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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PANDEMONIUM

2008.05.19 10:27

Rei 조회 수:947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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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emonium.


 


1. Charles Spencer Chaplin


 


이지도르 식세어의 보고서 《롬 멜롬의 지옥》 1~10p 中 발췌.


 


굳이 더 이상의 존경과 경외를 더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위대한 우리의 단체는 롬 멜롬의 경험에 대해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3년 전부터 행방이 묘연한 롬 멜롬은 사실, 우리 단체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책상서랍 2번째 칸에 ‘PANDEMONIUM' - 이후부터는 PAN. -이라는 정체불명의 수기(手記)가 발견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공책에 담긴 내용이 ‘거짓’이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 현명한 학자들은 수기의 내용을 살펴보며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


심지어 펠렌도 이지스칸의 경우는 수기를 본 이후 그 어마어마한 공포를 이기지 못해 미쳐버렸다는 사실은 PAN.이 허구적 사실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펠렌도 같이 위대한 학자가 고작 인간이 빚어낸 상상력의 부산을 보고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점은 황금 새벽회의 대부분의 학자들도 공감하는 사실이다.


혹자는 자신도 그 수기를 보았지만 멀쩡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발언은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어리석음의 불과하다. 범인과 천재의 장벽을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을 한 이들 대부분이 하위 직책에 머무는 자들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충분히 타당한 사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따라서 우리는 - 롬 멜롬 위원회는 - 도서관 한구석에 단순한 소설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PAN.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연구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을 피력한다.


 


 


 


그 날은 반쪽자리 달마저 구름 뒤로 숨어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롬 멜롬은 졸린 눈을 비비며 상부에 제출할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낡은 램프 하나에 의지하여 글을 쓰는 그의 방은 각종 실험기구와 어지러이 펼쳐진 장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약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두 시간이 넘게 정신없이 글을 쓰던 롬 멜롬은 손가락에 피로를 느끼며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가볍게 엄지와 중지를 누르니 ‘뚜둑’ 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내친김에 목과 허리를 비틀어 시원한 뼈 마찰음을 이끌어낸 롬 멜롬은 절반쯤 새로워진 기분으로 다시 펜을 잡았다.


 


“열심이시구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롬 멜롬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펜을 힘껏 쥐었다. 자신의 집은 겉보기에도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라 도둑이 실수로라도 들어오기 힘든 곳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도둑이 훔쳐갈 만한 패물 따윈 없었다.


따라서 롬 멜롬은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건 사내 - 확신 할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가 굵었다. - 는 자신에게 용건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롬 멜롬은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가장한 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등 뒤에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누구시오?”


“사람들은 날 악마라고 부르지요.”


 


사내의 말을 들은 롬 멜롬은 자신에게 이런 재미없는 장난을 할 만한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세렉스 발란티, 푼 소란, 휠리오 보르도, 네메세네 쥴.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집에서 적어도 수십킬로는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연륜이 지긋한 노인들이라 이런 장난을 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롬 멜롬은 추리를 통해 상대를 맞추기보다 좀 더 확실하고 쉬운 방법. 즉 고개를 돌리기로 결심했다.


롬 멜롬은 다시 펜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의 한계까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사내는 영국 신사였지만, 딱딱한 이미지를 주기보단 찰리 채플린 같은 사내였다.


머리에 쓴 검은색 모자는 자로 잰 듯이 정확히 이마의 3/2지점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약간 노쇠한 듯 한 얼굴엔 젊잖아 보이는 주름과 소도구처럼 어울리는 콧수염이 자리하고 있었다.


양복은 어찌나 다림질을 했던지 주름하나 찾기가 힘들었고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는 정확히 그의 벨트 윗부분까지 올라오는 길이였다.


롬 멜롬은 스스로 악마라 밝힌 사내에게 호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농담조로 질문을 했다.


 


“찰리 채플린이 여긴 무슨 일이시오?”


 


악마는 쿡쿡거리며 웃은 후 대답했다.


 


“당신을 지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라오.”


“내가 생각하기엔 난 아직 살날이 많이 남은 것 같소만? 그리고 지옥에 갈 만큼 나쁜 짓을 한 적도 없소.”


 


롬 멜롬은 여전히 농담조로 대꾸를 했고 악마는 딱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소 선생. 난 단지 당신에게 지옥을 구경시켜주기 위해서 온 것일 뿐이니까.”


“내가 그걸 봐서 무얼한단 말이오?”


“그건 당신이 모든 것을 끝낸 후에 알게 될 것이오. 롬 멜롬 선생. 나와 함께 가시겠소? 참고로 말하면 이건 순수한 호의일 뿐이오.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소.”


 


롬 멜롬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악마의 말에 대꾸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소? 악마를 믿는 건 얼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들었는데.”


 


악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선생에게 해코지를 하려했다면 이렇게 나타나지도 않았소. 그리고 단테도 지옥구경을 하고 무사히 돌아왔는데 선생이라고 못할게 무어요? 자 결정하시오. 선생이 지옥구경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가는 펜과 공책한권이면 족하오.”


 


롬 멜롬은 악마의 제안이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다. 펜과 공책. 아마도 자신이 본 지옥의 풍경을 적어달라는 것일텐데, 솔직히 그는 악마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망설이던 롬 멜롬은 책상서랍에서 두꺼운 공책한권과 펜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아, 펜을 가져갈 필요는 없소 선생. 내가 하나 주리다.”


 


악마는 자신의 앞주머니에 꽂혀있던 펜을 롬 멜롬에게 건네주었다.


 


“잉크가 마르지 않는 펜이라고 선생. 많은 글을 쓰려면 보통 펜으론 힘들지 않겠소?”


“고맙구려 악마씨.”


“준비가 다 끝났다면 곧장 출발하도록 하겠소. 명심 할 것은 나는 선생에게 아무런 해코지를 할 의사가 없으며, 선생 또한 내 말만 잘 듣고 따라온다면 무사히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오.”


 


롬 멜롬이 고개를 끄덕이자 악마는 빙그레 웃으며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 번 쳤다.


탁! 탁!


그 순간 롬 멜롬과 악마는 브릭스톤의 한적한 시골 초가집에서 사라졌다.


 


---------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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