭐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 탓에,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음 놓고 문제집을 사달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친구들 다 가는 학원은 엄두도 못낸 건 당연하다. 아, 가난하면 공부도 눈치봐가면서 해야 하다니. 정말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괜히 서러워져서 죄 없는 까만 콩 껍데기에 화풀이를 했다.


 



 


콩나물 대가리 따는 일이라도 해야 하려나,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에이, 그런 거해서 돈 얼마 번다고 그래. 차라리 내가 나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그렇게 말하자 엄마가 또 내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니 쓸데없는 소리 말라캤제, 니는 공부나 열심히 하믄 된다. 엄마, 나도 농담으로 한 말이야. 나는 억울해하며 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미안하다, 미안. 엄마가 사과 아닌 사과를 하며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왜 웃어? 그러면서 나도 웃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서로를 마주하고 웃어대다가 이내 시들해져서, 엄마는 설거지를 하러 일어서고 나는 여전히 콩이 조금 남아있는 밥그릇을 밥상 구석으로 슬그머니 밀어놓았다.


 


 


 


 



 



   


설렘과 기대로 시작되어야 할 첫 고등학교 생활은 내겐 마치 하얀 쌀밥에 송송 박힌 까만 콩들과도 같아서, 전혀 반갑지 않은 불청객에 불과했다. ‘네 성적으로 실업계를 가겠다고? 안 된다, 안 돼.’하면서 억지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써넣은 담임선생님 덕분에,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학교에 매일매일 밤 열시 삼십분까지 남겨져 있어야 한다. 더 암담한 사실, 중학교 공부야 시험 하루전날 벼락치기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했기에 그럭저럭 좋은 성적이 나왔지만, 고등학교에선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아는 언니 오빠들에게 들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성격에 단지 고등학생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를 꾸준히 하게 될 리는 없다. 중학교 때는 나름대로 우등생이었던 내가 곧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은 어쩌면 불 보듯 뻔 한 얘기다. 내가 이래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그나마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같은 학교에 합격하게 된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아아, 모르겠어. 요 몇 달 전부터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모두모두 어려운 말들만 잔뜩 해대고 있었다. 내신이니 수능이니, 수시니 정시니 하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결국 잘 먹고 잘살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는 이야기로 끝나는 지루하고 따분한 화제들이 대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아무렴 어때, 하고 나는 하품을 했다. 왜들 그리도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걸까. 귀찮게시리. 그렇지만 나는 사실 이런 생각들이 철 없는 생각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귀찮은 걸 어떡한담.


나른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나는, 둥둥 떠다니는 먼지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과 전봇대에 허름하게 붙어있는 ‘성적향상보장!!’ 과외 광고 종이, (그나저나 소영이는 왜 이렇게 늦는걸까) 그리고,


그 때 마침 짧은 진동과 함께 도착한 ‘미안, 나 오늘 학원 가야해서 안될 것 같네’라는 친구의 문자메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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